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부러 침대 위에 놓인 곰인형을 바라보며 야한 짓을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곰인형의 눈 속에 한 남자가 있다는 것을. 남자는 몰래 내 집에 침입했고, 내가 잠들었던 침대 위에 누웠으며, 심지어 내가 벗어둔 옷에 자신의 흔적까지 남겼다. 게다가 내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떨고 있는 것을 몰래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내가 자기를 정말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더 보기특히 그날, 진설아가 손가락같이 생긴 작은 장난감을 꺼냈을 때.이정수는 그 곰인형 너머로 그녀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본 듯했다.그는 정말로 이 여자를 갖고 싶었다. 진설아를 무자비하게 목 졸라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고, 눈까지 뒤집히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그렇게 상상하자, 이정수는 자신의 손을 진설아의 가늘고 흰 목에 갖다 댔다.‘정말 아름다워...’진설아의 목은 길고도 가늘었으며,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이정수는 저도 모르게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침대에 누운 여자의 얼굴은 금방 붉게 물들었고 여자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깨지 않았다.“휴...”이정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을 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방금 목 졸라 붉게 만든 그곳에 입을 맞췄다.그는 이내 얇은 이불을 걷어내고, 진설아의 몸을 하나하나 세세히 바라보았다.이정수의 눈빛은 광기에 휩싸였고, 그는 마치 소중한 보물을 대하듯 경건한 태도로 진설아의 몸을 핥기 시작했다.진설아의 몸 전체가 축축해지자, 그는 만족스러운 듯 옆에 누웠다. 그리고 진설아를 품에 안고,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진설아에게는 달콤한 향기가 났다. 그건 정말 특별한 향이었기에 한 번만 맡아도 취할 것만 같았다.사실 이정수는 술을 잘 마시는 편이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마신 술은 전혀 그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진설아의 그 달콤한 향기를 맡고 나니 정말 취한 기분이 들었다.이정수는 어두운 곳에서 사람을 몰래 지켜보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그녀가 저녁 식사 도중 무심코 드러낸 은은한 매력에도 반했다.‘정말 순진하네.’이정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진설아는 너무나 순진해서, 낯선 남자와 단둘이 있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진설아에게 경고를 줬다.그러나 겁에 질려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그는 그게 너무나 재미있다고 느꼈다.사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마신 술은 그를 흐트러뜨리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
분위기는 한동안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나는 고개를 들어 주석호의 눈을 보았다.“형사님, 제가 이야기 하나 들려드릴까요?”“옛날에 네 식구가 살았어요. 서로 정말 아끼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지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는 사고로 두 다리를 잃고, 어머니는 신장이 망가져 투석 치료를 받게 됐어요. 그때 두 자매는 아직 어렸고, 언니는 겨우 16살이었어요.”“결국 언니는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기 시작했죠. 그러나 나이가 어리다 보니 수입은 형편없었어요.”“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어요. 집에는 학교 다니는 동생도 있고, 치료를 받아야 할 어머니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언니는 온갖 일을 다 하면서 하루에 몇 시간만 자고 몇 년을 버텼어요.”“동생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 가족의 짐도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던 그때, 언니가 스토킹을 당했어요.”“그 변태는 언니가 살던 월세방에 몰래 들어가서 강간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언니는 도망치다가 실수로 고층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죠.”“그 변태는 돈이 많았어요. 그래서 언니의 죽음을 자살로 조작했고, 결국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여전히 잘 먹고 잘 살며 호화롭게 지내고 있죠.”이야기를 여기까지 말한 뒤, 나는 입을 닫았다.주석호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딱딱한 표정으로 가득했다.잠시 후, 그는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 이야기, 앞뒤가 안 맞고 별로 재미도 없네요. 다른 사람한테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네요.”그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을게요.”이정수는 죽었다. 그건 그의 죗값을 치른 것뿐이다. 나는 정당하게 나의 합법적인 신체적 권리를 지켰을 뿐이다.사람은 저지른 잘못에 대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단지 그 시기가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다.————[번외편]진설아가 갑자기 깨어난 건 이정수의 계획을 완전히 뒤흔들었다.이정수는 두꺼운 커튼 뒤에 숨어, 여자가 비틀거리며 침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왜 이렇게
사건 발생 후. 경찰들은 책임지는 태도로 나를 여러 차례 불러 사건에 대해 물었고, 나는 매번 사실 그대로를 진술했다.수집된 증거들 역시 사건의 진실을 명확히 밝혀주었다.피해자인 나는 단신 여성을 스토킹 하며 집에 침입해 성폭행을 시도한 남성을 저항 중 실수로 죽인 것뿐이었다. 사건은 최대한 방어가 과했다는 수준으로 판결되었으며, 고의적 살인이 아니었다.어떤 의심스러운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나는 생명이 극도로 위협받는 상황에서 정당방위로 반격했을 뿐, 추가적인 공격은 가하지 않았다. 이후 이정수가 부상을 입자마자 즉시 112와 119에 전화를 걸어 신고했다. 이러한 행동은 나의 책임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결국 며칠 후, 법원은 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그렇게 나는 자유로워졌지만, 오랫동안 사라져 있었던 터라 직장에서 이미 잘린 상태였다. 전에 살던 집은 집주인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해 나를 쫓아냈다.나는 호텔에 잠시 머물며 새 출발을 준비했지만, 이튿날 밤에 다시 예전 아파트로 향했다. 그리고 1동 14층의 계단 구석에서, 사건 후에 이정수의 집에서 발견한 도청 장치를 꺼냈다.도청 장치를 완전히 부숴버린 뒤, 나는 곧장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오랜만에 찾은 고향집은 이미 낡고 황폐해져 있었다. 잡초가 무성했고, 벽에는 거미줄이 가득했다.중앙 벽에는 세 장의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다.첫 두 장은 노인의 사진이었고, 세 번째는 젊은 여성의 사진이었다. 그녀는 죽었을 당시 겨우 스물다섯 살이었다. 흑백 사진임에도 그녀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왔다.나는 사진과 제사상을 정성스럽게 닦고, 사 온 제물을 올려놓은 뒤 향을 피웠다.“아빠, 엄마, 언니. 나 돌아왔어.”마치 마음속에 쌓여 있던 큰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 같았다.크리스털 장식이 이정수의 목을 꿰뚫었던 이후 처음으로 나는 진심으로 웃어볼 수 있었다.“이정수는 죽었어.”“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나쁜 놈이 죽었어요. 기쁘지 않으세요?”이 말을 하
“진설아 씨, 그러니까 당시 피해자가 당신 집에 몰래 들어와 당신을 공격하려 했고, 당신은 피해자에게서 벗어나는 과정에 피해자를 밀쳤다는 말인가요?”젊은 남자 경찰이 사납고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나는 두 팔을 껴안고 몸을 덜덜 떨었다. 눈물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두 눈 가득 차올랐다.“저,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에요! 제발 믿어주세요!”말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소리가 높아졌다.“소리 지르지 마세요!”남자 경찰이 단호하게 꾸짖었다.내 몸에 입고 있는 옷만 깨끗했다. 사건 당시 나는 나체로 잠들어 있었고,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급히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니 옷 안은 피투성이에다 상처투성이였다. 내 목에는 선명한 손가락 자국이 남아 있었고, 머리카락은 경찰서로 끌려올 때 그대로 헝클어진 채였다.심지어 너무 놀란 나머지 웅크리고 앉아있어 너무나도 안쓰러워 보였을 것이다.그런데도 경찰이 소리를 지르자 내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옆에 있던 여자 경찰이 더는 참지 못한 듯 뜨거운 물 한 잔을 건네줬다.“물 좀 마셔요. 겁먹지 않으셔도 돼요. 법을 어기지 않으셨다면 절대 해치지 않아요. 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돼요.”몇 시간째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던 나는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 그래서 얼른 물을 받아 단숨에 한 모금을 마셨다.그녀의 따뜻한 격려에 나는 용기를 내며 이를 악물고 천천히 지난밤의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그 사람은 우리 회사 상사예요. 평소엔 거의 마주친 적도 없고, 제대로 말도 나눠본 적도 없어요...”“그날 제가 그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다준 뒤, 갑자기 메시지를 보내서 저녁을 얻어먹고 싶다고 했어요. 상사인 데다 이웃집에 사는 사람이라 거절하기 어려워서 허락했죠.”“그 사람은 저녁을 먹고 나서는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다시 몰래 들어왔을 땐, 저는 그 사람이란 걸 몰랐어요... 몸싸움을 벌이는 중에 그 사람이 제 목을 졸랐어요. 그러다 제가 온
꺄악-갑자기 뒤에 누가 있는 걸 발견한 척하며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순진한 눈망울을 크게 뜨고 뒤를 돌아봤다.“부장님, 걸으시는데 왜 소리가 하나도 안 난 거죠? 깜짝 놀랐잖아요.”그리고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부장님, 바지 주머니에 뭐가 들어있어요? 방금 저를 찌른 것 같은데.”이정수는 턱을 꽉 깨물고, 손등에 핏줄이 불거졌다. 그리고 한참 동안 말없이 서 있다가 겨우 평정을 되찾은 듯 대답했다.“아마 열쇠일 겁니다. 미안해요. 요리에 너무 집중하시길래 한번 와봤어요. 정말 수고가 많네요. 제가 부채질이라도 해줄까요?”목소리는 한없이 침착한 척했지만, 그의 목덜미는 이미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나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부장님은 정말 다정하시네요. 전 괜찮아요. 요리는 금방 마칠 것이니 좀만 기다리고 계세요.”몇 분 후, 테이블 위에는 내가 정성껏 준비한 ‘몸보신 세트'가 차려졌다.이정수는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으며 금세 땀을 뻘뻘 흘렸다. 그의 눈빛은 어느새 몽롱하게 변해 있었다.나는 일어나 테이블 아래에 놓인 술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부장님, 한 잔 하실래요? 이건 우리 형부가 직접 담근 좋은 술이에요. 몸에 정말 좋아요.”몇 잔 술을 들이켠 이정수의 얼굴은 점점 붉어졌고, 내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그의 시선은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나는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그의 탐욕스러운 눈길을 못 본 척했다.그리고 어깨끈이 어느새 내려가 있었다.“진설아 씨는 정말 아름다워요.”이정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손을 슬쩍 내 허벅지 쪽으로 가져오려 했다.나는 깜짝 놀란 척하며 그의 손을 밀어냈다.“부장님, 술을 너무 많이 드셨나 봐요.”그의 눈빛이 잠깐 맑아지더니 다시 뜨겁게 변했다.내가 이제 곧 쓰러질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는 뜬금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절뚝거리며 문쪽으로 걸어갔다.“시간이 늦었네요. 저는 약을 먹어야 해서 먼저 가볼게요. 설아 씨도
남자의 발에 석고가 감겨 있었다. 이게 그가 며칠간 자취를 감춘 이유였다.그런데도 그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차라리 당당하게 나에게 다가오는 길을 택했으니, 날 보지 못하는 걸 견딜 수 없었던 게 분명했다.이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죠, 마침 시간이 있었거든요. 이 부장님이 이렇게 마음씨 따뜻한 분인 줄 몰랐어요.”내 칭찬에 이정수의 창백한 얼굴이 부끄러운 듯 붉어졌다.“그냥... 너무 불쌍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그래?이정수가 나무판자로 길거리 개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걸 보지 않았더라면, 그 말을 정말 믿었을지도 모른다.이 불쌍한 길고양이도 혹시 비슷한 일을 겪은 건 아닐까?나는 눈을 내리깔며 속마음을 감추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고양이는 제가 데려갈게요. 치료가 끝나면 다시 돌려드릴게요.”나는 손을 뻗어 고양이를 받으면서, 하얗고 매끈한 손끝으로 이정수의 팔을 의도적으로 스치며 천천히, 그리고 은근히 유혹했다.그의 급격히 거칠어진 숨소리를 들으며 흡족하게 손을 거두어 고양이를 품에 안았다.“그럼 저는 병원에 다녀오겠습니다.”이정수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눈에 가득 찬 집착과 광기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진설아 씨, 저는 여기 1동에 살아요. 혹시 어디 사세요? 다 나으면 꼭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요.”나는 웃으며 답했다.“어머, 저도 1동이에요. 14층에 살아요.”이정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졌다.“정말요? 저도 14층인데, 얼마 전에 이사 왔어요. 우리 이웃이었네요.”솔직히 말해, 그의 연기는 조금 엉성했다. 눈이 거의 내 가슴에 붙을 지경인데도 점잖은 척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라니.그러나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그의 연기에 맞춰 웃으며 말했다.“정말 잘 됐네요. 그럼 앞으로 이 부장님이랑 출퇴근도 같이 할 수 있겠어요. 이 아파트 설계가 조금 특이하잖아요? 한 층에 두 집인데도 모퉁이를 돌면 비슷하게 생겼으니, 언젠가 제가 부장님 집에 잘
남자의 목소리는 참 듣기 좋았다. 특히 낮게 깔린 목소리로 혼잣말을 할 때는 더더욱.[아가, 잘 안 보여.][아가, 좀 더 보여줘. 제발.]...화면 너머로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몰입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했다.솔직히 말해, 이 남자, 조금 귀여울 정도로 멍청해 보였다.그렇게 억눌린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그의 템포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블루투스 이어폰 너머로 그의 만족스러운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정말 최고의 자극제였다.내 잠옷이 땀에 젖었기에, 이제 한 번 더 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핸드폰 알림음이 울렸다.발신자는 낯선 번호였다.최근 들어 이런 낯선 번호로부터 메시지를 자주 받았다. 전부 그 스토커가 보낸 것이었다.남자는 소프트웨어로 번호를 바꿔가며 나에게 성희롱 문자를 보내곤 했는데, 대부분 한밤중에 왔다.그런데 오늘은 시간을 앞당겼다. 역시 참지 못한 모양이다.나는 흥미롭게 핸드폰을 열어 그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아가, 네 작은 손은 정말 하얗네.][아가, 난 너를 정말 좋아해. 너랑 즐거운 걸 하고 싶어.][아가, 오늘 다른 남자라도 만난 거야? 왜 이렇게 갑자기 흥분했어?]...이런 말은 정말 스토커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었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에게 이런 메시지는 너무 유치하고 단순했다.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나는 참고 그의 반응을 예상하며 적당한 표정을 지었다.아마 남자는 화면 너머에서 몰래 나의 반응을 살피고 있겠지. 그래서 나는 때맞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아직 열어둔 커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확인하는 척했다.곧 떨리는 손으로 생애 처음 그의 메시지에 답장을 썼다.[누구세요? 당신 뭐 하는 거예요? 몰래 훔쳐보지 마세요! 또 훔쳐보면 신고할 거예요!][아가! 한 번만 만져보면 안 될까?][이 변태! 꺼져버려!]아마 욕을 들어서 더 좋았던 걸까? 그는 화를 내기는커녕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냈다.한 줄 한 줄 모두
침대 위 베개가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정리해 놓은 각도에서 약 10도 정도 틀어져 있었다.핑크색 베개 가장자리엔 희미한 자국이 몇 군데 남아 있었다.나는 찰나의 순간 이마를 찌푸렸다가 곧바로 표정을 풀고는, 아무 말 없이 베개를 원래대로 정돈했다. 그리고 모퉁이에 떨어져 있던 짧은 머리카락 한 가닥을 주워 쓰레기통에 버렸다.그 후 거울 앞에 서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속옷 두 개만 걸친 채, 나는 침대 위에 놓인 곰인형을 흘끗 쳐다봤다. 그러다 잠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이건 내가 집에 낯선 사람이 몰래 들어왔다는 걸 눈치챈 네 번째 날이었다.처음에는 현관 매트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뒤집혀 있던 흔적을 발견했다. 그다음에는 옷장 안의 옷들이 내가 정리해 놓은 순서와 달라진 걸 알게 됐다.변화는 미세했다. 그러나 강박증이 심한 나로서는 그 미묘한 차이를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그날부터 나는 주변의 낯선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평소 내 뒤를 따라다니는 말랐고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자를 발견했다.그는 매일 나를 지하철역에서 회사까지, 그리고 다시 집까지 따라다녔다. 헌팅캡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남자는 대부분 긴소매의 푸른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건 그의 마스크와 셔츠 사이로 드러난 손뿐이었다.그의 손은 참 예뻤다.희고 길쭉하며 마디마디 뚜렷했다. 손등 위에 돋아난 굵직한 혈관조차 묘하게 매력적으로 보였다.저런 손이 내 몸을 마음껏 어루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내 침대에 누워 야한 짓을 할 때, 남자는 그 손으로 내 몸의 모든 치수를 재고 싶어 하진 않았을까?나는 눈을 감고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물줄기가 얼굴과 몸 위를 따라 흘러내리도록 놔뒀다.그리고 상상했다. 이 물줄기가 마치 그 남자의 예쁜 손처럼 내 몸 구석구석을 더듬는 모습을.그러나 뜨거운 물줄기조차 그의 손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몸을 닦고 나와서 새 팬티를 꺼냈
침대 위 베개가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정리해 놓은 각도에서 약 10도 정도 틀어져 있었다.핑크색 베개 가장자리엔 희미한 자국이 몇 군데 남아 있었다.나는 찰나의 순간 이마를 찌푸렸다가 곧바로 표정을 풀고는, 아무 말 없이 베개를 원래대로 정돈했다. 그리고 모퉁이에 떨어져 있던 짧은 머리카락 한 가닥을 주워 쓰레기통에 버렸다.그 후 거울 앞에 서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속옷 두 개만 걸친 채, 나는 침대 위에 놓인 곰인형을 흘끗 쳐다봤다. 그러다 잠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이건 내가 집에 낯선 사람이 몰래 들어왔다는 걸 눈치챈 네 번째 날이었다.처음에는 현관 매트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뒤집혀 있던 흔적을 발견했다. 그다음에는 옷장 안의 옷들이 내가 정리해 놓은 순서와 달라진 걸 알게 됐다.변화는 미세했다. 그러나 강박증이 심한 나로서는 그 미묘한 차이를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그날부터 나는 주변의 낯선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평소 내 뒤를 따라다니는 말랐고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자를 발견했다.그는 매일 나를 지하철역에서 회사까지, 그리고 다시 집까지 따라다녔다. 헌팅캡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남자는 대부분 긴소매의 푸른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건 그의 마스크와 셔츠 사이로 드러난 손뿐이었다.그의 손은 참 예뻤다.희고 길쭉하며 마디마디 뚜렷했다. 손등 위에 돋아난 굵직한 혈관조차 묘하게 매력적으로 보였다.저런 손이 내 몸을 마음껏 어루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내 침대에 누워 야한 짓을 할 때, 남자는 그 손으로 내 몸의 모든 치수를 재고 싶어 하진 않았을까?나는 눈을 감고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물줄기가 얼굴과 몸 위를 따라 흘러내리도록 놔뒀다.그리고 상상했다. 이 물줄기가 마치 그 남자의 예쁜 손처럼 내 몸 구석구석을 더듬는 모습을.그러나 뜨거운 물줄기조차 그의 손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몸을 닦고 나와서 새 팬티를 꺼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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