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진이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여운초 씨는 보이지 않으니, 버스가 지나가도 모르겠는데요.”“마음씨 착한 경비원 아저씨들이 매일 버스를 세워서 제가 오르도록 도와주고 계세요.”그는 입을 다물었다.두 사람은 아직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전이진은 원래 이렇게 빨리 행동할 생각이 없었는데, 형수에게 놀림을 당하고 나서 형과 형수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하지만 할머니께서 가장 기본적인 자료만 주셨기 때문에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었다.서로 잘 모르면 화제가 없는 법이다.그는 묵묵히 차를 몰았고, 그녀는 말없이 차 안의 음악을 듣기만 하였다.좀 지나 차가 꽃가게 앞에 도착했다.“운초 씨 가게에 도착했어요.”전이진의 말이 끝나자, 여운초는 안전벨트를 풀고 허리를 굽혀 자신의 우산을 집어 든 다음, 손으로 더듬으면서 차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려 우산을 펼쳐 들었다.하지만 남의 차를 타고 온 탓에 그녀는 자신이 어느 방향에 서 있는지 몰라서 우산을 쓴 채로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시각장애인의 생활방식은 일반적으로 변하지 않는데 자신이 익숙한 곳에서는 자유롭게 행동하지만, 패턴이 바뀌면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평소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여운초는 근처 정류장에서 내리면 어느 방향으로, 몇 걸음 걸어야 하는지 잘 기억하고 있는데 보통 오차가 없었다.오늘은 전이진이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 알 수 없어 차에서 내린 후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좀 지나 마음을 진정시킨 여운초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가다가 한 사람과 부딪혔다.“죄송해요, 죄송해요.”그녀는 서둘러 사과했다.“오른쪽으로 돌아서 앞으로 가시면 가게 앞이에요.”전이진이 친절하게 여운초에게 방향을 알려주었다. 방금 부딪힌 사람은 다름 아닌 차를 에돌아서 그녀와 함께 가게로 들어가려던 전이진이였다.방향을 잘못 짚은 여운초는 곧장 앞으로 가다가 전이진과 부딪쳤던 거다. 만약 그녀가 그와 부딪히지 않고 계속 앞
“이런 일을 막힘없이 하는 걸 보면 운초 씨가 보지 못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요.”여운초는 나무막대를 제자리에 놓고 담담하게 말했다.“손에 익으면 자연히 능숙해져요. 꽃가게를 연 지도 몇 년 됐고, 매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감각만으로도 잘할 수 있어요.”문을 연 후 그녀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화분을 능숙하게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이진 씨는 오늘 무슨 꽃을 사시게요? 천천히 둘러보세요.”전이진도 더 이상 구경만 하지 않고 그녀를 도와 화분들을 꽃가게 문 앞으로 모두 옮겼다.화분마다 꽃 이름이 새겨진 작은 나무 패쪽이 붙어있었다. 여운초는 손으로 나무 패쪽에 새겨진 글씨를 만져보면 손님이 어떤 꽃을 골랐는지 알 수 있다.“보이지 않아서, 장사하기 불편하시겠어요.”“불편해도 해야죠.”여운초의 어조는 항상 담담하고 부드럽다.전이진은 그녀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정교한 이목구비를 가진 그녀는 큼직한 선글라스 때문에 손바닥만 한 얼굴이 더 작아 보였다.분명히 재벌 집 딸인데 너무도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게다가 그녀는 가게를 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한다.여씨 일가에서 설마 생활비마저도 안 주는 건가?“여씨 사모님이 친엄마가 맞아요?”전이진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잠자코 있던 여운초가 대답했다.“오히려 친엄마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친엄마가 맞아요.”“친엄마인데 그렇게 못되게 굴어요?”여씨 가문의 큰따님은 총애받지 못할 뿐 아니라 하인보다도 못한 투명 인간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인근 별장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전이진이 사람을 시켜 일부러 알아보지 않아도, 여운초가 박대를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전기 주전자와 찻주전자가 놓여 있는 테이블로 다가간 여운초는 전기 주전자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물을 받아 끓이기 시작했다.“운초 씨, 차를 안 끓여도 괜찮아요, 저는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여운초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챈 전이진이 한마디 했다.그녀는 손동작을
남동생이 여운초에게 잘해주는 것이 꼴 보기 싫었던 여운별은 엄마더러 남동생을 초등학교 때부터 기숙 학교에 보내게 하여 집에 있는 시간을 줄였다.그래도 남동생은 여전히 큰누나에게 잘해준다.여운초보다 9살 연하인 남동생은 당시 기숙사에 있었던 탓에 큰누나가 아픈 걸 몰랐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큰누나를 병원에 보내도록 부모님을 독촉하였다면 큰누나가 실명하지 않았을 거라며 자책하고 있다.그 집에서 여운초는 남동생에게서만 가족의 따뜻함을 느꼈다.그녀가 담담한 말투로 가슴 아픈 말을 내뱉자 전이진의 마음도 저도 모르게 아파 났다.아마 그는 처음부터 할머니가 골라준 짝인 그녀를 자기 여자로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생 끝에 낙이 올 거예요.”전이진이 온화한 목소리로 말하자 여운초가 그를 향해 웃었다.“이진 씨, 저를 불쌍하게 여기실 필요 없어요. 여태 저를 어떻게 대하였든지 어쨌거나 지금까지 키워주신 분이잖아요.”비록 그들한테 죽임을 당할 뻔했지만...“사고 싶은 꽃은 고르셨나요?”여운초가 화제를 바꾸었다.그녀는 익숙하지도 않은 전이진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내가 운초 씨를 가게에 모셔 왔으니, 운초 씨가 나한테 꽃다발을 선물로 주는 건 어때요?”“...”진이진이 꽃다발을 선물로 달라고 할 줄은 몰랐다.이성에게 꽃다발을 선물한 적이 없는 여운초는 잠깐 망설이다가 꽃다발을 만들려고 꽃을 고르기 시작했다.“붉은 장미꽃과 안개꽃을 섞어 꽃다발을 만들어주세요.”“이진 씨, 제가 선물로 드리는 꽃다발에 장미꽃은 어울리지 않아요.”“형수님이 장미꽃다발을 사서 형에게 드렸는데, 형이 내 앞에서 어찌나 자랑하던지.”“이진 씨도 나한테서 장미꽃다발을 선물 받았다고 자랑하시려고요?”“왜, 안 돼요?”그녀는 그의 와이프 후보이고, 앞으로 십중팔구 그와 결혼할 것이다.와이프 될 사람이 남편에게 장미꽃다발을 선물하면 라이벌을 물리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전씨 가문 둘째 도련님을 연모하는 아가씨들도 적지 않게 있었지만, 그도 큰형
지금 그와 여운초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전이진은 이미 시작했지만, 아직 눈치채지 못한 그녀가 그에게 장미꽃을 선물하지 않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이 꽃다발도 예쁘네요. 선물 감사해요.”전이진은 꽃다발을 받아 들고 한참 감상하다가 작별을 고했다.“그럼, 먼저 출근할게요.”꽃가게를 나온 전이진은 꽃다발을 차 조수석 위에 놓고 다시 한번 여운초를 돌아본 후에야 자리를 떠났다.문어구에서 밖의 인기척을 엿듣고 있던 여운초는 차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전씨 가문 둘째 도련님이 자기에게 대하는 태도가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시각장애인을 처음 보아서 흥미를 느낀 건가?그녀는 그가 시각장애인인 자신에게 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여운초가 준 꽃다발을 안고 전씨 그룹으로 돌아온 전이진은 사무실 건물로 들어가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전씨 그룹 사람들 모두가 의아해했다.부 대표님 몸에 꽃 귀신이라도 붙은 건가? 웬 꽃다발을 안고 꽃보다 더 환하게 웃으시는 걸 보니.전이진은 일부러 그의 큰형 사무실에 들렀다.동생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것을 본 전태윤은 눈가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면서 놀림조로 물었다. “너 작전 개시한 거야? 할머니 말씀 죽어도 안 따른다며? 호영이랑 함께 아프리카로 도망간다고 하지 않았어?”할머니가 자기에게 남자 같은 여자를 결혼 상대로 골라주었다며, 셋째 전호영의 저항이 가장 심했다.전호영은 적잖은 돈을 들여 소정남에게 고현의 신상을 확실히 알아보라고 부탁한 후, 둘째 형과 함께 아프리카로 도망가 할머니를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떠들다가 할머니가 다음날 출국하는 비행기표와 여권을 보내오자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전호영도 그저 입으로 떠들어댈 뿐이었다. 아프리카로 가서 햇볕에 피부가 그을려서 검둥이가 되면 오히려 더 후회할 것이다.그 후부터 전호영은 감히 앞에서 떠들지는 못하고 전이진과 둘이 있을 때만 불만을 늘어놓았다.“난 죽어도 안 따른다고 말한 적 없어.
“전설의 신의? 눈도 치료할 수 있대?”“신의는 당연히 무엇이든 치료할 수 있지. 그냥 신의라고 불렸겠냐?”“신의는 어디에 있는데? 내가 사람을 시켜서 모셔올게.”“한때 A시의 예진 리조트에 나타났었는데, 요즘은 거기를 떠났다더라. 신의의 제자가 예씨 가문 셋째 도련님과 친하게 지내지만 넷째와는 모순이 있다고 들었는데, 자세한 건 예준하 씨에게 물어봐.”“신의의 제자는 성이 정씨인 아주 대단한 여자인데 만성 남씨 가문의 작은 사모님과 손잡고 만성의 가장 강한 라이벌을 해결했대. 어쨌든 무예도 의술만큼 훌륭하다고 하더라. 아 참, 그리고 독도 잘 쓰고.”물론 정겨울 씨는 의사이니 사람을 구하는 것이 위주이다. 설령 그녀가 독을 잘 쓴다고 해도 독으로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다.“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청하기 어려울 텐데.”“한 번 청해 안 되면 두 번, 세 번, 될 때까지 하면 되지. 하지만 신의는 이제 거의 손을 대지 않고 모두 정겨울 씨가 나서서 치료하고 있다더라. 여운초 씨 눈을 치료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면, 일단은 병 때문에 실명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일부러 독을 타서 중독되었는지 알아내야 해. 지금 여운초 씨 생활 환경은 어때? 안전해?”“형수님 말로는 병 때문에 시력을 잃었다고...”전태윤은 자기 동생을 바라보며 그가 여운초에게 아직 진정으로 마음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만 호기심과 신선감이다. 만약 정말로 여운초를 마음에 두고 있다면, 그녀의 마음속 비밀을 파헤치려고 할 것이다.전태윤은 결국 그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둘째의 일이니 스스로 천천히 깨닫게 놔둘 생각이었다.자기도 수많은 거절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오늘과 같은 행복한 삶을 얻었으니까.“다음에 여 대표를 만나면 내가 알아보지 뭐. 형, 나 먼저 일하러 갈게.”형한테 꽃다발을 자랑하고 난 전이진은 형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지 않고 꽃다발을 안은 채 사무실로 돌아갔다.한편, 관성중학교 앞 서점 안.하예정은 성소현과 심효진이 제출한 의견에 따라
임정한이 납치당할 뻔한 것이 좋은 예이다.주서인은 당시 구경에 정신 팔려 아들이 납치당하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아들이 없어진 걸 발견했을 때는, 이미 다른 사람이 임정한을 안고 멀리 떠나간 후였다.시누이와 사이도 좋지 않은 데다 임정한을 싫어하는 서현주만 빼고 주씨 가족 모두가 왔다.사실 마음에 찔리는 것이 있는 서현주는 하예정 자매와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고, 그들 자매가 자기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의심할까 봐 두려웠다.“우빈아, 이리 와, 이모가 안아줄게.”성소현이 우빈이를 향해 손을 흔들자 예쁜 사촌 이모를 좋아하는 우빈이는 아직 채 조립하지 못한 블록을 즉시 치우고, 두 팔을 벌리며 성소현에게 안겼다.“아직 조립 못했어?”성소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자, 우빈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동명 아저씨는 시간이 없어요. 아저씨가 도와주시면 다 조립할 수 있어요.”“이모가 어렸을 때 블록을 많이 가지고 놀았는데, 도와줄까?”“좋아요.”우빈이가 신이 나서 대답했다.성소현이 우빈에게 블록 조립을 가르치고 있을 때, 주씨 가족이 전씨 가문 경호원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왔다.하예정의 서점에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주씨 가족은 그녀의 신분과 지위의 변화를 실감했다.예전에 그들이 그토록 깔보던 하예정은 이제 감히 바라볼 수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예정 씨. 우리가 방해하는 건 아니겠죠?”주서인이 앞장서서 아들을 구해준 하예정에게 고마움을 표하러 왔다.그녀의 환하고 호의적인 웃음은 거의 10년 만에 보는 것 같았다.하예정이 처음 언니를 따라 주씨네 집에 갔을 때 주서인은 지금처럼 웃었다.“무슨 일이에요?”주씨 가족의 손에 들려있는 큰 쇼핑백을 본 하예정은 그들이 온 뜻을 짐작했다.주서인이 사 온 물건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웃었다.“우리는 그냥 감사드리러 온 거예요. 정말 고마워요. 예정씨가 아니었다면 우린 아들을 잃었을 거예요.”아이가 유괴되면 찾기가 어렵다.주서인은 아들을 잃은 결과를 감히 상상하기조차 무서웠다.하예
“그래요, 어제 정말 고마웠어요. 예정 씨가 아니었으면 정한이랑 우빈이 둘 다... 애들이 잘못되었다면 나도 살 수 없었을 거예요.”김은희도 하예정에게 감사해 마지않았다.“어제 이미 감사하다고 하셨어요. 우빈이는 제 조카이니 당연히 잘 보호해야죠.”그리고 임정한이 아무리 장난꾸러기라도 어쨌거나 어린애인데 잘못되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예정 씨 자매에게 음식 대접을 하고 싶은데, 시간 있어요? 참, 그리고 두 명의 경호원에게도 직접 감사를 표하고 싶어요.”주서인이 웃으며 물었다.“음식 대접은 필요 없어요, 두 분 들어오세요.”경호원들에게 사람을 구하라고 한 건 하예정이지만, 임정한을 구출한 건 두 명의 경호원이니, 주씨 가족이 당연히 그들에게 감사를 표해야 한다.“사모님.”두 명의 경호원이 하예정의 부름 소리를 듣고 들어왔다.“주씨 일가에서 어제 두 분이 정한이를 구해주셨다고 고마움을 표하러 선물을 사가지고 왔어요. 받으세요.”하예정은 주씨네 집에서 보낸 선물은 받고 싶지 않았지만, 그들이 돈을 쓰게 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선물을 모두 경호원에게 주었다.“어제 정말 고마웠어요.”주씨네 가족은 경호원 두 명에게 감사를 표하고 나서 가져온 선물 절반은 경호원 두 명에게 주고, 절반은 하예정에게 남겼다.주서인이 돈봉투를 꺼내 하예정과 경호원에게 주자 하예정은 바로 거절하고 두 경호원더러 돈봉투를 받게 했다.잠시 앉아있다가 하예정을 더 이상 귀찮게 할 수 없어서 떠나려던 주씨네 가족은 가게 입구에서 하 영감과 마주쳤다.하 영감은 두 아들과 두 손자를 데리고 하지문의 수입차를 타고 왔다.물어볼 필요도 없이 하유 부부가 남긴 부동산 때문이다.하예정 자매가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고향에 다녀온 일은 온 동네 아니, 하씨네 마을 사람 모두가 알고 있다.하예정 자매가 소송하겠다고 한 후 하 영감이 손자들을 통해서 알아보니, 그들 늙은 부부가 받을 수 있는 부동산이 얼마 되지 않았고 이에 하 영감은 초조해 났다.하유 부부가 남긴 집은 가치
하씨네 마을에 하유가 그들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소문을 퍼뜨린 후 이미 충분하다고 느낀 하 영감은 오늘 지체 않고 하예정을 찾아왔다.“뭐 하러 왔어?”김은희는 문득 하 영감이 돈 몇백만 원을 받아먹고는 일을 처리해주지 않은 것이 생각나 눈에서 불이 이글거렸다.하 영감이 아들과 손자를 데리고 온 것을 보자, 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하 영감을 노려보았다.“망할 놈의 영감탱이가 또 예정 씨의 명성을 망치려고 왔어?”하씨 가족이 소란을 피운다는 것은 들은 적이 있었다.예전에 김은희는 남편에게 하씨 가족은 정말 염치가 없다고 말했었다. 십여 년 전, 단 하루도 그들 자매를 키운 적이 없는 하씨네 가족은 많은 배상금을 나누어 가지고는 하예정 자매를 집 밖으로 쫓아내고 그녀들 부모님이 남겨준 부동산을 독차지했다.하예정이 전씨 가문의 사모님이 된 것을 알고 나서는 그녀에게 많은 노후 자금을 요구하기까지 했다.어찌나 뻔뻔하기 짝이 없는지.“당신들은 또 뭣하러 왔어? 아들도 이미 예진이와 이혼했는데, 왜 툭하면 예정이를 찾아와? 또 뭘 더 얻어먹으려고? 염치도 없지.”하 영감 가족도 주씨네 가족에 대해 호감이 없었다.주형인과 하예진이 이혼한 후, 주씨네 가족이 종종 하예진을 괴롭힌 일을 하 영감도 알고 있었다. 하예정 자매가 돈 많은 이모를 되찾자 다시 하예진에게 잘 보여서 이득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도 알고 있다.하예정 자매와 혈연관계가 있는 자기들도 아직 콩고물도 얻어먹지 못했는데, 언제 주 씨네 차례가 온다고?“누가 염치 없는지 몰라! 뭐라도 얻어 가지려고 아들, 손자들까지 데리고 다니며 온갖 망신을 다 하면서.”“이 천한 노친네가, 낯짝도 두껍네.”하영감도 지지 않고 맞불질을 해댔다.“누구한테 천한 년이래?”싸움 잘하기로 소문난 주서인은 하 영감이 자기 엄마를 천한 노친네이라고 욕하는 것을 듣고는 즉시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하 영감의 자손들이 어찌 주서인이 이렇게 삿대질하며 욕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그들도 질세라 욕설을 퍼부었다
고진호도 고현이 여자였기 때문에 며느리가 아닌 사위가 필요했고 따라서 재벌가 딸들에게 희망을 품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전호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올라가서 엘리베이터를 막 빠져나오자마자 고현이 고객을 배웅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 뒤에는 단정하게 양복을 입은 젊은 여성 몇 명이 따르고 있었는데 아마도 고객의 비서일 것이다.전호영과 고객들은 서로를 잘 몰랐다.고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전호영은 말없이 한쪽으로 비켜섰다.고현은 직접 고객을 아래층으로 배웅했다.남 비서가 전호영을 쳐다보자 전호영은 눈빛으로 고현을 따라가라고 신호를 보냈다.전호영은 이미 고현의 사무실에 대해 매우 익숙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 비서가 그에게 예의를 갖출 필요 없었다.고현의 사무실과 휴게실에 관해 전호영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고현 일행이 엘리베이터에 들어간 후, 전호영은 스스로 고현의 사무실로 갔고 바로 문을 밀고 들어갔다.사무실에 들어선 전호영은 먼저 커피 한 잔을 타고 소파에 앉았다. 그때 고현이 돌아왔다.“어젯밤 일은 어떻게 됐어요?”고현은 그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물었다.“예진 누나를 대신해서 죽은 경호원 가족들이 와서 뒷일을 처리했어요. 이씨 가문도 가족에게 보상을 해주고 보험회사에서도 가족들에게 보상해 줄 거예요. 이씨 가문의 모든 경호원은 거액 보험에 가입했거든요. 저도 이따가 예진 누나에게 전화해서 오늘 오후에 그 경호원의 가족들을 보러 가자고 해야겠어요. 그 경호원은 비록 이씨 가문의 희생 품이지만 그래도 예의는 갖추어야 하는걸요.”현재, 그 차 사고는 잠시 의외 사고로 단정 지어졌다.이씨 가문의 음모라는 증거가 없어서 이씨 가문은 충분한 연기를 해야 만이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았다.죽은 그 이씨 가문의 경호원은 스스로 재수 없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이은화의 마음이 그토록 모질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하예진을 이씨 가문의 가족 연회에 처음 초대한 당일에 그녀를 죽이려고 했으니 말이다.하예진이 경계
다행히도 이 모든 악몽은 이미 끝났다.하예진은 이미 다시 일어서서 사업을 일으켰다.“호영 씨, 이만 가볼게요. 저도 나가서 일해야 하거든요. 회사를 설립하는 일을 아직 다 마치지 못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회사가 강성에 있어야 다른 회사와 협력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동명 형이 오시는 길일 텐데 더 기다리지 않으려고요?”전호영은 장난치고 싶었다.하예진도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야 도착할 거에요. 동명 씨가 먼저 오면 저 대신 먼저 대접해 주세요. 호영 씨와 동명 씨가 더 친하잖아요.”“저도 좀 이따가 고씨 그룹에 갈 거예요.”“알겠어요. 그럼, 제가 빨리 돌아오죠. 미래의 아내가 더 중요한 법이죠. 호영 씨 둘째 형도 혼인신고 했다면서요. 호영 씨가 설을 쇠러 갈 때면 운초 씨는 아마 임신했을걸요. 힘내셔야겠는데요.”전호영은 그의 잘생긴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누나, 저도 필사적으로 힘을 내는 중이거든요. 우리 현이 씨는 둘째 형수님보다 따르기가 훨씬 어렵거든요.”여운초는 겉으로 보기에는 작고 하얀 꽃처럼 부드럽고 연약해 보였다.여운초가 여씨 그룹을 단단히 장악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전호영도 여운초가 계략과 수단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끈질긴 열정을 이기는 사람이 없다고 하잖아요.”하예진은 말을 마치고 일어나 전호영의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작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전호영의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 하예진은 마침 이경혜의 전화를 받았다.이경혜와 하예진은 전화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하예진이 떠난 지 30분 만에 전호영은 일을 끝내고 호텔을 떠나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전호영은 이씨 가문의 뒷일을 고현에게도 알려주려고 했다.이번에 전호영은 꽃도, 보석도 사지 않았다. 고현은 비록 여자이지만, 어려서부터 남장을 하고 성격도 남성적이라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전호영은 그녀에게 손목시계를 하나 사줬다.고씨 그룹의 사람들은
“이 대표님께서도 크게 노하셨을 거예요. 정군호 씨는 잘 모르지만, 이윤정 씨는 그날 밤 쫓겨났어요. 한밤중에 정군호 씨가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실려 갔다고 들었는데, 이 대표님은 아무도 병원에 따라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정군호 씨의 상처에 관해 묻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셨대요.”전호영은 여기까지 말하다가 문득 말을 멈추었다.하예진은 아직 다 마시지 못한 물잔을 들고 두 모금 더 마시더니 다시 잔을 내려놓고는 조용히 전호영을 바라보며 그가 말을 이어나갈 때까지 기다렸다.전호영이 말을 이었다.“사람을 보내 병원에 가서 알아보게 했어요.”“이모할아버지의 부상 상황은 어떻게 되셨대요? 이모할머니가 벌인 일이래요?”그러자 전호영이 대답했다.“이 대표님께서 저지른 일이 아니라 정군호 씨가 스스로 그 부위를 자른 거래요.”전호영은 정군호가 벌인 일이 이은화의 핍박이라고 추측했다.정군호는 절대로 스스로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이은화가 아마도 정군호에게 두 가지 길을 준 것 같았다.정군호 배후의 정씨 집안은 여전히 이씨 가문에 의지하여 살아가야 했기에 정군호는 절대로 이혼하지 않을 것이다. 이혼하지 않으면 정군호는 이은화를 안심시킬 수 없기에 칼을 휘둘러 스스로 그런 짓을 해야만 이은화를 안심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하예진이가 깜빡이며 의아했다. 그녀는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전호영도 정군호의 부상에 대해 계속해서 말하지 않았고 그냥 말 한마디만 내뱉었다.“정군호 씨는 죽지 않았어요. 정군호 씨의 부상은 알아보기 어려울 거예요. 이 대표님께서 엄밀하게 숨기고 있거든요. 남자들에게는 특히 데릴사위인 정군호 씨에게는 존엄 없는 짓이나 다름없으니까요.”하예진은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데릴사위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바로 재벌 가문으로 시집가는 여자들이 당하고 있는 일 아닌가요? 성별이 바뀌었을 뿐이죠.”전호영은 순간 말문이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잠시 후, 전호영이 말했다.“누나, 우리 동명 형은 좋은 사람이에요. 과거의 일은 지나
하예진이 위험에 처해 사고가 일어나야만 경호원들이 주동적으로 노동명에게 보고했다.“괜찮으면 됐어. 그럼 됐어. 너무 놀랐잖아. 예진아, 내가 이따가 강성으로 갈 건데 아마 오후 2시 전에 도착할 것 같아.”하예진이 대답했다.“전 괜찮아요. 여기까지 올 필요 없어요.”노동명이 외출하는 것이 너무 불편했기 때문에 하예진은 늘 그를 걱정했다.“내 두 눈으로 네가 멀쩡한 모습을 보고야 말겠어. 네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해야 내가 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저는 정말 괜찮아요. 경호원들에게 물어보면 되잖아요. 우린 다 괜찮아요. 동명 씨가 외출하기 불편하실 텐데 너무 멀리 오면 안 돼요.”노동명은 기어코 가겠다고 고집했다.“네가 보고 싶어서 그래. 너무너무 보고 싶어. 네가 괜찮은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하예진은 반박하지 못했다.“그럼 조심히 오세요. 만약 몸이 불편하면 고집하지 마시고. 동명 씨, 우리는 각자가 서로를 위해서 자신의 건강을 잘 챙겨야 해요. 아시겠죠?”노동명은 부드러운 어조로 나지막이 대답했다.“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몸이 불편하면 외출하지도 않아. 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 오후에 봐.”“네, 오후에 봐요.”하예진은 전화를 끊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노동명이 하예진에게 주고 있는 것은 전남편이 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어쩌면, 노동명이 그녀에 대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주형인도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적 있었겠지만, 나중에 복잡한 일들이 많이 끼는 바람에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하예진이 지금 묵고 있는 호텔은 강성에 있는 전씨 가문의 사업 중 하나이며 전호영이 맡은 부분이다.하예진은 쉽게 전호영을 만날 수 있었다.그녀는 잠을 더 자려고 해도 더는 잠이 오지 않았다.약을 몇 알 먹은 하예진은 이내 두통이 사라지게 되었고 휴대전화를 들고 일어나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더니 전호영의 사무
게다가 노동명은 하예진 모자한테 진심으로 잘해줬고 그는 우빈이를 자기 자식처럼 여겼다.그녀가 노동명을 거부하고 재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단지 재혼하면 다시 불 구덩이에 빠질까 봐 걱정됐고 또한 우빈이가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노동명은 그녀를 도와 모든 장애물을 제거했다. 노씨 가문은 그녀를 받아들였고 그녀가 노동명과 결혼하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다. 우빈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더더욱 필요가 없었다. 노동명은 친아빠인 주형인보다 우빈이를 더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만약 그녀가 다시 결혼한다면 노동명이 가장 적합한 후보일 것이다.“동명 오빠도 언니한테 피해 줄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야. 언니한테 피해보다 행복을 주고 싶은 거지. 그러니까 언니가 좀 더 기다려줘. 동명 오빠가 곧 일어설 거라고 난 믿어.”“알아. 그래서 몇 년이 걸리더라도 그 사람을 기다릴 거야. 기다리는 동안 내 사업도 열심히 발전시키는 중이야.”지금의 그녀는 관성의 3대 재벌 가문의 투자, 후원 및 지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이익보다도 그 속에서 얻은 경험은 돈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언니 화이팅! 우리 언니가 최고야. 난 항상 언니가 자랑스러워.”하예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가 많이 힘낼게.”“언니, 수다 그만 떨고 얼른 잠 좀 자.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꼭 알려줘야 해. 안 알려주면 걱정만 할 테지만 알려 주면 적어도 우리가 해결 방법을 같이 생각하고 모두가 같이 부담하면 훨씬 더 편해지잖아.”“그래 알았어.”자매가 통화를 마친 후 하예진은 계속 자려고 했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그녀는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뭐 좀 먹으러 나갈 준비를 했다.이 시간에 호텔 1층 뷔페 레스토랑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하지 않아 그녀는 밖으로 나가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아침을 먹고 호텔로 돌아온 하예진은 여전히 머리가 아파서 캐리어에서 진통제를 꺼냈다. 그녀는
모연정네 다섯 식구는 저녁에 전용기를 타고 A시로 돌아갈 계획이었다.예준성도 거대한 예진 그룹을 관리하느라 매우 바빴다.“언니가 어젯밤에 늦게 잠들어서 아직도 엄청나게 졸려. 언니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나 조금만 더 잘게.”하예진은 정신이 몽롱했고 머리도 약간 아팠다. 그녀는 동생한테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 뒤 계속 잠을 청하기로 했다.“언니, 앞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꼭 나한테 먼저 말해줘. 알았지?”“난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넌 집에서 몸조리 잘하고 맘 편히 일하면서 우리 우빈이를 잘 돌봐주면 돼. 언니 걱정은 하지 마. 얼른 일 봐.”하예정은 잠시 침묵한 뒤 말했다.“언니, 나랑 우빈이는 언니가 돌아오기를 항상 기다리고 있어.”하예진은 웃으면서 말했다.“이모가 맡기신 일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너희 보러 돌아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 조카가 태어나면 꼭 보러 돌아갈 거야.”그녀의 유일한 여동생이 아이를 낳으면 그녀는 반드시 돌아가 지킬 것이다.그녀는 동생의 가족이니까.“내년에야 출산할 수 있을 거야. 아직 배도 안 나왔어.”하예진은 웃으면서 말했다.“2개월이 지나면 배가 나오기 시작할 거야. 다시 출근하더라도 조심해야 해. 중요한 일이 없으면 집에서 태교하면서 쉬어. 어차피 세 사람이 공동으로 출자한 회사니까 소현이가 주요하게 관리할 거고 너랑 효진 씨는 태교에 집중하면 돼.”“나 아직 움직일 수 없는 단계는 아니야. 뭔가 하긴 해야 해. 매일 집에만 있으면 지루하고 짜증만 나서 태교에 더 안 좋아.”전태윤은 그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태교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임신 후기에 집에서 태교해도 너무 늦지 않았고 임신 8개월까지 회사에 나가겠다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알았어. 네가 좋을 대로 해. 아무튼 몸조심하고 절대 무리하지 마. 무리하면 언니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나 임산부인데 자꾸 뭐라고 할 거야?”“당연히 해야지. 넌 분명히 나 때와 달리 집에서 편안하게 태교할 수 있단 말
“오빠, 난 이제 빈털터리인데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정일범은 그래도 이윤정을 많이 아꼈다. 그는 지갑을 꺼내서 연 후 안에 있는 모든 현금을 꺼내 이윤정의 손에 쥐여주고 또 카드 한 장을 꺼내 이윤정에게 쥐여주면서 말했다.“오빠가 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 비밀번호는 내 생일이야. 비록 돈은 많지 않지만 당장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하기에는 충분할 거야.”“일단 호텔을 찾아서 머물고 몸조리를 해. 며칠 후에 엄마 화가 풀리면 내가 네 상황을 엄마한테 설명해 볼게.”이윤정은 현금과 카드를 받고 울면서 말했다.“오빠 정말 고마워. 역시 오빠밖에 없어.”정일범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얼른 가봐. 그 사람들이 내가 너한테 돈을 준 걸 알면 다시 뺏어올 거야. 그때 가서 넌 진짜 빈털터리 되는 거야.”이윤정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여기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세 형수로부터 온갖 수모와 모욕을 당할 거란 걸 알고 있다.그뿐만 아니라 하인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과 이윤미의 고고한 자태만으로도 그녀의 가슴을 찌르기에는 충분했다.“정일범!”큰 사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곧바로 이윤정한테 달려들어 현금과 카드를 뺏어갔다.정일범이 아내를 끌어당기려고 손을 뻗자 그녀는 돌아서서 그의 뺨을 내리쳤다.“정일범, 나랑 애들이 집에서 쫓겨나게 하고 싶어? 어젯밤에 어머님이 이 년을 쫓아내라고 할 때 뭐라고 했는지 당신도 들었잖아! 근데 감히 어머님의 말씀을 어기고 이년한테 돈과 카드를 주다니! 죽고 싶은 거면 당신 혼자 죽어. 나랑 애들을 끌어내리지 마!”아내한테 화를 내려고 했던 정일범은 욕을 얻어먹은 후 찍소리 못했다.큰 사모님은 남편이 더 이상 이윤정을 돕지 못하도록 끌고 갔다.오늘과 같은 결과는 그녀가 열심히 판을 짜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얻은 속 시원한 결과였다. 그래서 이대로 남편이 이윤정을 도와 어려움을 헤쳐나가게 할 수는 없었다.“꺼져. 당장 안 꺼지면 사람 불러서 쫓아낼 거야!”큰 사모님은 남편을 끌고
정일범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이윤정은 그의 품에 안겨 펑펑 울기 시작했다.자신도 피해자인데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런 일까지 당해야 하는지 그녀는 이해가 안 갔다.정일범은 그녀를 안아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울지 마. 저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서 너한테 무슨 짓 할지 모르니까 일단 여기서 나가야 해. 지금 저 사람들이 너에 대한 불만이 가득해서 기회만 잡으면 널 계속해서 괴롭히려고 할 거야.”이윤정은 오빠들의 편에 섰단 이유로 그의 아내의 미움을 샀다.그녀가 아무리 같은 여자라고 해도 그들의 여동생으로서 그녀는 당연히 오빠들 편이었다. 시누이로서 형수 편에 서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이윤미가 세 형수의 편에 선 것은 그녀의 정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오빠들에 대한 정이 없어서였다.“오빠, 나 안가.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서 다 설명해 드릴 거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난 정말 모르겠어. 난 피해자고 누군가 날 해치려고 하는 게 분명해. 어젯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나일까?”“누군가가 나를 망가뜨리려고 꾸민 짓인 게 틀림없어.”그녀를 해친 사람은 그녀보다 훨씬 더 악랄했다.어젯밤에 일어난 일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게 분명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분석해 보면 누가 그랬는지 짐작이 가긴 했다. 하지만 정일범은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이윤정이 마신 반병의 술은 그가 자신의 방에서 다 마시지 못하고 술장에 넣어뒀던 거였다.그날 아버지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에게 술 한 병을 달라고 하셨다.그는 아버지가 취하실까 봐 걱정되어 한 병 통째로 드리지 않고 그가 마셨던 걸로 드렸다.그 술에 누군가가 약을 타서 아버지와 이윤정을 해치려고 한 거였다.누구일까?그가 아니라면 그의 아내일 것이다.그의 아내가 왜 약을 탔을까?그날 밤 정일범은 술 한 병을 따서 잔을 채우고 두 모금 마신 후 소변이 급해서 화장실에 갔다. 그가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아내가 섹시한 잠옷을 입고 바에 앉아
“처음부터 네 것 아니었잖아. 20 년 넘게 남의 인생 훔치고 부유하게 살아온 넌 이제부터 짐승보다 못한 가난한 삶을 살게 될 거야. 지금 당장 시골로 꺼져.”“감히 네가 우리 윤미를 촌년이라고 불러? 진짜 촌년은 너잖아! 아퉤!”모든 것을 잃게 된 이윤정에 대한 사모님들의 분노가 치밀어올랐고, 그들은 온갖 비꼬는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이윤정은 앉으면서 말했다.“절대 못 나가요.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서 내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고, 누군가가 나를 해치려는 거라고 엄마한테 다 설명할 거예요. 누가 나를 해치려고 했는지 알아내면 그 사람 가만히 안 둘 거예요! ”그녀가 갑자기 세 사모님을 노려보며 물었다.“날 해치려고 한 사람이 설마 당신들이에요?”이씨 집안 큰 사모님은 이윤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너 같은 짝퉁이 내 손을 더럽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싸구려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남 탓으로 돌리는 뻔뻔함까지 갖춘 거니? 이년아, 잘 들어. 네가 아무리 변명해도 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어머님 머릿속에 새겨져서 절대 잊지 못할 거야. 넌 이제 끝났어.”이씨 집안 셋째 사모님은 몸을 돌려 별장을 향해 걸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찬물 한 바가지를 들고 다시 나왔다.그녀는 모든 사람이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이윤정의 머리에 찬물을 끼얹었다.“악!”이윤정은 비명과 함께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튕겨 일어났다.가뜩이나 날씨가 추운데 찬물까지 끼얹었으니, 이윤정은 너무 추워서 몸을 벌벌 떨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은 흠뻑 젖었고 심지어 바닥에 있는 옷들도 꽤 많이 젖어버렸다.“셋째 동서, 가서 물 한 바가지 더 가져와요. 저년이 덮을 수 있는 옷들을 싹 다 적셔버리고 얼어 죽게 내버려둬요. 언제까지 버티는지 한번 보자고요.”큰 사모님은 셋째 사모님에게 물 한 바가지를 더 가져오라고 분부했다.“나도 같이 가요.”둘째 사모님도 뒤를 따랐다.곧 두 사모님은 각각 찬물 한 바가지를 들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