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서아는 동그란 의자에 앉아 부소경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부소경은 팔 한쪽을 소파에 올려다 놓은 상태로 긴 다리를 꼬고 있었다. 불이 반짝이는 담배를 손에 낀 그의 모습은 차갑고 매정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두 사람 사이에 놓인 탁자에는 예쁘고 정교한 디저트가 놓여있었다.마카롱, 초코칩, 수플레… 전부 한입에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디저트였다.하지만 모두 한 입당 만 원이 넘은 가격의 음식이었다.특히 저 황도 푸딩, 황도 푸딩은 임서아가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였다.신세희는 이런 정교하고 이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뭐가 뭔지 전부 알고 있었다.예전에 임씨 저택에서 살았을 때 임서아가 먹는 모습을 자주 봤었다.임서아는 어릴 때부터 우아한 삶을 살았다. 갖고 싶은 거라면 뭐든 임지강과 허영이 그녀를 만족시켜주었다. 그리고 지금,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자 부소경이 그녀의 옆에 있었다. 부소경은 그녀에게 아낌없이 퍼주었다.신세희는 의식적으로 침을 삼켰다. 그녀는 배가 고팠다.침을 삼키는 소리가 너무 커서인지 아니면 그녀가 임서아를 너무 오래 쳐다봐서인지, 임서아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현관에 어색하게 서 있는 신세희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그렇게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임서아의 눈빛에는 허세와 도발이 가득했다.오늘, 임서아네 세 식구는 놀라 쓰러질 뻔했다.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병원에서 부소경을 훔쳐보았다. 부소경이 신세희의 체온을 내려주려 직접 응급실로 들어간 사실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내내 불안감에 시달렸다.세 식구는 차 안에서 내내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막 계획을 모략하고 있던 그때 전화를 치며 병실에서 걸어 나오는 부소경의 모습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그의 말투는 무척이나 차가웠다. “치료비는 내줄 수 있어. 대신 다른 비용은 혼자 해결하라고 해!”그 말이 임서아 가족의 마음을 안심시켰다.그러니까, 부소경이 신세희를 살린 이유가 다 자기 엄마 때문이라는 거지? 다른 이유는 전혀 없고.그날 오후,
신세희는 임서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담담하게 부소경을 쳐다볼 뿐이었다. “방에 짐만 놓고 바로 나올게요. 세, 네시간 뒤에 돌아올 테니까… 하던 거… 계속하세요.”그녀는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그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평온했다.하지만 부소경은 그녀의 말에서 거리감과 냉정함, 결연함과 처량함을 느꼈다.그 느낌이 부소경의 소유욕을 불러일으켰다.그녀가 이미 자신의 의도를 밝혔음에도, 그녀가 자신을 어머니를 속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가 배 속에 있는 아이로 자신을 해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부소경은 여전히 그런 느낌이 들었다.안 그래도 별로였던 남자의 얼굴이 더 나빠지기 시작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있는 것만 같았다.신세희는 짐을 방에 두고는 얼마 남지 않는 자신의 돈을 세어보았다. 그녀는 그중에서 천원을 꺼내더니 밖으로 걸어 나왔다.이번에 그녀는 부소경과 임서아를 쳐다보지 않았다.문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닫혀 버렸다.임서아가 투덜대며 그에게 말했다. “세희 쟤 또 남자랑 뒹굴러 갔나 봐요. 쟤 자주 저러거든요...”“꺼져!”놀랐는지 임서아가 펄쩍 뛰었다. “소경 오빠, 방금 뭐라 그랬어요?”불과 반 시간 전 까지만 해도 직접 차를 몰아 그녀에게 디저트를 사줬는데. 그녀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종류별로 다 사주고 그랬는데.지금은 나보고 꺼지라고?“집으로 꺼져!” 부소경이 차갑게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살인을 저지를 것만 같았다.임서아는 부소경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부씨 집안 전체를 쓸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그녀는 웃음을 지으며 떨리는 목소리에 그에게 말했다. “소경 오빠, 그… 닭곰탕 잊지 말고 꼭 먹어요. 바로 갈게요.”말을 끝낸 후, 그녀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엘리베이터에 들어선 후에야 임서아는 감히 숨을 들이켤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악랄하고 변덕스러울수록 부소경에 대한 임서아의 미련은
신세희는 깜짝 놀랐다.그녀는 정신을 차리고는 천천히 어둠에 적응했다. 그녀는 부소경이 혼자 소파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발견했다. 그의 입에는 담배가 물려 있지 않았고 그저 손을 무릎에 기댄 채 눈썹을 찡그리며 깊은 눈동자로 신세희를 쳐다보고 있었다.“당신…” 신세희는 부소경에게 왜 아직도 안 자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임서아의 행방에 대해서도 말이다.하지만 그녀는 물어보지 않았다.부소경의 표정이 그녀를 깜짝 놀라게 했다.“이리 와!” 부소경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단호했다. 신세희가 반항할 수 없을 정도로.그 순간, 신세희는 자신이 부소경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첩처럼 느껴졌다. 또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았다.그녀는 부소경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도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신세희는 이를 악물며 부소경의 곁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 있어요?”그녀의 말투는 담담하고 평온했다.부소경은 마음속으로 냉소하며 그녀를 경멸했다.그녀가 집을 나서자마자 그는 임서아를 내쫓아버렸다.비록 임서아와 하룻밤을 보냈었지만, 그는 임서아의 몸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임서아가 몇 번이고 그에게 어필했을 때도 오히려 그의 반감만 살 뿐이었다.그날 밤, 임서아가 자신의 몸으로 그를 살려 복수를 도와주지만 않았어도… 아마 벌써 임서아의 갈비뼈를 부숴버렸을 것이다.하지만 부소경은 그럴 수 없었다.그는 임서아랑 결혼할 수 있다. 그는 그녀에게 평생 다 쓰지 못할 돈을 주며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줄 수 있다. 그는 그녀를 아껴줄 수도 있다.하지만 부소경은 임서아에게 티끌만 한 마음도 없었다.특히 임서아가 그에게 애교를 부릴 때, 신세희의 면전에서 신세희의 각종 과거를 나불거릴 때. 임서아를 발로 차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했다.하지만 그는 참아냈다.그는 단지 임서아를 집에서 쫓아내기만 할 뿐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임서아가 집을 나서자마자 부소경은 신세희를 찾으러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그는 신세희가 바닥에 앉아 누군가에게 전화하고 있다
신세희에게는 주위의 환경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부소경이 그녀를 장난감 취급하고 있었으니까.그녀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돈도, 기댈 곳도. 그녀는 이미 지쳐버린 상태였다.그녀는 더 이상 반항하고 싶지 않았다.오늘 또 한 번 침범을 당한다면 그녀는 바로 죽어버릴 것이다.배 속의 애랑 같이 엄마 만나러 가는 일도 마냥 나쁜 일은 아니지.고분고분한 신세희의 모습에 남자는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신세희를 내려다보는 부소경의 눈빛이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나 부소경이 침대에 눕히고 싶은 여자 중에 반항하는 여자는 하나도 없었어! 넌 자격이 없어!” 부소경이 차갑게 말했다. “잘 들어! 나랑 계약한 시간 동안은 아내의 본분을 잘 지키는 게 좋을 거야. 다른 남자 건드릴 생각하지 마! 마지막 경고야!”말을 끝낸 후, 남자는 자리를 떠났다.“…”내가 다른 남자를 건드려?그녀는 임산부다. 돈 한 푼 없는 데다가 매일 밥도 배불리 못 먹는데. 이런 내가 누굴 건드려?그녀는 지금 그와의 계약을 잘 이행할 생각뿐이었다. 두 달 뒤, 돈만 받으면 그녀는 자기와 자신의 아이를 책임질 수 있게 된다.“난 그냥 살고 싶어. 그냥 내 애랑 같이 살고 싶어. 난 아무도 건드리지 않을 거야.” 신세희는 거실에서 혼자 중얼거렸다.다음날.신세희는 평소처럼 일찍 일어났다. 그녀는 평소와 똑같이 길에서 음식을 산 후 버스를 타고 하씨 아주머니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녀는 하씨 아주머니와 잠시 시간을 보낸 후 회사로 출근했다.어제 무단결근을 해버린 바람에 디자인 디렉터에게 보고해야 했다.“디렉터님, 죄송해요. 어제 한 결근 때문에…” 신세희는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출근한 지 한달도 안됐는데 이미 결근을 두 번이나 해버렸다.“됐어요. 어제 출근한 거로 해줄게요. 어제 공사장에서 일했잖아요.” 디자인 디렉터가 무표정으로 말했다.신세희는 알고 있었다. 조의찬이 미리 디렉터에게 언질을 줬다는 사실을.그녀는 바로 디렉터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감
조의찬의 차 안에는 다른 남자도 타고 있었다.신세희는 고개를 저었다."고마워요, 그렇지만 버스 타고 가면 돼요.""내가 뭐 잡아먹나? 이쪽은 내 절친, 서시언이요. 타요!"조의찬은 제안이 아니라 명령하고 있었다."오늘 온종일 엄청 정신 없었죠? 신입들은 대부분 이런 경험을 한다더라고요. 앞으로 점점 나아질 거예요. 타요, 내가 데려다줄게요."신세희는 입술을 깨물며 차에 탔다.서시언이라 불리는 남자는 매너 있고 부드러웠다. 그는 신세희를 존중해 주었다."사모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신세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앞자리에 앉은 이들은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한 번도 이런 사람들과 가까이 한 적 없었던 그녀는 어떻게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도 몰랐고 비위를 맞춰줄 줄도 몰랐다. 그래서 그녀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사촌 형네 집에 가는 거예요?"조의찬이 물었다.신세희가 입을 열려는 찰나 벨 소리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여보세요?"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신세희 고객님이신가요? 코닥 렌트입니다..."남성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세희는 급히 그의 말을 끊고 횡설수설했다."저... 동 사장님, 죄송해요. 카메라를 좀 더 사용하고 싶은데, 사용기간은..."반쯤 말한 신세희는 수화기를 틀어막은 채 조의찬에게 질문했다."죄송한데요, 우리 회사 급여일이 언제죠?""매달 15일이요. 다음 달 급여일까지 17일 남았네요."계산을 마친 조의찬이 알려주었다."어, 동 사장님, 제가 카메라를 17일 동안 더 사용해야 할 것 같아요. 임대료는 일별로 계속 계산해주시고요, 임대료를 더 올리셔도 돼요. 아무튼 17일 뒤에 카메라를 돌려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동 사장님."신세희는 행여나 동의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라도 했는지 동 사장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앞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왜요, 빌린 카메라를 잃어버리기라도 했어요?"조의찬이 물었다."네."옆에 있던 서시언
신세희는 돈이 아주 궁한 상태였다. 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조의찬이 껄렁거리며 말했다."이거 60만 원도 안 돼요. 왜요? 내가 60만 원에 신세희 씨의 하룻밤을 사기라도 할까 봐요? 제발 걱정하지 마요. 당신 내 스타일 아니거든요? 난 그냥 우리 촌녀가 하도 궁상맞아서 자선사업 하는 거라고요. 정 마음에 걸리면 월급 받아서 제때 할부로 갚든가요."신세희는 돈뭉치를 움켜쥐며 붉게 물든 얼굴로 인사했다."감사합니다.""그리고 하나 더! 나도 굉장히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거든요. 앞으로 내가 데려다주겠다고 했을 때 우물쭈물 시간 낭비하지 말아요."백미러로 얼굴이 빨개진 신세희를 바라보던 조의찬이 삐딱하게 말했다.신세희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고개를 창가 쪽으로 돌린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사실 그녀는 벅찬 마음을 진정시키는 중이었다.출소한 이후 그녀는 온갖 시련을 다 겪고 있었다. 임씨 집안에서는 그녀를 음해했고, 부소경은 그녀를 핍박했으며, 명함을 건네며 도와주겠다고 했던 서준명도 결국엔 그저 얼버무리고 말았을 뿐이었다.그러나 조의찬은 달랐다. 그는 매우 껄렁하고 말을 함부로 했다. 심지어 매번 그녀와 대화하며 별명을 붙였다. 자기를 촌녀라 부를 땐 가끔 치욕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직장을 지켜준 것도 조의찬이었다.부 씨 저택의 산 중턱에서 시가지까지 차로 실어다 준 것도 조의찬이다. 지금은 또 몇십 만 원을 내놓으며 카메라를 배상하라고까지 했다.문득 말을 못되게 하는 조의찬이 실은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자 신세희는 마음이 따뜻해졌다.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뒤늦게 조의찬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조의찬은 부소경의 저택으로 가는 중이었지만 그녀는 사실 하숙민이 머무는 병원으로 가려던 계획이었다."저기... 의찬 씨."갑자기 목소리를 높인 신세희가 조의찬을 향해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죄송한데 사실은... 병원에 가야 해요.""외숙모를
부소경은 무표정한 얼굴로 조의찬의 차가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뒤에 서 있던 엄선우가 말했다."도련님, 저건... 의찬 도련님의 차 같습니다. 사모님을 뵈러 온 걸까요?"엄선우는 방금 주차하느라 조의찬의 차에서 내린 신세희가 그를 향해 웃어 보인 것도 몰랐다.낮고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조의찬은 내 어머니를 외숙모로 여기지 않아. 그렇게 부르는 건 내가 두려워서겠지."말을 마친 그는 혼자 병실을 향해 걸어갔다.최근 하숙민의 상태는 1개월 시한부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주 좋았다. 그는 이 모든 게 매일 하숙민을 보살펴주는 신세희 덕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기쁘니, 안색도 좋아지는 것이다.신세희가 제법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자기 앞에서는 차갑고 도도한 척, 마치 평생 그에게 볼일이 없을 것처럼 굴더니 어머니 앞에선 그렇게 이해심이 넓고 친절할 수가 없었다. 말 한마디를 해도 어머니를 감동하게 했고 그녀의 말이라면 다 들어주게 했다.조의찬 앞에서는 또 어떤가. 순종하는 척 고분고분한 얼굴로 비위를 맞춰주고 있지 않았던가.조의찬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신세희와 그런 그녀를 차 안에서 한쪽 팔을 괸 채 거만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조의찬을 떠올리자 부소경은 짜증이 확 치밀었다. 눈빛도 덩달아 싸늘해졌다.그렇게 서늘한 기운을 풀풀 풍기며 어머니 병실로 간 부소경은 그녀가 신세희와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됐다."세희야, 두 달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한 달밖에 남지 않았구나. 네가 보살펴준 한 달 동안 나는 너무 기뻤단다. 그러나 사람 욕심은 끝이 없더구나. 자꾸 손주를 안아보고 싶은 욕심이 나."하숙민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신세희의 배를 만지작거렸다. 신세희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확실히 그녀의 배 속에는 아이가 있었지만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그녀조차도 몰랐다."세희야, 말해보렴. 최근 생리는 언제쯤 왔니? 혹시 요즘 막 속이 메슥거리거나 하진 않고? 너희가 결혼한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
"알아요. 절대 그럴 일 없어요."신세희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부소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바로 병실로 들어갔다. 딱히 부소경에게 빚진 것도 없었으니까. 비록 그가 천만 원을 빌려주긴 했지만, 계약기간이 끝나면 받는 돈으로 갚으면 그만이었다.비록 납치된 자기를 구해준 적도 있었지만 그건 모두 그의 어머니를 위한 일이었다. 그러니 빚진 게 없는 이상 그에게 고분고분 순종할 필요도 없었다. 신세희는 그저 지금 상황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하숙민의 마지막 가는 길을 따뜻하게 배웅해주고 싶었다.밖에서는 비록 서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병실에서는 사랑하는 척해야 했다.병실 문 앞에서 부소경은 신세희를 품에 안았다. 신세희도 그에게 한껏 몸을 기댔다. 두 사람이 다정하게 하숙민의 방에 들어서자 그녀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소경아, 너희들도 얼른 아이를 가져야지 않겠니?"하숙민이 부소경에게 말했다.부소경이 입을 열기 전에 신세희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하숙민에게 말을 건넸다."어머니, 말씀 안 하셔도 저희도 다 알고 있어요. 저도 아이가 너무 갖고 싶어요. 지금 매일 아침 체온도 측정하고 배란기도 계산하고 있어요. 어쨌든 지금 열심히 준비 중이에요. 그렇지만 어머니도 알고 계시다시피 이건 하늘이 점지해줘야 가능한 일이잖아요."예쁜 말만 골라 하면서도 수줍어하는 모습에 하숙민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좋아했다."소경 씨, 우리 아기가 어머니를 닮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어머니가 하도 미인이셔서 너무 기대돼요."신세희는 부소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천진하게 말했다. 순간 부소경은 잠시 멍해졌다. 그는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몰랐다.그러자 하숙민이 웃으며 말했다."세희야, 저 바보 같은 녀석은 원래 어려서부터 말수가 적었단다. 모든 걸 마음에만 담아두고 내색 한번 하지 않았지. 네가 그렇게 물어도 아무 소용 없어."그제야 부소경도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세희야, 소경아, 오늘 기분이 너무 좋구나. 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