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성문철과 성기현 부자가 돌아왔다. 성소현과 하예정도 그들 부자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하예정이 집에 들어가서 얼마 안 돼 전태윤의 전화를 받고 바로 성소현의 집에서 나와 전씨 그룹으로 향했다. 회의를 마친 전태윤이 회의실에서 나와 대표 사무실에 들어와 앉자마자 하예정이 노크하더니 문을 열고 들어왔다.“여보.”하예정을 본 전태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가로 걸어가면서 하예정을 맞이했다.“왜 회사로 오라고 했어요? 무슨 일 있어요? 물어봐도 답도 안 해주고.”전태윤의 회사로 오라는 전화를 받자마자 하예정은 전태윤이 걱정되어 부랴부랴 달려왔다. 전태윤이 아내의 손을 잡고 소파로 가 하예정을 소파에 앉히고는 마실 것과 간식을 가져왔다. 그러더니 웃으면서 말했다.“별일 없어. 함께 점심 먹으려고. 좀 있으면 점심시간이니 먼저 와서 날 기다렸다가 함께 밥 먹으려고 했어.”하예정이 전태윤을 향해 눈을 흘겼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싶어 부랴부랴 달려왔더니 같이 점심을 먹기 위해서이다.“큰이모가 밥 먹고 가라고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가득 해주셨는데 당신이 전화해서 아무 말도 없이 그저 회사로 오라고만 해서 쏜살같이 왔더니...”하예정이 어이가 없어 전태윤의 팔뚝을 찰싹 치면서 말했다.“깜짝 놀랐잖아요.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어요.”전태윤이 하예정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추더니 웃으며 말했다.“남편과 같이 밥 먹는 것도 큰일이야. 사람은 밥심에 사는 건데 밥 먹는 것도 큰일 맞잖아.” “여보, 곧 있으면 우리 결혼 1주년이야. 갖고 싶은 거 있어?”전태윤이 하예정을 끌어안은 채 말하고 있었다. 전태윤은 하예정이 자신의 품에 안기는 느낌이 좋았다. 하예정을 품에 안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부족한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뭐가 부족하기만 하면 당신이 선물하잖아요. 그런데 아직 한참 남았어요. 결혼기념일이 지나면 결혼식도 준비해야 해요.”“아직이지만 그렇게 많이 남은 것
“큰이모님께 말씀드렸어?”전태윤이 물었다. “말했어요. 큰이모 보러 간 목적이 이걸 알려주려고 간 거잖아요. 큰이모가 어릴 때 기억이 잘 안 난대요. 어릴 때 가정이 부유했고 하인들이 아가씨라고 불렀던 기억이 있대요.”“그리고 외할머니가 바쁘셔서 외할아버지가 집에서 아이들을 돌봤다고 해요.”“그리고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가 외할머니가 딸 둘을 낳았다고 싫어하시는 기색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손녀들을 아주 예뻐하셨대요.”“큰이모 말대로라면 큰이모가 이씨 가문 전 가주의 딸을 가능성이 95퍼센트 이상이에요.”전태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강성 명문 중에 이 씨가 많지 않아. 이모님이 이 씨라고 하시니 바로 강성 이씨 가문이 생각났어. 우리 추측이 맞을 것 같아.”하예정이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큰이모가 머리가 복잡해서 생각 좀 해보자고 했어요. 그리고 이모부와 사촌오빠도 불러왔어요. 먼저 확인해 보고 나서 친정이 맞는지 확정해야 한다면서요.”만일 맞다면 또 한바탕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큰이모한테 저희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했어요.”전태윤이 말했다.“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은데 소문이 진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어려워.”사람들이 이씨 가주가 큰 언니와 동생을 살해하고 큰 언니 시부모님댁마저 살려두지 않았다며 수법이 너무 악랄하다고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소문이고 그 누구도 이씨 가문 소행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없었다.더욱이 10여 년 전 일이라 사정을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세상 뜬 지 오래되었을 것이다.만에 하나 사정을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씨 가문에서 그 사람에게 살길을 남겨줬을까?“내 생각에는 그래도 어디에 증거가 남아있을 거 같아요. 누군가 꼭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하예정은 정의는 반드시 존재할 것이고 늦게 도착할 순 있지만 반드시 도착할 것이라 믿었다. 이씨 가문에서 만일 용서 못 할 만행을 저질렀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밝혀질 것이다.종이로 불을 감싸지 못한다. 밖에 종이가 타버리면
“그리고 소지훈이 그 결과를 모르겠어? 소지훈 아버지가 아시면 소지훈과 성소현 두 사람 모두 피곤해져.”하예정이 소리내어 웃더니 말했다.“정말 당신과 상관이 없는 거죠? 그런데 눈빛이 왜 흔들리면서 내 눈을 못 쳐다봐요?”하예정이 갑자기 전태윤의 머리를 돌려 억지로 자신과 눈을 맞추게 하였다.“전태윤 씨, 당신이 다시는 나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어요. 어기면 일 년 동안 서재에서 자야 한다는 거 알죠?”“일 년 동안 서재에서 잔다는 말은 안 했어.”전태윤이 자신 없는 말투로 말했다.전태윤은 절대 하예정에게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일 년 동안 서재에서 자겠다는 말은 한 적 없다.하루 이틀 서재에서 자는 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일 년은 절대 안 된다. 한 달도 버티기 어렵다.“당신은 말한 적이 없지만 내가 정한 거예요. 다시 나한테 거짓말해서 들통나면 일 년 동안 서재에서 자야 해요. 내 곁에 올 생각 하지 말아요.”전태윤이 울상이 된 얼굴로 하예정을 보면서 말했다.“여보, 그건 너무 가혹해.”“그러면 거짓말하지 마요”“내가... 그래. 알았어. 말할게. 그런데 소현 씨한테는 절대 비밀이야. 알면 소현 씨가 나한테 야단을 칠 거야. 나 소현 씨 무서워.”성소현은 전태윤의 사촌 처형이기에 절대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빨리 말해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전태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있잖아. 이게 큰이모님 때문에 시작된 일이야. 큰이모님이 준하 씨와 소현 씨 갈라놓고 싶어 하셨잖아. 그리고 큰이모님이 영준이를 마음에 들어 하셨어. 당신도 알잖아.”“그런데 영준이는 소현 씨한테 전혀 그런 생각이 없고 또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어. 소현 씨가 준하를 그렇게 사랑하는데 영준이가 끼어든다고 해도 그 결과가 어떨지 뻔하잖아. 영준이가 바보가 아닌 이상 절대 그럴 리가 없지.”“큰이모님이 또 계략이 많으시잖아. 자꾸 영준이를 괴롭히니깐 영준이가 나한테 찾아와서 고민을 얘기하는 거야. 사촌 동생이 나에게 도움을 청하
“아무리 도련님이라고 해도 사랑과 관련된 것이라면 당신이 절대 훈수 두면 안 돼요. 점점 일을 복잡하게 만들잖아요. 당신이 그쪽으로 경험이 많거나 빠삭하면 내가 상관 안 할 거예요. 당신이 훈수를 두고 싶은 대로 둬도 할 말 없어요.”“나 그쪽으로 경험도 없고 빠삭하지도 않아. 그리고 EQ도 낮아. 정남이가 나보고 EQ가 마이너스라고 했어.”“이제 이런 고민이 있으면 당신한테 구원 요청하라고 할게.”전태윤이 동생들에게 고민 상담해줄 기회를 아내에게 넘겨줬다. 이러면 아내가 동생들 앞에서 더욱 위엄이 있을 테고 지위도 확고해질 것이다.“소지훈과 소현 언니 일은...”“절대 처형 알게 하면 안 돼.”“내가 비밀로 해줄 수는 있지만 소지훈이 계속 이런다면 이것도 골치 아픈 일이에요.”그러자 전태윤이 말했다.“내가 소지훈한테 아주 가끔 그러라고 얘기할게.”하예정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준하씨와 소현 언니 약혼식 올리면 그때 소지훈한테 말해요. 그런데 아마 그때 되면 소지훈 자신이 먼저 포기할 거예요.”“소지훈이 이러는 건 예준하와 성소현이 빨리 관계를 확정하라고 재촉하는 거잖아. 두 사람이 관계를 확정하지 않으면 관성의 수많은 젊고 유능한 남자들이 겁에 질려 있어.”“그건 그래요.”전태윤이 자신의 사촌 동생이 성씨 가문 사모님때문에 괴로움을 토로하는 데 대해 충분히 동감하였다.“큰이모가 소지훈과 예준하를 비교해 보니 예준하가 낫다고 판단했나 봐요. 이건 소지훈의 공로가 맞아요.”소지훈이 알았다면 내가 예준하보다 뭐가 부족하냐고 했을 것이다.그러면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아마 네가 괴팍해서라고 했을 것이다. 소지훈과 결혼하는 여자는 반드시 생과부가 될 것이다.그걸 알기에 성소현의 어머니는 예준하가 소지훈보다는 나은 사윗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여보, 그만하고 우리 가서 밥 먹자.”“그래요.”하예정이 몸을 일으켰다.오후가 되자 하예정은 서점에 돌아가 일손을 거들었고 온라인 쇼핑몰을 친구에게 이전하면서
“과일하고 건강 제품 조금 샀어요. 우빈 아빠 몸보신해 줘요.”하예진은 직접 전남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우빈이 아빠라고 불렀다. 주형인을 보러 온 건 우빈이 때문이라는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이 관계가 없으면 하예진은 절대 주형인의 병실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것이다. 주형인의 부모님도 하예진이 손자 때문에 병문안을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이혼할 때 손자의 양육권을 하예진에게 양도한 것이 정확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우빈이가 줄곧 엄마와 이모와 살고 있었고 양육권을 하예진에게 양도함으로 우빈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더욱이 전보다 더 좋은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 주요하게는 하예진이 현재 살고 있는 집에는 싸움과 모순이 없어 우빈의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될 일도 없었다.“서인 언니.”주서인도 병실에 있는 것을 보고 하예진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이혼 뒤 하예진과 시부모님 및 시누이와의 관계가 오히려 정중해진 느낌이다. “서인 언니 몸은 괜찮아졌어요?”하예진이 물었다.“나는 괜찮아졌어. 퇴원 수속도 마쳤고. 형인이가 깼다고 하기에 형부와 함께 부랴부랴 달려온 거야. 감사하게도 형인이 드디어 깨어났어.”주서인이 감격하면서 하예진에게 자리를 권했다.하예진이 병상에 누워있는 주형인을 힐끗 쳐다보니 주서인이 말했다.“형인이가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지만 아직 정신이 맑지는 못해. 혼수상태일 때가 많고. 의사가 며칠 지나면 조금 나아질 거라고 했어.”“죽다 살아난 거잖아. 깨어난 것만으로도 기적이야.”주서인이 말하고 나서 다시 하예진에게 물었다.“우빈이는?”“우빈이 어린이집 갔어. 오후 4시 되면 데리러 가야 해요.”주서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오늘 개학하는 날이지. 우빈이가 이젠 어린이집도 가게 되고 시간 참 빨리 간다.”남동생이 하예진과 이혼할 때만 해도 우빈이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기였다.이젠 우빈이가 어린이집에 다닌다고 한다.“우빈이 적응 잘하고 있어?”주 씨 부부가 이구동성으로 물
이때 주경진도 따라서 말했다.“예진아, 돈은 남겨서 우빈이 키우는 데 보태. 그걸로도 우리는 고맙게 생각한다.”아들의 명성이 깨졌으니 재혼은 어려울 것이고 서현주와의 결혼도 이제 끝이다.주씨 가문에 손자는 우빈이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주형인의 부모에게는 이 손자가 그 누구보다도 애틋하였다.손자의 행복이 그들에게는 둘도 없는 위안이었다.“가게 매출이 지금 좋아지고 있어 사는 데 지장 없어요. 많지 않으니 이걸로 맛있는 거라고 사서 드세요. 가게에 일이 많아 저는 먼저 돌아갈게요. 주말에 제가 우빈이와 함께 우빈이 아빠 보러 올게요.”하예진은 돈을 억지로 다시 김은희 손에 쥐여주었다.50만이 사실 많지 않은 돈이었다. 김은희가 하는 수 없이 돈을 받아 넣더니 하예진이 사 온 과일바구니를 들고 나와 우빈이 줘라고 하는 것을 하예진이 거절했다. 두 사람이 다시 한바탕 밀고 당기기를 하다 결국 김은희가 다시 병실로 들고 들어갔다.주서인이 봉투를 열어 하예진이 사온 건강 제품을 보면서 말했다.“전부 혈기에 좋은 영양제품이네요. 예진이가 신경 써서 사 왔나 봐요. 우리 가족이 전에는 예진이한테 살갑게 못 했는데 우빈이 봐서 예진이가 병문안을 왔나봐요. 참 고맙네요.”그러면서 다른 봉투를 열어보더니 김은희에게 말했다.“엄마, 저도 다쳐서 입원했다가 방금 퇴원했잖아요. 예진이가 두 개씩 사 왔으니 제가 한 통 가져갈게요.”“예진이 무슨 과일 사 왔어요?”주서인이 엄마 손에서 과일바구니를 받아 열어보니 포도였다. 한 알 따서 먹어보니 싱싱하고 달면서 씨가 없어 껍질 바를 필요도 없었다.“엄마, 형인이 아직 이런 거 못 먹어요. 그리고 과일을 오래 두면 맛없고 요즘 날씨도 더워서 바로 상해요.”“엄마가 조금 가져가고 나머지는 우리 집에 있는 3마리 돼지한테 먹일게요.”하예진이 통 크게 사 온 포도는 제법 비싼 품종이었다. 예전에 산 적 있는데 한 송이에 몇만 원씩 하였다.집에서 사 먹을때는 돈이 아까워서 한 송이밖에 못 샀는데 하예진은 한 바구니
주서인은 성격이 유별났지만 다른 사람의 선의도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그녀가 말했다.“게다가 예진이가 왜 돈을 많이 벌려고 하겠어? 다 우리 조카를 위한 거잖아. 우빈의 성씨가 주 씨잖아. 영원히 우리 주씨 집안의 사람인데 제가 왜 망쳐 놓으려고 하겠어?”“예진의 사업이 점점 더 커지기를 기대해도 모자랄 판에. 앞으로 우리 우빈이가 가 사업을 이어받게 되면 마다하지 않고 우리 아들에게도 일자리를 마련해 줄 걸.”주경진 부부는 딸을 째려보았다.부모님의 눈치를 보던 주서인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그냥 해본 소리야. 앞으로 일을 누가 알아. 어쩌면 우리 임씨 가문의 사업도 점점 더 좋아질지도 모르잖아. 앞으로 우리 아들도 재벌 2세가 될 수 있을걸.”주서인은 일어나서 과일 주머니에서 포도 한 송이를 꺼내 탁자 위에 놓고는 남은 포도 한 상자와 영양제 한 봉지를 집어 들고 부모님께 말했다.“아버지, 어머니. 저도 이제 막 나아지는 중이라 먼저 돌아가 볼게. 형인이가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 저한테 전화해 줘.”“형인에게 보신탕 끓여올게. 몸 좀 돌봐주어야 하니까.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큰 재난 뒤에는 행복이 온다고 하잖아. 몸이 회복되면 그 독한 여자랑 이혼하고 예진이랑 재혼할 수도 있는걸.”“예진이는 지금 부자잖아. 우리 형인이 예진이를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다면 우리가 반드시 예진이를 조상처럼 모시면서 그들 혼인 생활을 잘 지지해야 해.”“노동명 씨도 불구가 된 이 상황으로 보면 하예진이 동명 씨에게 시집가지 않을 수도 있어.”주서인은 여전히 대낮에 꿈을 꾸고 있었다. 주형인 하예진과 재혼해서 자신도 그 복을 누리겠다는 뜻이었다.“빨리 나가!”주경진은 병실 입구를 가리키며 딸에게 빨리 꺼지라고 했다.주서인은 그제야 남편과 함께 병실을 떠났다.“쟤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저러고 있어. 아직도 남에게 얹혀서 먹고 살 생각만 해.”주경진은 딸을 욕했다.김은희가 그제야 말을 이었다.“저희가 서인을 저렇
하예진은 입원 부를 나올 때 노동명을 보았다.하예진은 멈춰 섰고 노동명과 눈이 마주쳤다.그녀는 곧 상대방에게로 걸어갔다.“동명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재활을 마치고 기분 전환하러 나왔다가 당신 새 가게에 가려고 했는데 당신이 마침 차를 몰고 떠나길래 뒤로 따라왔어.”노동명은 솔직히 대답했다.노동명은 하예진이 병원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하예진이 전남편 병문안하러 가는 중일 것으로 생각했다.하예진이 주형인과 재결합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노동명은 두려워하며 여전히 주형인을 경계했다.하예진이 병원으로 올 때면 그녀의 따라오거나 집에서 걱정하면서 짜증을 냈다.좋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노동명은 교통사고를 당한 후로 지금처럼 성격이 매우 변덕스러웠다.노씨 가문의 사람들도 모두 노동명을 조심했고 심지어 그를 매우 아껴주었다. 노동명의 기뻐하기만 한다면 좋을 대로 내버려 두었다.“우빈이 아빠 보러 갔어?”노동명이 물었다.하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주머니께서 주형인 씨가 깨어났다고 전화했거든요. 주형인 씨가 깨어나서 ICU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다길래 제가 과일과 영양제를 사 들고 병문안하러 왔거든요.”노동명은 한참을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그래. 우빈이가 유치원에서 나오면 아빠 보이러 갈 거지?”“주말에 데려올 거예요.”하예진은 노동명의 뒤로 갔고 경호원은 말없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하예진이 노동명의 휠체어를 밀고 나갔다.“깨어났다니, 다행이야.”노동명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어쨌든 우빈의 친아빠니까.”하예진이 대답했다.“네. 동명 씨, 아직 밥 안 드셨죠? 제가 밥 살게요.”“그래. 안 그래도 내가 지금 배가 고파서 당신이 밥 사주기를 기다리던 참이야.”하예진이 말을 이었다.“자꾸 이러시면 안 돼요. 배가 고프면 뭐라도 드셔야 해요. 위가 상하지 않게 하루 세끼를 잘 챙겨서 드셔야죠.”“알았어.”“오늘 재활 치료는 어땠어요?”노동명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하예진이 위로했다.“서
소지훈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무슨 일이든 다 하면 저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뭐해요? 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죠. 제가 낮에 회사로 가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충분한데.”관성에 있을 때면 그는 열흘이나 보름에 한 번 회사에 들아갔다. 그리 회사의 크고 작은 일들은 기본적으로 회사 운영팀에게 맡겼다.소지훈은 특별히 중요한 일이 일어나야만 회사에 한 번 돌아가곤 했다.그처럼 바쁜 사람이 어찌 매일 회사에 돌아올 수 있겠는가!소지훈은 사업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일에도 관여해야 했다.소균성은 일찌감치 은퇴하는 바람에 사실상 소지훈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소씨 가문의 대표가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해결하러 다녔다.“마치 아저씨가 출근하면 남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처럼 말하네요. 그 회사는 아저씨 회사이고 벌어들인 돈도 아저씨 지갑으로 들어갈 뿐 회사 직원들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만약 저녁에 대접할 일이 있다면 집에 못 들어올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저한테 전화하시면 제가 문을 열어드리면 되는데.”윤미연은 일반적으로 밤 11시쯤에 대문을 잠갔다.밤 11시 이후에 귀가하면 정씨 가족에게 전화해서 문을 열라고 부탁해야 했다.소지훈은 재빨리 대답했다.“정말 접대할 필요 없이 중요한 일은 다 처리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출장을 다녀왔는데 아직 처리하지 못했다면 제 능력 문제라고 봐야죠. 바쁘시죠? 먼저 일 보세요. 퇴근하고 바로 갈게요.”“네. 저도 수업이 있어요. 그럼 저녁에 봐요.”“저녁에 뵙겠습니다.”소지훈은 결국 그가 정윤하를 좋아한다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전화상으로도 말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녀 앞에서는 더 감히 말하지 못했다.고백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소지훈이 정윤하에게 구애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아챌까 봐 장미 한 송이조차 선물하지 못했다.사실, 소지훈은 매일 몇 시간씩 정윤하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그녀를 존중해주고 세심하게 배려했다.이 또한 그가 정윤하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
정윤하가 웃으며 소지훈에게 물었다.“맞아요. 방금 큰 건을 성사시켜 회사에 수십억 이윤을 얻었어요. 제가 저녁에 윤하 씨 가족분들에게 축하의 의미로 음식을 대접할게요.”정윤하가 말을 이었다.“괜찮아요. 우리 오늘 식자재를 많이 사서 집에 가져가서 요리해 먹으면 마찬가지예요. 호텔에 가서 한 끼를 먹으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께서 또 마음 아파하실 거에요. 호텔에 가서 한 끼 먹을 돈으로 장을 보고 집에 가서 요리해 먹으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 먹을 수 있다고 늘 말씀하시거든요.”소지훈은 윤미연이 입으로만 잔소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말 큰 호텔에서 그들에게 식사 한 끼를 대접하면 윤미연은 분명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꾸미고 호텔로 달려갈 것이다.윤미연이 만약 잘 꾸미고 정윤하와 함께 있으면 어쩌면 자매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소지훈이 말을 건넸다.“괜찮아요. 저는 이미 이모님 잔소리에 적응했어요. 돈을 벌면 마땅히 써야죠. 많이 벌어서 화끈하게 써야 자신에게 떳떳하죠.”소지훈이 연성에 방금 왔을 때부터 정씨 가문의 저택으로 들어가 살았다. 처음에는 정씨 가족들은 소지훈이 단지 3일에서 5일일 정도 머물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이미 소지훈을 한집안 식구로 생각한 윤미연은 그가 잘못할 때면 여전히 잔소리를 퍼붓곤 했다.“무슨 일이세요?”정윤하가 소지훈에게 전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소지훈이 그녀에게 전화를 먼저 걸었다.소지훈은 정윤하가 자신에게 도움 청할 일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그녀에게 걱정스레 물었다.정윤하는 웃으며 대답했다.“별일은 없고요. 우리 학생들이 아저씨가 언제 시간 나면 놀러 오냐고 물으며 아저씨가 보고 싶대요.”관성에 있을 때, 소지훈은 정윤하와 십여 명의 학생들을 초대하여 놀면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도 하고, 선물을 사주기도 했다.그리고 연성에 와서도 소지훈은 학생들이 무술을 연마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대접하기도 했다.학생들은 그를 무척 좋아했기에
소균성은 김연수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었지만, 그녀는 휴대전화를 받아보더니 말을 꺼냈다.“이 자식 이미 전화를 끊었어요. 나쁜 놈, 내 전화를 끊다니.”막상 통화를 끊은 광경을 보자 소균성은 또 화가 나 참다못해 욕 몇 마디를 내뱉었다.“이놈 때문에 속이 썩여. 정말! 예전에 맞선 상대를 그렇게 많이 주선해 주었는데도 싫어하더니, 결국 문제가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잖아. 겨우 누군가 구해줄 희망이 생겼는데도 왜 이렇게 질질 끌고 있나 몰라. 늘 깔끔하게 일 처리하던 애가. 어휴! 고백, 프러포즈, 결혼, 출산, 그렇게 힘들대?”곁에서 지켜만 볼 수 없는 소균성의 마음이 더 조급해 났다.김연수가 말을 이었다.“지훈이가 연애도 경험도 없어서 지금 탐색 중일 거예요. 애가 지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잖아요. 어쨌든 연성에서 정윤하 씨 곁을 지키고 있으니 다른 남자가 감히 가까이하지는 못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결혼은 한평생의 큰일인데, 급해한다고 해도 소용없는걸요.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해야만 결혼 생활도 행복한 법이니까요. 우리도 상대방을 강제적으로 우리 집으로 시집오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럼 사돈이 아니라 원수로 되는 거잖아요.”정씨 가문은 소씨 가문과 비교할 수 없지만, 정합 도장은 연성에서 오랫동안 운영했기에 그들이 가르친 제자 중 업계에서 성공한 인물도 있게 되기 마련이다. 만약 쌍방이 서로 원한을 품게 되면 누구도 이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게다가 소씨 가문은 미래의 사돈을 어찌 감히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정윤하는 소지훈이 없으면 재혼할 수 있지만, 소지훈은 정윤하가 없으면 재혼할 수도 없다.“여보, 우리 한 번 연성에 가볼까요?”소균성은 김연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그 자식이 아직 고백도 안 했는데, 우리가 간다고 해도 여행으로 가장할 수밖에 없는데 가도 소용없어. 가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우리가 연성으로 여행을 가는 척하고 사돈 앞에 얼굴을 내밀어 우리 가족이 화목하다는 것을 알게 하면 나중에 우리
운명적인 여신과 함께 지내다 보니 소지훈은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또한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놀라게 할까 봐 너무 두려웠다.하늘도 땅도 두렵지 않던 소지훈은 정윤하 앞에서는 그야말로 겁쟁이처럼 모든 것이 두려웠다.“지훈아, 한 가지만 물을게. 나랑 네 엄마가 언제쯤이면 사돈을 뵈러 갈 수 있어? 결혼 예물도 몇 번이나 준비했는지 몰라. 우리가 뭔가 부족한 것이 생각나면 바로바로 보충했거든. 하나라도 빠뜨릴까 봐 걱정하고 있는데.”소균성은 마음이 급하기만 할 따름이다.그의 장남도 나이를 반올림하면 마흔이라 노동명처럼 관성의 노총각으로 되는데 조급해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아버지, 아직 윤하 씨에게 고백하지 않았는데, 무슨 혼사에 관한 얘기를 벌써 꺼내려고 하세요?”“시간이 이렇게 오래도록 지났는데 아직도 고백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된 거야? 윤하 씨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기라도 한 거야? 아니면 네가 감히 고백조차 하지 못했던 거야?”“아버지만 시간이 길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사실 계산해 보면 그리 시간이 길지도 않아요. 제가 연성에 온 지 한 달도 안 됐거든요. 윤하 씨는 아직 저를 친구로밖에 생각 않아요. 지금은 아직 고백할 수 없어요.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소균성은 전화기 너머로 답답한 듯 말을 내뱉었다.“네 담력은 어디로 튄 거야? 너도 무서울 때가 있었어? 남들은 첫눈에 반하면 바로 고백하던데 넌 우리 미래의 며느리랑 알고 지낸 지도 벌써 두세 달 넘어가는데 아직도 고백하지도 못하고 있어? 소지훈! 넌 장가가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빨리 손주를 안고 싶거든.”소지훈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버지, 저도 가고 싶죠. 그런데 윤하 씨가 제 감정을 알고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두려워요. 게다가 윤하 씨 성격이 너무 활발해서 남자들을 친구로 여기거든요. 그리고 저도 그녀보다 나이 차이가 너무 나서...”“나이는 문제가 아니야. 네가 윤하 씨와 고백하지도 않는데 윤하 씨가 어떻게 네 맘을 알겠어? 그러니까 널 남
“고마워요. 숙모님들.”이윤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연약하지 않다는 사실을 하예진은 진작 알고 있었다.하예진은 이씨 가문의 많은 사람 중 이윤미와 가장 많이 접촉했기에 이윤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윤미 또한 하예진 앞에서 아무런 숨김도 없이 진정성있게 대했다.“예정 씨, 그럼 우리 먼저 돌아가 볼게요. 나중에 일이 생기면 다시 연락드리죠. 그리고 우리가 도울 일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하예진은 일어나 스위트룸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데려다주었고 최순자 일행은 다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착용한 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고 하예진은 그제야 발길을 돌렸다.그녀는 자신의 룸으로 돌아와 탁자 위를 치우고 나서야 룸 안에서 나왔다.문을 잠근 하예진은 강일구에게 물었다.“아무도 안 올라왔죠?”“네.”하예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우리도 갑시다.”경호원들도 묵묵히 그녀를 따라나섰다.......연성.연성 번화한 거리에 있는 한 새로운 회사는 28층 높이의 오피스 빌딩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관성 소씨 가문의 연성 지사이기 때문에 설립된 지 며칠 안 됐지만 이미 꽤 많은 직원이 있었다.대다수는 소지훈이 각지에서 전근하여 온 직원들이다.소지훈은 정씨 가문의 가족들에게 출장 왔다고 말했지만, 사실 소씨 가문이 연성에서의 사업은 너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소지훈은 정윤하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즉시 연성에 지사를 설립하고 각지에서 엘리트들을 연성으로로 전근시켜 연성 지사를 신속하게 이 도시에서 정착시키려고 했다.그리고 연성 지사를 연성에서 규모가 가장 큰 회사 중 하나로 만들라는 명령을 내렸다.소지훈은 28층짜리 사무실 빌딩과 여러 곳의 공장 건물을 사들였는데, 이 행동은 연성의 업계에 큰 돌을 내 던져 평온해 보이는 호수를 마구 휘저은 거나 다름없다.모두가 몰래 소씨 회사의 내막을 알아보았는데 소지훈이 관성 소씨 가문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는 그의 회사와 협력하러 온 업계 거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심지어 어
“이씨 가문을 잘 꾸려나가려면 젊은 세대에게 의존해야죠. 우리 가문의 젊은 세대들도 능력만 있으면 모두 중히 여겨야 하는 거죠. 숙모님들, 맞죠?”이씨 가문의 셋째 삼촌 이지후는 야망이 있지만 이제 분투할 정력이 없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다만 그들의 후손의 앞날일 뿐이다.하예진이 방금 한 말은 승낙한 거나 다름없다.하예진이 방금 한 말은 이씨 가문의 가주 자리가 하예진 쪽으로 돌아간다면, 가문의 젊은 세대들은 능력만 있다면 모두 적당한 자리에서 빛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는 의미이다.하예진은 자신이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 셈이다.두 사모님이 눈을 마주치며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씨 가문의 넷째 숙모 김연희가 입을 열었다.“맞아요. 역시 전임 가주의 후손답네요. 전임 가주가 이씨 가문을 다스릴 때 우리 이씨 가문은 강성에서 그 누구도 얕볼 수 없는 존재였죠.”그러나 요즘은 사람들이 이씨 가문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전임 가주 이은숙이 여전히 이씨 가문을 운영했을 때 김연희와 최순자는 아직 이씨 가문으로 시집오지 않았다. 당시 그녀들의 나이는 6세에서 12세 사이였고 가문의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그러나 그녀들의 남편들은 어느 정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적어도 학창시절에 이씨 가문 사람이라고 하면 아무도 괴롭히지 못했다.그 후, 가문의 어르신들 이야기를 통해 자주 듣게 되었다.전임 가주 이은숙의 인간 됨됨이나 일 처리 방면에서는 매우 훌륭했지만 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 낳은 탓으로 급격히 건강이 나빠져 하루가 멀다고 병으로 앓게 되어 이은화에게 기회가 주어지게 된 것이다.“그리고 두 숙모분께서도 안전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이씨 가문에서 떠벌리며 다니지 않는 한 강성에서의 안전은 제가 보장해 드릴 수 있어요.”자기 분수를 지키면서 무슨 일을 하든 너무 날뛰지 않고 눈에 띄게 행동하지 않으면 죽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만약 그들이 너무 눈에 띄게 행동한다면 하예진이 보호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감히 협력하지
몇 분 후, 방에서 하예진을 기다리고 있던 전호영은 예진이 도착하자 바로 나와서 문을 열었다.“예진 누나.”“고마워요, 호영 씨.”“우리 사이에 무슨, 천천히 얘기 나눠요, 저는 일 보러 나가볼게요.”방을 나온 전호영은 하예진을 방으로 들여보내고는 일구를 포함한 경호원들에게 아무도 못 들어가게 단단히 지키고 있으라고 지시했다.펜트하우스가 출입이 통제되긴 하나 경각심을 높여서 나쁠 것은 없었다.일구와 다른 경호원들은 전호영의 말에 깍듯이 응했고 전호영은 자리를 떴다.하예진이 방으로 들어가자 두 숙모님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그녀들을 위한 과자와 과일들이 놓여 있었고 따뜻한 물도 준비해져 있었다.“예진 씨.”하예진이 들어오자 두 숙모는 소파에서 일어나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고 인사했다. 하예진 라인에 서기로 했으니 두 사람은 이제 본모습을 보일 때가 된 것이다.두 분은 나이가 있는 분들이셨지만 보양을 잘한 덕분에 겉보기에는 훨씬 젊어 보였다.“두 분 앉아계세요.”하예진은 차를 내와 찻잔에 부으면서 말했다. “차를 마시면 정신도 맑아지고 좋더라고요.”“우린 이제 나이가 들어서 차를 별로 안 마셔요. 차를 마시면 저녁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셋째 숙모가 웃으면서 답했다.하예진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간식을 권했지만 두 분은 사양했다.“두 분께서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다고요?”하예진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두 분과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니니 다룰 얘깃거리도 별로 없었다.“예진 씨가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하라고 우리 그이가 그러더군요. 우리 두 집안이 기꺼이 힘을 합쳐 도와드리겠다고 전해달라고 했어요.”셋째 숙모가 입을 열자 넷째 숙모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속으로는 하예진 앞에서 이 가주에 대해 불평하고 싶었지만 집을 나설 때 남편이 그러지 말라고 그녀에게 신신당부했기에 꾹 참고 있었다. 그저 두 집안의 의사를 전달하고 다른 말은 하지 말라고 얘기했다.하예진은 관성의 대표로 이곳에 왔기 때문에
하루 호텔은 안전 레벨이 아주 높은 곳으로 그곳에 가면 숙모님들이 마음을 좀 더 내려 놓을 수가 있었다.이에 하예진도 동의를 표하였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방을 예약 해놓을게요.”그녀는 뒤돌아서서 휴대폰을 꺼내어 전호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루 호텔에서 제일 안전한 방이 어느 방이에요? 누가 엿듣거나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는 곳으로 빌리려고요.”전호영은 일 초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그야 무조건 펜트하우스에 있는 스위트룸이죠. 지금 제가 묵고 있어요, 누나가 필요하다면 제가 빌려드릴게요.”“고마워요, 이씨네 숙모님 두 분이 먼저 가실 거예요, 믿을만한 사람을 시켜서 조용히 두 분을 방까지 모셔드리도록 해줘요. 카메라에 찍히지 않게 주의해 주시고요.”전호영이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안배할게요. 두 분 호텔로 이동하시게 하세요, 거의 도착할 때 저희 쪽에 연락 주시면 돼요.”그러고는 하예진에게 번호 하나를 알려주었다.“누나, 조금 있다가 이 번호로 연락 주시면 돼요, 펜트하우스까지 에스코트해 줄 거예요. 저도 조금 있다가 바로 돌아갈게요.”현재 그 방은 전호영이 지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방문을 열 수가 없었기에 호영이 호텔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부탁드릴게요.”“별말씀을요.”하예진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하던 일 계속 해요, 제가 두 분께 말해놓을게요. 여기서 호텔까지 가려면 약 20분 정도 걸릴거에요. 저는 30분 뒤쯤에 도착할 것 같아요.”“알겠어요.”통화를 마친 예진은 두 숙모한테 다가가 말했다.“제가 이미 말해놓았으니 두 분께서 지금 그쪽으로 출발하시면 되세요. 거의 도착할 즈음 이 번호에 전화하시면 그쪽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그분들이 두 분을 방까지 에스코트해 주실 거예요.”하예진은 전호영이 알려주었던 번호를 셋째 숙모한테 말해주었다.“먼저 가 계시면 돼요. 저는 십 분 뒤에 바로 출발할게요.”“그래요.”두 분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나서 지체없이 바로 출발했다.
“그 분들이랑은 어떻게 되는 사이신지?”하예진이 물었다.두 사람은 자신들의 남편 정체를 말한 후 하예진의 반응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녀가 침묵하자 두 사람은 하예진이 자신의 남편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자가 서둘러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넷째 숙모고 이분이 셋째에요.”하예진은 그녀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오실 때 뒤따르는 사람이 없었나요?”“없어요, 뒤처리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니 예진씨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하예진은 미소를 지었다. “저야 아무 걱정이 없지만 두 분께서 저를 찾아온 일이 이 가주님의 귀에 들어가 두 분께서 불리해질까 봐 걱정이에요.”하예진은 원래부터 이씨 집안을 노리고 있었으니 이씨 가족 사람들과 접촉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오히려 아무 접촉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씨 집안 사람들이 그녀를 먼저 찾아왔다면 이 가주가 그 사실을 알고 응징할 수도 있기에 그 후과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두 사람의 눈빛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보였지만 이내 다시 물었다.“예진 씨, 잠깐 따로 얘기 나눌 수 있을까요?”“좋아요, 저는 아무 때나 괜찮아요. 어디서 얘기할까요? 장소를 알려주시면 제가 곧 갈게요. 함께 이동하면 눈에 뜨일 수 있으니까 따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하예진의 말에 그 두 사람의 안위를 걱정해 주는 마음이 담겨 있어 두 사람은 마음이 놓였다.두 사람의 남편들은 집에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며칠 동안 마음을 졸이며 지냈다. 이 가주는 그들을 비롯한 직계가 아닌 가족들에게 아주 인색하고 발전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능력이 출중한 사람은 오히려 이 가주의 억압을 받아 두각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두 가족은 몰래 모여 이틀 동안이나 상의를 했고 결국에는 하예진 라인에 서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하예진이 이길 것이라고 배팅을 한 것이다. 만약 하예진이 이긴다면 그들이 하예진을 처음부터 지지해 온 사람들로서 앞으로의 발전이 나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