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빈은 엄마 품에서 바로 단잠에 빠졌다.하예진은 아들이 잠든 틈에 아들을 여동생에게 맡겼다. 동생네 부부가 주우빈을 챙기려고 가정부까지 구했다는 걸 안 하예진은 그들에게 고맙기 그지없었다.아직 그녀가 완전히 일어서지 못했기에 두 사람의 은혜를 마음속에 간직했다가 나중에 일어서면 제대로 보답할 생각이었다.하예진은 곧장 출근하러 갔다.유일한 절친의 전화를 받은 성소현은 하예정과 심효진에게 인사한 후 부랴부랴 가버렸다.“효진아, 먼저 가게에서 우빈이 봐줘. 숙희 아주머니랑 침구 용품 좀 사고 올게.”하예정은 숙희 아주머니가 쓸 침대, 서랍, 침구 용품을 사야 한다는 걸 잊지 않았다.“알았어.”심효진이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지금부터 학생들이 수업이 끝나기 전까지는 아주 한가한 시간이라 그녀는 늘 소설이나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숙희 아주머니가 말했다.“예정 씨 혼자 가서 사도 돼요. 이따가 우빈이 깨어나면 봐줄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요.”주우빈에게 그런 할머니가 있다는 걸 안 숙희 아주머니는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성소현의 말대로 이렇게나 귀여운 아이를 어찌 미워할 수 있냐는 말이다. 그녀가 속으로 생각했다.‘예진 씨가 아들을 낳았는데도 시댁에서 우빈이한테 이러는데 만약 딸이었으면 어땠겠어. 그래도 예진 씨가 이혼하겠다고 마음먹어서 다행이야. 저런 시댁이라면 진작 이혼했어야 해.’숙희 아주머니가 남아서 주우빈을 돌보겠다고 하자 하예정은 혼자 차를 운전하여 숙희 아주머니가 쓸 침대와 서랍을 사러 갔다. 그렇게 온 오후 돌아다니고 나서야 모든 일을 마쳤다.해 질 무렵 가게로 돌아와 바쁜 시간을 보낸 후 퇴근한 언니가 주우빈을 데리러 왔고 심효진도 집으로 돌아갔다. 하예정과 숙희 아주머니 둘이서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30분 후, 전태윤이 가게로 왔다.“오늘은 야근 안 해요?”차분한 발걸음으로 걸어오는 남편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에 하예정은 마음이 설렜다. 그의 비주얼은 뭐 말할 것도 없었고 남성적인 매력이 흘러넘쳤다.“급한 일만 마무리하고
그런데 아쉽게도 그의 친구들도 하나같이 경험이 없었다. 그렇다고 할머니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할머니가 아시면 얼마나 웃으시겠는가 말이다.얼마 전에 할머니 앞에서 절대 와이프에게 목을 매지 않겠다고 장담했던 것만 생각하면 전태윤은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데 굳이 목을 매지 않아도 하예정은 이미 그의 아내다.“걱정해줘서 고마워요. 몸 상하지 않게 쉬면서 할게요.”하예정은 민첩하고 교묘한 두 손으로 자동차를 만들고 있었다.“태윤 씨, 먼저 아주머니랑 집에 가 있어요. 갈 때 봄이랑 얘네들 데려가는 거 잊지 말고요.”전태윤이 눈살을 찌푸렸다.“싫어, 안 데려가.”“그럼 아주머니한테 맡겨요. 지금 가게도 바쁜 타임이 아니라서 두 사람 여기 있어 봤자 도와줄 것도 없어요. 차라리 집에 가서 아주머니한테 방 정리나 하라고 하세요.”“나랑 있는 게 그렇게 싫어?”하예정은 그를 힐끗 올려다보더니 이내 하던 일을 계속하며 피식 웃었다.“태윤 씨 참 예민한 사람 같아요. 솔직하게 말해서 싫은 건 아니에요. 그럼 말해봐요, 여기 남아서 뭘 도와줄 수 있는지?”전태윤은 얼굴만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예품을 만들 줄도 모르고 물건을 팔아주려고 해도 표정이 너무 심각하여 학생들이 놀랄 게 뻔했다.현실 앞에서 전태윤은 자신이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할머니는 왜 하필 이렇게 뭐든지 다 잘하는 와이프를 찾아준 거야? 내가 나설 기회가 없잖아!’전태윤은 속으로 할머니를 탓했다. 만약 할머니가 그의 생각을 들었더라면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어차피 예정이랑 반년 계약을 했으니 계약이 만료되면 이혼할 거잖아.”전태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하자 숙희 아주머니가 나서서 말했다.“예정 씨, 저 갈아입을 옷만 몇 벌 가져와서 정리할 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리 급하게 안 가도 돼요.”그들 모두 집에 갈 생각이 없자 하예정도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숙희 아주머
사실을 확인받은 하예정은 성소현 대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대표님한테 아내가 있다니... 소현 씨 포기해야겠어요.’그녀는 성소현이 하루빨리 전씨 가문의 도련님에 대한 마음을 접고 그녀만의 행복을 찾길 바랐다.“도련님이 결혼했는데 왜 아무 소식도 전해진 게 없는 거죠?”성소현마저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게 이상했다.“자기 와이프를 지키려고 그러겠지. 우리 대표님 잘생긴 데다가 젊고 돈도 많아. 대표님을 본 젊은 여자라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끌릴걸? 공개적으로 고백한 여자가 성소현 씨밖에 없다고 해서 대표님을 좋아하는 여자가 적다는 건 아니야. 다른 여자들은 그럴 용기가 없는 거지. 대표님은 사랑하는 아내의 신분과 얼굴이 공개되면 아내한테 성가신 일이 자꾸 생기고 방심한 틈에 누군가 아내를 다치게 할까 봐 걱정돼서 그래.”“다른 사람은 몰라도 소현 씨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소현 씨에 대한 오해가 너무 커요. 전씨 가문 도련님이 소현 씨를 좋아하지 않는 건 두 사람의 인연이 아니라는 거겠죠.”하예정이 한숨을 내쉬었다.“소현 씨가 하루빨리 상처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네요. 이 세상에 좋은 남자는 많으니까 굳이 도련님한테만 목을 맬 필요는 없잖아요.”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 참, 태윤 씨 드디어 대표님의 얼굴을 봤네요. 어때요? 잘생겼어요? 얼굴은 늙었던가요?”전태윤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왜 자꾸만 날 늙은 남자로 생각하는 거지? 인제 고작 30살인데. 남자 30살은 아직 엄청 젊다고!’“잘생겼어, 늙지도 않았고. 아무튼 엄청 매력 있어. 내가 만약 여자였다면 나도 우리 대표님을 좋아했을 거야.”하예정이 히죽 웃었다.“태윤 씨랑 비하면 어때요?”전태윤이 잠깐 멈칫하다가 말했다.“음... 내가 조금 더 잘생긴 것 같은데.”하예정이 웃음을 터뜨렸다.“지금 자뻑하는 거 아니죠? 전씨 가문의 도련님을 뵌 적이 없어서 누가 더 나은지 판단할 수가 없네요.”숙희 아주머니는 구석에서 입을 막고 웃음을 참느라 배가
평소 밀린 주문을 해결하느라 늘 늦은 밤이 돼서야 가게 문을 닫았다. 하예정이 그를 보며 말했다.“태윤 씨 아직 그 정도로 영향력이 크진 않아요.”전태윤이 입을 꾹 다물었다.“언니가 오늘 저녁에 주형인한테 이혼 얘기를 꺼내겠다던데... 조금 걱정돼요.”“그럼 나랑 같이 보러 갈래?”하예정이 시간을 확인했다.“이 시간이면 아직 주형인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을 거예요. 평소 늘 한밤중에 들어온대요.”두 자매가 어리석은 탓도 조금은 있었다. 주형인이 사장으로 승진한 후 일도 바쁘고 술자리도 많아 한밤중에 집에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연녀와 함께 있었던 것이었다.“처형을 믿어. 처형이 알아서 잘할 거야.”전태윤은 그녀에게 이런 위로밖에 건넬 게 없었다. 하예정이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왠지 자꾸만 순탄치 않을 거란 예감이 들어요. 주씨 가문 사람들이 얼마나 뻔뻔한데요. 그 사람들 언니를 회사에 나가지 못 하게 하려고 우빈이를 일부러 아프게 할 생각까지 했다니까요.”그녀는 김은희가 한 짓을 전태윤에게 곧이곧대로 얘기했다. 그러자 전태윤의 낯빛이 말이 아니게 어두워졌다.“우빈이는 괜찮아?”“아직은 감염됐는지 안 됐는지 몰라요. 언니가 그러는데 정한이가 걸린 게 독감이라서 다른 애들한테 쉽게 전염된대요. 우빈이 평소 건강하고 면역력도 높아서 아무 일도 없길 바라야죠.”“처형에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우리한테 전화하라고 해. 그리고 이혼할 때 쟁취할 건 끝까지 쟁취하고. 특히 우빈이 양육권은 반드시 가져와야 해. 우빈이를 그런 사람들한테 맡겼다간 어떤 학대를 당할지 몰라.”주형인에게 애인이 생긴 데다가 일도 바빠서 아이를 돌볼 시간이라곤 있을 리가 없다. 하여 주우빈을 무조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길 게 뻔했다.주형인의 부모는 맨날 주서인의 아이만 돌봐서 편애가 심했다. 주우빈이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낸다면 보살핌이라곤 전혀 받지 못할 것이다.하예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 사람들 모두 언니에게 같은 말을 했었다.“
전태윤과 하예정이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때 전태윤이 물었다.“언니 집에 가볼래?”하예정이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했다.“주형인이 아직 안 들어왔을 거예요.”그녀가 잠깐 머뭇거리다가 계속 말을 이었다.“언니 일은 언니가 알아서 해결하게 놔두는 게 좋겠어요. 내 도움이 필요할 때 언니가 말만 꺼내면 최선을 다해 도와줄 거예요.”전태윤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휴대전화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더니 몇 분 후 갑자기 그녀에게 말했다.“너 기분도 안 좋아 보이는데 오늘은 그만 문 닫는 게 어때? 나랑 바람이나 쐬러 가자.”하예정이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말했다.“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어요.”언니의 결혼 얘기만 꺼내면 하예정은 기분이 확 다운되었다.두 자매는 오랜 시간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왔다. 언니가 결혼하면 행복하게 살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야말로 잔혹하기 그지없었다.이제 언니의 결혼 생활도 곧 끝나가고 그녀와 전태윤도 힘들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앞으로 어떤 결과가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팔자가 사나운 사람은 행복할 자격도 없단 말인가?“가고 싶으면 가자. 나머지는 나한테 맡기고.”평소 하예정을 보는 그의 눈빛이 항상 차가웠기에 눈빛으로 그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빛에는 그녀에 대한 걱정이 담겨있었다.그 순간 마음이 따뜻해진 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그럼 지금 문 닫을게요. 나가서 바람이나 쐬자고요.”그때 카운터 밑에 앉아있는 봄이를 본 하예정이 다정하게 물었다.“아주머니랑 봄이, 얘네들은 어떡해요? 먼저 집에 데려다줄까요?”그러자 전태윤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왜요?”“차 키 줘.”하예정이 차 키를 꺼내며 물었다.“아주머니 운전할 줄 알아요?”“알아.”일하는 사람을 뽑을 때 요구 조건 중 하나가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이었다. 어쨌거나 그들이 사는 곳이 시끌벅적한 시 중심과 꽤 거리가 있으니 말이다. 만약 운전할 줄 모른다면 한번 외출하기 어렵다.전태윤은 차
그녀의 말에 전태윤이 눈살을 찌푸리며 뭐라 하려는데 하예정이 가로챘다.“나랑 효진이 다른 거로라도 소현 씨한테 갚을 거예요. 절대 공짜로 받지 않아요.”성소현이 물건을 이곳에 가져다 놓으니 그녀와 심효진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받지 않으면 성소현이 화를 낼지도 모르니 일단 받는 수밖에 없었다.물건을 정리하던 두 사람은 성소현이 가져온 물건의 값어치가 어느 정도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아무래도 나중에 무슨 수를 써서든 성소현에게 돌려줘야겠다.“공짜로 받는지 안 받는지, 그 문제가 아니야. 가뜩이나 크지 않은 가게에 책장이랑 진열대도 가득한데 성소현 씨는 계속 물건을 잔뜩 가져오잖아. 너한테 팔라고 준 것도 아니고, 괜히 자리만 차지해.”사실 전태윤은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아직 그가 아내의 가게에 자리를 잡기도 전에 성소현이 먼저 차지했으니 말이다. 맨날 그의 아내를 독차지하려는 성소현은 김진우보다도 더 괘씸했다. 왜냐하면 성소현은 여자니까. 그렇다고 해서 하예정에게 이런 얘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자기야, 난 자기가 성소현 씨랑 가깝게 지내는 게 싫어. 나 질투 나니까 그 여자랑 당장 연락 끊어.”만약 그가 이런 얘기를 한다면 하예정은 아마 괴물을 보듯 그를 볼 것이고 어쩌면 얻어맞을지도 모른다.“집이 널찍하니까... 아니면 먼저 집에 가져갈래요?”전태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성소현이 산 물건을 그녀의 가게에 가져다 놓은 것도 언짢은데 집에까지 들여다 놓는다고?“그만 가자.”고작 이런 일로 하예정과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았던 전태윤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하예정은 생각이 별로 없어서 부부 싸움을 할 때도 화를 내는 건 전태윤이었다. 전에도 이 같은 경험이 있어 교훈으로 삼았다.그녀는 화가 나면 쇼핑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 말고는 여전히 헤벌쭉 웃으며 할 일을 했다. 그런데 오히려 화가 나서 별장으로 돌아간 건 전태윤이었다. 다행히 할머니가 타일렀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알았어요.”하예정
하예정이 바닷가로 가서 바닷바람을 쐬자고 하자 전태윤은 곧바로 그녀와 함께 바닷가로 향했다. 물론 오션 뷰가 보이는 그의 별장에는 갈 수가 없었다.다행히 지금 여름이 아닌 데다가 늦은 밤이라 바닷가에 사람이 그지 많지 않았고 그저 여행객들만 조금 있었다.두 부부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바닷바람을 마음껏 쐬었다. 바람에 하예정의 머리가 헝클어졌고 갑자기 한기가 느껴졌다.전태윤이 발걸음을 멈추자 하예정도 멈춰 서서 그에게 물었다.“왜 그래요?”전태윤이 양복 외투를 벗어 하예정에게 건넸다.“바닷바람이 세니까 내 옷 입어.”하예정이 외투를 받지 않자 그가 계속하여 말했다.“스스로 입을래? 아니면 내가 입혀줄까?”하예정은 하는 수 없이 외투를 받고 입으면서 말했다.“태윤 씨는 안 추워요?”“나도 추워. 그런데 네가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하예정이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태윤 씨 대답은 드라마에서 봤던 거랑 다르네요. 드라마에서는 남자주인공이 보통 ‘난 안 추워, 네가 입어’ 이렇게 얘기하거든요.”물론 그의 대답이 그녀에겐 더 진실성 있게 느껴졌다.“바닷바람이 이렇게 차가운 줄 알았으면 오자고 하지 않았을 텐데.”그가 건넨 외투를 입으니 몸이 순식간에 따뜻해졌다. 그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도 마침 그녀를 보고 있어 두 사람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나도 춥긴 추운데 너처럼 몸을 움츠릴 정도는 아니야. 게다가 긴 팔 셔츠를 입어서 반팔인 너보다 덜 추워.”“그렇게 얘기하니까 그나마 덜 미안하네요.”전태윤이 입을 삐죽거렸다.“내가 추운 게 걱정되면 날 안아도 되는데. 따뜻함을 함께 나누면 안 춥잖아.”하예정은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했다.‘지... 지금 날 꼬시는 건가?’그녀가 아무 말이 없자 전태윤은 그녀가 아예 그럴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아챘다. 그는 긴 다리를 뻗으며 앞으로 걸어갔다.그런데 2분도 채 되지 않아 그녀가 쫓아와 양복 외투를 다시 건넸다. 그러고는 얘기할 틈도 주지 않고 먼저 입을 열었다.“태윤 씨는 나보다
하예정이 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그가 옷을 홀딱 벗고 춤추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전태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도대체 이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있는 거야? 항상 남들과는 다르단 말이지.”하예정이 일부러 말했다.“할머니가 계속 나한테 태윤 씨를 덮쳐서 증손주를 안겨달라고 하시잖아요.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줘야 할지 고민해봐야겠어요.”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태윤은 또다시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아야.”하예정도 더는 참지 않고 복수할 겸 그의 두 볼을 꼬집었다.“하예정.”그녀의 두 손을 잡은 전태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하예정은 장난을 멈추고 그의 그윽한 두 눈을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태윤 씨, 할 얘기 있으면 해도 되는데 정색하지 말아줄래요? 무섭단 말이에요.”“내 말 들어.”“네. 귀 기울이고 듣고 있어요.”“잘지 말지는 사적인 일이고, 우리 둘만의 일이야. 우리 마음이 가는 대로 해야지, 남의 말을 들어선 안 돼!”전태윤은 두 사람의 첫 관계가 할머니의 간섭하에 이뤄지는 걸 원치 않았다. 그때 혼인신고 할 때도 할머니에게 얘기했었다. 이제부터 하예정을 어떻게 대하든 그건 그의 일이니까 더는 간섭하지 말라고 말이다.“그 얘기였군요.”하예정은 긴장을 풀고 그가 잡고 있던 손을 빼고는 걸어가면서 말했다.“농담이에요. 당연히 할머니의 말씀 때문에 그러진 않죠.”그녀도 남녀 사이의 일은 서로 원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전태윤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자신이 옳은 것 같으면서도 또 뭔가를 놓친 것 같았다. 그녀가 그를 덮쳐서 하룻밤을 보낼 기회를 날렸다...하지만 그러기엔 조금 이른 것 같았다. 부부 사이가 아직은 그 정도로 활활 타오르진 않았다. 아까 차에서 그녀의 질문에 한 대답처럼 그녀가 아직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현재 두 사람의 관계를 확인한 후 전태윤은 성큼성큼 걸어가 그녀와 속도를 맞추었다.두 사람은 한 해산물 가게로 와서 야식으로 해산물을 먹기로 했다. 하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