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들은 육문주는 싸늘하게 그들을 흘겨보았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하게 피식 웃었다.“결혼 선물로 뭘 준비하겠다던가요?”고모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집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그릇이 있는데 듣자 하니 높은 가격에 팔릴 수 있다더라고요. 만약 그 그릇을 대표님한테 드리면 내년에 우리 둘째가 지사장도 될 수 있어요. 지사장이면 연봉만 몇십억이에요. 그쪽 같은 초보 의사의 연봉은 비교도 못 해요.”조수아는 그들의 우쭐거리는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오랜 세월이 지나도 서로를 이기지 못해 애를 쓰는 습관은 여전히 변하
육문준는 어쩔 수 없이 조수아를 품에 껴안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가득했다.“난 먼저 가서 밀린 일 처리를 할게. 급한 일이 처리되면 널 보러 올게.”조수아는 육문주의 등을 쓰다듬었다.“우리 대표님 참 착하네.”육문주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조수아를 바라보았다.“날 유혹하지 마. 아님, 할아버지 다 보는 앞에서 키스를 해버릴 테니까.”조수아는 웃으며 몸을 슬쩍 피하더니 육문주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할아버지, 문주 씨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한대요. 저와 아빠가 남아서 할아버지 곁을 지킬게요.”조태범은 육
조수아는 걸음을 멈추고 잘생긴 외모의 남자를 보며 물었다.“서준 씨가 여기에 웬일이에요?”박서준의 옆모습은 육문주와 사뭇 비슷했다.게다가 체형과 행동도 비슷해서 육문주로 알아봤다.조수아는 뜻밖에도 전혀 관련이 없는 두 사람을 잘못 알아봤다.만약 육문주가 알기라도 하면 눈이 뒤집힐 게 뻔했다.박서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제가 이 땅을 사들였는데 곧 생태농장을 건설하려고 고찰하러 왔어요.”조수아는 박서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눈앞에는 드넓은 호수와 푸른 들판이 펼쳐졌다.조수아는 고개를 끄덕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떻게 온 거야?”육문주는 고개를 숙이고 조수아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는 웃으며 말했다.“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한걸음에 달려왔지.”육문주는 조금이라도 빨리 조수아를 보기 위해 요 며칠 잠을 거의 못 잤다.그의 눈에는 빨간 핏기가 보였다.조수아는 육문주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그의 날렵한 턱선을 만졌다.“많이 힘들었지?”육문주의 오똑한 콧날이 그녀의 뺨을 스치더니 그는 그녀의 어깨에 기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응. 많이 힘들었어. 근데 너랑 뜨거운 밤을 보낼 때보다는 안 힘들었어.”조수아는 그의 야
육문주의 얼굴에는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졌다.그는 박서준의 귓가에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당신 정체가 도대체 뭐예요. 수아와 무슨 관계인 거예요?”박서준은 여유롭게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피식 웃었다.“맞춰봐요.”육문주는 잔뜩 긴장해서 허벅지에 힘을 바짝 주었다. 그는 웃을 짜내며 이를 꽉 깨물었다.“서준 씨가 누구든 수아를 뺏어 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 수아는 제 여자예요.”“그건 대표님의 능력에 달렸죠. 저는 수아 씨를 평생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어요. 저는 약속한 건 꼭 지켜요.”“소꿉놀이할 때 한 약속을 말하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간 조수아는 육문주가 아랫목에 앉아 조태범과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는 검은색 하이넥 스웨터와 깔끔한 핏의 양복바지를 입고 있었다.길쭉한 다리, 꼿꼿이 핀 허리, 스웨터 소매는 약간 걷어 올려 단단하고 탄탄한 팔 라인이 드러나 있었는데 우아한 기품이 이곳의 환경과 어울리지 않아 매우 강한 인상을 주었다.조수아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조태범은 곧바로 말했다.“수아야, 이리 와서 나 좀 도와주렴. 이 녀석 바둑을 참 잘 두는구나. 벌써 나를 세 판이나 이겼지, 뭐니.”조수아는 웃으며 다가가 조태범의
말을 마치자 그는 안으로 들어섰다.그리고 들어가자마자 아랫목에 앉아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검은 옷차림의 남자는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있었다.또 검은 머리가 이마 위로 드리워져 이목구비를 더욱 또렷해 보이는 것 같았고 그 깊은 눈동자에는 옅은 미소가 띠어있었다.그 모습을 보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해하던 조인우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다리도 계속해서 덜덜 떨리고 있었다.윤혜미는 아들의 이상함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곧장 그의 팔을 잡고 말했다.“아들, 네가 증조할아버지께 좀 알려드려. 이 물건들이 가짜인지 아닌지 좀
육문주는 조수아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가만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했다.“지금 당장 전문가를 불러서 할아버지 진찰받게 할게. 우리 지금 당장 시내로 가자.”그러자 문 앞에 있던 사람들이 즉시 막아섰다.“이런 병은 치료해도 소용없어요, 돈만 낭비입니다. 그쪽들은 돈이 많으니까 써도 되지만, 우리에겐 없어요.”“맞아요, 저희도 없습니다. 저희 집 아이 셋도 장가보내야 하는데, 돈이 어디 있겠어요.”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소란을 피웠다. 이에 조수아는 차갑게 말했다.“여러분들은 돈 쓸 필요 없으십니다. 이제부
“네가 안고 자고 싶다면 될 일이야? 네가 그러다가 이모부한테 쫓겨 나오면 내 잘못 아니다.”둘째와 셋째는 아빠와 천우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신바람이 나서 쉴 새 없이 옹알이했다.육문주는 셋째를 끌어안고 볼 뽀뽀를 하며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그래도 딸이 좋아. 역시 우리 보배 딸이 제일이야. 너희 오빠 한번 봐봐. 고작 3살밖에 안 됐는데 아빠 엄마는 안중에도 없고 와이프를 입에 붙이고 살잖아.”셋째는 아빠의 따뜻한 품에서 웃음꽃을 피우고 입을 비죽이며 뭐라 말했다. 아기의 귀여운 모습에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자리로 돌아간 송학진은 차서윤을 아래 우로 훑어보고 관심 어린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는 나한테 연락해야지. 내가 걱정했잖아. 날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거 맞아?”미간을 찌푸린 채 잔뜩 화가 나 보이는 송학진을 차서윤이 빙그레 웃으며 달래줬다.“걱정하지 마세요. 강한나 씨를 만났을 때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꼈어요. 식사하는 내내 자꾸 저희를 보면서 친구들과 뭐라고 소곤거리더군요. 그 사람들이 무슨 수를 쓸 것을 먼저 예상하고 화장실로 간 거예요. 둘째 도련님이 다가올 때 먼저 스프레이를 뿌리고
“지금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전 그런 적 없어요. 바람피우다가 송 대표님한테 잡혀서 저한테 덮어씌우려는 수작인 것 같은데요. 그만하시죠.”차서윤은 장사연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더니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그녀의 뺨을 후려치고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저 남자를 이용해서 저를 망가뜨리고 제가 바람났다고 학진 씨를 불러올 수작이었죠. 이런 수작에 제가 넘어갈 줄 알았어요? 제가 바보로 보여요?”말을 마친 차서윤은 화가 가시지 않는지 장사연의 나머지 반쪽 뺨을 후려쳤다.“제가 학진 씨와 결혼한 게 마음에 들지 않는가
강한나와 친구들은 시간이 됐다 싶어 화장실을 찾아가서 문이 잠겨있다며 호텔직원을 불러 모았다.그 소식을 들은 송학진도 아림을 데리고 화장실이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무슨 영문인지 화장실 앞에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서 마음이 놓이지 않은 송학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에요?”어떤 여자가 비꼬는 말투로 대답했다.“딱 보면 알리죠. 파렴치한 남녀가 지금 바람피우는 거죠. 정말 이상한 여자가 다 있네요. 방 하나 예약하면 될 일을 굳이 화장실에서 저러잖아요.”“더 스릴 있으니까 그러는 거죠. 저는 이런 장면 많이
강한나가 4년을 기다려 기다려온 것은 송학진이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이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그 소식이 가짜라 생각했고 송학진이 다른 여자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강한나는 송학진과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외국에서 돌아왔는데 한차례 모욕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오늘 아침에 발생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뺨이라도 처맞은 것처럼 얼굴이 얼얼했고 가슴이 아파 났다.그녀는 독기를 품은 눈빛으로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내 남자는 영원히 내 것이야. 누구도 빼앗
송학진이 차서윤과 아림을 데리고 행복한 모습으로 레스토랑에 나타난 것을 본 강한나는 치밀어 오르는 질투심을 참을 길이 없었다.오늘 저녁은 친구들이 그녀를 위해 마련해준 자리였다. 그녀의 친구들은 송학진을 알고 있었고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고 있었다.너무나도 거북한 장면에 강한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어색한 웃음을 자아냈다.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송학진을 불렀다.“학진아.”강한나의 부름 소리를 들은 송학진은 아무런 표정 없이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서윤과 아림을 끌어안고 예약한 자리로 갔다.강한나의 친구들
“그런다고 제가 용서해 줄 것 같아요?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저한테 손대지 마세요.”“여보, 그건 너무했어. 벌써 금욕이라니! 내가 참지 못하고 죽으면 어떡해. 다음에 주의할 테니까 제발 용서해 줘.”두 사람이 차 옆에서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매니저가 아림을 데리고 멀리서부터 다가왔다.아림은 팝콘을 품에 안고 활짝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아빠, 엄마. 얘기 끝나셨어요?”송학진이 허리를 굽혀 아림을 안아 들고 어린이의 볼에 입을 맞춘 뒤 웃으며 대답했다.“응, 얘기 다 끝났어. 근데 어쩌지? 엄마가 아빠 때문에 많이 화
송학진의 갑작스러운 키스에 놀란 차서윤은 아무런 반응도 못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피팅룸에 놓인 커다란 거울에는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거울 앞에서 남자에게 입술을 약탈당하는 모습이 비쳐있었다.거울 속 두 사람의 모습을 본 차서윤은 너무 부끄러워 토마토처럼 목과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키스가 끝나자 수치스러운 마음에 그녀는 송학진의 어깨에 이빨 자국을 남기고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이건 너무했어요!”송학진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잠깐 미간을 찌푸린 뒤 웃으며 대답했다.“미안해.근데 너 아
아림의 말에 송학진은 웃으며 말했다.“요놈이 너한테 뭘 가르친 거야. 이제 보면 엉덩이를 때릴 거야.”“천우 오빠 때리지 마세요. 쌍둥이한테 뽀뽀도 할 수 있게 하고 날 엄청나게 예뻐한단 말이에요. 아빠, 쌍둥이들이 너무 귀여웠어요. 손도 너무 작고 보들보들해요. 나도 여동생을 갖고 싶어요.”아림의 말에 송학진은 웃으며 차서윤의 입술에 뽀뽀하고 그녀의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이건 엄마가 허락해야 해. 여보, 우리 오늘 밤에 딸 소원을 들어줄까?”차서윤은 송학진을 흘겨보며 말했다.“애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요.”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