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이 이윤미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본 여자들은 안색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이때 이윤정이 갑자기 뛰어와서 고현의 길을 막았다. 그리고 웃음꽃을 흩날리면서 고현에게 말을 건넸다.“고 대표, 저와 함께 춤추실래요?”고현은 목소리를 깔고 굵은 목소리로 거절했다.“윤정 씨, 죄송해요. 전 이미 파트너가 생겼어요.”고현은 말을 마친 후 이윤정을 넘어 몇 걸음 더 걸어서 이윤미의 테이블 앞으로 갔다.이윤미는 음식을 맛있게 먹다가 문득 많은 사람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이윤미는 바로 고개를 들었고 고현이 자신의 맞은편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이윤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바로 고현을 향해 웃었다.“고 대표, 무슨 일이세요?”전호영이 고현의 뒤를 따라왔다.전호영이 이윤정 옆을 지나갈 때 이윤정은 전호영을 넘어뜨리려고 한쪽 발을 내밀었다.이윤정은 전호영이 자신의 가장 강력한 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연적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수많은 사람 앞에서 넘어져 망신 주고 싶었다.그러나 이윤정은 전호영을 너무 얕잡아보았다. 간이 부은 것이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감히 전호영 앞으로 발을 내민 것이다.전호영은 이윤정의 꼼수를 눈치챘고 이윤정의 발에 걸린척했다. 하지만 앞으로 넘어지지 않고 펄쩍 뛰면서 이윤정의 발을 흘겨보았다.쿵!누군가가 땅바닥에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발을 내밀어 전호영을 골탕 먹이려던 이윤정이 넘어졌다.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면서 나온 소리였다.연회 현장의 사람들 모두 이윤정을 쳐다보았다.이윤정이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땅으로 처참하게 넘어진 것이다. 하마터면 다리가 치마 밑으로 드러날 뻔했고 발에 신겨졌던 하이힐 한쪽도 날아가 버렸다.이 장면은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다.전호영도 멀지 않은 곳에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현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지 못했다. 고현은 이윤미를 마주해 서 있었고 전호영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윤미가 전반 과정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이윤정이 발을 내밀어
고현은 이윤미를 도와 증언해 주었다.“이 대표, 제가 이윤미 씨를 위해 증언해 줄 수 있어요. 윤미 씨가 조금 전에 이곳에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었어요. 제가 윤미 씨와 춤추고 싶어서 초대하러 왔기 때문에 윤미 씨가 일어선 겁니다.”“네가 윤정을 밀었다고 의심하지 않았어. 다만 윤정이와 가까이 있으면서도 동생이 넘어졌는데 부축하지도 않니?”이 대표가 수양딸을 더 예뻐한다는 사실은 강성에서 이젠 비밀도 아니다.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이씨 노인네가 노망났다고 생각했다.수양딸이 넘어졌는데 친딸이 부축하지 않는다고 탓하다니!이윤정이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이윤정이 넘어진 일은 이윤미와 전혀 상관없었다.“내 말이. 윤정이가 처참하게 넘어졌는데도 윤미 너는 가만히 서서 보고만 있어? 동정심도 없이 윤정이를 부축할 줄도 몰라? 윤정이가 창피하게 넘어지니까 너무 기뻐하는 거 아니야?”이 말을 한 사람은 조윤이였다이윤미의 잘못이 아닌데도 조윤은 이윤정이 이윤미를 원망하게 하고 싶었다.이윤미가 입을 벌리고 무슨 말을 하려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떨구면서 억울해하는 표정을 지었다.보는 사람마저도 분노가 치밀었다.모두가 이씨 가문의 사람들이 사리가 밝지 않다고 생각했다.이윤정 친아버지로 인해 친딸인 이윤미가 태어나자마자 집사의 딸로 뒤바뀌게 되어 시골에서 자라게 되었다.이윤정이 이윤미가 가져야 했던 모든 것을 빼앗았고 자신의 신분을 되찾았지만 이씨 가문의 사람들은 여전히 이윤정을 더 예뻐했다. 이윤미에 대해서는 겉치레만 해줬을 뿐 신경 쓰지 않았다.친엄마인 이 대표마저도 이윤미에게 잘해주지 않았다.이윤미가 이씨 가문으로 돌아온 지도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윤미도 이 대표를 따라다니며 수많은 연회 자리에 참석했지만 이 대표는 사람들 앞에서 이윤미에 대한 불만 가득한 표정 많았을 뿐 그녀 앞에서 웃어 본 적 없었다.지금은 이윤미가 이씨 가족의 기업에서 권한을 부여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지만 모두 겉치
“엄마, 나 머리가 좀 아파요. 발도 삐끗한 것 같아요.”이윤정은 가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엄마, 제가 실수로 전씨 셋째 도련님과 부딪혀서 넘어진 거예요. 윤미 언니와는 상관없어요. 엄마와 형수님, 윤미 언니 탓하지 마세요.”그리고 또 전호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전 대표, 왜 저를 넘어뜨리세요? 전 대표가 고 대표를 좋아하고 또 공개적으로 구애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어요. 우리가 연적이라 해도 저한테 이렇게 대하시면 안 되죠.”이 대표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윤정에게 물었다.“전 대표가 널 넘어뜨린 거야?”전호영이 화를 냈다.“이윤정 씨, 밥을 함부로 먹을 순 있어도 말을 함부로 하시면 안 되죠. 당신이 저를 넘어뜨리려고 해서 제가 뛰면서 피했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았어요. 반면 당신이 똑바로 서 있지 못하고 넘어졌잖아요.”“정말 자업자득이네요. 쌤통이네요!”전호영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불가능했다.전호영은 혼자서도 열 몇 명의 연적과의 말싸움에서 이겼던 역사가 있었다.이윤정이 홀몸으로 전호영을 모함하려 하다니, 어림도 없었다.전호영은 이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반박할 틈도 주지 않고 고개를 들어 천장에 설치된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이곳에는 카메라가 여러 개 설치되었어요. 제가 이윤정 씨를 기어코 넘어뜨렸다고 말하신다면 우리 고 대표에게 부탁해서 카메라 기록을 들춰냅시다. 모두에게 보여 줘서 진실을 알아내면 되겠네요.”고성 호텔은 고씨 그룹의 호텔이었다. 고현은 고씨 그룹의 대표였기 때문에 카메라 기록을 꺼낼 권리가 있었다.이윤정은 여전히 변명했다.“저도 전 대표를 넘어뜨리려고 한 게 아니라 실수로 전 대표와 부딪혔을 뿐이에요.”“그 말인즉슨, 제 탓이 아니란 말씀입니까?”이윤정은 말문이 막혔다.이 대표는 어떻게 된 건지 이내 알아차렸다.이 대표는 화를 억누르면서 전호영에게 부드럽게 말했다.“전 대표, 죄송해요. 제 딸이 당신을 오해하게 되어서 정말 죄송해요.”뒤이어 이윤정에게 힘 있는 목소리로 소리
이윤정은 계속해서 핑계를 대고 있다가 어머니의 엄숙한 표정을 보더니 바로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엄마,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이윤정은 한 걸음 더 다가가 다정하게 이 대표의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리듯 말했다.“엄마, 내가 잘못했어요. 화내지 마세요. 난 고 대표가 너무 좋아요. 워낙 경쟁력이 강한데 전씨 셋째 도련님까지 끼어들려고 하잖아요. 우린 여자라서 고 대표에게 가까이할 수조차 없단 말이에요.”“하지만 전 대표는 고 대표와 가까이할 수 있잖아요. 고 대표의 경호원들도 전 대표를 막지도 못하는걸요. 게다가 고 대표 회사 앞에서 꽃바다까지 만들면서 공개적으로 구애했고요.”“제가 전 대표를 질투해서 저도 모르게 그런 짓을 한 거에요. 하지만 전 대표가 반응이 매우 빨라서 전 대표를 넘어뜨리지 못하고 제가 그분에게 걸려서 넘어진 거예요.”자신이 방금 넘어진 것을 생각하면서 이윤정은 화가 치밀어 이가 갈렸다.이윤정은 지금까지 그렇게 창피한 적 없었다.“엄마, 화내지 마세요. 알겠어요. 다시는 이런 작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이윤미도 그래요. 제가 넘어진 걸 보면서도 바로 부축해주러 오지 않았어요.”“형수 말씀이 맞네요. 이윤미는 제가 그렇게 창피함을 당하는 게 기쁜가 봐요.”그러자 이 대표가 이윤정의 이마를 쿡쿡 찌르며 꾸지람했다.“윤미가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고 대표가 갑자기 찾아와서 놀란 상태에 처해 있었어.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네가 뒤에서 넘어진 거야. 윤미가 그 당시 멍해 있었거든. 그런데 어떻게 널 부축하러 가?”“윤미가 시골에서 자랐고 무술을 배운 적이 없어서 반응이 빠를 수 없어. 너처럼 무술을 배워본 사람도 전 대표에게 당했잖아. 넌 건드리지 말았어야 할 사람을 건드린 거야.”“이건 네 문제야. 너의 잘못이야. 자꾸 윤미를 탓하지 마. 어쨌든 윤미는 내 친딸이야. 너도 기억해야 해. 네 아빠 때문이 아니었다면 윤미가 저런 억울함을 당하지 않았을 거야.”“네가 윤미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거야. 자꾸 윤미
모녀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호텔로 들어선 이윤정은 또 눈에 불이 타올랐다. 이윤미와 고현이 함께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이윤정만 질투하는 것이 아니었다. 고현을 마음에 담아두었던 여자들 모두 이윤미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어 했다.그리고 모두가 전호영을 지켜보았다.전호영은 술잔을 들고 서서 고현과 이윤미가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질투하기는커녕 얼굴에 웃음을 머금었다.사람들은 이 가장 강력한 연적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왜 이윤미에게 다가가서 고 대표를 뺏지 않는지 의아했다.그녀들도 고 대표와 함께 춤을 추고 싶어 했다.이윤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매섭게 지켜보고 있는 것을 느꼈고 이내 고현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고 대표, 우리가 함께 춤추는 바람에 제가 모든 여자의 연적으로 되였어요.”고현은 살며시 웃었다.“윤미 씨, 두려우세요?”이윤미는 아름다운 눈을 반짝이며 고현과 잠시 눈을 마주쳤고 그제야 웃으면서 대답했다.“고 대표, 저는 정말 당신에게 관심이 있어요. 당신의 연모자로 되고 싶어요.”“저도 이윤미 씨가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윤미 씨에게 희망을 줄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을 찾으세요.”이윤미는 고현에게 호감을 느꼈을 뿐 고현에게 빠질 정도는 아니었다.고현은 눈앞의 여자가 자신에게 더 깊이 빠져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현은 이윤미와 춤추는 기회를 빌려 전호영 품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동시에 이윤미도 거절했다. 이윤미도 쿨한 성격이라서 정확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이윤미 역시 웃으면서 대답했다.“고 대표,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시다면 저는 더는 끼어들 생각 없는걸요.”이윤미는 고현을 좋아했지만 고현이 이씨 가문의 데릴사위로 장가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에 복귀한 후 이씨 가문의 계보를 확인해 보았다. 역대 이래 이씨 가문의 가주의 데릴사위는 모두 능력이 없는 분들이었다.능력 있는 남자들이 이씨 가문으로 데릴사위로 장가갈 리가 없
이윤미와 하예정은 첫눈에 보았을 때 비슷했지만 자세히 보면 닮지 않았다.하예진과 더 비슷했다.전호영이 자신의 형수님의 언니가 하예진 한 명밖에 없다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이윤미가 하예진의 다른 언니인 줄로 알았을 것이다.하예정이랑 하예진은 오히려 너무 닮지 않았다. 하예진은 하예진의 엄마를 더 닮았다. 하예정은 부모님의 좋은 점만 골라서 닮았고 아빠를 가장 많이 닮았다. 엄마랑 조금 닮았던 것이다.전호영은 형수의 집안에 대해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기도 모르게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혈연관계가 없는 두 사람이 닮은 것도 없진 않지만 이윤미가 하예정 자매와 너무 닮아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그 세 사람이 친척 관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전호영은 성소현과 하예정 자매가 친척인데도 불구하고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만약 닮았더라면 성소현은 첫 만남부터 하예정에 대해 의심했을 것이다.고현과 이윤미가 춤추면서 한 바퀴 돌았고 이번에는 고현이 전호영을 마주했다.고현이 전호영을 바라보자 전호영은 그녀에게 자신의 잘생긴 얼굴로 웃음을 활짝 지으며 잔을 들었다.고현은 바로 시선을 피했다.고현은 지금 전호영이 귀찮아서 미칠 지경이었다.전씨 가문에서 자란 남자들 모두 껌딱지였을지 의심들 정도였다.드디어 노래 한 곡이 끝났다.춤추는 사람들도 바로 멈추었다.고현은 이윤미 몸에서 손을 떼었다.전호영은 바로 고현에게로 다가갔다.“현이 씨, 피곤하지 않아요? 물 마실래요?”전호영은 닭살 돋는 모든 말을 마구 내뱉었다.진미리 부부가 부르는 것처럼 전호영도 따라서 현이라고 불렀다.앞으로 어차피 부부 될 것이기 때문에 다정하게 불러도 된다고 생각했다.고현의 잘생긴 얼굴은 바로 어두워졌다.고현은 냉랭하게 말을 이었다.“전 대표, 저를 고 대표라고 불러주세요.”보통 고현의 가족들만 고현을 그렇게 불렀다.“당신의 이름은 고현이잖아요. 당신 이름 맞죠? 아니면 다른 이름이라고 있어요? 그 이름으로 불러드릴게요. 저는 특별한 이름이 좋
전호영은 찰떡처럼 고현을 따라다녔다.모두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지만 아무도 감히 두 남자의 일에 간섭할 담이 없었다.고현을 좋아하는 여자들은 전호영이 밤새도록 고현 곁을 따라다니는 것을 보고 미워 어쩔 줄을 몰랐다.고현은 직접 연회의 주최자를 찾아가 사과하였다. “박 대표님, 죄송하지만 제가 사적인 일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박 대표도 고현이 전호영에게 시달려 많은 사람들의 화제가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버텨준 것만 하여도 고마울 따름이었다.“알겠어요, 다음에 다시 뵙기를 바랄게요.”마지막으로 박 대표는 한마디 덧붙였다.“저는 고현 대표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고현은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경호원 팀을 데리고 호텔을 나섰다.고빈은 떠나기 아쉬운지 누나 뒤를 따르며 말했다.“형, 벌써 돌아가는 거야? 연회 아직 안 끝났잖아...”“돌아가기 싫으면 넌 연회가 끝날 때까지 남아 있던가.”고빈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그래, 그럼 형 먼저 돌아가고 나에게 차 한 대만 남겨줘.”고현이 떠나자 사람들의 시선 중심인 전호영도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이걸 본 박 대표는 전호영이 얼마 전 직접 찾아와 초청장을 달라고 한 이유가 그의 체면을 살려주려는 것이 아니라, 고현을 위해서 온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다시 말해 전씨 일가의 셋째 도련님은 동성애자일 뿐만 아니라 고현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한때 전호영을 사위로 삼으려 생각했던 사장들은 이젠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이제는 전호영이 그들의 딸에게 프러포즈 한대도 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전씨 일가의 다른 도련님 중에 또 동성애자가 있을까?전호영도 자신의 공개적인 구애 행위 때문에 동생들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현이 씨.”전호영은 호텔을 나오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뒤쫓아가 고현이 차에 오르기 전에 그녀를 붙잡았다.고현은 전호영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전 대표님, 이런 행동 자제해주시기를 바랍니
전호영은 더는 쫓아가지 않고 호텔 입구에 서서 웃으며 고현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고현 대표님, 내일 만나요.”고현은 마음속으로 투덜거렸다.‘만약 가능하다면, 영원히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고현이 떠난 후, 전호영은 잠시 제 자리에 서서 고현의 차가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한참 후 돌아서서 호텔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때 이씨 가장이 아들, 며느리, 그리고 두 딸을 데리고 호텔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박 대표가 사람을 거느리고 이씨네 일행을 배웅하고 있었다.“안녕하세요.”상대가 어른인 만큼 전호영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이씨 가주 이은화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았다.“전호영 씨는 집으로 돌아가려는 참인가요? ”“네, 술을 많이 마셨더니 좀 취한 것 같아서... 호텔로 돌아가 쉬려고 합니다.”전호영의 시선이 이윤미에게로 향하자 이은화는 딸을 정식으로 소개했다.두 사람은 정중하게 악수했다.이은화는 옆에 서 있는 이윤정을 따로 소개하지 않았고 전호영도 이윤정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인사를 나눈 후 이씨 일가는 바로 떠났다.전호영도 박 대표와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맞은편에 있는 하루 호텔로 향했다.두 호텔이 가까워서 편리했다.술을 마셔서 운전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걸어서 몇 분도 안 되어 자기 호텔로 돌아갈 수 있어 좋았다.몇 분 후.호텔 꼭대기 층에 있는 로얄 스위트룸으로 돌아온 전호영은 소파에 앉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큰형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형, 형수님은?”형을 거치지 않고 형수에게 직접 연락할 수는 없어 먼저 형에게 연락했다.“아마 모레쯤에 돌아올 거야. 너 무슨 일로 형수를 찾아?”전태윤은 한창 일로 바쁠 때였다.와이프도 없는 텅 빈 집으로 돌아가기 싫었던 전태윤은 빡빡한 스케줄로 시간을 보냈다.바쁘게 일하면 그리움의 고통이 덜어질 거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별일은 아니고... 오늘 밤 강성의 연회에 참석했다가 한 사람을 만났는데, 얼핏 보니 형수님하고 비슷해서. 음...
고빈은 친누나 고현을 바라보았다.고현은 그녀의 커피 한 잔을 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더니 우아하게 커피를 음미했다.“누나, 호영 씨가 누나 사무실에 있는데도 왜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어?.”고빈은 작은 소리로 고현에게 속삭였다.고현은 억울한 어조로 대답했다.“네가 들어오자마자 쉴 새 없이 말했잖아. 나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은 건 너야. 호영 씨가 나와서 내가 계속 눈을 깜빡이는데도 넌 눈치 없이 내 눈에 문제 있는 줄 알고 깨닫지 못하다니. 너에게 귀띔해 주는데도 모르는데 누굴 탓할 수 있겠어?”“내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는 말은 글쎄 걱정은 안 되지만 내가 누나에게 호영 씨를 버리라고 한 말을 마음에 담아둘까 봐 그러지. 그 자식 평소에는 빙그레 웃으며 마냥 부드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척 음흉하잖아. 우리 부모님께 그 말을 일러바치면 난 집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한단 말이야.”고빈은 자신의 수다스러운 입을 원망했다. 고현의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그녀에게 헛소리를 그토록 많이 하다니!이때 고현이 제안했다.“네가 요즘 출장 좀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아. 방금 호영 씨가 휴대전화까지 꺼내서 녹음했어. 네가 한 말 다 녹음한 것 같던데. 분명 우리 부모님께 들려드릴 거야. 그때 가서 엄마 아빠가 너에게 결혼 재촉하지 않으면 내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어.”고빈도 말을 이었다.“호영 씨가 음흉한 사람이라 우리 엄마 아빠를 잘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야. 누나, 내가 내일 비행기 표를 예약해서 가장 먼 도시로 출장을 갈게. 반달이나 한 달 뒤에 돌아올게.”그러자 고현은 문득 의문을 품었다.“갑자기 생각난 건데, 우리 지사에는 본사 직원이 가서 처리해야 할 큰일이 없어. 네가 출장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가서 뭐 하게? 게다가 강성이 바로 너의 집인데 너도 조만간 집으로 돌아와야 할 거 아니야. 난 언젠가 호영 씨에게 시집갈 텐데, 그도 너의 형부로 될 테고. 네가 나랑 혈연관계를 끊지 않는 이상 호영 씨와 연락을 해야 할걸.”“
“호영 씨가 나쁘다는 건 아닌데, 난 왠지 그 자식을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려.”고현은 친누나로서 고빈에게 치마를 입어 보인 적 없지만, 전호영에게 입어 보였고 또 전호영을 위해 모두에게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고빈은 질투가 났다. 비록 고현이 여자 신분을 회복하고 좋은 시댁에 시집가기를 바라고 있지만, 막상 그녀가 시집갈 준비를 하니 고빈은 또 너무 아쉬웠다.“누나, 호영 씨에게 데릴사위가 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건 어때? 난 누나가 멀리 시집가는 것이 정말 아쉬워. 난 누나 한 명뿐이고 우리 부모님도 딸 하나뿐인데 정말 우리를 버리고 멀리 떠나려고? 호영 씨가 데릴사위로 장가오고 싶지 않아 하면 바로 차버려. 누나 같은 조건이라면 달려드는 남자들이 아주 많을걸. 누나, 눈이 왜 그래? 왜 자꾸 눈을 깜빡깜빡해? 눈에 뭐 들어간 거 아니야?”고현이 자신에게 계속 윙크를 하는 것을 본 고빈은 걱정스레 물었다.고현은 고빈을 노려보았다.이 녀석은 평소에는 매우 약삭빠르지만, 오늘은 유난히 둔했다.고현은 아예 일어나 책상을 에둘러 고빈의 팔뚝을 툭툭치고는 전호영의 손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받아 들으며 전호영에게 말했다.“호영 씨, 빈이가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마세요. 저도 빈이 말을 듣지 않을 테니까요.”고현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 전호영의 어두워진 눈과 마주쳤다.전호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호영을 등지고 그의 험담을 하며 고현에게 그를 차버리라고 한 사실을 본인에게 들켜버리다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전호영이 다 들은 건 아니겠지?혹시 조금만 들은 건 아닐까?고현도 그에게 귀띔해주지 않았다.맞다! 고현이 주의를 시키었지만, 고빈이 너무 둔해 눈치채지 못했다.고현이 계속 윙크를 보냈지만, 고빈은 그녀의 눈에 병이 난 줄로만 알았다.고빈은 속으로 몇 번이고 울부짖었다.‘난 오늘따라 왜 이리 멍청하지? 으악!’“고빈 씨는 저한테 불만이 많으신가 봐요. 제가 고빈 씨 비위를 맞추지 않았다고 제가 눈에 거슬린
그는 휴게실로 들어갔다.“호영 씨, 따뜻한 물 한 잔 주세요.”고현은 목이 말랐다.그러자 전호영이 대답했다.“알았어요.”곧 전호영은 그녀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가져다주면서 빙그레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고현은 궁금한 듯 물었다.“왜 이렇게 쳐다봐요? 제가 낯설어 보여요?”“저는 현이 씨가 너무 멋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너무 멋있어요.”고현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노려보고는 다시 앉았다.그리고 우아하게 물을 마셔 목을 축인 후 물잔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켜면서 말했다.“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저의 일이지, 그들의 상관할 바는 아니잖아요. 제가 그들의 물음에 대답하기만 하면 수많은 질문이 또 끊임없이 쏟아질걸요.”“그렇죠. 1년 후에 답을 얻게 된다고 했는데 제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나요?”전호영이 웃음을 머금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가 생각한 1년 후의 답은 바로 두 사람이 합법적인 부부로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이 노력하여 고현의 뱃속에 작은 전호영이 들어있기만 하면 그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모든 오해가 풀릴 것이다.고현은 그의 물음에 직접 대답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마음대로 생각하세요.”“헤헤, 제가 생각했던 게 맞는 모양이네요. 그렇게 되면 해명할 필요도 없겠네요. 그럼 가서 커피 내려줄게요.”전호영은 흐뭇한 표정으로 몸을 돌려 그의 사랑스러운 여인에게 커피 내려주러 들어갔다.고현이 중얼거렸다.“매일 바르지 못하기는...”생각해 보니 이 일은 고현 본인이 먼저 전호영에게 귀띔해 준 거나 다름없었기에 그를 원망할 수는 없다.전호영은 평소에 말로만 까불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존중하고 그녀의 마지노선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고현이 먼저 신체접촉을 원한다면 전호영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고 그녀의 모든 것을 독차지할 것이다.똑똑.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문밖의 사람은 고현이 대답하기도 전에 문을 밀고 들어왔다.고빈이었다.고빈은 고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형,너무한 거 아니야?
“여자라는 사실을 확인하면 또 뭐해요? 여자 분장한 걸 알면 또 뭐할건데요? 예전에 제가 치마를 입고 고현 씨를 기분 좋게 하려는 것처럼 고 대표님도 단지 저를 행복하게 하고 싶은 마음뿐이에요.”기자들은 전호영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이대로 흩어지는 것도 너무 언짢았다.그들은 단지 답을 원했을 뿐이다.고현이 왜 남자 행세를 하고 다녔는지, 혹은 여자 분장을 한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흩어지지 않으실 생각이라면 얼른 길을 비켜주세요. 제가 들어가고 나서 다시 이곳에서 계속 기다리세요.”“고 대표님께서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호영 도련님께서 들어가신다 해도 고 대표님을 볼 수 없으실 겁니다.”“고 대표님 차가 저의 바로 뒤에 있는데 못 보셨어요? 기자님들은 저의 차를 막을 수는 있어도 고 대표님의 차들을 감히 막을 용기가 있기나 하세요?”고개를 돌려보니 고현의 차들이 정말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기자들은 방금 전호영의 차를 포위한 것처럼 한꺼번에 고현의 차에 몰려들고 싶었다.그러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전호영은 강성의 사람이 아니다.설령 그가 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이라 할지라도 조만간 관성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이고 또 친근감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자들은 전호영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러나 고현은 강성의 사람이고 또 강성에서도 냉담한 성격으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그녀를 건드리게 된다면 아마 강성에서도 무사하게 지내지는 못할 것이다.기자들은 여전히 답을 얻고 싶은 마음에 한꺼번에 몰려들어 고현의 차를 에워싸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차를 막아 보았다.차창을 내린 고현은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었다.“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1년 후에 여러분들도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란 말뿐입니다.”말을 마친 고현은 바로 차창을 올렸다.1년 후, 고현은 분명 전호영의 아내로 될 것이고 임신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의 배가 많이 나온 모습을 보면 모두에게 답을 준거나 마찬가지였다.고현은 자신의 사적인 일에 대해 기자들에게 자
전태윤은 또 반 시간 동안 하예정의 사무실에 붙어있다가 아내의 독촉으로 사무실을 떠났다.강성.고씨 그룹, 고씨 가문의 저택, 하루 호텔, 그리고 고성 호텔에는 많은 연예 기자들이 지키고 있었다.그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바로 고현 도련님이 진짜 여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다.고씨 가문의 저택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연예 기자들이 초인종을 눌렀지만 누군가가 나와서 확인만 했을 뿐 여전히 기자들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기자들이 확인하러 나오는 사람한테 물어보았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대답만 들었다.고진호 부부의 휴대전화는 여전히 꺼진 상태였고 고빈의 전화는 연결되지만, 그는 똑똑하게도 모르는 전화가 걸려오면 아예 받지 않았다.지금 고현은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다.물론 전호영도 그녀와 함께 있다.차가 고씨 그룹에 거의 도착했을 때, 전호영의 차가 먼저 앞쪽으로 달려갔다.회사 입구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연예 기자들은 익숙한 마이바흐를 보더니 우르르 몰려갔고 전호영은 결국 급정거할 수밖에 없었다.그들은 전호영의 차를 막은 뒤에야 비로소 그 차가 고현의 차가 아님을 깨달았다. 눈앞의 차는 고현 도련님의 차가 아니었다.고현의 차 번호판도 맞지 않거니와 뒤에 고현의 경호원 차들도 따라오지 않았다.이것은 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다.이때 전호영이 천천히 차창을 눌렀다.“호영 도련님, 고 대표님이 여자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호영 도련님, 혹시 고현 도련님이 여자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어젯밤 송씨 가문의 연회에 함께 참석하셨을 때 호영 도련님은 고 대표님께서 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어떠셨습니까?”아직 당사자를 잡지 못했지만, 전호영을 잡은 기자들은 전부 모여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전호영은 고현과 동성연애를 하고 있다.두 사람은 친밀한 일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전호영은 고현이 여자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전호영이 대답했다.“저는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 대표님이 여자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지
하예정은 웃으면서 해명했다.“동서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봐 물어본 거 아니에요. 단지 할머니께서 어떤 며느릿감을 고르실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에요.”그녀는 이런 가십거리를 매우 좋아했다.동서끼리 사이가 안 좋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씨 할머니의 안목은 무척 좋기 때문에 전씨 할머니께서 고르신 아내감은 분명 인성 좋은 사람일 것이다.설령 인성이 나쁘더라도 하예정과 마음이 맞지 않아도 괜찮았다.그들은 모두 서원 리조트에 살고 있지만, 모두가 서로 다른 별장에 살고 있었다. 함께 살지 않으니 마음이 맞으면 서로 좀 더 잘 만나고 마음이 맞지 않으면 관계만 잘 유지하면 그뿐이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나도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라. 아마 비주얼은 좋을 것 같아. 어쨌든 우리 사촌 동생들은 전부 다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할머니께서도 못생긴 여자는 고르시지 않을 거야. 이혁이도 오랫동안 날 찾아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됐는지 몰라.”전태윤은 심지어 전이혁의 미래 아내의 성씨도 몰랐다. 그의 여자도 아니었기에 너무 많은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언젠가 동생들도 그들의 여자들을 데리고 부모님을 뵈러 올 것이다.“그런데 할머니께서 저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저는 못생기지 않게 생겼지만, 우리 집안은 부유하지도 않고 전씨 가문의 재력과는 너무 차이 나는 데다 태윤 씨는 전씨 가문의 장남이잖아요, 왜 태윤 씨와 저를 맞세우려고 하셨는지, 또 왜 우리 두 사람을 결혼시키려고 하셨는지... 태윤 씨도 무척 난처했겠네요.”전태윤은 잠자코 있다가 대답했다.“우리는 아마도 그 점쟁이가 점을 쳐 주신 덕분일 거야.”전씨 할머니는 그 점쟁이를 가장 신임하셨다. 점쟁이는 전태윤과 하예정이 부부 인연이 있다면서 만약 그가 하예정을 놓치게 되면 평생 홀아비로 살 것이라고 귀띔해주셨다.전씨 할머니는 장남 전태윤을 가장 아끼시는데 어떻게 그가 홀아비로 살게 할 수 있겠는가!하여 전씨 할머니는 몰래 하예정의 인성을 관찰하다가 인품이
사람들에게 하예정의 친정집의 실력도 강하다는 것을 알게 해야 했다.하예진은 이경혜의 지시에 따라 강성에 와서 이은숙 가족 교통사고의 진실을 추적하는 것 외에도, 이씨 가문의 주인 자리를 되찾아 하예정의 친정집에도 재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강성 이씨 가문은 점점 몰락하고 있지만, 어쨌든 재벌 가문이기 때문에 지금의 하씨 집안보다는 훨씬 나았다.하씨 집안에도 가족들이 많지만, 고향의 그 “일품” 친척들은 하예정의 발목만 잡는 사람들이라 연계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다.통화를 끝내자 하예정은 휴대전화를 들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전태윤은 부드럽게 물었다.“무슨 생각해?”하예정은 빙그레 웃으며 전태윤의 어깨에 기대며 말을 이었다.“당신 그래요? 운명이란 게 참 이상해요. 저는 지금 같은 날은 꿈도 꾸지 못했거든요. 우리 엄마가 원래 부잣집 딸일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게다가 제가 태윤 씨와 결혼하게 되다니, 사람 사이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해요. 내일 일어나게 될 일을 누구도 모르잖아요.”전태윤은 하예정의 얼굴에 뽀뽀하고 난 뒤 말을 건넸다.“처형이랑 일상적인 통화를 하는 것 같더니 왜 이렇게 감회가 새로워졌어? 먼저 회사로 갈 거야? 아니면 서점으로 가려고? 내가 너 데려다주고 다시 회사로 갈게.”“일단 회사로 돌아가야죠. 지금 이 시간이면 학생들도 다 수업하고 있을텐데 가게도 별일 없을 거예요. 서점으로 간다 해도 한가해서 파리만 잡을 텐데. 지금은 날씨가 추워서 파리도 없겠네요.”“그래.”“참, 저의 언니가 말씀하시는데 어제 고 대표님이 연회에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셨다면서요? 호영 도련님께서 드디어 소원을 이루셨네요.”전태윤이 웃으면서 말했다.“호영이가 어젯밤에 기뻐하며 나에게 이 좋은 소식을 알려주더라고. 이진이와 호영이가 결실을 보았으니 이제 이혁이와 전우만 남았네.”지난번에 어떤 여자가 전씨 그룹에 가서 전이혁을 찾으러 갔었다. 전이진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물건을 훔친 거 아니냐면서 캐물었
하예정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우빈은 말할 것도 없고 나조차도 아침에 이불 속에서 겨우 일어났어. 언니, 강성은 더 춥지? 인스타에서 보니 사람들이 눈 내리는 영상을 찍어 올렸던데. 우리 관성은 눈은 오지 않지만, 강성 쪽에 눈이 오면 우리 여기도 따라서 추워져.”관성 기온은 낮에는 10도가 넘지만, 밤에는 가장 낮아서 8~9도까지 떨어지곤 한다.이런 기온은 강성 사람들에게는 춥지 않지만, 더위에 길들여진 관성 사람들에게는 매우 추운 날씨다.“옷 좀 더 입혀줘. 유치원에서 나누어준 겨울옷은 너무 두껍지 않으니까.”우빈은 겨우 세 살 남짓 된 어린이였기에 하예진이 걱정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건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입혔어. 그런 걱정하지 마. 언니도 강성에서 감기 조심하고. 많이 입고 다녀.”“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걱정하지 마. 넌 오늘 회사로 출근했어? 요즘 관성도 추울 텐데, 먼저 집에서 쉬는 건 어때? 제부가 돈 잘 벌잖아. 네가 회사로 뛰어다니면서 돈 벌 필요 없어.”하예진은 너무 바빠서 땅에 발을 내디딜 틈이 없으면서도 여동생에게는 집에서 배 속의 아기를 잘 돌보라고 설득했다.“괜찮아. 우리 회사에도 일이 별로 없어서 그냥 와 본 거야. 좀 이따가 서점에 들러야 해. 정남 씨가 이틀을 휴가 내서 나도 효진에게 쉬라고 했어. 두 사람이 함께 편히 쉬라고 가게에 나오지 말라고 했어. 나 혼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으니까.”소정남은 늘 전태윤에게 그의 아내가 샤브샤브를 먹고 싶어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먹지 못한다고 투덜댔다.하예진도 그냥 잔소리 한 번 해봤을 뿐 하예정이 말을 듣지 않을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더는 말을 설득하지 않았다.하예진은 과거 임신하여 집에서 쉬면서 사회와 단절되었고 출산한 뒤로도 모든 정력을 우빈에게만 쏟아부어 자기 관리에 소홀해 몸매가 많이 무너졌었다.그러나 전태윤은 주형인처럼 어리석게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하예진의 실패한 결혼은 하예정에게 경적을 울릴 것이고 하예정도 최대한 친언니의 과거 생활을 피해 가려
전호영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내뱉었다.“당연히 습관 되지 않을 거예요. 현이 씨는 평소 너무 엄숙해요. 너무 부끄러우면 방에 혼자 있을 때 연습해도 되는데. 누구도 듣지 못하면 누가 현이 씨를 비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잖아요.”고현은 전호영이 계속 말하는 모습을 보더니 스테이크를 한 조각 잘라 포크로 그의 입에 쑤셔 넣었다.따르릉...전호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하예정이 걸어온 전화였다.전호영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예진 누나, 무슨 일 있어요?”“없어요. 그냥 호텔 문 앞에 기자들이 많다고 알려주려고요. 혹시 고현 씨가 혹시 외부에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인정하셨어요? 기자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아마도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찾아온 것 같아요. 하루 호텔에 와서 모여있는 거로 보면 아마 맞은편의 고성 호텔에서도 지키고 있을 거예요. 아까 일구 씨가 가봤는데 확실히 기자들이 몰려들어 있대요. 오늘 호텔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호영 씨, 어제 호영 씨와 고현 씨가 무슨 일을 벌인 거 맞죠? 소문이 어찌나 빠른지 아침에 식사하러 내려왔는데 저도 벌써 그 소문을 듣게 됐다니까요.”전호영은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마치 저와 현이 씨가 어젯밤에 바람을 피우다가 잡힌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하하! 어젯밤에 저와 현이 씨가 송씨 가문 연회에 참석하러 갔거든요. 현이 씨가 드레스를 입고 참석했을 뿐이에요. 다른 건 아무 일도 없었어요.”하예진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렇군요. 축하드려요. 고현 씨가 호영 씨를 위해 치마를 입다니, 그녀가 드디어 호영 씨를 사랑하게 됐네요. 저는 두 사람의 결혼 축하주를 마시기만을 기다리면 되겠네요.”고현은 전호영에 대한 감정이 매우 더딘 편이었다.전호영이 고현을 쫓아다닌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녀는 이제야 사람들이 전호영을 오해하는 것이 가슴 아팠고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하여 고현은 자발적으로 치마를 입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녀가 원래 여자이고 전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