임지강은 질문을 듣고 표정이 다양해졌다. 신세희는 더욱 많은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눈물로 인해 흐릿해진 시선으로 임지강을 보았다. “아저씨, 제가 12살 때 임가네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저는 임가네의 양딸로 살았어요. 아저씨는 늘 저에게 8년이나 저를 키워 주셨다고 강조하셨고, 8년이라는 시간동안 제가 생활비부터 의식주 그리고 정까지 아저씨께 빚졌다고 하셨죠.”임지강은 성을 내며 말했다. “그게 틀린 말이니?”신세희는 웃으면서 울었다. “만약 제가 아저씨 딸이라면, 저를 8년 밖에 안 키워주셨는데 오히려 아저씨가 저한테 빚지신 거 아닌가요?”“제가 아저씨 딸이라면서요! 그럼 제가 12살이 되기 전에 어디서 뭐하고 계셨어요? 12살 전에 저에게 제일 아빠가 필요할 때 어디 계셨냐고요?”“아 맞다. 제가 12살이 된 후에 엄마가 저를 임가네에 보냈다고 해도, 제가 아빠라고 절대 못 부르게 하셨잖아요!”“저한테는 늘 인심 쓰시는 태도셨어요. 아저씨가 기분이 좋으시면 저한테 먹을 걸 주고, 기분이 안 좋으시면 저를 바로 차서 문 밖으로 쫓아내셨죠.”임지강은 변명을 하려 했다. “내가 널 발로 찬 건, 네가 숙제로 똑바로 안 해서잖아…”“제가 숙제를 똑바로 안 했다고요?”신세희가 물었다. “제가 멀리 떨어져 있는 농촌에서 배운 지식들은 도시에서 배우는 거랑 완전 달랐었어요. 제가 전학을 처음 온 그 해에 아무것도 못 알아들었었지만, 두달을 거쳐 저는 성적을 다 올렸다고요.”“중간고사때도, 제가 그쪽 귀한 따님보다 2배는 더 잘 봤었어요!”“아저씨, 제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를 제일 심하게 때리셨던 날이, 임서아가 모든 과목을 불합격 받았고 저는 모든 과목을 다 만점 받은 날이었죠.”임지강:“......”임가네에서 있었던 8년의 시간이, 신세희에겐 제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하지만 이 순간, 이야기 상자를 열어버린 그녀는 얼른 다 털어놓고 싶었다.27년이 걸렸다.장장 27년이었다.임지강은 드디어 자기 입으로 그녀가 자신의 딸이라고 말
임지강은 신세희에게 직접적으로 물었었다. “넌 우리 집에 입양됐으니, 우리 집 자식이나 마찬가진데, 나한테 아빠라고 부르고 싶어?”당시에 겨우 12살이었던 신세희는 그를 무서워했지만,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를 보았다. “저는 제아빠가 따로 있어요. 제 아빠는 신 씨고, 돌아가신지도 얼마 안됐다고요!”당시 이 말에 임지강은 화가 났다.그는 팔을 들어서 무섭게 신세희의 얼굴을 때렸다.그래서 신세희 입안 제일 깊숙히 있던 이빨 하나가 덜렁 거렸었다.게다가, 신세희의 이빨이 곧 빠지기 직전이였는데도 아무도 12살짜리에게 새로운 이빨로 교체해주지 않아서, 그녀는 이빨이 아예 빠져 버리기 전까지 며칠동안 얼굴이 부어있었다.아직까지도 신세희의 안쪽 이빨은 비어있다.임지강은 신세희가 자신을 아빠라고 불러주지 않아서 싫은 건 아니었다.신세희 몸에서 나는 가난한 냄새, 촌스러운 냄새에 임지강은 역겨움을 느꼈다.제일 중요한 건, 임지강은 신세희를 보기만 하면 그 거지 같은 처녀귀신 같던 여자가 생각났다.그래서 신세희가 임가네에 들어온 순간부터, 임지강은 신세희가 자신의 딸인 걸 알면서도 돈이 아까워서 신세희에게 옷을 사주지 않았다.신세희는 늘 임서아가 안 입는 옷을 입었다.가끔 임서아가 입기 싫어진 옷을 신세희가 입은 걸 볼 때면, 다시 뺏어가기도 했다.신세희가 입었을 때 안 예뻐서 그녀에게 재미를 주지 않는 이상 말이다.그래서 12살 때부터 대학 때까지 신세희는 작아서 배꼽도 제대로 못 가리는 옷을 입었고, 짧아서 발목도 못 가리는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가는 바람에 친구들에게 비웃음을 당했다.하지만 임지강은 예전에 이런 일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그러게 누가 그렇게 더려운 여자 뱃속에서 태어나라고 했나?그리고 지금도 임지강은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임지강은 그때 대단한 여자를 잃고 좋은 기회를 놓친 게 후회됐다.하지만 지금 서 씨 집안 어르신이 자신의 다른 딸에게 잘해주고 있으니 이건 같은 거였다.지금, 서 씨 집안 어르신은 신세희를
신세희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그녀는 임지강이 자신의 아빠라는 걸 안지 오래 됐었다.그녀도 늘 임지강에게 왜 자신에게 그렇게 모질게 굴었는지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그러나 나중엔 시간이 많이 지나고 그녀도 갈수록 실망을 해서 물어보기 싫어졌다.그리고 그 다음엔 엄마가 뜻밖에 재난으로 인해 행방불명이 되었고, 자신도 강제로 감옥에 갔다가 이리저리 숨어다니면서 임지강이 6년동안 자신을 죽이려고 했기에, 신세희의 실망은 증오로 변했다.깊은 증오로 변했다.그녀는 이미 임지강이 이번생에 자신을 인정해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그가 인정을 해준다고 해도, 신세희가 임지강을 인정하지 않을 테다.하지만 신세희는 자신이 27살이 되는 이 해 어느 날, 임지강이 직접 자기 입으로 자신이 그의 친딸이라는 걸 인정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가 직접 인정했다.“27년이에요! 저의 모든 아픔, 저의 미움, 저의 수치, 제가 감옥에 갔던 거, 제가 대학 졸업도 못한 거, 제가 혼전임신한 거, 제가 아이를 데리고 도망다닌 거.”“그리고 엄마의 행방불명까지, 다 친아빠인 당신 때문이었어요.”“제가 이번생에 당신 같은 친아빠가 있다는 건 정말 재수가 없어도 너무 없네요!”“난 당신을 죽일 수 없어요. 당신 가족들도 죽일 수 없겠죠. 근데 지금, 당신 딸 임서아는 죽을 병에 걸렸네요. 죽을병! 하하하…”이 순간, 그녀는 부끄러울 정도로 웃었다.그녀는 생각도 못 했다.정말 생각도 못 했다.그녀와 임지강이 이런 방식으로 진실을 털어놓게 될 줄은 몰랐다.“너 진짜 사람이 죽는 걸 보고만 있을 거야?” 임지강이 물었다.“당연하죠!”신세희는 차갑게 웃었다. 그리고 살짝 멈칫하다가 어깨를 들썩였다. “게다가, 임서아도 당신들 양딸 아니에요? 양딸이면 당신이랑 피가 하나도 안 섞인 거잖아요. 제 신장이 안 맞을지도 모르죠.”“서아는 내 친 딸이야! 네 친 동생이라고!” 임지강은 갑자기 눈물을 마구 흘렸다.이 점은 정말 생각지도 못 한 부분이었다.임서아는 그녀보다 몇 개
노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지금 나한테 뭐라고 욕했냐?”“철없이 나이만 먹고 죽지도 않는 인간이라고 욕했습니다!”“네가 감히 나를 욕해?”신세희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네! 어른답지 못한 건 사실이니까요! 그거 알아요? 소경 씨랑 이쪽으로 오면서 당신이 크게 앓아누운 줄 알았어요. 당신이 죽게 되면 손자한테 연락은 해줘야 하잖아요? 그 생각하면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알아요? 그쪽이 드디어 죽게 생겼으니까요! 더는 나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좋았어요!”“너….”서 씨 어르신은 분노에 말도 채 잇지 못했다.하지만 신세희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참 끈질긴 목숨이네요! 그래도 괜찮아요. 당신 외손녀는 죽게 생겼으니까! 가짜 말고 진짜 당신 외손녀요! 딸을 평생 찾아다녔다면서요? 어렵게 되찾은 외손녀가 죽으면 당신은 어떤 느낌일까요? 가슴이 찢기는 느낌이겠죠?”서 씨 어르신은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집어삼켰다.생각 같아서는 당장 총으로 신세희를 쏴 죽이고 싶었다.하지만 병실에 누워 있는 외손녀는 신세희의 신장이 필요했다. 그러니 죽일 수 없었다.그는 다 구겨진 존엄을 유지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잠시 숨을 고른 뒤, 어르신은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신세희, 너는 줄곧 내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는 걸 알고 있다.”“뭐라고요?”신세희는 그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만약에 말이다. 만약에… 네가 적합성 검사를 받아보고 일치해서 신장을 기증해 준다면… 그래서 내 외손녀를 살릴 수만 있다면 앞으로 더는 너한테 어떠한 편견도 가지지 않겠다고 약속하마. 너를 인정하고 우린 사이 좋게 지낼 수도 있어. 소경이를 친손자처럼 생각하는 만큼 너도 그리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남성 재벌 인사들에게도 너를 소개해 주지. 네가 지난 과거를 많이 후회하고 네 동생을 위해 신장까지 내주었다고 말이다.”서 씨 어르신은 마치 다 너를 위한 일이라는 것처럼 대수롭
신세희는 부소경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었다.그녀와 서 씨 어르신이 피 터지게 싸우는 동안 부소경은 아무 말이 없었다.하지만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전에는 단지 추측일 뿐이었던 일이 확신이 생겼다. 예전에 그는 신세희가 임지강과 서 씨 어르신이 잃어버린 딸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신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내 생각이 맞았어.’부소경의 가슴이 차갑게 얼어붙었다.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임지강의 사지를 찢어버리고 싶었다.하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그저 평소처럼 차갑고 냉랭한 표정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그가 이 정도로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서 씨 어르신 덕분이었다.그들 사이에는 임 씨 가문 사람들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이 있었다.부소경은 약속을 했으면 지키는 사람이었다.신세희가 어르신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임지강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어르신께서 임서아를 손녀라고 계속 오해하게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언젠가는 임서아 일가에게 뼈에 사무친 배신을 당하게 될 텐데 그것 역시 처신을 잘못한 어르신이 받아야 할 대가였다.신세희와 밖으로 걷던 부소경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병실 앞에 서 있는 임지강 내외와 서 씨 어르신을 바라보았다.그는 어르신에게 허리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어르신, 그럼 저희 먼저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신세희의 어깨를 끌어안고 다시 걸음을 돌렸다.복도 모퉁이를 돌아 엘리베이터까지 도착한 신세희는 드디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속 상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곪고 곪아서 이미 딱지가 앉아버린 상처를 누가 다시 헤집은 기분이었다. 여전히 숨쉬기 힘들 정도로 아팠고 처음 상처받았을 때보다는 차원이 다른 아픔이었다.두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그들을 불러세웠다.“부 대표, 세희 씨, 잠시만요.”한 중년
신세희는 한 번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이때, 서준명이 신세희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신세희 씨, 겁내지 말아요. 제 부모님은 진짜 조카를 찾고 싶어 하셨던 사람들이에요.”“그래, 맞아!”서준명의 부친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꼭 찾고 싶었어! 내 여동생의 핏줄인데 당연하지! 아가, 전에는 우리가 너한테 많이 잘못한 것 같구나. 네가 고모를 닮았다고 준명이가 여러 번 말을 했는데 그때는 믿기지가 않았어. 그래서….”서준명의 부친은 구슬픈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떨구었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이 중년 남자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우린… 나랑 네 외숙모는 귀가 너무 얇아서 약아빠진 인간들의 말에 속아 너를 몰라본 것 같구나….”서준명의 모친도 미안한 얼굴로 신세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외숙모도 잘못이 커. 아가, 우리가 그 인간들의 말만 듣고 편견을 가지고 너를 바라본 것 같아서 미안해. 네 외삼촌이랑, 나, 그리고 준명이는 너를 지지한단다. 절대 임서아한테 신장을 기증해 주지 마.”신세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자코 있었다.이때 서준명이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세희야, 나를 오빠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네 마음도 이해할게. 내 부모님을 인정해 주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 넌 가족이 없는 게 아니야. 이제 우리가 네 가족이니 우리가 너를 지켜줄게. 네가 임서아를 위해 신장을 내놓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신세희의 눈가가 붉어졌다.외숙모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아가, 똑똑하지 않은 우리도 눈치챌 수 있었는데 영감님은 뭐에 홀렸는지 모르겠다.”신세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를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솔직히 저 조금 감동했어요. 하지만 서 대표님, 그리고 두 분… 저는….”그녀는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저는 당신들이 찾는 조카가 아닙니다. 그래서 서 대표님의 고모라는
“엄마, 정말 이곳에 있어? 6년이나 찾아가 보지 않았다고 나한테 화나서 안 나타나는 거야? 미안해, 엄마. 세희가 정말 미안해… 나를 그렇게 사랑해 줬는데 나는 엄마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혼자 어떻게 사는지 너무 걱정돼, 엄마…. 줄곧 떠돌이 생활을 한 거야?”“엄마… 난 정말 나쁜 딸이야.”신세희는 결국 울며 바닥에 쓰러졌다.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었다.그녀가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엄선희였다.원래대로라면 오늘은 회사에 출근해야 했다. 아침부터 서 씨 어르신의 연락을 받고 병원에 달려갔다가 상처만 입고 정신을 못 차리느라 출근해야 한다는 것도 깜빡하고 있었다.신세희는 다급히 눈물을 닦고 전화를 받았다.“미안해, 선희 씨. 오늘 집에 일이 좀 있어서 출근은 힘들 것 같아.”“무슨 소리야?”엄선희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재촉하려고 전화한 거 아니야. 유리가 선물한 액세서리 박스 있지? 회사 어린 후배들이 그걸 엄청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고. 글쎄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엄선희는 너무 들뜬 탓에 신세희의 약간 울적한 말투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신세희도 걱정 끼치기 싫었기에 억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후배들이 보는 눈이 있네.”“그럼!”엄선희가 자랑스럽게 말했다.“세희 씨, 조사해 보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어제 집에 가서 검색해 봤더니 글쎄 가성섬 흑금목 소재가 금보다 더 비싸다면서?”신세희가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설마 그거 팔아서 현금으로 바꾸려는 건 아니지?”“당연히 아니지! 사실 나한테 왜 이렇게 귀한 걸 선물로 줬는지 알 것 같아.”엄선희가 말했다.“그건 유리가 고른 건데….”“세희 씨가 동의하지 않았으면 어린 유리한테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런 선물을 샀겠어? 립스틱이랑 매니큐어는 유리가 골랐다는 거 믿겠어. 하지만 이 액세서리 박스는 아무리 봐도 세희 씨가 추천한 것 같단 말이지.”신세희도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울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선희 씨, 걱정하지 말고 일 해. 조금 쉬면 낫겠지 뭐.”엄선희는 점점 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그녀가 어리둥절한 말투로 물었다.“세희 씨, 혹시 울어?”마침 옆을 그녀의 옆을 지나가던 할머니가 그녀에게 다가가더니 관심조로 물었다.“아가씨, 무슨 슬픈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울상을 하고 있어? 이 할미한테 말해봐. 혹시라도 내가 도와줄 수 있잖아.”신세희는 더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세희 씨! 무슨 일이야? 그냥 몸살 아니었어?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걱정돼서 미치겠네!”엄선희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신세희는 목 놓아 울며 하소연했다.“선희 씨, 그 인간들이… 나한테 신장을 내놓으래! 정말 몹쓸 사람들 아니야? 양아치 같은 놈들!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엄선희는 그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신세희는 쉽게 무너질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 세 명 중 신세희가 리더 역할을 맡아서 했다.그녀는 화를 낸 적이 거의 없었으며 충동적인 성격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나약한 사람도 아니었다.그런데 그런 그녀가 아이처럼 울고 있다.“세희 씨, 울지 말고 나한테 말해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그래? 누가 세희 씨 괴롭혔어?”“임지강… 그 인간이 처음으로 나를 딸이라고 인정했어. 그런데 그러면서 자기 딸을 위해 신장을 기증해 달래. 그 인간이 허영이랑 낳은 딸… 임서아가 심각한 신부전증을 앓고 있거든. 신장을 이식 받지 못하면 한 달을 못 넘긴대. 그래서 나한테 신장을 내놓으라는 거야.”“이런 몹쓸 것들…. 임지강 그 인간, 그리고 그 집안 사람들 정말 곱게 봐줄래도 봐줄 수가 없네.”엄선희도 저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잠시 숨을 고른 그녀가 말했다.“세희 씨, 바로 갈 테니까 울지 마.”말을 마친 엄선희가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녀는 급하게 회사에 연차를 낸 뒤, 디자인 부서로 가서 민정아를 찾았다.일에 파묻혀 있던 민정아가 씩씩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