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명은 단도직입적으로 돈을 빌리려는 그녀의 행동에 충격을 받았다.그는 한참 동안 가만히 있다 말을 꺼냈다. "현금을 안 가져와서 그런데 전화번호 좀 남겨주시겠어요? 모임이 끝나면 가져다 줄게요.”신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합니다.”그러고는 방금 만나서 몇 마디 나눠보지도 않은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건넸다."준명!"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남자가 서준명을 부르고 있었고, 그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조의찬이 있었다.그는 술잔을 들고 조의찬에게 다가갔다.“조의찬 도련님, 요즘 뭐가 그렇게 바빠요?”조의찬은 서준명을 툭 치며 대답했다. "서 도련님, 이건 저희 외할아버지가 제 사촌 형님의 약혼녀를 뽑는 자리예요. 오늘 온 사람들은 모두 운성과 서울의 명문 규수들인데, 이 기회를 틈타서 한 명이라도 잡아야 하지 않겠어요?”서준명은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저었고, 조의찬도 다시 웃으며 말했다.“서 도련님의 사촌동생인 민정연도 저희 사촌 형님에게 관심이 있죠?”서준명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부소경 도련님께서 F 그룹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후로부터 운성 전체에서 몇 명의 여자가 부소경 도련님에게 시집가길 원하는지 아시잖습니까?”조의찬은 웃으며 말했다.“잘 알죠.”두 사람은 술잔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고, 홀의 가장자리에 가서 앉을 곳을 찾았다.조의찬은 일부러 부주의한 척을 하며 신세희의 그림자를 찾았지만, 손님들 사이에는 신세희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이 시각, 신세희는 세 명의 명문 규수에 의해 화장실 안에 갇혀 있었다. 세 사람은 화장실 문을 닫았고, 그중 한 여자는 신세희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다른 두 여자는 신세희의 코를 찌르며 욕설을 퍼부었다."네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해? 감히 부소경 도련님에게 먼저 말을 걸 생각을 하다니!”"대낮에 강제로 키스를 당했다고 해서 부 씨 집안 며느리 자리에 앉을 수 있을 것 같아? 꿈도 꾸지 마!”"얼굴 하나 믿고 부잣집에 시집이나 갈 생각을 하다니, 지금 당장
신세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의찬이 그녀에게 처음 접근했을 때, 그녀 눈에는 조의찬이 돈 많은 도련님이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놀잇감을 찾는 거라고 보였다. 신세희는 그와 놀아줄 수 없었지만, 그에게 반항할 수도 없었다.그녀는 조의찬에게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차에 타요!"조의찬은 차창에 한쪽 팔을 한가로이 걸치고 웃으며 말했다."안 잡아먹으니까 무서워하지 마요. 내가 그런 마음을 품고 있을지언정 그 짓을 할 배짱은 없으니까. 허튼짓이라도 하면 소경 형님이 절 잘게 썰어서 장조림으로 만들어 버릴걸요.”신세희는 조의찬을 흘긋 보았고, 그는 차를 세우고 내린 뒤 문을 잡아당겼다."이렇게 밤이 깊었는데 걸어서 가면 나보다 더 나쁜 남자를 만날지도 모르는데, 그때가 되면 어떻게 하려고요?”신세희는 머뭇거린 뒤, 곧이어 차에 올랐다. 조의찬은 문을 닫고 갑자기 악셀을 밟고 출발을 했다가, 또 갑자기 급커브를 틀었고, 신세희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조의찬의 몸 쪽으로 넘어졌다. 그러자 조의찬은 팔을 들어 그녀를 감싸 안았다."의찬 씨, 저 내릴게요!"신세희는 순간 필사적으로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조의찬은 그녀를 한 번 껴안았을 뿐, 그녀를 꼭 껴안고 다시 풀어주었다.그의 팔뚝은 매우 굵었고, 신세희는 약간의 따듯함을 느꼈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안전벨트 매고 잘 앉아 있어요.”신세희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고마워요.”"말만 안 하면 되게 말 잘 듣는 시골 촌녀 같은데, 당신이 이렇게 큰 야심을 가지고 감히 내 사촌 형님의 며느릿감을 고르는 모임에 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설마 정말 부 씨 집안의 며느리가 되고 싶은 건 아니겠죠?”조의찬이 운전을 하며 흥미로운 듯 신세희에게 물었다. 하지만 신세희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대답하든 모두 쓸데없는 설명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와 조의찬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였고, 그녀가 어떠한 목적으로 모임에
조의찬은 신세희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내가 대신 계산할게요. 대신 월급 받으면 두 배로 갚아요.”사실 신세희는 배가 무척 고팠다.그녀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잠시 빚 좀 질게요. 월급 받으면 꼭 두 배로 돌려줄게요.”조의찬은 그녀를 작은 가게 한군데로 데리고 간 후, 가성비 좋은 음식 몇 가지와 닭국수 두 그릇을 시켰다,음식이 식탁 위로 서빙되자 신세희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국수를 절반이나 해치웠는데도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배가 거의 찼는지 그녀가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그에 반해 조의찬은 젓가락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조의찬씨는… 왜 안 먹어요?” 신세희가 그에게 물었다.조의찬의 태도는 무척이나 나빴다. “젠장! 내일 당장 이 가게 없애버릴 거예요!”“주문할 때 분명히 말했는데, 나 단 거 좋아한다고 음식이 좀 달았으면 좋겠다고. 분명히 그렇게 해준다고 했으면서 이게 뭐예요! 하나도 안 달잖아요! 맵고 시기만 하고! 기분 나빠서 못 먹겠어요!”“왜요? 신세희씨는 음식이 입에 맞아요? 그럼 많이 먹어요. 잘됐네요.”신세희는 그가 이미 밥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조의찬은 그냥 그녀가 밥을 먹었으면 했다.그녀의 마음이 순식간에 따뜻해졌다. “고마워요. 이미 배부르게 먹었어요.”“어디로 데려다줄까요? 형한테 갈 수는 있기나 해요?” 조의찬의 말투에는 장난기와 흥미가 가득했다.신세희의 눈살이 찌푸려지더니 얼굴에 어려있던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 “하씨 아주머니 병원에 데려다줘요. 먼저 병원에 갈래요. 아주머니랑 같이 있어 드리게요.”하숙민이 부탁한 사진을 찍지 못한 그녀는 뭐라고 해명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오늘 밤 그녀는 돌아갈 곳이 없다. 몸을 쉴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병원에 가서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다.참을성이 넘치는 조의찬은 그녀를 병원에 데려다주고는 차를 돌려 자리를 떠났다.병원에는 밤에 환자를 간호하지 못하게 한
“신세희! 신세희! 정신 좀 차려봐!” 부소경은 손을 들어 신세희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 그녀의 이마는 무척이나 뜨거웠다.남자는 신세희를 끌어안더니 빠르게 차로 걸어갔다. 그는 신세희를 안으로 내려놓고는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어 자리를 떠났다. 번개처럼 빠른 속도였다.임서아는 그 뒤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소경 오빠…”하지만, 부소경의 차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던 임서아는 건물 밖에 있는 화단에 주먹질을 해댔다. 그녀의 손은 피투성이가 되어버렸고 밀려오는 아픔에 임서아는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힘이 다 빠진 그녀는 그제야 집으로 돌아갔다.같은 시각, 임지강과 허영은 거실에서 임서아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고 마음속으로는 좋은 일이 일어나기 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임서아의 이상한 상태를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착한 우리 딸, 왜 그래? 부소경이 널…” 허영은 임서아에게 조금은 부끄러울 수도 있는 말을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옆에 임지강에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오히려 임지강이 조급해하며 임서아에게 물었다. “빨리 아빠한테 말해봐. 어제 부소경이랑 같이 밤을 보낸 거야? 얼른 서둘러야 해. 그리고 웬만하면 빠른 시일 내에 부소경의 애까지 가져버려. 그러면 부씨 집안 사모님이 되는 떼놓은 당상이 될 테니까.”허영이 임지강을 때리며 말했다. “당신, 우리 딸 부끄러운 건 생각 안 해? 못 하는 말이 없어!”그때 임서아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난 신세희가 죽었으면 좋겠어! 나 꼭 걔 죽일 거야! 흑흑흑…”그들은 그제야 임서아의 눈이 빨갛게 부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우리 딸 왜 그래? 신세희 그년이 또 너 괴롭히기라도 했어? 빨리 엄마한테 말해봐.” 허영은 마음이 아팠는지 임서아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나 꼭 신세희 죽일 거야! 꼭 죽게 만들 거야! 부소경, 신세희 배 속에 남의 자식이 있다는 사실을
먼 곳에 숨어있던 세 식구는 놀라 자빠질 뻔했다.한편, 부소경은 의사를 따라 응급실로 들어갔다. 응급실 안쪽, 정신은 잃은 신세희는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그녀는 눈썹은 찌푸리고 있었고, 기다랗고 예쁜 속눈썹에는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속눈썹은 무척이나 예뻤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속눈썹은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었다.주먹만 한 그녀의 얼굴이 열 때문에 빨갛게 달아올랐다.부소경은 신세희에게 다가갔다. 신세희는 아직도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가야, 계속 엄마 옆에 있어 주면 안 될까… 떠나지 말아줘… 엄마한테는 더 이상 남은 가족이 없어. 엄마… 너무 외로워… 엄마는 동반자가 필요해… 그래야 살아갈수 있어…”그녀의 말투는 처량하고 불쌍했다. 주위에 있던 의사들이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부소경은 차가운 얼굴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다. “다량의 해열제 먹이는 거 말고 방법이 그거밖에 없어?”“네.”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직접 하지!” 부소경의 말에 의사들은 바삐 돌아치기 시작했다.직접의 사람의 체온을 내려주는 것, 옛날보다는 훨씬 많이 나아진 상태다. 의사들이 부소경과 함께 추운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게 문제지만. 그들은 신세희를 온도가 낮은 방으로 옮긴 뒤, 모든 남자 의사를 밖으로 내보냈다. 방에 남은 남자라고는 부소경밖에 없었다. 여자 의사들만 방안에 남아있었다.의사들은 나가라는 뜻으로 부소경을 쳐다보았다.부소경은 오히려 그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저 사람, 내 여자야!”“…”의사들이 입을 열기도 전, 부소경은 이미 신세희의 옷을 벗겨버렸다. 누군가는 젖은 수건을, 또 누군가는 알코올 솜을 손에 들며 신세희의 몸을 구석구석 닦아내기 시작했다.한 시간 뒤, 신세희의 열이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의사는 그제야 그녀에게 약을 처방해주었다. 태아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약 성분의 약을 말이다. 또 한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신세희의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응급실에서 일반 병실로 자리를 옮겼다.점심쯤, 신
그리고 그날 만났던 서준명.그들은 모두 신분이 높고 돈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신세희는 그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될 뿐이었다. 그들을 기쁘게 해줄 가십거리.신세희는 알고 있었다. 열이 내리고 정신을 차렸다 하더라도 그녀에게 남은 길은 없다는 거.부소경의 집으로 찾아가 그에게 모든 사실을 하나도 빠짐없이 말하고 싶었는데. 그녀가 감옥이 있을 때 임씨 집안 사람들이 그녀보고 곧 죽을 남자랑 하룻밤만 보내라고 강박했다고. 그러다 임신을 해버렸고 그 남자는 죽어버렸다고.하지만, 부소경의 품에 안겨있는 임서아의 모습에 신세희 입은 그대로 막혀버렸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지금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목숨을 더 빨리 끝낼 뿐이었으니까.위쪽에서 아무런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신 차렸으면 이제 눈 떠. 물어볼 거 있으니까!”신세희는 피곤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그녀는 심장을 얼려버릴 듯 차가운 눈과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무척이나 차가웠고 그녀에 대한 혐오감도 섞여 있었다.요즘, 그녀를 대하는 부소경의 태도가 조금 좋아지긴 했다.먼저 그녀에게 천만 원도 빌려주고, 납치범의 손에서 직접 그녀를 구출하기도 하고, 본인이 직접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 약도 발라주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신세희는 금방 출소 했을 때의 부소경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다.그의 태도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사실, 그의 태도는 그녀와 상관이 없었다.신세희는 차갑게 웃었다. 그녀는 똑같이 차갑고 무정한 눈빛으로 부소경을 쳐다보았다. “부소경씨, 우리 다시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 그녀의 태도가 부소경을 당황하게 했다.신세희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차가운 눈빛으로 부소경을 쳐다보았다. “맞아요! 처음부터 작정하고 당신 어머니한테 접근한 거예요! 당신이랑 결혼하고 싶어서! 남은 삶 부귀영화 한번 누려보고 싶었어요! 당신이 날 성에 안 차 할 것 같아서 먼저 임신부터 했어요! 때가 되면 공개해버리는 거죠. 그럼 내
”죽었어요.” 신세희는 솔직하게 대답했다.그녀의 대답에 부소경은 잠시 멍해졌다. 그녀가 이런 대답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이내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먼저 씨부터 받고 그 후에 사람을 죽인 건가? 너 진짜 내 상상을 초월하는구나.”신세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은 그 어떤 말을 해도 비겁해 보이기만 할 것이다. 이럴 땐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더 낫다.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날 계속 옆에 두기로 한 거예요? 당신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서?”“계약을 해지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지?” 부소경이 그녀에게 되물었다.“내 연극이 다 들통났잖아요. 난 당신이…”부소경의 냉소가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 “이미 계약은 했어. 그러니까 넌 그냥 고분고분 우리 엄마나 제대로 모셔. 우리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네 연극? 한 번 두고 봐야 하지 않겠어? 네 연극이 나보다 더 대단한지 말이야!”“…”남자는 자리를 떠나려 발길을 돌렸고 신세희는 그런 그를 불러 세웠다. “당신… 잠깐만요.”부소경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40만 원만 줘요.” 그녀가 말했다.“당신 애까지 책임질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 말을 끝낸 후 남자는 자리를 떠나버렸다.신세희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 혼자 침대에 앉아있었다.아무것도 없이 사는 삶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녀는 카메라를 어떻게 돌려줘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심지어 그날 파티에서 만난 서준명이 돈을 빌려주겠다며 전화하길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오후, 신세희의 체온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의사는 또다시 그녀에게 한약 성분의 약을 주었다. 그녀는 지금 당장 퇴원하고 싶었다.비록 부소경이 대신 병원비를 내긴 했지만, 그녀는 일에 지장을 줄 수 없었다. 일자리마저 잃어버린다면 그녀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게 된다.짐을 정리하고 자리를 떠나려는데 신세희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구의 전화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허겁지겁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소경이랑 나, 너무 힘든 길을 걸어왔어. 소경이 지키려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소경이는 절대 모를 거야. 소경이도 똑같아. 나 지키겠다고 얼마나 고생하면서 복수의 칼날을 갈았는지는 나도 상상할 수가 없어.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는 법이지. 내가 부씨 저택에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 알기라도 하면 아마 물불 안 가리고 앞으로 달려들 거야. 난 걔가 나 때문에 모험하는 거 보고 싶지 않아.” 하숙민의 목소리에는 아쉬움과 아들에 대한 심려가 가득했다.신세희는 그녀가 얼마나 고독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하숙민은 평생동안 웨딩드레스를 입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한평생 부씨 집안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부소경이 모든 것을 손에 쥔 지금 이 상황에도 하숙민은 겹겹이 쌓인 고민 때문에 자신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하숙민의 운명은 신세희랑 너무나도 닮아있었다.둘 다 결혼도 하기 전에 임신부터 해버렸다.하숙민은 고독 속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인생을 마감할 것 같다.그 생각이 들자 신세희는 하숙민을 조금 더 불쌍해졌다.“어머니, 내일 뵈러 갈게요. 어머님이 제일 좋아하는 전복죽도 만들어서요. 아침에 저 꼭 기다리셔야 해요.” 신세희는 웃으며 말했다.전화를 끊은 후, 신세희는 가방에 넣어 놓은 서명준의 명함을 꺼내 위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쳤다.연결음이 한참 동안 울리고 난 후에야 전화가 받아졌다.예의 바른 여자의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누구세요?”“아… 저… 거기 서준명씨 핸드폰 아닌가요?” 신세희가 물었다.“네, 맞습니다. 서대표님 지금 회의 중이세요. 저는 서대표님 비서입니다. 무슨 일이세요?” 비서가 그녀에게 물었다.“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신세희는 서준명이 자신을 일부러 피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녀에게 명함을 주고, 그녀의 전화번호를 물은 것… 도련님의 연극이었을 뿐이었다.게다가 초면에 돈을 빌려달라니…이런 첫인상을 남겼는데, 도망 안 가는 게 이상한 거지.전화를 끊은 후, 신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