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은 고사하고 그녀의 친척마저 마중 나오지 않았다. 여운초가 사업을 손에 장악한 것을 보고 그녀의 아부를 떨러 간 것은 아닐까? 이제 감옥에서 나왔으니, 여운별은 가문의 사업을 다시 가져올 것이다. 그녀의 아빠가 경영했던 기업을 한낱 장님한테 빼앗길 수는 없다. 게다가 눈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이 회사를 관리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어쩌면 민 대표는 그저 여운초를 따르는 척하고 있는 중일 수 있다. 그녀와 그녀의 부모 모두 감옥에 들어가고 또 학교에 다니는 남동생이 있기에 할 수 없이 여운초를 도왔을 것이다. 지금 그녀가 감옥에서 나왔으니 민 대표는 어쩌면 그녀의 편에 돌아설지도 모른다. 민 대표는 그녀의 아빠가 배양한 사람이니 여운초를 진심으로 도울 리가 없다. 여운별은 몇 걸음 걸고 멈춰 섰다. 두 대의 차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그녀의 앞에서 멈췄다. 5, 60대 돼 보이는 낯선 늙은 얼굴이 그녀의 눈 안에 들어왔다. 사실 별로 늙진 않았으나 20대 초반인 여운별과 비기면 늙은 축에 속했다. “둘째 아가씨, 오늘이 출소일인 것을 알고 특별히 마중 왔어요. 샤워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여운별은 제멋대로인 성격에 총명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모르는 사람의 차에 탈 리가 없다. 그녀는 눈앞의 늙은 여인을 자세히 살폈다. 정말로 모르는 얼굴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면목 있는 사람 같지 않았다. 그녀의 친척도 아닌 것 같았다. “누구세요?” 여운별이 경계하며 물었다. 그녀는 조기 출소하였다. 방금은 그저 절친과 친척이 그녀의 마중을 오지 않았다고 푸념했을 뿐이다. 사실 그 누구도 그녀가 출소한다는 것을 모른다. ‘이 여자가 어떻게 안 거지?’게다가 특별히 마중 온 거라니. ‘누가 보낸 거지? 혹시 엄마가 바깥에 다른 세력을 가지고 있나?’“둘째 아가씨는 제가 누군지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제가 아가씨의 복수를 도울 수 있다는 것만 아시면 돼요. 동시에 저도
“신분과 목적을 알려주지 않는 한 전 차에 타지 않을 거예요.” 늙은 여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웃으며 답했다. “감옥 한번 갔다 오더니 성숙해졌네요. 제 남편은 정씨 성이에요. 전에 아가씨의 아빠와 몇 차례 같이 사업을 했어요.” 정씨? 여운별은 집안의 사업에 대해 잘 모른다. 그녀의 부모님이 어린 그녀와 사업상의 일을 얘기한 적은 극히 드물다. 그저 집에 돈이 많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 부모님은 그녀한테 다른 재벌 집 딸이 가지고 있는 건 다 사줬다. 심지어 그들이 없는 물건도 구해줬다. 가끔 아빠가 집안 사업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고 한 적은 있다. 아빠와 사업을 진행한 적 있다면 혹시 아빠와의 친분 때문에 그녀의 마중을 나온 건가? “정 사모님은 제가 오늘 출소하는 것을 어떻게 아셨나요?” 늙은 여인은 여전히 미소 지으며 답했다.“사람을 시켜 몇 번 알아본 끝에야 겨우 아가씨가 오늘 출소한다는 소식을 얻을 수 있었어요. 저희는 여 대표님과 몇 번 같이 사업 하여서 친분이 있어요. 여 대표님이 감옥에 들어가기 전 우리한테 부탁했어요. 그간의 정을 봐서 자신의 아들딸 좀 잘 부탁한다고요.” “동생은 아가씨의 큰 언니와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같이 전 대표의 결혼식에 참가한 뒤 학교로 돌아갔어요.” “아가씨 가문의 불법 사업들은 다 막대한 벌금과 함께 문을 닫았어요. 합법적인 사업들은 큰 아가씨의 손에 들어갔고요.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으니 사실상 한동호 씨가 회사를 관리하고 있어요.” 여씨 가문의 일은 조금만 조사해 보면 알아낼 수 있었다. 늙은 여인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여운별도 조금은 알고 있었으나 그녀는 늙은 여인의 말을 듣고도 머뭇거리며 물었다. “절 어디로 데려가실 생각이세요?” “먼저 차에 타도록 하세요. 제가 아가씨를 어디에 팔 것도 아닌데요. 그저 여 대표와의 친분이 생각나서 둘째 아가씨한테 밥 한 끼 제대로 먹이려고요. 그 후에 푹 휴식하고 옷도 깨끗한 것으로 바꿔입어요. 기력 회복하여야 여씨 가문으로 돌아가
아빠와의 친분을 봐서 마중 나왔다는 말은 그저 핑곗거리에 불과하였다. 여운초와 하예정때문에 그녀는 지금 꼴이 말이 아닌 처지에 놓였다. 그녀를 지키려 했던 부모님도 여운초때문에 감옥에 들어갔다. 여운초 그년을 씹어먹어도 분이 삭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절대 자신의 두 원수가 전씨 가문의 첫째와 둘째 사모님이 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다. 그녀의 친남동생인 여천우는 어릴 적부터 여운초와 친하게 지냈다. 오히려 친누나인 여운별과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운초를 괴롭힌다고 항상 여운별을 지적하였다. 여운별은 여천우가 그녀와 손잡지 않을 거란 것을 알았다. 그녀는 아직 어리고 인맥도 없으니, 복수 하려면 하는 수 없이 다른 누군가와 연합하여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정 사모님이 하는 얘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하예정을 대적할 수만 있다면야 상관없다. 적의 적은 친구인 법이다. 그리하여 여운별은 정 사모님의 차에 올라탔다. 정 사모님은 기사가 출발하도록 하였다. 여운별이 물었다. “저의 두 큰고모는 어떻게 되셨는지 아세요? 저 복수할 거예요. 우리 집의 모든 것을 다 가져올 거라고요. 하지만 저 혼자서는 어림도 없어요. 제 친남동생은 절 도우려 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저의 두 큰고모는 아빠와 사이가 좋으니 절 도우려 할 거예요.” 그녀의 두 큰고모의 아들들 모두 여씨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당시 그녀의 아빠가 안배해 준 직무이다. 한 집안 사람이니 그녀를 도와주려 할 것이다. 두 큰고모도 여운초를 탐탁지 않아 했다. 여운초가 사업을 장악한 것을 안 이상 가만히 손 놓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가씨의 두 큰고모도 별로 큰 도움을 주진 못할 거예요. 당시 여 대표가 감옥에 들어가자 아가씨의 사촌 오빠들이 대신 회사를 관리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큰아가씨와 민 대표가 연합하여 그들을 처리했어요.” “그 후 아가씨의 사촌 오빠들은 사직당하고 여씨 기업을 떠났어요. 사촌오빠와 두 큰고모가 큰아가씨를 찾아가서 귀찮게 했어요. 그러자 큰아가씨
반 시간 후 정 사모님은 여운별과 함께 호텔로 갔다. 호텔은 크지 않았고 시설도 고급스럽지 않았다. 여운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나 속으론 정 사모님이 쪼잔하다고 불평했다. 그녀를 위해 5성급 호텔에 방을 잡지 않았다고 말이다. 정 사모님은 그녀한테 방을 잡아준 뒤 차에서 가져온 백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 “이건 새 옷이에요. 먼저 방으로 돌아가 샤워부터 하세요. 그리고 옷 갈아입고 내려와서 같이 밥 먹으러 가요.” 그녀는 옷과 방 카드를 건네받은 뒤 방으로 올라갔다. 비록 감옥생활을 했었다 해도 어릴 적부터 호화로운 생활을 해왔던 그녀였기에 솔직히 이 호텔이 성에 차지 않았다. 그녀는 간단하게 샤워한 후 머리를 감았다. 그 후 정 사모님이 사 온 새 옷으로 바꿔입고 머리를 말렸다. 거울 속 자기 모습을 한참 쳐다본 후에야 그녀는 머리를 묶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살이 많이 빠졌지만 아직 젊었기에 홀쭉해져도 보기 좋은 미인에 속하였다. “여운초, 하예정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녀는 거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다짐했다. “내가 당한 것의 천배를 되갚아줄 거야.”여운별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정 사모님이 1층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내려오자 정 사모님은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한테 다가갔다. “우리 밥 먹으러 가요.” “방금 잡은 방은 묵든지 아니면 취소하든지 편한 대로 하세요.” “정 사모님이 사주신 새 옷 고마워요. 이 방은 취소할게요. 전 제 집인 여가 저택으로 돌아가려고요. 여운초 그 장님이 저를 내쫓기야 하겠어요?” 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가서 여운초한테 시비 걸고 싶었다. 정 사모님은 그녀를 스윽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호텔에서 나온 뒤 그녀는 정 사모님의 차에 올라탔다. 정 사모님이 여운별을 데리고 간 식당도 고급 레스토랑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페스트 푸드 가게에서 메뉴 몇 가지를 주문하였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정 사모님이 그녀에게 말했다.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라고 제
여운별의 눈가에는 독기가 스쳐 지나갔고 이내 정현숙을 쳐다보며 말했다.“그곳은 나쁜 버릇을 고치는 곳이죠. 저와 협력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제가 정보를 알아 오면 보수는 어떻게 계산해 줄 거예요?”여운별은 직업이 없다.감옥에 들어간 뒤로 그녀의 물건은 모두 부모님께 보내졌지만, 부모님도 감옥에 들어갔다. 아마도 여운별의 휴대폰과 카드, 차 열쇠 등은 모두 여운초에게 있을지도 모른다.여운별은 여운초의 손에서 휴대폰과 같은 물건들은 가질 수 있었지만, 회사 일은 당분간 끼어들지 못할 것이다.여운별은 그룹에 관한 일은 전혀 알지도 못한 데다 한 대표와 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여씨 가문은 또 여운초에 의해 오랫동안 운영되고 있었고 따라서 그룹의 재산 또한 여운초가 짊어지고 있다.여운별은 앞으로 여운초에게 돈을 달라고 할 생각을 하더니 괴로워 토할 것만 같았다.정씨 사모님 정현숙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건넸다.“하예정 씨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서 제때 저에게 전달해 주시면 돼요. 하예정은 지금 전씨 가문의 큰 사모님이에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 모두 시선을 끌기 쉬웠기에 이 일은 아가씨에게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하예정 씨의 소식을 알아보는 것 외, 하예정 씨와 관계 있는 전 대표님과 성씨 가문의 사모님 그리고 친언니와 같은 사람들의 모든 일을 알아내는 대로 전부 저한테 알려주세요.”“우리가 보복하려면 반드시 상대방의 모든 일을 똑똑히 알아내야 기회를 노려 한방에 무너뜨릴 수 있어요. 그리고 보수에 관해서 아가씨는 얼마를 원하세요?”여운별은 이내 대답했다.“소문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일단 전 대표님이 발견하게 된다면 제가 위험에 처할 수 있거든요. 그 뜻은 제가 이 일을 목숨 걸고 한다는 뜻이죠.”“사모님은 분명 저를 푸대접하지 않으실 거라고 믿어요. 함께 협력하더라도 서로한테 성의를 보여줘야 하잖아요. 저에게 한 달에 1억 원만 주세요. 이런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도 청해야 하는 일이라 돈을
여운별은 속으로 자신이 여씨 가문의 모든 것을 빼앗는다면 돈이 매우 많아질 텐데 정현숙이 주는 그깟 2억 원이 대수겠냐고 비방했다. 그녀는 하예정을 미워하면서 하예정이 불행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여운별은 그녀가 하예정을 괴롭히고 싶은 사람을 찾으려면 수소문하면 곧 나타날 것으로 생각했다. 심지어 직접 나설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그녀는 이내 대답했다.“제가 증명해 드리죠. 단지 제가 지금 막 나와서 예전의 핸드폰과 은행 카드 모두 여운초 손에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제가 운초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운초도 저한테 돌려주지 않을 거예요. 제가 지금 돈이 좀 필요하거든요.”정현숙은 카드를 꺼내더니 그 카드를 여운별 앞에 놓으며 말을 했다.“그래요. 이 카드 안에 600만 원이 들어있어요. 금방 나왔으니 일단 이 돈으로 먼저 생활하세요.”“식사하시고 여씨 가문으로 아가씨의 모든 것을 돌려받으러 가보세요. 아가씨가 가지고 있던 것을 되돌려 받아야죠. 적어도 휴대폰과 은행 카드는 돌려받아야 할 거 아니에요.”여운별은 은행 카드를 집어 들며 물었다.“비밀번호는요?”“8자 8개요.”여운별은 은행 카드를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정현숙은 매우 인색했다. 여운별에게 겨우 600만 원밖에 주지 않았다.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여운별은 감옥에서 금방 나온 터라 일전 한 푼 없었다. 이 600만 원은 그녀의 일시적인 생활 비용을 해결해 줄 수 있다.여씨 가문에 돌아가서 그녀의 모든 것을 되찾게 된다면 돈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여운별은 자신의 집에 실제로 얼마의 자산이 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200억대의 재산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요컨대,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돈이 부족해 본 적 없었고 원하는 물건도 마음대로 가졌다.여운초처럼 집에 일하지 않으면 밥도 못 먹을 정도로 하인만도 못한 살림을 하지 않았다.“제 연락처입니다.”정현숙은 또 여운별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네주었는데 그 명함 위에는 정현숙의 전화번호만 있을 뿐 다른 글씨
여운별은 이미지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 탁자 위 음식을 모두 먹어치웠다.정현숙은 얼마 먹지 않았다.정현숙은 미소를 지으며 여운별이 허겁지겁 음식을 삼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여운별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만족한 듯 휴지를 꺼내 입을 닦았다.정현숙이 물었다.“혼자 돌아가시겠어요? 제가 사람 시켜 모셔다드릴까요?”“택시 타고 갈 테니 택시 요금 좀 내주세요.”“네, 그럼 택시 타고 가세요.”정현숙은 대답하면서 현금 20만 원을 꺼내 여운별에게 건네며 말했다.“이 돈으로 택시 타세요.”여운별은 그 돈을 건네받았고 잠시 후 일어나면서 정현숙에게 말했다.“밥을 사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 우리가 즐겁게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래요.”정현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유쾌하게 일할 수 있기를 바래요.”여운별이 자리를 떠났다.정현숙은 테이블에 앉아 여운별이 택시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 나서야 계산대에 가서 계산하고 패스트푸드점에서 나왔다.정현숙의 부하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오른 정현숙은 조수석 남자에게 지시했다.“사람을 시켜 여운별 씨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지켜보라고 하세요. 그리고 기회를 봐서 도와주기도 하고요. 여운초 씨가 여씨 가문을 계속 장악하게 해서는 안 되니까요.”“네.”조수석에 있는 남자는 관리를 아주 잘한 중년 남자였다.그와 동시에 여씨 가문의 별장.로비에서 여운초가 소파에 앉아있었고 정겨울이 그녀의 눈을 검사해 주며 맥도 짚어주었다.옆에 서 있던 전이진은 정겨울에게 방해가 될까 봐 긴장한 채로 아무것도 못 하고 쳐다만 보았다.정겨울은 처방전을 쓰기 시작했을 때, 전이진은 그제야 걱정스레 물었다.“정 선생님, 운초의 눈은 어때요? 회복된 거예요?”정겨울이 처방전을 쓰면서 대답했다.“아직 완치되지 않았어요. 치료를 계속하지 않으면 보일 수는 있겠지만 더 멀리는 보이지 않을 거예요. 근시처럼 멀리 있는 물건들이 희미하게 보일 거라는 의미죠.”“치료를 좀 더 받아야 시력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어
정겨울은 처방전을 다 쓴 뒤 처방을 전이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지난번에 제가 보내온 약이 아직도 있죠? 이 처방전대로 약을 지어서 그 약과 함께 복용하세요. 이 약들을 다 복용하신 뒤 제가 다시 운초 씨에게 맥을 짚어드리죠. 평소에 시간이 있으면 운초 씨를 모시고 바깥의 녹색 풍경을 자주 보러 나가세요.”“감사합니다.”전이진이 감사 인사를 했다.여운초가 매일 마셔야 하는 한약은 전이진이 직접 나가서 잡아 온 것이다. 그리고 약을 지어 온 뒤로 정겨울에게 한 봉지씩 검사하도록 했고 정겨울이 냄새를 맡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다시 여운초에게 약을 가져다주었다.정겨울은 감탄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환자들에게 치료해주면서 전이진처럼 조심스럽고 세심하며 배려심이 깊은 환자 가족을 처음 만났다고 했다. 정겨울은 두 사람 앞으로의 삶은 분명 행복하고 달콤할 것이라고 여겼다.여운초는 고생 끝에 단맛을 보는 전형적인 인물이었고, 전이진을 만나기 전에는 엄청나게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한동호가 몰래 그녀를 도와준다고 해도 겉으로는 그야말로 비참하게 살았다. 어렸을 때 받은 고통과 학대는 정말 말할 것도 없었다.“선생님, 운초의 눈을 씻는 약초가 떨어졌는데 계속해서 씻어야 할까요?”여운초의 눈을 씻는 약초는 정겨울이 직접 재배한 약초로 밖에서 구하기 매우 어려웠다.전이진은 정겨울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상태로 보면 더는 씻을 필요 없이 약만 먹으면 충분해요. 그리고 밖으로 나가셔서 먼 곳을 자주 바라보셔야 해요. 그러면 아마 설 쇠기 전에 정상인의 시력으로 회복할 수 있을 거예요.”“참, 근시는 아니었죠? 원래 근시라면 정상적인 시력을 회복할 수 없어요.”여운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근시가 아니었어요.”정겨울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럼 설이 지나고 정월이 되면 제가 다시 몸조리해 드릴게요. 결혼 날짜는 정했어요?”그들 결혼식 전에 여운초의 몸이 잘 조리될 수 있을 것이다.“정하긴 했지만, 아기를 바로 가질 계획은 없
전태윤은 하예정에게 심효진이 가끔 소정남의 팔을 물어뜯고 싶다고 말하길래 소정남이 몰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고 알려주었다.하예정은 의아했다.그녀는 닭 다리만 뜯어먹고 싶을 뿐 팔을 물어뜯을 생각은 해본 적 없다.소지훈은 소정남 부부의 달콤한 생활을 무척 부러워하며 자신과 정윤하의 미래가 소정남 부부처럼 행복하기를 바랐다.소정남과 통화를 마친 소지훈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단도직입적으로 고백할까? 아니면 이따가 윤하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해 줄까?’소지훈은 꽃다발을 선물하면 정윤하가 그 꽃다발을 먹지도 못하는 데 돈 낭비만 한다고 꾸지람할까 봐 걱정했다.한참 고민하던 소지훈은 결국 인터폰으로 전화를 걸어 회사 비서에게 지시했다.“장미꽃을 사고 싶은데 지금 저를 도와 나가서 사 오세요. 제가 퇴근하면 가져갈게요.”이런 임무를 받은 비서의 얼굴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소지훈이 정윤하를 좋아하는 건 눈 밝은 사람이라면 전부 알 수 있었으니까.단지 정윤하만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그 꽃다발은 정윤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꽃 사러 가겠습니다.”“그래요.”소지훈은 얼굴을 붉혔지만, 여전히 담담한 척 대답했다.그는 이런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어쩐지 쑥스러웠다.소지훈은 여자에게 꽃을 보낸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번 성소현에게 구애하는 척할 때 하루건너 그녀에게 꽃을 선물하곤 했다.꽃집 사장님에게 부탁해 꽃을 배달한 적도 많았고 직접 선물한 적도 있었다.아마 소지훈은 성소현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성소현에게 꽃을 선물한다고 해서 창피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는 단지 연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정윤하는 다르다. 정윤하는 소지훈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여자로서 결혼하고 싶은 상대였다.그는 엄청나게 긴장했고 또 매우 신중했다.정윤하에게 꽃을 선물하는 의미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기에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그만 빨개지고 말
심효진도 맞장구쳤다.“그럼. 나야 당연히 안목이 뛰어나지. 예정이가 처음에 당신을 나에게 소개해 주었을 때 내가 정남 씨에 인상이 깊었거든. 태윤 씨 곁의 능력자라면서? 내가 정남 씨와 같은 업계에 있지 않지만 그래도 당신의 높은 명성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어.”소정남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난 당신이 날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어. 우리 두 사람 소개팅할 때 순조롭지 않은 거로 기억했는데.”“그래? 아무튼, 난 정남 씨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나도. 당신 성격도 나랑 너무 잘 어울려. 우리 두 사람 다 구경거리를 좋아하잖아. 여보, 나는 처음에 당신이 가십거리를 듣기 위해 나와 함께 있는 줄 알았어.”심효진은 그를 힐끗 쳐다보면서 해명했다.“비록 내가 가십거리를 좋아하지만, 평생의 큰일을 어찌 그런 일 때문에 당신에게 시집갈 수 있겠어? 당신을 사랑하면 결혼하는 거고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결혼하지 못하지. 사랑은 역시 서로 사랑해야 행복한 법이야.”소정남 부부의 연애사에는 큰 사고 없이 매우 순조로웠다.약간의 비바람도 연적도 없었다.두 집안의 어르신들은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특히 소씨 집안의 어르신들은 심효진을 매우 어여뻐 했다. 두 집안이 결혼 얘기를 나눌 때 소씨 가문의 사람들은 심효진을 연신 칭찬했지만, 소정남은 자랑할 곳이 아무 데도 없다고 나무랐다.소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심지어 소정남이 심효진보다 못하다고 여겼다.“얼른 운전해. 나 한강에 가고 싶어. 가서 한 바퀴 돌다가 올래. 곧 날이 어두워질 텐데, 집에 늦게 집에 돌아가면 당신 사촌 누나가 또 뭐라고 잔소리할 거야.”최서우는 소정남의 사촌 누나이자 소씨 가문에서 영양사로 일하고 있다.심효진도 최서우가 그녀를 걱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예전에 최서우는 심효진이 소정남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싫어했지만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또 소정남 어머니의 설득을 들은 최서우는 그제야 심효진에 대한 태도가 많이 좋아졌다.최서우는 소정남을 많이
“너도 어쩌다 휴가 냈는데 제수씨랑 잘 쉬어. 그럼 나도 가봐야겠어. 저녁에 윤하 씨랑 저녁 약속이 있거든.”소정남은 소지훈이 정씨 가문의 저택에서 산다는 것을 알고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형이 그 집에 살게 되었는데 정씨 가문의 가족들에게 잘해줘. 가족들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윤하 씨가 망설인다고 해도 그 집 식구들이 윤하 씨에게 형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할 거야.”특히 그의 미래의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잘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소정남은 심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소지훈은 자신 있게 말했다.“심씨 집안 가족들은 전부 날 엄청 좋아하거든.”윤미연은 이미 소지훈을 한 집 식구로 여기고 있다. 만약 소지훈이 정윤하와 함께 음식을 많이 먹게 되면 윤미연은 한쪽으로 따뜻한 차를 끓여 주면서 한쪽으로 그를 꾸지람하곤 한다.소지훈이 처음 그 집으로 들어갔을 때의 공손함은 온데간데없었다.하긴, 정윤하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소지훈의 속내를 발견한 윤미연은 그를 진작 자신의 사위로 생각하고 있었다.한집안의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윤미연은 당연히 꾸지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내 생각도 그래. 난 우리 형을 믿거든. 그럼 힘내. 나도 가봐야겠어. 우리 효진이와 함께 드라이브하러 갈 거야.”“운전 조심해. 제수씨 임신했잖아. 내 조카를 다치게 하지 말고.”소지훈은 신신당부했다.“알았어.”소정남은 늘 조심스러웠다.물론 소정남도 몰래 심효진을 데리고 바람을 쐬러 나온 것이기 때문에 만약 그의 부모님께 알려지면 혼나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소정남도 심효진을 잘 돌보지 못할까 봐, 너무 빨리 운전하면 그녀를 넘어뜨릴까 봐 항상 걱정하며 다녔다.심효진의 배 속의 아기는 그의 혈육일 뿐만 아니라 소씨 집안 어른들의 작은 보물이다.외출하기 전에 소정남의 사촌 누나 최서우는 심효진을 데리고 밖에서 식사하지 말라고 했다. 밖에 음식이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건강에 안 좋다면서 말이다.소정남은 그제야 사랑하는 아내의
“그... 그 당시 제수씨한테 어떻게 고백했어? 네가 고백할 때 제수씨가 받아들였어? 거절한 적이 있어? 거절당하면 창피하지 않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어? 날 비웃지 마. 나도 살면서 처음으로 여자를 좋아해 봐서 그래. 경험이 전혀 없거든. 태윤 씨 부부의 재미있는 연극을 본 적은 있지만, 그들은 나와 다르잖아. 그들은 이미 그때 혼인 신고했을걸.”소지훈은 이런 감정적인 일로 사촌 동생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 창피하고 소씨 가문의 장남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소정남에게 물어보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일반적으로 소지훈이 다른 사람의 사적인 일에 대해 알아보러 다녔지, 그의 개인적인 일이 남들에게 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소정남이 바로 대답했다.“형, 정말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형이 지금 윤하 씨에게 구애하고 있잖아. 내가 보기에 형이 윤하 씨에게 무척 자상하게 대해주는 것 같던데 윤하 씨가 바보도 아닌데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을걸. 어쩌면 형이 그녀에게 고백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나와 효진이는 무척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어왔어. 태윤이가 주선해 줬는데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친 순간부터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서 지금까지 순조롭게 걸어왔어. 난 거절당한 적도 없어. 우리는 연애부터 결혼까지 정말 순조로웠거든.”“형은 둔한 것도 아닌데. 평소 윤하 씨와 지내면서 형한테 어떤 태도도 대했어? 그녀도 형에게 태도가 괜찮았다면 분명 형한테 마음이 있다는 증거일 거야. 여자들은 수줍음을 잘 타서 먼저 말하기 거북해하거든. 그러니 우리는 남자로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먼저 가서 고백해야 해. 먼저 한 걸음 다가서야 형과 윤하 씨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될 거야. 난 형처럼 훌륭한 남자가 윤하 씨의 마음을 훔치는 일은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봐. 윤하 씨도 아마 우리 형처럼 훌륭한 남자를 본 적 없을걸.”소지훈은 매우 괴로워하며 말했다.“윤하 씨는 나를 친구로 생각해. 나를
“다 좋대. 오늘 오전에 병원으로 검사를 받았는데 아기가 잘 자라고 있대. 초음파를 찍을 때 옆에 서서 봤는데 아기가 움직이더라니까. 그런데 효진이는 느끼지 못한대.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일반적으로 16주 때부터 태아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해.”소지훈은 마음속으로 움직이지 못하면 하늘나라로 간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목 안으로 삼켰다. 그러나 그도 처음 아빠로 되는 소정남을 이해해 주었다.만약 소지훈도 정윤하와 결혼해서 아기가 생기게 되면 그도 소정남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하지만 그건 아직 머나먼 일이다. 그는 아직 고백도 안 했다.언제쯤이면 결혼하여 애 아빠로 될 수 있을지!마흔이 되기 전에 아빠가 되었으면 좋을 텐데.어떤 사람들은 일찍 결혼하고 일찍 아이를 낳아 40대 초반부터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소지훈의 소원은 단지 40대 전에 아빠로 되는 것뿐이다.소지훈은 자신이 바로 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를 낳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형, 무슨 일 있어?”소정남과 소지훈은 사촌 관계로 사이가 좋지만, 평소 별일 없을 때면 서로 연락이 뜸했다.각자 너무 바쁜 생활을 보내기 때문이다.소지훈이 먼저 전화한 것을 보니 분명 무언가 일이 있을 것이다. 그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관성에서 멀리 떨어진 소정남은 곧바로 차의 속도를 줄여 길가에 차를 멈추어 세웠다.조수석에 앉아있던 심효진이 물었다.“무슨 일이 생겼대?”소정남은 아직 무슨 일인지도 몰랐기에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형, 우물쭈물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해. 이렇게 뜸 들이니 내가 너무 무섭잖아.”소지훈은 소씨 가문의 장남으로서 관성에서 신과 같은 존재였다.그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극히 드물기에 갑자기 우물쭈물하는 소지훈을 본 소정남은 무척 놀랐다.“정남야. 나... 좀 부끄러운데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어.”“뭐가 부끄러울 게 있다고. 형제끼리 못할 말이 뭐가 있어. 설마 윤하 씨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
소지훈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무슨 일이든 다 하면 저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뭐해요? 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죠. 제가 낮에 회사로 가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충분한데.”관성에 있을 때면 그는 열흘이나 보름에 한 번 회사에 들아갔다. 그리 회사의 크고 작은 일들은 기본적으로 회사 운영팀에게 맡겼다.소지훈은 특별히 중요한 일이 일어나야만 회사에 한 번 돌아가곤 했다.그처럼 바쁜 사람이 어찌 매일 회사에 돌아올 수 있겠는가!소지훈은 사업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일에도 관여해야 했다.소균성은 일찌감치 은퇴하는 바람에 사실상 소지훈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소씨 가문의 대표가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해결하러 다녔다.“마치 아저씨가 출근하면 남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처럼 말하네요. 그 회사는 아저씨 회사이고 벌어들인 돈도 아저씨 지갑으로 들어갈 뿐 회사 직원들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만약 저녁에 대접할 일이 있다면 집에 못 들어올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저한테 전화하시면 제가 문을 열어드리면 되는데.”윤미연은 일반적으로 밤 11시쯤에 대문을 잠갔다.밤 11시 이후에 귀가하면 정씨 가족에게 전화해서 문을 열라고 부탁해야 했다.소지훈은 재빨리 대답했다.“정말 접대할 필요 없이 중요한 일은 다 처리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출장을 다녀왔는데 아직 처리하지 못했다면 제 능력 문제라고 봐야죠. 바쁘시죠? 먼저 일 보세요. 퇴근하고 바로 갈게요.”“네. 저도 수업이 있어요. 그럼 저녁에 봐요.”“저녁에 뵙겠습니다.”소지훈은 결국 그가 정윤하를 좋아한다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전화상으로도 말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녀 앞에서는 더 감히 말하지 못했다.고백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소지훈이 정윤하에게 구애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아챌까 봐 장미 한 송이조차 선물하지 못했다.사실, 소지훈은 매일 몇 시간씩 정윤하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그녀를 존중해주고 세심하게 배려했다.이 또한 그가 정윤하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
정윤하가 웃으며 소지훈에게 물었다.“맞아요. 방금 큰 건을 성사시켜 회사에 수십억 이윤을 얻었어요. 제가 저녁에 윤하 씨 가족분들에게 축하의 의미로 음식을 대접할게요.”정윤하가 말을 이었다.“괜찮아요. 우리 오늘 식자재를 많이 사서 집에 가져가서 요리해 먹으면 마찬가지예요. 호텔에 가서 한 끼를 먹으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께서 또 마음 아파하실 거에요. 호텔에 가서 한 끼 먹을 돈으로 장을 보고 집에 가서 요리해 먹으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 먹을 수 있다고 늘 말씀하시거든요.”소지훈은 윤미연이 입으로만 잔소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말 큰 호텔에서 그들에게 식사 한 끼를 대접하면 윤미연은 분명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꾸미고 호텔로 달려갈 것이다.윤미연이 만약 잘 꾸미고 정윤하와 함께 있으면 어쩌면 자매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소지훈이 말을 건넸다.“괜찮아요. 저는 이미 이모님 잔소리에 적응했어요. 돈을 벌면 마땅히 써야죠. 많이 벌어서 화끈하게 써야 자신에게 떳떳하죠.”소지훈이 연성에 방금 왔을 때부터 정씨 가문의 저택으로 들어가 살았다. 처음에는 정씨 가족들은 소지훈이 단지 3일에서 5일일 정도 머물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이미 소지훈을 한집안 식구로 생각한 윤미연은 그가 잘못할 때면 여전히 잔소리를 퍼붓곤 했다.“무슨 일이세요?”정윤하가 소지훈에게 전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소지훈이 그녀에게 전화를 먼저 걸었다.소지훈은 정윤하가 자신에게 도움 청할 일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그녀에게 걱정스레 물었다.정윤하는 웃으며 대답했다.“별일은 없고요. 우리 학생들이 아저씨가 언제 시간 나면 놀러 오냐고 물으며 아저씨가 보고 싶대요.”관성에 있을 때, 소지훈은 정윤하와 십여 명의 학생들을 초대하여 놀면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도 하고, 선물을 사주기도 했다.그리고 연성에 와서도 소지훈은 학생들이 무술을 연마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대접하기도 했다.학생들은 그를 무척 좋아했기에
소균성은 김연수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었지만, 그녀는 휴대전화를 받아보더니 말을 꺼냈다.“이 자식 이미 전화를 끊었어요. 나쁜 놈, 내 전화를 끊다니.”막상 통화를 끊은 광경을 보자 소균성은 또 화가 나 참다못해 욕 몇 마디를 내뱉었다.“이놈 때문에 속이 썩여. 정말! 예전에 맞선 상대를 그렇게 많이 주선해 주었는데도 싫어하더니, 결국 문제가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잖아. 겨우 누군가 구해줄 희망이 생겼는데도 왜 이렇게 질질 끌고 있나 몰라. 늘 깔끔하게 일 처리하던 애가. 어휴! 고백, 프러포즈, 결혼, 출산, 그렇게 힘들대?”곁에서 지켜만 볼 수 없는 소균성의 마음이 더 조급해 났다.김연수가 말을 이었다.“지훈이가 연애도 경험도 없어서 지금 탐색 중일 거예요. 애가 지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잖아요. 어쨌든 연성에서 정윤하 씨 곁을 지키고 있으니 다른 남자가 감히 가까이하지는 못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결혼은 한평생의 큰일인데, 급해한다고 해도 소용없는걸요.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해야만 결혼 생활도 행복한 법이니까요. 우리도 상대방을 강제적으로 우리 집으로 시집오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럼 사돈이 아니라 원수로 되는 거잖아요.”정씨 가문은 소씨 가문과 비교할 수 없지만, 정합 도장은 연성에서 오랫동안 운영했기에 그들이 가르친 제자 중 업계에서 성공한 인물도 있게 되기 마련이다. 만약 쌍방이 서로 원한을 품게 되면 누구도 이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게다가 소씨 가문은 미래의 사돈을 어찌 감히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정윤하는 소지훈이 없으면 재혼할 수 있지만, 소지훈은 정윤하가 없으면 재혼할 수도 없다.“여보, 우리 한 번 연성에 가볼까요?”소균성은 김연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그 자식이 아직 고백도 안 했는데, 우리가 간다고 해도 여행으로 가장할 수밖에 없는데 가도 소용없어. 가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우리가 연성으로 여행을 가는 척하고 사돈 앞에 얼굴을 내밀어 우리 가족이 화목하다는 것을 알게 하면 나중에 우리
운명적인 여신과 함께 지내다 보니 소지훈은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또한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놀라게 할까 봐 너무 두려웠다.하늘도 땅도 두렵지 않던 소지훈은 정윤하 앞에서는 그야말로 겁쟁이처럼 모든 것이 두려웠다.“지훈아, 한 가지만 물을게. 나랑 네 엄마가 언제쯤이면 사돈을 뵈러 갈 수 있어? 결혼 예물도 몇 번이나 준비했는지 몰라. 우리가 뭔가 부족한 것이 생각나면 바로바로 보충했거든. 하나라도 빠뜨릴까 봐 걱정하고 있는데.”소균성은 마음이 급하기만 할 따름이다.그의 장남도 나이를 반올림하면 마흔이라 노동명처럼 관성의 노총각으로 되는데 조급해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아버지, 아직 윤하 씨에게 고백하지 않았는데, 무슨 혼사에 관한 얘기를 벌써 꺼내려고 하세요?”“시간이 이렇게 오래도록 지났는데 아직도 고백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된 거야? 윤하 씨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기라도 한 거야? 아니면 네가 감히 고백조차 하지 못했던 거야?”“아버지만 시간이 길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사실 계산해 보면 그리 시간이 길지도 않아요. 제가 연성에 온 지 한 달도 안 됐거든요. 윤하 씨는 아직 저를 친구로밖에 생각 않아요. 지금은 아직 고백할 수 없어요.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소균성은 전화기 너머로 답답한 듯 말을 내뱉었다.“네 담력은 어디로 튄 거야? 너도 무서울 때가 있었어? 남들은 첫눈에 반하면 바로 고백하던데 넌 우리 미래의 며느리랑 알고 지낸 지도 벌써 두세 달 넘어가는데 아직도 고백하지도 못하고 있어? 소지훈! 넌 장가가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빨리 손주를 안고 싶거든.”소지훈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버지, 저도 가고 싶죠. 그런데 윤하 씨가 제 감정을 알고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두려워요. 게다가 윤하 씨 성격이 너무 활발해서 남자들을 친구로 여기거든요. 그리고 저도 그녀보다 나이 차이가 너무 나서...”“나이는 문제가 아니야. 네가 윤하 씨와 고백하지도 않는데 윤하 씨가 어떻게 네 맘을 알겠어? 그러니까 널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