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누나니까 이렇게 불러내서 말하는 거잖아. 설사 예정이가 널 좋아한다고 해도 너희 두 사람 내가 허락 못 해.”“왜?”“네 가족 때문이지. 고모가 어떤 사람인지 나 누구보다 잘 알아. 네가 예정이 좋아하는 거 너희 엄마가 알면 계속 친절하게 예정이를 대할 것 같아? 갖은 수단으로 너희 두 사람 갈라놓을 거야. 예정이한테 더 한 짓도 꾸밀 수 있어. 고모는 상류층에서 20여 년간 지내면서 일찌감치 안하무인 격이 되었어. 넌 고모의 유일한 아들이라 고모의 희망이자 김씨 집안에서 내정된 후계자야. 너한테 기대가 엄청 클 거라고, 틀림없이 재벌 가문과 정략결혼을 맺어줄 거야. 예정이도 엄청 훌륭하지. 하지만 출신이 가장 큰 약점이야. 고모는 날 봐서 예정이를 조카처럼 예뻐하셔. 일단 네가 연루되는 날엔 누구보다 매정하게 변할 거야. 예정인 절대 고모가 바라는 신붓감이 아니야.”심효진의 말은 예리한 칼날처럼 김진우의 정곡을 찔렀다.“진우야, 네가 예정이를 좋아하는 건 걔한테 아무런 도움이 못 돼. 재앙만 안겨줄 뿐이야. 난 너의 사촌 누나야, 네가 사랑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걸 못 보겠어. 예정이도 내 단짝이야. 소중한 친구가 내 가족에게 상처받는 것도 싫어. 그러니까 네가 내려놔. 예정이는 너랑 안 어울려. 널 사랑할 리도 없고. 두 사람 알고 지낸 지 십몇 년째야. 걔는 나랑 함께 네가 커가는 걸 지켜봤단 말이야. 널 동생으로만 생각해. 누나가 어떻게 동생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겠어? 너 마음 안 접으면 이대로 가다가 결국 상처받는 건 너 자신뿐이야.”김진우의 낯빛이 더욱 창백해졌다.그의 생각은 아주 단순했다. 하예정을 무척 사랑하고 엄마도 그녀를 엄청 좋아하는 것 같아 보였을 뿐 더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예정이는 예진 언니 집에서 나오기 위해 결혼을 서둘렀어. 예진 언니가 줄곧 예정이를 걱정했거든. 그래서 예정이도 언니를 안심시키느라고 전태윤 씨랑 초고속 결혼을 한 거야. 예진 언니는 아마 두 사람이 정말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줄로 알 거
심효진은 굳은 표정으로 진지하게 물었다.“너 그럼 예정이랑 태윤 씨 갈라놓을 작정이야? 김진우, 누나는 너 얕보고 싶지 않아!”김진우는 괴로운 얼굴로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그는 좀처럼 이 감정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다만 하예정에게 상처 주는 일도 차마 할 수 없었다.심효진은 사촌 동생을 바라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진우야, 누난 이미 충분히 얘기한 것 같아. 일단 마음 좀 가라앉히고 누나 가게에 가지 않도록 잘 단속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져. 시간이 다 해결해줄 거야.”말을 마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커피는 내가 살게. 이젠 가게로 돌아가야 해. 너도 얼른 회사 가. 지금 한창 배우는 단계라 누구보다 열심히 해야지. 너희 김씨 집안에 너만 있는 게 아니야. 방심하다가 네 몫까지 다 뺏기는 수가 있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심효진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김진우는 자리에 앉은 채로 멍하니 넋을 놓아버렸다.애초에 하예정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는 고백할 용기가 없어 딴 사람에게 기회를 빼앗겨버렸다. 심효진이 가게로 돌아오자 우빈이가 잠에서 깼다.하예정은 공예품을 만들고 있었고 우빈은 옆에 앉아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효진은 묵묵히 친구를 바라봤다.예정은 얼굴도 예쁘장한 데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전념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진우가 좋아할 만했네.’“효진아, 왜 그렇게 보고 있어? 나한테 푹 빠진 거야?”심효진이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남자면 무조건 널 좋아했을 거야. 예정이 너 엄청 매력적인 거 모르지?”“매력은 무슨, 결혼 전엔 제대로 된 남자친구도 못 사귀어봤어.”“그건 네가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잖아.”심효진이 의자를 빼내고 카운터 앞에 앉았다.“요즘 온라인 스토어 장사 잘 되나 봐. 매일 한가할 때마다 공예품 만드는 걸 보니.”“태윤 씨랑 태윤 씨 남동생이 홍보해줬거든. 회사 직원이 많다 보니 주문량도 엄청 많더라고. 그리고 소현 씨도 홍보해줬어. 그쪽 업계에는 전부 돈
하예정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나 적응 안 돼요, 태윤 씨. 나한테 할 얘기 있죠?”전태윤이 대답했다.“오늘 저녁 약속 취소됐어. 우리 함께 쇼핑할래?”처음 꽃 선물을 할 땐 어쩔 바를 몰랐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먼저 나서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전태윤은 저녁에 아내와 함께 쇼핑하기로 했다.하예정은 잠시 고민한 후 대답했다.“나 이따가 우빈이 데리고 언니 퇴근 마중 가야 해요. 괜찮다면 우리 함께 가서 밥 먹고 쇼핑할래요?”“너희 언니 야근해?”“아까 문자 왔는데 출근 첫날은 야근 안 한대요. 5시 30분에 퇴근이래요.”전태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그래, 좀 있다가 데리러 갈게. 우리 함께 너희 언니 회사로 가. 내가 밥 사줄게.”“좋아요.”“그래, 그럼 이만 끊을게.”“네.”전태윤은 바로 전화를 끊지 않았다. 그는 하예정이 달콤한 말을 하길 기다렸다.하지만 전화기 너머로 하예정이 물었다.“태윤 씨, 더 할 얘기 있어요?”“아니, 없어. 그럼 진짜 끊을게.”하예정은 알겠다고 대답한 후 바로 전화를 끊었다.휴대폰을 내려놓자 옆에서 심효진이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웃었다. 하예정은 그녀의 이마를 살짝 내리치며 물었다.“왜 웃어?”“예정아, 너 태윤 씨랑 제법 가까워졌는데? 태윤 씨도 너한테 무척 마음 쓰는 것 같아. 두 사람 잘해봐. 결혼식도 올려야지.”혼인신고는 했으나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고 정식으로 공개하지도 않았다. 그들과 가장 가까운 일부 사람들만 두 사람이 부부 사이란 걸 알고 있다.“차차 해나가야지 뭐.”하예정은 일부러 전태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다만 전태윤이 적극적으로 나서도 그녀는 회피하지 않았다.그녀가 먼저 마음을 주지 않는 이유는 전태윤이 진심을 몰라주고 결국 그녀만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서였다.전태윤이 먼저 다가오고 하예정도 피하지 않으니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면서 사랑의 결실을 맺을 것이다.“이모.”혼자 놀다 지친 우빈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하
전태윤은 아내와 저녁에 함께 쇼핑하자고 얘기한 이후로 기분이 한결 좋아지고 업무 효율도 높아졌다.밖에서 노크하고 그의 목소리를 들은 소정남도 그가 기분이 좋다는 걸 바로 알아챌 지경이었다.소정남은 문을 열고 혼자 들어온 게 아니라 예준하와 함께 들어왔다.예준하의 경호원들은 사무실 밖에서 대기했다.“대표님, 예 대표님 오셨습니다.”전태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빙 돌아서 앞으로 나갔다.“어서 와요, 예 대표님.”두 사람은 악수를 마친 후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좀 전에 조 비서가 그에게 예준하가 올 거라고 보고하긴 했지만 소정남과 함께 올 줄은 미처 몰랐다. 아마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듯싶었다.소정남은 예준하에게 물 한 컵 따라주었다.예준하가 물을 마신 후 전태윤이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로 물었다.“대표님, 우리의 협력에 무슨 차질이라도 있는 건가요?”예준하와 같은 고급 파트너는 예약할 필요 없이 언제든지 전태윤을 만날 수 있다. 다만 예준하는 줄곧 소정남과 연락이 잦았는데 이번엔 바로 그의 사무실에 찾아왔기에 전태윤은 두 회사의 협력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의심됐다.예준하가 웃으며 대답했다.“전 대표님, 협력엔 아무 이상 없어요. 아주 잘 진행되고 있죠. 이번에 저희 형님과 형수님의 청첩장을 대표님께 전해드리려고 이렇게 찾아뵈었어요.”전태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예 대표께서 결혼식을 올린다고요? 만성 남씨 가문의 일은 다 해결됐나요?”“금방 끝났어요. 저희 형수님이 만성에서 돌아와 선우 대표님의 결혼식에 참석했어요. 두 사람의 결혼 날짜는 진작 정했어요. 저희 형수님의 친정 오빠 결혼식을 마치면 형수님도 결혼식을 올릴 거예요. 그러니 이 청첩장도 이젠 드릴 때가 되었죠.”예준하는 말하면서 큰형이 부탁한 청첩장을 꺼냈다. 다른 협력 업체라면 예준성은 택배 형식으로 협력 파트너에게 청첩장을 보낼 테지만 예준하가 마침 A시에서 관성으로 왔고 관성의 지사는 그가 전부 책임지고 있으며 대부분 시간을 관성에서
“안 그래도 진작 예 대표님을 만나 뵙고 싶었는데 이런 좋은 기회가 생겼네요.”예준하가 웃으며 말했다.“저희 형님도 전 대표님을 만나 뵙고 싶어 하세요.”다들 격식대로 인사치레를 나눴다.예준하는 형을 대신해 전태윤에게 청첩장도 드렸으니 더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그도 무척 바쁜 사람이니까.“전 대표님, 소 이사님, 저는 그럼 볼일이 있어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녁에 시간 되시면 함께 식사나 할까요? 제가 사드리겠습니다.”소정남이 웃으며 말했다.“저는 언제든지 시간 되지만 저희 대표님께서 너무 바쁘세요.”전태윤이 말했다.“나중에 한 번 식사 대접할게요.”오늘 저녁엔 아내와 함께 데이트를 해야 한다.예준하가 웃으며 답했다.“그래요, 그럼 대표님 연락만 기다리겠습니다.”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전태윤과 소정남도 일어나 그를 사무실 문밖까지 배웅해주었다.“다음에 또 만나요, 전 대표님, 소 이사님.”예준하는 문 앞에 서서 두 분더러 이만 들어가 보라고 인사를 올렸다.전태윤과 소정남은 사무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고 예준하는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리를 떠났다.그가 떠난 후에야 소정남이 편하게 말을 놨다.“저녁에 뭐 하러 가는데? 미팅은 죄다 나한테 밀고 예 대표님 식사 약속도 거절해? 태윤아, 아무래도 난 전생에 너한테 지은 죄가 많아서 이번 생에 목숨 걸고 갚는 것 같아. 네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오잖아.”전태윤이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넌 나한테서만 가치를 발휘할 수 있어. 내가 준 무대에서만 매혹적인 춤사위를 펼칠 수 있잖아.”소정남은 싱글벙글 웃으며 사무실 문을 닫았다.“예진 씨랑 데이트하는 거지?”“그래, 데이트한다, 왜? 가서 훼방 놓으려고? 아니면 질투나 죽겠어? 너한테도 맞선자리 알아봐 줄까? 너도 초고속 결혼해!”소정남이 얼른 대답했다.“나 그 정도 눈치는 있어. 훼방을 놓다니. 비록 훼방 놓을 생각은 있지만 너의 행복을 위해서 꾹 참을게. 질투까지는... 아직 아니야. 너도 지금 썩 행복해 보이진 않아.
“나도 물론 현장엔 없었지만 사람들한테 전해 들었어. 그때 심효진 씨를 데리고 연회에 참석했던 김 사모님은 좌불안석이 되어서 얼른 효진 씨를 밖으로 끌고 나갔대.”전태윤은 말문이 턱 막혔다.하예정은 그에게 심효진의 집에서 결혼을 엄청 다그친다고 얘기했었고 지난번엔 선보러 소이 카페까지 함께 갔었다고 했다.심효진이 도 사모님 생일 파티에서 혹시 일부러 그런 건 아닐까? 그런 짓을 벌이면 집에서 더는 그녀의 결혼을 다그치지 않을 테니까.“심효진 씨가 벌러덩 누우니 장내가 떠들썩해졌대. 이 바닥 사람들 거의 다 전해 들었을 거야.”소정남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이쪽 업계 여자들 아무리 만취해도 절대 효진 씨처럼 바닥에 드러눕진 않잖아. 재벌가 출신이라 뼛속부터 고고함이 흘러넘쳐. 취한다 해도 우아하게 취하지.”전태윤이 잠시 침묵한 후 그에게 물었다.“그럼 넌 우아하게 취하는 여자가 좋아 아니면 안하무인 격에 제멋대로인 여자가 좋아?”“이 문제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 다만 네가 정말 선 자리를 주선하겠다면 나도 한번 심효진 씨를 만날 의향은 있어. 안목이 얼마나 높은지 꽤 궁금하네. 알지? 사전에 내 진짜 신분 밝히지 않는 거.”“나 따라 하는 거야?”“왜? 그럼 안 돼?”전태윤이 웃으며 말했다.“나야 오케이지. 그럼 오늘 밤에 와이프한테 말해서 효진 씨한테 물어보라고 할게. 효진 씨가 동의하면 두 사람 내가 주선하지. 너도 인제 그만 날 부러워하고 결혼해야지 않겠어?”소정남은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그는 진짜 단 한 번도 부러워한 적이 없었다.전태윤은 중요한 서류 몇 부에 서명을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정남에게 말했다.“나 퇴근해. 전씨 그룹이 망하지 않는 한 오늘 밤엔 절대 연락하지 마. 알겠어?”소정남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겨우 오후 4시인데?!’그는 전태윤을 따라가며 투덜거렸다.“태윤아, 너 시계 안 봐? 지금 4시밖에 안 됐어. 퇴근하려면 아직 한참이라고. 전에는 이러지 않았잖아. 새벽 12시가 다 돼서야 집에 갔
하예정이 가장 신경 쓰는 사람은 바로 그녀의 언니와 조카 우빈이었다.그러니 전태윤이 우빈을 잘 챙겨주면 점수를 더 벌 수 있다.간식거리는... 예정이가 먹보니까.꽃 선물을 썩 반가워하지 않더라도 간식을 한가득 선물하면 분명 웃음꽃이 만개할 것이다.전태윤은 왼손에 간식 봉투를 들고 오른손엔 비행기 모형의 장난감을 든 채로 가게에 들어갔다. 그 시각 하예정은 마침 조카에게 죽 한 그릇 다 먹여주었다.“이모부.”아이는 전태윤을 보더니 방긋 웃었다.하예정은 남편이 사 온 장난감을 보면서 말했다.“태윤 씨, 또 우빈이 장난감 샀어요? 효진이가 금방 새것 사줬는데...”전태윤은 간식 봉투를 그녀 앞에 내려놓고 장난감 비행기를 우빈에게 건네면서 아이를 안아 올렸다.“조카가 우빈이 한 명뿐인데 얘를 안 예뻐하면 누굴 예뻐하겠어? 효진 씨가 산 건 효진 씨가 산 거고 내가 산 건 내 마음이야.”하예정은 그릇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고개 숙여 봉투를 들여다봤다.“간식들이네요? 뭘 이렇게 많이 샀어요?”“우빈이가 여기서 지루해할까 봐 군것질할 것 좀 샀어.”분명 그녀를 위해 산 간식이지만 정작 그녀 앞에 서니 전태윤은 또다시 우물쭈물했다. 결국 그는 우빈을 핑곗거리로 둘러댔다.“태윤 씨, 이러다 우빈이 버릇 나빠져요.”하예정은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우빈이는 똑똑하고 착해서 우리가 제대로 가르치면 올바른 어린이로 클 거야. 버릇 나빠질 리 없어.”하예정이 빤히 쳐다보자 전태윤은 수줍은 듯 귓불이 서서히 빨개졌다.“태윤 씨 왜 이렇게 말이 많아졌어요?”전태윤은 말문이 막혔다.‘뭐야?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내가 말이 많다고? 할머니는 내가 말주변이 없다고 잔소리하시고, 와이프란 사람은 말 좀 몇 마디 하니 괜히 말 많다고 탓하는 거야?’이때 심효진이 화장실에서 나오며 전태윤을 보더니 반갑게 인사하고는 예정에게 말했다.“예정아, 예진 언니 퇴근할 때 되지 않았어? 우빈이도 배불리 먹었겠다, 얼른 애 데리고 태윤 씨랑 함께 예진 언니 마중하러
“아 참.”하예정이 문득 반려동물을 떠올리며 전태윤에게 물었다.“봄이랑 애들은 어떡하죠? 함께 데려가요?”“봄이?”전태윤의 눈빛이 확 어두워졌다.‘봄이는 또 누구야?’“태윤 씨가 준 반려견 말이에요. 내가 봄이라고 이름 지어줬어요.”그제야 전태윤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강아지였네. 난 또 그새 라이벌이라도 한 명 더 생긴 줄 알았네.’“예정아, 너 불편하면 봄이 가게에 남겨둬. 내가 퇴근하고 우리 집으로 데려갈게. 내일 다시 데려오면 되잖아. 우리 집에도 반려동물 있으니 내가 잘 챙길게. 걱정하지 마.”하예정이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그럼 봄이는 가게에 둘게.”그녀는 심효진을 안으며 칭찬을 남발했다.“효진아, 나한텐 역시 네가 최고야!”심효진이 그녀를 가볍게 밀치며 웃었다.“뭘 새삼스럽게. 우리가 알고 지낸 지가 몇 년인데. 얼른 가봐. 태윤 씨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하예정은 그제야 시름 놓고 전태윤과 함께 나갔다.“예정아, 네 차는 여기 둬. 내일 아침 내가 바래다줄게.”전태윤은 차 문을 열고 주우빈을 차에 앉히면서 그녀에게 말했다.“그러죠 그럼.”하예정도 흔쾌히 동의했다. 어차피 그의 차는 7인승 미니밴이라 실내가 넓고 편안했다.전태윤의 차에 어린이 안전 의자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하예정은 조카를 앉고 뒷좌석에 앉았다.전태윤도 더 말리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내일 무조건 박 집사에게 분부하여 어린이 안전 의자를 설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되면 다음부터 우빈이는 단독으로 어린이 안전 의자에 앉고 하예정은 그의 곁에 앉을 수 있으니까.그들 부부는 주우빈을 데리고 곧게 노씨 그룹으로 향했다.노씨 그룹에 도착하자 마침 퇴근 시간대라 직원들로 붐볐다.몇 분 기다린 후에야 하예진이 모습을 드러냈다.하예정이 미리 마중 오겠다고 문자를 보낸 덕에 하예진은 퇴근하자마자 밖으로 나왔다.다만 아침에 강제로 다섯 바퀴 달린 탓인지 두 다리가 아직도 후들거렸다.줄곧 운동하지 않다가 갑자기 강제로 다섯 바퀴나 달리자 하예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
여운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전이진을 대신하여 은행카드만 보관할 뿐일 것이었다. 그가 돈 쓰는 것을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도 그의 돈을 쓸 일이 없을 테였다.전이진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보면서 벙글벙글 웃었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했다.“왜 계속 날 보면서 웃어요?”“좋으니까. 운초 씨, 나 지금 너무 좋아. 그냥 웃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아?”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또 웃었다.그러는 전이진을 지켜보는 여운초도 참지 못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둘이서 한참 동안 알콩달콩한 후 전이진이 시계를 보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는 약혼녀를 보면서 말했다.“운초 씨, 엄마가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우리 지금 출발해. 우리가 구청에 도착하면 아마 엄마도 도착하실 거야.”그는 꽃집에 가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 했다.여운초가 불시에 결혼 신고하자는 바람에 그가 아직 준비는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다.꽃다발, 다이아몬드 반지 둘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여길 여자임으로 절대로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그래요.”그가 일어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여운초도 편안하게 자신의 손을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에게 이끌려 일어섰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자고로‘그대의 손만 잡고 이생의 끝까지 살아간다.’라고 했다.그녀는 전이진과 백년해로하고 평생 금실이 좋기를 원했다. 시부모님처럼 애들이 부러울 정도로 몇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첫 사람처럼 달콤하게 지내길 원했다.여운초는 저의 집에 있는 차를 안 타고 전이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그녀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그녀가 16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를 딸수 없었던 것이었다.집에 있는 운전기사는 전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호원인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운전도 해줄 수 있었다.20분 뒤.구청 입구명해
“운초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전이진은 약혼녀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명해은은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엄마, 오늘 시간 돼요?”“이제 방금 일어났어. 오늘은 별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 왜? 아들, 엄마 도움이 필요해?”명해은이 잠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들이 다 크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애들한테 더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명해은은 너무 일찍 맛봤다.“저와 운초 씨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려 하는데 제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안 가져왔어요. 엄마 혹은 아버지가 지금 저한테 가져다줄 수 있어요?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보내줘도 되고요. 제가 돌아가서 가져오면 시간이 지체되어 아마도 오후나 돼야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후까지 못 기다리겠어요.”가족관계등록부만 손에 가지고 있다면, 전이진은 지금이라도 여운초를 데리고 혼인 신고하러 갔을 테였다.진정으로 여운초가 좋아진 그 시각부터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때의 여운초는 앞을 보지 못했기에 훌륭한 전이진을 앞두고 자비감에 모대기었다. 전이진의 사랑마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받아들인 것이었다.그녀는 전이진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정 선생을 찾으러 여러 번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인생을 그와 함께하기로 하고 약혼을 한 것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볼 수 있을 때 가서 결혼하기를 원했다.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전이진이 곧 시어머니로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은 여운초의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이 사람 뭐가 그리 급해...’이 반가운 소식을 들은 명해은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있고말고, 엄마 시간은 남아돌고 있으니 금방 가져다줄게. 넌 지금 여씨 저택에 있니? 아니면 회사에 있니?” “저는 지금
그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믿었다. 그는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인품, 일하는 스타일 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나는 이혼 따위는 할 마음이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당신처럼 훌륭한 남자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좋고, 당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 결혼은 할머니가 강요하셔서 한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니 어쩌니 해도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했다.“넌 아직도 바깥사람들이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 전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아내한테 일편단심이야. 전씨 집안의 가훈에는 결혼 후 한평생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혼인에 충실해야 하며 바람을 피워선 안 되고 이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어.”“누구든 가훈을 어기는 즉시, 전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전씨 일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돼버려.”“그리고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가 강요하셔도 소용없어.”전이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누구한테 전화하려고요?”여운초는 그가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려나 싶어서 한마디 물었다.“내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아.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내 가족관계등록부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급히 가져다 달라 하면 우리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 절차를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아.”결혼 증명서를 받고 나면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것이었다.전이진은 여태 자기가 한시 급히 여운초랑 결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애초에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그를 볼 수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끝내 그녀의 눈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또 법을 어기는 일까지 했다.비록 모든 불법적인 장사는 이미 압류당했고 관련된 금액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액이 바닥을 쳤으며 여씨 그룹의 재산도 많이 수축했다.큰누나가 여씨 그룹을 이어받은 후, 한동호 형님과 힘을 합쳐 천신만고 끝에 여씨 그룹을 이끌고 이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이런 얘기를 큰누나는 그한테 한 적 없었지만, 그는 한동호 형님과 매형을 통해서 알게되었다.비로소 그는 큰누나의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 속에 얼마나 많은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비록 큰누나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의 부모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큰누나의 대의멸친을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이해만은 할 수 있었다.현재 여씨 그룹은 큰누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큰누나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자기가 가져야 할 재산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지만,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재산은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고. 그가 물려받아야 할 재산은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었다.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그와 둘째 누나 단둘의 소송일 것이었다.큰누나는 단지 여천우 부모님에게 속하는 재산만 그에게 돌려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그와 둘째 누나밖에 없으니 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상대는 그일 수밖에 없었다.“누나, 나 먼저 수업 들으러 들게. 수업이 끝나는 대로 휴가 내서 돌아갈 테니 그때 천천히 얘기해.”“알았어, 얼른 가서 수업 봐.”동생과의 통화를 마친 여운초는 동생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의 물건들을 그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여운별 방의 물건은 여운초가 기분을 봐서 언제든 연락하여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와 여운별은 남남일 것이었다.“아가씨,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여운초는 알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