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진은 윤미라와 나눈 대화에 대해 단 한 마디도 노동명에게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노동명은 결국 윤미라 입에서 그 얘기를 듣게 되었다. 윤미라가 하예진에게 보증금을 빼 이사를 하라고 한 것도 모자라 심지어 하예진에게 주우빈을 데리고 관성을 떠나라고 한 사실을 안 노동명은 화가 치밀어 윤미라와 크게 싸웠다. 윤미라와 노동명 모두 분노에 휩싸였다. 어쨌든 두 모자는 그 누구도 물러서지도, 단념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하예진은 노동명을 힐끔 쳐다보더니 할 일을 마저 하며 말했다. “제 탓 아니에요. 전 그렇게 많은 걸 희생하지 않을 거예요.”노동명이 피식 웃어버렸다. 그는 바로 그런 하예진이 좋았다. 휴대폰을 들고 방으로 들어간 주우빈은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우빈은 하예진의 휴대폰 연락처 속 제일 위에 하예정의 전화번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예정이 곧 전화를 받았다. “언니, 무슨 일이야?”하예정은 하예진이 전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모, 저예요. 우빈이.”앳된 조카의 목소리에 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 “우빈이구나. 우빈이가 혼자 이모에게 전화한 거야?”“네. 제가 엄마 휴대폰을 가지고 몰래 방에 들어와서 이모에게 전화했어요.”“우빈이 이모에게 할 얘기가 뭐예요?”어린아이가 방에 몰래 숨어서 전화하다니. 하예정은 조카가 점점 더 기특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도장에서 사부를 따라 무술을 배우더니 주우빈의 담력이 점점 커졌다. 어린 나이에 똑부러지게 말을 잘해 점점 더 사랑스러워졌다. “이모, 아저씨가 또 왔어요.”“동명 씨 매일 가던 거 아니었어?”하예정이 알기론 노동명은 매일 하예진을 만나러 갔다. 주우빈 대답했다. “매일 오긴 하지만 아빠가 그러는데 아저씨는 우빈이에게서 엄마를 뺏으려고 오는 거래요. 아빠가 아저씨가 오시기만 하면 전화하랬어요.”주우빈의 말을 들으며 하예정은 속으로 주형인을 욕했다. 주형인은 하예진과 이혼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현주를 아내로 맞이했다. 지금 그들 부
“네. 정말 잘해줘요.”아이들의 마음은 너무 순수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누가 진심으로 잘 해주는지, 누가 가짜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가끔, 어린 나이 탓에 말로 그 모든 것을 표현하지 못할 뿐이었다. 노동명이 제일 먼저 마음을 쓴 것은 바로 주우빈, 이 아이였다. 그는 진심으로 주우빈을 좋아했다. 예전엔 주우빈을 안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때의 주우빈은 조금 더 작았던 터라 노동명 얼굴의 흉터를 무서워하며 안기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천천히 주우빈과 가까워져서야 노동명은 그렇게 바라던 대로 주우빈을 안을 수가 있게 되었다. 주우빈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는 주우빈과 하예진 모자를 지켜봤고 그렇게 천천히, 주우빈의 엄마인 하예진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아저씨가 우빈이에게 그렇게 잘해주고, 우빈이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어떻게 우빈이에게서 엄마를 뺏어가겠어. 그러니까 아저씨 믿어. 아저씨는 그저 엄마와 함께 우빈이를 아껴줄 거야. 우빈이에게서 엄마를 뺏어가지 않아.”주우빈은 그제야 마음을 놓으며 말했다. “이모, 그러면 아빠에게 전화 안 할 거예요. 아빠는 자꾸 아저씨가 나쁘대요. 아저씨는 나쁜 놈이래요.”‘아저씨는 분명 좋은 사람인데 아빠는 왜 자꾸 아저씨가 나쁜 놈이라는 거야.’노동명이 자기와 함께 해준 시간은 아빠보다도 더 길었다. 아빠는 늘 현주 이모와 함께 있었고 현주 이모는 자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주형인이 주우빈과 놀아주려 할 때면 서현주는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 주형인은 곧 주우빈을 그대로 두고 황급히 서현주를 찾으러 갔었다. 하지만 노동명은 달랐다. 노동명은 놀아준다고 한 약속은 꼭 지켰다. 뭔가를 사주겠다는 약속은 어긴 적이 없었다. 주형인과 달리 말이다. “우빈아, 이젠 점점 크니까 천천히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는 법을 배워야 해. 아빠는 비록 우빈이 아빠지만, 아빠가 한 말씀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아빠의 평가가 늘 정확한 건 아니야. 아빠는 사심에 가득 차 아저씨를 평가하실 거야.”
주우빈이 노동명을 방패로 삼았다. 신뢰 가득한 그 행동에 노동명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는 입이 찢어지도록 웃어 하예진을 어이없게 했다. “아저씨, 엄마가 저 노려봐요.”주우빈은 심지어 고자질을 하기도 했다. 노동명은 웃으며 주우빈을 안아 들고 물었다. “원인을 찾아봐. 엄마가 왜 노려보는 걸까? 아저씨가 이렇게 떡 하니 여기 서 있는데, 엄마가 아저씨는 안 노려보고 우빈이처럼 작은 아이를 노려보는 원인이 뭘까?”하예진이 다가왔다. 주우빈은 하예진을 보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제가 이모에게 전화하고 휴대폰을 놀고 있었는데, 엄마가 우빈이 휴대폰을 뺏어갔어요.”“그건 네 휴대폰이 아니야. 엄마 휴대폰인데.”주우빈이 큰 눈을 반짝이며 감히 하예진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 휴대폰은 확실히 하예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엄마는 왜 휴대폰 놀아도 되고 우빈이는 안 돼요라고 물으니까 엄마가 째려봤어요.”말을 하면 할수록 주우빈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다. 이 꼬마도 휴대폰을 놀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노동명이 다정하게 얘기했다. “우빈이는 아직 어려서 자꾸 휴대폰을 놀면 시력이 낮아져 근시가 되거든. 엄마도 우빈이 생각해서 그러시는 거야.”“그리고 엄마도 평소엔 휴대폰 잘 안 하시잖아. 엄마는 다른 사람과 연락하려고 휴대폰을 하는 거야.”주우빈이 말이 없었다. 한참 후에야 주우빈이 말했다. “아저씨, 그럼 전 대체 언제부터 휴대폰 놀 수 있어요?”“가끔 10분 씩 노는 건 괜찮아. 물론 안 놀면 제일 좋고. 책을 읽어도 되고 레고를 해도 되잖아. 아저씨가 사준 레고는 이미 다 만들었지? 다음에 아저씨가 올 때 몇 세트 더 사줄게.”주우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아이는 버둥거리며 노동명의 품에서 벗어났다. 주우빈은 테이블을 피해 하예진에게로 돌아가 그녀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잘생긴 얼굴을 들고 하예진에게 말했다. “엄마, 우빈이가 잘못했어요. 앞으로 몰래 휴대폰 안 놀게요.”하예진이 몸을 숙여 아
"어디냐니까. 엄마 지금 네 회사, 네 사무실에 있어. 근무시간에 넌 사무실에도 없고 회사에도 없고 어디로 간 거야? 미팅하러 나갔다고 하지 마. 네 비서가 아직 여기 있으니까.”"너 또 하예진 씨를 찾으러 갔지? 엄마가 몇 번이나 말했어, 하예진 씨는 너랑 안 어울린다고. 하예진 씨는 이혼녀야. 게다가 세 살짜리 아이도 있어. 그것도 남자아이가. 넌 기꺼이 다른 사람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런 호구 같은 할머니가 되고 싶지 않아!”"넌 다른 사람 아들을 키우면서 집, 차를 사주고 결혼도 시켜야 해. 애 아빠는 아무 양육비도 지불하지 않으면서, 널 호구라고 비웃을 거야. 노동명, 관성에 예쁜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나 골라도 하예진보다 낫지 않아?”윤미라는 정말 아들 때문에 화가 나 죽을 것 같았다.아무리 말해도 노동명은 전혀 듣지 않았다.윤미라의 말도 갈수록 험해졌다.노동명이 낮게 깔린 음성으로 말했다. "제 일이에요. 엄마가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제 인생 제가 알아서 살게요. 전 형들과 달라요.”말을 마친 그는 윤미라의 전화를 바로 끊어 버렸다.휴대폰 저편의 윤미라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윤미라는 노동명의 사무실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비서는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있었다.윤미라는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소파로 돌아와 자기 가방을 들어 올리더니 비서에게 말했다. "하던 일 마저 하세요. 전 가 볼게요.”비서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아래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윤미라는 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괜찮아요.”비서는 그럼에도 윤미라를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다. 윤미라가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후에야 비서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고 서둘러 노동명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대표님께 가셨을 겁니다.”화가 잔뜩 난 윤미라의 모습은 분명 이대로 포기하지 않은 것 같았다. 윤미라가 노동명을 찾으러 하예진에게 갔을 것이라고 비서가 감히 확신할 수 있었다
주우빈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엄마, 우리 왜 이사해요?”아이는 이미 엄마와 함께 한 달 동안 이곳에서 지내며 적응을 마친 상태였다. 하예진이 거짓말을 내뱉었다. “우빈이 9월이면 곧 유치원도 가야 하잖아. 여긴 우빈이가 다니던 유치원과 좀 멀어서 유치원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할 거야. 그러면 엄마도 우빈이를 데려다 줄수 있지.”3살 된 아이에게 의견은 없었다. 하예진의 말에 주우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예진은 중매인에게 전화했고 자신의 요구를 부동산 직원 측에 말하며 집을 알아봐달라고 했다. 그녀는 전세로 이사 갈 생각이었다. 집을 사는 일은 다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천천히 보고 충분히 비교한 본 뒤 사도 늦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하는 일은 바로 주우빈을 초등학교에 보내는 것이었다. 주우빈이 지금 다니고 있는 유치원은 관성에서 제일 좋은 유치원이었다. 1년의 학비만 해도 몇천만 원이었다. 그녀는 이혼할 때 주형인에게서 받은 위자료가 있었다. 그중에 조금만 꺼내 하루 토스트를 열었다. 비록 토스트 가게의 수입이 좋아 돈을 벌고는 있지만 차도 샀었으니 차에 들어가는 비용을 빼고 나면 하루 토스트에서 번 돈은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 달만 더 고생하면 수익을 낼 수 있었다. 하예진은 아들이 갈 초등학교가 정해지면 그때 다시 집을 사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려고 했다. 편리를 생각하면 초등학교와 중학교 사이에 있는 집을 사는 것이 좋았다.하예진이 부동산 중개인에게 집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는 동안, 막 아파트를 빠져나온 노동명은 차에서 내려 이쪽으로 걸어오는 윤미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시간 계산을 정확하게 해 윤미라가 하예진 앞에 나타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명아.”윤미라가 걸어오며 손을 뻗어 노동명의 팔을 잡아당겼다. “엄마랑 같이 가자.”“어딜요?”윤미라는 아들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엄마가 오는 길에 방 씨 이모와 얘기를
“엄마!”“됐어! 엄마가 여기서 말하는데, 나와 모자 관계부터 끊고 예진이에게 구애하건 찾아가건 마음대로 해! 더는 상관하지 않을 테니.”윤미라는 말을 남기고는 돌아서서 씩씩거리며 떠나갔다.노동명도 어머니의 태도에 단단히 화가 났다.그는 어머니가 하예진을 싫어하지 않으면서 왜 절대 허락하지 않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직 하예진에게 프러포즈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머니까지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니 발목이 잡히는 것만 같았다.원래 그의 구애를 받아줄 생각이 없었던 하예진이 어머니의 태도에 겁을 먹기라도 할까 봐 걱정도 들었다.노동명은 고개를 들고 하예진의 셋방 쪽을 한참 바라보더니 결국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자신의 차로 향했다. 그리고 차에 오른 후 전태윤과 소정남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한잔하러 나오라고 말했다.그는 두 친구가 대답하든 말든 상관 않고 전화를 끊고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소씨 일가.소정남은 통화가 끊긴 휴대폰을 한참 쳐다보다가 욕설을 퍼부었다.“나 아직 신혼 휴가 중이란 말이야. 이때 나오라고 부르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시간을 들여다보니 저녁이 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노동명이 왜 갑자기 술 마시러 나오라고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소정남은 한참 생각하다 결국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동명이가 너한테도 술 마시러 나오라고 했지? 도대체 무슨 자극을 받고 이러는지... 글쎄 나한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거 있지. 나 아직 신혼 휴가란 말이야... 괜히 귀찮게 구네. 태윤아, 너 시간 되면 같이 술 한잔해 줘, 난 우리 마누라 픽업하러 관성중학교에 가봐야겠어.”소정남의 말이 끝나자 전태윤은 바로 말을 이었다.“응, 나한테도 전화 왔었어. 그리고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었고. 무슨 자극을 받았는지야 묻지 않아도 훤해. 분명 우리 처형에게 구애하다가 어머니에게 저지당한 거야. 그래서 둘이 또 한 번 말다툼했을 거고.”고집이 센 윤미라는 절대 허락할 일이 없
소정남의 말에 전태윤 역시 침묵에 잠겼다.노동명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인 만큼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노동명은 아무 일에도 집착이 없는 듯 거칠고, 털털해 보이지만 사실 감정에 대해서는 집착이 강한 편이다.하예진이 평생 결혼하려 하지 않는다면 노동명도 그녀를 기다리며 평생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또는 그녀가 만약 다른 사람과 결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노동명은 여전히 평생 솔로로 지낼 것이다.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하지 못하는 바에는 평생 솔로로 사는 편이 나을 거로 생각할 노동명이니까.“알았어, 네가 정 바쁘다면야 나라도 가서 한잔할게.”전태윤은 소정남이 아직 결혼 휴가 중인 데다 심효진도 임신 중인 상황을 고려하여 배려심 있게 한마디 했다.“됐어, 그냥 같이 가. 내 와이프는 온종일 서점에만 있어 괜찮아. 그리고 서점에도 따로 경호원을 배치했으니 나도 같이 가보지 뭐.”전태윤은 응하고 대답하고는 통화를 끝냈다.통화를 마친 전태윤은 한창 소파에 앉아 잡지를 보고 있는 와이프를 쳐다봤다.하예정은 두 사람의 통화에 따로 귀를 기울이지 않아 단지 새 나오는 몇 마디의 말을 들었을 뿐이다. 그녀는 소정남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일 거로 짐작이 갔다.전태윤은 조용히 아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골똘히 잡지를 보고 있는 아내로부터는 평온한 아름다움을 느꼈다.아내는 타고난 미모를 지녔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사랑을 받으면서 갈수록 예뻐지고 있고 기질도 좋아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맞아, 이게 다 내 공로지!’전태윤은 일어나 테이블을 돌아 아내를 향해 걸어갔다.기척을 느낀 하예정은 고개를 들어 남편을 바라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일 다 끝났어요?”하예정은 저녁 행사 준비를 위해 남편과 함께 집에 돌아가려고 회사로 찾아왔다. 막 도착했을 때 남편은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어 그녀는 사무실에서 좀 기다리기로 했다.“아직 좀 남았어.”전태윤은 아내 가까이에 다가가 선 자세로 아내를 내려다보았다.“혹시 무슨 일 있어요?”오래된 부
노동명은 보통 아침 8시 전에 하예진의 가게에 식사하러 가는데 만약 하예진이 8시 이후에 가게에 도착하면 노동명과의 만남을 피할 수 있다.하예진은 메시지로 동생인 하예정에게 도움을 청했다.언니가 보낸 메시지를 보며 하예정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언니는 결국 숨어 살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만약 그녀가 전태윤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전씨 일가가 자리 잡고 있는 관성에 남아있을 필요도 없고, 언니도 정말 우빈이를 데리고 윤미라의 바람대로 노동명 멀리 관성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노동명이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고 해도 언니를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하예정은 언니가 내리는 모든 결정을 존중하고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언니에게 답장했다.“처형이 보낸 메시지야?”전태윤은 짐작이 갔다.이에 하예정은 응하고 대답했다.“처형이 뭐라고 했길래 표정이 이렇게 심각해?”“언니가 임시로 레아닐 아파트 단지에 새 전셋집을 구해서 이사할 생각이래요. 새 단지는 고급 단지라 보안 수준이 높아서 출입 카드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집주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들여보내지 않는다네요. 이렇게 이사한다고 해서 동명 씨를 완전히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집에까지는 찾아오지 못하게 막고 싶은가 봐요.”하예정의 말에 전태윤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그 표정 뭐에요? 혹시 그 단지... 노씨 그룹에서 개발한 거예요?”노씨 그룹은 부동산 쪽의 업무 범위가 매우 넓다.“바로 동명이네 회사에서 개발한 아파트야. 입주율도 꽤 높고. 바로 옆에 있는 레아닐 팰리스랑 함께 개발했는데 동명이는 팰리스 구역에 큰 별장을 하나 남겨놓았거든. 아파트 단지 내의 집주인들은 별장 구역에 들어갈 수 없지만 별장에 사는 사람은 아파트 단지에 출입할 수 있어. 뭐, 보안 수준이 높은 건 사실이야. 동명이가 초빙한 보안팀 팀원들은 모두 엄격한 훈련을 거쳤으니까.”“우리 언니... 이러다 스스로 덫에 걸려드는 건 아니겠죠?”‘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지? 하긴 부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