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건 인정해요. 저희 어머니도 가끔 매운 음식들로 저희 입맛을 돋우게 만드시거든요. 어머니께서는 항상 매운 걸 많이 먹으면 몸에 열이 많아진다고 저희더러 냉차 같은 걸 좀 마시라고 하셨어요.”정윤하는 웃으며 대답했다.“글쎄요, 저는 매운 걸 먹어도 몸에 열이 많아진다는 느낌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어요. 관성 사람들은 뭘 하든 냉차를 마시라고 하는 것 같아요. 냉차가 만능인 것처럼요. 냉차 한 컵이면 해결 못 할 일이 없을 것처럼 말이에요.”연성 사람들이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자극적으로 먹으며 면 요리와 만두를 좋아하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하지만 윤미연은 광동에서 왔기 때문에 음식을 담백하게 먹었다. 그런 윤미연의 영향을 받아 정가네 음식도 담백해진 것이다.윤미연도 본인만 생각할 정도로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남매와 남편을 위해 이틀에 한 번씩 두 가지의 매운 음식을 준비해주곤 했다. 그러나 매운 음식을 할 때마다 고추의 매운맛에 재채기하고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는 윤미연을 보는 정 관장도 마음이 아팠다.결국 정 관장은 아내더러 매운 음식을 하지 말라고 했고 남매에게 매운 것이 먹고 싶으면 밖에서 포장해오라고 했다.“윤하 씨 어머니께서 우리 지역 사람이셨군요! 어쩐지 윤하 씨 어머님을 보면 이상하게 더 정겹더라고요. 저랑 동향인 이셨군요.”소지훈은 불현듯 깨달은 모양이었다.소지훈은 첫 만남에 윤미연의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기가 조심스러웠다. 설령 이미 알고 있었더라도 말이다.윤미연의 친정집은 관성에서 멀리 떨어진 광동의 작은 군에 있었다. 고속철도도 없고 공항도 없었기에 한 번 친정집으로 돌아가려면 자가용으로 운전해서 간다고 해도 며칠씩 가야 했다.정윤하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향 사람은 고향 사람을 알아보나 봐요. 저희 어머니도 지훈 씨에게 큰 호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지훈 씨를 엄청나게 좋아하더라고요.”사실 윤미연은 두 아들이 집에 여자를 데려오나 딸이 남자를 집에 데려오나 모두 좋아했다.
해가 지고 다시 날이 밝으며 밤낮이 바뀌기를 반복하니 이틀이란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오늘은 관성 재벌 전씨 가문의 도련님 전태윤이 그의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다.서원 리조트는 대문을 열어젖히고 각 시에서 오는 상업계 거물들과 유명인사들을 열렬히 맞이했다.관성에 온 손님들은 보통 먼저 서원 리조트로 간다. 그리고 나서는 전씨 가문에서 그들에게 안배해준 전 씨 그룹 산하의 호텔에서 묵게 된다.관성 호텔은 며칠 전 공고를 내보냈다. 전태윤의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은 외부 영업을 하지 않고 오직 전씨 가문의 손님들에게만 호텔을 제공한다고 말이다.관성 호텔은 오늘 결혼식 피로연이 끝난 뒤 내일에야 정상영업을 회복할 것이다.해도 뜨지 않은 이른 아침부터 하예정은 언니 때문에 잠에서 깼다.전태윤이 보낸 고급 화장 전문가가 이미 도착해 하예정이 깨면 임산부에게 어울리는 가벼운 화장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어젯밤 조금 흥분한 나머지 잠을 설쳤기 때문에 하예정은 무척이나 피곤했다.하예정을 보러 온 절친들도 늦게까지 수다를 떨다가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언니가 깨워 마지못해 눈을 뜬 하예정은 눈을 비비며 밖을 보니 마침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하예정은 다시 눈을 감고는 중얼거렸다. “언니 나 좀만 더 잘게. 난 그냥 가볍게 화장만 하면 되니까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야. 화장 전문가분더러 먼저 뭐 좀 드시라고 해.”하예진은 이불을 걷으며 말했다.“너는 가뜩이나 일찍 나가야 하는데 지금 일어나지 않고 전태윤이 웨딩카 행렬을 끌고 널 데리러 왔을 때도 네가 화장을 채 하지 못해봐. 전태윤이 얼마나 초조하게 널 기다리겠니.”“부부 사이에 뭘 또 그렇게 초조하게 기다려.”하예정은 투덜거리며 결국 다시 일어나 앉았다.앉은 지 2분도 되지 않아 하예정은 다시 침대로 쓰러졌다. 이불을 끌어 올리며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나 진짜 딱 반 시간만 더 자게 해줘.”“자지 말고 빨리 일어나!”“그럼 15분만! 진짜 너무 졸려서 그래.”하예정은
하예정은 화장실로 가면서 말했다.“언니 똑같은 말 이젠 몇백 번도 더 했겠다. 나 이젠 귀에 딱지 앉을 지경이야. 언니가 한 말 똑같이 읊을 수도 있을 것 같아.”하예진도 웃으며 말했다.“내가 그렇게 많이 말했나? 난 왜 고작해야 두 번밖에 안 말한 것 같지? 다 너 걱정해서 하는 말이잖아. 너 이번 임신 쉽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조심해야지. 결혼식 피로연에도 사람 많을 테니까 아무튼 조심해야 해. 전태윤한테도 말해놓을 거야.”“전태윤이 절대 내가 사람들이랑 부딪치는 일 없게 하겠다고 언니랑 약속했어 안 했어?”하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했지.”“근데 뭘 걱정해 언니. 듬직한 매부가 언니한테 약속한 이상 하늘이 무너져도 나는 멀쩡할 거야. 요 며칠 언니도 내 결혼식 때문에 충분히 신경 많이 쓴 것 같은데 너무 걱정하지 마.”하예진은 하예정이 조금이라도 도우려고 움직이면 몸에 무리가 갈까 봐 연신 하예정더러 앉아있거나 누워있으라고 말렸다.하예정이 그렇게 건강한데 배 속의 아기가 건강할 거라는 사실은 불 보듯 뻔했다. 그렇게 쉽게 아기에게 무리가 갈 일은 애초에 없는 것이다.그래도 언니가 그렇게 지극정성이니 하예정도 최근에는 그저 얌전히 언니가 입혀주고 먹여주는 대로 따랐다. 다행히 하예정의 절친들이 번갈아 가며 찾아와 함께 수다를 떨어준 덕에 하예정은 무료함을 달랠 수 있었다.“그래그래, 알겠어. 시름 놓을게. 오늘 네가 무사히 나가는 걸 보고 전태윤한테 널 맡기고 나면 너의 여생은 더는 걱정하지 않을게. 어서 가서 씻어. 숙희 아주머니더러 아침 준비해달라고 했으니까 씻고 나와서 먹어.”“전태윤은 네가 공복일까 봐 특별히 널 굶기지 말라고 그러더라. 이런 걸 보면 전태윤은 정말 널 끔찍이 아껴.”하예진에게 전태윤은 10점 만점에 11점짜리 만족스러운 매부였다. 전태윤이라면 무조건 안심했다.하예정도 마음이 따뜻해졌다.하예정이 화장실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하예진은 동생의 구토 소리를 들었다. 하예진은 화장실로 들어가 하예정의
유청하는 지금도 매일 토하고 임신 기간에 고작 배만 나온 상태였고 성기현은 그런 유청하를 보며 가슴 아파했다. 성기현은 이 아이만 낳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아내더러 둘째는 낳지 않게 하겠다고 매일 말해왔다.성기현이 이렇게 걱정하는 동안 유청하는 그저 아들을 낳을 수 있기를 바랐다.성기현이 딸을 더 좋아한다고 해도 유청하는 아들을 바랐다. 성씨 가문의 위대한 가업을 물려받아 계승해나갈 수 있는 아들을 낳아주는 것이 성기현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자신의 사촌 언니는 참 솔직하다고 슬그머니 말한 적이 있다. 지금 사람들은 아들을 바란다고 대놓고 말하면 남존여비 사상이라고 하므로 설령 아들을 바란다고 해도 말로는 딸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본인의 사촌 언니는 아들을 낳고 싶다고 밝히는 게 얼마나 솔직하냐고 말이다.“엄마.”한창 우빈에 대해 말하고 있던 찰나에 두 자매는 우빈이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하예진은 처음에 환청을 들은 줄로만 알았다. 아직 날이 채 밝지 않았고 평소대로라면 우빈이를 깨운다고 해서 깨날 수 있는 시간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두 번째 소리를 듣고 나서야 하예정이 언니에게 말했다.“언니, 우빈이 목소리가 맞아. 우빈이가 깼나 봐.”하예진은 얼른 몸을 돌려 화장실에서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아들이 직접 문까지 열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잠옷을 입고 눈을 비비며 걸어오는 모양을 보니 금방 잠에서 깬 것 같았다.“우빈아, 엄마 여기 있어.”“엄마, 이모는?”우빈은 비어있는 침대를 보고는 이모가 안 보여 자신이 깨기 전에 이모부가 데려간 줄로 알았다. 우빈은 갑자기 입을 삐죽거리며 억울하단 듯이 말했다.“이모는 왜 날 기다리지 않고 먼저 가버린 거예요?”“내가 화동이 되어주겠다고 했는데 이모도 이모부도 날 기다려주지 않았어요.”잘만 말하던 녀석의 양 볼에는 눈물이 주룩 흘렀다.하예진은 웃으며 아들을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이모는 지금 화장실에 있어. 이모가 우빈이한테 화동이
이모와 조카는 걸어가며 작게 불평했다.이모라는 사람은 언니가 너무 무섭다는 것이었고 조카라는 아이는 엄마가 너무 무섭다는 것이었다.두 사람의 뒤를 따르는 하예진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첫째 언니 하예진은 엄마와 다름없었다. 부모님을 대신하여 동생에게 누구보다 멋있게 결혼식을 올려주고 싶었다.“사모님!”전태윤이 하예정을 위해 보낸 고급 화장 전문가가 하예정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서둘러 일어나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하예정은 미소로 회답했다.“좋은 아침이에요, 미스 공! 어젯밤에 늦게 자는 바람에 오늘 늦게 일어났네요.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별로 오래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사모님께서 먼저 아침 식사를 하시고 잠시 휴식을 하신 뒤 메이크업을 시작하는 게 어떻겠습니까.”외부 사람들은 아마 하예정이 임신을 한 사실을 아직 모를 것이다. 미스 공은 하예정의 화장을 책임져야 하므로 전태윤이 미리 알려준 것이다. 그러면서 임산부에게 해가 되지 않는 화장품들로 사용해달라고 부탁하였다.“미스 공도 같이 가요.”미스 공은 웃으며 완곡하게 거절하였다.“전 외출하기 전에 이미 집에서 먹었습니다.”미스 공은 자주 신부 화장 의뢰를 받는데 그럴 때마다 일찍 집에서 나가야 했으므로 아침도 일찍 먹었다.하예정은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7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각이었기에 하예정은 미스 공에게 물었다. “이렇게 일찍 아침을 먹은 거예요?”“네. 평소 출근 시간이 이르기 때문에 아침도 일찍 먹습니다.”가끔 아침 먹을 시간조차 없었을 때만 신부 화장 의뢰를 받은 주인집에서 간단하게 먹는 게 다였다.미스 공이 이미 아침을 먹었다니 하예정도 도우미에게 미스 공을 잘 대접해주라는 말을 남기고는 우빈과 함께 식당으로 갔다.하씨 가문은 어제부터 북적였다.전태윤이 서원 리조트 측의 사람들을 보내 일손을 돕게 하였고 기현의 엄마 이경혜도 일손이 부족하여 하예진이 고생할까 봐 사람들을 보낸 덕이었다.그뿐만 아니라 꾸준히 하예진에게 일편단심이
하지명은 여전히 투덜댔다.“하예정네 언니가 우리 같은 친정 식구가 나서서 뒷받침해줄 필요나 있겠어요?”그들은 이미 오래전 일이기도 하고 어쩌면 하예정도 화가 누그러들었을 테니 결혼식이라는 기회를 빌려 하예정 자매와 화해를 하고 싶었다.좋은 기운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는 못 말하지만 적어도 전씨 가문의 친척이라는 신분을 이용한다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렇게 함으로써 하씨 가문을 다시 정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도 확인해 볼 심산이었다.다들 하 영감이 결정을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예정 자매가 할아버지에게 어느 정도 체면을 남겨준 게 아니었더라면 그들도 굳이 할아버지의 결정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고 바로 전씨 가문으로 가서 축하주를 마셨을 것이다.전 대표와 하예정의 결혼 소식은 며칠 전 연예부 기자에 의해 보도되었고 그 결과 관성 전체에 알려지게 되었다.전례 없이 성대한 결혼식이 될 것을 생각하니 하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진정으로 큰 세상을 직접 보고 싶어 했다.하예정의 삼촌과 이모들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식에 가면 산해진미를 맛보게 될 뿐만 아니라 올 때 포장도 해올 수 있지 않은가.어차피 하예정 자매도 친정집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으니 그들에게 창피하고 말고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다 먹고 나서 보면 될 일이고 포장하고 나서 보면 될 일이다.다만 하예정 자매도 충분히 독한 사람들이었다. 옛날 일도 끝장에 가서는 자매가 아닌 그들이 골탕을 먹었다. 그로 인해 기가 꺾일 대로 꺾여버렸고 지금까지도 자매 앞에서 큰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그래도 하예정 자매는 조금의 자비는 베풀어 주었다. 그들이 재산을 탕진하게 만들지 않았고 가족을 파탄 내지도 않았다.“당신의 의견은 어떠하오?”하 씨 노친도 영감에게 물었다.하 영감은 한참을 고민하고 물담배를 몇 모금 피운 뒤 말을 꺼냈다.“하예정이 우리를 초대하지 않았으니 그 누구도 가지 말아라. 하예정은 우리와 화해를 하고 싶지 않을 거다. 화해
앞으로 거동조차 불편해지면 자식들이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 영감은 하예정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할지 말지 고민했다. 하예정이 청첩장을 보내주지 않았으니 갈 수 없었고 좋은 날에 분위기를 흐려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할아버지, 가서 얌전히 있다가 얼굴이나 보고 술 한잔하고 오면 되잖아요. 그럼 모두 우리가 하예정과 잘 지내는 줄 알 거예요. 할아버지는 제가 얼마나 힘든지 알잖아요.”하지명은 가족을 데리고 같이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어서 하 영감한테 투덜거렸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직 먹고 살 수는 있잖아. 전태윤 도련님이 너의 사업에 손을 썼지만 그 뒤로는 가만히 내버려뒀고 너희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것 같더구나. 그런데도 우리한테 용돈 한 번 쥐여준 적 없고 걸핏하면 퇴직금이 얼마 있냐고 하면서 뜯어먹을 생각만 했지.”하 영감은 하지명을 노려보면서 말했다.“나랑 네 할머니는 가지 않을 거다. 죽는 게 두렵지 않거든 불청객 신분으로 가보렴. 선택은 온전히 너희들의 몫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해. 난 너희들을 말릴 자격이 없어. 하지만 하예정이 결혼하는 날에 분위기를 흐리면 우리한테 득이 될 게 뭐가 있어? 되레 하예정의 미움만 받을 텐데 말이야. 우리는 이미 업보를 받았으니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해. 하예정의 남편은 전남편처럼 무능한 남자가 아니라 재벌가 도련님이야. 전태윤 도련님이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아직도 모르겠어? 전화 한 통이면 너희들은 당장 짐 싸서 마을로 내려가야 할 거야.”뭇사람들은 삽시에 조용해졌고 하 영감이 가지 않는 이상 아무도 섣불리 갈 수 없었다. 간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게 없었고 되레 자매의 모순만 극대화할 것이다. 하지철은 가지 못한다는 것을 예상했었다. 하지철은 하예정을 무서워했고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누나라고 생각했다.‘예진 누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예전에 돈이 얼마 없었을 때도 예정 누나를 무술 학원에 보냈었지.’“자, 다들 이만 가봐. 오늘은 좋은 날이지만 너희들이 좋아할 날은 아니야.
“얼마 남지 않은 퇴직금을 뜯어내려고 하잖아.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도 셋째네 집이야. 우리가 셋째의 부모라서 이 집이라도 가져서 이렇게 지내는 거지. 매달 생활비는 자식들이 주는 것인 줄 알았지만 하예정이 우리 자식들한테 월세를 내라고 해서 모은 돈으로 우리가 사는 거야. 나이도 이만큼 먹었으니 눈 가리고 아웅 하지 말고 받아들이면 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발버둥 쳐도 소용없어.”하씨 노친은 반박하고 싶었지만 하 영감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기에 말문이 막혔다.“악독하다고 뭐라고 하지 마, 십여 년 전에 우리는 뭐 잘 해준 것 같아? 그때 왜 친손녀를 그렇게 미워했는지 몰라. 아들이랑 며느리가 다 세상을 뜨고 미성년자인 두 손녀를 가문에서 내쫓고 재산을 전부 빼앗아서...”하 영감은 말하면서 눈시울을 적셨고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자식이 하는 말에 흔들리지 말고 우리 둘은 조용히 지내자. 하예정 자매한테 민폐 끼치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를 미워하던 마음도 사라져서 거동이 불편해졌을 때 우리한테 도우미 아줌마를 보내줄 수도 있어. 하예정 자매가 이 집을 상속받으려고 왔을 때 다른 손주들이 소름 끼치는 말을 해서 이제는 기대 안 해. 늙으면 젊은이들의 짐이 되어 힘들게 하거든. 저 아이들도 늙어서 미움받지 말았으면 좋겠어.”하 영감의 말을 들은 하씨 노친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그래, 당신 말대로 할게. 손주 중에서 제일 미워했던 손녀가 지금 제일 잘나갈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런데 하예정이 홍씨 가문 사람들은 초대했을까?”홍씨 가문은 하예정의 수양 외할머니 가문이었다.하 영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아니, 결혼식 전에 홍씨 가문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하예정이 초대하지 않았대. 홍씨 가문이 그때 두 자매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홍씨 가문에 들이지 않더니 몰래 배상금을 나눠 가졌지. 그런 홍씨 가문을 두 자매가 초대할 것 같아? 홍씨 가문이 셋째 며느리를 키워줬지만 하예정이 재벌가 도련님과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참석하지 않았어,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