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뜨거운 눈빛이 조수아를 향했다.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흘러나왔다.“조수아,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한지혜는 막무가내로 친구를 끌고가려던 남자의 앞을 막아나섰다.“지금 뭐하자는 건데? 이제 진실을 알고 나니까 수아한테 참회라도 하려고? 이제 필요 없네요, 육 대표님. 당신이 송미진에게 헌혈을 시키려고 수아를 병원에 끌고 갔을 때부터 이미 수아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어. 수아 그때의 몸 상태가 피를 헌혈할 수가 없는 상태였어. 송미진을 살리려고 수아 거의 죽다 살아난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런데 육문주 당신은? 수
조수아는 그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뒤돌아서 떠났다. 그녀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육문주는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그때 송미진이 안에서 걸어나왔다가 어둡게 내려앉은 그의 얼굴을 보고는 순식간에 울음을 터뜨렸다.“문주 오빠, 저 일부러 조수아 씨 모함하려 했던 거 아니었어요. 그때 오빠랑 조수아 씨가 사귀고 있다는 걸 들은 순간 저도 모르게 감정이 제어가 안 돼서 커피를 뿌리게 됐던 거였어요. 저 병이 발작하면 머리가 컨트롤이 안 되는 거 알잖아요. 그 일이 있고 나서 오빠가 진실을 알게 되면 저를 멀리하게 될까 봐, 그게 두
깜짝 놀란 진영택은 식은땀을 한 바가지 흘렸다. 그를 힐끔 노려본 육문주가 딱딱한 음성으로 말했다.“운전에 집중하기나 해.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넵.”“그 여자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어?”“아직이요. 그분 성함이 한영미인데 여태 아무 정보도 알아낸 게 없는 걸로 봐서는 십중팔구 개명을 한 걸로 보여집니다.”“계속 조사해. 조수아한테 절대 접근 못하게 하고.”육문주는 조수아가 1년 여를 실종한 원인에 분명 그 여자와 관련되어 있을 거라 확신했다. 안 그러면 조수아가 그 여자를 그렇게까지 미워할 이유가 없었기
안혜원의 눈밑에 당황한 표정이 떠올랐다가 곧바로 사라졌다. 곧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온 그녀가 대꾸했다.“어떻게 그런 얘기를 하실 수가 있으세요. 그때 설매가 세상을 떠난 것도 아이를 지키려다 그렇게 된 건데, 아무렴 가짜가 있겠어요. 미진이가 얼굴은 몰론이고 혈액형마저 제 아버지랑 똑같은데. 미진이 아버지 앞에서는 절대 그런 얘기를 하지 마세요. 안 그러면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그 사람 한 번 성질이 올라오면 친척이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어지는 사람이잖아요.”“뭐가 어째? 누가 그런 사람이랑 친척이야. 그때 우리 문주가 눈도
조수아의 두 손이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그녀는 송미진이 절대로 자신을 이대로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았다. 그날 법정에서 재생한 녹음 파일이 바로 조수아를 자극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무기였다.생각해 보지 않아도 지금 회사 전체에 그녀와 육문주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소문이 쫘악 퍼져 있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당민석이 조수아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조심스레 그녀의 팔을 터치했다.“조 비서님, 저희는 조 비서님을 믿어요. 분명 무슨 오해가 있었던 거겠죠.”조수아는 쓴웃음을 흘렸다.“아니요. 오해는 없습니다. 이
조수아는 그저 옅게 웃으며 답했다.“안혜원 이사님께서 직접 정하신 부분입니다. 전 관여할 권리가 없었습니다.”그리고 솔직히 관여하고 싶지도 않았다. 눈앞의 차가운 얼굴을 내려다 보는 육문주의 눈썹이 작게 들썩였다. “이번 회사 창립 기념 파티에 내가 누굴 데리고 출석하든, 그 의미를 모르지 않잖아. 근데 왜 질투 안 해?”조수아의 어조에서는 여전히 그 어떠한 파란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표님, 새장에 갇힌 새는 그런 걸 관여할 권력이 없는 존재입니다. 저의 임무는 대표님의 섹스파트너로서의 성심을 다 하는 것, 그저 침대에
방금 전의 그 여자는 조수아의 친어머니였다. 그녀는 왜 자신의 어머니가 이렇게 돼버린 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녀 하나 때문에 조수아의 아버지는 하마터면 파산을 할 뻔했고, 심장에 심각한 이상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조수아는 제일 심한 정도의 우울장애에 심지어 목소리까지 내는 법을 잊게 되었다. 그로부터 이렇게나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왜 그녀는 자신들을 놓아주지 않는지, 조수아는 한탄이 앞섰다.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조수아는 가방에서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얼른 정서를 가라앉히고 통화버튼을 눌렀다.“의상 피팅하러
육문주의 동작이 부자연스러워졌고 그의 얼굴에선 온화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조수아에게서 이 사람의 이름을 들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녀는 늘 그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른다. 육문주는 조수아의 삶에서 이 남자를 없애버리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못 들은 척하며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남자의 강한 소유욕은 그의 이성을 잃게 했다. 그는 조수아가 다른 남자에게 의지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그녀가 꿈속에서 매번 자신이 아닌 다른 남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더더욱 용납할 수 없었다.표정이 어두워진 육문주는 결국 감정을
강한나가 4년을 기다려 기다려온 것은 송학진이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이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그 소식이 가짜라 생각했고 송학진이 다른 여자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강한나는 송학진과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외국에서 돌아왔는데 한차례 모욕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오늘 아침에 발생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뺨이라도 처맞은 것처럼 얼굴이 얼얼했고 가슴이 아파 났다.그녀는 독기를 품은 눈빛으로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내 남자는 영원히 내 것이야. 누구도 빼앗
송학진이 차서윤과 아림을 데리고 행복한 모습으로 레스토랑에 나타난 것을 본 강한나는 치밀어 오르는 질투심을 참을 길이 없었다.오늘 저녁은 친구들이 그녀를 위해 마련해준 자리였다. 그녀의 친구들은 송학진을 알고 있었고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고 있었다.너무나도 거북한 장면에 강한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어색한 웃음을 자아냈다.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송학진을 불렀다.“학진아.”강한나의 부름 소리를 들은 송학진은 아무런 표정 없이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서윤과 아림을 끌어안고 예약한 자리로 갔다.강한나의 친구들
“그런다고 제가 용서해 줄 것 같아요?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저한테 손대지 마세요.”“여보, 그건 너무했어. 벌써 금욕이라니! 내가 참지 못하고 죽으면 어떡해. 다음에 주의할 테니까 제발 용서해 줘.”두 사람이 차 옆에서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매니저가 아림을 데리고 멀리서부터 다가왔다.아림은 팝콘을 품에 안고 활짝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아빠, 엄마. 얘기 끝나셨어요?”송학진이 허리를 굽혀 아림을 안아 들고 어린이의 볼에 입을 맞춘 뒤 웃으며 대답했다.“응, 얘기 다 끝났어. 근데 어쩌지? 엄마가 아빠 때문에 많이 화
송학진의 갑작스러운 키스에 놀란 차서윤은 아무런 반응도 못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피팅룸에 놓인 커다란 거울에는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거울 앞에서 남자에게 입술을 약탈당하는 모습이 비쳐있었다.거울 속 두 사람의 모습을 본 차서윤은 너무 부끄러워 토마토처럼 목과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키스가 끝나자 수치스러운 마음에 그녀는 송학진의 어깨에 이빨 자국을 남기고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이건 너무했어요!”송학진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잠깐 미간을 찌푸린 뒤 웃으며 대답했다.“미안해.근데 너 아
아림의 말에 송학진은 웃으며 말했다.“요놈이 너한테 뭘 가르친 거야. 이제 보면 엉덩이를 때릴 거야.”“천우 오빠 때리지 마세요. 쌍둥이한테 뽀뽀도 할 수 있게 하고 날 엄청나게 예뻐한단 말이에요. 아빠, 쌍둥이들이 너무 귀여웠어요. 손도 너무 작고 보들보들해요. 나도 여동생을 갖고 싶어요.”아림의 말에 송학진은 웃으며 차서윤의 입술에 뽀뽀하고 그녀의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이건 엄마가 허락해야 해. 여보, 우리 오늘 밤에 딸 소원을 들어줄까?”차서윤은 송학진을 흘겨보며 말했다.“애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요.”송학
아림은 방긋 웃으며 손뼉을 치고 말했다.“좋아요. 엄마 반지도 사요. 결혼하려면 다이아몬드 반지가 있어야 하잖아요.”송학진은 웃으며 아림의 볼을 꼬집고 말했다.“그래. 겸사겸사 웨딩드레스도 보자. 아림이가 결혼식 때 엄마 아빠의 화동이 되어줄래?”“좋아요. 천우 오빠가 진작에 알려줬어요. 화동하면 돈 봉투도 준다고 그러던데. 아빠, 저한테도 줄 거예요?”“당연하지. 아빠가 돈 봉투를 두둑하게 챙겨줄게. 우리 아림은 어떻게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럽지?”송학진은 또 차서윤의 어깨를 감싸 안고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
강한나는 가슴이 찢어지듯 슬퍼 애처롭게 울며 진심을 담아 간절하게 말했지만, 송학진은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차서윤만 바라보다 강한나를 곁눈질하며 말했다.“너에 대한 지난 내 감정을 부정하는 거 아니야. 네 말대로 널 얻기 위해 노력을 했었지. 하지만 네가 떠나는 순간에 알았어. 너의 인생에서 난 유일한 존재가 아니었구나. 심지어 넌 나보다 사업이 더 중요했잖아. 아무리 내가 감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야. 굳이 나한테 진심이었던 적도 없던 여자 때문에 내가 슬퍼할 필요는 없잖아. 하지만 차서윤은 달라. 차서
송학진의 말에 차서윤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솔직히 말해서, 강한나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차서윤은 줄곧 불안했고 자신이 어렵게 얻은 행복이 이제 막 시작되려다가 금세 끝날 것 같았다.강한나와 비교하면 차서윤은 아이가 있다는 것 외에는 비교의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차서윤은 강한나처럼 좋은 집안 배경도 없었고 송학진과 함께 지낸 시간도 길지 않았으며 그녀처럼 화려한 직업도 없었다.차서윤은 그냥 평범 하려야 더 평범할 수 없는 비서일 뿐이었다.그리고 송학진과 강한나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으니 좋은 추억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했던 차서
차서윤은 물끄러미 송학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앞으로 우리 계속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당연하지. 나랑 이혼하고 싶어?”“너무 정신없이 여기까지 왔잖아요. 그래서 자꾸 꿈만 같아요.”송학진은 차서윤의 귓가에 엎드려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어젯밤 내가 너무 살살했지? 그래서 아직도 꿈같다는 거야? 오늘에는 안 봐줄 테니까 날 탓하지 마.”말을 마친 송학진은 고개를 숙여 차서윤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어젯밤이 마른 장작불이었다면 지금은 불난 집에 휘발유를 부은 정도였다.이내 방안은 뜨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