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진은 차가 없었다. 하여 하예정과 통화를 마친 후 동생네 부부는 주우빈을 찾으러 가고 그녀는 주형인과 끝장을 보기로 했다.하지만 그녀 혼자서 주형인네 가족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다행히 전씨 할머니와 숙희 아주머니가 온 덕에 그녀는 위기를 넘겼다.주형인은 어젯밤에 작성한 이혼 합의서를 꺼내며 하예진에게 말했다.“예진아, 내가 당신한테 미안한 짓을 한 건 인정해. 당신이 절대로 날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이렇게 된 이상 우리 더는 같이 못 살아. 그러니까 좋게 좋게 끝내자. 이건 내가 작성한 이혼 합의서야. 읽어봐봐, 문제없으면 사인해서 다음 주 월요일에 이혼 신고하러 가자.”하예진은 차가운 얼굴로 이혼 합의서를 훑어보았다. 내용을 확인한 그녀는 너무도 화가 나 주형인을 당장이라도 찢어 죽이고 싶었다.주형인이 쓴 이혼 합의서를 확인한 할머니는 연거푸 심호흡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분노를 가라앉혔다.‘주씨 가문 사람들 정말 양아치네!’주형인은 하예진의 표정이 굳어진 걸 발견하고 뻔뻔스럽게 말했다.“이 집은 내가 결혼 전에 개인 재산으로 산 거고 명의도 내 명의로만 되어있어. 그러니까 집은 당연히 내 것이고 차도 내가 샀으니까 내 것이야. 당신이 일자리를 찾긴 했지만 아직 수습 기간도 끝나지 않아서 안정적인 수입이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없어. 그러니까 내가 양보해서 우빈이 양육권은 내가 가질게. 당신 앞으로 매달 우빈이 양육비 40만 원씩 보내면 돼.”“우빈이 인제 고작 29개월이라 아직 분유도 먹어야 하고 기저귀도 필요해. 세 살이 되면 어린이집도 가야 하는데 어린이집 학비가 매년 점점 비싸져. 그리고 앞으로 교육비도 엄청 많이 들어. 우빈이 크면 집도 사줘야 하고 장가도 보내야 하는데 전부 다 돈이야. 우빈이 양육권을 내가 가지고 당신한테 매달 양육비 40만 원을 보내라는 건 이미 많이 양보한 거야. 내가 우빈이 친아빠니 어쩌겠어, 양보해야지 뭐. 그리고 내가 평소에 지출이 많아서 적금이 많지 않아. 하지만 적금의 절반인 6백만 원
하예진이 싸늘하게 웃었다.“인테리어 비용을 돌려받으면 당신들이 내쫓지 않아도 알아서 나갈 거예요.”“인테리어 비용은 일전 한 푼도 못 줘!”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바람에 주서인은 얼굴이 더욱 아팠다. 하예진은 얼음찜질이라도 하고 있었지만 주서인은 그저 고통을 참고만 있었다. 두 볼이 어찌나 욱신거리는지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엄청 부어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하예진! 절대 가만 안 둬!’“법원에서 봅시다!”전씨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주씨 가문 사람들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너무하네. 합의를 못 봤으니 더 얘기할 필요도 없어. 예진아, 당장 가서 이혼 소송하고 법원에서 보기로 해.”그러자 주형인이 하예진을 협박했다.“하예진, 소송하면 당신한테 유리할 것 같아? 당신 동생이랑 이 사람들 당신한테 전혀 도움이 안 돼. 일을 크게 벌였다간 앞으로 우빈이 못 만날 줄 알아.”하예진이 이혼 소송을 걸고 재산을 나눈다면 그는 주우빈을 숨겨 하예진이 평생 주우빈을 만나지 못 하게 할 생각이었다.그녀는 주형인을 차갑게 째려보기만 할 뿐 그의 협박 따위 안중에도 두질 않았다. 이혼 소송해서 재산 분할도 하고 아들의 양육권도 가져올 셈이었다. 그녀의 몫은 무슨 수를 써서든 다 챙길 것이고 절대 주형인과 서현주의 좋은 노릇을 하지 않을 것이다.하예진과 주형인이 합의를 못 본 그 시각, 하예정은 전태윤, 그리고 그의 형제들과 함께 임씨 저택에 도착했다.임수찬이 주우빈을 데려갔으니 주씨 저택이 아니라 자신의 저택으로 데려갔을 거라고 하예정은 생각했다.임씨 저택은 3층짜리 건물이었는데 안팎으로 화려한 인테리어가 마을에서 특히 더 눈에 띄었다.임수찬은 주우빈을 금방 데려왔기 때문에 하예진네 자매가 주우빈이 이곳에 있는 걸 알더라도 처가댁에서 하예진네 자매를 막고 있어 바로 데리러 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여 그는 주우빈을 데리고 온 후 작은아들과 놀게 했고 와이프가 집에 없는 틈에 방에서 게임을 즐겼다.갑자기 안겨 간 주우빈은 오는 길 내내 울음을
하예정은 잽싸게 달려가 임요한의 손에서 주우빈을 당겨오고는 한 손으로 임요한의 뺨을 때렸다.임요한은 10살 정도의 남자아이였는데 키가 어찌나 큰지 열네댓 살 되는 청소년 같았다. 갑자기 하예정에게 맞았는데도 임요한은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불같이 화를 내며 미친 듯이 하예정에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하예정을 건드리기도 전에 두 발이 공중에 붕 떴다.무슨 상황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얼굴은 이미 벽에 닿아 있었고 누군가 두 손을 뒤로 꽉 잡고 그를 누르고 있었다. 임요한은 벗어나고 싶었지만 상대의 힘이 너무 강해 꼼짝달싹도 못 했다. 꽉 잡힌 두 손에 고통이 점점 밀려왔다.“이거 놔!”임요한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이거 놓고 나랑 일대일로 붙어!”꼼짝달싹 못 하는 동생을 본 임윤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동생을 도와주러 가려 했지만 누군가 막아섰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샌가 집안에 훤칠한 체구의 남자들이 몇몇 들어와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훈남이었다.임윤아는 고작 12살밖에 안 되었지만 남자 보는 눈은 있었다. 평소 친구들과 어느 남자 연예인이 잘생겼는지 자주 토론하곤 했었다. 임윤아는 눈앞의 남자들을 보며 넋을 놓았다.‘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인가? 너무 잘생겼잖아!’“당... 당신들은 누구야!”조금 전까지 주우빈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임수찬의 부모님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며 화들짝 놀랐다.하예정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주우빈만 살폈다. 주우빈의 두 볼이 임요한에게 얻어맞아 퉁퉁 부어있었고 시뻘건 손자국이 선명한가 하면 입가에 피도 묻어있었다. 평소 천진난만하게 반짝이던 아이의 두 눈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주우빈은 울고 싶었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울음소리도 내질 못했다.그 모습에 하예정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우빈을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우빈아, 이모야. 이모가 우리 우빈이 구하러 왔어. 울고 싶으면 울어, 우빈아. 이모 놀란단 말이야.”주우빈은 자신을 안은 사람이 하예정인 걸 확인하고 나서야 큰소
“이진아, 여긴 네가 알아서 해. 쟤가 우빈이한테 어떻게 했으면 배로 갚아줘!”전태윤이 임요한을 옆으로 확 던지자 임요한은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그런데 임요한은 아직 일어나기도 전에 전태윤을 향해 발길질하려 했다.전태윤은 보지 않고 감각으로 임요한의 발을 세게 밟아버렸다. 그 바람에 임요한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그는 임요한을 싸늘하게 째려보고는 재빨리 하예정을 따라나섰다. 하예정은 이미 주우빈을 카시트에 앉히고 운전하려 했다.“예정아, 내가 운전할게.”전태윤은 운전석에 앉은 하예정을 뒷좌석에 앉힌 후 직접 운전하려 했다. 하예정도 고집을 부리지 않고 순순히 따랐다. 그러고는 맞아서 쓰러진 건지, 아니면 놀라서 쓰러진 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주우빈을 안고 전태윤에게 말했다.“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가요.”굳이 그녀가 얘기하지 않아도 전태윤은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는 재빨리 차에 시동을 걸었다.주우빈을 꽉 끌어안은 하예정의 두 볼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렇게 귀여운 주우빈에게 그런 몹쓸 짓을 하다니.병원으로 가는 길 내내 부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럴 기분도 아니었다. 하예정은 혹시라도 주우빈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너무도 무서웠다.만약 주우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임씨 가문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그들은 곧바로 한 병원에 도착했다. 전태윤이 차를 세우자 하예정은 주우빈을 안고 곧장 차에서 내렸다.“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미친 듯이 뛰어가며 의사를 부르는 소리에 많은 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의사와 간호사는 그녀의 부름에 저마다 화들짝 놀란 얼굴이었다. 그녀는 어느 과의 의사인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아무 의사나 잡고 애걸하듯 말했다.“선생님, 우리 조카 좀 살려주세요. 다른 사람한테 학대당해서 쓰러졌어요.”의사는 재빨리 주우빈을 안고 응급실로 향했고 다른 의사와 간호사도 그 뒤를 따랐다.그때 한 간호사가 하예정에게 귀띔했다.“아이가 학대를 당했다면 얼른 경찰에 신고해요.”
잠시 후 응급실 문이 열리면서 주우빈이 병실 침대에 누운 채 나왔다.“우빈아.”하예정네 부부는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의사에게 조급하게 물었다.“선생님, 우리 조카 어때요?”“아이가 얼굴을 세게 맞아서 연조직이 다 손상됐어요. 허벅지에도 시퍼렇게 멍이 들었던데 누군가 걷어찬 거 맞죠? 옷에 발자국이 있더라고요. 그 외에는 다친 데 없어요. 정신을 잃은 건 너무 놀라서 그런 거예요.”간호사는 주우빈의 얼굴에 얼음찜질해주었다.“어떻게 이 어린애한테 이런 몹쓸 짓을 할 수가 있죠?”의사마저도 주우빈을 마음 아파했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두 볼이 퉁퉁 붓고 멍이 들 정도로 때렸다면 가해자가 여간 잔인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어린아이에게 이 정도로 손을 썼다는 건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뛴 게 틀림없다.“얘 사촌 형이 그랬어요.”의사는 할 말을 잃었다.‘대체 무슨 원한이길래 사촌 형이 동생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아까 아이가 다친 곳을 사진 찍어놓았어요. 사진 줄 테니까 잘 갖고 있어요. 이따가 경찰이 오면 이걸 증거로 고소할 수 있어요.”하예정은 재빨리 감사의 인사와 함께 휴대 전화를 꺼내 의사의 카톡 연락처를 추가했다. 서로 추가한 후 주우빈의 다친 사진을 하예정에게 보냈다.“아이가 몸에는 크게 다친 곳이 없지만 마음이 많이 다쳤을 거예요. 앞으로 아이 옆에서 잘 챙겨줘야 해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어른들이 옆에 있어 준다면 트라우마도 천천히 사라질 겁니다.”하예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선생님.”전태윤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별말씀을요.”의사는 인사에 답한 후 자리를 떠났다.부부는 간호사와 함께 병실로 향했고 간호사가 주우빈을 병실 침대에 눕히며 말했다.“조금 있으면 아이가 곧 깨어날 겁니다. 깨어나면 잘 다독여주세요. 너무 놀라서 쓰러진 거니까요. 그리고 얼굴이 너무 부어서 얼음찜질도 계속해줘야 해요. 24시간 후에는 온찜질을 해주고요.”“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하예정은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
하지만 마음의 상처가 아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그 자식은 어떻게 됐어?”전태윤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직접 때리진 않고 걔 아빠한테 때리라고 몰아붙이니까 얼굴이 퉁퉁 붓고 입가에 피날 정도로 때리더라고. 그리고 그 집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렸어. 신고하겠다고 시건방을 떨어서 신고하라고 했어. 우빈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아들을 경찰서에 보내겠다고 하니까 더는 찍소리 못하더라고.”상대가 아직 어린아이인 탓에 전이진이 손을 쓴다면 오히려 임씨 가문에서 그를 고소할 수 있다. 다행히 그들이 사람이 많은 걸 보고 임수찬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큰아들을 따끔하게 혼냈다. 그 바람에 아이의 두 볼이 벌겋게 부어올랐고 입가에 피도 흥건했다.임수찬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자기 자식을 마구 때렸다. 큰아들의 얼굴이 퉁퉁 부었을 뿐만 아니라 벨트까지 풀어서 때리기도 했다.그는 큰아들이 주우빈을 때릴 때 하필 하예정 일행에게 들킨 걸 꾸짖었다. 그 바람에 집도 난장판이 되었고 엄청난 손해를 입었으니까.만약 주우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임수찬도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고 나중에 처남과 장모님에게 뭐라 설명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홧김에 큰아들을 쥐어패듯이 때린 것이었다.임수찬의 부모는 임요한이 아직 애라면서 울며불며 소리쳤고 오히려 전이진 일행이 너무했다고 책임을 전가했다.그러자 전이진이 반박했다.“우빈이는 애가 아니에요? 우빈이 인제 고작 몇 살인데 그렇게 때리는 건 말이 되고요?”그의 반박에 임수찬의 부모는 찍소리도 하질 못했다. 자기 손자가 잘못을 저질렀을 땐 아직 어린애라서 그런 거니까 그냥 넘어가 달라면서 애들끼리 티격태격 싸우는 건 정상이라고 했다.이게 티격태격 싸우는 수준이라고? 주우빈이 쓰러져서 병원까지 갔는데?“형, 우리가 그 집을 때려 부술 때 보니까 CCTV가 설치되어 있더라고. 내가 CCTV를 확인해보니까 우빈이 맞는 장면이 다 녹화되어 있었어. 그래서 그 집 CCT
소정남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단번에 알아챘다. 전태윤이 이를 악물며 얘기하는 것 같았고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음을 알 수 있었다.“주씨 가문 사람들이 우빈이를 빼앗아갔었는데 우리가 우빈이를 찾았을 때 주형인의 외조카가 글쎄 우빈이를 마구 때리는 거야. 우빈이 지금 병원에 있어. 얼굴이 퉁퉁 부었고 연조직도 손상됐대. 애가 얼마나 놀랐는지 기절까지 했었어.”소정남이 욕설을 퍼부었다.“쓰레기만도 못한 놈들! 어떻게 저런 놈들이 있을 수가 있어? 우리 남자들의 체면을 깎아도 유분수지. 우빈이 지금은 어때?”소정남이 걱정스럽게 물었다.“몸의 상처는 며칠이면 아물겠지만 마음의 상처는 아마 오래갈 거야.”“우빈이 그렇게 때린 놈은 혼냈어? 내가 사람을 데리고 가서 확실하게 패줄까? 어떻게 그렇게 어린애를 그 지경으로 만들 수 있어? 정말 인간도 아니야.”전태윤이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우빈이를 저렇게 만든 놈은 고작 열 살짜리 애야. 신고해봤자 나이가 어려서 그냥 부모한테 교육이나 잘하라고 하고 배상하라고 하겠지. 감옥에는 못 보내. 그래도 애 아빠더러 제대로 혼내라고 해서 이미 피 터지게 맞았어.”임수찬에게 직접 임요한을 혼내라고 하는 건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치는 것이기에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나 욕해도 돼? X발, 고작 열 살짜리 애가 그렇게 못됐다고? 나중에 사회에 발을 들이면 얼마 못 가 콩밥을 먹겠네 그럼. 태윤아, 내가 제대로 알아볼 테니까 걱정하지 마. 지금 당장 애들한테 말할게. 그 집 사람들 전부 빈털터리로 만들 거야!”전태윤의 말투에 미안함이 가득했다.“오늘 소개팅하는데 기분이 안 상했길 바라.”“효진 씨는 형수님의 절친이야. 이번에 좋은 인상을 못 남긴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만날 기회는 언제든지 있어. 인연이 닿는다면 좋은 결과도 있을 거고 인연이 아니라면 아무리 붙여놓으려고 해도 안 돼.”소정남은 심효진과의 소개팅을 아주 중요시했지만 순리에 맡겨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경찰들이 왔어.
메이크업하지 않고 예쁜 옷도 입지 않은 심효진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아니, 평소에는 그래도 메이크업을 살짝 했지만 오늘은 완전히 생얼이었다.“효진 씨, 미안해요. 오래 기다렸죠?”심효진이 방긋 웃어 보였다.“저도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앉으세요, 정남 씨.”소정남이 심효진의 맞은편에 앉으며 장미꽃을 건네자 심효진은 받질 않았다.“아까 입에 물고 오시던데요...”심효진이 말끝을 흐리자 소정남이 말했다.“다음에는 꽃다발을 사서 손에 들고 올게요. 입에 물지 않고.”“입이 아무리 커도 꽃 한 다발을 무는 건 무리겠죠?”소정남이 말했다.“그럼요...”그는 입에 물고 온 장미꽃 한 송이를 테이블 밑의 쓰레기통에 버렸다. 심효진이 이미 커피를 주문한 걸 본 그는 종업원을 불러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잠시 후, 종업원이 커피를 가져오며 소정남을 힐끔거렸다. 그러자 소정남이 배시시 웃으며 종업원에게 말했다.“지금 소개팅 중이에요.”그 순간 종업원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뭔가 얘기하려다가 상사의 당부가 떠올랐는지 이내 말을 바꾸었다.“다른 뜻은 없었어요.”종업원은 단지 그가 소 이사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난감한 상황에 종업원은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소정남이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부모님이 너무 잘생기게 낳아주셔서 저도 부담스럽다니까요.”그러자 심효진이 웃음을 터뜨렸다.“정남 씨 잘생기긴 하셨어요. 지금까지 제가 본 잘생긴 남자들 중 한 분이에요.”“저보다 더 잘생긴 사람이 있어요?”“정남 씨 동료분 전태윤 씨요.”소정남이 서운하다는 듯 말했다.“나랑 걔를 비교하지 말아요. 효진 씨 설마 저의 동료한테 다른 마음이 있는 건 아니죠?”커피를 한 모금 마시다가 사레들린 심효진이 콜록콜록 기침했다.“정남 씨, 전 정남 씨 동료분한테 아무 마음도 없어요. 그분은 저의 절친의 남편이에요. 게다가 그런 차가운 남자는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그녀는 하예정처럼 전태윤과 다정하게 지낼 인내심이 없었다. 게다가 하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