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이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건넸다.“이 옷 덮고 자.”바닷가에서 바닷바람을 맞을 필요가 없어 하예정은 거절하지 않고 그의 외투를 덮었다.전태윤은 혹시라도 그녀가 자는데 방해될까 봐 음악까지 꺼버렸다.그는 묵묵히 운전에 몰두했고 그녀는 단잠에 빠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두 사람이 발렌시아 아파트에 도착했다.경호원들이 아직도 아파트 밑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왜냐하면 도련님이 밤새 그들의 시선을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숙희 아주머니가 사모님의 반려동물과 함께 돌아온 걸 보고 경호원들은 도련님이 사모님과 함께 드라이브 갔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들은 마음이 급했지만 두 사람의 시간을 방해할까 봐 누구 하나 감히 도련님에게 전화를 걸지 못했다.전태윤이 운전하여 돌아온 걸 본 경호원들은 혹시라도 사모님에게 들킬까 황급히 사방으로 흩어졌다. 특히 강일구가 가장 빨리 도망쳤는데 잔디밭에 숨어들 기세였다. 사모님이 그의 얼굴을 알고 있으니 절대 들켜선 안 되었다.전태윤은 경호원들의 반응을 못 본 척했다. 하예정이 생각이 없기에 망정이지, 안 그러면 맨날 집 밑에서 어슬렁거리는 그들을 보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을 것이다.그는 차를 주차한 후 안전벨트를 풀며 하예정을 불렀다.“예정아, 집 다 왔어.”어찌나 깊이 잠들었는지 그가 불러도 듣지 못하고 곤히 자고 있었다. 아무래도 맥주 두 병을 마신 탓인 것 같다.전태윤이 그녀를 살짝 흔들었는데도 몸을 움직이기만 할 뿐 깰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맥주 두 병에 이렇게 곯아떨어진다고? 앞으로는 술 자주 못 마시게 해야겠어.”전태윤은 조수석 쪽으로 걸어가 차 문을 열고 그녀의 안전벨트를 푼 후 품에 끌어안았다.뿔뿔이 흩어졌지만 멀리 가지 않은 경호원들이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비볐다.자신이 목격한 게 사실이라는 걸 안 경호원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피했다.‘그냥 얼른 들어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도련님이랑 사모님 사이가 엄청 좋네.’전태윤은 하예정을 안고 집으로 올라갔다. 현관
전태윤은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그는 하예정의 방 안에서 마치 도둑처럼 살금살금 걸어 다니며 이리저리 뒤졌다. 그런데 그녀가 숨길 수 있는 곳은 전부 다 찾아봤지만 계약서는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대체 어디에 숨긴 거야?’전태윤은 화장대 앞에 서서 화장대를 뚫어져라 내려다보며 조금 전 어느 구석을 뒤지지 않았는지 돌이켜 보았다. 모든 서랍을 다 뒤진 후 그의 시선이 상 위에 머물렀다. 상 위에는 금비녀를 그린 종이 한 장이 놓여있었다. 전태윤이 그 종이를 들었다.‘그림 엄청 잘 그리네? 그나저나 금비녀는 왜 그렸지?’전태윤은 하예정이 왜 금비녀를 그렸는지 그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종이를 뒤집은 순간 종이에 적힌 내용은 다름 아닌 그가 찾던 계약서였다.그녀가 계약서 뒷면에 그림을 그렸을 줄이야. 이러니 곳곳을 다 뒤져도 찾질 못했지.그는 자리에 앉아 곤히 잠든 하예정을 한참 동안 보다가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의 입가에 교활한 미소가 지어졌다.“하예정, 넌 평생 나 전태윤의 아내로 살아야 해!”만약 할머니가 이 자리에 계셨다면 그는 분명 얼굴이 화끈거렸을 것이다. 아내를 쫓아다니지 않겠다던 사람이 지금 몰래 아내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으니 말이다.전태윤은 하예정의 계약서를 훔친 후 기쁜 마음으로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화장실에 숨어서 라이터로 계약서 두 부를 몽땅 태워버렸다. 재가 되어버린 계약서는 변기 물에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하예정이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한 평생 그 계약서를 찾지 못할 것이다....하예진이 잠에서 깨어났을 땐 이미 자정이 훌쩍 넘었다.‘아직 샤워도 못 했는데.’원래는 아들을 재운 후 샤워하려고 했었는데 아들을 재우다가 그만 함께 잠이 들고 말았다. 아들과 한잠 자고 나서야 아직 씻지 않았다는 걸 알아챘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현관 잠금장치를 확인했다. 안으로 잠그지 않은 걸 보니 주형인이 아직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다.“이리 늦었는데도 안 와? 일부러 피하는 거야?”하예진
하예진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서현주가 전화를 받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녀는 바로 통화 화면에서 녹음 버튼을 눌렀다.제부의 친구가 그녀를 도와 주형인의 외도 증거를 모아주면서 그녀에게 그 증거들은 주형인이 정신적으로 외도했다는 증거일 뿐이지, 실질적인 관계가 있었는지는 증명할 수 없다고 했다.지금 이 순간 쓰레기 같은 남녀가 함께 있다고 짐작하여 하예진은 일단 녹음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당신은 누구죠?”그녀가 침묵하는 사이 서현주는 더없이 우쭐거렸다. 하예진은 대본대로 이어나갔다.주형인이 바람피웠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온갖 난리를 피운다면 주형인이 귀찮아서 아들의 양육권도 버리고 그녀와 이혼할 것이다. 그런데 울지도 않고 난리도 피우지 않는다면 주형인은 그녀가 이혼하길 바란다고 생각하여 오히려 더 질질 끌 것이다.“저는 형인 씨의 비서 서현주라고 합니다. 그러는 당신은 누구죠?”서현주가 뻔히 알면서도 물었다.“내가 누구냐고? 형인 씨 와이프다! 형인 씨 어디 갔어? 당신들 지금 어디서 뭐 하는 거야? 당장 형인 씨한테 전화 바꿔!”하예진이 포효하며 분노를 터뜨렸다. 그녀의 분노에 서현주는 자신이 승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서현주는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하여 말했다.“얘기했잖아요. 형인 씨 지금 샤워 중이라 빨리 못 나와요. 오늘 저녁에 술자리가 있다고 형인 씨가 얘기 안 했나요? 전 비서인데 당연히 함께해야죠. 우리 다 술을 마신 바람에 운전할 수 없어서 호텔 방 하나 잡았거든요. 이따가 술이 깨면 다시 가려고 했는데 사모님이 이 늦은 밤에 전화할 줄은 정말 몰랐어요.”서현주의 말이 참 아니꼽게 들렸다.“대리운전이 그렇게나 많은데 아무 대리운전이나 불러서 오면 되잖아. 굳이 호텔에 있어야 해? 두 사람 나 몰래 무슨 짓 했어? 말해! 당장 말하라고! 남편이 밤늦게 안 들어왔는데 전화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내가 전화하면 네가 어쩔 건데? 그건 형인 씨 와이프인 나의 자유야. 너 같은 외부인이랑 무슨 상관인데?”
서현주는 하예진이 아들을 챙겨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시간에 아들 혼자 집에 두고 불륜 현장을 잡으러 호텔에 간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예정이한테 전화할까?’하예진이 망설였다.‘이 시간에 자는 사람 깨워도 괜찮나?’잠깐 머뭇거리던 하예진은 주형인이 외도했다는 증거를 잡을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결국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맥주 두 병 마시고 깊이 잠든 하예정은 전태윤이 방까지 안고 올라왔다는 것도 몰랐다. 하예진이 걸어온 전화벨 소리를 듣고 나서야 겨우 잠에서 깼다. 휴대전화를 꺼낸 그녀는 발신자를 확인하지도 않고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세요?”“예정아, 나 언니야.”“언니, 무슨 일이야?”겨우 정신을 차린 하예정은 그제야 언니가 형부에게 이혼 얘기를 꺼낸다는 일을 떠올렸다. 부부가 또 싸운 줄로 오해한 그녀는 잠도 채 깨지 못하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언니, 왜 그래? 혹시 주형인이 또 언니 때렸어?”“그 사람 아직 집에 안 들어왔어. 저녁에 술 약속 있어서 늦게 들어온다고 했거든. 그런데 새벽 한 시가 거의 되는데도 안 와서 전화하니까 글쎄 서현주가 받는 거야. 두 사람 지금 같이 있어.”“언니 잡으러 가려고?”역시 친자매라 그런지 하예정은 언니의 생각을 단번에 알아챘다.“도둑을 잡으려면 훔친 물건을 잡으라고 했어. 불륜 현장을 제대로 잡아야 나도 떳떳하지.”“그 사람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알아. 서현주가 어찌나 시건방을 떠는지 호텔 주소까지 보내더라고. 예정아, 나 혼자 가면 돼. 너 우리 집 와서 우빈이 좀 봐줄 수 있어? 내가 나간 다음에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울까 봐 그래.”“언니, 나랑 같이 가자.”“괜찮아.”“언니, 거긴 두 사람이고 언니 혼자 가서 난리 치면 당할 게 뻔해. 호텔 주소 나한테도 보내, 같이 가자. 내가 언니보다 드세서 충분히 그 두 사람 이길 수 있어.”그러자 하예진이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예정아, 언니를 믿어. 언니 할 수 있어. 일단 끊을게. 난 나갈
하예정은 얘기하면서 열쇠 꾸러미에서 열쇠 하나를 뺀 후 전태윤에게 건넸다.“이건 언니 집 키예요.”전태윤의 두 눈이 반짝였다. 주형인이 술자리에 참석한다는 걸 전태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소정남에게 주형인이 외도한 증거를 모으라고 했다. 증거를 찾은 소정남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사람까지 붙여서 몰래 주형인의 뒤를 밟고 있었다.하여 주형인이 회사만 나서면 소정남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샅샅이 알고 있었다.저녁에 전태윤과 하예정이 같이 있을 때 소정남은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주형인과 서현주가 실질적인 관계를 갖도록 부추긴 후 주형인이 가정을 배신했다는 증거를 잡을 계획이었다.그러면 하예진이 이혼 얘기를 꺼냈을 때 도덕적으로도 우세를 차지하게 된다.지금 주형인과 서현주가 같이 있다면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발전한 걸까? 아니면 전태윤이 부추긴 결과일까?전태윤도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결과는 다 똑같았다.“어느 호텔에 있는지 알아?”“언니가 안 알려줘요. 오지 말래요.”하예정은 답답하기만 했다. 그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언니는 오히려 동생을 밀어내고 스스로 해결하려 했다.“내 친구한테 전화해서 알아보라고 할게.”“이 늦은 시간에...”“괜찮아. 다음날에 내가 밥 한 끼 사주면 돼.”소정남에게 휴가 하루를 더 주면 그만이다.“예정아, 아직 가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네 차 키도 줘. 내가 아주머니 깨워서 우빈이 챙기러 처형 집에 가라고 할게. 넌 나랑 같이 처형 찾으러 가자.”전태윤의 당부에 하예정은 차 키를 그에게 건넸다. 차 키를 건네받은 전태윤은 숙희 아주머니의 방문을 노크하며 소정남에게 전화를 걸었다.저녁형 인간인 소정남은 늦게 자고 아침 늦게 깨났다. 재미있는 볼거리가 있을 때만 일찍 회사에 나오지, 안 그러면 전태윤보다도 늦게 출근했다.전태윤이 전화했을 때 소정남은 여전히 정신이 활기에 차 있었다.“주형인 지금 어디 있어?”전태윤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성씨 그룹 계열사인 호가 호텔에 있
전태윤은 문을 잠근 후 하예정을 잡고 걸어가며 말했다.“내 친구가 알아봤는데 네 형부 지금 호가 호텔에 있대. 거긴 성씨 그룹 산하의 호텔이야. 내가 전씨 그룹에 출근해서 아는데 두 그룹이 라이벌 관계야. 혹시라도 성씨 그룹에서 내 얼굴을 알아볼까 봐 검게 칠했어. 이러면 못 알아볼 거야.”하예정은 그가 그린 모반을 힐끔거렸다. 이 급한 와중에 그 생각까지 하다니, 참으로 세심한 사람이었다. 전씨 그룹에 출근하는 사람은 역시 달랐다.하예정은 이젠 할머니의 말을 완전히 믿게 되었다. 할머니가 그녀 앞에서 전태윤의 칭찬을 늘어놓을 때 전태윤이 아주 세심한 남자라고 했었다. 물론 그가 다정하게 대하고 싶은 사람에게만 세심한 모습을 보여준다.“그럼 갔다 와서 비누로 씻어요.”문구 서점을 운영하는 하예정은 피부에 묻은 펜을 지우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전태윤은 갔다 와서 하예정더러 깨끗하게 씻어달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다시 삼켜버렸다.이런 상황에 할머니와 소정남이 옆에 있었더라면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그 입은 장식으로 달아놓은 거야? 제 앞의 말도 못 해?”“전 대표, 용기 있게 얘기해!”하예정 부부와 숙희 아주머니는 각자 할 일을 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서현주는 하예진과 통화를 마친 후 욕실 문을 두드렸다.주형인이 문을 열자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한참이 지나서야 욕실에서 나왔다. 주형인이 서현주를 안고 나왔는데 그녀의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두 사람이 욕실에서 무엇을 했는지 다 알 것이다.침대에 누운 서현주는 주형인의 품에 안긴 채 갑자기 말했다.“형인 씨, 까먹을 뻔했네요. 아까 형인 씨 와이프가 전화 와서 내가 받았는데 당장 집으로 오래요. 설마 우리 관계 의심하는 건 아니겠죠?”그녀의 말에 주형인이 그녀를 밀어내며 벌떡 일어나 앉더니 두 눈을 부릅뜨고 조급하게 말했다.“그걸 왜 인제야 얘기해?”그의 태도에 기분이 언짢아진 서현주가 속상한 척했다.“아까 얘기하려고 욕실 문 두드
서현주가 주형인의 가슴팍에 기댄 채 간사한 목소리로 말했다.“형인 씨, 미안해요. 그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난 급한 일일까 봐 받은 거예요.”“괜찮아.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잖아, 우리 사이 언젠가는 그 사람한테 얘기하려고 했어.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의심하기 시작했으니 이참에 집에 가서 다 밝힐 거야.”주형인은 서현주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었다. 그의 마음은 오래전부터 서현주에게 빼앗겼고 하예진에게는 그 어떤 정도 남질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부모님과 아들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 참았던 것이었다. 안 그러면 하예진을 진작 내쫓고도 남았다.“형인 씨, 두 사람 이혼하면 와이프가 형인 씨 재산을 나눠 가져요?”서현주는 하예진이 주형인의 재산 절반을 가져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하예진을 일전 한 푼 없이 빈털터리로 내쫓고 싶었다.하예진이 직장을 떠난 지 오래된 데다가 아이도 고작 두 살 남짓이라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기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때가 되면 하예진의 초라한 모습을 보게 된다. 어쩌면 하예진이 아이를 업고 길바닥에서 구걸하는 모습을 볼지도 모른다.주형인이 싸늘하게 웃었다.“걔가 갖고 싶다면 내가 줘야 해?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 걔가 이 집안에 일전 한 푼이라도 보태줬어? 집도 결혼 전에 내가 대출해서 샀고 결혼 후에도 나 혼자 대출금을 갚았어. 이 집 절대 못 나눠줘. 아, 이 집 인테리어 비용 조금 냈네. 아무튼 난 인테리어 비용 돌려줄 돈이 없으니까 타일이라도 뜯어가라지, 뭐. 그리고 적금은...”그가 사장 자리에 앉은 것도 2년밖에 되질 않았다. 수입이 예전보다 몇 배는 늘었지만 지출도 그만큼 많은 데다가 서현주에게 비싼 선물까지 자주 해주다 보니 얼마 모으지 못했다. 적금이라 해봤자 고작 4천만 원도 되나마나 했다.그런데 부수입이 훨씬 더 많았다. 회사에 들키지 않으려고 그는 늘 현금으로 받은 후 아버지의 주민등록증으로 은행에 가서 카드 한 장을 만들어 그 카드에 돈을 넣었다. 카드
주형인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뭐라 속삭이자 서현주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다행히 그래도 잔머리는 있네.’그와 결혼하면 무조건 행복을 누리면서 살 거라는 생각에 서현주는 마음이 놓였다. 물론 완전히 경계심을 늦춘 건 아니었다. 나중에 결혼한 후 월급은 그녀가 관리하고 집문서에도 그녀 이름을 넣겠다고 약속했으니 반드시 그대로 이행하게 할 것이다. 아무튼 하예진보다 훨씬 누리면서 살겠다고 마음먹었다.“예진한테 일전 한 푼 안 주고 빈털터리로 내보내려면 사실 엄청 쉬워.”“어떻게요?”주형인의 명의로 된 적금이 얼마 되진 않지만 나눠주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다면 무조건 시도해볼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서현주가 그 돈으로 더 누릴 수 있으니까.“재산을 가질 건지, 우빈이 양육권을 가질 건지 둘 중에서 택하라고 하면 돼. 그러면 무조건 우빈이를 선택하고 재산 분할은 포기할 거야.”그의 말에 서현주가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형인 씨 아들의 양육권을 포기할 수 있어요? 우빈이는 주씨 가문의 유일한 손자잖아요. 형인 씨가 포기한다고 해도 형인 씨 부모님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주형인이 말했다.“우빈이는 내 아들이야. 절대 포기 못 해.”서현주가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그런데 왜 그런 소리를 해요!”주형인이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했다.“만약... 네가 아들을 가진다면 우리 부모님도 우빈이를 예진한테 보내라고 하실 거야.”두 사람은 인제야 관계를 했고 게다가 서현주는 이따가 피임약을 사서 먹을 생각이었다. 그 말인즉슨 아직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현재 그에게는 아들 주우빈 뿐이었고 남존여비 사상이 남아있었다. 하여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주우빈의 양육권을 하예진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주우빈은 영특하고 귀여운 아이인데 그와 서현주의 아이는 어떨지 누가 알겠는가? 주형인은 아직 그 도박은 하고 싶지 않았다. 서현주가 나중에 딸을 낳을 수도 있기에 주우빈의 양육권은 반드시 그가 가져야 했다.“내가 딸 낳으면 미워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