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울은 웃으며 담보했다.“괜찮아요, 이거 불치병 아니니까 맘 편히 놓으세요. 제가 이런 말 하면 꼭 해낼 사람이라는 거 잘 아시죠.”그녀는 여운초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길어서야 3달, 3달 뒤에도 시력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제 스승님을 모셔 와 도와드릴게요. 하지만 해독 쪽에서는 제 스승님도 저보다 못하신걸요.”그녀는 독초와 독화를 워낙 많이 심었던지라 스승보다 독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그리하여 주변 사람들이 그녀의 의술과 독약을 다루는 능력이 대단하다며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몇백 년만 빨리 태어났다면 신의와 마약왕으로 이름을 날렸을 것이 분명하다.정겨울이 직접 나선다면 꼭 여춘초의 눈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그녀의 말에 모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정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여운초는 며칠 동안 걱정했던 마음을 놓은 채 정겨울의 손을 꼭 잡고는 끊임없이 감사하고 말했다. 그에 정겨울은 웃으면서 사양했다.“저보다 운초씨 작은고모, 고모부 그리고 약혼자에게 감사하세요. 그분들이 운초씨를 포기하지 않고 지금껏 견지해 와서 오늘의 운초씨가 있는 거 아닐까요.” “작은고모는 제 생명의 은인이세요. 그때 고모가 돌아오지 않으셨다면 전 이미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여운초는 그때의 비극과 십 년 동안 실명으로 인해 고생한 것을 생각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가 가장 고마워하는 이는 작은고모 여준희였다. 여준희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아버지의 사망원인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어머니는 수를 써서 그녀에게 독약을 먹여서는 “병”으로 죽게 하려고 했다.아버지가 돌아가신 데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도 세상을 뜨시고 두 고모마저 의붓아버지 편에 섰다. 원래 여씨 가문에서 투명 인간 취급을 받았던지라 정말 “병”으로 죽는다고 해도 작은고모만 진심으로 슬퍼하지, 다른 이들에게 그녀는 죽으면 죽었지, 대수로울 것 없었다. 여씨 가문에서 그녀는 쓸모없는 사람이었으니까.마침, 그때 여준희가
여준희의 작은오빠는 눈물을 머금고 세상을 떠났다.전에 그녀는 작은오빠의 죽음에 큰오빠와 새언니의 참여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정말로 냉혹하고 무정한 사람들이다!여준희는 큰오빠와 새언니가 감옥에 갇혀 곧 중형을 받게 될 것에 대해 그것은 그들이 마땅히 치러야 할 죗값이며 동정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작은오빠와 조카에게 한 짓거리를 생각하면 사형을 받아도 마땅했다. 여운별이 머지않아 출소한다. 하지만 나온다고 뭐가 달라지는가?백이 되어줄 부모님도 사라졌지, 여운초만 다시 시력을 회복하게 된다면 여운별이 제아무리 오만방자하다고 해도 아무런 풍랑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여준희는 문득 자기 두 언니가 생각났다. 그들도 참 지독하지, 전이진을 가장해서 운초를 속이려 했으나 현재 전이진의 보복을 받아 파산의 길로 들어섰다. 이 결과는 모두 그들이 자초한 일이다.여준희와 여운초는 서로를 끌어안고 통곡하며 마음속 깊숙이 숨겨놓은 고통을 마음껏 털어놓았다. 두 사람이 너무 안쓰러웠기에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한창 설움을 터뜨리는 두 사람을 보며 정겨울은 자기가 가져온 약상자를 열었다. 상자 속에는 그녀가 직접 재배한 약초가 들어 있었는데, 일부는 알약으로 만들어졌고, 어떤 것은 여전히 원래 약초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그녀는 약초 몇 개를 꺼내 투명한 봉투에 넣으며 전이진에게 말했다.“둘째 도련님, 이 약초들은 물에 끓여 운초씨 눈을 씻는 거예요. 제가 급하게 온지라 가져온 약이 별로 없거든요. 제가 갈 때 함께 오셔서 약을 더 가지셔도 좋습니다.”“알겠어요.”정겨울은 또 다른 약 처방을 전이진에게 건네며 처방대로 약을 받아오게 했다.마지막으로 그녀가 직접 만든 알약 두 병을 함께 건네며 말했다. “이 약은 제가 직접 연구해 낸 약이에요. 운초씨가 약 먹을 때마다 한 병에 하나씩 총 두 알을 중약과 함께 복용하면 됩니다.”전이진은 열심히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정 선생님, 눈약은 약국에서도 구매할 수 있나요
정겨울의 방문에 전 씨 할머니께서 산장으로 오셨고 관성에 남아 있는 한 모두 서둘러 돌아왔다. 저녁은 둘째 도련님 저택에서 해결했다. 정겨울을 불러온 이가 전이진이였으니 둘째네 집에서 귀한 손님을 접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넷째 도련님 전이혁과 다섯째 도련님 전우가 돌아온 것을 보고 하예정은 눈을 깜빡이며 곁에 있는 남편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태윤 씨, 이혁 씨와 전우 씨 아직도 관성에 있네요. 전 두 분 다 배우자 찾으러 간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전태윤은 사랑스러운 아내를 지긋이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했다.“할머니가 주신 사진을 받은 지 얼마 안 되니까 그렇게 빨리 움직이진 못 하겠지. 이혁이는 할머니가 골라주신 사람을 좀 싫어하는 것 같아.”“전우는 아직 티가 안 나 모르겠는데. 재가 워낙에 참을성 있는 애라서.”여섯째는 전태윤의 친동생이며 올해 겨우 스물다섯 살이다. 할머니는 원래 여섯째에게도 골라주려고 했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니 성숙하고 듬직하지 못하다고 여겨 2년은 더 기다려도 된다고 생각했다.할머니는 하예정이 임신한 사실을 알고 난 뒤 여섯째에게 배우자 찾아주는 것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일곱째는 사회에 발을 들이민 지 얼마 안 되는지라 소개팅하기엔 너무 일렀다. 당분간은 할머니 표적이 되진 않을 것이니 안심해도 된다.아무튼, 위에 있는 몇 명의 형들도 아직 미혼이니까.전태윤과 하예정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전이혁이 두 사람 쪽으로 걸어왔다. “태윤이형, 형수님.”전태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사에 응하였다.하예정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정하게 물었다.“돌아오셨어요?”전이혁이 대답했다.“네, 집 문에 발도 안 들여놓고 곧장 백부님 댁으로 쳐들어왔어요.”“그보다 태윤이 형, 형수님 축하해요.”전이혁은 하예정의 임신을 축하하러 온 것이다. 드디어 형과 형수가 엄마 아빠로 승진하니 그보다 기쁜 소식이 따로 없었다.“전에 카톡으로 축하 인사를 드렸지만 그래도 직접 봬서 축하해주려고요.’”전이혁은 실웃음을 지
전이혁이 더는 입을 열려 하지 않으니 하예정도 더는 캐묻기가 어려웠다.하지만 할머니가 선택한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전이혁과 함께 만나게 될 것이다.할머니께서 전태윤 동생들에게 배우자를 찾아줄 때마다 그녀들이 하예정과 잘 맞는지도 고려해 본다. 그래서 선택받은 이들은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래야만 하예정과 어울릴 수 있으니까. 할머니께서 가장 아끼는 것은 태윤 부부였다.장손이니 지위부터 달랐다.또한, 전태윤은 전씨 가문 현재 주인이고 하예정도 곧 여주인이 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하예정도 노력해서 동서들과 정을 쌓고 덕으로 그들을 복종시켜야만 여주인으로서 진심으로 존경 받을 수 있다.“태윤이 형, 형수님. 그럼 저는 이만 부모님에게 가볼게요. 돌아와도 말 한마디 없다고 야단맞기 전에 인사드리러 갈게요.”전이혁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를 떴다.그는 하예정이 흥미진진하게 자신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형수님이 관심을 보이면 큰형이 눈빛으로 압박하며 그의 이야기를 공유해줄 것이 뻔한 일이었다. 형수님이 워낙 구경하기 좋아하는지라 큰형은 꼭 그런 형수님의 환심을 사려 할 것이다. “말 돌리고 떠나는 걸 보니,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해요.”하예정이 웃으며 전태윤에게 물었다.“태윤 씨, 할머니께서 어느 집 아가씨를 이혁이한테 소개해 줬는지 아세요?”“잘 모르는데, 관심도 없고. 난 당신이 있잖아. 내 맘속과 닿는 시선 속엔 당신밖에 없어. 다른 여잔 나랑 상관없고 시간 낭비하면서 관심할 생각 없어. ”“....” 하예정 남편이 그래 오로지 그녀만 바라보는 사람이지. 많은 사람이 돌아온 서원 리조트는 밤새 떠들썩한 후에야 점차 평정을 되찾았다.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전태윤은 하예정을 데리고 서원 리조트를 떠났다. 오늘은 하예진의 새 가게가 오픈하는 날이라 젊은 부부는 언니를 응원하러 갔다.하루 레스토랑 입구에는 꽃바구니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 하예진의 레스토랑 개업을 축하하기 위해 보내온 것이다.축하하러 온 이들이 하예진을 이젠 하
“알았어, 언니. 거의 다 왔어.”“그리고 태윤 씨가 운전하고 있으니까 안심해. 엄청 안전하다니까.”전태윤이 워낙 듬직한지라 하예진은 비로소 시름이 놓였다.안전을 담보한 뒤 자매는 통화를 종료했다. 노동명은 하예진의 통화가 끝나길 기다린 뒤에야 입을 열었다.“예진 씨, 예정이와 태윤이 거의 다 왔죠?”“아까 5분 걸린다고 했으니까 이삼 분 정도 더 기다리면 도착할 거 같네요. 예배 시간은 놓치지 않을 거니까 걱정 마세요. 그보다 노 대표님, 들어가서 좀 휴식하는 게 어때요?”노동명은 너무 바삐 돌아다니느라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했는지 눈 밑에 다크써클이 아주 선명했다. 그것을 본 하예진이 가슴이 아파 나서 제안한 것이다.노동명은 하루 레스토랑 여는 일을 도와주느라 아주 많이 고생했다. 그녀와 함께 밤을 새우면서 분주히 돌아다녔다.이혼 후 사랑도 혼인도 더는 믿을 수 없었던 하예진은 그녀만을 바라보는 노동명을 만난 뒤 생각을 바꾸었다. 쓰레기 하나 만났다고 이 세상 모든 남자를 나쁘게 생각하면 안 되는 일이다.좋은 남자는 있다. 남자들은 누구나 주형인같이 찌질남인것은 아니다. 전태윤처럼 동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좋은 남자가 존재한다.노동명은 주형인 보다 우수했고 현재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해도 전남편보다 수백 배 나았다. 하예진은 할머니께서 그녀를 설득하며 하신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쩌면 그녀는 다시 한번 사랑을 믿을 수 있고 다시 한번 혼인으로 내기를 걸 수 있을 것 같았다.내기에서 그녀가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예진 씨, 저는 힘들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아요. 아주 기쁘기만 한 걸요. 휴식할 필요도 없어요. 몸이 휴식한다 해도 제 마음은 언제나 예진씨와 함께하고 싶어요.”노동명이 하예진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예진 씨와 함께 기다릴 거예요.”그는 의기양양한 하예진을 좋아한다.하예진이 가게를 하나하나 열어가고 차근차근 그녀만의 음식 왕국을 만들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심장이 벅차게 요동친다.그녀
하예정은 언니에게 하루 레스토랑에 투자한 뒤로 돈이 부족하지 않으냐고 몇 번이나 물었고 돈이 부족하면 꼭 알려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하예진은 확실히 그동안 벌어들인 돈을 모두 새 가게에 투자했고 적금도 부분적으로 사용했다.하지만 궁지에 몰릴 정도로 돈이 부족하지는 않았다.동생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하예정 부부는 언니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하예진은 평소에도 하예정이 주는 돈을 받지 않았기에 하예정 부부는 새 가게를 오픈하는 틈을 타 돈을 보태주려고 했다.하여 하예정 부부는 따로 돈 봉투를 준비했다.“시간이 다 됐어요. 먼저 신께 절을 올립시다!”“네.”하예진은 가게 사장으로서 먼저 향을 피워 앞에 꽂은 뒤 마음속으로 묵상했다.‘아버지, 어머니. 제가 또 새로운 가게를 오픈했어요. 하늘나라에서 저의 사업을 번창하게 만들어주시고 제가 점점 더 강해지도록 저의 뒷받침이 되어 주세요.’부모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좋을까!두 자매가 모두 사업도 되어가고 생활도 날따라 좋아지는 모습을 본다면 그녀들의 부모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실 것이다.신께 인사드리는 의식이 끝났고 축하하러 가게로 온 손님들이 있는가 하면 진정으로 가게 요리들이 맛있는지 맛보러 온 손님들도 적지 않았다.하루 레스토랑 가게 안은 순간 손님들로 들끓었다.“예진아. 예진아!”주서인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주서인 여사는 항상 이렇게 높은 톤으로 등장했다. 마치 그녀와 하루 레스토랑 사장님이 아는 사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모를까 봐 걱정하는 것처럼 말이다.주서인 부부가 같이 들어왔다.“서인 언니.”옛일이 어떻든 간에 오늘은 가게 오픈일이라 하예진은 축하해주러 오는 주서인 부부한테 예의 갖춰 인사했다..“예진아, 우리가 늦은 건 아니지?”하예정이 붉은 드레스를 입고 옅은 화장을 한 얼굴을 본 주서인은 정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의 하예진은 결혼 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았다.하예진은 원래 미인이었다.예전에는 너무 뚱뚱해진 탓에 그 미모가 감추어진 것이다.
주서인은 남편에게 불만을 토로하며 돈 봉투 안에서 60만 원을 꺼내 하예진에게 40만 원만 부조하려 했다.하지만 주서인은 남편에게 하예정 자매와 관계를 회복할 좋은 기회를 망치지 말라고, 부모님께서 부조하실 돈까지 꿀꺽 삼키려 들다니 너무 생각이 짧다고 비난받았다.하여 주서인은 이내 생각을 접고 아픈 가슴을 위로하면서 돈 100만 원이 들어 있는 봉투를 하예정에게 건넸다.“이것은 우리 부모님께서 부탁하신 축의금이야. 우리 부모님과 형인이가 축하한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주서인은 마음속으로 하예진이 그 돈 봉투를 받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께 하예진이 돈 봉투를 받았다고 거짓말하고 그 돈을 자신이 삼키면 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하예진은 그 돈 봉투를 이내 건네받았고 바로 인사했다.“정말 고마워서 어떡해요. 고맙다고 전해주세요.”주서인은 돈 봉투를 건네받은 하예진을 보며 억지웃음을 지었다.“먼저 자리를 찾아 앉으셔서 차 좀 드세요. 제가 다른 손님들께도 인사드려야 해서요.”하예진은 주서인 부부에게 앉으라고 말하고는 몇 마디 인사말을 건넨 뒤 자리를 떠났다.주서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축하하러 온 사람 중에서 남자들은 모두 양복과 가죽 구두 차림으로, 여자들은 명품으로 옷으로 차려입은 것을 발견했다.한눈에 봐도 모두 지위와 신분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주서인 부부가 아무리 뻔뻔하고 담이 크다 해도 감히 나서서 그들 사이에 끼어들지는 못했다.아는 사람이라고는 단지 전태윤 부부와 노동명이였다.주서인 하예정에게 인사하러 가고 싶었지만 하예정의 성격을 잘 알았기에, 또 전태윤을 두려워한 탓에 결국 인사하러 가지 못했다.주서인은 노동명이 주인처럼 하예진과 함께 손님을 대접하는 모습을 보더니 질투 나서 작은 소리로 남편에게 불만을 토로했다.“예진이가 돈이 이렇게 많으면서도 우리 부모님 돈을 받네요. 우리 부모님도 나이가 많으셔서 돈도 얼마 없는데 예진이는 뻔뻔스럽게도 그 돈을 받네요.”남편은 어이
하예정은 웨이터를 시켜 주서인 부부를 접대하도록 했다.하예정도 언니를 돕고 있었다.하예정은 틈을 타 하예진에게 물었다.“서인 언니를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여기로 스스로 찾아 온 거예요? 아니면 언니가 초대한 거예요?”하예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초대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찾아온 거야. 우빈이 체면을 봐서라도 손님으로 대접해야지.”여자들은 시집갈 때 반드시 눈을 잘 비비고 가야 한다.하예진처럼 찌질남한테 시집가서 자식들이 성품이 바닥난 친척들을 두게 해서는 안 된다.“언니, 서인 언니가 언니한테 돈 봉투를 건넸을 때 표정을 봤어? 정말 주기 싫어하는 표정이더라고. 가슴 아파하는 표정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웃고 싶었는지. 아마 언니가 그 돈을 받지 않을 거로 생각한 것 같더라고.”하예정이 작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하예진도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우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보낸 봉투거든. 서인 언니가 돈 한 푼도 내지 않고 그냥 부모님 축의금만 가져온 것뿐이야. 봉투 안에 들어있는 100만 원을 보면서 구두쇠 본능이 드러난 거지. 가슴 아픈 건 당연한 거야.”“내가 돈 봉투를 받지 않을 줄 알았겠지. 그러면 그 돈을 혼자서 꿀꺽 삼키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내가 받았다고 거짓말할 속셈이었을 거야.”하예정이 말을 이었다.“설마. 서인 언니가 그렇게 행동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내가 형수님으로 모시면서 살아온 경험으로 보면 그럴 분이시거든. 네가 아무리 잘해줘도, 너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해도 여전히 너에게서 덕을 보려고 하는 사람이야.”강산은 바꾸기 쉬워도 본성은 바꾸기 어렵다더니!하예정이 나지막이 말했다.“애초에 우빈의 양육권을 가져온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빈이를 그 집에 남겨두었더라면 얼마나 비뚤어져 있을지 모르는 일이잖아.”주경진 부부가 키워낸 외손자가 어떤 성품인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내 배로 낳은 아이기 때문에 내가 데려가야 해. 그 집안에 남겨서는 절대 안 돼. 주말에 우빈이를 데리고 형인 씨 보러
소지훈을 처음 만났을 때, 정윤하는 소지훈을 보더니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헛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알고 지낸지 오래되면 도장의 코치 선배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고 이내 두근거림도 사라졌고 헛된 생각도 하지 않았다.정윤하는 그녀와 소지훈이 사이도 친구와 같은 사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소지훈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할 줄은 전혀 몰랐다.정윤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더니 스스로 가볍게 얼굴을 치며 혼잣말을 했다.“정윤하, 부끄러워하는 거야? 어떤 남자가 널 좋아한다고 해서 이렇게 기뻐한 거야? 좀 진정해. 진정하자고.”소지훈은 정윤하의 소개팅 상대들처럼 그녀가 나중에 가정폭력을 행사할까 봐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소지훈은 정혁주까지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무술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난 남자였다.정윤하조차도 정혁주를 이기지 못하는데.소지훈이 정혁주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소지훈의 무술 실력이 정윤하보다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소지훈이 걱정할 게 뭐가 있을까!오히려 앞으로 소지훈과 싸울 때 그에게 터져 맞아 땅에 짓눌리지 않게 정윤하가 걱정해야 할 것이다.정윤하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던 정윤하는 자신 있게 웃으며 중얼거렸다.“못생기지는 않았는데! 아저씨가 역시 보는 눈이 있네.”단 정윤하는 자신과 소지훈이 어울리는지 잘 몰랐다.소지훈은 대기업의 대표이고 집안도 재벌가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재력이 강하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정씨 가문은 가난하지 않고 연성에서도 부자에 속했지만 소씨 가문과 비교하면 그래도 차이가 컸다.정윤하는 소지훈이 보통 여자들과 다른 자신을 가지고 놀다가 질려버리면 자신을 버리고 딴 여자를 좋아할까 봐 무척 걱정했다.남자는 돈이 있으면 나빠지고 여자가 나빠지면 돈이 많아지게 되는 법!소지훈은 부자인 데다 잘생겼기에 여자에게 심장까지 꺼내어 잘해주면 그 여자는 분명 그에게 퐁
“형, 그럼 제가 뭘 하면 될까요?”정혁주가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을 본 소지훈은 그를 자신의 편으로 생각하며 물었다.정혁주가 대답했다.“여기 남아서 지켜보든지, 아니면 돌아가서 우리 어머니를 도와 요리를 하든지 하세요. 어쨌든 정윤하가 뭘 하든 상관하지 마세요. 저녁에 돌아올 테니까요. 돌아오면 두 사람 다시 얘기해 봐요. 소 대표님이 하신 얘기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만 믿게 하면 돼요.”“네. 정말 감사해요. 그럼 저는 돌아가서 이모님을 도와 요리할게요.”윤미연에게 잘 보이면 정윤하의 마음을 훔치는 이 길은 훨씬 쉬워질 테니까.정윤하는 소지훈의 고백에 놀란 것이 아니라 별로 믿기지 않아서였다. 어떤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도장에서 나와 찬 바람을 쐬고 추워지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만 같았다.정윤하도 밖에서 오래 돌아다니지 않고 곧 집으로 돌아갔다.다행히 도장은 집에서 매우 가까웠다.윤미연은 오늘 밤 샤브샤브를 먹을 요리들을 준비하고 있었다.추운 날에는 역시 샤브샤브를 먹어야 속이 편안할 것이다.집이 난방이 안 되면 그녀도 이렇게 편하게 있지는 못한다.겨울이 되면 윤미연은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 장 보는 것도 자식들에게 맡기곤 한다.그녀는 따뜻한 도시에서 정씨 가문으로 시집온 사람이다. 그녀는 너무 추위를 타서 연성에 시집온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겨울만 되면 여전히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좋아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문 앞으로 향하던 윤미연은 정윤하인 것을 확인하더니 바로 물었다.“이 시간이면 수업해야 할 시간 아니야? 왜 돌아왔어? 밖에 여전히 눈이 오지? 부엌에 뜨거운 생강차를 끓여놨는데 한 잔 마셔.”윤미연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왜 혼자 왔어? 너희 오빠들은?”윤미연은 바쁘게 일하면서도 정윤하에게 물어보았다.정윤하가 대답했다.“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돌아왔어요. 엄마, 아빠는요?”“네 아빠가 약속 있어서 나가셨어. 저녁에 밥 먹으러 돌아오지 않을 거라면서
소지훈이 일어나 정윤하를 쫓아가려 하였으나 정혁주가 가로막았다.그는 고개를 돌려 정혁주인 것을 확인하더니 성깔 좋게 말했다.“형, 제가 나가 볼게요.”“지금 가지 말고 윤하에게 혼자 생각하게 시간 좀 줘요. 윤하가 지금 소 대표님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 소식을 소화해야 할 거예요. 윤하는 지금 친구 감정이 아닌 이 남녀 간의 감정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에요.”“밖이 추운데... 눈이 내리면 추워질까 걱정돼요.”그러나 정혁주는 친여동생의 모든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소 대표님은 추울지 몰라도 윤하는 연성 토박이라 어렸을 때부터 이런 추위에 익숙해요. 그러나 소 대표님은 아니죠. 당신은 관성에서 왔으니 관성 쪽에는 겨울이 없다고 볼 수 있죠. 윤하가 추워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나가서 바람 좀 쐬게 내버려 둬요. 마음을 다잡고 잘 생각해 보게 내버려 둬요. 갑자기 고백하니, 윤하는 심리 준비도 하지 않아 혼란스러워졌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소 대표님도 그래요. 때가 되면 고백하셔야지... 꽃다발 하나로 윤하가 소 대표님 마음을 알 거로 생각하세요?”소지훈은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윤하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해도 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뻔하기에 그래서 직접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모를 것 같아서요. 제가 한 트럭의 꽃을 선물한다고 해도 윤하 씨 성격으로는 이 꽃들로 얼마나 많은 꽃 떡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할 테니까요.”정혁주도 공감하며 입을 열었다.“그... 그럴 수도 있겠네요.”정윤하도 분명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그녀를 사랑한다면 확실히 말해야 했다. 그녀가 알도록 명확하게 알려줘야 할 것이다.“형, 윤하 씨가 이렇게 황급하게 나갔는데 정말 저를 피하는 거 아니에요? 윤하 씨는 제가 너무 늙었다고 싫어하지 않을까요? 저는 윤하 씨보다 10세 4개월이나 많은데.”그의 나이는 그녀보다 11살 많다고 말은 했지만 진지하게 계산하면 10년 4개월 연상이다.정
정윤하는 그렇게 하면 소지훈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여 말을 내뱉으려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어 말을 건넸다.“그럼 그때 가서 신세 좀 질게요.”소지훈이 연성에 있을 때 정윤하가 그에게 잘 접대했으니 그녀가 관성으로 가게 되면 소지훈이 잘 접대해 주면 서로에게 빚지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윤하 씨, 꽃 떡 말고도 또 다른 생각은 없었어요?”소지훈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정윤하가 소지훈을 쳐다보니 그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정윤하가 입을 열었다.“제가 또 무슨 생각 해야 하죠? 아저씨가 저에게 꽃을 선물했으니 저를 좋아한다는 생각 해야 돼요?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고 저도 아저씨가 좋아요. 우리가 서로 좋아하지 않으면 친구로 될 수도 없는걸요.”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소지훈이 그 정적을 깨뜨렸다.“윤하 씨는 제가 윤하 씨에 대해 좋아함이 우정이 아닌 남녀 간의 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아저씨가 남자고, 저는 여자인데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요? 뭐가 달라요?”“제 말은 윤하 씨, 저는 윤하 씨를 사랑하고 있어요. 윤하 씨에게 구애하고 싶단 의미에요. 형제 사이가 아닌 윤하 씨 남편이 되고 싶다는 뜻이에요.”소지훈은 단숨에 속마음을 털어놓았다.정윤하의 되묻는 물음에 화가 난 것이다.소지훈도 충동적으로 그 뜻을 똑똑히 해석해 준 것뿐인데...그녀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소지훈이 그녀에게 고백해야 정윤하가 그의 감정을 알 수 있다고 소정남이 알려주었다.그가 말하지 않는데 털털한 정윤하가 어찌 알 도리가 있겠는가?목소리가 좀 커진 소지훈은 그제야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웅성거리던 도장은 순간 조용해졌고 다들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소지훈은 그들을 쳐다보고는 다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정윤하를 바라보았다.그의 잘생긴 얼굴은 점점 붉은 구름이 떠 올랐다.그는 도장이 아닌 단둘이 있는 곳을 찾아 로맨틱하게 현장을 꾸민 다음 정윤하에게
“윤하 씨, 이 꽃다발... 제 말은 윤하 씨가 이 꽃다발을 받고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소지훈은 용기를 내어 정윤하에게 물었다.정윤하는 닭 날개를 다 먹고 또 오징어구이를 먹으며 대답했다.“무슨 생각이요?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누가 키운 꽃인지 정말 아름답고 좋네요. 저 보고 꽃을 키우라고 하면 이 꽃은 이미 죽었을 거예요.”소지훈은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정윤하는 눈치도 없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그리고 꽃다발을 받고 보니 장미꽃 떡이 생각났어요. 갑자기 꽃 떡을 떠올리니 너무 먹고 싶네요. 지금 바로 주문해서 먹어야겠어요.”정윤하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인터넷으로 꽃 떡을 사려고 했다.“제가 사드릴게요. 지금 여행 중인 친구가 있는데 꽃 떡 좀 가져다 달라고 하면 돼요. 훨씬 맛있을 거예요.”정윤하가 말을 건넸다.“그들이 현장에서 만들어서 팔지 않는 한 산 것과 인터넷에서 사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을걸요. 현장에서 만든 것이 맛있다고 들어는 봤는데. 내년에 시간이 나면 저도 여행 가서 현장에서 구운 꽃 떡을 먹어봐야겠어요.”소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부하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즉시 청주성으로 날아가서 꽃 떡을 만드는 것을 배워 정윤하에게 신선한 꽃 떡을 맛보게 하라고 지시했다. 단, 정윤하가 여행을 가지 않고도 신선한 꽃 떡을 먹을 수 있도록 반드시 청주성의 맛과 똑같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적어도 온라인으로 구매한 것보다 맛있을 테니까.정윤하는 토픽 X 이라는 앱을 즐겨 사용하는 데 정말 싸다고 말했다.소지훈은 그녀에게 그 앱에서 물건을 사지 말라고 수없이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소지훈이 역시 부자답다고 말할까 봐 걱정했다. 그는 일반인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결국 침묵을 선택했고 그녀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해주었다.“정말 주문하셨어요?”정윤하는 소지훈이 핸드폰을 내려놓는 것을 보더니 그에게 물었다.소지훈이 대답했다.“네. 주문해드렸으니 받을 때까지 기다리시면 돼요.”그는 먼저 정윤하에게 인터넷으로
모두 웃으며 말했다.“우리가 소 대표님한테 매수된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 소 대표님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윤하에게 잘 어울려요.”코치 중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소 대표님도 우리 윤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윤하가 주로 만나본 젊은 남자들이 우리 말고는 좋은 남자가 없어서 그래요. 게다가 사장님과 사모님도 얼마나 걱정하세요. 만약 소 대표님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도 반대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소 대표님과 윤하가 잘 지내고 있거든요. 근데 우리 윤하가 왠지 소 대표님께 남녀 간의 정이 없다고 느껴져요. 윤하가 우리를 대한 것처럼 똑같이 소 대표님을 대하는 것 같아요.”정혁주는 코치들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했다.도장에는 여성 후배들도 많지만 유독 정윤하가 정혁주를 무척 걱정시켰다.정윤하는 습관적으로 남자들과 형제 사이로 지냈기에 그들도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다.그들도 정윤하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해 주려고 했지만, 그녀가 상대방이 무술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리고 소개를 받을 남자들은 정윤하의 “명성”을 듣더니 심지어 몰래 도장에 가서 정윤하를 지켜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막강한 실력을 보더니 정윤하를 다스리지 못할까 봐 걱정하며 결국 투항하게 되었고 다른 맞선남들과 마찬가지로 감히 나서지 못했다.이로 하여 뒷부분의 맥락은 그대로 뚝 끊기게 되었다.정혁주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너희도 사실 소 대표님의 재력에 넘어간 거야. 나조차도 좋게 느껴지는데 너희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소 대표님의 재력이 정말 좋은 건 사실이야. 우리도 자기도 모르게 속아 넘어간 거지. 그런데 소 대표님은 꽤 좋은 사람이긴 해. 우리 윤하와도 너무 잘 어울리고. 너희들도 장난치고 있는 걸 알기에 나도 너희들 탓하지 않아. 우리 전부 윤하를 위해서 하는 소리잖아. 내가 소 대표님을 오랫동안 지켜봤는데 그분이 안 좋은 사람이라면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야.”“너희들의 말처럼 윤하 계집
“들어가요. 밖이 너무 추워요.”정윤하는 꽃다발과 보온도시락을 들고는 소지훈을 도장으로 가자고 말했다.소지훈은 그녀를 따라갔다.도장의 사람들은 정윤하가 꽃다발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두 사람이 썸타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그 꼬맹이들조차 정윤하가 안고 있는 그 꽃다발이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정윤하는 학생들에게 다가갔다.“코치님, 이 꽃다발이 정말 아름다워요.”“코치님, 바비큐 드실래요? 우리 거의 다 먹었어요.”“코치님, 지훈 아저씨가 선물한 꽃이죠? 왜 코치님께 꽃을 주세요?”정윤하가 웃으며 대답했다.“많이 먹어. 다 먹어도 돼. 지훈 아저씨가 나에게 따로 준비해 줬거든. 너희 지훈 아저씨가 꽃집을 지나다가 꽃집에 있는 꽃이 너무 예뻐서 나에게 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라고 선물해줬어. 어때? 예쁘지? 나도 이 꽃다발이 너무 예뻐서 좋아.”학생들은 꽃다발이 예쁘다고 연신 칭찬했다.정윤하의 사제들은 헤벌쭉한 정윤하를 보고는 또 여우처럼 웃고 있는 소지훈을 보더니 결국 모두 정혁주를 일제히 쳐다보았다.정혁주는 정윤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는 평소에 앉던 테이블에 앞에 앉아 바비큐를 먹으며 보이차도 곁들여 마셨다.“선배님.”몇몇 코치들이 정혁주에게 다가가더니 그중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궁금한 듯 물었다.“소 대표님이 우리 윤하에게 고백한 거예요? 그런데 또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정윤하의 표정을 보면 고백받은 것 같지 않았다.그녀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소 대표님이 꽃집을 지나다가 꽃집의 꽃이 예쁜 것을 보고 윤하에게 선물했다고 하던데, 이런 어설픈 이유도 윤하가 믿다니, 참! 저렇게 멍청한 꼴을 보니 사람들에게 팔려가도 돈을 세어줄 기세인데.”“윤하가 종일 우리와 함께 지내다 보니 남자답고 털털해서 그래요. 소 대표님만큼 신중하지 못하잖아요. 소 대표님이 윤하에게 직접 고백하지 않는 한 윤하는 분명 별생각 하지 않을걸요.”“어휴, 윤하가 소개팅마다 실패하고 시집을 못 가는 데는 우리 책임도 있어요
정혁주는 아예 보이차 한 병씩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그는 보이차를 나누어 주면서 소지훈은 학생들이 정윤하 앞에서 좋은 말을 해주기를 기대하며 매번 큰돈을 퍼부었다.소지훈은 도장으로 올 때마다 도장의 사람들에게 맛 나는 음식을 가져다주었고 또 각자의 몫도 전부 챙겨주었으며 심지어 다 먹지도 못할 정도로 많이 사 올 때도 있었다.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려면 돈도 많이 들었도 또한 보통 사람들에게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정윤하의 말대로 그녀의 수입으로 전체 도장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사주면 몇 번이나 사줄 수 있겠는가!정혁주는 도장의 여러 코치 중에서 수입이 가장 높지만, 소지훈처럼 돈이 많지 않았다.역시 대기업 대표답다!정혁주가 보이차를 나누어 줄 때 밖에 서 있는 두 바보를 유의하여 보며 마음속으로 소지훈은 아마 정윤하에게 첫눈에 반했을 거라고 짐작했다.그래서 연성까지 머나먼 길을 달려서 왔을 것이다.소지훈은 지금 출장 중이지만 저녁에 약속도 없이 도장으로 온 것을 보면 아마 출장할 때 처리해야 할 일들을 다 처리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정씨 저택에 남아서 설을 쇠려고 하는 모양인데...정윤하를 노리고 온 것이 틀림없다.그리고 소지훈은 정윤하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에게서 작은 도움을 받았지만, 소지훈은 기어코 그녀가 자신의 은인이라고 외치며 다녔다.정혁주는 정윤하가 오지랖이 넓고 너무 빨리 움직여 소지훈을 도와주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소지훈의 실력으로 그날 밤 그 건달들 정도는 아주 쉽게 때려눕힐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소지훈의 상대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그렇게 정윤하는 소지훈의 생명의 은인으로 되었다.그리고 정윤하가 전태윤 부부의 연애사에 관심을 두는 모습을 본 소지훈은 천 리 길을 달려와 그녀를 데리고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에 함께 참석했다.정씨 가문은 관성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관성 전씨 가문의 명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몇 번만 뒤져봐도 관성 전씨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날은 이미 어두워졌지만 사실 시간은 아직 이르다. 다만 겨울에는 낮이 짧고 밤이 길어서 빨리 어두워질 뿐이다.정윤하의 수업도 마침 끝났다.“지훈 아저씨 오셨어.”한 학생이 소지훈의 차를 보더니 소리를 질렀고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밖으로 나오지 마. 바람이 많이 불어.”소지훈은 웃으면서 소리쳤지만, 학생들은 모두 뛰쳐나갔다.소지훈은 이내 사 온 간식 몇 봉지를 큰 학생들에게 건네고 포장된 바비큐는 조금 작은 학생들에게 건네주어 도장 안으로 들여보냈다.정윤하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면서 걸어 나왔다.그녀는 소지훈을 보더니 웃으며 말을 건넸다.“아저씨가 오시기 전에는 제가 도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는데 이제 아저씨가 가장 인기가 많네요.”정혁주도 따라 나와 정윤하의 말을 이었다.“너무 인색한 거 아니야? 소 대표님처럼 시원스럽게 모두에게 음식을 대접하면 다들 다시 널 좋아하게 될걸.”“내가 인색한 게 아니라 월급이 쥐꼬리밖에 안 되는데 음식을 몇 번 정도 대접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저씨는 회사의 대표잖아. 난 절대로 이 방면에서 아저씨와 다투지 않을 거야. 이런 일들은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잖아... 음? 눈이 오는 것 같아.”정혁주도 하늘을 보며 말을 이었다.“눈이 오는 것 같긴 하네. 근데 뭐가 이상해? 겨울이 되면 눈이 자주 올 텐데, 정상이잖아.”“형님, 얼른 오세요. 보이차 몇 상자 드릴게요. 바비큐를 사 왔는데 혹시라도 학생들이 먹으면 소화가 안 될까 봐 몇 상자 사 왔어요.”소지훈은 보이차 상자를 들면서 정혁주에게 자연스럽게 건넸다.정혁주는 차를 향해 다가갔고 조수석에 놓인 꽃다발을 보더니 눈이 번쩍 뜨였지만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소지훈이 그들 정씨 가문의 저택에 오래 머문 덕분으로 정씨 집안 가족들이 소지훈의 성격과 사람 됨됨이를 잘 알게 되었다.소지훈은 냉혹한 면과 부드러운 면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냉혹한 면을 정씨 가문의 가족들 앞에서 보여준 적 단 한 번도 없었다.하지만 그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