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아는 그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뒤돌아서 떠났다. 그녀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육문주는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그때 송미진이 안에서 걸어나왔다가 어둡게 내려앉은 그의 얼굴을 보고는 순식간에 울음을 터뜨렸다.“문주 오빠, 저 일부러 조수아 씨 모함하려 했던 거 아니었어요. 그때 오빠랑 조수아 씨가 사귀고 있다는 걸 들은 순간 저도 모르게 감정이 제어가 안 돼서 커피를 뿌리게 됐던 거였어요. 저 병이 발작하면 머리가 컨트롤이 안 되는 거 알잖아요. 그 일이 있고 나서 오빠가 진실을 알게 되면 저를 멀리하게 될까 봐, 그게 두
깜짝 놀란 진영택은 식은땀을 한 바가지 흘렸다. 그를 힐끔 노려본 육문주가 딱딱한 음성으로 말했다.“운전에 집중하기나 해.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넵.”“그 여자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어?”“아직이요. 그분 성함이 한영미인데 여태 아무 정보도 알아낸 게 없는 걸로 봐서는 십중팔구 개명을 한 걸로 보여집니다.”“계속 조사해. 조수아한테 절대 접근 못하게 하고.”육문주는 조수아가 1년 여를 실종한 원인에 분명 그 여자와 관련되어 있을 거라 확신했다. 안 그러면 조수아가 그 여자를 그렇게까지 미워할 이유가 없었기
안혜원의 눈밑에 당황한 표정이 떠올랐다가 곧바로 사라졌다. 곧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온 그녀가 대꾸했다.“어떻게 그런 얘기를 하실 수가 있으세요. 그때 설매가 세상을 떠난 것도 아이를 지키려다 그렇게 된 건데, 아무렴 가짜가 있겠어요. 미진이가 얼굴은 몰론이고 혈액형마저 제 아버지랑 똑같은데. 미진이 아버지 앞에서는 절대 그런 얘기를 하지 마세요. 안 그러면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그 사람 한 번 성질이 올라오면 친척이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어지는 사람이잖아요.”“뭐가 어째? 누가 그런 사람이랑 친척이야. 그때 우리 문주가 눈도
조수아의 두 손이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그녀는 송미진이 절대로 자신을 이대로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았다. 그날 법정에서 재생한 녹음 파일이 바로 조수아를 자극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무기였다.생각해 보지 않아도 지금 회사 전체에 그녀와 육문주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소문이 쫘악 퍼져 있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당민석이 조수아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조심스레 그녀의 팔을 터치했다.“조 비서님, 저희는 조 비서님을 믿어요. 분명 무슨 오해가 있었던 거겠죠.”조수아는 쓴웃음을 흘렸다.“아니요. 오해는 없습니다. 이
조수아는 그저 옅게 웃으며 답했다.“안혜원 이사님께서 직접 정하신 부분입니다. 전 관여할 권리가 없었습니다.”그리고 솔직히 관여하고 싶지도 않았다. 눈앞의 차가운 얼굴을 내려다 보는 육문주의 눈썹이 작게 들썩였다. “이번 회사 창립 기념 파티에 내가 누굴 데리고 출석하든, 그 의미를 모르지 않잖아. 근데 왜 질투 안 해?”조수아의 어조에서는 여전히 그 어떠한 파란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표님, 새장에 갇힌 새는 그런 걸 관여할 권력이 없는 존재입니다. 저의 임무는 대표님의 섹스파트너로서의 성심을 다 하는 것, 그저 침대에
방금 전의 그 여자는 조수아의 친어머니였다. 그녀는 왜 자신의 어머니가 이렇게 돼버린 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녀 하나 때문에 조수아의 아버지는 하마터면 파산을 할 뻔했고, 심장에 심각한 이상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조수아는 제일 심한 정도의 우울장애에 심지어 목소리까지 내는 법을 잊게 되었다. 그로부터 이렇게나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왜 그녀는 자신들을 놓아주지 않는지, 조수아는 한탄이 앞섰다.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조수아는 가방에서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얼른 정서를 가라앉히고 통화버튼을 눌렀다.“의상 피팅하러
육문주의 동작이 부자연스러워졌고 그의 얼굴에선 온화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조수아에게서 이 사람의 이름을 들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녀는 늘 그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른다. 육문주는 조수아의 삶에서 이 남자를 없애버리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못 들은 척하며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남자의 강한 소유욕은 그의 이성을 잃게 했다. 그는 조수아가 다른 남자에게 의지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그녀가 꿈속에서 매번 자신이 아닌 다른 남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더더욱 용납할 수 없었다.표정이 어두워진 육문주는 결국 감정을
육문주의 눈가에 살벌한 기운이 짙어졌다.“당장 해고해. 그리고 영원히 회사에 드나들지 못하도록 해.”“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조수아의 눈앞에는 늠름하게 생긴 육문주의 얼굴이 있었다. 그는 온몸을 벌거벗은 채 그녀를 품에 꼭 가두고 있었다. 순간 조수아의 뇌리에 어젯밤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조수아와 육문주는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다. 조수아가 흥분하자 육문주는 그녀에게 음란한 말을 하게 했는데, 조수아는 그 말들을 생각하자 낯이 뜨거워졌다. 조수아는 어젯밤 그와 잠자리를 가진 후 확실히 마음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그룹의 임원들이었기 때문에 새로 온 비서는 아예 그들의 안중에도 없었다.허나연의 말이 끝난 지 한참 지났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호응하지 않았다.개의치 않은 허나연은 육천우의 옆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프로젝터에 연결했다.육천우는 차갑고 매서운 눈빛으로 모두를 쏘아보았고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허 비서의 목소리가 작은 문제인가요? 아니면 몇 년을 못 본 사이에 다들 귀가 어두워지셨나요?”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놀라서 두 다리를 벌벌 떨었다.상대하기가 쉬워 보이는 육 대표님이지만 독해지기 시작하면 그
윤곽이 뚜렷한 육천우의 잘생긴 얼굴을 본 허나연은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하였다.‘해외에 3년을 있더니 왜 이렇게 변한 거야! 설마 로맨스 소설책을 너무 많이 본 것은 아니겠지. 이렇게 갑작스럽게 뽀뽀하면 누가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속눈썹을 털썩 이던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뭐 하는 거야?”얼굴이 빨개진 허나연을 본 육천우는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케이크를 먹었어. 회사를 위해 휴지 한 장이라도 절약하려고 너의 입술에 묻은 크림을 내 입으로 닦아줬지.”허나연은 화가 나서 그를 노려보았다.“회사가 파산할 것도
육천우는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확실하지는 않아. 됐어. 이제는 그만 놀릴게. 아직 아침을 먹지 않은 것을 알고 비서더러 네가 좋아하는 슈 크림빵이랑 치즈케이크를 사 오라고 했으니 얼른 먹어.”육천우는 허나연의 손을 잡고 식탁 앞에 왔다.그녀에게 만두 하나를 짚어주고 우유 한잔을 따라준 후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좀 처리할 서류가 있으니 혼자 먹고 있어.”허나연은 스스럼없이 만두를 입에 집어넣고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육 대표님은 모든 직원에게 이렇게 친절합니까? 외국에 있을 때도 아침을 사
차유라는 허나연의 사원증에 똑똑히 ‘대표 비서 허나연’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주먹을 꽉 쥐였다.업계의 모든 사람은 육천우에게는 불문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의 비서는 줄곧 남자였다.허나연을 만난 후 육천우는 정략결혼의 압박 때문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그녀를 편애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오래된 습관을 버렸다.마음속으로 질투를 억누른 차유라는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축하해요. 하지만 제가 미리 말씀드리는데 대표님의 비서는 전문적인 지식과 수양을 갖춰야 하는 직업이지 아이들의 소꿉장난 아니에요. 무용수인 나연 씨
이 문제를 이전에 두었더라면 허나연은 망설였을 것이지만 차유라의 등장으로 그녀의 마음에 큰 변화가 생겼다.차유라가 육천우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화가 난 허나연은 그를 뺏길까 봐 일부러 그들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알렸다.예전처럼 다른 사람과 육천우를 공유하기 싫었고 혼자만 그를 소유하고 싶었다.육천우가 그녀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육천우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뜨겁지 않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하여도 꼭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던 그녀였다.까맣게 반짝이는 눈동자를 늘어뜨린 허나연은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나마 조금은
그가 접근하자 허나연의 심장은 쿵쿵 뛰었고 그 하얀 얼굴도 점점 뜨거워졌다.어린 시절 단순했던 감정도 어느새 맛이 변해 버렸다.차유라가 육천우를 바라보던 눈빛을 생각하니 가슴이 시큰거렸다.그들은 지난 3년 동안 함께 일했다.육천우가 그녀와 연락이 줄어들었던 것도 옆에 미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 허나연은 화가나 육천우를 발로 걷어찼다.“나를 건드리지 말고 유라 씨한테 가.”뾰로통한 허나연의 모습을 본 육천우는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아직도 질투하는 거야?”“내가 무슨 질투를 해. 우리 집이 식초 공장을 하는 것도
허나연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네, 알았어요. 하지만 의사 진료에 협조하겠다고 먼저 약속해 주세요.”이렇게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을 본 차 교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좋아. 너희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말을 듣고 수술을 받을게.”육천우는 농담조로 말했다.“저의 아내가 말 한마디로 스승님이 수술을 받으시게 했네요, 나연이의 능력을 새삼 새롭게 보게 되네요.”애정 어린 눈빛으로 허나연을 바라보던 육천우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옆에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서 있는 차유라를 본 차 교수는 입술을 살짝 치켜올렸다.“됐어
수표를 받아 쥔 차유라의 손가락은 새하얗게 변했고 가슴은 간간이 쿡쿡 찌르는듯한 통증이 전해졌다.차유라는 아버지 덕에 육천우 마음속의 유일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미 그녀 전에 그는 혼약이 있었다.눈시울이 붉어진 차유라는 가련한 눈빛으로 육천우를 바라보았다.“천우야, 나연 씨랑 결혼 할 거야?”육천우가 대답하기도 전에 허나연은 웃음을 터뜨렸다.“유라 씨의 뜻은 저랑 천우가 감정이 하나도 없는 정략결혼이기에 언젠가 헤어질 거라고 말하고 싶으신 거죠? 제 말 맞죠?”“아니요, 그냥 궁금해서요, 왜냐하면 외
허나연은 어릴 때부터 말싸움으로 육천우를 이긴 적이 없다.억울함이 가득한 표정을 한 그녀는 조수아의 품으로 달려들었다.“이모, 천우 오빠가 또 저를 괴롭혀요.”조수아는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이따가 천우에게 밥을 주지 말고 굶기자. 자신이 못생겼다는 것을 모르다니, 우리 나연이가 천우보다 백배는 예뻐, 제일 예뻐.”허나연은 육천우를 향하여 의기양양하게 웃었다.“네가 못생긴 거야.”육천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네, 네. 그렇게 나연이 응석을 항상 받아주세요, 앞으로 결혼한 후 말을 듣지 않는다고 저한테 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