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연희의 목소리를 듣자 윌리엄 요한은 마음의 모든 고통이 순식간에 치유되는 것 같았다.“연희야.”피곤함에 잠긴 윌리엄 요한의 목소리에 육연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목소리가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윌리엄 요한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아니. 섬에 볼일 보러 갔었는데 신호가 없어서 전화를 못 받았어. 걱정시켜서 미안해.”“별일 없으면 됐어요. 언제 돌아와요?”“돌아왔어. 볼일 보고 들어갈게. 기다려.”며칠 동안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윌리엄 요한은 전화를 끊고 드디어 몸을 일으키며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점심
윌리엄 요한은 식사를 마치고 까다로운 일을 마저 처리한 뒤 저녁이 되어서야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그 시각 육연희는 머루를 데리고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윌리엄 요한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머루가 뛰어가며 반기자, 윌리엄 요한은 허리를 굽혀 머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엄마 말 잘 들었어?”머루가 냄새를 맡으며 윌리엄 요한의 주변에서 뱅뱅 돌자 윌리엄 요한은 머루를 피하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그만해. 나 이젠 와이프 보러 가야 해.”말을 마친 윌리엄 요한은 천천히 육연희 곁으로 걸어가 그윽한 눈빛으로 육연희를 몇 초 동
윌리엄 요한의 말에 육연희는 당황해하며 눈을 몇 번 깜박거렸다.작은 생명을 포기했었던 지난날의 기억이 마치 파도처럼 떠밀려와 그녀의 가슴을 후벼팠다.아이는 지금도 꿈에 나타나 육연희를 끊임없이 울게 했다.육연희는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웠다.그녀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윌리엄 요한은 가슴이 아파 육연희의 입술에 뽀뽀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말해본 거야. 부담가지지 마. 네가 갖고 싶을 때 가져도 돼. 하지만 연희야, 이것만 기억해둬. 난 평생 널 저버리지 않을 것이고 아이가 생긴다면 내 전부를 바쳐서 사랑해줄
지난번 교훈으로 혼쭐난 에바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티를 낼 수 없었다.에바는 방문을 몇 번 두드리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여왕 폐하, 왕궁의 규칙을 다 베껴 썼으니 한 번 훑어보세요.”에바는 천천히 육연희 곁으로 걸어가 꽃을 윌리엄 요한의 곁에 두고 비굴하게 아첨했다.육연희는 바둑을 내려놓고 에바가 가져온 물건을 받아 한번 대충 훑어본 뒤 말했다.“됐어요. 앞으로 조심하면 돼요. 돌아가세요.”에바는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여왕 폐하, 꽃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이것은 제가 정원에서 직접 따온 꽃이에요
오늘은 육연희의 생일이다.여왕이 된 후 처음으로 맞는 생일이라 궁에서 성대하게 치러질 예정이었다.잠에서 금방 깬 육연희의 코끝에 옅은 꽃향기가 스쳤다.아침 이슬을 머금은 작은 데이지 다발이 예쁜 포장지로 싸여 침대 옆에 놓여 있었다.알록달록한 꽃송이가 포장지에 받쳐져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꽃을 본 육연희는 마음이 달콤해 났다.매일 아침잠에서 깨면 이렇게 작은 데이지 꽃다발을 볼 수 있었는데, 윌리엄 요한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외출할 때만 빼고 매일 뜯어서 침대 옆에 놓아두었다.이런 끈기와 낭만이 육연희를 점점 그에게
윌리엄 요한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육연희는 머뭇거렸다.‘진심으로 사랑하는 건가?’육연희는 윌리엄 요한에게 많이 의존하기도 하고 그가 없으면 보고 싶기도 하고 생각나기도 했다.하지만 육연희는 이것이 진짜 사랑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배우진을 사랑했던 만큼 뜨겁지도 않고, 뼈에 사무치지도 않는다.육연희도 윌리엄 요한은 훌륭한 남편이자 배려심이 깊은 남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경계 적이기만 했던 육연희의 마음이 그나마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다.육연희가 머뭇거리며 말이
육연희는 이런 자신이 한심하고 못나 보였다.‘내가 왜 이렇게 된 거지? 이러면 미색만 탐하던 고대의 황제들과 내가 다를 게 뭐야?’두 사람이 뜨겁게 키스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육연희의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 번호를 본 육연희는 즉시 윌리엄 요한을 밀어내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천우에요.”윌리엄 요한은 육연희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빼앗아 소파에 버리고 고개를 숙여 다시 그녀의 입술을 깨물었다.수없이 걸었지만 육연희가 전화를 받지 않자 천우는 다소 실망한 듯 육문주를 보며 말했다.“아빠, 고모 왜 전화 안 받아?”육
조수아의 말에 조금 전까지 함박웃음을 짓던 육문주는 긴장된 표정으로 허리를 굽혀 조수아를 안아 올리며 말했다.“천우야, 우리가 먼저 엄마를 데리고 병원에 갈 테니 할머니한테 물건을 가지고 병원으로 오라고 해.”천우는 몸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지만, 부끄러워할 겨를도 없이 즉시 침대에서 내려와 엉덩이를 벌거벗은 채 짧은 다리로 뛰어가며 소리쳤다.“할아버지, 할머니, 엄마가 출산하시니까 빨리 물건 들고 병원으로 오세요.”천우의 소리를 들은 박주영과 육상근이 침실에서 뛰쳐나가자 엉덩이를 드러낸 천우가 눈에 들어왔다.박주영은 조수아
“네가 안고 자고 싶다면 될 일이야? 네가 그러다가 이모부한테 쫓겨 나오면 내 잘못 아니다.”둘째와 셋째는 아빠와 천우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신바람이 나서 쉴 새 없이 옹알이했다.육문주는 셋째를 끌어안고 볼 뽀뽀를 하며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그래도 딸이 좋아. 역시 우리 보배 딸이 제일이야. 너희 오빠 한번 봐봐. 고작 3살밖에 안 됐는데 아빠 엄마는 안중에도 없고 와이프를 입에 붙이고 살잖아.”셋째는 아빠의 따뜻한 품에서 웃음꽃을 피우고 입을 비죽이며 뭐라 말했다. 아기의 귀여운 모습에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자리로 돌아간 송학진은 차서윤을 아래 우로 훑어보고 관심 어린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는 나한테 연락해야지. 내가 걱정했잖아. 날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거 맞아?”미간을 찌푸린 채 잔뜩 화가 나 보이는 송학진을 차서윤이 빙그레 웃으며 달래줬다.“걱정하지 마세요. 강한나 씨를 만났을 때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꼈어요. 식사하는 내내 자꾸 저희를 보면서 친구들과 뭐라고 소곤거리더군요. 그 사람들이 무슨 수를 쓸 것을 먼저 예상하고 화장실로 간 거예요. 둘째 도련님이 다가올 때 먼저 스프레이를 뿌리고
“지금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전 그런 적 없어요. 바람피우다가 송 대표님한테 잡혀서 저한테 덮어씌우려는 수작인 것 같은데요. 그만하시죠.”차서윤은 장사연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더니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그녀의 뺨을 후려치고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저 남자를 이용해서 저를 망가뜨리고 제가 바람났다고 학진 씨를 불러올 수작이었죠. 이런 수작에 제가 넘어갈 줄 알았어요? 제가 바보로 보여요?”말을 마친 차서윤은 화가 가시지 않는지 장사연의 나머지 반쪽 뺨을 후려쳤다.“제가 학진 씨와 결혼한 게 마음에 들지 않는가
강한나와 친구들은 시간이 됐다 싶어 화장실을 찾아가서 문이 잠겨있다며 호텔직원을 불러 모았다.그 소식을 들은 송학진도 아림을 데리고 화장실이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무슨 영문인지 화장실 앞에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서 마음이 놓이지 않은 송학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에요?”어떤 여자가 비꼬는 말투로 대답했다.“딱 보면 알리죠. 파렴치한 남녀가 지금 바람피우는 거죠. 정말 이상한 여자가 다 있네요. 방 하나 예약하면 될 일을 굳이 화장실에서 저러잖아요.”“더 스릴 있으니까 그러는 거죠. 저는 이런 장면 많이
강한나가 4년을 기다려 기다려온 것은 송학진이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이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그 소식이 가짜라 생각했고 송학진이 다른 여자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강한나는 송학진과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외국에서 돌아왔는데 한차례 모욕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오늘 아침에 발생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뺨이라도 처맞은 것처럼 얼굴이 얼얼했고 가슴이 아파 났다.그녀는 독기를 품은 눈빛으로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내 남자는 영원히 내 것이야. 누구도 빼앗
송학진이 차서윤과 아림을 데리고 행복한 모습으로 레스토랑에 나타난 것을 본 강한나는 치밀어 오르는 질투심을 참을 길이 없었다.오늘 저녁은 친구들이 그녀를 위해 마련해준 자리였다. 그녀의 친구들은 송학진을 알고 있었고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고 있었다.너무나도 거북한 장면에 강한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어색한 웃음을 자아냈다.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송학진을 불렀다.“학진아.”강한나의 부름 소리를 들은 송학진은 아무런 표정 없이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서윤과 아림을 끌어안고 예약한 자리로 갔다.강한나의 친구들
“그런다고 제가 용서해 줄 것 같아요?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저한테 손대지 마세요.”“여보, 그건 너무했어. 벌써 금욕이라니! 내가 참지 못하고 죽으면 어떡해. 다음에 주의할 테니까 제발 용서해 줘.”두 사람이 차 옆에서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매니저가 아림을 데리고 멀리서부터 다가왔다.아림은 팝콘을 품에 안고 활짝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아빠, 엄마. 얘기 끝나셨어요?”송학진이 허리를 굽혀 아림을 안아 들고 어린이의 볼에 입을 맞춘 뒤 웃으며 대답했다.“응, 얘기 다 끝났어. 근데 어쩌지? 엄마가 아빠 때문에 많이 화
송학진의 갑작스러운 키스에 놀란 차서윤은 아무런 반응도 못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피팅룸에 놓인 커다란 거울에는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거울 앞에서 남자에게 입술을 약탈당하는 모습이 비쳐있었다.거울 속 두 사람의 모습을 본 차서윤은 너무 부끄러워 토마토처럼 목과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키스가 끝나자 수치스러운 마음에 그녀는 송학진의 어깨에 이빨 자국을 남기고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이건 너무했어요!”송학진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잠깐 미간을 찌푸린 뒤 웃으며 대답했다.“미안해.근데 너 아
아림의 말에 송학진은 웃으며 말했다.“요놈이 너한테 뭘 가르친 거야. 이제 보면 엉덩이를 때릴 거야.”“천우 오빠 때리지 마세요. 쌍둥이한테 뽀뽀도 할 수 있게 하고 날 엄청나게 예뻐한단 말이에요. 아빠, 쌍둥이들이 너무 귀여웠어요. 손도 너무 작고 보들보들해요. 나도 여동생을 갖고 싶어요.”아림의 말에 송학진은 웃으며 차서윤의 입술에 뽀뽀하고 그녀의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이건 엄마가 허락해야 해. 여보, 우리 오늘 밤에 딸 소원을 들어줄까?”차서윤은 송학진을 흘겨보며 말했다.“애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요.”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