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어머니는 아직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퇴원한 후 다리 재활치료를 견지하지 못하게 될 때면 무조건 하예진을 찾아갈 것이었다.그의 차가운 태도는 미리 그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였다.병실 문이 닫히자 윤미라는 하예진을 잡아당겼던 손을 놓고 돌아서더니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벽에 기대어 울기 시작했다.하예진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 사모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위로했다.“사모님, 동명 씨는 꼭 괜찮아질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그녀는 휴지를 꺼내 윤미라에게 건넸다.윤미라는 휴지를 받고 돌아서서 눈물을 닦으며 그녀에게 사과했다.“이 일은 예진 씨와 상관없어요, 다 내 잘못이에요. 내가 동명이가 당신을 찾아가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한 거예요. 다 내 잘못이에요. 어젯밤 동명이가 다리의 상처가 심한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영 정신을 못 차리더라고요. 내 생각에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예진 씨에게 그렇게 대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요.”“전 괜찮아요. 이해가 가요.”노동명은 신분이 있는 사람이라 자신이 크게 다친 걸 보고 충격에 성격이 크게 변하게 된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예진 씨, 미안해요.”윤미라는 다시 한번 사과했다.“모두 내 잘못이에요. 내가 말리지만 않았더라면 동명이가 교통사고를 당할 일도 없었을 거예요. 그러니 예진 씨, 절대 동명이를 탓하지 마요.”하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동명이 방금 한 말은 확실히 듣기 거북했다. 방금 들었을 때 그녀는 매우 상처받았지만 노동명을 탓하지는 않았다.“동명 씨가 지금 저를 보고 싶지 않아 하니까 앞으로는 와서 밖에 있도록 할게요. 들어가서 동명 씨를 자극하는 일은 하지 않을게요. 그럼 오늘은 이만 가 보겠습니다.”노동명은 지금 하예진을 보고 싶지 않아 하니 여기에 계속 머물러도 소용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또 격해질 수도 있었다.윤미라는 훌쩍이며 말했다.“며칠 지나서 동명의 마음이 좀 가라앉으면 다시 보러
하예진은 병원을 나와 자신의 토스트 가게로 돌아갔다.“사장님, 다녀오셨어요.”두 가게 점원은 그녀가 돌아오자 서둘러 인사를 하고는 힐끔힐끔 하며 뭔가 할 말을 주저하는 눈치였다.그러나 하예진은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어 알아차리지 못했다.한창 가게 장사가 바쁜 터라 두 점원도 일단 일을 먼저 마치고 나중에 그녀와 얘기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하예진이 별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하는 모습을 보고 실검에 대한 일을 알고 있겠다고 짐작했다.하예진의 여동생이 어마어마한 재벌 집 며느리인데 소식이야 그들보다 빠를 게 뻔하지 않겠는가.그 시각 하예진은 카운터 앞에 앉아있었다. 머릿속에는 노동명이 했던 말이 반복되어 울려 퍼졌다.그가 사고 난 데에 대해 그녀도 걱정하고 있지만 그는 그녀를 나무라며 잘못을 그녀한테 돌렸다. 분명 그녀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언니.”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들어 보니 동생이 이미 그녀 앞에 와서 앉아있었다. 하도 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 있어 하예정이 온 줄도 몰랐다.“예정아, 너 서점에 안 들어가 봐도 돼?”“효진이가 거기 있어. 난 이따 소현이랑 회사에 한 번 가볼 거야. 효진이가 임신한 몸이라 왔다 갔다 하기 불편하니까 그냥 서점이나 지키고 있으라고 했어.”소정남은 심효진이 출근하는 걸 반대했다. 하지만 심효진은 서점에도 못 가게 하면 하예정과 같이 채소 농장 비즈니스를 돕겠다고 했다. 소정남은 어쩔 수 없이 그녀가 매일 서점에 가는 데에 동의했다.최소한 서점을 지키는 일은 힘들지도 않고 가끔 물건을 상하차하며 옮겨야 하지만 경호원을 시키면 되니깐 말이다.“소현이는 아직이야?”하예진은 하예정의 뒤를 기웃거리며 보고는 물었다.“내가 방금 전화했는데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대. 그래서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어.”언니의 눈 밑에 짙게 깔린 다크서클을 보며 하예정은 걱정되어 눈살을 찌푸렸다.“언니 언제 잠을 잘 못 잤어? 왜 아침에는 그리 일찍 나간 거야?”그녀와 전태윤이 일어났을 때 하예진은
“언니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나도 안심이네. 노 대표가 언니한테 뭐라고 하던, 어떻게 성질을 부리던, 그건 다 진심이 아니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마.”하예정이 병원에 갔을 때 노진규가 그들 부부한테 모든 것을 얘기해줬다.그녀는 노동명이 한 말은 진심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불구가 되어 평생 휠체어를 타게 될까 봐, 다른 사람들이 그를 연민하는 눈길로 바라볼까 봐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랬다고 생각했다.잠자코 있던 하예진이 입을 열었다.“동명 씨가 자포자기 안 했으면 좋겠어. 퇴원하고 나서도 꾸준히 재활해서 빨리 회복하길 바라.”“그럴 거야.”하예정은 하예진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나랑 뭐 더 할 말 있어?”“노 대표 사고 난 거, 관성 실시간 검색어에 떴는데 사람들이 함부로 추측하면서 언니 이름까지 거론됐어.”하예정은 잠깐 멈칫하더니 얼른 휴대전화를 꺼내 현지 뉴스를 열어 확인했다. 노씨 그룹 대표이사가 교통사고가 났다는 뉴스가 실검에 뜨긴 했지만 순위는 높지 않았다.그녀는 기사를 열어보았다.“태윤 씨가 실검 순위를 하위로 내렸어. 금방 실검에서 볼 수 없을 거야.”하예정은 확인하고 나서 말했다.“난 괜찮은데 이 일이 노씨 그룹에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이야.”노씨 그룹은 노동명 개인에 속하는 기업이라 회사의 모든 결정권은 그 혼자한테만 있다. 노진 그룹처럼 노씨 집안의 가족 사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대표가 일이 생겨도 대표직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다.그한테 지금 변고가 생겼으므로 잠시는 회사 임원들이 잘 알아서 운영하겠지만 시간이 오래 갈수록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해질 것이고 그 틈을 타 딴마음을 먹는 이들이 생겨날 수도 있다.“그건 걱정 안 해도 돼. 태윤 씨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리고 노씨 집안에서도 노 대표 둘째 형을 회사로 보낼 거야.”노동명의 큰 형은 노진 그룹의 대표로서 노씨 그룹까지 챙길 여력이 없다. 그리하여 둘째 형을 보내 회사의 안정을 유지하도록 했다. 노씨 집안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또 전씨 그룹에서도 같이 챙기고
어르신은 눈을 크게 부릅뜨며 나무라는 투로 얘기했다.“왜? 지금 여기 누워있는다고 벌써 자신감이 사라져서 예진이를 남한테 떠미는 거야?”그리고 노동명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또 말을 이었다.“너 예진이를 뭐로 생각해, 대체? 걔 인생을 네가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남한테 떠밀기 전에 먼저 네 사람이 되는 게 우선 아니야? 네 사람도 아닌데 무슨 자격으로 남한테 떠밀어? 네 이놈, 예진이 손도 못 잡아봤지? 너흰 시작도 안 했는데 주제넘게 예진이한테 남자를 소개해 줘라 말아라 하는 거야?”“여기 아프냐?”노동명의 다친 다리를 약간 힘을 줘 누르며 어르신이 물었다.“아... 어르신, 아파요, 아파요!”다리로부터 전해져 오는 통증은 노동명으로 하여금 이마에 식은 탐이 송골송골 맺히게하였지만 그는 줄곧 꾹 참으며 한 번도 앓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어르신 앞에서는 체면을 차릴 필요가 없어 어리광 부리듯이 솔직하게 아픔을 호소했다.“아픈 줄 아는 건 좋은 일이야. 감각이 있다는 거잖아. 감각이 있으면 불구 될 일 없어. 물론 근육이나 뼈가 다치면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 퇴원하고 나서 재활센터를 찾아 열심히 재활 하도록 해. 네가 옛날처럼 씽씽 날아다니는 모습을 꼭 다시 볼 수 있을 거라 난 믿는다.”노동명은 괴롭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르신, 난 두려워요. 평생 휠체어에 앉아 다녀야 할까 봐서요.”“지금 의사도 네가 꼭 휠체어 신세가 될 거라고 단정 못 짓는데 왜 섣불리 그런 걱정을 해. 너 불구가 돼서 예진이 고생시킬까 봐 걔를 안 보려고 하는 거구나. 그래서 태윤이까지 병실에 들이지 않고 또 예진이한테 그딴 맘에도 없는 말을 하고. 예진이랑 원래부터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그런 형편없는 소리로 걔 마음에 상처 주기까지 하다니. 너 진짜 이대로 예진이 포기할 셈이냐?”“내가 전에 우리 집안의 그 불효막심한 손주 놈들 때문에 며느릿감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물색하면서 젊고 괜찮은 놈 몇몇 눈여겨 본 게 있다. 내가 손녀
어르신은 일어나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는 병실을 나갔다....주씨 집안.서현주는 소파에 가로누워 즐거운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그때 집 문이 열리고 김은희와 주서인이 밖에서 들어왔다.주서인을 본 서현주는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저 염치없는 여자가 또 왔네.’주서인도 서현주와 똑같은 얼굴이었다.서현주와 주형인은 신혼집으로 다시 이사왔다. 물론 인테리어도 새로 했다. 원래 인테리어는 하예진이 사람을 데리고 와 다 망가뜨렸기 때문이다.비록 이젠 셋집살이가 아니지만 여전히 매일 소란스러웠다.주서인은 전혀 눈치라는 걸 보지 않고 그들의 신혼집을 제집 드나들듯 드나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빈손으로 와서는 갈 때 냉장고를 열어 안에 있는 것들을 싹 다 털어가곤 했다.낯짝에 철판을 깐 게 아닌지 심히 의심되었다.그 때문에 서현주는 주형인과 몇 번 싸웠는지 모른다.그녀는 임신한 후로 시집에서 보배처럼 떠받들려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시어머니는 그나마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주서인은 전혀 변화가 없이 제멋대로였다. 서현주는 주서인 때문에 자꾸 열받으면 유산할지도 모른다고 주형인한테 불만을 토로했다.아이가 유산되면 그녀는 다시 감옥에 들어가 채 받지 못한 형을 마저 받아야 한다.“현주야, 휴대폰 좀 그만 봐. 아이한테 안 좋아.”집안에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는 서현주를 보게 된 김은희는 참지 못해 한마디 핀잔을 줬다.하마터면 하예진 모자를 죽일 뻔한 눈꼴 사나운 여자지만 하필 감옥에 들어간 후 주씨 집안 핏줄을 잉태한 것으로 드러났다.주형인이 형 집행 정지를 신청하여 서현주를 데리고 나왔을 때 김은희는 분에 겨워 화병이 날 것 같았지만 결국 그녀의 배 속에 주씨 집안 손주가 있으므로 참았다.“뉴스 보고 있었어요.”서현주는 일어나 앉으며 주서인을 힐끔 보고는 말했다.“형님 또 오셨어요? 어머니, 형님 시집가지 않았나요? 왜 쩍하면 친정집에 들락날락해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혼하여 시집에서 쫓겨난
주서인은 서현주를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네가 우리 집안의 애를 임신하지만 않았더라면 난 벌써 네 뺨을 때리고도 남았을 거야. 내가 볼 때 예진이가 팔자 사나운 게 아니라 네가 사나워, 네가! 이런 독한 년! 그따위로 네 남편 되는 사람을 저주해? 네가 형인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감옥에 처박혀있었어, 알아? 걔가 널 형 집행 정지로 꺼내줬는데 지금 차 사고 나라고 저주나 퍼붓고 말이야.”“그 노 대표인가 뭔가 하는 인간이 사고 났는데 예진이랑 무슨 상관있다고? 예진이는 그 남자랑 사귀지도 않는데. 제가 찾아가다가 엄마가 뒤쫓는 바람에 사고 난 걸 왜 예진이 한테 덤터기 씌워? 그건 언론에서 헛소리하면서 주작질 한 거라고. 눈길 좀 끌어보려고 예진이를 같이 엮어서. 그것들은 완전 양심 없는 쓰레기 언론사야.”주서인은 따발총처럼 욕설을 내뱉었다. 서현주는 반박할 틈을 찾지 못했다. 목청도 여간 높은 게 아니라서 아마 위아래층 할 것 없이 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씨 집안이 이 동네의 사람들이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씹어대는 안줏거리로 전락한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하예진이 사람을 데리고 와 이 집의 인테리어를 깨부술 때부터 주씨 집안 명성은 아파트단지에 자자하게 퍼졌다. 그 후 주형인과 하예진이 이혼하고 내연녀가 안주인이 된 것도, 또 내연녀가 시댁과 자주 불화가 일고 범죄까지 저질러 임신하지만 않았다면 감옥에 있어야 한다는 것도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평소 서현주가 동네에서 산책을 할 때 이웃들은 그녀를 꺼림칙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그녀와 말을 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아이가 있는 집은 더더욱 서현주를 보면 애를 데리고 피해 도망가며, 그녀가 인신매매범과 비슷한 사람이라고 애한테 보게 되면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라고 재삼 일러주기까지 했다.“네가 형인이와 예진이 사이에 끼어든 다음부터 형인이는 하는 일마다 재수가 없어. 그건 다 네 팔자가 사나워 그런 거야. 넌 진짜 재수 옴 붙은 년이야. 주제에 예진이를 들먹이긴, 네가 그럴 자
방금 서현주가 그녀의 두 외손자를 악독한 말로 저주한 데 대해 김은희도 매우 화가났지만 서현주가 배를 끌어안고 아프다고 소리치자 얼른 다가가서 부축하며 잔뜩 긴장한 채 말했다.“어서 앉아. 아니면 방에 들어가서 누워있던가.”“엄마, 쟤 그냥 꾀병이야. 쩍하면 배 아픈 척하는 게 어디 한두 번이야?”서현주의 배 아프다는 말을 주서인은 아예 믿지도 않았다.“서인아...”김은희는 딸한테 그만하라고 눈치 주며 서현주를 부축해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눕혔다. 주서인한테 맞은 뺨이 벌겋게 퉁퉁 부어오른 걸 보고 그녀는 아들이 집에 돌아와서 딸과 싸울까 봐 걱정됐다.“현주야, 네 얼굴에 찜질하게 내가 가서 얼음 좀 가져올게.”서현주는 얼굴을 만져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은희는 얼음을 가지러 갔다.침대에 누운 서현주는 지금 살고 있는 꼴을 한심하게 생각하며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그러나 어찌 됐든 이건 그녀의 선택이었다.주형인과 하예진, 둘 사이에 끼어든 것도 누가 부추긴 것이 그녀가 원해서 한 짓이니원망할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친정에 갈 수도 없고 시댁에서 맨날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한다. 못된 시누이에 시누이 편만 하는 시부모... 그녀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배 안에 아이라도 있지 않았으면 아마 견디지 못했을 거다.이 아이가 있기에 그나마 감옥에서 잠시 해방되어 편안히 집에서 지낼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이 아이를 꽤 중요시하게 생각하여 주서인으로 인해 유산되는 일이 없게 잘 보호해 왔다.불현듯 서현주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이때 김은희가 얼음주머니를 갖고 들어왔다.“현주야, 어딜 가려고?”그녀가 물어보자 서현주가 대답했다.“화장실에요.”서현주는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고 김은희는 침대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서현주는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주형인한테 문자를 보내 시누이의 ‘악행’을 일러바쳤다.하지만 주형인은 오더를 받아 손님을 공항으로 모셔야 한다며 알겠다고 한 마디 딸랑 보내놓고
김은희는 시름을 놓으며 서현주를 부축해 침대에 눕혔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서현주는 안색이 변하며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는 겁에 질린 눈빛으로 말했다.“어머니, 저 배 아파요.”그 말을 들은 김은희는 즉시 밖에 있는 주서인을 향해 소리쳤다.“서인아, 얼른 119 불러. 현주가 배 아프대.”거실에 있는 주서인은 김은희의 다급한 외침을 듣고도 건들건들 걸어가서 방 문틀에 기대어 손에 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엄마, 쟤 하루에도 백 번, 천 번은 배 아프다는 소리를 해요. 믿지 말아요. 119는 무슨, 거짓 신고하면 의료 자원 낭비인 거 몰라요? 더 필요한 사람들한테 양보하자고요.”“현주가 방금 자빠졌어!”김은희는 매섭게 소리 지르며 주서인을 재촉했다.“빨리 구급차 불러, 빨리!”서현주가 침대에 누워 배를 끌어안고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자 주서인은 그제야 진짜라 믿고 구급차를 불렀다....오후 4시, 따스한 햇볕이 가게 안으로 들이치고 있었다.점심때면 가게 문을 닫았던 예전과는 달리 오늘, 하루 토스트는 하루 내내 문을 활짝 열었다.하예진은 우빈과 함께 가게 안에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두 점원은 이미 퇴근했고, 가끔 손님이 들어오게 되면 하예진은 그들을 맞아 음식을 만들었다.이 시각, 가게에는 손님이 없었다. 우빈은 애니메이션에 한창 정신이 팔려있고 하예진은 그 옆에 앉아 만두를 빚고 있었다.유리문이 열렸다.고개를 돌아보니 아주 한동안 그녀 앞에 나타난 적이 없던 전 시누이, 주서인이었다.“고모!”우빈이 보고 그녀를 불렀다. 주서인은 빙그레 웃으며 가까이 걸어와 우빈을 품에 안았다.“우빈이 애니메이션 보고 있었구나.”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주서인은 안고 있던 아이를 내려놓고 사 온 과일 꾸러미를 하예진한테 건넸다.그걸 받으며 하예진이 말했다.“그냥 오면 되는데 뭘 또 사 들고 오세요.”“조카 보러 오는데 맨손으로 올 수 있나. 먹을 거라도 사 와야지.”주서인은 하예진이 과일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다시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