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심효진은 구석진 자리를 골라 앉았다.김진우도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뭐 마실래, 진우야?”“아무거나. 누나 뭐 마실래? 난 누나랑 같은 거로 할게.”심효진이 종업원에게 말했다.“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누나, 아메리카노 맛없어.”심효진이 힐긋 노려보자 김진우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아메리카노 좋지.”두 사람이 주문한 커피가 올라온 후 심효진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진우야, 너 예정이 좋아하지?”김진우가 흠칫 놀라더니 심효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누나...”“솔직하게 대답해!”심효진이 명령 조로 쏘아붙였다.이에 김진우의 두 볼이 점점 더 빨개졌다.그는 속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누나, 그게 말이야... 맞아. 나 예정 누나 좋아해.”“언제부터였어?”김진우가 나지막이 대답했다.“나도 잘 모르겠어. 아마 14살쯤 사랑에 눈뜨기 시작했을 때였을 수도 있고, 17, 18살 때였을 수도 있어.”심효진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그렇게나 오랫동안 짝사랑해왔단 말이야?”‘녀석, 꽤 오래 숨겼네.’심효진과 하예정은 아예 모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줄곧 김진우를 동생으로만 여겼다. 김진우는 그들보다 세 살 어렸으니까.김진우의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진우야, 그 마음 접는 게 좋을 거야. 예정이는 널 좋아할 리 없어. 줄곧 너를 동생으로만 여겨왔어. 전에는 솔로라서 괜찮았지만 이젠 결혼까지 했어...”“누나, 예정 누나랑 남편분 계약 결혼이라고 하지 않았어? 6개월 뒤에 이혼하기로 했잖아.”심효진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그 두 사람 무슨 이유로 결혼했든 예정이는 이젠 유부녀야, 누군가의 아내라고. 너 허튼 생각 하지 마. 내연남이라도 될 셈이야 뭐야?”김진우는 썩 달갑지 않았다.“내가 먼저 예정이 누나 알았어.”“사랑은 선착순이 아니야. 지난번에 예정이가 너 밥 사줄 때, 네가 좋아하는 음식이 예정이 앞에 있어서 걔가 너한테 딱 한 번 집어줬잖아. 예정이 남편이 그걸 보고 오해해서 두 사람
“네 누나니까 이렇게 불러내서 말하는 거잖아. 설사 예정이가 널 좋아한다고 해도 너희 두 사람 내가 허락 못 해.”“왜?”“네 가족 때문이지. 고모가 어떤 사람인지 나 누구보다 잘 알아. 네가 예정이 좋아하는 거 너희 엄마가 알면 계속 친절하게 예정이를 대할 것 같아? 갖은 수단으로 너희 두 사람 갈라놓을 거야. 예정이한테 더 한 짓도 꾸밀 수 있어. 고모는 상류층에서 20여 년간 지내면서 일찌감치 안하무인 격이 되었어. 넌 고모의 유일한 아들이라 고모의 희망이자 김씨 집안에서 내정된 후계자야. 너한테 기대가 엄청 클 거라고, 틀림없이 재벌 가문과 정략결혼을 맺어줄 거야. 예정이도 엄청 훌륭하지. 하지만 출신이 가장 큰 약점이야. 고모는 날 봐서 예정이를 조카처럼 예뻐하셔. 일단 네가 연루되는 날엔 누구보다 매정하게 변할 거야. 예정인 절대 고모가 바라는 신붓감이 아니야.”심효진의 말은 예리한 칼날처럼 김진우의 정곡을 찔렀다.“진우야, 네가 예정이를 좋아하는 건 걔한테 아무런 도움이 못 돼. 재앙만 안겨줄 뿐이야. 난 너의 사촌 누나야, 네가 사랑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걸 못 보겠어. 예정이도 내 단짝이야. 소중한 친구가 내 가족에게 상처받는 것도 싫어. 그러니까 네가 내려놔. 예정이는 너랑 안 어울려. 널 사랑할 리도 없고. 두 사람 알고 지낸 지 십몇 년째야. 걔는 나랑 함께 네가 커가는 걸 지켜봤단 말이야. 널 동생으로만 생각해. 누나가 어떻게 동생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겠어? 너 마음 안 접으면 이대로 가다가 결국 상처받는 건 너 자신뿐이야.”김진우의 낯빛이 더욱 창백해졌다.그의 생각은 아주 단순했다. 하예정을 무척 사랑하고 엄마도 그녀를 엄청 좋아하는 것 같아 보였을 뿐 더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예정이는 예진 언니 집에서 나오기 위해 결혼을 서둘렀어. 예진 언니가 줄곧 예정이를 걱정했거든. 그래서 예정이도 언니를 안심시키느라고 전태윤 씨랑 초고속 결혼을 한 거야. 예진 언니는 아마 두 사람이 정말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줄로 알 거
심효진은 굳은 표정으로 진지하게 물었다.“너 그럼 예정이랑 태윤 씨 갈라놓을 작정이야? 김진우, 누나는 너 얕보고 싶지 않아!”김진우는 괴로운 얼굴로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그는 좀처럼 이 감정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다만 하예정에게 상처 주는 일도 차마 할 수 없었다.심효진은 사촌 동생을 바라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진우야, 누난 이미 충분히 얘기한 것 같아. 일단 마음 좀 가라앉히고 누나 가게에 가지 않도록 잘 단속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져. 시간이 다 해결해줄 거야.”말을 마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커피는 내가 살게. 이젠 가게로 돌아가야 해. 너도 얼른 회사 가. 지금 한창 배우는 단계라 누구보다 열심히 해야지. 너희 김씨 집안에 너만 있는 게 아니야. 방심하다가 네 몫까지 다 뺏기는 수가 있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심효진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김진우는 자리에 앉은 채로 멍하니 넋을 놓아버렸다.애초에 하예정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는 고백할 용기가 없어 딴 사람에게 기회를 빼앗겨버렸다. 심효진이 가게로 돌아오자 우빈이가 잠에서 깼다.하예정은 공예품을 만들고 있었고 우빈은 옆에 앉아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효진은 묵묵히 친구를 바라봤다.예정은 얼굴도 예쁘장한 데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전념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진우가 좋아할 만했네.’“효진아, 왜 그렇게 보고 있어? 나한테 푹 빠진 거야?”심효진이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남자면 무조건 널 좋아했을 거야. 예정이 너 엄청 매력적인 거 모르지?”“매력은 무슨, 결혼 전엔 제대로 된 남자친구도 못 사귀어봤어.”“그건 네가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잖아.”심효진이 의자를 빼내고 카운터 앞에 앉았다.“요즘 온라인 스토어 장사 잘 되나 봐. 매일 한가할 때마다 공예품 만드는 걸 보니.”“태윤 씨랑 태윤 씨 남동생이 홍보해줬거든. 회사 직원이 많다 보니 주문량도 엄청 많더라고. 그리고 소현 씨도 홍보해줬어. 그쪽 업계에는 전부 돈
하예정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나 적응 안 돼요, 태윤 씨. 나한테 할 얘기 있죠?”전태윤이 대답했다.“오늘 저녁 약속 취소됐어. 우리 함께 쇼핑할래?”처음 꽃 선물을 할 땐 어쩔 바를 몰랐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먼저 나서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전태윤은 저녁에 아내와 함께 쇼핑하기로 했다.하예정은 잠시 고민한 후 대답했다.“나 이따가 우빈이 데리고 언니 퇴근 마중 가야 해요. 괜찮다면 우리 함께 가서 밥 먹고 쇼핑할래요?”“너희 언니 야근해?”“아까 문자 왔는데 출근 첫날은 야근 안 한대요. 5시 30분에 퇴근이래요.”전태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그래, 좀 있다가 데리러 갈게. 우리 함께 너희 언니 회사로 가. 내가 밥 사줄게.”“좋아요.”“그래, 그럼 이만 끊을게.”“네.”전태윤은 바로 전화를 끊지 않았다. 그는 하예정이 달콤한 말을 하길 기다렸다.하지만 전화기 너머로 하예정이 물었다.“태윤 씨, 더 할 얘기 있어요?”“아니, 없어. 그럼 진짜 끊을게.”하예정은 알겠다고 대답한 후 바로 전화를 끊었다.휴대폰을 내려놓자 옆에서 심효진이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웃었다. 하예정은 그녀의 이마를 살짝 내리치며 물었다.“왜 웃어?”“예정아, 너 태윤 씨랑 제법 가까워졌는데? 태윤 씨도 너한테 무척 마음 쓰는 것 같아. 두 사람 잘해봐. 결혼식도 올려야지.”혼인신고는 했으나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고 정식으로 공개하지도 않았다. 그들과 가장 가까운 일부 사람들만 두 사람이 부부 사이란 걸 알고 있다.“차차 해나가야지 뭐.”하예정은 일부러 전태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다만 전태윤이 적극적으로 나서도 그녀는 회피하지 않았다.그녀가 먼저 마음을 주지 않는 이유는 전태윤이 진심을 몰라주고 결국 그녀만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서였다.전태윤이 먼저 다가오고 하예정도 피하지 않으니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면서 사랑의 결실을 맺을 것이다.“이모.”혼자 놀다 지친 우빈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하
전태윤은 아내와 저녁에 함께 쇼핑하자고 얘기한 이후로 기분이 한결 좋아지고 업무 효율도 높아졌다.밖에서 노크하고 그의 목소리를 들은 소정남도 그가 기분이 좋다는 걸 바로 알아챌 지경이었다.소정남은 문을 열고 혼자 들어온 게 아니라 예준하와 함께 들어왔다.예준하의 경호원들은 사무실 밖에서 대기했다.“대표님, 예 대표님 오셨습니다.”전태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빙 돌아서 앞으로 나갔다.“어서 와요, 예 대표님.”두 사람은 악수를 마친 후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좀 전에 조 비서가 그에게 예준하가 올 거라고 보고하긴 했지만 소정남과 함께 올 줄은 미처 몰랐다. 아마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듯싶었다.소정남은 예준하에게 물 한 컵 따라주었다.예준하가 물을 마신 후 전태윤이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로 물었다.“대표님, 우리의 협력에 무슨 차질이라도 있는 건가요?”예준하와 같은 고급 파트너는 예약할 필요 없이 언제든지 전태윤을 만날 수 있다. 다만 예준하는 줄곧 소정남과 연락이 잦았는데 이번엔 바로 그의 사무실에 찾아왔기에 전태윤은 두 회사의 협력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의심됐다.예준하가 웃으며 대답했다.“전 대표님, 협력엔 아무 이상 없어요. 아주 잘 진행되고 있죠. 이번에 저희 형님과 형수님의 청첩장을 대표님께 전해드리려고 이렇게 찾아뵈었어요.”전태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예 대표께서 결혼식을 올린다고요? 만성 남씨 가문의 일은 다 해결됐나요?”“금방 끝났어요. 저희 형수님이 만성에서 돌아와 선우 대표님의 결혼식에 참석했어요. 두 사람의 결혼 날짜는 진작 정했어요. 저희 형수님의 친정 오빠 결혼식을 마치면 형수님도 결혼식을 올릴 거예요. 그러니 이 청첩장도 이젠 드릴 때가 되었죠.”예준하는 말하면서 큰형이 부탁한 청첩장을 꺼냈다. 다른 협력 업체라면 예준성은 택배 형식으로 협력 파트너에게 청첩장을 보낼 테지만 예준하가 마침 A시에서 관성으로 왔고 관성의 지사는 그가 전부 책임지고 있으며 대부분 시간을 관성에서
“안 그래도 진작 예 대표님을 만나 뵙고 싶었는데 이런 좋은 기회가 생겼네요.”예준하가 웃으며 말했다.“저희 형님도 전 대표님을 만나 뵙고 싶어 하세요.”다들 격식대로 인사치레를 나눴다.예준하는 형을 대신해 전태윤에게 청첩장도 드렸으니 더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그도 무척 바쁜 사람이니까.“전 대표님, 소 이사님, 저는 그럼 볼일이 있어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녁에 시간 되시면 함께 식사나 할까요? 제가 사드리겠습니다.”소정남이 웃으며 말했다.“저는 언제든지 시간 되지만 저희 대표님께서 너무 바쁘세요.”전태윤이 말했다.“나중에 한 번 식사 대접할게요.”오늘 저녁엔 아내와 함께 데이트를 해야 한다.예준하가 웃으며 답했다.“그래요, 그럼 대표님 연락만 기다리겠습니다.”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전태윤과 소정남도 일어나 그를 사무실 문밖까지 배웅해주었다.“다음에 또 만나요, 전 대표님, 소 이사님.”예준하는 문 앞에 서서 두 분더러 이만 들어가 보라고 인사를 올렸다.전태윤과 소정남은 사무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고 예준하는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리를 떠났다.그가 떠난 후에야 소정남이 편하게 말을 놨다.“저녁에 뭐 하러 가는데? 미팅은 죄다 나한테 밀고 예 대표님 식사 약속도 거절해? 태윤아, 아무래도 난 전생에 너한테 지은 죄가 많아서 이번 생에 목숨 걸고 갚는 것 같아. 네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오잖아.”전태윤이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넌 나한테서만 가치를 발휘할 수 있어. 내가 준 무대에서만 매혹적인 춤사위를 펼칠 수 있잖아.”소정남은 싱글벙글 웃으며 사무실 문을 닫았다.“예진 씨랑 데이트하는 거지?”“그래, 데이트한다, 왜? 가서 훼방 놓으려고? 아니면 질투나 죽겠어? 너한테도 맞선자리 알아봐 줄까? 너도 초고속 결혼해!”소정남이 얼른 대답했다.“나 그 정도 눈치는 있어. 훼방을 놓다니. 비록 훼방 놓을 생각은 있지만 너의 행복을 위해서 꾹 참을게. 질투까지는... 아직 아니야. 너도 지금 썩 행복해 보이진 않아.
“나도 물론 현장엔 없었지만 사람들한테 전해 들었어. 그때 심효진 씨를 데리고 연회에 참석했던 김 사모님은 좌불안석이 되어서 얼른 효진 씨를 밖으로 끌고 나갔대.”전태윤은 말문이 턱 막혔다.하예정은 그에게 심효진의 집에서 결혼을 엄청 다그친다고 얘기했었고 지난번엔 선보러 소이 카페까지 함께 갔었다고 했다.심효진이 도 사모님 생일 파티에서 혹시 일부러 그런 건 아닐까? 그런 짓을 벌이면 집에서 더는 그녀의 결혼을 다그치지 않을 테니까.“심효진 씨가 벌러덩 누우니 장내가 떠들썩해졌대. 이 바닥 사람들 거의 다 전해 들었을 거야.”소정남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이쪽 업계 여자들 아무리 만취해도 절대 효진 씨처럼 바닥에 드러눕진 않잖아. 재벌가 출신이라 뼛속부터 고고함이 흘러넘쳐. 취한다 해도 우아하게 취하지.”전태윤이 잠시 침묵한 후 그에게 물었다.“그럼 넌 우아하게 취하는 여자가 좋아 아니면 안하무인 격에 제멋대로인 여자가 좋아?”“이 문제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 다만 네가 정말 선 자리를 주선하겠다면 나도 한번 심효진 씨를 만날 의향은 있어. 안목이 얼마나 높은지 꽤 궁금하네. 알지? 사전에 내 진짜 신분 밝히지 않는 거.”“나 따라 하는 거야?”“왜? 그럼 안 돼?”전태윤이 웃으며 말했다.“나야 오케이지. 그럼 오늘 밤에 와이프한테 말해서 효진 씨한테 물어보라고 할게. 효진 씨가 동의하면 두 사람 내가 주선하지. 너도 인제 그만 날 부러워하고 결혼해야지 않겠어?”소정남은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그는 진짜 단 한 번도 부러워한 적이 없었다.전태윤은 중요한 서류 몇 부에 서명을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정남에게 말했다.“나 퇴근해. 전씨 그룹이 망하지 않는 한 오늘 밤엔 절대 연락하지 마. 알겠어?”소정남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겨우 오후 4시인데?!’그는 전태윤을 따라가며 투덜거렸다.“태윤아, 너 시계 안 봐? 지금 4시밖에 안 됐어. 퇴근하려면 아직 한참이라고. 전에는 이러지 않았잖아. 새벽 12시가 다 돼서야 집에 갔
하예정이 가장 신경 쓰는 사람은 바로 그녀의 언니와 조카 우빈이었다.그러니 전태윤이 우빈을 잘 챙겨주면 점수를 더 벌 수 있다.간식거리는... 예정이가 먹보니까.꽃 선물을 썩 반가워하지 않더라도 간식을 한가득 선물하면 분명 웃음꽃이 만개할 것이다.전태윤은 왼손에 간식 봉투를 들고 오른손엔 비행기 모형의 장난감을 든 채로 가게에 들어갔다. 그 시각 하예정은 마침 조카에게 죽 한 그릇 다 먹여주었다.“이모부.”아이는 전태윤을 보더니 방긋 웃었다.하예정은 남편이 사 온 장난감을 보면서 말했다.“태윤 씨, 또 우빈이 장난감 샀어요? 효진이가 금방 새것 사줬는데...”전태윤은 간식 봉투를 그녀 앞에 내려놓고 장난감 비행기를 우빈에게 건네면서 아이를 안아 올렸다.“조카가 우빈이 한 명뿐인데 얘를 안 예뻐하면 누굴 예뻐하겠어? 효진 씨가 산 건 효진 씨가 산 거고 내가 산 건 내 마음이야.”하예정은 그릇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고개 숙여 봉투를 들여다봤다.“간식들이네요? 뭘 이렇게 많이 샀어요?”“우빈이가 여기서 지루해할까 봐 군것질할 것 좀 샀어.”분명 그녀를 위해 산 간식이지만 정작 그녀 앞에 서니 전태윤은 또다시 우물쭈물했다. 결국 그는 우빈을 핑곗거리로 둘러댔다.“태윤 씨, 이러다 우빈이 버릇 나빠져요.”하예정은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우빈이는 똑똑하고 착해서 우리가 제대로 가르치면 올바른 어린이로 클 거야. 버릇 나빠질 리 없어.”하예정이 빤히 쳐다보자 전태윤은 수줍은 듯 귓불이 서서히 빨개졌다.“태윤 씨 왜 이렇게 말이 많아졌어요?”전태윤은 말문이 막혔다.‘뭐야?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내가 말이 많다고? 할머니는 내가 말주변이 없다고 잔소리하시고, 와이프란 사람은 말 좀 몇 마디 하니 괜히 말 많다고 탓하는 거야?’이때 심효진이 화장실에서 나오며 전태윤을 보더니 반갑게 인사하고는 예정에게 말했다.“예정아, 예진 언니 퇴근할 때 되지 않았어? 우빈이도 배불리 먹었겠다, 얼른 애 데리고 태윤 씨랑 함께 예진 언니 마중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