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효진이 떠난 후, 전태윤은 경호원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오라고 했다.사실 경호원들은 모습만 드러내지 않았을 뿐 줄곧 그의 뒤에 숨어있었다. 그의 전화를 받고 나서 그들은 재빨리 그를 데리러 호텔로 왔다.“먼저 쥬얼리 가게로 가.”전태윤이 차에 올라타자마자 운전기사에게 분부했다. 그러자 운전기사가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알겠습니다.”관성은 번화한 대도시라 쥬얼리 가게가 많았다. 마침 호텔에서 회사로 가는 길에 쥬얼리 가게가 하나 있었다. 쥬얼리 가게 문 앞에 도착하자 운전기사가 차를 세웠다.“따라올 필요 없어.”전태윤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분부한 후 홀로 차에서 내려 쥬얼리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빠르게 커플링 금반지를 고른 후 값을 지불했다. 점원이 커플링이 담긴 빨간색 반지 케이스를 쇼핑백에 담아 가져오자 전태윤이 쇼핑백을 들고 바로 나갔다.점원의 시선이 그에게서 떠나질 않았다. 그가 차에 올라타서야 점원이 시선을 거두고 속으로 감탄했다.‘현실 속에 진짜로 저런 훈남이 있다니. 점잖고 잘생긴 데다가 카리스마까지 있어. 정말 너무 멋있단 말이야! 커플링을 산 걸 보면 여자친구한테 주는 거겠지?’전태윤은 차에 올라탄 후 운전기사에게 가자고 했다. 강일구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너 주려고 산 거 아니야.”전태윤의 싸늘한 말투에 강일구가 황급히 말했다.“큰 도련님, 전 그저 궁금해서 본 거예요. 다른 뜻은 없었어요.”그에게 주는 선물이라도 해도 감히 받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안에 든 건 반지니까!전태윤이 반지 케이스를 하나 꺼내더니 반지를 왼쪽 약지에 꼈다.강일구는 전태윤이 유부남이라는 걸 대외적으로 알리는 뜻이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큰 사모님한테 고백하려는 건가?’“큰 도련님, 앞으로 큰 사모님을 보면 큰 사모님이라고 불러도 되나요?”전태윤이 그를 힐끗 보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예전처럼 불러.”강일구가 입을 꾹 다물었다.‘내 착각이었구나. 큰 도련님은 큰 사모님한테 고백하려는 게 아니었어.
그가 차에서 내리자 성소현은 무척이나 기뻤다. 그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은 듯싶었다. 어쨌거나 그녀를 완전히 무시하던 전태윤이 차에서 내려 그녀를 만났으니 말이다.“태윤 씨, 제가 아침 준비해왔어요.”성소현은 재빨리 정성껏 준비한 아침을 전태윤에게 건넸다. 그와 동시에 꽃다발도 함께 건네면서 활짝 웃었다.“이 꽃은 제가 우리 집 정원에서 직접 따서 가지를 손질한 다음 한데 묶은 거예요. 태윤 씨한테 선물할게요.”전태윤은 아무런 표정 없이 성소현을 쳐다보았다.‘남자에게 꽃을 선물한다고? 하예정은 대체 소현 씨에게 어떻게 대시하라고 가르친 거야? 날 여자로 여긴 건가?’전태윤은 일단 오른손으로 꽃다발을 받은 후 왼손으로 도시락통을 받았다. 그 순간 성소현은 날뛰듯이 기뻤다.‘태윤 씨가 날 받아주려나?’그런데 그녀는 곧바로 전태윤의 왼쪽 약지에 낀 금반지를 발견했다. 꽤 큰 금반지라 흐린 날씨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게 무시하려 해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태윤 씨!”성소현이 조심스럽게 그를 떠보았다.“그 반지는 뭐예요? 왜 약지에 끼고 있어요?”그녀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통 결혼반지를 약지에 끼는데.”전태윤은 반지를 힐끗 내려다보고는 그냥 돌아섰다. 경비실 문 앞에 다다른 그가 어두운 목소리로 물었다.“경비실 쓰레기통이 어디 있어요?”경비원이 쓰레기통을 가져오자 그는 꽃다발과 도시락통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고는 곧장 다시 차에 올라탔다. 왜 반지를 약지에 꼈냐는 성소현의 질문에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성소현이 결혼반지는 약지에 낀다고 대놓고 얘기했으니 바보가 아닌 이상 그의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가자!”전태윤의 서늘한 목소리에 운전기사는 재빨리 차에 시동을 걸고 성소현을 지나 회사로 들어갔다.성소현은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고 안색도 점점 창백해졌다. 전태윤이 그녀를 받아준 게 아니라 그녀가 보는 앞에서 꽃다발과 직접 만든 아침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엔 결혼반지가 끼어있었다.전태윤은 그녀가 수
성기현은 성소현이 왔다는 보고를 진작 받았다. 여동생이 사무실에 함부로 쳐들어와도 그는 절대 나무라지 않았다.“뭘 그렇게 급히 뛰어와? 귀신이라도 쫓아오고 있어?”성기현이 사인펜을 내려놓았다. 여동생이 왔으니 잠시는 업무를 볼 수 없었다.“오늘은 전씨 그룹 앞에서 안 기다려? 오빠가 얘기했었잖아, 전태윤은 너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널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얘기했었는데 믿지 않고 계속 고집을 부리더니, 상처받았지?”성기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동생에게 다가갔다. 여동생의 창백한 얼굴을 보니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다.“전태윤이 너한테 무슨 짓을 했어?”그는 여동생이 전태윤을 쫓아다니는 걸 동의하지 않았고 전태윤이 여동생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참을 수 없었다.“오빠.”성소현이 성기현의 팔을 잡고 다급하게 물었다.“오빠, 태윤 씨 싱글이야, 유부남이야? 얼른 말해줘.”성기현이 잠깐 멈칫하다가 대답했다.“왜 그런 질문을 해? 관성 전체에 전태윤이 여자친구도 없는 싱글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어? 걔 성격에 가족 외에 그 어떤 젊은 여자도 접근하지 못 하게 하는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대시하는 여자는 아마 너밖에 없을 거야. 내가 오죽하면 이런 말을 했겠어? 우리 동생이 아니었더라면 걔는 누군가가 대시하는 기분이 어떤지도 모를 거야. 그냥 평생 사랑도 받지 못하고 혼자 살라고 해.”“오빠, 오늘 보니까 태윤 씨가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고 있더라고. 진짜 싱글이 확실해? 이미 결혼했는데 우리가 모르는 건 아니고?”“전태윤이 결혼반지를 꼈다고? 결혼 안 한 거 확실한데.”두 그룹의 경쟁이 치열하여 그는 늘 전태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하여 만약 전태윤이 결혼했다면 그가 가장 먼저 알게 될 것이다. 게다가 전태윤의 신분에 결혼했는데 아무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의 결혼은 관성 전체를 뒤흔들만한 빅뉴스인데.“그럼 왜 결혼반지를 끼고 있지?”성기현이 피식 웃었다.“그거야 나도 모르지. 갑자기 즉흥으로 꼈을 수도 있잖아. 그러는 사람 많아. 미혼
“너 왜 이렇게 고집불통이야?”“나 원래 고집불통이야.”성기현은 분통이 터졌다.“전태윤은 절대 널 좋아하지 않아. 그리고 전씨 가문에서도 널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성기현이 그녀에게 분석했다.“전씨 가문의 할머니도 만만치 않은 분이야. 손자가 아홉이 있는데 제일 어린 두 손자 말고 나머지 일곱은 전부 결혼할 나이가 됐어. 그 어르신 지금 손자들이 결혼하기만을 기다리셔. 그런데 네가 전태윤을 공개적으로 쫓아다닌지도 한참이 됐는데 어르신이 무슨 움직임이라도 있었어? 네가 전태윤을 좋아한다는 걸 모르는 것처럼 전혀 미동도 없어. 그 이유가 뭐겠어? 어르신이 네가 큰 손자며느리가 되는 걸 탐탁지 않아 한다는 말이야.”“마음에 들었다면 어르신 성격에 더욱 부추기는 건 당연한 거고 어쩌면 더한 일도 했을 수 있어. 전태윤을 너의 침대에 데려다 눕혀서라도 밤을 함께 보내게 했겠지. 어르신은 하루빨리 증손주를 원하니까. 만약 두 사람이 밤을 같이 보냈다면 전씨 가문이든 우리 가문이든 전태윤한테 널 책임지라고 했을 거야. 너랑 결혼하기 싫어도 결혼하게끔 말이야.”전태윤은 책임감 있는 남자이다. 아마 이런 이유로 인하여 전태윤이 외출할 때마다 경호원과 동행하는 듯싶다. 그의 반경 3m 이내에 가족을 제외한 그 어떤 젊은 여성도 다가갈 수 없었다. 혹시라도 꿍꿍이가 있는 여자가 접근하면 큰일이니 말이다.그의 얘기를 듣던 성소현이 말했다.“할머니는 아직 내가 태윤 씨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모르실 수도 있잖아.”“계속 그렇게 스스로를 기만할 거야? 어르신이 젊었을 때 어떤 분인지 알아? 어르신이 알고 싶지 않은 것 말고는 모르는 정보가 없었어. 네가 공개적으로 전태윤한테 고백한 게 실시간 검색에까지 올랐는데 어르신이 그걸 모를 리가 있겠어? 어르신이 지금까지 아무 움직임이 없다는 건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뜻이야. 비록 전씨 가문의 가풍이 바르고 어른들도 꽉 막힌 분들이 아니라서 애들이 좋다면 반대하진 않겠지만 결혼 후에 널 탐탁지 않아 하는 어른들한테 잘 보
성기현은 여동생의 창백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금 이런 말을 내뱉는 그녀가 얼마나 속상할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그도 연애해보았고 지금의 결혼생활이 아주 행복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속상한 적도 많았고 절망한 적도 있었는데 감정이 사람의 마음을 가장 다치게 했다. 하지만 그는 전태윤이 절대로 여동생을 좋아할 리가 없다는 걸 확신했다. 여동생이 계속 이대로 그에게 매달려도 나중에 상처받을 게 뻔하므로 차라리 지금 포기하게 하는 게 나았다.성기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소현아, 오빠가 너의 부탁을 들어주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전태윤의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소정남이야. 소씨 집안이 어떤 집안이야? 내가 전태윤을 조사한다면 바로 알게 될 텐데 그냥 조사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게다가 오빠 쪽 사람은 전부 이모를 찾는데 보냈어.”성소현은 더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오빠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걸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소정남은 소씨 집안 사람인데 소씨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지 관성 전체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소현아, 이 세상에 좋은 남자는 많아. 그러니까 그만 전태윤을 잊어.”성소현은 고개만 푹 숙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곧이어 그녀의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떨어졌다.지금 그녀는 너무도 속상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겠다는 게 왜 이리도 어렵단 말인가?성기현은 묵묵히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오빠.”성소현이 오빠의 어깨에 기댄 채 훌쩍였다.“태윤 씨는 왜 날 좋아하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도 부족해? 설마 내가 제멋대로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생각하진 않겠지? 나의 어디가 싫은지 얘기만 해주면 고칠 수 있는데... 그런데 그 사람은 나한테 기회도 주질 않았어. 내가 그렇게 싫나?”그녀의 말에 성기현은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소현아, 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없어. 싫은 건 그냥 싫은 거야, 네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린 사람이라서 모든 사람이 좋아해 줄 순 없어. 너는 너고 성격도 이미 다 형성되
그런데 꽃가게 문 앞에서 족히 10분 동안 망설이고 나서야 차에서 내려 꽃가게로 들어갔다.“안녕하세요. 꽃 사러 오셨나요? 여자친구한테 선물하시게요?”전태윤이 꽃가게를 둘러보고는 사장에게 물었다.“와이프한테 선물하려고요.”꽃가게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생일이신가요? 아니면 두 분 결혼기념일인가요?”“다 아니에요. 그냥 선물해주고 싶어서요.”그러자 사장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그럼 장미꽃 사이에 안개꽃으로 데코하는 건 어떨까요?”여자에게 꽃이라곤 사준 적이 없는 전태윤은 사장의 추천대로 사면 문제없을 거로 생각하여 고개를 끄덕였다.“사장님 말씀대로 해주세요.”“잠시만 기다려주세요.”사장은 그가 아내에게 처음으로 꽃을 선물한다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잠시 후, 꽃가게 사장은 장미꽃다발을 전태윤에게 건넸다. 전태윤은 꽃다발을 안고 돈을 지불한 후 꽃가게를 나섰다.그는 꽃다발을 조수석에 내려놓았다. 운전하다가 가끔 쳐다보면서 무슨 말을 하며 하예정에게 선물해야 할지 고민하곤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관성중학교 문 앞에 도착했다. 일찍 퇴근한 바람에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우르르 나오고 있었다.하예정의 가게 안에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학생들은 가게에서 자신에게 맞는 학습 자료를 고르거나 좋아하는 문구를 골랐다.꽃다발을 안고 차에서 내린 전태윤은 하예정의 가게 안에 손님이 많은 걸 보고 꽃다발을 다시 차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학생들은 그를 보자마자 마치 엄격한 학생 주임을 본 것처럼 말투도 저도 모르게 고분고분해졌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어느 자료를 고를까 고민하다가 전태윤이 들어오는 걸 보고 바로 자료를 고른 후 황급히 계산하고 나가버렸다.전태윤이 이 시간에 서점에 나타난 적이 아주 드물었다. 하지만 지난번에 도와줄 때 학생들에게 남긴 인상이 하도 강렬하여 다 도망치고 싶어 했다.“이모부.”학생들은 전태윤을 두려워했지만 주우빈은 달랐다. 원래는 이모 뒤만 졸졸 따라다니다가 전태윤을
전태윤은 짜증 한번 내질 않았다. 주우빈이 하라는 대로 했고 주우빈에게 새로운 놀이 방법도 가르쳐줬다. 하예정은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태윤 씨 나중에 아이가 있으면 엄청 책임감 있는 아빠일 것 같아.’“왜 그래?”하예정이 한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걸 발견한 심효진이 가까이 다가왔다. 하예정이 전태윤을 보고 있는 걸 확인하고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너희 남편이 엄청 멋있어 보이지?”“멋있어 보이는 게 아니라 원래 멋있는 사람이야.”“얼른 덮쳐버려. 우빈이한테 얼마나 인내심 있게 잘하는지 봐봐. 겉으로 보기에는 얼음장처럼 차갑지만 사실 마음은 엄청 다정하고 아이를 좋아하는 남자야. 태윤 씨를 덮쳐서 태윤 씨 닮은 아이를 낳으면 얼마나 좋아.”하예정이 실소를 터뜨렸다.“누가 보면 내가 애를 낳으려고 그러는 줄 알겠어.”그녀는 잠깐 멈칫하다가 나지막이 말했다.“저 사람 차가운 얼굴을 보면 덮쳐도 벗길 용기가 없어.”전태윤 같은 성격의 남자를 유혹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괜히 섣불리 나섰다가 그냥 뽀뽀만 하다 끝날지도 모른다.심효진이 입을 가리고 웃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태윤 씨 원래부터 차가운 얼굴이잖아. 아니면 술이나 잔뜩 먹일까?”그 뒤의 장면을 상상하던 하예정이 정신을 가다듬고 솔직하게 말했다.“태윤 씨 방은 나의 금지구역이야. 됐어, 그만 꿈 깨자. 하루하루 되는대로 살지, 뭐.”그러고는 전태윤과 주우빈에게 다가갔다.“이모.”신나게 놀던 주우빈이 고개를 들고 하예정을 불렀다. 하예정은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전태윤에게 말했다.“태윤 씨, 우빈이랑 조금만 더 같이 놀아줘요. 식사 준비하러 갈게요, 난.”전태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럼 아까 나한테 말하지. 나도 요리할 줄 알아.”“그 생각을 못 했네요. 다음에 왔을 때 바쁘면 그때 마음껏 부려 먹을게요.”그녀를 쳐다보는 전태윤의 눈빛이 그윽해졌다.‘마음껏 부려 먹겠다는 건 나한테 마음이 움직였다는 건가? 나랑 쭉
“갔다 왔다 하기도 불편하고 점심 쉬는 시간도 없어서 안 오겠대요. 회사에 구내식당이 있어서 회사에서 먹겠대요.”전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저녁에 처형이 퇴근해서 오면 적응할만한지, 괴롭히는 사람은 없는지 물어봐봐. 내가 노 대표한테 그 정도는 얘기할 수 있어. 만약 누가 처형을 괴롭히면 노 대표한테 얘기할게.”하예정이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이러니까 언니가 태윤 씨를 좋아하죠. 늘 태윤 씨한테 잘하라고 나한테 당부하거든요.”전태윤의 잘생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그녀의 언니 앞에서 늘 잘했다.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하예정은 점심을 간단히 준비했다. 다행히 전태윤은 맛있게 잘 먹어줬다. 그 모습에 하예정이 속으로 생각했다.‘돼지 내장을 안 먹고 파와 마늘, 고수를 싫어하는 것 말고는 뭘 해줘도 다 잘 먹네.’점심 식사를 마친 후 전태윤은 바로 가지 않았다. 설거지를 마치고 주방에서 나온 하예정은 아직 가지 않은 그를 보더니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태윤 씨, 오후에 출근 안 해도 돼요? 벌써 1시가 넘었어요. 전에는 1시쯤이면 회사로 돌아갔잖아요.”심효진과 조카의 모습이 보이질 않자 하예정이 계속하여 물었다.“우빈이랑 효진이는요?”“효진 씨는 마트에 물건 사러 갔고 우빈이도 따라갔어.”전태윤은 심효진이 두 사람에게 단둘이 있을 시간을 주려고 일부러 피해준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심효진이 김진우와 하예정을 붙여놓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그 생각에 전태윤은 심효진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겼다.“그래요.”하예정이 카운터 앞에 앉았다.“하예정.”전태윤이 머뭇거리다가 그녀를 불렀다. 하예정이 고개를 돌리자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이 입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가 입을 열기 전에 하예정이 걱정스럽게 물었다.“태윤 씨, 무슨 일 있어요?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얘기해요. 내가 도와줄 수도 있잖아요.”전태윤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사실 어려운 일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따지면 있었다. 아내에게 주려고 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