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육문주는 실명한 상태였고 넘버 11은 말하지 못하는 상태였기에 두 사람은 핸드폰으로 메세지를 주고받으면서 교류했다.이 핸드폰 같은 경우에는 시각장애인 전용이어서 모든 메세지가 음성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또한 이 번호는 넘버 11 하고만 교류했기에 다른 사람은 이 번호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육문주는 핸드폰에 뜬 메세지를 멍한 얼굴로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넘버 99, 제가 보이나요? 저 방금 손을 흔들었는데.]보아하니 눈앞의 이 여자가 바로 그가 지금까지 줄곧 찾아다녔던 그 넘버 11이다.육문주가 다시 그녀 쪽으로
그러다가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에 메세지 하나를 보냈다.[만났는데 역시나 경계심이 너무 깊어 더 다가가기 힘드네요.]문자를 받은 남자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이렇게 쉽게 걸려들면 육문주가 아니지.”옆에 있던 조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제 생각에는 이제부터 육문주가 강지영의 배경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렇게 쉽게 믿을 사람이 아니니까요.”남자는 차가운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그럼 믿게 만들어야지.”육문주는 커피숍에서 나오자마자 차에 올라탄 뒤 진영택에게 당부했다.“가서 이 강
‘근데 왜 나는 아무런 기억도 없지?’조수아에게 물어보려고 방문에 들어서려던 순간 조병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문주가 방금 네가 좋아하는 잔치국수 했는데 네 방에 가져오라고 할게. 둘이 먹으면서 대화 좀 나눠봐.”하지만 조수아는 고개를 저었다.“아빠, 저한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아직 문주 씨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만약 이 일을 잘 처리하지 않으면 아무리 나중에 같이 살게 된다고 해도 우리 사이에는 여전히 벽이 있을 거예요.”그녀의 말에 육문주의 발걸음이 멈춰졌다.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
하지만 가는 곳곳마다 육문주와의 기억이 되살아나 너무 괴로웠다.두 사람은 예전에 여기 그네에 앉아 입맞춤을 나눴고 드넓은 잔디 위에 누워 햇볕을 쬐기도 했다.그리고 밀크와 같이 마당에서 뛰어놀기도 했다.가는 곳마다 육문주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졌다.조수아는 그네에 앉아 밀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밀크야, 나 네 아빠 보고 싶어.”밀크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낑낑거렸다.조수아는 다시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 사람이 임다윤의 친아들이 아니면 얼마나 좋을까?”근데 하늘은 참 무심했다.그렇게
케이스 안에는 한 쌍의 커플링이 들어 있었는데 반지 스타일이 마침 조수아한테 프로포즈하려고 준비했던 반지랑 똑같았다.육문주는 지금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몰랐다.그는 한껏 의아한 얼굴로 반지를 꺼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그러다가 핸드폰으로 예전에 쥬얼리 샵 매니저가 보내온 사진과 비교해 보았다.역시나 똑같은 반지다.그 말인즉 조수아는 당시 프러포즈를 받았던 반지를 여기에 묻었다.‘근데 왜 여기에 묻어뒀지?’육문주는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고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았다.분명 아주 간단한 문제인데 솔직히 믿기 싫
추적추적 내리는 가랑비 때문에 육문주의 옷은 어느새 흠뻑 젖게 되었다.하지만 그는 아무런 기색도 없이 단풍나무 아래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다.조수아는 한지혜와 하루 종일 수다 떨며 놀았더니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조수아는 갑자기 송학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빠, 엄마 묘지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엄마 보러 가고 싶어요.”송학진은 몇 초간 생각하다가 다시 답했다.“넌 지금 임신 중인데 묘지에 음기가 너무 심해 배 속의 아이한테 안 좋아. 엄마가 보고 싶으면 집으로 와. 어차피 여기에 엄마 방이 따
고였던 웅덩이의 물들이 사방으로 튀면서 값비싼 바지를 적셨다.육문주는 지금껏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조수아를 안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그녀의 청춘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 이제야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고 조수아에 대한 깊은 사랑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그는 빗물인지 땀인지 흠뻑 젖은 얼굴로 그녀에게 달려갔다.그리고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의 이름을 겨우 불렀다.“수아야.”조수아는 빨개진 눈으로 그의 얼굴을 어루만져주며 울먹거렸다.“문주 씨, 보고 싶었어.”그녀의 이 말 한마디에 육문주는 더는 참지 못하고 그대로 조수아를 품에
그의 노골적인 말에 조수아는 냉큼 품에서 벗어나더니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오빠도 있는데 부끄럽지 않아?”육문주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옆에서 쭉 지켜보고 있던 송학진에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저놈이 지금 안경을 안 써서 아마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거야.”아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송학진은 육문주의 비아냥거림에 순간 화가 치밀어 단번에 욕설을 퍼부었다.“아예 내가 눈이 멀었다고 말하지 그래? 아무리 시력이 낮아도 고작 0.5밖에 안 되는데 네 면상 정도는 알아볼 수 있거든.”육문주는 조수아의 어깨를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