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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Author: 주 한잔
이육진을 보자마자 나인들이 서둘러 예를 올리려 했으나, 그가 손가락을 들어 작은 소리로 막았다.

“태자빈은 아직 자고 있느냐?”

정연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각까지 일어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

평소 소우연은 잠이 많긴 했지만, 이렇게 정오까지 자는 일은 없었다.

정연이 어젯밤 소우연이 갑자기 놀라 깬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전했다.

이육진은 순간 말이 없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음식을 정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부엌에 가져가 따뜻하게 데워두거라.”

“예, 전하.”

이육진은 가볍게 방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는 침상 위에서 잠든 소우연을 깨우지 않으려 발걸음마저 조심스러웠다.

어젯밤, 황제는 그를 궁에 남게 하고는 한 가지 약속을 요구했다.

장차 그가 황제가 되면, 덕빈을 태후로 책봉해서는 안 되며, 오직 태비로만 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육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구나 황제가 덕빈을 가장 아낀다는 것을 아는데, 어째서 태후의 자리를 덕빈에게 주지 않는 것일까.

심지어 앞으로 그가 황위에 오르더라도, 결코 덕빈을 태후로 삼아서는 안 된다니.

황제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그를 어서 결단을 내리라며 어서 돌아가도 좋다고 하였다.

이육진은 밤새도록 이 문제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날이 환히 밝았고, 이미 조회도 한참 전에 시작된 뒤였다.

그에게 과연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황제의 말을 따른다면 온 상운국 백성들이 그를 욕할 것이고, 따르지 않는다면 황제의 명을 어기게 되니, 진퇴양난이 따로 없었다.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소우연의 아름다운 얼굴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그녀는 늘 소우희와 이민수가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했다. 심지어 꿈에서도 늘 불안해하는 아이였다.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자 전하께서는 아직 서재에 계십니까?”

덕빈 곁에 있는 기 나인의 목소리였다.

문밖의 내시가 바로 대답했다.

“예, 아직 계십니다.”

기 나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태자 전하, 덕빈 마마께서 전하를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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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쾅!문이 벌컥 열렸고 이육진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 소우연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녀는 너무 힘들었다.“죽여야 됩니다. 저자를 죽여야 합니다…”소우연은 가까스로 중얼거렸다.한편, 문을 박차고 들어온 이육진은 바닥에 쓰러진 소우연과 주위에 퍼진 핏자국을 보자 한걸음에 달려가 소우연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이민수는 곁에 누워 겁에 질린 표정으로 이육진을 쳐다보았다.“연아, 연아!”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는 소우연을 보며 이육진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이육진의 모습에 소름이 쫙 돋은 이민수는 갈라진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이 피들은 소우연의 것이 아닙니다. 제 것입니다. 소우연은 그저 잠깐 기절했을 뿐입니다.”이육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소우연을 자세하게 살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한 치의 헝클어짐도 없이 온전했지만 이와 반대로 바닥에 널브러진 이민수의 아랫도리는…순간,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오른 이육진은 분노가 더욱 확 치솟았다.품에 소우연을 꼭 끌어안은 이육진은 이민수의 허벅지를 발로 힘껏 차면서 물었다.“네 놈이 연이한테 무슨 짓을 한 것이냐?”카리스마 넘친 이육진을 보며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이민수는 두려운 마음에 말을 더듬었다.“아,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우연이 저에게 독을 먹인 겁니다!”“네 말이 사실이어야 할 것이다!”보아하니 이민수는 이제 평생 남자 구실을 못할 것 같았기에 이육진은 이민수가 더욱 하찮고 가소롭게 느껴졌다.소우연을 안아들고 벌떡 일어선 이육진은 발로 이민수의 가슴을 힘껏 밟고는 방을 나섰다.이때, 진규가 달려와 이육진에게 보고했다.“태자 저하, 밖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살해했습니다.”이육진 품에 안긴 소우연을 보자 진규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마마는 괜찮으신 건가?’“가자.”이육진이 말했다.소우연이 이민수의 아랫도리만 잘라버린 건, 그가 소우희처럼 앞으로 폐인이 되어 힘겹게 사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39화

    “그리고 너무 기분 나빠할 것도 없어. 예전에 내가 네놈에게 진심을 보여줬을 때 네놈도 내 진심을 무참히 짓밟았잖아.”소우연의 말은 비수가 되어 이민수의 심장에 꽂혔다. 그러다가 오늘 하루 종일 소우연을 위해 바보같이 개똥벌레를 잡으러 다녔던 것만 생각하면 너무 창피하고 억울했다.다음날 아침, 따스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방안을 비췄다.천천히 눈을 뜬 소우연은 왠지 조금 서운했다. 이육진은 아직도 그녀를 찾지 못한 건가?윗몸을 일으킨 소우연은 바닥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민수가 초점이 풀린 눈으로 소우연을 노려보고 있었다. 얼굴 근육이 완전히 굳어버렸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다.중독 증상이 심해서 온몸에 마비가 온 것이다.죽일 듯이 노려보는 이민수의 모습에 소우연은 그저 피식 웃으며 물었다.“세자 저하, 그렇게 밤새 제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던 겁니까?”“날 이렇게 만들고 넌 어떻게 그렇게 편하게 잘 수 있어?”소우연이 언제부터 이렇게 독해진 걸까?이민수는 소우연을 밤새 쳐다봤을 뿐만 아니라 살려달라고 계속 소리도 질렀지만 침대 위에 누운 소우연은 너무도 편하게 자고 있었다.그리고 그가 멀리 보냈던 호위무사들은 단 한 명도 그의 구조 신호를 눈치채지 못했다.침대에서 내려온 소우연은 차를 한잔 더 따르더니 이민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세자 저하, 아무래도 조금 더 마셔야겠습니다. 이따가 호위무사가 찾아오면 저하께서 어젯밤 너무 무리하셔서 더 쉬어야 한다고 전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너… 읍!”“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얼른 마셔요.”소우연은 이민수의 턱을 확 잡더니 손쉽게 그의 입을 벌리고는 독이 든 차를 이민수의 목구멍에 들이부었다.그러고는 바닥에 흥건한 핏자국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 정도로 피를 많이 흘렸는데도 살아있는 걸 보면 이민수는 확실히 남자 주인공이 맞다.“독한 년! 천한 년!”팍!이민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우연이 그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네 놈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이 세상에서 독한 놈은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38화

    “너, 너 지금 뭐 하려는 것이냐?”이민수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한편, 손에 가위를 쥔 소우연은 천천히 이민수에게 다가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이민수, 네가 남자 주인공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서방님을 함부로 망가트릴 수는 없는 거야. 일단 너부터 평생 남자구실을 못 하게 되는 고통을 한번 느껴봐.”“아니야! 아니야! 연아, 제발 그러지 말거라. 말로 하면 되지 않느냐? 보내줄게. 지금 당장 너를 보내줄 테니까 제발 그만하거라.”“늦었어. 너에게 개똥벌레를 잡아오라고 보내고 나서 내가 마당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소우연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이 마당은 관리가 잘 되어있지 않았기에 소우연은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서 꽤 잘 자란 독말풀을 발견했다.오후 내내 소우연은 이민수의 경계를 풀면서 어떻게 저 독말풀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다행히 욕망에 눈이 먼 이민수는 소우연에게 절호의 기회를 주었다.이민수가 개똥벌레를 잡으러 가자마자 소우연은 마당을 구경하는 척하면서 빠르게 독말풀을 뜯어 독액을 채취한 것이다.“뭘… 뭘 하고 있었던 것이냐?”“독을 조제했지. 이 독으로 네놈을 바로 죽여버릴까 아니면 목숨 정도는 남겨둘까 고민이 많았어.”소우연은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네놈이 내 서방님을 완전히 망가트리려고 했잖아. 그건 절대 안 되지. 네 놈이 아무리 남자 주인공이라고 해도 그건 절대 용납 못 해!”“남자 주인공이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네놈 말이야. 네놈이 이 세상의 남자 주인공이거든. 황제가 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모든 게 바뀌고 있어.”이민수는 그저 소우연의 미소가 너무 섬뜩했기에 그녀가 얘기한 남자 주인공이나 황제의 운명이라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지금 그저 살고 싶었다.“연아, 내가 잘못하였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거라. 지금 당장 너를 경성에 돌려보내 줄 테니 제발…”말을 하던 이민수는 아랫도리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37화

    “세자…”소우연은 차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참은 채 입을 꾹 닫았다. 그녀는 이민수가 어떤 방식으로 이육진을 망가트리려는 건지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5년 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이육진을 망가트리는 건 이제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의 이육진은 언제 어디서나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고 세력 또한 점점 확장되고 있다.그래야만 원작의 설정대로 이육진이 이민수가 황위에 오르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으니까.“세자 저하께서는 그자를 어떻게 망가트릴 생각이십니까? 그자는 더 이상 5년 전의 회남왕이 아닙니다. 경계심도 더 높아졌고 그 누구도 쉽게 믿지 않을 겁니다.”“알고 싶으냐?”이민수의 물음에 소우연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저하께서 얘기해주실 의향은 있으십니까?”“물론이다. 네가 나한테로 와준다면 말해줄 수 있지.”말을 하던 이민수의 시선이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가다가 이내 대놓고 자신의 뜻을 밝혔다.“너와 내가 좋은 시간을 보내서 네가 온전한 내 여자가 된다면 난 무엇이든 얘기해 줄 수 있다.”이민수는 이육진을 망가트릴 확신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가 얘기한 좋은 시간이라는 건… 실로 역겨웠다.소우연은 돌아서서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들고 매혹적인 눈빛으로 이민수를 쳐다보았다.“세자 저하, 차 한잔 드리겠습니다.”차를 마시라고?“내 뜻에 따르겠다는 것이냐?”이민수의 물음에 소우연이 대답했다.“이육진 그자는 지금까지도 소인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건 소인이 그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겠지요. 오늘 밤 세자 저하와 소인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소인이 결백하다는 걸 아무도 믿지 않을 겁니다. 물론 세자 저하께서 지금 당장 소인을 돌려보내시면 말이 달라지긴 합니다만…”소우연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자 이민수가 바로 대꾸했다.“널 돌려보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연아,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는 걸 너도 잘 알지 않느냐…”소우연의 신뢰를 얻기 위해 이민수는 이미 반나절이나 참고 있었고 이제는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36화

    소우연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서글픈 표정을 짓자 이민수는 순간 넋을 잃어버렸다. 그러다가 힘들게 개똥벌레를 잡아왔는데 소우연이 손쉽게 놓아버린 일로 치솟았던 분노도 조금씩 사리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민수는 재빨리 소우연에게 달려가 말했다.“그래, 연이 너는 언제나 착하구나.”소우연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했다.“하지만 세자 저하 조금 전의 표정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저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소인을 좋아하고 계신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무섭게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좋아하면 큰소리로 얘기하는 건 고사하고, 목소리가 조금만 높아도 상대방이 놀라지 않을까 걱정하는 게 정상입니다. 소인이 반딧불 초롱을 갖고 싶다고 한 건 그저 반딧불이 얼마나 밝은 지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제 충분히 보았고, 그래서 불쌍한 개똥벌레들을 놓아준 것인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겁니까?”소우연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입을 삐죽 내밀며 이민수를 원망하고 있는 듯했다.한편, 소우연의 말에 이민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정말 그런 이유 때문에 놓아준 거라고?’살짝 의심이 들긴 했지만 가녀린 몸집에 가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소우연을 보고 있으면 농락을 당했다는 생각이 온데간데없이 싹 사라졌다.그러다가 소우연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내 앞으로 연이가 원하는 건 최대한 들어주려고 노력하겠다.”말을 하던 이민수는 뭔가 결심이 부족한 것 같아서 다시 말을 바꿨다.“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연이 네 소원은 다 들어줄 것이다.”소우연은 자신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이민수의 눈에서 이글거리는 욕정을 보았다.벌써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가?“연아, 난 오늘 네가 원하는 건 뭐든 이뤄주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니 너도 이제 내 마음을 충분히 알게 되었을 것이야. 이제 우리 그만 화해해도 되지 않겠느냐?”“화해하고 나서는요?”“화해하고 나면 나중에 너를 내 관저로 데리고 가야겠지.”“그럼 나중에… 나중에 세자 저하 관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35화

    “세자 저하도 무예를 잘 하신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이민수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오늘 하루 종일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호기심을 보였다.“당연하지. 소범준은 내 상대도 못 된다.”그는 매우 자신 있게 대답했다.소우연은 아쉬운 듯 말했다.“그렇게 대단하시다니 정말 놀라워요. 하지만 직접 볼 수 없는 게 아쉽네요.”이민수가 서둘러 말했다.“안으로 들어가거라. 내가 무예를 보여줄 테니.”“무예를 구경하는 게 뭐가 재미있겠어요. 저는 그저 저하께서 직접 잡아주신 반딧불이를 보고 싶은 거지, 소범준이 잡은 걸 보고 싶은 게 아니에요.”소우연은 크게 실망한 듯 작게 중얼거렸다.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망울이 물기 어린 듯 순진하게 반짝였다.이것은 애교인가?이민수는 잠시 망설였다.남녀 사이에는 이렇게 여자들의 작은 소망을 들어주며 마음을 얻는 법이다.하지만 반딧불이 같은 것을 직접 잡으러 간다는 건 영 내키지 않았다.그래도 눈앞의 아름다운 소녀를 보니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그래 알겠다. 내가 가서 잡아다 주마.”그녀만 기뻐한다면, 이 정도 하찮은 일이야 해줄 수 있었다.이민수는 말을 마치자 가볍게 몸을 날렸다.순식간에 시냇가에서 반딧불이를 잡고 있던 소범준에게로 가서 무언가 낮게 지시했다.소범준은 즉시 잡아두었던 반딧불이를 모두 놓아주었다.곧이어 소우연은 검은 밤 속에서 흰옷을 입은 이민수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열심히 반딧불이를 잡는 모습을 보았다.소범준이 다시 돌아와 마당에 섰다.그는 소우연을 한 번 바라보더니 무슨 말을 하려다 참았다.그의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불쾌함이 가득했다.소우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내가 네 주인을 이렇게 부려먹는 게 싫다면 나를 도와 도망치게 해주면 되겠구나.”소범준은 차갑게 코웃음쳤다.“도와달라고요? 꿈도 꾸지 마십시오!”소우연은 속으로 헛웃음을 쳤다.도울 생각도 없으면서 왜 굳이 심술 난 표정을 지었던 걸까?그렇게 반 시진 정도 지났을까, 시냇가에서 위아래로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34화

    자신은 다르다?아이를 낳아줄 수 있다고?소우연은 속으로 코웃음쳤다.이 남자의 역겨운 말에 속이 뒤틀렸지만, 그녀는 얼굴에 내색하지 않았다.그저 조용히 아무 말 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이런 기막힌 말들을 소화하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그리고 다시 경성으로 돌아갈 방법도 생각해야 했다.“내 진심을 믿지 못하겠느냐?”그녀가 아무 말도 없자 이민수는 불안해졌다.그는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듯 급히 말을 이었다.“예전에 소 씨 사람들이 너를 대신 시집보낸다 했을 때, 나는 그저 말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로 너를 보낼 줄은 몰랐다. 내 잘못은 그것을 끝까지 막지 못한 것이다. 우연아, 우리 과거는 잊고 다시 시작할 수 없겠느냐?”끝까지 막지 못했다고?과거는 잊고 다시 시작하자고?소우연은 생각했다.이민수의 입은 정말 거짓말로 가득 차 있었다.예전에는 그녀를 속이고, 나중에는 소우희까지 속였다.“생각할 시간을 주세요.”소우연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당장은 도망칠 방법을 알 수 없었다.어느덧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낮에는 대나무 숲과 개울가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르지만, 밤이 되자 사방에 모기가 극성이었다. 잠시 마당에 서 있는 동안 얼굴이며 팔이며 목 뒤까지 모두 모기에 물리고 말았다.이민수는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자 말했다.“혹 누구를 기다리는 것이냐?”설마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있던 폐인 이육진이 이곳까지 찾아올 수 있을 거라 믿는 건가?겨우 일년도 안 된 시간 동안 자신에게 매달렸던 소녀가 이육진에게 빠져버렸단 말인가?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마음이 답답해진 이민수는 더욱 그녀를 빨리 차지하고 싶어졌다.어차피 침상 위에서 이육진 그놈은 남자구실도 제대로 할 수 없지 않는가.남녀의 정은 원래 서로의 마음을 더욱 가깝게 만드는 법이다.일단 자신과 한 번 정을 나누면, 그녀는 자신과 이육진 중 누가 진짜 남자인지 깨닫게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소우연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33화

    중요하다고?그저 자기의 것을 빼앗겼다는 욕심 때문일 뿐이었다.원작에서도 소우희가 비록 여주인공이었지만 이민수 곁에는 수많은 후궁이 있었다. 황제로서 자손이 가장 중요하다는 명목으로 여러 명의 여인을 두고 자식을 많이 낳았다.소우연은 이민수를 바라보며 말했다.“저하께 정말로 많이 상처받았습니다.”이민수는 미안한 표정을 짓고 손을 뻗어 소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재빨리 피했다.소우연이 차분히 물었다.“이미 저흰 엇갈렸어요. 오늘 날 납치한 목적이 대체 무엇이죠? 정말 저하를 위해서라면 저를 빨리 경성으로 돌려보내 주세요.”“태자 전하께서 이 일을 아시게 된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저하께서 더 잘 아시잖아요.”“나를 걱정해 주는 것이냐?”이민수는 기대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아직 그녀가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소우연은 살짝 웃었다.“모르겠어요.”사실 그녀는 그가 죽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지금은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했다. 이 남자를 당해낼 자신도 없었고, 그가 갑자기 돌변해 자신의 명예를 해칠까 봐 두려웠다.“모르겠다고…”이민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부하가 소우연이 시녀와 함께 걸어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순간 그녀를 납치해 숨어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그녀를 숨겨놓고, 가끔씩 보러 오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 것이다.바로 그때 농부처럼 생긴 여인이 바구니를 들고 다가왔다. 여인은 이민수를 보고 공손히 말했다.“공자님, 오늘 저녁식사입니다.”저녁…그렇다.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이제 한 시진 정도만 지나면 어둠이 찾아올 터였다.소우연의 마음이 급격히 조급해졌다.겉보기에 이 마당은 평범해 보였지만 그녀는 이민수의 사병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도망갈 길은 없었다.그 여인은 소우연을 힐끗 보더니 아름답다고 생각했는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물러갔다.“왜 그러느냐, 먹고 싶지 않은 것이냐?”이민수는 소우연이 젓가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32화

    이민수가 자신이 도망치려 한다고 오해하지 않도록 소우연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그녀는 마당을 둘러싼 대나무 숲 안에서만 움직이며 멀리 나가지 않았다.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산세가 깊고 계곡이 흐르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었다.이민수가 말을 달려 꼬박 한 시진이나 걸린 이곳은 이미 경성 근교를 훨씬 벗어난 곳일 터였다.“여기가 어디죠?”소우연은 돌아보지 않고 최대한 먼 곳을 응시하며 물었다.“대나무 오두막.”그런 건 뻔히 보이지 않는가?대나무 오두막이라고?맞다. 이곳은 소설에 등장했던 장소였다. 이민수가 마음이 답답할 때면 조용히 찾아오곤 했던 장소. 그녀가 이곳을 기억하는 이유는 소우희가 대나무 숲을 좋아하고, 계곡을 좋아하고, 작은 다리와 물이 흐르는 풍경을 특히 좋아했기 때문이었다.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그녀의 눈에 작은 다리가 보였다.이민수는 왜 그녀를 굳이 이곳까지 끌고 온 것일까? 이곳은 그의 비밀스러운 장소였다. 만약 이번 생에도 그녀가 도망쳤다면, 그녀는 결국 불행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이곳에서 이민수와 소우희의 정만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소우연의 마음이 복잡해졌다.어떻게 하면 이민수를 설득해서 자신을 돌려보낼 수 있을까? 아까 자신을 품에 안던 그의 눈빛을 떠올리면 지금도 두려움이 밀려왔다.만약 그녀가 너무 냉정하고 차갑게 대한다면 그를 자극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를지도 모를 일이었다.이번 생에 그녀는 반드시 이육진 곁에 남아, 이민수와 소우희의 비참한 최후를 봐야만 했다.결심을 굳힌 소우연은 마음속의 증오를 숨기고 침착히 대응하기로 했다. 그녀는 이육진이 분명 곧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생각하였다.연노랑 치마를 입은 소녀가 마당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그녀의 옷자락을 살며시 들어 올리자 마치 날아오를 듯 가녀린 나비와 같았다.갑자기 그녀가 몸을 돌렸다. 맑고 깨끗한 눈빛으로 웃으며 다가왔다.이민수는 숨이 턱 막혔다.이 얼굴은 예전과 달랐다. 전에는 그녀를 가끔 볼 때면 장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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