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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Penulis: 주 한잔
“이해? 내가 왜?”

소우연은 싸늘하게 굳은 눈빛으로 소우희를 쳐다보았고 소우희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흠칫 놀랐다가 이내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언니 아직도 날 많이 원망하고 있는 거잖아. 내가 어떻게 해야 언니가 날 용서해줄 수 있어?”

소우연이 아무런 대답도 없이 소우희를 빤히 쳐다보자 소우희가 눈물을 쓱 닦으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죽어야 화가 풀리겠어?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날 더 예뻐했다는 걸 나도 알아. 오라버니들도 그렇고. 다들 언니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래도 언니는 소씨 가문 딸이잖아. 회남왕과 결혼한 것도 마냥 나쁜 일은 아니야. 어찌 됐든 회남왕은 왕실 사람이고 신분도 높잖아. 내가 민수 오라버니와 혼사를 맺은 게 문제라면 난 이 혼사를 취소해도 돼. 언니 기분만 좋아질 수 있다면 난 상관없어.”

소우희가 엉엉 울면서 몸을 휘청거리자 소우연은 미간을 확 찌푸린 채 동생이 또 무슨 꿍꿍이를 계획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갑자기 찾아와서 이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며 앞을 가로막는 걸 보면 뭔가 속셈이 있는 게 분명하다.

바로 이때, 소우희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갑자기 손을 들고 자신의 뺨을 강하게 때렸고 백옥같이 하얀 소우희의 얼굴은 순식간에 벌겋게 부어 올랐다.

소우연은 소우희의 돌발 행동에 미간을 더욱 찌푸렸다. 혼자서 갑자기 미쳤을 리는 없고 주변에 누군가가 있는 게 확실히다.

이때,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다음 순간 누군가에 의해 옆으로 확 밀린 소우연은 하마터면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

너무도 익숙한 한 남자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소우희를 부축하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우연을 째려보았다.

“소우연! 네가 아무리 불만이 많아도 우희에게 손을 대서는 절대 안 돼! 우희가 네 일로 얼마나 많이 자책하고 있는 줄 알아? 어젯밤에도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밤새 울었어. 네가 회남왕 저택에 가서 고생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데! 네가 어떻게 우희한테 이럴 수 있어!”

소우연에게 손가락질까지 하면서 큰소리로 외치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소우연의 큰오라버니 소현우였다.

어렸을 때 소우연과 소현우는 엄청 친하게 지냈지만 언젠가부터 소우연을 대하는 소현우의 태도가 점점 차가워지더니 나중에는 심지어 소우연을 쳐다보는 눈빛이 혐오로 가득했다.

소우연은 기사회생하고 나서야 이 모든 게 소우희가 몰래 뒤에서 이간질하고 소우연을 모함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에 제일 존경하던 큰오라버니를 보면서 소우연은 그저 씁쓸하고 마음이 시렸다.

“오라버니께서 제가 때렸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런 것이지요. 하지만 오라버니께서 잊으신 게 있습니다. 회남왕비인 제가 철없고 버릇없는 아가씨를 매로 교육한다고 해도 저를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말을 하던 소우연은 천천히 소우희에게 다가가더니 손을 번쩍 들고는 소우희의 반대쪽 얼굴을 강하게 내리쳤다.

힘을 너무 세게 준 탓에 손톱이 소우희의 얼굴을 긁고 말았다. 뺨이 얼얼해지자 소우희는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감싸 쥐었고, 이내 눈물을 줄줄 흘렸다.

한편, 갑작스러운 상황에 소현우도 눈이 휘둥그레진 채 소우연을 쳐다보았다.

“너!”

소현우가 소우연의 뺨을 때리려던 그때, 진규가 빠르게 나타나 소현우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이곳에 오기 전에 이육진은 진규에게 소우연의 안전을 확실하게 지키고 절대 아무도 소우연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명을 받았던 것이다.

소현우는 진규를 보자마자 경악을 금치 못한 채 입을 떡 벌리고는 소우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육진의 성격이 난폭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살인도 함부로 저지른다는 걸 알기에 소우연이 회남왕에게 시집을 간다고 했을 때 다들 소우연이 절대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때 당시 소현우는 소우연의 처지가 안타깝고 마음도 아팠지만 너무도 연약하고 가녀린 소우희를 생각하면 마음을 독하게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이육진은 소우연에게 꽤 잘해주는 듯했고, 심지어 자신의 곁을 지키던 호위무사까지 소우연에게 내어주었다."

소현우는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소우연은 그런 소현우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저희 이만 갑시다.”

소우연이 진규에게 말을 건네자, 두 사람은 곧 돌아서서 떠났다.

소현우는 멀어져 가는 소우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공허함을 느꼈다.

“오라버니…”

이때, 소우희가 조심스럽게 소현우를 불렀고 그제야 정신을 번쩍 차린 소현우는 얼른 소우희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하얗게 앳된 소우희의 뺨에 깊은 상처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벌겋게 퉁퉁 붓기도 했다.

“너무 많이 다쳤어!”

소현우는 얼른 소우희를 부축하여 방으로 돌아가 약을 발라주었다.

한편, 소씨 가문을 나선 소우연은 마차에 오른 뒤 마지막으로 자신이 16년 동안 살았던 저택을 한 번 쳐다보고는 이내 담담하게 시선을 거뒀다.

이제 소우연은 소씨 가문과 완전히 연을 끊을 것이며 앞으로 마주친다고 해도 그저 모르는 사람인 듯 지나칠 것이다.

소씨 가문 대문 앞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들개한테 시신이 물어 뜯겼던 그날, 소우연과 소씨 가문의 모든 인연은 끝이 났다.

회남왕 관저에 도착하자 저택 안에 있던 하인들이 마차에 실은 짐들을 소우연과 이육진 방으로 옮겼다.

방에 들어온 소우연은 짐을 풀다가 자신이 가져온 물건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향초는 소우연이 소씨 가문 큰 마님을 위해 만든 것이다. 젊었을 때 갖은 고생으로 큰 마님은 늘 두통이 심했고 그 탓에 평소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소우연은 많은 의서들을 공부하고 나서야 겨우 진정향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고 몇 개월의 시간을 들여 열 손가락이 전부 까진 결과 진정향을 성공적으로 조제해냈다.

그 뒤로 큰 마님은 잠을 청하지 못하는 날이 없었으며 두통도 많이 완화되었다.

그리고 갖가지 약들은 전부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을 위해 준비했던 것들이다. 평소에도 다치는 일이 많았기에 소우연은 시간이 날 때마다 만들어서 상비해 두었다.

소우연은 소씨 가문 사람들을 위한 자신의 노력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이 우스웠다.

한편, 이육진 곁으로 돌아온 진규는 소우연이 소씨 가문에서 당했던 일들을 이육진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했고 이를 조용하게 듣고 있던 이육진이 차갑게 웃었다.

소씨 가문의 계획이 너무도 뻔하게 보였다. 이민수가 요즘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언젠가 큰 일을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애지중지 키운 작은 딸을 평서왕 관저에 시집보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 계획은 절대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소우연이 3년 전 어디서 살고 있었는지, 남강에 갔었던 적은 없는지 가서 확실하게 알아보거라.”

손에 들고 있던 병서에 시선을 돌린 이육진이 담담한 목소리로 명을 내렸고 고개를 끄덕인 진규는 빠르게 사라졌다.

서재 안에는 향초가 켜져 있었고 만약 소우연도 이곳에 있었다면 이 향초가 바로 자신이 큰 마님의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낸 향초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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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찻잔을 탁자에 올려놓은 소우연은 이육진이 아직도 자신을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이육진은 그녀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저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조금 뒤, 불을 끈 소우연은 옷을 벗은 뒤, 침대 위로 올라갔다.“왕야, 오늘밤에도… 소리를 내야 하는 겁니까?”소우연이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이육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부인께서 꽤 중독됐나 보네.”소우연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저었다. 누가 그런 소리에 중독된단 말인가!한참 후.소우연이 소설 속 결말이 과연 바뀔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이육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난 다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아.”“소자가 어리석어 왕야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겠나이다.”“머리가 나빠서 모르겠다고?”소우연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이육진이 피식 코웃음을 치더니 말을 이어갔다.“난 밤마다 욕망을 함부로 분출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두 사람은 혼사를 치르고 나서 단 한번도 실제로 합방한 적도 없고 심지어 침대보에 묻은 피도 이육진이 자신의 손가락에 상처를 내서 만든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른다.만약 소우연이 밤마다 신음소리를 낸다면 사람들은 괜한 오해를 하게 될 것이다.“오늘 낮에 부인 친정 사람이 찾아왔다고 들었네.”이육진의 말에 소우연이 솔직하게 대답했다.“네, 저를 찾아온 건 사실이지만 전 만나지 않았습니다. 전 이미 왕야와 혼인을 했고 더 이상 그 사람들을 만날 이유도 없고 진원 장군 저택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솔직히 소우연은 이 세상에 더 이상 만나고 싶거나 마음 쓰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육진은 다르다. 이육진은 소우연에게 말을 할 때, 차갑고 퉁명스럽긴 하지만 한 번도 그녀를 다치게 한 적은 없었다.되레 이 저택에 들어오고 나서 이육진은 늘 소우연의 체면을 고려해줬다.나중에 이육진이 소우연에 대한 믿음이 깊어지면 소우연은 반드시 이육진의 얼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13화

    이육진은 자신의 의심이 틀린 건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온화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소우연은 회남왕 관저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한 번도 이육진의 의심을 살만한 일을 한 적이 없으며 이육진을 잘 따랐다.그리고 이날, 경성에 첫눈이 내렸고 소우연은 창가에 기대어 예쁘게 내리는 눈을 구경하고 있었다.이때, 정연이 방으로 들어와 소우연에게 보고를 올렸다.“왕비님, 소씨 가문 둘째 따님 소우희 아씨께서 왕비님을 찾아오셨습니다.”둘째 따님 소우희라니!얼굴이 하얗게 질린 소우연은 정연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럼 이육진만 그녀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정연도 알고 있다는 건가?정연은 잔뜩 놀란 소우연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왕야께서 앞으로 왕비님이 소인이 모셔야 할 주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인은 절대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왕비님께서 외출하시고 싶으실 땐 저택을 지키는 호위병만 데리고 가면 된다고 어디로 가시든 상관없다고 하셨습니다.”정연의 말에 소우연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이육진은 그저 소우연에게 꼬리가 밟힐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소우연은 그저 소씨 가문에서 버림받은 존재로써 부모님의 사랑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라버니들도 그녀에게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이렇게 된 이상, 소우연은 소우희의 계획대로 이뤄지게 가만두지 않을 것이고 소우희가 왕세자빈이 되기 전에 확실하게 짓밟아줄 것이다.“저택 안으로 모셔라.”소우연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며 말했다.“모, 모시라고요?”“별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 밖에 눈도 오는데, 혹여 고뿔이라도 걸려 왕야께서 그 책임을 물은다면, 나 때문에 괜히 왕야께 폐를 끼치는 일이 되지 않겠느냐?”정연은 왠지 소씨 가문의 둘째 딸 대신 시집온 큰딸이 이육진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왜 그러느냐? 혹시 저자를 저택에 들이기 불편한 것이냐?”소우연의 물음에 정연이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정연은 이내 방을 나섰고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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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80화

    소우희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마침 침상 위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던 이종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씁쓸하게 비웃으며 말했다.“그러게 일찍이 죽지 그러셨어요.”하지만 평춘왕을 직접 죽일 생각은 없었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서둘러 목욕탕으로 가서 몸에 묻은 피를 깨끗이 씻었다. 방으로 다시 돌아온 후, 소우희는 사람을 시켜 혜주를 데려오게 했다.난장판이 된 방 안은 시녀들이 깨끗하게 정리해 놓았지만, 공기 중에 가득 퍼진 피비린내는 숨길 수가 없었다.혜주는 잔뜩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소우희는 주변 사람들을 전부 물러가게 한 뒤, 갑자기 그녀를 껴안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아아아…”혜주는 뭐라 말할 수가 없었고 그저 소우희의 등을 살살 두드리며 달래주었다. 소우희의 공포와 무력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소우희는 한참이나 울고 나서야 혜주의 손을 붙잡고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어머니와 셋째 오라버니가 자신에게 얼마나 실망했는지도 전부 말했다.혜주는 찡그린 채 그 마음에 깊이 공감했다.과거에 소우희가 잘 나갈 때는 그녀도 덩달아 영광을 누렸지만, 지금처럼 소우희가 몰락하니 그녀 역시 처참해졌던 것이다.“이 모든 게 다 소우연 때문이야.”소우희는 중얼거리며 미친 듯이 자신의 목과 얼굴을 긁었다. 얼굴에는 금세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생겼다.혜주는 놀라서 과감히 소우희의 손을 붙잡았다. 더 긁으면 얼굴을 망치고 말 거라고 온 힘을 다해 말리고 싶었지만, 혀가 잘린 탓에 그저 급하게 ‘아아’ 소리만 낼 뿐이었다.“혜주야, 나… 나 정말 느낌이 안 좋아…”“나 너무 두려워.”“누가 날 해칠 것만 같아. 소우연이 내 목숨을 노리고 있어. 내가 알던 소우연이 아니야, 너무 독해졌다고!”소우희는 횡설수설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좋지 않은 예감이 마치 거대한 산처럼 그녀의 가슴을 짓눌러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혜주야, 이러다 정말 죽을지도 몰라…” 소우희의 눈에는 공포만 가득했다.“아버지, 어머니,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79화

    몇 바퀴를 더 산책한 후, 소우연은 이육진의 다리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부군의 다리는 앞으로 무리만 하지 않으시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이육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심스레 물었다.“그럼 예전처럼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을까?”그의 깊고 검은 눈동자는 소우연을 간절히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불확실한 기색이 보일까 봐 불안해하는 눈빛이었다.“물론이죠.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내가 묻는 건… 완전히 예전처럼 무공을 다시 익힐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는 걸 말하는 거야.”소우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가능해요. 하지만 무공 수련은 내년 봄이 지나고 난 후부터 하시는 게 좋겠어요.”내년 봄이라…그때까지는 아직 반년 정도 남아 있었다.하늘엔 달이 뜨고, 별들이 밤하늘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정연이 등롱을 들고 조용히 다가와 길을 밝혔다.소우연은 이육진이 너무 오래 걷다가 피곤할까 봐 걱정돼 곧장 본채로 돌아왔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이튿날.소우연이 일어났을 때는 이육진이 이미 조정으로 조회를 나간 뒤였다.아침 식사를 하면서 소우연은 일부러 한 번 물어보았다.“어머니께서 오늘 또 왔느냐?”정연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안 오셨습니다.”잠시 생각한 뒤 정연이 다시 말을 이었다.“어쩌면 앞으로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소우연은 고개를 흔들었다.“분명 다시 올 거다. 오늘 오지 않은 건 평춘왕부에 가서 소한준을 장군부로 데려오는 문제로 바빴기 때문일 거다.”정연이 깜짝 놀랐다.“앞으로 매일 와서 마마를 귀찮게 하시면 어떡하죠?”“그러니 다음번엔 그냥 뒷문을 열어주고, 앞으로 올 때마다 뒷문으로 들어와 별채에서 기다리라고 전하거라.”정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길고 지루한 싸움이 될 듯했다.……평춘왕부.평춘왕 이종대는 이미 하루 종일 물 한 모금조차 넘기지 못했다.그의 입술은 메마르고 갈라져 창백했고, 옅은 핏자국만 희미하게 보였다. 온몸에서 죽음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78화

    이육진은 한참이나 그녀를 바라보다가, 목이 쉰 듯 낮게 속삭였다.“별로 좋지 않았다.”“무슨 일입니까?” 소우연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그의 손을 부드럽게 주물러 주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던 거예요?”“지금 당장은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그럼,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녀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저도 당장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일이 있거든요.”이육진은 작게 웃으며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그렇다면 우리 이렇게 약속하자. 서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정리되면 그때 함께 말하기로.”“좋아요.” 소우연은 망설임 없이 바로 수락했다.“네.”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옷을 벗고 침상으로 올라가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사실 이육진은 오래전부터 소우연이 자신에게 숨기는 비밀이 있음을 느꼈다.그녀가 먼저 말하지 않는다면 굳이 묻지 않았다.게다가 지금은 자기 자신조차 궁에 있었던 일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모든 일의 시작은 어쩌면 두 분이 혼인했던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지도 모르지만, 그토록 오래전의 일이라 어디서부터 조사해야 할지조차 막막했다.그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것을 보고 소우연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이육진은 그녀의 손을 잡아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난 괜찮아.”소우연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부군, 아침은 드셨어요?”이육진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을 정도로 피곤했지만, 우연이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았을 생각에 이내 간석을 불렀다.“부르셨습니까, 전하.”밖에서 기다리던 간석이 곧장 문을 열고 들어왔다.“상을 들이거라.”“예, 전하.”간석이 물러나자, 정연과 명심 등 나인들이 곧바로 들어와 두 사람의 세수를 도왔다.함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난 뒤, 소우연은 이육진에게 좀 쉬라고 권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우연아, 나랑 조금만 더 자자.”그녀는 잠시 말을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77화

    이육진을 보자마자 나인들이 서둘러 예를 올리려 했으나, 그가 손가락을 들어 작은 소리로 막았다.“태자빈은 아직 자고 있느냐?”정연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이 시각까지 일어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평소 소우연은 잠이 많긴 했지만, 이렇게 정오까지 자는 일은 없었다.정연이 어젯밤 소우연이 갑자기 놀라 깬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전했다.이육진은 순간 말이 없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음식을 정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부엌에 가져가 따뜻하게 데워두거라.”“예, 전하.”이육진은 가볍게 방문을 밀고 들어갔다.그는 침상 위에서 잠든 소우연을 깨우지 않으려 발걸음마저 조심스러웠다.어젯밤, 황제는 그를 궁에 남게 하고는 한 가지 약속을 요구했다.장차 그가 황제가 되면, 덕빈을 태후로 책봉해서는 안 되며, 오직 태비로만 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이육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누구나 황제가 덕빈을 가장 아낀다는 것을 아는데, 어째서 태후의 자리를 덕빈에게 주지 않는 것일까.심지어 앞으로 그가 황위에 오르더라도, 결코 덕빈을 태후로 삼아서는 안 된다니.황제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그를 어서 결단을 내리라며 어서 돌아가도 좋다고 하였다.이육진은 밤새도록 이 문제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정신을 차렸을 때는 날이 환히 밝았고, 이미 조회도 한참 전에 시작된 뒤였다.그에게 과연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황제의 말을 따른다면 온 상운국 백성들이 그를 욕할 것이고, 따르지 않는다면 황제의 명을 어기게 되니, 진퇴양난이 따로 없었다.그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소우연의 아름다운 얼굴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그녀는 늘 소우희와 이민수가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했다. 심지어 꿈에서도 늘 불안해하는 아이였다.그때 문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태자 전하께서는 아직 서재에 계십니까?”덕빈 곁에 있는 기 나인의 목소리였다.문밖의 내시가 바로 대답했다. “예, 아직 계십니다.”기 나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태자 전하, 덕빈 마마께서 전하를 단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76화

    소우연은 얼굴을 붉혔지만, 고개는 잊지 않고 끄덕였다.두 사람은 침실로 들어갔다. 정연이 책을 소우연의 베개 밑에 넣으며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마마께서 좀 더 마음을 쓰셔야 합니다. 태자 전하께서는 워낙 뛰어나시니, 앞으로 각 가문의 세력가들이 미인을 보내올 일이 많을 것입니다.”소우연의 뺨이 다시 붉어졌다. 이토록 좋은 사람이니, 앞으로 셀 수도 없이 많은 미녀들이 그에게 다가오겠지.그런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졌다.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장차 이육진은 황제가 될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오직 자신만의 여자가 있을 리 만무했다.이렇게 생각하니 방금 받은 책 같은 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마마?”정연은 소우연의 표정이 어두워진 걸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그때 명심이 탕을 가져왔다.소우연은 반 그릇 정도만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육진에게 발라줄 약고가 다 떨어져 가는 걸 떠올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별채로 가 약을 만들기 시작했다.해가 서쪽으로 지도록 약을 거의 다 완성했으나, 아직 이육진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저녁을 먹고 잠시 책을 보았으나 바깥 하늘은 이미 별이 가득했다.“전하께서는 아직 안 돌아오셨느냐?”소우연이 의서를 덮으며 작은 탁자 곁에 앉아 졸고 있던 정연에게 물었다.정연은 졸다가 소우연이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네, 아직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제가 한번 나가서 확인해 볼까요?”정연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소우연이 손을 들어 말렸다.“아니다, 됐다. 씻고 쉬자.”“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정연이 급히 다가와 보고했다.“마마, 방금 태자 전하께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오늘 밤엔 궁에 머무시고 내일 돌아오신다고 하셨습니다.”“무슨 일이라도 있다더냐?”“그 말씀은 없었습니다.”“알겠다. 너희도 이제 쉬어라.”오늘 밤 돌아오지 않는다니…왜인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75화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던 소현우가 갑자기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우연이가 딱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온 집안이 무릎 꿇고 빌어도 결코 마음을 돌리지 않을 거예요. 한준이 다리를 고쳐줄 생각은 애초에 없을 겁니다.”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가라앉았다.서재 안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소현우가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시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한참 후에야 임진숙이 입을 열었다.“한준이가 평춘왕부에 있으니, 제가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요.”소홍범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렇다면 당신이 다시 한번 태자부를 찾아가 간곡히 부탁해 보는 게 어떻겠소. 우리 부자 셋도 태자 전하께 간청해서 하루빨리 한준이를 데려오는 방법을 찾아보겠소.”방금 전 나인의 말을 들어보니, 소한준이 평춘왕부에서 얼마나 비참하게 지내는지 충분히 알 만했다. 소우희 그 아이는 정말이지 피도 눈물도 없는 아이였다!소홍범이 다시 무겁게 말을 이었다.“어찌 됐든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소. 한준이는 엄연한 장군인데,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장군이 장군이라 할 수 있겠소?”“당신이 내일 다시 가서 부탁해 보고, 만약 거절당하면 모레 또 가고, 그래도 안 되면 매일 찾아가 보시오.”임진숙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었다.……소우연이 태자부로 돌아오자, 명심이 얼굴을 붉히며 천으로 싼 물건 하나를 건넸다.“이게 뭐냐?”소우연이 궁금해하며 포장을 풀었다. 명심은 볼을 붉히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태감께서 태자빈 마마께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태자 전하의 뜻이라고 전해달라고요.”“태자 전하?”책 표지를 보니 제목이 ‘품화보감’이었다. 처음 몇 장은 그저 미인을 칭송하는 시구뿐이라 괜찮았다. 그런데 조금 더 넘기자 남녀의 행동이 점점 애매모호하게 묘사되더니, 다음 장에선 아예 옷이 흐트러진 남녀가 서로 끌어안고 있는 노골적인 그림이 나타났다.“어머나!”소우연은 깜짝 놀라 책을 떨어뜨렸다.정연이 황급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74화

    “우희 걔는…”“그 애 얘긴 내 앞에서 꺼내지도 마라! 걔가 거짓말로 우리를 속이지만 않았어도 진원 장군부가 이 꼴이 됐겠느냐?“그 애가 중간에라도 정신 차리고 한준이에게 그 헛소리를 하지 않았다면, 어찌 한준이가 걔를 도와 우연이를 납치했겠느냐!”“그 애가 그런 짓만 벌이지 않았더라면, 한준이의 두 다리가 망가지지도 않았을 것이다!”임진숙은 입술을 깨물며 억울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아이를 저 혼자 낳은 것도 아닌데, 왜 죄다 나 혼자 책임지란 거예요…” 임진숙이 투덜거렸다.소홍범은 이를 갈며 말했다. “네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어느 집안 안주인이 자식을 안 돌보는 사람이 있더냐?”그제야 임진숙은 입을 다물고 나인을 보며 말했다. “계속 말해봐라. 한준이 다리를 고칠 방법이 있지 않더냐.”나인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장안거리에서 만난 다리가 다친 사람을 태자빈 소우연이 치료했다는 일을 하나하나 자세히 전했다.“우연이가 치료할 수 있다고?”소홍범의 얼굴에 희망이 서렸다. 이틀 동안이나 사람을 시켜 유명 의원들을 수소문했지만, 힘줄이 끊어진 다리라는 소리를 듣고는 누구 하나 치료하겠다는 의원이 없었다.더욱이 요즘 조정 내에서 태자의 명성이 크게 높아졌는데도, 태자의 장인인 자신은 아무도 반기지 않았고, 큰아들과 둘째 아들 역시 조정에서 발붙이기조차 어려워졌다.몇 차례 이육진을 찾아가 관계를 좀 풀어보려 했으나, 이육진은 냉정하게 한 마디로 거절했다.“태자빈이 내게 분명히 말했소. 자신에겐 친정이 없다고 말이오.”“그러니 이 일은 진원 장군부가 태자빈에게 잘못한 것이고, 용서를 받을 수 있을지는 오직 태자빈의 뜻에 달려있소.”소홍범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우연이가 정말 독하게 마음을 먹었더구나. 내가 직접 태자부에 찾아가도 보지도 않으려 하였다.”임진숙이 말했다.“저도 하루종일 문 밖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어요.”소홍범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는데, 자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체면 없이 버티고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73화

    나인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뭐라고 했느냐?”“어느 의원이 낫게 해줬다고?”마차 안에 있던 임진숙은 더는 참지 못하고 마차 문을 열었다. 마부가 부축하자 서둘러 마차에서 내려왔다.소년이 당황하며 물었다. “지금… 뭘 하려는 겁니까?”임진숙이 온화한 척 웃으며 말했다. “꼬마야, 겁먹지 말거라.”그녀는 바닥에 던져진 동전들을 힐끗 보고 나인을 노려본 뒤, 얼른 미소를 지으며 나인을 시켜 은자 두 냥을 가져와 소년을 달랬다.“방금 네가 말하길 네 아버지 다리가 의원 덕에 이제 겨우 붙어 다시 걷게 되었다고 했느냐?”소년은 미간을 찌푸리며 끄덕였다. “예.”“그 의원이 누군지 말해줄 수 있겠느냐?”소년은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만안당의 의원이셨습니다. 아, 이제는 태자빈 마마가 되셨지요.”“태… 태자빈 마마?”임진숙은 입이 벌어진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소우연이 정말 다리를 고칠 줄 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렇다면 태자 전하의 다리도 소우연이 고친 것이란 말인가?그러나 아직 그녀가 의심하고 있는 사이, 소년은 곁에 있는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아버지, 걸을 수 있으시겠어요?”중년 남자가 조심스럽게 표정을 찡그리며, 소년의 부축을 받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고 입을 모았다.“태자빈 마마는 정말 살아있는 보살님이셔! 무료로 진찰도 해주시고, 약 값도 싸게 받으시고… 의술은 또 얼마나 뛰어나신지, 끊어진 다리 힘줄도 이으셨다잖아. 진짜 신의 시라니까!”“그것뿐인가? 태자 전하께서 회남왕이셨을 때 다리가 여러 해 불편하셨는데, 그걸 고친 것도 태자빈 마마 아니냐!”“우리 상운국에 또 신의가 나타나신 거지!”“태자 전하께서 정말 하늘이 내린 태자빈을을 얻으셨구나. 태자빈 마마가 아니었으면 전하께서는 아직도 자유롭게 걷지도 못하셨을 거야…”이런 온갖 소리가 임진숙과 나인의 귀에까지 그대로 들어왔다.그 사이 소년은 아버지를 부축하며 서서히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72화

    “그랬던 거군요.”이지윤은 소우희를 부드럽게 다독이며 위로했지만, 방 안에 널린 지저분한 파편들을 보고는 슬며시 눈살을 찌푸렸다.소우희의 성정이 이토록 괴팍할 줄은 미처 몰랐다.“그리고 그 개만도 못한 자식 말이에요,”“소우연이 왔을 때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려 했어요! 세자 저하, 이제 저 인간을 살려두면 안 됩니다!”소우희는 눈물을 닦으며 침상 위에서 증오의 눈초리로 그들을 쏘아보는 평춘왕 이종대를 가리켰다.“오늘 소우연이 이런 꼴을 보고 틀림없이 의심했을 겁니다. 만약 태자와 상의하여 사람을 보내 조사하기라도 하면, 우린 끝장이에요!”이지윤 역시 마음이 몹시 다급해졌으나, 얼굴에는 조금도 티를 내지 않고 침착하게 소우희를 바라봤다.‘이 여자… 교양이라곤 없고, 양심마저 결여되어 있구나. 정녕 하늘이 내린 ‘봉황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 맞을까?’‘이런 사람이 과연 태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오늘 평춘왕부에서 벌어진 일은 너무도 심각했다. 소우희의 말대로, 소우연이 태자부로 돌아가면… 소우연은 오늘 일을 태자에게 이야기할 것이 분명했다.그렇게 된다면 평춘왕이 죽기 전이든 후든 간에, 그들은 반드시 이 사건을 빌미로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다.그는 지금껏 숨어 살며 어렵사리 목숨을 유지해왔다.그런데 이 귀한 인생을 고작 소우희 같은 여인 하나 때문에 허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그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다.이런 생각을 하며, 이지윤은 소우희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결심을 굳혔다.“개 같은 것들… 천벌을… 받을 것이다…!” 이종대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겨우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바로 그 개 같은 놈이 아니 덥니까? 그때 왕비마마를, 또 첩실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벌써 잊으셨습니까?”이지윤이 차갑게 비웃었다.그는 다시 소우희를 바라보며 덧붙였다.“그분들에게 인간 이하의 고통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아버지께서 당하는 모든 건 당연한 대가입니다.”소우희가 곧바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세자. 저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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