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은 할 말을 잃었다.확실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주변의 젊은 부부들은 하나같이 신혼이라 깨가 쏟아지고 길을 걸어도 손깍지를 꼭 잡고 걸었다. 게다가 아이가 있는 부부들은 아이를 주제로 이야기할 거리는 훨씬 더 많았다.그들과 달리, 쏟을 깨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도 없으니, 대화를 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말문이 턱 막힌 듯한 전태윤을 보자 하예정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전태윤도 잡아당겼다. "자, 이만 돌아가요. 괜히 제가 언제든지 당신 덮치려 하는 것처럼 불편하게 있지 말고요.""예정아, 너 여자애야!""여자애가 뭐 어때서요? 그런 말 한다고 문제 생기는 것도 아니고."하예정은 전태윤을 끌며 걸음을 옮겼다. 다만 괜히 돌아가서 손만 수백 번 씻을까 봐, 손은 건드리지 않은 채 옷자락만 잡고 걸었다."며칠 전의 실시간 검색어 봤어요? 그 전씨 가문 도련님과 성씨 가문 아가씨 이야기 말이에요. 성씨 가문 아가씨가 그 도련님을 좋아해서 공개 고백하고 공개적으로 구애한 거예요.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열심히 구애를 하고, 여자도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구애를 하는 건 다 진심 어린 사랑을 찾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요.""전 성씨 가문 아가씨가 좀 마음에 들어요, 간접적으로 저에게 도움도 됐고요. 비록 그분은 저를 모르지만 전 그녀가 사랑을 쟁취하고 전씨 가문 도련님에게 시집갈 수 있기를 묵묵히 응원하고 있어요. 지금 그 도련님에게 구애하느라 고생하고 있으니 나중에 구애에 성공하게 되면 그때는 반대로 그 도련님이 그 아가씨를 아주 예뻐해 줬으면 해요."성소현이 간접적으로 "불효막심한 손녀" 검색어를 눌러버려, 실시간 검색어가 하예정 자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줄여 준 탓에 하예정은 성소현에게 조금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게다가 성소현의 과감히 사랑하고 과감히 내려놓는 성격에 하예정은 이미 그녀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자기 아내가 하는 말을 들은 전태윤은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하예정은 조금 실망하며 대답했다. "…당신도 회사에서 작지만 그래도 임원인데, 대표님과 만날 기회가 이렇게 적다니. 당신 대표님도 참… 네, 고고하시네요. 신비롭기도 하고."인터넷에는 전씨 가문 도련님의 사진은 아예 없었다.전씨 가문은 어디 출입할 때면 늘 경호원이 따라붙었다. 지난번 연회에서도 경호원이 너무 많은 데다 또 덩치가 건장하고 키도 큰 탓에 그녀와 친구는 까치발을 들고 살폈지만 그래도 전씨 가문 도련님의 얼굴은 보지 못했었다.그러다 전씨 가문에서 출근하는 전태윤이, 사무직임에도 전씨 가문 도련님을 만날 기회가 아주 적다고 하자 하예정은 마음이 편해졌다.전태윤은 그 말을 받아치지 않았다.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은 원래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했다.전씨 가문 도련님을 주제로 부부 둘은 이야기를 나누다 그들이 사는 B동으로 돌아왔다.전태윤의 경호원은 바로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비록 도련님과 사모님의 곁을 바싹 따르지는 않았지만, 두 부부가 어디로 가면 그들도 그 뒤를 따르며 두 부부가 시야 밖으로 벗어나지 않게 했다.물론, 하예정은 내내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그러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하예정은 멀지 않은 곳에서 어슬렁거리는 경호원 한 명을 발견했다. 그러다 어쩐지 눈에 익은 것 같은 기분에 우뚝 멈춰서서는 전태윤에게 말했다. "저 남자 낯이 좀 익어요."전태윤은 깜짝 놀랐다.그 경호원은 바로 강일구였다.도련님과 사모님이 다 자신을 쳐다보자 마찬가지로 깜짝 놀란 강일구는 이내 아무 일도 없는 척 다가왔다."당신, 그때 그 대리기사죠?"하예정은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눈에 익은 남자는 바로 전태윤이 취했을 때 전태윤을 집까지 데리고 온 대리기사였다.강일구가 대답했다. "저 맞습니다."참 눈썰미도 좋은 사모님이었다."당신도 여기 살아요?""네, 하지만 전 월세예요. 평소에는 우버를 하는데 가끔은 대리운전도 해요."하예정은 알겠다는
아내가 있는 기분은,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전태윤은 도시락을 챙겨 외출했다.회사로 가는 길, 그는 차 안에서 아내가 그를 위해 준비한 사랑의 도시락을 맛봤다.얼마나 맛있는지 입맛에 딱 맞았다.그 모습을 본 운전기사와 경호원은 사모님이 준비한 아침은 간단하지 그지없는데 도련님같이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 저렇게까지 맛있게 먹고 있으니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모님의 요리 실력이 아주 뛰어난 듯싶었다.전태윤이 떠난 뒤, 하예정은 평소처럼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언니에게 별일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도 외출했다.그녀가 출근했을 때는 이미 출근 시간대라 길은 막히기 시작했다. 그녀가 반쯤 갔을 때 길은 점점 더 심하게 막히고 있었다.급히 출근을 하려던 사람들은 조급함에 욕설을 퍼부으려 했다.성소현도 욕설을 퍼붓고 싶었다.그녀는 오빠와 새언니가 아침을 먹으면서까지 애정행각을 벌일 때 그 틈을 타 몰래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참, 몰래 전태윤에게 줄 아침도 잊지 않고 챙겼다. 그것은 집안의 셰프에게 특별히 준비해달라고 한 것이었다. 그런 뒤 집 안의 정원에서 커다란 꽃 한 묶음을 자른 뒤 잘 포장했다.꽃다발과 사랑이 담긴 도시락을 든 성소현은 집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전 씨 그룹으로 향했다. 그녀는 전태윤이 회사에 도착하기 전에, 구식인 방법이지만 그래도 전태윤의 차를 가로막고 자신이 정성껏 준비한 사랑의 도시락을 건네줄 생각이었다.비록 새언니도 전태윤을 포기하라고 말했지만, 성소현은 이렇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말에 따르면, 전태윤을 잊으려면 진작에 잊었을 텐데, 잊지 못하니 한 번 시도하려 한다는 것이었다.3, 4년쯤 쫓아다니지 않으면 그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그 시각, 앞쪽에서 차가 엄청나게 막히고 있었다. 시간이 점점 지나는 것을 본 성소현은 마음이 조급해졌다.이대로 더 있다가는 그녀가 전 씨 그룹에 도착했을 때쯤 전태윤은 이미 회사 안에 들어갔을 테니 막긴 무얼 막는단 말인가?안돼, 이대로 계속 기다릴 수는 없
하예정은 스쿠터를 타고 있는 탓에 꽉 막힌 길은 그녀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그렇게 십몇 분 만에 두 사람은 전 씨 그룹에 도착했다.하예정은 스쿠터를 세운 뒤 고개를 돌려 성소현에게 말했다. "도착했어요."성소현은 헬멧을 하예정에게 돌려주며 감사 인사를 했다."큰일도 아닌데요, 인사는 됐어요."상소현은 하예정을 보며 물었다. "혹시 이름 알려줄 수 있어요? 어쩐지 계속 낯이 익네요. 저희 혹시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아요?""저 하예정이라고 해요. 전 예쁜 사람을 몹시 좋아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 당신을 본 적이 없어요."미인은 한 번만 봐도 기억에 남기 마련인데, 하예정은 눈앞의 미인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없었다."하예정이라고요? 아, 생각났어요. 얼마 전 실시간 검색어에 효도하지 않는 손녀에 대한 얘기가 있었는데, 비난받고 있는 사람 성도 하 씨였어요. 그때 사진도 같이 올라왔었는데, 보니까 사진 속에 있는 여자애랑 되게 닮았네요. 혹시 당신이에요?"상소현은 자기 화제에 대한 주의력을 나눠간 "불효막심한 손녀"에 대해 인상이 아주 깊은 탓에 하씨 집안 사람들이 올린 하예정 자매의 옛날 사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당시 그녀는 그 검색어가 네티즌의 주의를 끈 것에 욕했을 뿐만 아니라 하예정 자매가 은혜도 모른다고 욕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반전이 올라오면서 그녀는 하씨 집안 사람도 한바탕 욕했었다.성소현의 어머니는 스물이 다 넘어놓고 조금의 인내심과 분석 능력도 없이 한쪽 사람의 말만 듣고 따라서 하예정 자매를 욕한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었다.왜냐하면 성소현이 집에서 하예정 자매에 대해 하도 욕을 하니 그녀의 어머니는 호기심이 동해 그 검색어를 찾아보려 했지만, 반전이 올라온 뒤 하씨 집안 사람들은 네티즌의 비난에 못 이겨 게시물을 아주 깨끗하게 삭제했었다.그로 보건대 하씨 집안에도 어느 정도 인맥은 있는 듯했다.그리고, 하씨 집안 둘째의 장자는 그들 성씨 그룹 휘하의 계열사에서 고위 임원직을 맡고 있었는데 사건
성소현은 하예정에게 인심을 빚지고 싶지는 않았다.어쩐지 하예정과는 처음 만났지만 오랜 지인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 성소현은 하예정에게 명함을 주었다.하예정도 그 외제차를 발견하고는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먼저 일 보세요. 저 성소현 씨가 바라는 것이 이뤄지길 응원할게요.""고마워요."꽃다발을 안고 도시락을 든 성소현은 외제차 쪽이 아니라 회사 대문으로 달려가더니 대문 중간에 떡 버티고 섰다.그 모습을 본 하예정은 입을 떡 벌렸다.성소현 씨는 정말 용감했다.비록 전태윤은 오늘 아침 일찍 나섰지만 별장으로 돌아가 물건을 챙겨야 했던 탓에, 별장에서 다시 나와 한동안 달리자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길이 막힐 때는 차가 어떤 차든, 어떤 신분이든 다 그저 길에 막힌 채 어쩔 도리가 없었다.그리하여 전태윤은 이제야 회사에 도착하게 되었다.조수석에 앉아있는 경호원은 마침 강일구였다. 눈썰미가 좋은 그는 하예정을 발견하자마자 고개를 돌려 전태윤에게 보고했다. "도련님, 사모님께서 성소현 씨와 같이 계십니다."그 말에 전태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두 사람이 왜 함께 있는 걸까?아무리 봐도 접점이 없는 사람들이었다.그는 앞쪽을 쳐다봤다. 성소현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하예정은 알아볼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산 시간이 있는 데다, 입까지 맞췄는데 못 알아본다면 스스로 두 눈을 찌르는 것이 맞았다."신경 쓰지 마."전태윤은 차갑게 한마디 한 뒤 몸을 뒤로 기댔다.거리가 점점 더 멀어졌다.강일구는 사모님이 자신을 알아볼까 일부러 고개까지 돌려 하예정이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다른 곳을 쳐다봤다.차량 대오는 하예정의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전씨 가문 도련님의 기세를 본 하예정은 또 한 번 속으로 감탄했다. 다만 저 롤스로이스는 어쩐지 눈에 익었다. 왠지 단지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것 같았다.그러다 전씨 가문 도련님의 신분을 떠올린 하예정은 자연스레 저 차가 단지 안에 있는 그 차는 아니라고 부인했다.전씨 가문 도
성소현이 대문을 막고 있는 탓에 운전기사는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도련님, 성소현 씨를 끌어낼까요?"운전기사는 고개를 돌려 전태윤을 보며 물었다.잠시 침묵하던 전태윤은 이내 차 창문을 내렸다.전태윤이 창문을 내린 것을 본 성소현은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그녀는 곧바로 꽃다발과 도시락을 든 채 다가갔다."태윤 씨."성소현은 드디어 매일 밤 그렇게 그리던 남자와 만날 수 있었다. 비록 그녀는 매일 같이 이곳으로 와 전태윤에게 고백했지만 사실, 성소현은 이미 아주 오랫동안 전태윤을 만난 적이 없었다.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전태윤은, 여전히 멋있었고, 여전히 그녀 마음속의 가장 잘생긴 사람이었다.전태윤의 꽉 닫힌 입술에 시선이 닿자, 성소현은 다가가 입을 맞추고 싶었다.저 입술은 어떤 느낌일까? 말캉할까?성소현은 마치 사냥감을 보듯 전태윤을 노려봐, 전태윤은 미간을 찌푸렸다."성소현 씨.""태윤 씨, 그냥 소현이라고 불러줘요."성소현은 환하게 미소 지으며 우선 도시락부터 창문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특별히 아침 전해주러 왔어요. 아직 따뜻할 때 드세요. 그리고 이 꽃도, 선물이에요."전태윤은 도시락을 받지 않았다. 꽃은 더더욱 거절했다. 그는 남자라, 꽃은 좋아하지 않았다."차가 이렇게 막히는데 어떻게 여기로 날아온 겁니까?"전태윤은 성소현과 하예정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궁금했다.전태윤의 질문을 들은 성소현은 조금의 숨김도 없이 웃으며 말했다. "전 똑똑하니까요. 차를 상가 앞에 세워두고 경호원에게 가져가라고 한 뒤, 전 스쿠터를 히치하이크했죠. 그래서 아무런 막힘 없이 온 거예요."두 사람이 어떻게 안면을 텄나 했더니, 이런 일이 있었군."태윤 씨, 그러고 보면 정말 신기해요. 이렇게 딱 손을 들었는데, 무려 실시간 검색어의 인물을 세웠지 뭐예요. 그 '불효막심한 손녀' 이야기의 주인공 말이에요. 하예정이라고, 사람이 되게 괜찮아요. 처음 봤는데도 오랜 친구 같은 기분이었어요."전태윤은 속으로 불만을 터트렸다.
"차에서 이미 먹었어.""…" 소정남은 할 말을 잃었다."참, 나 방금 전에 엄청난 걸 봤는데, 알려줄까?"소정남을 흘겨본 전태윤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잘생긴 얼굴은 굳어 있었고 입술은 한 일자로 꾹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소정남은 그런 전태윤의 모습이 싫었지만, 그는 하필 수다쟁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나 아침 일찍부터 회사에 도착했단 말이야. 그런데 때마침 형수님이 성소현 씨를 데려다준 걸 보고는 어떻게 된 건지 구경했지.""네 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사모님과 성소현 씨 엄청 신나서 대화하고 있었어. 대표님, 아내와 추종자가 서로를 엄청 마음에 들어 하다 못해 친구까지 될 기세인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전태윤은 그런 소정남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수다쟁이 수석 비서를 내버려 둔 채 홀로 엘리베이터에 탔다.하지만 소정남은 화를 내기는커녕 헤헤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속으로 절대로 엄청난 볼거리가 되겠다고 생각했다.언젠가 대표의 신분이 들통났을 때, 대표님의 부인이 어떻게 나올지 소정남은 너무 궁금했다.성소현이 또다시 찾아와 꽃을 주고 아침을 주는 행동에 전태윤은 다시 한번 성기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된 뒤, 전태윤은 차갑게 말했다. "성 대표님, 동생 관리에 계속 소홀하시면 앞으로 정말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그의 인내심에는 한계라는 것이 있었다.성기현은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전 대표님, 소현이도 선을 넘는 짓은 하지 않았잖습니까? 소현이는 그저 전 대표를 좋아하고, 구애를 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이미 여러 번 만류했었고요. 그렇다고 애 다리를 부러트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성기현은 정말로 동생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사람을 붙여 감시를 시켜도 그의 동생은 어떻게든 도망을 쳤다."전 대표 나랑 비슷한 나이지 않아요? 전 벌써 결혼한 지도 몇 년째인데 전 대표는 이제 처음으로 추종자가 생겼잖아요. 내 동생이 첫 추종자인 것을 봐서 좀… 많이 참아줘요.
"그럼 됐어, 모두 다 일자리를 잃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엄청 욕먹고 사이버 폭력의 맛을 느껴봐야해. r그들은 너무 비인간적이야."성소현은 간사하고 횡포했으나 양심은 있었다.그리고 그는 하예정이에게 호감적이여서 돕고 하씨네 집사람들을 보복하는것을 바란다.그가 하예정에게 신세를 갚는다고 생각했다.어쨌든 오늘 하예정이 그를 전씨그룹에 대려다주어서 전태윤을 만날수 있었고 전태윤이 그와 말을 한것이다."오빠, 나 집에가서 엄마를 모실게 일봐."성소현은 말을하고 나서 전화를 끊어 버렸다.큰 오빠의 귀한 시간을 차지하지 않았다.성씨 본가는 전씨 본가와 멀지 않다. 하지만 가는로선이 다르다.만약에 같은길을 간다면 성소현은 길에서 전태윤의 차를 막을수 있다. 아, 전태윤은 본가에 별로 안 와서 길을 막고싶어도 쉽지가 않다.성씨 집안은 관성의 두번째로 큰 호족으로써 본가의 인테리어도 엄청 좋고 아주 넓다. 전씨네는 장원스타일의 인테리어였고 성씨도 전씨를 따라서 장원스타일로 건설하였다.지금, 화려한 로비에 한 중년부인이 소파에 앉아있다. 그의 손에는 사진 한장을 들고있는데 시선은 사진을 보고 오랫동안 때지 못하였다.성소현이 들어와 이 모습을 보고 다가가서 어머니의 손에 들고있는 사진을 빼앗아가고 말을 했다. "어머니, 맨날 사진만 보지말아요, 작은 이모가 아직 살아있다면 꼭 찾을수 있을거에요. 마음을 편이 놓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우울해 하지마세요."물컵을 들고 오던 성문철은 역시 딸의 말을 거들었다. "그래요, 여보. 소현이 말에도 일리가 있어요.사진만 자꾸 보지말아요. 우리가 이미 많은 인력을 투자하여 찾고 있으니 곧 좋은소식이 있을거에요."그는 물컵을 아내에게 건넸다.두 부부가 젊었을때 사업을 하느라 바빠서 별로 같이 보낸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은퇴한후 아내곁에 함께있고 남은 인생을 아내와 함께 즐기고 싶었다.그런데 아내가 요즘에 그는 보지도 못했던 처제때문에 늘 우울해하고 있다. 성문철은 아내가 이러고 있는 모습을보고 마음이 아팠지만
“우리 가게에는 유아용 교재가 없어서요. 다른 문구 방에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하예정의 서점은 중학교 앞에 위치해 주 고객층이 중학생이었고 유치원용 책은 들여놓지 않았다.“아, 그렇군요. 그럼 잠시 후 다른 문구 방에 가봐야겠어요.”젊은 여자는 책값을 지불하고 책을 들고 나가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가게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하예정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아마도 전태윤과 함께 행사에 참석했을 때 스치듯 본 적이 있을지 몰랐지만 깊이 알지는 못해 기억나지 않는 것이라 여겼다.‘잠시 후 태윤 씨한테 물어봐야겠다. 어떤 가문일까? 장남은 결혼했고 작은아들은 중학생이고 막내딸은 유치원이라니...’젊은 여자는 스물한두 살쯤으로 보였고 남편도 젊을 가능성이 컸다. 하예정은 임신 전 상류층 모임에 자주 참석했지만 어느 집안 자제가 그렇게 일찍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그녀가 아는 젊은 여자들은 대체로 그보다 나이가 많았기에 방금 본 여자가 속한 가문은 아직 명문으로 자리 잡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여자의 차는 근처에 주차된 흰색 BMW7 시리즈였다. 차 앞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가 가까이 다가가자 두 남자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그녀의 경호원과 운전기사인 듯했다.“출발하죠.”여자는 차에 올라 운전사에게 지시했다. 차가 멀리 떠난 후, 그녀는 가게 쪽을 돌아보았다. 하예정이 더 이상 자신을 보지 못할 거리라고 판단한 순간, 여자는 얼굴을 만지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그 젊은 여자는 바로 여씨 가문의 둘째 딸, 여운별이었다. 그녀는 현재 용태호의 스폰녀로 지내고 있었지만 사교계에서는 용씨 가문 사모님을 사칭하며 활동 중이었다. 이는 용태호가 모든 의심을 피하기 위해 마련한 조치였다.여운별은 용태호가 준 인피가면 덕분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녀의 임무는 하예정에게 접근해 친구가 된 후 용정이라는
“저도 마음이 놓이네요. 엄마, 윤하가 아직 소 대표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은 거 맞죠? 제가 대신 받아주고 싶네요. 소씨네 식구들 성격이 다들 시원시원해서 우리 윤하한테 잘 맞는 거 같아요. 윤하도 덜렁덜렁 거리는게 저 집안과 바이브가 맞아요.”윤하 어머니는 혁진에게 말했다. “네 동생 일생의 큰 일이야. 우리가 잘 체크해주고 나머지는 윤하한테 맡겨야지. 지훈한테 시집가는 사람도 윤하도 한평생 같이 살 사람도 윤하 자신이니까 걔가 좋아야 되지. 그리고 윤하 다음은 너랑 혁주야. 너희 둘도 이제 슬슬 준비해야지.”“엄마, 저 쌀 씻으러 갈게요.” 윤하 어머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결혼 잔소리를 했고 혁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그런 혁진을 보고 어머니는 몇 마디 나무랐다.연성의 겨울은 눈 내린 광경을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관성은 아직도 최고 기온이 25도나 되는 여름이어서 길거리에는 반팔티를 입고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하예정은 서점에서 남편이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다. 두 사람은 관성 호텔에 가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다.그녀는 이제 더 이상 공예품을 만들지 않았다. 온라인 쇼핑몰도 전에 그녀를 도왔던 아기엄마한테 양도했다.지금은 서점에서 일하고 있고 학생들이 수업이 끝나면 조금 바빠질 뿐, 다른 시간에는 아주 한가해서 옆 가게 탐방도 자주 하곤 했다. 비록 경호원들이 뒤따르지는 않지만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길까 항상 주시하고 있었다.심효진은 소설을 좋아해서 그녀가 서점을 지키고 있을 때는 하루 종일 앉아 소설을 읽곤 했다.하예정은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고전 작품 한 권을 골라 읽었지만 자꾸만 하품이 나와 결국 읽기를 포기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를 지나 책장 앞에 다가가 먼지털이로 책우의 먼지를 털기 시작했다. 사실 먼지가 별로 없었지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할 일을 찾아야 했다.그때, 밖으로부터 또깍또깍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처음 보는 젊은 부인이 서점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에르메스 백을 들고 있었고
혁진은 거실에서 지훈이 부모님이랑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지훈이 아버지는 성격이 아주 호탕한 분이셨다. 혁진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두 사람은 말이 잘 통했다.지훈이 마침 아침밥을 들고나오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을 기세였다.지훈이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몇 번이나 눈치를 주었다.이 양반이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까먹은 거 아니야?여기는 윤하네 집, 예비 사돈댁이라고. 혁진은 예비 며느리 친오빠고, 두 사람이 형제를 맺으면 나중에 아들더러 어떻게 처신하라는 거야. 아주 그냥 엉망진창이네.“아버지, 어머니, 윤하 씨 어머님께서 아침을 준비해 주셨어요. 따뜻할 때 드세요. 저희는 이미 먹었어요.”지훈은 부모님을 주방으로 불렀다. “점심은 여기서 먹어요. 조금 있다가 윤하 씨랑 제가 장 봐 올게요.”지훈이 어머님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좋아, 나도 나가서 눈이 내리는 걸 보고 싶어. 지훈이 아버지, 당신도 같이 가요. 짐도 들어줄 겸.”남편의 의견을 물어보는 듯했지만 사실상 답정너였다. 집에 두고 갔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장 보고 돌아올 땐 이미 혁진이랑 형제를 맺었을지도 모른다.“그래요.”지훈이 아버지는 흔쾌히 대답했다.윤하 어머니는 주방에서 나오며 민망한 듯 말했다. “두 분께서 오시는 줄을 몰라서 제대로 준비 못 했어요. 점심에는 뭘 드시고 싶으세요? 말만 하세요, 제가 다 할 수 있어요. 가족이라 생각하고 편히 말씀하세요. 내외할 것 없어요.”지훈이 어머니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 저희 안 그래요. 이제는 가족이나 마찬가진데요. 저희는 뭐든 잘 먹어요. 아무거나 다 돼요.”“사돈, 윤하는 정말 훌륭한 아가씨예요. 저희 지훈이랑은 비교가 안 돼요. 지훈이 때문에 저희 두 사람 속 많이 태웠어요.”지훈이 어머니는 실수도 사돈이라고 불렀지만 윤하 어머니는 개의치 않았다. “과찬이세요. 저희 윤하도 속 썩일 때가 많았어요. 지훈이야말로 성숙하고 성격도 온화하고 너그럽고 유망한 청년이죠. 저희 윤하보다 훨씬 나은 걸
원래부터 지훈을 마음에 들어 하던 윤하 어머니는 지훈의 특별한 사정을 알고 나서 더욱 자신의 사윗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윤하와 결혼을 하게 되면 지훈은 그녀를 더욱 소중히 아낄 것이 분명했기에 윤하 어머니는 딸이 멀리 관성에 시집가서 마음고생할 거라는 걱정이 사라졌다.윤하와 어머니는 주방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지훈이 부모님을 대접할 아침을 준비했다.지훈도 주방으로 들어와 일손을 도왔다.“지훈 씨, 안 도와줘도 돼요. 가서 부모님이랑 얘기 나눠요.”윤하는 지훈을 밀어냈다.“부모님이 저더러 도와주라고 해서 들어왔는데 저를 또 저쪽으로 보내시면 어떻해요? 누구 장단에 맞춰야 해요? 아차! 아버님이랑 큰형님이 안 보이시는데 아직 주무시나요? 아니면 도장에 일찍 나가셨어요?”지훈은 그 두 사람이 보이지 않자 물어보았다. 아까는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두 사람 볼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공항에 갔어. 이쯤 되면 아마 비행기에 올랐을 거야.”윤하 어머니가 대답했다.지훈은 별생각 없었다. 고백도 했고 부모님도 인사하러 오셨고 지금은 그저 윤하의 답변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사실 지훈도 내심 많이 긴장됐다.그도 윤하가 자신을 밀어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옷도 사주고 고백 후에 도망치지도 않았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윤하가 명확히 대답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거절할 수도 있기에 두려웠다.윤하가 설령 거절한다고 해도 지훈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질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가 선택한 사람이라면 평생 그 한 사람한테만 마음을 줄 그런 사람이었다. “어머님, 준비 많이 하시지 마세요. 두 분 간단히 요기하면 돼요. 제가 이따가 두 분 호텔로 모셔다드릴 거예요. 거기서 식사하시면 돼요.”“귀한 손님들이 멀리서 오셨는데 점심은 내가 대접해야지. 외식할까 아니면 집에서 먹을까?”윤하 어머니는 물었다.“집에서 먹으면 윤하랑 혁진이는 오늘 도장 나가지 말고 장 좀 봐줘
윤하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윤하를 보며 물었다. “뭐라고? 불감증?”“지훈 씨가 질병이 있는데 불감증이래요. 근데 나한테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이건 치료가 잘되지 않는 병이고요. 운명인가 보죠 뭐.”“오래 살고 볼 일이네. 이런 병은 또 처음 들어봤어. 그럼 네가 지훈이 한테 시집가면 걔가 변심할 걱정도 없고 바람피울 걱정도 없는 거잖아.”윤하는 대답했다. “뭐 그런 셈이죠. 지훈 씨가 그러는데 다른 여자들이랑 있을 때에는 진짜 아무 반응이 없대요. 부모님이 사정을 알고 나서 계속 선을 보게 했는데 지훈 씨가 안 나갔어요. 또 부모님이 젊은 여자들 사진도 많이 보여줬대요. 혹시나 병이 좀 나아질지 해서요. 그런데 아무 효과가 없는 거죠.”윤하는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을 모두 엄마에게 털어놨다.“지훈 씨 부모님이 마음이 급하셔서 지훈 씨가 어떤 여성분에게 눈길을 한 번 더 줬다 하면 혹시나 그 분한테 반응이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할 정도라고 하더라고요.”윤하 어머니는 들을수록 의아했다. “그럼 걔는 어떻게 너한테만은 다르다고 확신하는 거야? 너희 둘이 무슨 일 있었어?”윤하 어머니는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윤하야, 지훈이가 너한테 진심이든 아니든 결혼하기 전까지는 순결을 지켜야 해. 여자는 자신을 아껴야지. 내가 책이랑 동영상에서 많이 봤는데 어떤 여자애들이 결혼하기 전에 임신하는 바람에 시댁에서 업신여겨 예물을 적게 주거나 아예 안 주는 집안도 있대. 이런 집에 시집가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을 거야.”“엄마가 옛날 사람이라서 요즘 젊은이의 사상을 못 따라는 게 아니라 딸 가진 엄마로서 내 딸이 시댁에서 업신여김을 당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야. 그러니 절대 결혼 전에 사고 치지 마. 약혼했다고 해도 안돼. 혼인 신고를 해야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거야. 그때가 되면 결혼식을 올리든 안 올리든 엄마도 관여하지 않을 거야.”윤하 어머니는 윤하가 충동적인 행동을 할까 봐 걱정했다. 윤하는 나이도 어리고 연애 경험이 적은 것에 비해 지훈은 비록 여자
지훈은 그저 그들에게 손주를 안겨주는 도구로 몰락할지도 모른다.“고구마가 이렇게나 많아요? 그럼 군고구마 만들어 먹어요. 밖에서 사면 한 개에 삼천 원 정도 하잖아요, 너무 비싸요.”윤하는 역시나 고구마를 보고 기뻐했다.윤하는 차 문이 열려있는 쪽으로 걸어가서 안을 들여다보고는 혀를 내둘렀다.”이게 전부 다 고구마예요?”고구마인지 곤약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도 물건들을 나르기 시작했다.곧 혁진이 도와주러 나왔다.그렇게 세 젊은이는 몇 번을 왕복해서 겨우 차 안에 가득했던 농산품들을 거실로 옮겨갔다. 값비싼 삼과 제비집도 그중 어느 안에 들어있었다.지훈은 부모님이 정말로 농산품만 갖고 온 줄 알았다.소씨 집안에서 가지고 온 선물들을 윤하 어머니께서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방문에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었다.지훈이 부모님이 방문한 탓에 윤하와 혁진은 도장으로 가지 않고 집에서 접대를 도왔다. 소씨 가주 내외가 아침을 못 드신 걸 알고 윤하 어머니는 윤하와 함께 주방으로 들어가 아침 준비를 했다.윤하는 그 틈을 타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아버지랑 큰오빠는 이렇게 일찍 도장으로 나갔어요? 두 사람한테 전화했었는데 둘 다 안 받던데요.”윤하 어머니는 밖을 한번 힐끗 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아버지랑 혁주가 관성에 갔어. 지훈이 집안에 대해 좀 알아보려고. 근데 지훈이 부모님이 여기로 오실 줄 누가 알았겠니?”“저 아직도 고민 중인데 둘이서 벌써 관성에 갔다고요?”“그러니까 네가 고민이 끝나기 전에 미리 알아보는거지. 네가 시집살이 안 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시름 놓고 너희 둘을 미뤄줄 거 아니야.”윤하 어머니는 계속해서 말했다. “지훈이 부모님을 보니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봐. 두 분이 너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소씨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처음 집에 인사 온다고 농산품들을 가지고 온 것 봐. 다 우리를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 우리한테 맞춰주려고 한다는 것은 그만큼 너를 중요시한다는 거야. 그
사실 지훈도 부모님 몰래 일을 꾸몄으나 두 분이 보통 눈치가 빠른 사람이 아니라서 지훈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다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을 했다.집 문 앞에서 지켜보던 윤하 어머니는 딸과 함께 들어오는 두 사람의 얼굴이 지훈이랑 아주 비슷한 걸 보고 누군지 바로 알아챘다.그러고는 얼른 문을 활짝 열었다.지훈 어머니는 윤하 어머니를 보자마자 하마터면 사돈이라고 부를뻔했지만 너무 이른 감이 있어 당황하실까 봐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되려 삼켰다.윤하 어머니는 지훈의 부모님이 오실 줄은 생각 못 했다.아들과 남편이 방금전에 관성으로 출발했는데 두 분이 집에 찾아오시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관성에서 두 사람에 대해 알아볼 때 마주치거나 들킬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정씨 집안 식구들은 지훈이 마음에 들었다. 지훈이 집안 사람들까지 인품이 좋으신 분이라면 멀기는 멀어도 윤하를 소씨 집안으로 시집 보낼 의향이 있었다.다만 걸리는 점이 있다면 바로 지훈의 질병이었다. 어젯밤, 두 형제는 지훈에게 이게 관해 물어보지 않았고 윤하도 가족들한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윤하가 지훈을 대하는 태도에서 아마 큰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윤하 어머니는 짐작했다.전에 질병이 있었다가 이제는 다 완치됐을 가능성도 있었다.두 집안 어르신이 만나고 나서 윤하 어머니는 지훈의 부모님 두 분 다 성격이 좋으시고 친근하신 걸 느꼈다.사돈 될 분들한테 부담이 될까 봐 일부러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왔다. 행여나 너무 부유해 보여 정씨 집안에서 윤하를 시집 안 보내겠다고 하면 아들이 손해 보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지훈의 부모님은 정씨 집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두 가문이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엄밀히 말하면 오히려 정씨 집안이 손해 보는 셈이었다. 지훈은 이제 중년이 다 된 아저씨이고 윤하는 아직 꽃다운 어린 아가씨이기 때문이다.지훈의 부모님은 소씨 집안 가주라는 기세 없이 자세를 낮추어 얘기했다.윤하 어머니와 혁진은 두 분을 대접하고 있고 윤하는 지훈을 도와 짐 나르러 갔
지훈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윤하 씨는 언제든지 예뻐요. 긴장하지 말아요, 저희 부모님 그렇게 어려운 분들 아니세요.”“긴장 안 했거든요. 처음 뵈는 자리니까 잘 꾸미지 않더라도 예의는 갖춰야 하니까요. 제가 문 열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하는 지훈보다 먼저 뛰어가 문을 열었다.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문 앞에 서 있었다.윤하가 문을 열자 차에 앉아 계시던 분이 창문을 내리고 바로 차에서 내렸다.중년 여성분이셨는데 지훈과 많이 닮아서 누가 봐도 소지훈 어머니인 것을 알 수가 있었다.윤하는 내심 지훈의 어머니의 미모에 감탄하고 있었다. 관리를 아주 잘하셔서 겉보기에는 어머니가 아니라 누나같이 보일 정도였다.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으면 전혀 모자같이 보이지 않았다.지훈 어머니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걸어오며 물었다. “아가씨가 윤하 씨구나. 사진 본 적이 있어요. 나는 소지훈 엄마 되는 사람이에요.”“어머님, 안녕하세요.”윤하는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지훈도 윤하를 따라 인사 한마디 건넸다.지훈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윤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번 훑어보고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예쁘고 아들이랑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지훈 어머니는 첫눈에 바로 윤하가 마음에 들었다.자기 아들을 구해준 유일한 여자애라고 생각해서 사진을 볼 때부터 이미 마음에 들었고 흡족해하셨다.지훈이 아버지도 차에서 내렸다.“윤하 씨, 안녕하세요, 저는 지훈이 애비되는 사람입니다.”지훈이 아버지는 평소에는 근엄하고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말하시지만 그 순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윤하는 아버님께도 인사를 건네고 두 분을 집안으로 모셨다. “아버님, 어머님, 빨리 집 안으로 들어가요, 밖이 추워요.”“좋아요.”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지훈의 아버지는 차 키를 아들에게 던져주고는 말했다.” 차 안에 있는 물건들 집으로 옮겨와.”“두 분 편히 오시면 돼요, 뭘 들고 오시지 마
지훈의 아버지는 시계를 보시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일찍 오긴 한 것 같아. 여름이면 이쯤 되면 꽤 많은 사람들이 일어났을 텐데. 차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노크하러 갈까?”지훈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먼저 아들한테 전화를 걸어 일어나라고 해야겠어요.”그는 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윤하와 입술이 닿는 그 순간, 고막을 찌르는 전화벨 소리가 울려 지훈은 단꿈에서 깨어났다. 지훈은 키스의 여운에 입술을 문지르다 정신이 번쩍 들어 그제야 자신이 꿈꾸었음을 알았다. 윤하는 지훈의 고백을 외면하지 않았지만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눈치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달콤한 꿈이 산산조각 나자 지훈은 순간 화가 났다.핸드폰을 집어 든 지훈은 발신인을 확인하지 않고 쌀쌀한 목소리로 물었다.“누구세요? 왜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전화를 거세요? 큰 일이 아니라면……”“아니면 어쩔 건데? 내가 누구냐고? 네 엄마야, 나 지금 윤하네 집 앞이야. 빨리 나와 문 열어. 아니면 내가 들어가서 혼쭐을 내줄 거니까.”지훈도 한 성깔 하는데 지훈의 어머니는 그보다도 한 수 위였다. 말 몇 마디로 바로 지훈을 수그러들게 했다.지훈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놀라서 물었다. “뭐라고요? 지금 집 앞이라고요? 아버지도 같이 있어요?”두 분이 오신다고는 했지만 진짜로 오실 줄 몰랐고 또 이렇게 일찍 올지도 몰랐다.“아버지도 옆에 계셔. 대문이 아직 안 열려있는 것을 보아하니 다들 아직 일어나지 않았나 보지? 아들, 우리가 너무 일찍 온 거 아니야?”지훈은 침대에서 굴러 내려오며 대답했다. “당연한 말씀을, 이 추운 날씨에 이렇게 일찍 오신 거예요? 아버지가 오신다고 하시더니 진짜로 오실 줄은 몰랐어요. 아직 이르다고 말했잖아요, 윤하 씨가 엄마아빠를 만나면 부담스러워할 거예요. 잠깐만 기다려봐요, 제가 내려가서 문 열어줄게요.”입으로는 툴툴거렸지만 정작 부모님들이 밖에서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지훈은 엄마에게 당부 몇 마디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