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이 배시시 웃으며 심효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심효진이 웃음을 터뜨렸다.“예정아, 너희 부부 드디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구나. 태윤 씨가 나한테 아침을 다 사주겠다고 하니 시름이 놓여. 난 또 태윤 씨가 나를 너한테 남자나 소개해주는 중매인으로 오해한 줄 알았어.”김진우는 그녀의 사촌 남동생이다. 하지만 그녀는 절친과 김진우가 커플이 되는 걸 바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김씨 가문은 하예정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고모가 평소에는 하예정에게 다정하게 잘해주지만 자기 아들 김진우가 하예정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바로 안면을 바꿀 것이다. 고모 같은 시어머니가 있다면 하예정의 삶도 힘들어지기에 심효진은 사촌 남동생을 도와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그녀는 남매가 단둘이 있을 때 기회를 봐서 김진우에게 마음을 정리하고 가게도 자주 오지 말라고 얘기할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전태윤이 오해하면 큰일이니 말이다.남자든 여자든 결혼했으면 인간관계를 처리할 때 배우자의 기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설령 배우자에게 미안한 짓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다른 남자나 여자와 함께 있는 걸 배우자가 본다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지금 바로 갈게.”전태윤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심효진은 가게 문마저 닫았다.“아 참, 어디 가서 먹어? 주소 보내줘, 난 스쿠터 타고 갈게.”하예정이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고 전태윤에게 물었다.“태윤 씨, 우리 어디 가서 먹어요?”“관성 호텔 1층 뷔페에서 먹자. 거기 아침 메뉴도 엄청 다양해. 어디에서 왔든 고향의 맛을 느낄 수가 있어.”하예정이 심효진에게 전했다.“관성 호텔 1층 뷔페 레스토랑이야.”“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절친과의 통화를 마치고 하예정은 바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가 깬 걸 확인하고는 전태윤에게 말했다.“태윤 씨, 우리 언니 데리러 가요.”전태윤이 알겠다고 하자 하예정은 휴대전화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거실로 가서 차 키
이따가 한 사람은 서점으로, 한 사람은 회사로 가야 해서 서로 다른 길이라 각자 차를 운전하기로 했다.부부는 먼저 하예진을 데리러 광명 아파트로 향했다.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하예진이 아들과 함께 나왔다.“언니.”하예정이 차를 길목에 세우고 언니에게 다가갔다.“이모.”주우빈이 두 손을 뻗으며 하예정에게 안겼다. 하예정은 허리를 굽혀 주우빈을 번쩍 안아 들어 볼에 뽀뽀했다. 그러자 주우빈이 행복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그 모습에 전태윤은 자신도 두 살짜리 애로 변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면 하예정이 뽀뽀해줄 테니까.“우빈이 오늘 왜 이리 일찍 깼어?”“내가 깨웠어. 분유를 마시고서야 따라 나오더라고.”하예진이 전태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제부.”“처형, 타세요.”전태윤은 유모차를 하예정의 차에 실었다.“언니, 버스 타고 출근해?”하예정이 차에 시동을 걸며 언니에게 물었다.“왜 스쿠터 안 타? 스쿠터 태윤 씨 차에 실어도 되는데.”전태윤의 차가 커서 스쿠터 하나쯤 싣는 건 아무 문제 없었다.“시간이 별로 없어서 안 탔어. 내일부터 스쿠터 타고 출근하려고.”하예진은 오늘 특별히 예쁜 옷을 입고 나왔다. 평소 집에 있을 땐 주로 편한 옷만 입던 그녀였다.오랜만의 출근이라 그런지 하예진은 마음이 떨렸다.“그럼 이따가 언니를 회사까지 데려다준 다음에 가게에 가야겠다.”“그래도 되고.”하예진은 동생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하예정은 그녀에게 주씨 집안 모녀가 온 이유에 관해 물었다.“무슨 일이겠어. 지난번에 너한테 얘기했던 그 일이지. 나더러 주서인 애들을 등하교시키고 밥도 해주고 숙제도 봐달라는 걸 거절했어! 누가 낳았으면 누가 책임져야지, 내가 그 집 자식을 돌봐줄 시간이 어디 있다고. 게다가 그 집 애들도 엄마를 닮아서 내 말 잘 듣지도 않아.”그녀와 주형인의 사이가 좋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그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주우빈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다.“언니 시어머니 시아버지한테 등하교
200만 원이 넘는 양복을 사면서 하예정은 특별히 그 브랜드를 기억했기에 절대 잘못 볼 리가 없었다.하예정은 혼자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 전태윤이 새 옷을 입고 싶어서 그런 게 틀림없었다.그러니 할머니가 전태윤이 겉모습은 까칠하지만 속은 여리다고 말씀하셨지. 그녀가 사준 옷을 그는 버리지 않았다. 역시 친할머니가 손자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관성 호텔에 도착했을 때 심효진은 이미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호텔 매니저가 전태윤을 알아보고 미소 띤 얼굴로 ‘도련님’ 이라고 부르려던 그때 전태윤이 그를 서늘하게 째려보았다. 호텔 매니저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내가 뭘 잘못했나?’호텔 매니저는 그를 부르지도 못하고 다가가지도 못한 채 제자리에 서서 전태윤 일행이 멀어지는 걸 빤히 보기만 했다. 잠시 후,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서야 정신을 차렸다.“둘째 도련님?”전이진을 보자마자 호텔 매니저는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그를 붙잡고 나지막이 말했다.“둘째 도련님, 저 방금 큰 도련님이랑 엄청 닮은 분을 봤는데 잘못 봤을까 봐 부르진 못했어요. 진짜 너무너무 닮았어요! 딱 하나 다른 건 옆에 경호원이 없더라고요.”‘그래, 사람 잘못 본 게 틀림없어. 큰 도련님은 외출할 때 항상 경호원이 옆에 있었어. 아까 그 사람은 큰 도련님이랑 엄청 비슷하고 째려보는 눈빛도 똑같았지만 큰 도련님은 아니야.’전이진이 다급히 물었다.“큰 도련님이라고 부르진 않았죠?”“부르고 싶었는데 절 째려보는 바람에 부르지 못했어요. 부르지 않길 천만다행이죠, 하마터면 민망할 뻔했어요.”대표의 얼굴도 모르는 직원이라면 해고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다행이네요. 앞으로 큰 도련님을 봤을 때 옆에 경호원이 없으면 모른 척하면 돼요.”호텔 매니저는 더욱 어리둥절했다.“둘째 도련님 말씀은 아까 그 남자가 큰 도련님이란 말이에요? 큰 도련님이 맞는데 왜 모른 척해야 한다는 거죠?”그러자 전이진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그냥
심효진이 떠난 후, 전태윤은 경호원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오라고 했다.사실 경호원들은 모습만 드러내지 않았을 뿐 줄곧 그의 뒤에 숨어있었다. 그의 전화를 받고 나서 그들은 재빨리 그를 데리러 호텔로 왔다.“먼저 쥬얼리 가게로 가.”전태윤이 차에 올라타자마자 운전기사에게 분부했다. 그러자 운전기사가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알겠습니다.”관성은 번화한 대도시라 쥬얼리 가게가 많았다. 마침 호텔에서 회사로 가는 길에 쥬얼리 가게가 하나 있었다. 쥬얼리 가게 문 앞에 도착하자 운전기사가 차를 세웠다.“따라올 필요 없어.”전태윤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분부한 후 홀로 차에서 내려 쥬얼리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빠르게 커플링 금반지를 고른 후 값을 지불했다. 점원이 커플링이 담긴 빨간색 반지 케이스를 쇼핑백에 담아 가져오자 전태윤이 쇼핑백을 들고 바로 나갔다.점원의 시선이 그에게서 떠나질 않았다. 그가 차에 올라타서야 점원이 시선을 거두고 속으로 감탄했다.‘현실 속에 진짜로 저런 훈남이 있다니. 점잖고 잘생긴 데다가 카리스마까지 있어. 정말 너무 멋있단 말이야! 커플링을 산 걸 보면 여자친구한테 주는 거겠지?’전태윤은 차에 올라탄 후 운전기사에게 가자고 했다. 강일구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너 주려고 산 거 아니야.”전태윤의 싸늘한 말투에 강일구가 황급히 말했다.“큰 도련님, 전 그저 궁금해서 본 거예요. 다른 뜻은 없었어요.”그에게 주는 선물이라도 해도 감히 받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안에 든 건 반지니까!전태윤이 반지 케이스를 하나 꺼내더니 반지를 왼쪽 약지에 꼈다.강일구는 전태윤이 유부남이라는 걸 대외적으로 알리는 뜻이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큰 사모님한테 고백하려는 건가?’“큰 도련님, 앞으로 큰 사모님을 보면 큰 사모님이라고 불러도 되나요?”전태윤이 그를 힐끗 보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예전처럼 불러.”강일구가 입을 꾹 다물었다.‘내 착각이었구나. 큰 도련님은 큰 사모님한테 고백하려는 게 아니었어.
그가 차에서 내리자 성소현은 무척이나 기뻤다. 그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은 듯싶었다. 어쨌거나 그녀를 완전히 무시하던 전태윤이 차에서 내려 그녀를 만났으니 말이다.“태윤 씨, 제가 아침 준비해왔어요.”성소현은 재빨리 정성껏 준비한 아침을 전태윤에게 건넸다. 그와 동시에 꽃다발도 함께 건네면서 활짝 웃었다.“이 꽃은 제가 우리 집 정원에서 직접 따서 가지를 손질한 다음 한데 묶은 거예요. 태윤 씨한테 선물할게요.”전태윤은 아무런 표정 없이 성소현을 쳐다보았다.‘남자에게 꽃을 선물한다고? 하예정은 대체 소현 씨에게 어떻게 대시하라고 가르친 거야? 날 여자로 여긴 건가?’전태윤은 일단 오른손으로 꽃다발을 받은 후 왼손으로 도시락통을 받았다. 그 순간 성소현은 날뛰듯이 기뻤다.‘태윤 씨가 날 받아주려나?’그런데 그녀는 곧바로 전태윤의 왼쪽 약지에 낀 금반지를 발견했다. 꽤 큰 금반지라 흐린 날씨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게 무시하려 해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태윤 씨!”성소현이 조심스럽게 그를 떠보았다.“그 반지는 뭐예요? 왜 약지에 끼고 있어요?”그녀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통 결혼반지를 약지에 끼는데.”전태윤은 반지를 힐끗 내려다보고는 그냥 돌아섰다. 경비실 문 앞에 다다른 그가 어두운 목소리로 물었다.“경비실 쓰레기통이 어디 있어요?”경비원이 쓰레기통을 가져오자 그는 꽃다발과 도시락통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고는 곧장 다시 차에 올라탔다. 왜 반지를 약지에 꼈냐는 성소현의 질문에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성소현이 결혼반지는 약지에 낀다고 대놓고 얘기했으니 바보가 아닌 이상 그의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가자!”전태윤의 서늘한 목소리에 운전기사는 재빨리 차에 시동을 걸고 성소현을 지나 회사로 들어갔다.성소현은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고 안색도 점점 창백해졌다. 전태윤이 그녀를 받아준 게 아니라 그녀가 보는 앞에서 꽃다발과 직접 만든 아침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엔 결혼반지가 끼어있었다.전태윤은 그녀가 수
성기현은 성소현이 왔다는 보고를 진작 받았다. 여동생이 사무실에 함부로 쳐들어와도 그는 절대 나무라지 않았다.“뭘 그렇게 급히 뛰어와? 귀신이라도 쫓아오고 있어?”성기현이 사인펜을 내려놓았다. 여동생이 왔으니 잠시는 업무를 볼 수 없었다.“오늘은 전씨 그룹 앞에서 안 기다려? 오빠가 얘기했었잖아, 전태윤은 너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널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얘기했었는데 믿지 않고 계속 고집을 부리더니, 상처받았지?”성기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동생에게 다가갔다. 여동생의 창백한 얼굴을 보니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다.“전태윤이 너한테 무슨 짓을 했어?”그는 여동생이 전태윤을 쫓아다니는 걸 동의하지 않았고 전태윤이 여동생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참을 수 없었다.“오빠.”성소현이 성기현의 팔을 잡고 다급하게 물었다.“오빠, 태윤 씨 싱글이야, 유부남이야? 얼른 말해줘.”성기현이 잠깐 멈칫하다가 대답했다.“왜 그런 질문을 해? 관성 전체에 전태윤이 여자친구도 없는 싱글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어? 걔 성격에 가족 외에 그 어떤 젊은 여자도 접근하지 못 하게 하는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대시하는 여자는 아마 너밖에 없을 거야. 내가 오죽하면 이런 말을 했겠어? 우리 동생이 아니었더라면 걔는 누군가가 대시하는 기분이 어떤지도 모를 거야. 그냥 평생 사랑도 받지 못하고 혼자 살라고 해.”“오빠, 오늘 보니까 태윤 씨가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고 있더라고. 진짜 싱글이 확실해? 이미 결혼했는데 우리가 모르는 건 아니고?”“전태윤이 결혼반지를 꼈다고? 결혼 안 한 거 확실한데.”두 그룹의 경쟁이 치열하여 그는 늘 전태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하여 만약 전태윤이 결혼했다면 그가 가장 먼저 알게 될 것이다. 게다가 전태윤의 신분에 결혼했는데 아무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의 결혼은 관성 전체를 뒤흔들만한 빅뉴스인데.“그럼 왜 결혼반지를 끼고 있지?”성기현이 피식 웃었다.“그거야 나도 모르지. 갑자기 즉흥으로 꼈을 수도 있잖아. 그러는 사람 많아. 미혼
“너 왜 이렇게 고집불통이야?”“나 원래 고집불통이야.”성기현은 분통이 터졌다.“전태윤은 절대 널 좋아하지 않아. 그리고 전씨 가문에서도 널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성기현이 그녀에게 분석했다.“전씨 가문의 할머니도 만만치 않은 분이야. 손자가 아홉이 있는데 제일 어린 두 손자 말고 나머지 일곱은 전부 결혼할 나이가 됐어. 그 어르신 지금 손자들이 결혼하기만을 기다리셔. 그런데 네가 전태윤을 공개적으로 쫓아다닌지도 한참이 됐는데 어르신이 무슨 움직임이라도 있었어? 네가 전태윤을 좋아한다는 걸 모르는 것처럼 전혀 미동도 없어. 그 이유가 뭐겠어? 어르신이 네가 큰 손자며느리가 되는 걸 탐탁지 않아 한다는 말이야.”“마음에 들었다면 어르신 성격에 더욱 부추기는 건 당연한 거고 어쩌면 더한 일도 했을 수 있어. 전태윤을 너의 침대에 데려다 눕혀서라도 밤을 함께 보내게 했겠지. 어르신은 하루빨리 증손주를 원하니까. 만약 두 사람이 밤을 같이 보냈다면 전씨 가문이든 우리 가문이든 전태윤한테 널 책임지라고 했을 거야. 너랑 결혼하기 싫어도 결혼하게끔 말이야.”전태윤은 책임감 있는 남자이다. 아마 이런 이유로 인하여 전태윤이 외출할 때마다 경호원과 동행하는 듯싶다. 그의 반경 3m 이내에 가족을 제외한 그 어떤 젊은 여성도 다가갈 수 없었다. 혹시라도 꿍꿍이가 있는 여자가 접근하면 큰일이니 말이다.그의 얘기를 듣던 성소현이 말했다.“할머니는 아직 내가 태윤 씨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모르실 수도 있잖아.”“계속 그렇게 스스로를 기만할 거야? 어르신이 젊었을 때 어떤 분인지 알아? 어르신이 알고 싶지 않은 것 말고는 모르는 정보가 없었어. 네가 공개적으로 전태윤한테 고백한 게 실시간 검색에까지 올랐는데 어르신이 그걸 모를 리가 있겠어? 어르신이 지금까지 아무 움직임이 없다는 건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뜻이야. 비록 전씨 가문의 가풍이 바르고 어른들도 꽉 막힌 분들이 아니라서 애들이 좋다면 반대하진 않겠지만 결혼 후에 널 탐탁지 않아 하는 어른들한테 잘 보
성기현은 여동생의 창백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금 이런 말을 내뱉는 그녀가 얼마나 속상할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그도 연애해보았고 지금의 결혼생활이 아주 행복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속상한 적도 많았고 절망한 적도 있었는데 감정이 사람의 마음을 가장 다치게 했다. 하지만 그는 전태윤이 절대로 여동생을 좋아할 리가 없다는 걸 확신했다. 여동생이 계속 이대로 그에게 매달려도 나중에 상처받을 게 뻔하므로 차라리 지금 포기하게 하는 게 나았다.성기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소현아, 오빠가 너의 부탁을 들어주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전태윤의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소정남이야. 소씨 집안이 어떤 집안이야? 내가 전태윤을 조사한다면 바로 알게 될 텐데 그냥 조사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게다가 오빠 쪽 사람은 전부 이모를 찾는데 보냈어.”성소현은 더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오빠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걸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소정남은 소씨 집안 사람인데 소씨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지 관성 전체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소현아, 이 세상에 좋은 남자는 많아. 그러니까 그만 전태윤을 잊어.”성소현은 고개만 푹 숙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곧이어 그녀의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떨어졌다.지금 그녀는 너무도 속상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겠다는 게 왜 이리도 어렵단 말인가?성기현은 묵묵히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오빠.”성소현이 오빠의 어깨에 기댄 채 훌쩍였다.“태윤 씨는 왜 날 좋아하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도 부족해? 설마 내가 제멋대로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생각하진 않겠지? 나의 어디가 싫은지 얘기만 해주면 고칠 수 있는데... 그런데 그 사람은 나한테 기회도 주질 않았어. 내가 그렇게 싫나?”그녀의 말에 성기현은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소현아, 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없어. 싫은 건 그냥 싫은 거야, 네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린 사람이라서 모든 사람이 좋아해 줄 순 없어. 너는 너고 성격도 이미 다 형성되
하예정은 무언가 떠오른 듯 전태윤에게 말했다. “태윤 씨, 우리도 리조트에 이틀 정도 지내러 갈까요? 주말에 출근도 안 하고 서점도 주말에는 문을 안 열잖아요.” 예전에는 서점만 운영할 때 주말에도 문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 사업이 커지면서 서점은 그냥 하예정과 심효진의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돈을 더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애정으로 운영하는 곳이 된 것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전태윤은 아직 대답하지 않았는데 친구인 소정남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를 읽고 나서 그는 휴대폰을 하예정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래, 우리도 리조트에 가서 주말을 보내자.” “어머님, 아버님, 할머니도 오늘 가시니까 소정남 씨와 효진이도 불러서 점심 같이 먹어요. 샤부샤부 어때요? 오랜만에 샤부샤부 먹고 싶어요.” 하예정이 자주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는 것에 전현림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아무런 이의도 없이 받아들였다. 하예정이 자신의 어머니와 꽤 닮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그렇게 친한 것 같았다. 예전에 전씨 할머니가 일부러 하예정을 자신의 은인으로 만들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 덕분에 온 가족이 하예정에게 감사하게 되었고 전씨 할머니는 장남인 전태윤에게 하예정과 결혼하라고 했다. 전현림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의 수법은 정말 대단해. 손자들도 어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다행히 전태윤과 하예정은 사이가 좋았으며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하예정을 아끼는 전태윤은 당연히 아무런 이의도 없었다. 그는 소정남에게 답장을 보냈다. “예정아, 우리 아침 먹고 리조트로 가자. 소정남이랑 효진 씨도 리조트에서 만나자. 샤부샤부는 사람이 많아야 더 맛있잖아. 예준하 씨랑 소현 누나도 불러야겠다.” 전태윤이 제안했다. 하예정은 성소현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성소현은 사양했다. 그녀는 예준하와 A 시로 날아가 예진 리조트에서 며칠 지낼 예정이었다. 예준하를 계속 관
전태윤은 그를 속인 거였다. 하예정은 주우빈에게 답장을 보냈다. [눈이 왔구나. 우빈이 운이 좋네, 갔는데 바로 눈이 와서 진짜 눈을 볼 수 있게 됐구나.] [눈사람도 만들 수 있네. 이모는 지금까지 눈사람을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어.] [아침 맛있게 먹었어? 옷 많이 입고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 [너희 셋째 작은 아버지는 여행 갔는데 열흘에서 보름 정도는 있어야 돌아올 거야. 네가 따라가면 유치원에 못 가잖아.] 다행히 전호영은 빨리 도망친 덕분에 주우빈에게 붙잡히지 않았다. 하예정의 답장을 받은 주우빈은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하예정과 주우빈은 30분 동안 통화를 했다. 통화를 마친 후, 전태윤은 중얼거렸다. “오늘에서야 우빈이가 그렇게 말을 잘하는 줄 알았네. 당신이랑 30분 동안이나 이야기하다니.” 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 “우빈이는 앞으로 수다쟁이가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따뜻한 남자가 될 거예요.” 따뜻한 남자에다 수다쟁이라니... “9시가 넘었네요. 부모님과 할머니도 일어나셨을 거예요. 우리도 얼른 서둘러야죠. 창빈 도련님은 오늘 원림성의 A 시로 가는 거예요?” 전태윤은 먼저 그녀의 옷을 가져오며 말했다. “월요일에 갈 거야. 이틀 정도는 집에서 할머니랑 시간을 보내려고.” 10여 분 후, 부부는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1층 거실 소파에는 전현림 혼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전씨 할머니와 장소민, 그리고 어제 형의 집에서 잔 전창빈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아버님.” 부부는 전현림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전현림은 부부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일어났구나. 아침 식사 준비해 뒀어. 아직 따뜻할 거야. 먹으러 가.” “엄마랑 할머니는 어디 계세요?” 전태윤이 물었다. “창빈이는 아직 안 일어났어요?” “할머니가 엄마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셨는데 창빈이도 같이 갔어.” “이렇게 추운 날씨에 할머니가 산책하러 나가시다니.” 전태윤이 말했다. “할머니 말씀하시길,
“예진아, 늦었어. 얼른 쉬어. 나도 방으로 돌아가서 쉬어야겠어. 내일 아침 같이 먹자.” 노동명의 목소리는 약간 쉰 듯했다. 하예진은 그의 얼굴에 살짝 입을 맞추며 말했다. “동명 씨, 잘 자요.” “잘자.” 하예진은 그를 밀며 밖으로 나왔다. 그는 직접 휠체어를 조종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달콤한 미소였다. 그날 밤은 더 이상의 대화 없이 지나갔다. 주말 아침, 출근할 필요도 없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평소 일찍 일어나던 전태윤도 침대에서 나오기 싫었다. 그는 침대에 늘어져 아내의 따뜻한 핫팩이 되어 주었다. 관성의 기온이 떨어져 정말 추웠지만 사실 기온은 아직 10도 정도였다. 낮에는 최대로 10도 중반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관성 사람들은 너무 추웠다. 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인터넷으로 두꺼운 옷을 주문했다. 관성 사람들이 옷을 주문하면 판매자들은 재빨리 발송했다. 며칠 후 주문이 취소될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관성의 추위는 찬 공기가 남하할 때 며칠 동안 추워지고 며칠이 지나면 다시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발송이 늦으면 날씨가 풀리고 나서 두꺼운 옷을 입을 필요가 없어지면서 주문을 취소하게 된다. 방에는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가장 추운 며칠 동안 전태윤은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그는 보일러를 켜면 하예정이 더워서 자신의 품에 안기지 않을까 봐 일부러 켜지 않았다. 그가 하예정이 자신의 품에 안기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건 절대 예정이에게 들키면 안 돼. 아니면 또 교활하다고 할 거야.’ ‘카톡!’ 하예정의 카톡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녀는 잠에서 깼지만 움직이기 싫어서 전태윤에게 말했다. “여보, 누가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는지 좀 봐줘요. 너무 시끄러워요.” 전태윤이 말했다. “내 생각엔 우빈일 거야.” “우빈이는 엄마랑 있어서 이렇게 일찍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지 않을 거예요. 아직 꿈나라에 있을지도 몰라요.”
시도 때도 없이 간식을 꺼내 그녀에게 먹여줬다. 영화가 끝날 즈음, 하예진은 그가 챙겨준 음식으로 배부르게 먹고는 그를 보고 말했다. “이제 됐네요. 야식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예요. 또 산책하면서 소화라도 좀 시켜야겠어요.” 노동명이 일어나자 하예진과 보디가드가 그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 노동명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를 밀면서 호텔까지 걸어가. 산책하면서 소화 시키는 거지.” 하예진도 웃으며 말했다. “그러죠 뭐. 그런데 걸어가면 길을 못 찾을지도 몰라요. 길을 잘못 들면 우리 둘 다 강성의 길거리에서 하룻밤을 돌아다녀야 할 거예요. 저 원망하지 마요.” “그럴 리 없어.” 지금은 밤이 더욱 깊어졌다. 영화관을 나오니 거리의 떠들썩함은 사라지고 점점 고요해지고 있었다. 하예진은 노동명을 천천히 밀며 걸었다. 보디가드들은 두 사람 뒤에서 조용히 그들을 보호했다. 걷다 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동명 씨, 눈이 오네요. 빨리 차 타고 호텔로 돌아가요.” 어느 정도 걷자 하예진은 더 이상 배가 부르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 오니 길이 미끄러워 운전하기 어려울까 걱정되었다. “그래.” 노동명은 아무런 이의 없이 그녀의 말을 따랐다. 그에게는 그녀의 말이 곧 정답이었다. 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다. 이내 그들은 이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 주우빈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강일구는 주우빈과 함께 있었다. 하예진이 돌아오자 강일구는 방으로 돌아갔다. “우빈이 자고 있어?” 노동명은 방에 들어와 주우빈을 보았다. 아이가 깊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이불을 살짝 덮어주며 말했다. “보일러 온도는 적당하면 돼, 너무 높일 필요 없어. 우빈이가 땀을 흘리고 있잖아.” 아이는 더우면 이불을 걷어차는 버릇이 있었다. 하예진은 온도를 조금 낮췄다. 노동명은 주우빈의 땀을 닦아주고 이불을 살짝 걷어내 더 덥지 않게 했다. 노동명의 행동을 보며 하예진의 눈에는 애틋함이 가득했다. 그는 주
노동명은 남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그녀의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등에 한 번, 손바닥에 한번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하예진은 다급하게 손을 뺐다. 그녀의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영화관 안은 어두웠고 아무도 그녀를 주시하지 않아 그녀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동명 씨, 진지하게 좀 굴어요.”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그를 꾸짖었다. 노동명은 늘 거칠고 대범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쳤으며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그런 그가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면 그녀의 얼굴은 빨개졌다. 그녀는 그의 앞에서 마치 어린 소녀처럼 변했다. 하예정은 언니가 두 번째 사춘기를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명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진지해질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예진아, 앞으로 네가 휴식을 원할 때,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서 바람을 좀 쐬고 싶다면 나에게 말만 해줘. 아무리 바빠도 내 손에 있는 일을 내려놓고 너와 함께 나갈 수 있어. 일도 중요하지만 너의 행복이 더 중요해. 나는 돈도 충분히 있어. 예전에 번 돈이 너무 많아서 다 쓰지도 못했어. 지금 일을 하는 건 그냥 시간을 보내고 약간의 용돈을 버는 정도야. 나에게는 너와 우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해.” 하예진은 그를 꾸짖듯 말했다. “동명 씨가 말하는 약간의 용돈은 다른 사람들이 평생을 바쳐도 못 버는 금액이에요. 동명 씨, 일부러 자랑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하예진이 식당을 운영하며 매출이 좋아 월 순이익이 꽤 높다고 하더라도 그가 버는 돈에 비하면 그녀의 이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에잇, 비교하니까 열 받네.’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일하며 온 힘을 다해야 그 정도 돈을 벌 수 있다. 일반 직장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노동명이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젊은 시절 고생하며 노력한 결과다. 노동명은 업계에서 십여 년을 뛰어다니며 오늘의 성과를 이루었다. 노
우빈은 새 장난감을 들고 호텔로 돌아가 놀고 싶었다.아직 강성의 밤 구경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하예진이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우빈아, 일구 삼촌과 함께 호텔로 돌아가서 놀아달라고 할래? 엄마랑 아저씨랑 좀 더 돌아다니다가 돌아갈게.”우빈은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하여 강일구는 우빈을 데리고 호텔로 돌아갔다.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계속 돌아다녔다. 이는 두 사람만의 데이트나 다름없다.“동명 씨, 우리 영화 보러 갈까요? 이 근처에 큰 영화관이 있거든요. 저는 거의 매일 그 영화관 입구를 지나다녔는데도 영화를 보러 갈 시간이 없었어요.”노동명이 간절히 원하던 바였다.그는 즉시 경호원에게 먼저 영화표를 사라고 지시했고 그와 하예진은 천천히 걸어갔다.십여 분 후, 두 사람은 영화관 입구에 도착했다.경호원은 표를 끊고 간식도 사 놓고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간식을 먹으면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단지 영화를 보고 싶을 뿐이고 구매한 표도 곧 시작하게 된다.영화관 입구에서 잠시 기다리면 곧 들어갈 수 있었다.노동명은 휠체어를 타지 않고 한 손으로 경호원의 어깨를 잡고 나머지 한 손은 하예진이 부축하여 들어갔다.자리에 앉은 노동명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들 주변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그와 하예진, 그리고 몇 명의 경호원들이 두 사람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경호원들은 그들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보호하고 있었다.“영화관에 와서 영화를 본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노동명은 자리에 앉은 뒤 감개무량하게 한마디 했다.하예진은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저도 몇 년 됐어요.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온 적 없어요.”결혼한 뒤로 영화를 보기는커녕 주형인은 그녀와 함께 쇼핑하는 것조차 점점 더 짜증을 냈다.그는 하예진이 물건을 살 때 항상 물건을 이리저리 비교하여 싼 물건을 고르는 모습을 싫어했다.하예진은 그때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배속의 태아를 돌봐야 했다. 저축한 돈은 모두 신혼집을 꾸미는 데 썼기에 돈 가방
하예진은 아들의 이마를 톡 쳤다.“뭐라고 한 거야?”우빈은 하예진이 때린 곳을 만지며 노동명에게 말했다.“아저씨, 엄마가 절 아프게 때렸어요. ‘호’ 해주세요.”노동명은 재빨리 불어주고는 다시 어루만져주며 하예진을 나무랐다.“예진아, 우빈 이마를 자꾸 치지 마. 똑똑한 애가 멍청해지면 어떡해.”“똑똑하면 똑똑하고 멍청하면 멍청한 아이인 거예요. 제가 몇 번 쳤다고 멍청해지는 건 아니거든요. 멍청한 건 녀석이 원래 멍청한 아이였기 때문이에요.”“우리 우빈은 똑똑하거든 멍청하지 않는단 말이야.”우빈은 하예진에게 혀를 내밀고는 얼른 노동명의 품으로 쏙 들어갔다.노동명 아저씨가 그를 보호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우빈을 아껴주던 노동명은 결국 우빈을 데리고 장난감 가게에 들어갔다.가게에 들어간 우빈은 노동명 품으로부터 바닥에 미끄러져 내려와 먼저 몇 권의 유아용 스케치북을 가져와서 하예진의 앞에서 귀여운 얼굴을 들고 물었다.“엄마, 이거요. 저 장난감을 더 사도 돼요?”노동명이 녀석에게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녀석은 엄마의 뜻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만약 하예진이 그에게 새 장난감을 사지 말라고 고집한다면 그도 사지 않을 것이다.하예진이 대답했다.“하나만 사.”우빈이가 대답했다.“네.”우빈은 장난감 몇 개 더 사려고 했지만, 하예진이 한 가지만 살 수 있다고 하니 하나만 사는 수밖에!녀석은 얼른 가서 그의 장난감을 고르고 있었다.노동명은 우빈이가 여러 장난감을 어루만지며 전부 가지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돌려 사랑하는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우빈이 좋아하는 건 다 사자. 내가 선물로 사줄게.”“동명 씨, 너무 아이 뜻에만 따르면 안 돼요. 한 가지만 고르게 해요. 장난감도 가지고 왔던데.”그러나 하예진은 아들에게 장난감 하나만 사주겠다고 고집했다.노동명은 어쩔 수 없이 하예진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그는 우빈이가 원하는 것을 전부 사서 우빈에게 주고 싶었다.“우빈은 너무 많은 사람이 사랑해주고 아껴
“엄마, 하나만 사줘요. 네?”우빈은 계속해서 졸라댔다.“안 돼. 장난감을 사도 여기저기 쌓여 있을 텐데. 네가 놀다가도 정리하지 않으면 엄마가 대신 치워야 하잖아.”“엄마, 제가 다 치울게요. 앞으로 다 치울게요.”우빈도 스스로 정리하고 있었다. 다만 가끔 치우지 않을 때도 있었을 뿐이다.“장난감을 가지고 왔잖아.”하예진은 우빈에게 장난감을 너무 많이 사주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그 이유는 녀석이 장난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우빈은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댔다.“새 장난감 사고 싶어요. 제가 새것 사 가서 동생에게 줄게요.”“그 동생은 아직 어려서 못 놀아.”“그럼, 스케치북을 사줘요. 글씨를 쓰고 숫자도 적으면서 놀래요. 네?”우빈이는 한발 물러서서 스케치북이라고 사고 싶었다.그 장난감 가게에는 연필들과 책들도 많았다.우빈은 그 가게를 다 돌아본 후에야 엄마를 찾으러 돌아와서 사달라고 졸랐다.강일구는 우빈이가 좋아하는 것을 사준다고 했지만, 녀석은 감히 받지는 못하고 하예진의 뜻을 물어보려고 했다.하예진은 항상 우빈의 장난감이 너무 많아서 두 번째 장난감 방도 가득 찼다고 잔소리했다.우빈은 장난감을 매우 사랑했다. 어떤 장난감은 실수로 망가져도 엄마가 버리겠다고 하면 아까워서 버리지 못했다.하예진이 쓰레기통에 버리면 녀석은 전부 도로 주워왔다.“스케치북은 사줄게.”우빈은 금세 원숭이처럼 노동명의 허벅지에 올라가 자신을 안아달라고 요구했다.그리고 하에진이 그들을 밀고 앞으로 가게 했다.“엄마, 그럼 우리 스케치북 사러 가요.”가게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녀석이 원하는 것을 전부 이룰 수 있었다.우빈은 여러 대의 큰 장난감 차와 강아지 인형이 갖고 싶었다.정말 탐나는 장난감이었다!그는 엄청 좋아했다.“스케치북만 사. 이따가 돌아오면 그림도 그려.”하예진은 그녀의 아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모를 리가 있겠는가!그녀는 손을 뻗어 아들의 이마를 콕 찔렀다.“엄마가 네 곁에 없었는데 유치원에서 돌아와서
노동명은 다정하게 말했다.“널 위해서 늘 재활을 꾸준히 하고 있어. 회사 일은 특히 중요할 때만 나가서 처리하거든. 우리 형도 도와줘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노동명은 그윽한 눈빛으로 말을 건넸다.“예진아, 만약 네가 없었다면 난 정말로 재활을 포기하고 자포자기하면서 평생 일어나지 못했을 거야.”“바보.”“아니거든. 난 단지 너와 우빈을 너무너무 사랑했을 뿐이야. 남들은 네가 이혼한 여자라고 말하고 있어. 내가 널 알게 되었을 때에도 넌 뚱뚱하고 못생겼는데 내가 왜 널 좋아하게 되었는지 몰라... 근데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나도 그 이유를 찾고 싶지도 않아. 아마 너의 강인함과 감히 자신을 개변시키는 그 능력에 매료되었을지도 모르지. 난 우빈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사실 난 아이들이 시끄럽다고 느껴져서 안 좋아하거든. 근데 처음으로 우빈을 보자마자 좋아하게 되었다.”“저도 알아요. 저도 제 아들 덕을 봤죠.”노동명은 우빈을 좋아하기 때문에 우빈의 엄마, 즉 하예진에게 조금 더 많은 관심과 포용력을 갖게 되었다.그러다가 접촉 횟수가 많아졌고 함께 지내다 보니 서로 정이 들었다.“우빈이가 우리 두 사람 중매를 선 거나 다름없어.”노동명은 헤벌쭉 웃었다.“태윤이도 마찬가지야. 태윤 때문이 아니었다면 널 알지도 못했을걸. 예진아, 네가 강성에서 일을 마치면 나랑 결혼하는 건 어때?”하예진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노동명이 계속하게 말했다.“내가 정상적으로 걷지 못해도 난 결혼하고 싶어. 난 이미 스스로 설 수 있어. 그리고 몇 걸음 정도는 앞으로 걸을 수 있게 됐고. 1년이란 시간을 더 주면 분명 정상적으로 걸어 다닐 수 있을 거야. 근데 난 그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아.”노동명은 지금 36세이고, 2년만 더 기다리면 38세까지 될 것이다.곧 있으면 마흔이 된다.하예진은 속으로 흐뭇해하며 대답했다.“좋아요. 저야 지금 당장이라도 동명 씨와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어요. 근데 동명 씨가 원하지 않잖아요.”노동명은 자신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