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 할머니가 무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예씨 할머니는 곧 그 뜻을 이해하였다. 이어 예씨 할머니의 안색도 더욱 진지해졌다.비록 지금의 예씨 일가와 성씨 일가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이제 예준하와 성소현이 결혼한다면 두 가문은 사돈이 되는 셈이다. 만약 성소현의 어머니 이경혜가 이씨 가문의 핏줄이라면... 수십 년 전 이씨 일가는 피바람을 겪었다. 다른 도시의 가문들도 그 일에 대해 조금은 전해 들은 바가 있다.만약 이경혜가 이씨 일가 전 가장의 딸이라면, 자신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된 이경혜가 복수라도 하려 한다면... 예씨 가문도 불가피하게 도움을 줘야 할거로 예씨 할머니는 생각했다.두 할머니는 서로를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이때 전씨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정말 그날이 온다면... 우리 전씨 일가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을 겁니다.”이경혜의 친동생은 하예정의 친어머니이다.만약 이경혜가 원수를 갚고 이씨 가장의 자리를 되찾으려 한다면 전씨 일가는 반드시 도울 뿐만 아니라 전태윤은 도움의 주역이 될 것이다. 돌아가신 장모님을 대신해 원수를 갚는 것과도 같으니까.모연정과 하예정은 두 할머니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어르신들은 보통 과거의 이야기나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좋아한다.모연정은 우빈이의 손을 잡고 걸으며 하예정에게 물었다.“우빈이는 유치원에 다녀요?”“아직이요. 9월 1일 개학한다는데 여름 방학이 끝나기 전에 데리고 놀러 나온 거예요, 이제 개학하면 놀 시간도 얼마 없겠죠...”우빈이는 평소 무술도 배워야 했다.주말 내내 무관에 가서 무술을 배웠다.두 달이 되는 여름 방학도 거의 다 지나갔고, 우빈이는 보름도 채 남지 않은 지금에야 조금의 휴가를 얻었다.“우빈이는 매우 영리한 아이예요, 하예진 씨가 아이를 아주 잘 가르친 것 같네요. 우리 집 용정이랑 나이도 비슷해요. 예정 씨, 할머니와 여기서 며칠 더 머물면서 즐겁게 쉬다 가지 않을래요? 용정이는 지금 병원에서
A시의 여자들의 눈에 예씨 일가의 남자들은 완벽한 신랑감이었다.관성의 여자들이 전씨 일가에 시집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전씨 일가의 부를 원했을 뿐만 아니라 전씨 일가의 남자들이 아내에 대한 총애도 각별했다.예진 리조트를 반 바퀴쯤 돌았을 때 모연정과 하예정도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둘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우빈이는 아직 어려 너무 먼 길을 걸을 수 없었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이모에게 업어 달라고 했다.어린 녀석을 업은 하예정은 말했다.“이럴 때 나는 유난히 우리 집 태윤 씨가 그리워요.”모연정은 깔깔 웃었다.“이 말 태윤 씨가 들었으면 속상해할걸요? 다른 남자아이 때문에 자기를 그리워한다면서요.”하예정은 얼굴을 약간 붉히며 물었다.“연정 씨도 이런 불평 자주 듣죠? 말하는 말투가 어쩜 우리 그이랑 그렇게 비슷해요?”“네 맞아요, 우리 집 준성 씨도 항상 불평하고 질투하거든요. 내가 아들에게 너무 잘해준다며, 아들은 앞으로 남의 집 남자가 될 몸이라고, 자기야말로 내 남자라면서... 꼭 어린아이 같아요.”“준성 씨랑 태윤 씨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내가 우빈이를 좀 업을까요?”모연정은 하예정의 등에서 우빈이를 안아 오려고 했다.하예정은 서둘러 그녀를 막았다.“연정 씨,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피곤하면 안 돼요. 우빈이가 체중이 얼마 가지 않아 괜찮아요..”다만 이미 잠에 든 우빈이가 등에서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몸을 앞으로 구부려서 걷는 게 좀 힘들었을 뿐이다.하예정이 허락하지 않자 모연정도 고집하지 않고 집사에게 데리러 오라고 연락했다.곧 도우미가 차를 몰고 찾아왔다.“사모님.”도우미는 차를 세우고 공손히 인사를 했다.“차 키 나에게 줘요.”차 키를 건네받은 모연정은 차에 하예정과 잠든 우빈이를 태우고 본채로 돌아갔다.“리조트가 너무 커서 걸어서 전체를 한 번에 둘러보기는 힘들어요. 우리 다음에는 자전거를 타요.”“네. 서원 리조트도 그래요.
하예정에 대한 소개를 들은 정겨울은 말했다.“전이진 씨가 예정 씨의 남편분 동생이 되죠? 이제 돌아가거든 대신 전해줄래요? 이제 40일이 지나면 꼭 전이진 씨 약혼녀의 눈을 치료하러 갈 거라고요.”“네, 꼭 전할게요. 이진 도련님도 오래 기다렸을 거예요.”옆에서 아들을 안고 있던 예준일의 표정이 굳어졌다.정겨울이 흘겨보자 예준일은 또 아무렇지 않은 척 아들을 달랬다.신의는 작은 소리로 용정에게 말했다.“넌 앞으로 나의 강임함을 이어받아야지 넷째 작은아버지처럼 아내를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용정은 모연정을 어머니라고 불렀고 예준일을 넷째 작은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러다 스승인 정겨울이 예준일의 아내가 되자 뭐라고 불렀으면 좋을지 난감했다. 이에 정겨울은 제자에게 그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라고, 만약 예준일이 뭐라 하면 자기한테 말하라고 했다.정겨울의 태도에 예준일은 아내가 자기보다 다른 집 남자를 더 좋아한다고 투덜댔다.예씨 일가의 남자가 아니랄까 봐, 척하면 질투했다.이때 예준일이 작은 소리로 변명했다.“어르신, 이건 제가 아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거예요. 저를 위해 힘들게 아이를 낳았는데...”이때 품 안의 아기가 또 울먹이기 시작했다.예준일은 바삐 달래지만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울보 아들을 안고 방 안을 왔다 갔다 하였는데 울음이 그치지 않자 할 수 없이 아들을 신의에게 맡겼다. 아기는 신의의 품에 안기자마자 울음을 그쳤다.“이것 봐봐, 자네는 아이 하나 안을 줄도 모르는가? 이게 모두 자네가 안는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는 거라고. 울면 울보라고 탓하지, 안 울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자네 이러면 안 되는 거야.”“아니요, 지연이는 이렇게 잘 울지 않아요.”예준일은 무의식 간에 한마디 했다.사실 그들 부부는 모두 예지연처럼 말을 잘 듣는 아기를 낳기를 바랐다. 그리고 아들도 갓 태어났을 때는 잘 울지 않았다. 예준일은 먹고 자고 하는 아들을 보며 다른 조카보다 훨씬 얌전하다고 생각
어린 친구가 집에 왔다는 말에 용정은 매우 즐거웠다.그도 일찍이 집에 돌아가 여동생을 보고 싶었다. 자기가 집에 없는 틈을 타 누군가가 여동생을 데려갈까 봐 걱정했다.하지만 신의는 병원에서 갓 태어난 남동생을 돌보고 싶어 했다.용정은 신의도 분명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이모를 따라 예진 리조트로 온 우빈이는 용정이라는 친구를 만났다. 나이가 비슷한 두 아이는 자라면서 사이가 점점 좋아졌고, 이는 두 명문가 후손의 연계를 뜻하기도 했다.비록 우빈이가 전씨 일가의 아이는 아니지만, 이모는 전씨 일가 미래의 안방마님이다.우빈이가 모연정의 양자와 친구가 되었다는 것은 두 일가의 왕래가 한층 더 깊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해가 서쪽으로 지면서 노을이 하늘을 불태웠다.하예정은 한없이 부드러운 눈길로 두 어린이가 멀지 않은 곳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언제 나도 아이가 생길까?’할머니가 가장 신뢰하는 점쟁이는 전태윤 부부가 나중에 아들과 딸을 둘 다 가지게 될 운명이라고 말한 바 있다.하지만 아직 아무런 미동도 없는 배를 보며 하예정은 걱정이 들었다.‘정말 아이를 가질 수 있을까? 잘못 짚은 거면 어떡하지?’“이모부!”우빈이가 갑자기 이모부를 불렀다.이에 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빈아, 이모부 여기 안 계시니까 이모부 보고 싶거든 우리 조금 일찍 집에 돌아갈까?”다만 우빈이는 이모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로 이모부가 보였으니까.멀리서부터 걸어오는 이모부의 몸 위로 석양이 드리워 마치 금빛 옷을 입은 듯했다.전태윤을 발견한 용정이는 그쪽으로 달려가려는 우빈이를 붙잡으며 물었다.“우빈아, 너 저 사람 알아? 낯이 익은 얼굴 같기는 해... 전씨 아저씨?”“내 이보부야. 음... 이모부가 전씨 성인 게 맞는 것 같기는 해. 다른 사람이 항상 전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거든.”“그럼 전씨 아저씨가 틀림없어.”용정은 우빈이를 잡았던 손을 놓고는 우빈이보다 더 빠르게 전태
전태윤은 용정을 품에 안았다.바로 우빈이도 달려왔다.“이모부.”전태윤은 웃으며 다른 한 손으로 우빈이를 품에 안았다.하예정이 일어나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남편이 두 아이를 안고 그녀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어?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찾아온 거지?’전태윤은 두 아이를 안고 다가와 다시 허리를 굽혀 땅에 내려놓으며 말했다.“자, 놀러 가.”우빈이는 용정의 팔을 끌어당기며 말했다.“용정아, 우리 놀러 가자.”용정이도 활발한 성격이라 노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예진 리조트에는 아이가 몇 명 있었지만 용정을 제외한 나머지는 아직 젖먹이였다.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울기만 하여 용정이는 그들과 노는 게 재미없었다.모처럼 나이 또래의 친구가 왔으니 용정이는 우빈이와 미친 듯이 뛰어놀았다.하예정은 남편을 잠시 바라보더니 물었다.“우리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전태윤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말했다.“말 한마디 없이 가버리면 어떡해? 당신 보려고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더니 당신은 이미 할머니를 따라가 버렸지 뭐야. 그러다 당신이 나에게 전화했을 때,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걸 보고 예진 리조트에 왔다는 걸 알았어.”전태윤은 원래 찾아올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아내와 함께 있는 날들에 익숙해졌는지 너무 지루한 나머지 찾아오게 된 것이다. 하예정이 떠난 지 하루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몇 년 동안 헤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리움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개인 비행기를 타고 예진 리조트에 왔다.“지호의 울음소리를 들은 거네요.”예지호가 울고 있을 때라 전태윤이 들을까 봐 급히 전화를 끊었는데 그래도 한발 늦었다.“방금 도착하셨나요?”“응, 예씨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먼저 만나 뵈었어. 그리고 허락받고 당신을 찾아온 거야.”전태윤은 근처에 있는 두 아이가 즐겁게 노느라 주의하지 않은 틈을 타 하예정을 품으로 당겨와 힘써 껴안고는 바로 놓아주었다.“여보, 앞으로 다시는
하예정은 아이들이 장난치는 것을 볼 때마다 자기는 언제쯤이야 아이를 가질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곤 한다.전태윤은 아내를 너무나도 잘 알아 위로하는 말을 한마디 한 것이다.하예정은 머리를 남편의 어깨에 기댔다.놀다가 지친 두 아이는 다시 어른들 쪽으로 뛰어왔다.용정은 너무 빨리 달린 나머지 부주의로 작은 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우빈이는 얼른 친구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전태윤과 하예정도 벌떡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달려갔다. 우빈이는 아직 어려 포동포동한 용정이를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다. 결국 하예정이 용정이를 땅에서 일으켜 안았다.용정이는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예정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넘어진 게 아프지 않냐고 묻자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긴 것만 같았다. 이에 용정이는 눈가에 눈물이 맺혔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저으며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하예정은 용정 옷의 먼지를 털어주었고, 눈가에 눈물이 고여있는 것을 보고 또 휴지를 꺼내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 주었다.“등이 다쳤어 아니면 머리가 다친 거야?”용정이는 뒤로 넘어졌다.하예정은 어디 다친 데는 없나 확인하려고 용정이의 옷을 위로 당겨 올렸다. 아이의 등에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멍해졌다.전태윤도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전씨 그룹의 대표가 아니랄까 봐 반응이 빠른 그는 침착하게 용정의 등을 한번 쭉 훑어보아 등에 상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옷을 내려 등의 도안을 가렸다.“이모부, 용정의 등에...”“아무것도 아니야, 우빈이도 아무것도 못 본 척 절대 입 밖에 내지 마, 알겠어?”전태윤은 처음으로 엄숙한 태도로 우빈이에게 요구했다.우빈이는 이모부의 엄숙한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절대 다른 사람과 말하지 않을게요.”하예정은 원래 몇 마디 묻고 싶었지만 남편이 조카에게 하는 말을 듣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그들 부부는 용정의 머리 쪽도 확인해 보았는데 아무 곳도 다친데가 없었다. 꼬마 녀석은 그저 넘어진 게 아픈 것뿐인 것 같
“이모.”우빈이는 질투로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용정에게 이모를 빼앗겼다고 생각한 것이었다.우빈이도 참지 못하고 이모의 품으로 들어갔다. 용정과 겨룰 기세였다.하예정은 웃으면서 조카를 한 번 껴안고는 두 어린 녀석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따라 일어나 한 손에 한 사람씩 잡고 말했다.“밖에서 충분히 오래 놀았으니까 이젠 집으로 돌아가자.”전태윤은 우빈이의 다른 한쪽 손을 잡았다.부부는 아이 둘을 거느리고 있으니 네 식구처럼 보였다.집안으로 돌아온 하예정은 모연정에게 용정이 넘어진 것을 알려주었다.모연정은 급히 끌고 와서 검사하려고 하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용정의 옷을 들어보려다 멈추고 용정의 어깨를 잡고는 관심 조로 그에게 물었다.“넘어진 곳은 아프지 않아?”“아파요, 하지만 예정 이모가 안아주니까 아프지 않아졌어요.”꼬마는 이렇게 대답한 후 잠시 생각을 하더니 한마디 더 보탰다.“예정 이모 몸에서 엄마와 같은 냄새가 나요. 예정 이모 너무 좋아요.”모연정은 웃으며 말했다.“누구든 만나기만 하면 좋은 거야?”그녀의 두 어머니, 은서윤 등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용정은 모두 좋다고, 너무 좋다고 말하곤 했다.사실 용정은 자기에게 진심으로 잘해주는 사람이기만 하면 누구든지 좋아했다. 비록 그는 아직 어리지만 누가 자신에게 진심인지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그저 밖으로 말하지 않을 뿐이었다.어떤 일은 굳이 말할 필요 없이 마음속으로만 알고 있으면 됐다.용정은 어머니의 웃음에 약간 쑥스러웠지만, 여전히 뻔뻔스럽게 어머니의 목을 껴안고 그녀의 품에서 애교를 떨며 말했다.“그래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어머니뿐이에요.”모연정이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용정은 도우미 아주머니가 큰 도련님이라고 공손히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곧 모연정의 품에서 빠져나왔다.그러고는 우빈의 손을 잡고 말했다.“우빈아, 동생들 보러 가자.”준성 아저씨는 그가 어머니의 품에서 애교 부리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용정은 예준성을 많이 무서워했다.예준성은 사실 용
예준성은 또 전태윤 부부와 인사를 나눈 후에야 마침내 사랑하는 아내 옆에 앉았다.모두들 수다를 떠니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귀한 손님이 방문했기에 예씨 집안의 사람들은 모두 중앙의 본채에서 떠들썩하게 식사를 했다.그중 두 할머니가 가장 기뻐했다. 나이가 든 탓일까? 둘은 자손들이 온 집안에 가득 찬 장면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저녁이 되고 하예정은 조카를 재우는 사이에 자신도 잠시 졸았다.문 여는 소리에 깨어나자 전태윤이 문을 밀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아직 안 잤어?”전태윤은 부드럽게 말했다.“준성 씨와 얘기가 길어져서 당신 먼저 잠든 줄 알았어.”“우빈이를 재우다가 잠이 들 뻔했어요.”전태윤이 다가오자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용정의 등에 있는 알 수 없는 문양은 뭘까요? 문신을 새긴 것 같은데... 어린애 등에 그런 것을 새겼으니 그때 얼마나 아팠을까요?”전태윤은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어찌할 방법이 없는 이상 누가 자기 핏줄에게 그런 것을 새겼겠어.”“용정의 신분은 수수께끼일 뿐만 아니라 절대 원만한 신분도 아닐 거야. 예준성 부부가 용정이를 친자식처럼 대하면서도 곁에 두고 키우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어떤 일에 연루될까 봐서일 거야. 용정은 아직 어리고 계속 감싸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릴때 부터 미리 기초를 다져둬야지.”“겨울 의사가 용정을 마음에 들어 해서 모연정은 용정이를 정겨울에게 제자이자 아들로 보낼 생각인 것 같아. 신의 세대의 괴짜들에 대한 전설도 적지 않잖아. 필요할 때가 오면 나서줄지도 몰라. 한 사람을 건드리기만 하면 한 무리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셈이라 감히 건드리는 사람은 많지 않아. 게다가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라 어디를 가든 기척을 남기지 않아. 그러니 용정이 신의를 따라가는 것이 훨씬 안전해.”하예정은 겁에 질린 듯 조용히 물었다.“설마 누군가가 용정을 쫓는 것은 아니겠죠? 아직 세 살도 안 되는 아인데.”전태윤은 깊이 잠든 우빈이를 바라보았다. 우빈이는 용정과 사이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
여운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전이진을 대신하여 은행카드만 보관할 뿐일 것이었다. 그가 돈 쓰는 것을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도 그의 돈을 쓸 일이 없을 테였다.전이진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보면서 벙글벙글 웃었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했다.“왜 계속 날 보면서 웃어요?”“좋으니까. 운초 씨, 나 지금 너무 좋아. 그냥 웃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아?”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또 웃었다.그러는 전이진을 지켜보는 여운초도 참지 못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둘이서 한참 동안 알콩달콩한 후 전이진이 시계를 보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는 약혼녀를 보면서 말했다.“운초 씨, 엄마가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우리 지금 출발해. 우리가 구청에 도착하면 아마 엄마도 도착하실 거야.”그는 꽃집에 가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 했다.여운초가 불시에 결혼 신고하자는 바람에 그가 아직 준비는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다.꽃다발, 다이아몬드 반지 둘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여길 여자임으로 절대로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그래요.”그가 일어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여운초도 편안하게 자신의 손을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에게 이끌려 일어섰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자고로‘그대의 손만 잡고 이생의 끝까지 살아간다.’라고 했다.그녀는 전이진과 백년해로하고 평생 금실이 좋기를 원했다. 시부모님처럼 애들이 부러울 정도로 몇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첫 사람처럼 달콤하게 지내길 원했다.여운초는 저의 집에 있는 차를 안 타고 전이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그녀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그녀가 16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를 딸수 없었던 것이었다.집에 있는 운전기사는 전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호원인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운전도 해줄 수 있었다.20분 뒤.구청 입구명해
“운초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전이진은 약혼녀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명해은은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엄마, 오늘 시간 돼요?”“이제 방금 일어났어. 오늘은 별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 왜? 아들, 엄마 도움이 필요해?”명해은이 잠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들이 다 크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애들한테 더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명해은은 너무 일찍 맛봤다.“저와 운초 씨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려 하는데 제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안 가져왔어요. 엄마 혹은 아버지가 지금 저한테 가져다줄 수 있어요?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보내줘도 되고요. 제가 돌아가서 가져오면 시간이 지체되어 아마도 오후나 돼야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후까지 못 기다리겠어요.”가족관계등록부만 손에 가지고 있다면, 전이진은 지금이라도 여운초를 데리고 혼인 신고하러 갔을 테였다.진정으로 여운초가 좋아진 그 시각부터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때의 여운초는 앞을 보지 못했기에 훌륭한 전이진을 앞두고 자비감에 모대기었다. 전이진의 사랑마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받아들인 것이었다.그녀는 전이진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정 선생을 찾으러 여러 번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인생을 그와 함께하기로 하고 약혼을 한 것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볼 수 있을 때 가서 결혼하기를 원했다.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전이진이 곧 시어머니로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은 여운초의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이 사람 뭐가 그리 급해...’이 반가운 소식을 들은 명해은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있고말고, 엄마 시간은 남아돌고 있으니 금방 가져다줄게. 넌 지금 여씨 저택에 있니? 아니면 회사에 있니?” “저는 지금
그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믿었다. 그는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인품, 일하는 스타일 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나는 이혼 따위는 할 마음이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당신처럼 훌륭한 남자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좋고, 당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 결혼은 할머니가 강요하셔서 한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니 어쩌니 해도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했다.“넌 아직도 바깥사람들이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 전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아내한테 일편단심이야. 전씨 집안의 가훈에는 결혼 후 한평생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혼인에 충실해야 하며 바람을 피워선 안 되고 이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어.”“누구든 가훈을 어기는 즉시, 전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전씨 일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돼버려.”“그리고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가 강요하셔도 소용없어.”전이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누구한테 전화하려고요?”여운초는 그가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려나 싶어서 한마디 물었다.“내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아.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내 가족관계등록부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급히 가져다 달라 하면 우리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 절차를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아.”결혼 증명서를 받고 나면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것이었다.전이진은 여태 자기가 한시 급히 여운초랑 결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애초에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그를 볼 수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끝내 그녀의 눈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또 법을 어기는 일까지 했다.비록 모든 불법적인 장사는 이미 압류당했고 관련된 금액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액이 바닥을 쳤으며 여씨 그룹의 재산도 많이 수축했다.큰누나가 여씨 그룹을 이어받은 후, 한동호 형님과 힘을 합쳐 천신만고 끝에 여씨 그룹을 이끌고 이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이런 얘기를 큰누나는 그한테 한 적 없었지만, 그는 한동호 형님과 매형을 통해서 알게되었다.비로소 그는 큰누나의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 속에 얼마나 많은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비록 큰누나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의 부모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큰누나의 대의멸친을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이해만은 할 수 있었다.현재 여씨 그룹은 큰누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큰누나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자기가 가져야 할 재산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지만,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재산은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고. 그가 물려받아야 할 재산은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었다.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그와 둘째 누나 단둘의 소송일 것이었다.큰누나는 단지 여천우 부모님에게 속하는 재산만 그에게 돌려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그와 둘째 누나밖에 없으니 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상대는 그일 수밖에 없었다.“누나, 나 먼저 수업 들으러 들게. 수업이 끝나는 대로 휴가 내서 돌아갈 테니 그때 천천히 얘기해.”“알았어, 얼른 가서 수업 봐.”동생과의 통화를 마친 여운초는 동생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의 물건들을 그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여운별 방의 물건은 여운초가 기분을 봐서 언제든 연락하여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와 여운별은 남남일 것이었다.“아가씨,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여운초는 알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