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미도 모두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따르릉...엘리베이터에 들어간 후 이윤미는 발신자를 확인한 후 전화를 받았다.“아가씨, 제가 소식을 받았습니다. 전임 이 대표, 그러니까 아가씨의 큰이모께서 두 딸이 있었는데 그 두 아이가 수십 년 전에 실종되었다가 지금 관성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관성?이윤미는 차갑게 물었다.“그들이 관성의 어디에 있는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자신의 신분을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전임 가주의 장녀는 관성의 성씨 그룹 대표이사의 엄마이고 차녀는 16년 전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두 딸을 남겼고 그중 한 명이 관성 억만장자 전씨 가문의 큰며느리인 하예정입니다.”이 말을 듣고 이윤미의 얼굴 안색이 변했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으로 돌아오자마자 가문의 어른들이 비밀리에 나눈 대화를 엿들었다. 가주 자리는 원래 이윤미 엄마의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큰이모와 작은이모를 살해하여 가주 자리에 올랐다는 것을 알았다.전임 가주, 즉 이윤미의 큰이모에게는 두 딸이 있었지만 큰이모의 가족이 모두 사망한 후, 그 두 아이의 행방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두 아이도 아마 사망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가 이씨 가문으로 돌아온 후, 가문 사람들은 연약한 그녀의 모습에 크게 실망하고 이윤미가 양녀인 이윤정에게 가주 자리를 뺏길까 봐 걱정했다.그래서 가문 사람들은 그녀의 엄마 몰래 두 사촌의 행방을 찾으면서 두 사촌이 살아 있기를 바랐다.그러다가 예상치 못하게 두 사촌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게다가 그들의 신분과 지위는 만만치 않았다.성씨 그룹은 관성에서 유일하게 전씨 그룹과 맞설 수 있는 강력한 경쟁자였다.그 말 한마디만으로도 성씨 가문의 실력을 알 수 있었다.비록 둘째 사촌 언니는 일찍 사망했지만 두 딸 중 한 명은 전씨 가문의 큰며느리인 하예정이다. 하예정은 이미 여러 도시의 상류사회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그만큼 하예정의 영향력은 강력했다.하예정과 성씨 가문 사모님이 이 오래 전의 사건을
“아가씨, 이건 숨길 수가 없어요. 정보는 바로 저쪽에서 받은 거예요. 그리고 지금 그들은 이미 관성으로 사람을 보내 성씨 가문 사모님을 만나러 갔어요.”이윤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좋아, 알았어. 대표님에게는 일단 비밀로 해둬.”이 대표가 강탈해 온 것은 결국 돌려줘야 할 것이다.어떻게 선택할지는 그녀에게 달려 있었다.통화를 끝낸 후, 이윤미는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이 가문은 정말 엉망이었다.만약 그 소문이 모두 사실이라면 친엄마의 손은 큰이모와 작은이모의 피로 물들여져 있다는 뜻이다.권력을 얻기 위해, 친엄마는 가족애마저도 저버린 것이었다. 정말 잔인하고 냉혹했다.그녀는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어떻게 해야 할까?같이 동조하는 것은 이윤미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비록 시골에서 자랐지만 그녀의 가치관은 바르다. 그녀는 옳고 그름, 선과 악을 알고 있었다.관성의 성씨 가문 사모님이 큰이모의 딸이 맞다면 그때 가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지금 이윤미가 해야 할 일은 먼저 이씨 그룹을 장악하는 것이다. 권력이 있어야만 가주 자리를 큰이모의 후손에게 돌려줄 수 있다.짧은 몇 분 사이에, 이윤미는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그녀는 가주 자리를 큰이모의 후손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원래 큰이모 집안에 속한 것이었다.이윤미는 가주 자리에 큰 관심이 없었고 족보에 오른 후 어쩔 수 없이 이 책임을 떠맡은 것이었다.자신보다 더 정통적인 후계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흔쾌히 양보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회사를 다시 경영하고자 했다.다만 성씨 가문 사모님의 나이는 이미 50대일 것이다. 그녀가 이씨 가문을 맡게 되면 곧 다시 교체해야 할 것이다. 나이가 많고 열정이 부족하니, 성씨 가문 사모님의 딸이 과연 이 능력을 갖추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이것이 바로 이윤미가 성씨 가문 사모님에 대한 모든 자료를 조사하게 한 이유였다.곧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이윤미는 태연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나왔
“회사에 돌아가서 일하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했는데 이윤미가 반대했어요. 회사는 게으른 사람을 필요하지 않는다면서요. 이윤미는 뭐 쓸모 있는 사람이라도 된다는 건가요? 걔도 할 일이 없는 건 마찬가지잖아요.”이윤정은 화가 나서 조윤에게 털어놓았다.집안의 부모님과 형제들 모두가 여전히 그녀를 편애했다.“어머님은 또 무슨 말씀을 하셨니?”조윤는 이윤정과 이윤미가 싸우는 것을 매우 재밌게 여겼다.“엄마께서는 이윤미가 자리 잡지 못하면 가주 자리를 이윤미에게 주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그 말은 이윤미가 후계자로서 자리를 못 잡으면 나에게도 큰 기회가 있다는 거예요. 형수님, 큰 오빠에게 말씀 좀 해주세요. 엄마 앞에서 나 좀 도와달라고 해요. 회사에 다시 돌아가서 일하게 해주세요.”“난 이윤미와 끝까지 싸울 거예요. 어쨌든 저는 엄마가 직접 키운 후계자잖아요.”이윤정은 이윤미를 이길 자신이 있었다.조윤은 말했다.“우리는 모두 어머님 앞에서 너를 많이 밀어줬어. 너의 큰 오빠도 이윤미는 아직 아니라고 했어. 능력도 없으면서 네가 회사에 돌아가지 못하게 막잖아. 너랑 비교될까 봐 그런 거겠지.”“윤정아, 이 일은 너 스스로 해결해야 해. 어머니는 너를 가장 사랑하니까, 어머님 앞에서 잘 보이고 어머님을 기쁘게 하면 널 다시 회사에 보내주실 거야. 이씨 그룹은 여전히 어머님이 곧 권력이니까, 이윤미는 지금 아무것도 아니야.”“네, 이따가 엄마에게 새 옷 몇 벌과 보석 몇 세트를 사드리고 엄마를 기쁘게 해드릴 거예요. 저녁에는 제가 직접 요리해서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몇 가지 만들게요.”이 대표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이윤정은 백 가지라도 할 수 있었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들었고 엄마는 그녀를 가장 사랑하고 애지중지했다.어렸을 때, 오빠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엄마는 가혹하게 벌을 내렸지만 그녀가 엄마에게 애교를 부리며 오빠들을 위해 사정하면 엄마는 오빠들을 용서해 주곤 했다.그래서 오빠들도 그녀를 매우 이뻐했다.또한 아빠도 더 많은 용돈
“이윤미, 이윤미, 이윤미가 뭔데? 비루먹은 개처럼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야. 엄마가 포기하면, 누가 이씨의 후계자인지 알게 될 거야. 나를 무시했던 사람들, 두고 봐!”“그리고 고현 씨는 내가 좋아하는 남자야. 언젠가는 나한테 반하게 만들 거야. 엄마도 나와 고현 씨의 사랑을 지지한다고.”이윤정은 생각했다. 지금은 후계자가 아니니까 고현을 먼저 손에 넣고 성공하면 후계자 자리를 다시 찾을 거라고 말이다. 그러면 고현도 얻고 신분과 지위도 갖게 될 거야.완벽해!조윤은 이윤정과 이윤미가 싸우기를 바랐고 그녀의 남편은 어부지리를 노리고 있었다.그래서 이윤정을 칭찬하며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여자라고 착각하게 했다.강성의 하예정은 소씨 가문의 세력을 통해 이씨 가문의 내분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물론, 자신의 삶은 잘 살아야 한다. 먼 강성에 있는 이씨 가문의 내분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망칠 수는 없다.하지만 항상 하예정이 행복한 날들을 보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그녀와 전태윤 사이의 결혼에 문제를 일으키려는 사람들이 있었다.금요일 아침, 그녀는 일부러 일찍 일어나 전태윤과 함께 우빈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후에 유치원에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야 우빈은 선생님을 따라 유치원에 들어갔다.유치원을 떠난 후, 부부는 각자의 일로 바쁘게 움직였다. 하예정은 서점에 먼저 가는 것이 익숙했다.서점에 들어서자마자 심효진이 말했다.“예정아, 계산대 위에 큰 봉투가 하나 있어. 한 학생이 가져왔는데 그 학생은 낯선 사람이 자기를 붙잡고 그 봉투를 우리 가게에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해. 봉투 위에는 ‘하예정에게’ 라는 글이 쓰여 있어.”“만져보니까 사진인 것 같아.”심효진은 그렇게 말하며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어제 남편이 가져다준 과일을 꺼냈다. 그리고 다 먹지 않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과일을 씻고 나서 그녀는 과일 접시를 들고나와 하예정에게 말했다.“내 추측인데 그 사진들은 네 연적과 전태윤과 닮은 남
“효진이 임신하더니 예뻐졌어. 몸매도 아직 유지 잘하고 있고. 전보다 성숙미가 있어. 소 대표 혹시 널 보면 정신 못 차리는 거 아니야?”심효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우리 시댁에서 내가 돼지인 줄 알아. 몸매가 좋긴. 배가 당장 불러올 것 같은데 이건 임신해서가 아니고 살이 쪄서야. 돼지처럼 먹이는데 살이 안 찌면 이상한 거지. 운동하고 싶은데 정남 씨 못 하게 해.”“내가 또 식탐이 맞잖아. 원래 먹는 거 좋아하는데 임신하고 나니 진짜 먹보 중의 먹보가 됐어. 토끼 입처럼 쉴 틈이 없어.”심효진이 말하면서 일어서더니 과자 두 통을 가져왔다.“내가 친정에서 가져온 거야. 집에 제과사가 새로 만든 건데 맛있더라고. 널 주려고 두 통 가져왔어.”하예정이 과자를 받으며 말했다.“너의 친정집 제과사 솜씨가 좋더라. 먹어보고 맛있으면 한 통 가져가서 별장에 있는 제과사에게 맛보게 하고 따라 해보라고 해야겠어.”“이번 주 별장 가서 주말 보내려고?”“어. 2주에 한 번씩 리조트에 가서 어르신들 뵙고 그리고 시어머님한테 물어볼 것도 많아.”장소민은 하예정이 하루빨리 업무를 익혀 자기가 편히 쉴 수 있기를 원했다.하지만 다음 달이 전태윤과 하예정의 결혼식이기에 하예정이 결혼식 준비도 해야 해서 시어머니한테서 업무를 인계받을 시간이 많지 않았다.“너도 갈래?”하예정이 절친에게 물었다. “좋아. 좀 있다 정남 씨한테 말하고 오후에 학생들 학교 끝나면 너희와 함께 리조트에 가서 주말 보낼 거야. 이렇게 더운 날씨에는 서원 리조트가 최고로 좋은 휴양지야.”서원 리조트가 환경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수풀도 많아 리조트에서 걸어 다녀도 햇살이 뜨겁지 않고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기까지 했다.“시할머니 아직 안 돌아오셨어?”“할머니가 예진 별장에 이틀만 더 계시다가 친구 만나러 가신대. 지연이와 지호 백일 잔치도 참가하지 않으신대.”장난꾸러기 같은 할머니이시기에 하예정도 달리 방법 없었다. 하예정이 심효진에게 일부러 신비스럽게 말했다. “할머니가
전태윤은 회의 중이라 바로 답장하지 않았다.발언을 끝내고 테이블 위에 놓인 핸드폰을 잡아 카톡을 열었다.아내가 보낸 메시지인 것을 발견하고 전태윤의 잘생긴 얼굴이 저도 모르게 부드러워졌다.회의실에 있던 고위관리자들이 전 대표의 표정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보고 대표 사모님이 보낸 메시지임을 눈치챘다.그러더니 보는 사람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대표 부부가 혼인 신고를 한 지 1년이 넘었고 비록 아직 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결혼식이 다음 달로 당장 코앞이다. 젊은 부부는 여전히 사이가 좋았고 이제 나날이 더 좋아질 것이다.무뚝뚝하던 전 대표가 사모님 덕분에 점차 부드러워져 가는 것을 그들은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 아무리 굳센 강철도 용광로에 집어넣으면 녹기 마련이고 아무리 강한 남자도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꼼짝달싹을 못 하기 마련이다.그런데 갑자기 전 대표의 얼굴색이 변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서더니 곧장 문을 향해 걸어갔다. 몇 걸음 못 가 아직 회의가 끝나지 않은 것을 감지하고 소정남에게 말했다.“정남아, 네가 마저 해줘.”소정남이 알았다고 대답하면서 또 무슨 일이 발생했을까 속으로 생각했다.전태윤이 당황하는 모습을 못 본지 오래됐다.전태윤이 급히 회의실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바로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 이 사진 어디서 났어?”“방금 받은 거예요. 어떤 사람이 서점으로 보내온 걸 효진이가 받았어요.”전태윤이 낮은 소리로 심한 욕을 했다.“여보, 화내지 말아요. 사진 속 남자가 당신이 아니고 당신과 비슷하게 생겼을 뿐이에요. 아무리 다정한 사진이라 해도 당신과 상관없어요. 도차연이 대역 찾아 찍은 거예요.”“어떤 호사가가 한 짓인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사진을 보내는 이유가 내 속을 뒤집어 놓고 싶어서 그런 것 같은데 나는 절대 그들의 계략에 빠지지 않죠. 하지만 이런 사진을 자꾸 보면 눈병 생길까 봐 겁나요.”“걱정하지 마요. 절대 당신을 오해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당신을 오해하면 그들의 뜻대
“장난 안 칠게요. 화내지 마요. 도차연은 우리가 혼낼 필요 없이 도 대표보고 혼내라고 해요. 도 대표는 성품이 괜찮은 분이시잖아요.”하예진은 도 대표에 대한 인상이 좋았지만 도차연에 대한 인상은 별로였다.도차연은 외동딸이며 도 대표가 한약을 먹어가며 어렵게 낳은 딸이라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횡포했다.도차연이 점찍은 것이라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반드시 손에 넣어야 성이 풀렸다.도 대표가 분명히 딸 도차연을 구슬려도 보고 욕도 해보고 경고도 했을 것이다.아니면 도차연이 조용히 자기 구역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저 가끔 대역을 찾아 사진을 찍어 보내 하예진의 속을 뒤집어놓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전태윤이 말했다.“좀 있다 도 대표한테 연락해 사진을 도 대표에게 보여줄 거야. 그러면 도 대표가 알아서 처리하겠지.”두 회사에서 프로젝트 계약을 맺은 뒤 전태윤은 프로젝트에서 빠지고 다른 부하를 담당하게 했다.도 대표는 자기 딸이 그렇게 몰염치한 짓을 할 줄 몰랐다. 전태윤은 이미 결혼했고 아내와도 사이가 좋은데 딸이 막무가내로 전태윤에게 한눈에 반해버린 것이다.사랑이 공제가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 이유도 알 것 같았다.전태윤이 비록 기혼이긴 하지만 출중한 것만은 사실이다.하지만 자기 딸이 함부로 전태윤에게 집적거리고 공개적으로 전태윤에게 구애하는 행동이 도 대표를 화딱지 나게 하는 부분이었다. 도차연에게 경고한 뒤 도 대표가 전태윤에게 심심한 사과를 한 뒤로 전태윤은 먼저 도 대표에게 연락한 적 없었고 도 대표도 감히 전태윤을 귀찮게 하지 못했다.도 대표는 현재 해외 출장 중이고 그곳에 몇 개월 동안 머물러야 했다.도씨 그룹 일은 거의 도차연이 맡아 처리했고 도차연이 명의상으로는 도 대표의 비서이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도차연이 도씨 그룹 상속자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도 대표가 부재중일 때 도차연이 회사 내 모든 일을 처리해도 반박하는 사람이 없었다.하지만 도 대표가 딸을 전혀 견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출장간 뒤 도차연이 통제
하예정이 전화를 끊고 나서 절친에게 말했다.“우리 남편이 나와 연기하기 싫다고 하네.”심효진이 하하 웃더니 말했다.“발가락으로 생각해도 태윤 씨가 널 협조해서 연기하지 않을 거란 걸 알 수 있어.”“태윤 씨가 껌딱지처럼 24시간 동안 네 몸에 붙어있고 싶어 하는데 그런 껌딱지가 왜 널 협조해서 연기하려 하겠어? 그러다 정말 서재에 쫓겨나면 어떡하려고?”“다리 부러진 노루가 한곳에 모인다고 했어. 네 남편도 껌딱지야.”심효진이 장난스럽게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그렇고 말고. 나 아직 오후에 너희들 부부와 함께 리조트에 가서 주말 보낸다는 말도 안 했어.”“점심 먹고 말할 거야.”지금 소정남에게 알렸다가 소정남이 허락 안 하면 소정남의 일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전태윤이 아내와 통화를 끊은 뒤 바로 도 대표에게 전화하니 도 대표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전 대표님.”“도 대표님, 미안합니다. 혹시 카톡 추가해도 될까요?”도 대표가 잠깐 멍해 있더니 바로 웃으며 말했다.“당연하죠.”“그럼 카톡으로 얘기하죠.”전태윤이 말하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받은 도 대표가 무슨 일인지 몰라 마음이 불안했다.두 그룹에서 계약을 맺은 뒤 전태윤이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도 대표도 섣불리 전태윤에게 전화를 못 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소정남에게 연락했다.전태윤이 오늘 갑자기 전화해서 카톡으로 얘기하자고 하니 도 대표가 걱정부터 앞섰다. 혹시 자기가 국내에 없는 틈을 타 외동딸이 큰 사고를 친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조카가 그와 말한 적이 없었다.도 대표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전태윤의 친구 추가요청이 들어왔고 그는 급히 수락을 눌렀다.친구 추가를 하고 나서 전태윤이 그에게 사진을 발송하기 시작했다.연이어 몇 장의 사진이 도착했다.전태윤이 사진을 보내고 난 뒤 음성메시지를 보내왔다. 도 대표가 먼저 음성메시지를 클릭하니 전태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도 대표님. 이 사진은 따님이 찍은 거예요. 사진 속 남자는 제가 아
“우리 가게에는 유아용 교재가 없어서요. 다른 문구 방에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하예정의 서점은 중학교 앞에 위치해 주 고객층이 중학생이었고 유치원용 책은 들여놓지 않았다.“아, 그렇군요. 그럼 잠시 후 다른 문구 방에 가봐야겠어요.”젊은 여자는 책값을 지불하고 책을 들고 나가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가게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하예정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아마도 전태윤과 함께 행사에 참석했을 때 스치듯 본 적이 있을지 몰랐지만 깊이 알지는 못해 기억나지 않는 것이라 여겼다.‘잠시 후 태윤 씨한테 물어봐야겠다. 어떤 가문일까? 장남은 결혼했고 작은아들은 중학생이고 막내딸은 유치원이라니...’젊은 여자는 스물한두 살쯤으로 보였고 남편도 젊을 가능성이 컸다. 하예정은 임신 전 상류층 모임에 자주 참석했지만 어느 집안 자제가 그렇게 일찍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그녀가 아는 젊은 여자들은 대체로 그보다 나이가 많았기에 방금 본 여자가 속한 가문은 아직 명문으로 자리 잡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여자의 차는 근처에 주차된 흰색 BMW7 시리즈였다. 차 앞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가 가까이 다가가자 두 남자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그녀의 경호원과 운전기사인 듯했다.“출발하죠.”여자는 차에 올라 운전사에게 지시했다. 차가 멀리 떠난 후, 그녀는 가게 쪽을 돌아보았다. 하예정이 더 이상 자신을 보지 못할 거리라고 판단한 순간, 여자는 얼굴을 만지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그 젊은 여자는 바로 여씨 가문의 둘째 딸, 여운별이었다. 그녀는 현재 용태호의 스폰녀로 지내고 있었지만 사교계에서는 용씨 가문 사모님을 사칭하며 활동 중이었다. 이는 용태호가 모든 의심을 피하기 위해 마련한 조치였다.여운별은 용태호가 준 인피가면 덕분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녀의 임무는 하예정에게 접근해 친구가 된 후 용정이라는
“저도 마음이 놓이네요. 엄마, 윤하가 아직 소 대표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은 거 맞죠? 제가 대신 받아주고 싶네요. 소씨네 식구들 성격이 다들 시원시원해서 우리 윤하한테 잘 맞는 거 같아요. 윤하도 덜렁덜렁 거리는게 저 집안과 바이브가 맞아요.”윤하 어머니는 혁진에게 말했다. “네 동생 일생의 큰 일이야. 우리가 잘 체크해주고 나머지는 윤하한테 맡겨야지. 지훈한테 시집가는 사람도 윤하도 한평생 같이 살 사람도 윤하 자신이니까 걔가 좋아야 되지. 그리고 윤하 다음은 너랑 혁주야. 너희 둘도 이제 슬슬 준비해야지.”“엄마, 저 쌀 씻으러 갈게요.” 윤하 어머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결혼 잔소리를 했고 혁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그런 혁진을 보고 어머니는 몇 마디 나무랐다.연성의 겨울은 눈 내린 광경을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관성은 아직도 최고 기온이 25도나 되는 여름이어서 길거리에는 반팔티를 입고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하예정은 서점에서 남편이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다. 두 사람은 관성 호텔에 가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다.그녀는 이제 더 이상 공예품을 만들지 않았다. 온라인 쇼핑몰도 전에 그녀를 도왔던 아기엄마한테 양도했다.지금은 서점에서 일하고 있고 학생들이 수업이 끝나면 조금 바빠질 뿐, 다른 시간에는 아주 한가해서 옆 가게 탐방도 자주 하곤 했다. 비록 경호원들이 뒤따르지는 않지만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길까 항상 주시하고 있었다.심효진은 소설을 좋아해서 그녀가 서점을 지키고 있을 때는 하루 종일 앉아 소설을 읽곤 했다.하예정은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고전 작품 한 권을 골라 읽었지만 자꾸만 하품이 나와 결국 읽기를 포기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를 지나 책장 앞에 다가가 먼지털이로 책우의 먼지를 털기 시작했다. 사실 먼지가 별로 없었지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할 일을 찾아야 했다.그때, 밖으로부터 또깍또깍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처음 보는 젊은 부인이 서점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에르메스 백을 들고 있었고
혁진은 거실에서 지훈이 부모님이랑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지훈이 아버지는 성격이 아주 호탕한 분이셨다. 혁진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두 사람은 말이 잘 통했다.지훈이 마침 아침밥을 들고나오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을 기세였다.지훈이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몇 번이나 눈치를 주었다.이 양반이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까먹은 거 아니야?여기는 윤하네 집, 예비 사돈댁이라고. 혁진은 예비 며느리 친오빠고, 두 사람이 형제를 맺으면 나중에 아들더러 어떻게 처신하라는 거야. 아주 그냥 엉망진창이네.“아버지, 어머니, 윤하 씨 어머님께서 아침을 준비해 주셨어요. 따뜻할 때 드세요. 저희는 이미 먹었어요.”지훈은 부모님을 주방으로 불렀다. “점심은 여기서 먹어요. 조금 있다가 윤하 씨랑 제가 장 봐 올게요.”지훈이 어머님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좋아, 나도 나가서 눈이 내리는 걸 보고 싶어. 지훈이 아버지, 당신도 같이 가요. 짐도 들어줄 겸.”남편의 의견을 물어보는 듯했지만 사실상 답정너였다. 집에 두고 갔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장 보고 돌아올 땐 이미 혁진이랑 형제를 맺었을지도 모른다.“그래요.”지훈이 아버지는 흔쾌히 대답했다.윤하 어머니는 주방에서 나오며 민망한 듯 말했다. “두 분께서 오시는 줄을 몰라서 제대로 준비 못 했어요. 점심에는 뭘 드시고 싶으세요? 말만 하세요, 제가 다 할 수 있어요. 가족이라 생각하고 편히 말씀하세요. 내외할 것 없어요.”지훈이 어머니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 저희 안 그래요. 이제는 가족이나 마찬가진데요. 저희는 뭐든 잘 먹어요. 아무거나 다 돼요.”“사돈, 윤하는 정말 훌륭한 아가씨예요. 저희 지훈이랑은 비교가 안 돼요. 지훈이 때문에 저희 두 사람 속 많이 태웠어요.”지훈이 어머니는 실수도 사돈이라고 불렀지만 윤하 어머니는 개의치 않았다. “과찬이세요. 저희 윤하도 속 썩일 때가 많았어요. 지훈이야말로 성숙하고 성격도 온화하고 너그럽고 유망한 청년이죠. 저희 윤하보다 훨씬 나은 걸
원래부터 지훈을 마음에 들어 하던 윤하 어머니는 지훈의 특별한 사정을 알고 나서 더욱 자신의 사윗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윤하와 결혼을 하게 되면 지훈은 그녀를 더욱 소중히 아낄 것이 분명했기에 윤하 어머니는 딸이 멀리 관성에 시집가서 마음고생할 거라는 걱정이 사라졌다.윤하와 어머니는 주방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지훈이 부모님을 대접할 아침을 준비했다.지훈도 주방으로 들어와 일손을 도왔다.“지훈 씨, 안 도와줘도 돼요. 가서 부모님이랑 얘기 나눠요.”윤하는 지훈을 밀어냈다.“부모님이 저더러 도와주라고 해서 들어왔는데 저를 또 저쪽으로 보내시면 어떻해요? 누구 장단에 맞춰야 해요? 아차! 아버님이랑 큰형님이 안 보이시는데 아직 주무시나요? 아니면 도장에 일찍 나가셨어요?”지훈은 그 두 사람이 보이지 않자 물어보았다. 아까는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두 사람 볼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공항에 갔어. 이쯤 되면 아마 비행기에 올랐을 거야.”윤하 어머니가 대답했다.지훈은 별생각 없었다. 고백도 했고 부모님도 인사하러 오셨고 지금은 그저 윤하의 답변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사실 지훈도 내심 많이 긴장됐다.그도 윤하가 자신을 밀어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옷도 사주고 고백 후에 도망치지도 않았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윤하가 명확히 대답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거절할 수도 있기에 두려웠다.윤하가 설령 거절한다고 해도 지훈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질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가 선택한 사람이라면 평생 그 한 사람한테만 마음을 줄 그런 사람이었다. “어머님, 준비 많이 하시지 마세요. 두 분 간단히 요기하면 돼요. 제가 이따가 두 분 호텔로 모셔다드릴 거예요. 거기서 식사하시면 돼요.”“귀한 손님들이 멀리서 오셨는데 점심은 내가 대접해야지. 외식할까 아니면 집에서 먹을까?”윤하 어머니는 물었다.“집에서 먹으면 윤하랑 혁진이는 오늘 도장 나가지 말고 장 좀 봐줘
윤하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윤하를 보며 물었다. “뭐라고? 불감증?”“지훈 씨가 질병이 있는데 불감증이래요. 근데 나한테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이건 치료가 잘되지 않는 병이고요. 운명인가 보죠 뭐.”“오래 살고 볼 일이네. 이런 병은 또 처음 들어봤어. 그럼 네가 지훈이 한테 시집가면 걔가 변심할 걱정도 없고 바람피울 걱정도 없는 거잖아.”윤하는 대답했다. “뭐 그런 셈이죠. 지훈 씨가 그러는데 다른 여자들이랑 있을 때에는 진짜 아무 반응이 없대요. 부모님이 사정을 알고 나서 계속 선을 보게 했는데 지훈 씨가 안 나갔어요. 또 부모님이 젊은 여자들 사진도 많이 보여줬대요. 혹시나 병이 좀 나아질지 해서요. 그런데 아무 효과가 없는 거죠.”윤하는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을 모두 엄마에게 털어놨다.“지훈 씨 부모님이 마음이 급하셔서 지훈 씨가 어떤 여성분에게 눈길을 한 번 더 줬다 하면 혹시나 그 분한테 반응이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할 정도라고 하더라고요.”윤하 어머니는 들을수록 의아했다. “그럼 걔는 어떻게 너한테만은 다르다고 확신하는 거야? 너희 둘이 무슨 일 있었어?”윤하 어머니는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윤하야, 지훈이가 너한테 진심이든 아니든 결혼하기 전까지는 순결을 지켜야 해. 여자는 자신을 아껴야지. 내가 책이랑 동영상에서 많이 봤는데 어떤 여자애들이 결혼하기 전에 임신하는 바람에 시댁에서 업신여겨 예물을 적게 주거나 아예 안 주는 집안도 있대. 이런 집에 시집가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을 거야.”“엄마가 옛날 사람이라서 요즘 젊은이의 사상을 못 따라는 게 아니라 딸 가진 엄마로서 내 딸이 시댁에서 업신여김을 당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야. 그러니 절대 결혼 전에 사고 치지 마. 약혼했다고 해도 안돼. 혼인 신고를 해야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거야. 그때가 되면 결혼식을 올리든 안 올리든 엄마도 관여하지 않을 거야.”윤하 어머니는 윤하가 충동적인 행동을 할까 봐 걱정했다. 윤하는 나이도 어리고 연애 경험이 적은 것에 비해 지훈은 비록 여자
지훈은 그저 그들에게 손주를 안겨주는 도구로 몰락할지도 모른다.“고구마가 이렇게나 많아요? 그럼 군고구마 만들어 먹어요. 밖에서 사면 한 개에 삼천 원 정도 하잖아요, 너무 비싸요.”윤하는 역시나 고구마를 보고 기뻐했다.윤하는 차 문이 열려있는 쪽으로 걸어가서 안을 들여다보고는 혀를 내둘렀다.”이게 전부 다 고구마예요?”고구마인지 곤약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도 물건들을 나르기 시작했다.곧 혁진이 도와주러 나왔다.그렇게 세 젊은이는 몇 번을 왕복해서 겨우 차 안에 가득했던 농산품들을 거실로 옮겨갔다. 값비싼 삼과 제비집도 그중 어느 안에 들어있었다.지훈은 부모님이 정말로 농산품만 갖고 온 줄 알았다.소씨 집안에서 가지고 온 선물들을 윤하 어머니께서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방문에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었다.지훈이 부모님이 방문한 탓에 윤하와 혁진은 도장으로 가지 않고 집에서 접대를 도왔다. 소씨 가주 내외가 아침을 못 드신 걸 알고 윤하 어머니는 윤하와 함께 주방으로 들어가 아침 준비를 했다.윤하는 그 틈을 타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아버지랑 큰오빠는 이렇게 일찍 도장으로 나갔어요? 두 사람한테 전화했었는데 둘 다 안 받던데요.”윤하 어머니는 밖을 한번 힐끗 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아버지랑 혁주가 관성에 갔어. 지훈이 집안에 대해 좀 알아보려고. 근데 지훈이 부모님이 여기로 오실 줄 누가 알았겠니?”“저 아직도 고민 중인데 둘이서 벌써 관성에 갔다고요?”“그러니까 네가 고민이 끝나기 전에 미리 알아보는거지. 네가 시집살이 안 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시름 놓고 너희 둘을 미뤄줄 거 아니야.”윤하 어머니는 계속해서 말했다. “지훈이 부모님을 보니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봐. 두 분이 너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소씨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처음 집에 인사 온다고 농산품들을 가지고 온 것 봐. 다 우리를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 우리한테 맞춰주려고 한다는 것은 그만큼 너를 중요시한다는 거야. 그
사실 지훈도 부모님 몰래 일을 꾸몄으나 두 분이 보통 눈치가 빠른 사람이 아니라서 지훈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다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을 했다.집 문 앞에서 지켜보던 윤하 어머니는 딸과 함께 들어오는 두 사람의 얼굴이 지훈이랑 아주 비슷한 걸 보고 누군지 바로 알아챘다.그러고는 얼른 문을 활짝 열었다.지훈 어머니는 윤하 어머니를 보자마자 하마터면 사돈이라고 부를뻔했지만 너무 이른 감이 있어 당황하실까 봐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되려 삼켰다.윤하 어머니는 지훈의 부모님이 오실 줄은 생각 못 했다.아들과 남편이 방금전에 관성으로 출발했는데 두 분이 집에 찾아오시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관성에서 두 사람에 대해 알아볼 때 마주치거나 들킬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정씨 집안 식구들은 지훈이 마음에 들었다. 지훈이 집안 사람들까지 인품이 좋으신 분이라면 멀기는 멀어도 윤하를 소씨 집안으로 시집 보낼 의향이 있었다.다만 걸리는 점이 있다면 바로 지훈의 질병이었다. 어젯밤, 두 형제는 지훈에게 이게 관해 물어보지 않았고 윤하도 가족들한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윤하가 지훈을 대하는 태도에서 아마 큰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윤하 어머니는 짐작했다.전에 질병이 있었다가 이제는 다 완치됐을 가능성도 있었다.두 집안 어르신이 만나고 나서 윤하 어머니는 지훈의 부모님 두 분 다 성격이 좋으시고 친근하신 걸 느꼈다.사돈 될 분들한테 부담이 될까 봐 일부러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왔다. 행여나 너무 부유해 보여 정씨 집안에서 윤하를 시집 안 보내겠다고 하면 아들이 손해 보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지훈의 부모님은 정씨 집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두 가문이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엄밀히 말하면 오히려 정씨 집안이 손해 보는 셈이었다. 지훈은 이제 중년이 다 된 아저씨이고 윤하는 아직 꽃다운 어린 아가씨이기 때문이다.지훈의 부모님은 소씨 집안 가주라는 기세 없이 자세를 낮추어 얘기했다.윤하 어머니와 혁진은 두 분을 대접하고 있고 윤하는 지훈을 도와 짐 나르러 갔
지훈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윤하 씨는 언제든지 예뻐요. 긴장하지 말아요, 저희 부모님 그렇게 어려운 분들 아니세요.”“긴장 안 했거든요. 처음 뵈는 자리니까 잘 꾸미지 않더라도 예의는 갖춰야 하니까요. 제가 문 열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하는 지훈보다 먼저 뛰어가 문을 열었다.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문 앞에 서 있었다.윤하가 문을 열자 차에 앉아 계시던 분이 창문을 내리고 바로 차에서 내렸다.중년 여성분이셨는데 지훈과 많이 닮아서 누가 봐도 소지훈 어머니인 것을 알 수가 있었다.윤하는 내심 지훈의 어머니의 미모에 감탄하고 있었다. 관리를 아주 잘하셔서 겉보기에는 어머니가 아니라 누나같이 보일 정도였다.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으면 전혀 모자같이 보이지 않았다.지훈 어머니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걸어오며 물었다. “아가씨가 윤하 씨구나. 사진 본 적이 있어요. 나는 소지훈 엄마 되는 사람이에요.”“어머님, 안녕하세요.”윤하는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지훈도 윤하를 따라 인사 한마디 건넸다.지훈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윤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번 훑어보고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예쁘고 아들이랑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지훈 어머니는 첫눈에 바로 윤하가 마음에 들었다.자기 아들을 구해준 유일한 여자애라고 생각해서 사진을 볼 때부터 이미 마음에 들었고 흡족해하셨다.지훈이 아버지도 차에서 내렸다.“윤하 씨, 안녕하세요, 저는 지훈이 애비되는 사람입니다.”지훈이 아버지는 평소에는 근엄하고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말하시지만 그 순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윤하는 아버님께도 인사를 건네고 두 분을 집안으로 모셨다. “아버님, 어머님, 빨리 집 안으로 들어가요, 밖이 추워요.”“좋아요.”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지훈의 아버지는 차 키를 아들에게 던져주고는 말했다.” 차 안에 있는 물건들 집으로 옮겨와.”“두 분 편히 오시면 돼요, 뭘 들고 오시지 마
지훈의 아버지는 시계를 보시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일찍 오긴 한 것 같아. 여름이면 이쯤 되면 꽤 많은 사람들이 일어났을 텐데. 차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노크하러 갈까?”지훈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먼저 아들한테 전화를 걸어 일어나라고 해야겠어요.”그는 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윤하와 입술이 닿는 그 순간, 고막을 찌르는 전화벨 소리가 울려 지훈은 단꿈에서 깨어났다. 지훈은 키스의 여운에 입술을 문지르다 정신이 번쩍 들어 그제야 자신이 꿈꾸었음을 알았다. 윤하는 지훈의 고백을 외면하지 않았지만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눈치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달콤한 꿈이 산산조각 나자 지훈은 순간 화가 났다.핸드폰을 집어 든 지훈은 발신인을 확인하지 않고 쌀쌀한 목소리로 물었다.“누구세요? 왜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전화를 거세요? 큰 일이 아니라면……”“아니면 어쩔 건데? 내가 누구냐고? 네 엄마야, 나 지금 윤하네 집 앞이야. 빨리 나와 문 열어. 아니면 내가 들어가서 혼쭐을 내줄 거니까.”지훈도 한 성깔 하는데 지훈의 어머니는 그보다도 한 수 위였다. 말 몇 마디로 바로 지훈을 수그러들게 했다.지훈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놀라서 물었다. “뭐라고요? 지금 집 앞이라고요? 아버지도 같이 있어요?”두 분이 오신다고는 했지만 진짜로 오실 줄 몰랐고 또 이렇게 일찍 올지도 몰랐다.“아버지도 옆에 계셔. 대문이 아직 안 열려있는 것을 보아하니 다들 아직 일어나지 않았나 보지? 아들, 우리가 너무 일찍 온 거 아니야?”지훈은 침대에서 굴러 내려오며 대답했다. “당연한 말씀을, 이 추운 날씨에 이렇게 일찍 오신 거예요? 아버지가 오신다고 하시더니 진짜로 오실 줄은 몰랐어요. 아직 이르다고 말했잖아요, 윤하 씨가 엄마아빠를 만나면 부담스러워할 거예요. 잠깐만 기다려봐요, 제가 내려가서 문 열어줄게요.”입으로는 툴툴거렸지만 정작 부모님들이 밖에서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지훈은 엄마에게 당부 몇 마디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