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이경혜는 하예진에게 더 말하지 말라고 손짓한 뒤 차가운 시선으로 서현주를 쳐다봤다.서현주가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사, 사모님.”이경혜는 고개를 홱 돌리고 딸에게 말했다.“소현아, 우리 집 경호원들에게 전화해서 차고에 있는 고급 차들을 전부 몰아오라고 해. 예진이한테 돌아가면서 태워야겠어. 2억 대부터 시작하는 차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사모님, 오해예요, 오해.”주형인이 상황수습에 나섰다.“사모님, 저희 옷 안 살게요. 지금 바로 나갈게요.”주형인은 회사 일에 영향을 미칠까 봐 감히 이경혜와 강경하게 맞서지 못했다.그는 서현주의 손에 쥔 옷을 점원에게 건네고는 황급히 서현주를 잡아당기며 밖으로 도망쳤다.서현주도 이경혜 앞에서는 감히 날뛰지 못했다. 가게 밖에 나선 후 그녀는 주형인의 손을 뿌리치고 씩씩거리며 앞으로 걸어갔다.서현주는 걸어가며 주형인을 원망했다.“오빠 방금 뭐예요? 죽은 사람인가요? 내가 그 두 자매에게 모질게 괴롭힘당하는데 찍소리도 안 하고 있어요 왜?! 아들만 꼭 안고 다른 건 나 몰라라죠? 아들이 그리 귀하면 다시 소송 걸어서 양육권 뺏어오지 그래요? 돈 많은 이모가 한 명 생겨난 것뿐이잖아요! 성씨 일가가 재벌이지 하예진이 재벌인 것도 아닌데 날뛰어봤자 어디까지 날뛰겠어요? 그리고 하예정도 짜증 나. 오빠 방금 나 대신 하예정 짓밟았어야 했어요. 남 일에 참견하고 말이야. 하예정 남편이 누구예요?”서현주는 하예정의 남편이 누구인지 알아내서 여자를 보내 그녀의 남편을 꼬시게 할 작정이었다. 하예정도 남편에게 배신당한 기분이 어떤 것인지, 버림받은 기분이 어떤 것인지 톡톡히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서현주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두 자매가 워낙 돈독한 사이잖아? 이혼도 함께 해야지!’주형인은 그녀를 쫓아가 어깨를 다잡으며 달래주었다.“화 풀어, 나랑 함께 쥬얼리 보러 가자. 결혼반지 골라봐봐. 네가 좋아하는 거로 사줄게. 예정이가 산타를 배워서 실력이 어마어마해. 내가 사내대장부이긴 하지만
“내가 준 2억으로 집을 마련하느라 아마 다 썼을 거야. 이젠 직장도 잃었으니 제 이모가 키워주지 않는 한 절대 우리보다 행복할 순 없어.”그의 말을 들은 서현주는 역시나 기분이 좋았다.“2억으로 관성 시 중심에 집을 사려면 선입금도 모자랄걸요. 내가 아는 여동생이 얼마 전에 가장 번화한 지역에 두 번째 집을 마련했는데 학교 부근이라 25평에 글쎄 10억이었다니까요. 나 진짜 깜짝 놀랐잖아요.”주형인을 낚아채지 못했다면 서현주의 수입으로도 관성 시 중심에서 집을 살 수 없다.주형인도 현재 집값이 하늘을 치솟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그도 다행히 미리 샀으니 망정이지 지금 사려면 아마 좋은 지역도 못 고르고 학교 근처는 아예 넘볼 수도 없다.“내가 알아봤는데 이경혜 씨는 워낙 강인한 여자이다 보니 나약하고 무능한 사람을 제일 싫어한대. 예진이가 자립하지 못하면 이경혜 씨도 도와주지 않을 거야. 돈은 더더욱 안 줄 테니까 너도 이모 한 분 나타났다고 너무 질투하진 마. 제 부모도 무조건 자식한테 돈을 준다는 보장이 없는데 감정이 없는 이모가 웬 말이야.”주형인이 한바탕 어르고 달래니 서현주도 기분이 좋아져 그와 함께 쥬얼리 가게로 들어갔다.두 사람은 누군가가 뒤에서 줄곧 그들을 따라오며 둘의 대화를 고스란히 녹음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쓰레기 남녀를 우연히 마주치면 기분 나쁜 건 당연한 일이다.그 둘을 만난 뒤로 하예진은 줄곧 들러리 역할이었다.서현주의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해보았지만 실은 전남편과 내연녀가 함께 있는 모습에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결혼 뒤 집안일에만 전념하며 살아온 저 자신이 너무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했다.여자는 꼭 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하예진은 주형인이 힘겹게 번 돈을 아까워하며 평소 집에 꼭 필요한 생활용품만 사고 저를 위해 새 옷과 화장품을 전혀 구매하지 않았다. 쇼핑을 해도 대부분 주형인과 우빈의 것만 샀다.하지만 이렇게 남편을 위해줬건만 정작 남편이란 자는 서현주에게 돈을 펑펑 써댔다.내 남
하예정은 먼저 메모지를 꺼내 들었다.메모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이 두 개는 녹음 펜이에요. 아무도 없을 때 들어보세요, 소정남.」알고 보니 소정남이 사람을 시켜 보내온 물건이었다.녹음 펜?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아무도 없을 때 들어보란 걸까?하예정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소정남이 그녀 홀로 들으라고 했으니 그녀도 결국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에 돌아간 후에 듣기로 했다.“뭐야 예정아? 누가 보낸 물건이야?”이경혜가 관심 조로 물었다.하예정은 메모지를 봉투에 다시 넣으며 답했다.“제가 쓸 펜이에요. 숙희 아주머니가 사람 시켜서 보냈어요.”이경혜는 알겠다며 대답한 후 더 묻지 않았다.호기심이 발동한 하예정은 저녁을 다 먹고 언니가 우빈이를 목욕시키려 할 때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두 자매의 방은 나란히 있었다.이경혜가 친히 마련해주었다. 두 자매가 낯선 곳에서도 서로 기댈 수 있게 방을 나란히 정해주었다.하예정은 방에 돌아가 문을 잠그고 얼른 검은 봉투 속의 녹음 펜 두 대를 꺼냈다.그녀는 소파에 앉아 녹음 펜 작동 버튼을 눌렀다.서현주와 주형인의 대화 내용을 들은 후에야 그녀는 알아챘다. 이는 오늘 오후 우연히 마주친 두 인간쓰레기 남녀가 옷가게에서 나간 후 나눴던 대화였다.‘소정남 씨가 그 둘의 대화 내용까지 녹음하다니, 너무 대단한 거 아니야?’소정남이 알았다면 바로 대답했을 것이다.‘아이고, 과찬이십니다, 전태윤 대표님의 부인분께 이런 칭찬을 듣다니요!’소정남은 단지 가십거리에 관심이 많아 부하직원에게 분부하여 주형인이 바람을 피운 증거를 수집하라고 했는데 아쉽게도 명백한 증거를 얻지 못해 부하가 줄곧 주형인의 뒤를 밟다가 이 대화를 녹음했다.“천사 같은 미모에 화끈한 S 라인의 여자를 보내서 전태윤을 유혹하게 해야겠어요...”하예정은 서현주가 주형인에게 하는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태윤 씨가 유혹에 넘어가면 태윤 씨가 아니지.”이 남자는 어떠한 유혹에도 끄떡없다.하예정이 술에 취해 그녀의 옷을
전태윤은 겨우 미소 지으며 말했다.“우리 와이프께서 지금 날 걱정하는 거야? 나 입맛 없어.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지금 이렇게 필사적으로 일하는 것도 빨리 끝내고 돌아가서 당신이랑 함께 있고 싶어서야.”“빨리 돌아오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그래도 제 몸은 챙겨야죠. 지금 호텔이에요 아니면 다른 곳에 있어요? 입맛 없으면 담백하게 죽이라도 끓여 먹어요. 태윤 씨, 일단 휴대폰 좀 들어봐요. 당신 컨디션 좀 체크해야겠어요.”전태윤은 꿈쩍하지 않았다.이에 하예정이 버럭 화를 냈다.“태윤 씨, 셋 셀 동안 얼굴 안 보여주면 나 더는 당신 안 봐요.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답장 안 할 거예요. 하나...”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화면에 불쑥 전태윤의 얼굴이 나타났다.그는 무척 괴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줄곧 차갑고 카리스마 넘치던 얼굴이 열이 올라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예정은 깜짝 놀라서 그에게 물었다.“병원 안 가봤어요? 지금 고열인 게 분명해요. 태윤 씨 진짜 나 화나서 죽는 꼴 보고 싶어요?!”전태윤은 손으로 이마를 짚고 애써 버티며 대답했다.“약 먹었어.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 왔는데 효과가 별로네... 아마 내 증상에 맞는 약이 아니라서 그런가 봐.”“지금도 회사예요?”“그래. 다만 사무실이 아니고 오피스텔에 있어. 회사에서 우리 본사 직원들이 출장왔을 때 머무를 오피스텔을 몇 채 소유하고 있거든.”그가 있는 오피스텔에 서재가 하나 있다. 전태윤은 서재의 책상 앞에 앉아서 감기약을 먹었다. 약을 먹으면 금세 좋아질 거로 여겼는데 몇 시간이 지나니 열이 더 올랐다.전태윤은 점점 더 괴로워졌다.늘 건강하기만 하던 그가, 평소에 감기라곤 걸려본 적 없던 그가 요즘 몸을 차갑게 굴었더니 병세가 이토록 심각해질 줄이야.본인 체질을 너무 과대평가한 듯싶었다.쉽게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소용없었다.“지금, 당장, 병원 가요. 회사에서 마련해준 차를 운전하지 말고 택시 타고 가요!”하예정이 명령했다.“내 말 들었어요? 지금 당장
소정남의 표정이 확 굳었다.“태윤이는 줄곧 컨디션이 좋았는데 어쩌다 감기에 걸려 고열이 났대요? 일단 진정하시고, 제가 지금 바로 그쪽에 연락해서 병원에 실어가라고 할게요. 이따가 예정 씨도 갈 수 있게 마련할 테니까 짐 챙기고 있어요. 30분 뒤에 바로 출발할 수 있어요.”전태윤이 아프고 하예정이 이토록 조급해하니 부부의 감정이 더 깊어질 계기가 된다.소정남은 전태윤이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몰래 구시렁댔다.‘자식, 아픈 타이밍 한번 잘 잡네.’“고마워요, 정남 씨.”소정남이 바로 전태윤에게 보내준다고 하니 하예정은 감격에 겨워 어쩔 바를 몰랐다.소정남은 다정하게 대답했다.“태윤이는 제 동료예요. 걔가 아프니 나도 몹시 걱정되네요. 태윤이는 고집이 세서 아무리 아파도 절대 입 밖에 꺼내지 않아요. 예정 씨가 직접 가서 챙겨줄 수 있다면 나랑 회사 측 임원들도 마음이 놓일 거예요. 일단 짐 챙기고 있어요. 제가 그쪽 동료들에게 전화해서 태윤이를 병원에 실어가라고 할게요.”“네.”통화를 마친 후 하예정은 다시 방에 돌아와 갈아입을 옷을 두 벌 챙겼다. 그녀가 이모 집에서 두 날 지낸다고 숙희 아주머니가 일부러 보낸 옷인데 봉투에서 미처 꺼내지도 못했다. 인제 보니 마침 잘된 듯싶었다. 하예정은 딱히 짐 정리할 것도 없이 그 봉투만 챙기면 되니까.“띠리링...”이때 그녀의 휴대폰이 또다시 울렸다.소정남한테서 걸려온 전화인 걸 확인한 그녀는 재빨리 통화 버튼을 터치했다.“예정 씨, 지금 소현 씨네 댁이죠? 그 댁 기사님더러 우리 집 별장으로 실어달라고 하세요. 제가 이미 우리 형한테 말해서 전용기 보낼 테니까 얼른 출발해요.”전태윤도 전용기가 있지만 출장 중이라 전용기가 관성에 없다.관성에 있다고 해도 전씨 일가의 전용기로 그녀를 보내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소정남은 어쩔 수 없이 큰형의 전용기를 쓰기로 했다.어차피 그의 큰형은 전용기가 몇 대 되니까.하예정은 소정남에게 너무 고마웠다.그녀를 전태윤에게 보내기 위해 전용기까지
유청하의 친삼촌이 고참 한의사다 보니 가족 중에 누가 몸이 불편하다 싶으면 그녀는 곧바로 삼촌에게 데려가 한약을 짓곤 한다.성기현은 한약을 먹기가 죽을 만큼 괴로웠다.하여 병에 걸리지 않도록 늘 제 몸을 챙겼다. 가끔 재채기가 나올 때면 아내 몰래 숨어서 했다.그는 전태윤 때문에 잔뜩 긴장한 하예정을 보니 문득 그를 걱정해주는 유청하가 생각나 얼른 동생을 위로했다.“너무 걱정하지 마. 소정남 씨 별장으로 가려고? 내가 데려다줄게.”“고마워요, 오빠.”성기현이 머리를 기울이고 아내에게 말했다.“여보, 집에서 나 기다리고 있어요. 예정이를 정남 씨네 별장으로 데려다주고 올게요. 딴사람을 보내는 건 내가 마음이 놓이지 않네요.”유청하가 대답했다.“그래요, 일단 예정 씨 실어다 주세요.”“언니, 오빠가 혹시 다른 일 있으면 나 기사님이랑 함께 가도 돼요.”“왜 그래? 무슨 일 있어?”이때 하예진이 아들의 샤워를 마친 후 동생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리자 우빈을 안고 방에서 나오며 관심 조로 물었다.동생이 옷 봉투를 들고 있는 모습에 그녀가 질문을 건넸다.“예정아, 너 어디 가?”“언니, 태윤 씨가 아프대. 내가 가봐야겠어.”성기현 부부는 하예정이 전태윤의 이름을 언급하자 저도 몰래 긴장해 하며 계단 입구를 쳐다봤다. 다행히 1층에 있는 이경혜와 성소현이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다.“아파? 심각해? 병원에 입원할 정도야?”하예진도 걱정하며 되물었다.“너무 피곤해서 그런 거 아니야? 몸살 났겠다!”동생이 밤새 달려가려는 걸 보니 병원에 입원한 게 틀림없었다.하예진은 저도 몰래 온갖 상상이 난무했다. 전태윤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예정이는 어찌해야 하는 걸까?부부가 결혼한 지 몇 달도 안 됐는데, 아직 결혼식도 치르지 못했으니 말이다.“언니, 걱정 마. 그냥 감기야. 억지로 버티다가 결국 심해졌어. 내가 너무 마음이 안 놓여서 한번 가보려고. 다 나으면 그때 다시 돌아올게. 언니, 나 지금 정남 씨네 별장으로 가야 해. 정남 씨 동료분이
“태윤 씨 회사 임원분이 제가 갈 수 있게 다 마련해줬어요. 지금 바로 그분 별장으로 가야 해요.”하예정이 대답했다.“그럼 얼른 가봐. 회사 임원분이 마련해줬다니 아마 전용기로 갈 거야. 금방 도착하겠구나. 기현아, 네가 예정이 별장까지 보내줘.”이경혜는 하예정이 말한 회사 임원분이 전태윤이라고 생각했다. 전씨 일가에 전용기가 있을 테니 시름 놓고 하예정을 보낼 수 있었다.몇 분 후.성기현이 하예정을 차에 싣고 성씨 일가 별장을 나섰다.가는 길에서 성기현이 하예정에게 말했다.“예정아, 오빠가 살짝 불합리한 부탁을 하나 해도 될까?”“말해요, 오빠.”성기현이 운전하며 말을 이었다.“소현이가 전씨 그룹 도련님을 짝사랑하는 건 너도 알잖아. 걔가 지금 말로는 그 감정을 내려놨다지만 몇 년 동안 짝사랑한 감정이라 하루아침에 내려놓을 순 없을 거야. 태연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하예정은 문득 김진우가 떠올랐다.김진우가 그녀를 향한 마음도 이러하지 않았던가.김진우도 그가 자꾸 하예정을 집착하는 게 안 좋다는 걸 알지만 걷잡을 수 없다고 했다. 한순간에 그녀를 향한 마음을 쿨하게 내려놓을 수 없다고 했다.“이해해요.”하예정이 대답했다.“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쉽지만 한때 가슴 깊이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 건 너무 힘든 일이죠.”하예정은 누군가를 깊이 사랑한 적이 없어 공감되지 않는다.하지만 지금 그녀가 전태윤을 향한 마음으로 볼 때 언젠가 이혼하고 이별할 날이 다가온다면 아주 괴롭고 긴 시간이 흘러야 이 감정을 내려놓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듯싶었다.사랑할 땐 화끈하게, 내려놓을 땐 쿨하게.말이 쉽지, 정작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그래서 내 생각엔 네가 앞으로 소현의 앞에서 너희 남편 얘기를 적게 꺼냈으면 해. 회사 얘기도 포함해서 말이야. 전씨 그룹을 언급하면 소현이가 또다시 전 대표를 떠올릴 거야. 네가 너희 남편 얘기를 꺼낼 때마다 같은 전씨라서 소현이가 전 대표 생각이 날 수밖에 없어.”하예정은
유일하게 잘못 본 건 바로 전태윤이다.아니, 그녀는 전태윤의 가족에게 단단히 속은 케이스다.두 사촌 남매는 그렇게 수다를 떨며 곧장 소씨 일가 별장에 도착했다. 하예정은 별장으로 가는 길이 너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소정남은 별장에 돌아오지 않았다.그는 여전히 심효진 오누이와 함께 밖에서 훠궈를 먹고 있었다. 심효진은 절친 하예정이 몹시 걱정됐는데 소정남이 모든 걸 마련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자 그제야 마음을 내려놓았다.하예정이 소씨 일가 별장에 도착했을 때 심효진이 곧바로 그녀에게 전화해 별장에 간 걸 확인하더니 한시름 놓았다.“효진아, 오늘 밤엔 정남 씨한테 너무 큰 도움을 받았어. 나 대신 꼭 고맙다고 전해줘. 돌아오거든 꼭 정남 씨한테 제대로 고맙단 인사할 거야.”소정남은 전태윤의 동료이기에 전화 한 통으로 그쪽 직원들에게 분부하여 전태윤을 병원에 데려갈 수 있다. 굳이 그녀가 가지 않아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하지만 하예정이 한사코 가겠다고 하니 소정남도 바로 전용기를 띄워 보냈다. 그녀는 이 은혜에 꼭 보답하리라 다짐했다.“알았어, 넌 얼른 가서 태윤 씨 잘 보살펴줘. 정남 씨가 그러는데 의사 선생님더러 한약을 며칠 더 처방해서 한꺼번에 말끔히 치료하래. 그렇게 하면 다음에 또 감기 걸렸을 때 억지로 버티지 못 할거래. 태윤 씨는 한약 마시는 걸 엄청 질색해서 사약을 먹는 것처럼 고통스러워한대.”하예정이 대답했다.“정남 씨 아이디어가 살짝 얍삽하긴 해도 나름 괜찮은 것 같아. 태윤 씨 약점을 잡고 제대로 혼내야 두 번 다시 버티지 않을 거야.”하예정도 전태윤 때문에 너무 놀랐다.“효진아, 나 비행기 타야 해.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그래, 일 봐. 난 아직 훠궈 먹는 중이야.”“부러워.”하예정의 말에 심효진이 웃으며 답했다.“태윤 씨가 출장 다녀오면 우리 다 함께 훠궈 먹자.”“그래.”통화를 마친 후 하예정은 소씨 일가에서 마련한 전용기에 올라탔다.“예정아, 도착하면 우리한테 문자 보내.”성기현이 그녀에게 당부
정윤하는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우리 엄마한테 저녁에 밥 좀 더 하시라고 부탁할게요. 아저씨가 우리 엄마가 하신 요리를 좋아하신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 엄마가 매우 기뻐하실 거예요.”소지훈이 웃으며 말했다.“아주머니가 만든 요리들이 정말 맛있어요.”“오늘 저녁에 많이 드세요. 아저씨, 저 먼저 운동 좀 하고 이따가 공항으로 마중하러 갈게요. 저녁에 봐요.”“그래요. 저도 이제 비행 모드로 전환해야 해요. 저녁에 봐요.”소지훈은 작별 인사를 하면서도 통화를 끊는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그는 정윤하 쪽에서 전화를 끊은 후에야 휴대전화를 귓가에서 뗐다.소지훈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 사진은 정윤하의 사진 이였다. 정윤하가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소지훈은 정윤하의 사진을 몇 장 찍어 그녀에게 보내주면서 자신의 휴대전화에도 보관해 두었다. 그리고 정윤하의 사진을 그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 사진으로 설정했다.휴대전화를 켜면 정윤하를 바로 볼 수 있었다.정윤하의 안색은 환했고 미소가 밝고 청춘의 활력이 넘쳐 소지훈은 그녀를 보면 볼수록 더 좋아졌다.비행기가 관성을 떠나 연성 공항에 착륙하기까지 이미 몇 시간이나 흘렀다.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하자 소지훈은 이내 휴대전화의 비행모드를 정상상태로 돌려놓았다.그러자 그의 휴대전화에는 끊임없이 메시지가 들어오고 있었다. 정윤하가 소지훈에게 자신이 공항 출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소지훈은 정윤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정윤하가 바로 받았다.“아저씨, 도착했죠? 저도 방금 도착해서 공항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큰 종이에 글씨로 이름을 적어놓았어요. 아저씨가 나오시면 아저씨 성함이 한눈에 보이실 거예요.”소지훈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지금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어요. 캐리어를 가지러 갔다가 금방 나갈게요.”“괜찮아요. 기다릴게요. 뭐라도 좀 드셨어요? 집에 가는 길에 드실 간식 좀 사드릴게요. 집으로 가는 길에 좀 드세요. 공항은 우리 집에서 좀 멀거
전태윤은 피식 웃었다.“우리 소 대표님도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네요.”“제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요. 뭘.”전태윤은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네, 소 대표님은 높은 분이 아니십니다. 제 신분으로도 소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도 줄을 서야 하는데. 저와 정남이가 절친이 아니었다면 아마 돈을 많이 내놓는다고 해도 소 대표님을 만나지 못할걸요.”소지훈이 말했다.“제가 너무 바빠서 그래요. 전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우리와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바쁘잖아요.”“제가 간단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래요. 그럼 일단 연성에 가셔서 윤하 씨를 만나세요. 제가 먼저 정남에게 연락할게요.”소지훈이 대답했다.“무슨 일이 있으시면 정남이한테 말씀하세요. 두 분이 친구라서 말하기 더 편할 거에요. 그리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처음 사랑을 맛본 소지훈은 한창 뜨거운 열정으로 정윤하를 따르고 있었다.게다가 소지훈 부모님도 매일 그에게 결혼 재촉을 했다. 정윤하가 다른 남자들이 가로채 갈까 봐 늘 소지훈더러 연성으로 가서 정윤하에게 구애하라고 재촉하셨다.정윤하는 소지훈의 운명적인 여신이었다. 그가 정상적인 남자가 될 수 있을지는 모두 정윤하에게 달려 있었기에 정윤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었다.소지훈의 부모는 너무 급한 나머지 소지훈이 정윤하에게 고백하지 않았다고 투덜거리며 아들 대신 정윤하에게 구애하고 싶었다.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던 소지훈은 정윤하를 만난 뒤로 급하게 고백하면 그녀가 놀라게 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알게 된 시간이 아직 짧기에 좀 더 익숙해진 뒤로 고백하려고 했다.정이 깊어지면 모든 일이 쉽게 풀리기 마련이다.소지훈은 이번에 연성에 가서 기회를 보면서 정윤하에게 고백하려 했고 또 정씨 가족들 앞에서 잘 보이고 싶었다.소지훈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정윤하보다 10살 많은 나이가 많다는 점이다. 만약 세는 나이로 계산하면 11살이나 더 많았다.“알겠어요. 알겠어요. 하
전태윤이 말했다.“모든 이 대표님은 실력이 훌륭하고 충실한 특별 비서를 두었기 때문에 분명히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거야. 만약 그 특별 비서가 살아있다면 찾아서 현임 이 대표님의 죄를 밝힐 수 있을 텐데. 만약 그 틀별 비서도 죽었다면 이 일은 정말 조사하기 어려울 거야. 40~50년이나 지났으니까. 이따가 소 대표님께 전화해서 전임 이 대표님의 비서가 누구인지, 그 사람이 아직 살아있는지, 살아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볼게.”소씨 가문도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울 것이다.전호영이 말을 이었다.“그건 내가 알아볼 수 있어. 내가 고진호 씨를 조사해 보는 게 더 편리할 거야.”사실 이씨 가문의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었겠지만, 그들을 찾아가면 이은화가 눈치채기 쉬웠다.어쩌면 전임 이 대표의 비서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현재 이은화도 그 비서를 찾고 있을 수도 있었다.“그래. 그럼 소식이 있으면 나한테 알려줘.”“알았어. 둘째 형이 혼인 신고를 했다니, 부러워 죽겠어. 나와 이진 형이 동시에 할머니께서 주신 사진을 받았는데 이진이 형은 혼인 신고까지 했는데 난 아직도 고현 씨 뒤를 쫓아다니고 있다니. 휴.”진지한 이야기를 마친 전호영은 전태윤과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어쨌든 전호영과 전태윤 모두 할일도 없이 한가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수다를 떨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누가 반년 동안이나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했어? 그러니까 이진이 보다 늦지. 내가 보기엔 고현 씨도 너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던데, 너도 얼른 더 노력해서 내년에 결혼해야지. 이런 일은 나한테 말하지 말고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 난 좀 쉬어야겠어.”전태윤은 전호영의 하소연이 듣기 싫었는지 이내 통화를 끊었다.애초에 전호영은 고현이 남자같이 생겼다고 무척 싫어했기 때문에 일부러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강성으로 가서 고현의 여자 신분을 폭로하려고 했다.전태윤이 전화를 끊어도 전호영은 화를 내지 않고 혼자 중얼거렸다.“자기만 행
“형, 통화하기 편해?”전호영은 고현을 호텔 밖으로 배웅하고 그의 사무실로 돌아온 뒤로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얼른 말해. 무슨 일인지.”전호영이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형한테 보낸 사진과 동영상은 이 대표님 남편이 바람을 피운 증거들이야.”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호영이 계속해서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이 대표님의 남편 정군호 씨인데 젊었을 때는 멋있었는데 재주가 없어서 이 대표님 남편으로 되었거든. 이씨 가문에서는 사장님이라고 불리웠지만 사실 존중 받지 못하고 아내에게 의지해 살아야 했어. 이 대표님도 남편을 엄격하게 관리했기에 매달 생활비를 주지 않고 매일 용돈 10만 정도만 주었어.”“이전에 바람을 피우려다가 이은화에게 혼이 난 뒤로 감히 바람을 피우고 싶어도 피우지 못했어. 이번에 이 대표님이 관성에 가서 형 결혼식에 참석한 뒤로 관성에 보름이나 머물게 되었는데 정군호 씨가 그 틈을 타 바람을 피울 기회를 얻었던 거야. 이 대표님이 아신다면 분명 한바탕 소란을 피울 거야.”“요즘 이씨 가문도 난장판이야. 이씨 가문의 아들들이 밖에서 내연녀를 두었는데 윤미 씨가 그 사실들을 폭로하는 바람에 지금 아들과 며느리들이 한창 떠들썩하게 지내고 있거든. 만약 이 대표님과 정군호 씨 일까지 폭로된다면 더욱 혼란스러워질 거야. 형, 형수님께 말씀드려봐. 무슨 계획 있으신지. 지금 이 틈을 타서 폭로할 수도 있으니까.”전태윤이 나지막이 물었다.“정군호 씨가 이 대표님의 남편이란 말이지?”“그럼, 고현 씨가 알려줬거든. 난 정군호 씨가 누군지도 몰랐어. 고현 씨가 강성의 토박이라 이씨 가문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서 정군호 씨를 알아봤거든. 고현 씨가 연회에 참석할 때 정군호 씨와 이 대표님이 함께 온 것을 봤대. 틀림없을 거야.”“이씨 가문의 그 이윤미 씨도 좀 재미있는 사람 같아. 이윤미 씨도 어느정도 수단은 있지만 그래도 도덕은 있는 편이네. 아쉽게도 이 대표님과 같은 사람을 어머니로 두었지.”이윤미가 이씨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
이윤정은 전호영을 언급할 때 마다 이를 악물면서 전호영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고현을 빼앗아 갔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윤미 씨 아버지께서 바람난 일을 전호영 도련님께 맡겨보는 건 어떠세요? 전호영 도련님은 안팎으로 이씨 가문을 괴롭히거든요.”이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전호영이 적수나 다름없다.이씨 가문과 이경혜 자매의 관계, 그리고 이윤미가 관성 쪽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던 방윤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방윤림은 아마도 이윤미가 관성 쪽의 사람들과 적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여겼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려고 했다.방윤림은 만약 전임 가주가 이은화의 손에 죽었다는 증거가 나오기만 하면 이윤미가 더는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씨 가문을 떠나 그녀의 작은 세계로 돌아가리라 추측했다.아니, 그녀가 반드시 원래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윤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다.사실, 이씨 가문에 돌아가기 전에 이윤미는 이미 사업에 성공한 젊은 여자였다. 이윤미의 양부모가 늘 그녀의 피를 빨아들이려는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었다.이윤미는 사람들이 그녀를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인 줄로 알게 하여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이윤정일 수도 있으리라 추측하게 했다.그러나 이씨 가문의 철칙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기도 했고 또한 이윤정의 능력도 훌륭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윤정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그녀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닌 것이 밝혀진 이상 이씨 가문을 이어받을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이윤미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호영 씨도 이 사실을 알아 버린 이상 모른 체 하지 않을 거예요. 호영 씨는 원래 이씨 가문이 잘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지 않아도 스스로 그 사실을 터뜨릴 겁니다.”“우리가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증거가 호영 씨의 손에 있는 이상 가만히 있지
아무튼, 그 여자가 어느 우두머리의 내연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군호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사람의 내연녀를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영상과 사진을 본 이윤미는 방윤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냥 놔둬요. 제 카카오톡 기록도 삭제할 거예요. 제가 만약 저장해 두면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와서 저를 의심하게 되면서 제 휴대전화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방윤림이 회답했다.[제가 이미 저장했습니다. 윤미 씨는 식사하셨어요?”[먹고 있어요. 배달시켰거든요.]방윤림은 눈살을 찌푸렸다.[자꾸 배달 음식을 시키지 마세요. 회사에 식당도 있는데... 정 시간이 안 되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제가 매일 요리를 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이씨 가문에 돌아온 뒤로 이윤미는 고군분투했다. 아무도 그녀를 관심해 주지 않았다.이은화조차도 진정으로 이윤미와 한마음이 아니었다.이은화는 이윤미 혼자만의 어머니가 아니었고 오빠와 이윤정이 어머니이기도 했다.이윤정은 이은화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애교를 부릴 수 있었지만, 이윤미는 그런 애교를 부릴 수 없었다.다행히도 방윤림이 이윤미의 곁으로 와주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있는 의미를 깨달은 뒤로 그에 대한 믿음이 가족보다 더 깊어졌고 방윤림 또한 그녀를 많이 도와줬다.방윤림이 처음 이윤미의 곁에 왔을 때 이윤미에게 앞으로 누구든 이윤미의 곁은 떠날 수 있겠지만, 방윤림만은 이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방윤림이 이윤미 곁으로 파견된 그 순간부터 그는 죽지 않는 한 이윤미에게 충성하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만약 방윤림이 죽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재빨리 그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윤미의 곁에는 늘 충성을 다 하는 심복이 따라다닐 것이다.방윤림은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진정한 능력자였다.물론 요리 실력도 훌륭하기 때문에 그가 한 요리는 매우 맛있었다.이윤미는 타자속도가 너무 늦다고 느껴 음성통화를 걸었다.
고현은 전호영의 옷을 잡아당겼다.전호영은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을 했다.“이 대표님도 언제쯤이면 돌아오실지... 정말 이씨 가문의 이 재미있는 연극을 보고 싶네요.”고현은 전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설령 이 대표님이 남편이 밖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더라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 정군호 씨를 데리고 가서 문을 닫고 난리 칠 거예요. 호영 씨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예요.”전호영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건넸다.“이윤미 씨가 있잖아요. 이윤미 씨가 이씨 가문 겉면의 평화를 깨뜨렸는데 윤미 씨의 아버지 스캔들을 숨길 수 있겠어요? 저는 믿지 못하겠어요. 윤미 씨도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씨 가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기회를 보면서 이씨 가문의 도련님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생각일 거예요.”“그 문제 덩이 사람들만 없다면 이씨 그룹에서 윤미 씨의 지위는 더 확고해질 수 있잖아요. 역시 이 대표님 친딸답네요. 자신의 가족들을 이토록 모질게 다루다니.”고현은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는 이윤미를 대신해 몇 마디 했다.“윤미 씨는 이씨 가문 여자들의 독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 대표님과는 조금 달라요. 제가 장담하건대 윤미 씨는 윤미 씨의 오빠들을 최대한 이씨 그룹에서 쫓아내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이씨 그룹에서 파벌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 사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것을 방지할 뿐이죠. 이 대표님처럼 가족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이윤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더니 더는 이윤미에 관한 나쁜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전호영 일행은 호텔에 들어간 뒤 전호영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으로 갔다. 그 안에는 뷔페가 있었기 때문에 고현은 그녀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정군호가 내연녀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몰래 사람을 시켜 정군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했다.그리고 정군호가 내연녀를 데리고 룸에 들어가면 그들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