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조명과 불빛이 WS 그룹 회장의 저택을 밝히고 있다.오늘 밤은 WS 그룹 신옥희 회장의 칠순 잔치가 열리는 날이다.그녀의 손자, 손녀들과 그 배우자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여 선물을 전했다."할머니께서 차를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1g에 700만 원이나 하는 세상에서 제일 귀하다는 이 대홍포 차를 선물로 드리려고 중국까지 다녀왔답니다. ""할머님께선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셨지요? 다이아몬드가 세팅 된 은십자가가 흠잡을 데 없는 이 묵주는 6,000만 원도 넘어요."화목하고 행복한 분위기 속에 예쁘게 포장된 색색의 꽃과 선물 상자를 바라보며, 생일 파티의 주인공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미소 지었다.한 남자의 말이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를 깨었다. 그 때 갑자기 그녀의 맏손자사위인 은시후가 말했다. "할머님, 정말 죄송하지만.... 부디 저에게 2억 원만 빌려주실 수 없을까요? 보육원의 이씨 아주머니가 비인두암 3기 진단을 받아서 치료비가 필요해요..." 온 가족들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충격과 경악을 감추지 못하며 시후를 바라보았다.더부살이 중인 이 손자사위는 정말이지 염치도 없고 뻔뻔했다! 칠순 생일파티 날 할머님을 위해 생신 선물을 준비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뻔뻔하게도 그녀에게 2억 원을 빌려 달라고 부탁하다니...! WS그룹 김영식 전 회장이 아직 건재하던 3년 전 어느 날, 은시후와 함께 저택에 돌아와선 손녀인 유나와 결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 시후는 찢어지게 가난하고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김영식 전 회장은 유나와 시후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 후 WS그룹 일가 모두 시후를 내쫓으려 했지만, 그는 온갖 모욕과 조롱을 받는 상황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늘 태연 했고, 데릴 손자사위로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그런 그가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할머님께 돈을 빌려야 했다. 시후를 거두어 그를 절망에서 구원해 주었던 이씨 아주머니가 비인두암에 걸리고 말았다
10억 원?!시후는 자신이 들은 액수에 당황했다. 그의 두 눈은 충격에 휘둥그레지고,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그는 할아버지가 굉장한 부자라는 건 알았지만, 그 당시의 시후는 돈의 개념을 이해하기엔 너무나 어렸다. 그래서 집안 재산이 얼마나 되는 지까진 몰랐던 것이다.드디어, 지금, 이 순간 이해할 수 있었다. 10억 원이 푼돈이라면, 조부의 재산은 몇 조 원은 족히 넘을 거라는 것을 의미했다.솔직히 말해서, 순간 그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그러나 시후는 돌아가신 부모님과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된 원흉이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결코 간단히 할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다.시후의 동요를 감지한 박 기사는 재빨리 말했다. "도련님은 집안의 유일한 상속자입니다. 회장님의 전 재산은 도련님의 것이나 다름없죠.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도련님 아버님의 것이지만요.""회장님께선 도련님만 집으로 돌아와 준다면, 총 사업규모 수백조 원에 달하는 가족 사업을 물려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도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으시다면... 이 돈은 도련님의 생활비로 써 주십시오.""아 그렇지, 알려드릴 소식이 하나 더... 어제 할아버님께서 한국 최대 우량기업인 엠그란드 그룹을 통째로 인수하였답니다. 주식 전량이 현재 도련님 명의로 되어있으니, 내일부터 회사 경영권을 행사하실 수 있답니다!"박 기사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아 어안이 벙벙했다.자신을 위해서 그런 막대한 투자를 하다니, 조금 과한 게 아닌가?한도 10억짜리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블랙 카드에 자산 총액 300조 원의 엠그란드 그룹이라니...!엠그란드 그룹은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었다. 그 어떤 유망하고 영향력 있는 재벌가도 엠그란드 그룹 앞에선 고개를 숙여야 했다. 오늘 그를 욕보인 재벌가 모두..... WS 그룹, 로이드 그룹을 포함해 여전히 시후의 아내를 넘보고 있는 대현 그룹 마저도, 엠그란드 그룹 앞에선 평범한 사람들에 불과했다.그런 대단한 회사가 이제 그의 것이라
다음 날 아침, 식사 준비를 마치고 시후는 스쿠터를 타고 엠그란드 그룹 본사로 향했다.그는 엠그란드 회사 주차장 한편에 스쿠터를 세웠다. 시후가 시동을 끄자 곧 그의 맞은 편으로 검은색 벤틀리가 천천히 들어왔다.무심코 고개를 들자 한 젊은 커플이 차에서 내리는 것이 보였다.고급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남자는 한 눈에 봐도 이지적인 느낌의 미남이었다. 한편, 여자 쪽은 화려하게 빼입고 있었다. 다소 천박한 느낌은 들었지만, 그녀 또한 미인이었다. 알고 보니 두 미남 미녀는 유나의 사촌 김혜빈과 그녀의 약혼자 임현우였다.그들이 왜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지만, 맞닥트려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불 보듯 뻔했다.시후는 그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어째선지 그들에게서 도망치면 도망칠 수록 마주치게 되었다. "어머, 시후 씨 아니에요~" 시후를 발견한 혜빈이 큰 소리로 불렀다.혜빈은 친근하게 다가왔지만, 시후는 소름이 온몸을 타고 퍼지는 것을 느꼈다.아는 척하는 사람을 그냥 무시하고 갈 수 없었기에, 시후는 예의상 웃으며 물었다. "아, 혜빈 씨... 여기엔 무슨 일로 왔죠?" 혜빈은 비아냥거리며 대답했다. "저희야 엠그란드 그룹 이태리 부회장님을 만나러 왔죠."그리곤 그녀는 임현우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로이드 그룹은 전부터 엠그란드 그룹과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거든요. 앞으론 로이드 그룹뿐 아니라 WS 그룹의 미래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시후는 로이드 그룹이 엠그란드 그룹의 사업 파트너 중 하나라는 사실을 몰랐다. 막 회사를 인수했기에 세부 사상을 검토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공손한 미소를 지으며 "현우 씨, 사업 수완이 대단하시네요! 두 분 정말 너무 잘 어울리세요."라고 말했다.현우는 시후를 경멸의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이 새끼는 어제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망신을 당하고도, 지금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을 수 있는
시후도 오늘 처음 부회장을 만났다.그 또한 태리가 놀랍도록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그녀는 늘씬하면서도 볼륨감 넘치는 몸매에 매혹적인 외모, 그리고 당당한 자신감을 가진 27, 28살 정도의 젊은 여성이었다.시후는 태리의 책상에 앉으며 "전 사무실에 자주 오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저를 대신해서 앞으로도 회사를 경영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제 신원은 공개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당부했다.태리는 지금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시후가 한국 최고의 재벌가인 은 회장의 가족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겐 엠그란드 그룹 따윈 그저 평범한 기업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물론이죠, 회장님. 또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십시오."그때였다. 한 비서가 문을 두드리며 "부회장님, 로이드 그룹의 임현우 님과 그의 약혼자분께서 만나러 오셨습니다.""지금 VIP를 만나고 있으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전해주세요.""임현우를 아시나요?" 시후가 물었다."로이드 그룹은 저희 엠그란드의 파트너사 중 하나입니다. 몇몇 주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 중이라 이전에도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시후가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엠그란드 그룹은 로이드와는 그 어떠한 사업 거래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행 중인 모든 프로젝트도 중단해주세요. 이 순간 이후로 우리 회사를 통해 로이드 그룹이 한 푼이라도 벌게 된다면, 이태리 씨 당신은 해고입니다."도대체 로이드 그룹의 관계자 중 누가 이토록 이 남자의 심기를 건드린 거지? 태리는 깜짝 놀라 필사적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회장님! 지금 바로 직원들에게 로이드 그룹과의 모든 거래를 중단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시후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엠그란드 그룹은 저급한 쓰레기와 협업하는 것엔 관심이 없다고 말하고, 경비원에게 쫓아내라고 하세요."***사무실 밖에서 임현우와 김혜빈이 걱정하며
엠그란드 그룹의 공식 발표는 한국 경제계를 떠들썩하게 뒤흔들었다.WS 그룹이 엠그란드 그룹의 신임 회장의 취임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로이드 그룹과의 일체의 거래가 중단된 이유가 납득되었다.엠그란드의 새 주인은 로이드 그룹을 홀대하고 있는 듯했다.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신임 회장인 은회장은 도대체 누구인 것인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산총액 300조 원 상당의 엠그란드 그룹을 사들이다니, 이 베일에 싸인 '은 사장'이란 인물의 재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한국 굴지의 기업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딸을 시집 보냄으로써 엠그란드 그룹의 신임 회장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했다. 무엇보다도 엠그란드 그룹의 1조 원 규모의 호텔 건설 사업 공고는 국내 건축, 디자인 업계를 뒤흔들었다.1조 원...!이 최대 규모의 호텔 건설 프로젝트의 일부라도 입찰을 따낼 수 있다면, 로또 복권에 당첨된 거나 다름없었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돈을 사랑하는 신옥희 회장을 포함해, 여러 회사들이 당첨의 꿈을 꾸며 로또에 참가했다.신회장은 이번 사업 소식을 듣고 너무나도 행복했다. 이건 WS 그룹이 메가 프로젝트에서 계약을 따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번 일만 잘 되면 WS 그룹은 한 단계 레벨 업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옥희 회장은 엠그란드 그룹의 메가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오늘 밤 긴급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이번 미팅엔 일가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해야 했다.은시후는 그날 밤늦게 WS 그룹 회장 저택으로 향했다. 신회장이 일가 전원 소집을 명령했기에, 물론 시후도 참석해야 했다!그는 신회장의 회의 주요 의제가 무엇일지 알고 있었기에, 이번 기회에 WS 그룹 내에서 유나의 입지를 공고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유나의 사촌 김혜준이 시후를 발견하곤 어김없이 조롱했다. "은시후 이 새끼가 뻔뻔하게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 왔어!?"유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그만해요, 혜준 오빠. 시후 씨는 내 남편이니까 엄연한 WS
유나의 돌발 발언에 방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모두들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유나가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지금은 공연히 앞에 나서 봤자 득은 커녕 실 밖에 없는 상황이다.한국 최고의 대기업이 WS 그룹 같은 약소 회사에 눈길도 주지 않을 게 뻔한데, 이런 무모한 도전의 결과는 나와 있었다. 가만히 듣고만 앉아 있을 수 없었던 혜준이 "김유나, 설마 니가 정말 엠그란드 그룹과의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라며 비꼬았다.혜빈도 오빠 혜준을 따라 조롱을 이어 갔다.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나서는 건데? 네가 괜히 설치다가 우리 WS 그룹이 개망신 당하게 될 거라고!""혜빈이 말이 맞아! 유나 네가 엠그란드 그룹에서 쫓겨나기라고 해 봐! 우린 그날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거라고!"온몸의 피가 얼굴로 몰린 듯 유나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시후와 결혼한 뒤, 집안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온 식구들은 그녀와 그녀의 부모까지 철저하게 무시하고 조롱해왔다.그런 그녀가 만일 엠그란드 그룹과의 거래를 성사시킬 수만 있다면, 집안 내의 입지를 다시 되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더 이상 자신의 부모님이 다른 가족들 눈치 보지 않고 떳떳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약'의 이야기. 사람들의 끊임없는 조롱에 다시 현실로 끌려 내려 왔다.유나는 시후를 노려보며,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했지...? 애초에 시후 씨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나를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분노의 화살을 남편에게 돌렸다. 말다툼을 지켜보던 신 회장은 점점 부아가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이번 일을 맡을 사람이 없냐 재차 물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더니, 막상 유나가 나서자 일제히 그녀를 무시하고 말리는 꼴이라니...!줄곧 손녀인 유나를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오늘 일로 다시 보게 되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시작도 안 하려고 하는 일에 유나만
자신의 부모가 남편을 비웃는 것을 보고, 유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아빠. 제가 결정한 일이에요. 시후 씨 탓이 아니라고요. 전 우리 식구가 더 이상 다른 가족들한테 무시당하지 않았으면 했어요..."유나의 엄마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안 돼! 너희 할머니께서 직접 가셔도 환대하지 않을 텐데, 네가 가서 뭘 하겠다는 거니!"시후는 유나가 부모님과 말다툼하는 걸 지켜보며 쓰디쓴 웃음을 지었다. 이 사람들도 내가 엠그란드의 소유주라는 사실을 믿어주지 않을 거야...바로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잠시만요...!"유나의 모친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었다.유나의 엄마가 갑자기 들떠서는 말했다. "어머, 주원이구나! 여기까지 어쩐 일이니?" 그 남자가 바로 유나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대현 그룹의 후계자 박주원이다.주원은 싱긋 미소 지으며 "어머님, 엠그란드 그룹과 사업 제안서를 준비한다고 들어서, 유나 씨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아이디어를 주려고 왔어요.""세상에~ 역시 우리 주원이 밖에 없네!"갑작스러운 주원의 방문에 유나의 엄마는 완전히 신이나 서둘러 안으로 들였다. "그래서 주원이가 우리 유나가 엠그란드와 계약을 따내는 걸 도와줄 수 있을까?"주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시후는 완전히 무시한 채. 그는 곧장 유나를 향해 걸어가 상냥하게 말했다. "유나 씨, 이런 큰일이 났는데 왜 저한테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저희 대현 그룹은 엠그란드 그룹과 연줄이 있어요.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어떻게든 도와드릴게요."사실 박주원의 부친은 그가 말하는 것처럼 영향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유나의 환심을 사고 싶었던 것이었다.유나는 주원이 줄곧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주원 씨,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이건 제 문제이니 스스로 해결할게요."라고 정중히 거절했다.유나가 거절하자 유나의 엄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유나야... 너 제정신이니? 주원이가 기껏 너를 도와주
다음 날 아침, 유나는 밤새 준비한 두툼한 제안서를 품에 꼭 안고, 시후와 함께 엠그란드 그룹 본사로 향했다. 유나는 65층짜리 빌딩 앞에 서자, 현 상황이 현실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우리 같은 작은 회사가 어떻게 엠그란드 그룹과 협업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1조 원 규모의 사업이다. 지나가던 거지가 1조 원을 달라고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하지만 유나는 모두의 앞에서 할머니와 약속을 했기에 어떻게든 이번 거래를 성사시켜야 했다.우두커니 서서 발만 내려다보던 유나는 서류 뭉치를 더욱 힘주어 끌어안았다. 시후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살포시 미소 지었다. "유나 씨,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 될 거예요."유나는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힘없이 대답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시후 씨는 여기서 기다려 줄래요?"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본사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그녀가 걸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시후는 더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자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태리 씨, 조금 전에 제 아내가 당신을 만나러 올라갔습니다. 태리 씨가 해야 할 일은 아시겠죠?""물론이죠, 회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모님께서 오시면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그러고 보니... 엠그란드 그룹과 대현 그룹이 상당히 가까운 사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네,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었고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다수 있습니다. 대현 그룹 쪽에서 이번 호텔 건설 사업 건에 대해서도 협업 요청이 들어와 있는 상황입니다. 사업안 검토를 위해 제안서와 자료도 모두 제출 받은 상태인데 어떻게 할까요?""앞으로 두 번 다시 대현 그룹과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그러십니까? 알겠습니다."***그 사이, 유나는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부회장님과 만나게 해 달라고 면담 요청을 하고 있었다. 일류 대기업의 부회장인 이태리가 자신과 만나 줄지 모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저....” 시후의 외할머니의 질문을 들은 고은서는 입술을 꾹 다물고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하지만 시후의 당부가 떠올라,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했다. “죄송합니다, 할머니.... 저는 아직.... 시후 오빠를 찾지 못했어요....” 이 말을 하자, 고은서는 시후의 외할머니의 눈빛에 담긴 희망의 빛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두워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그녀는 갑자기 자신이 이런 말을 한 것이 이 인자한 표정의 할머니에게 너무나도 잔인하다고 느꼈다.곁에 있던 안충주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고은서 양, 계속 시후를 찾고 있었나요?”“네....” 고은서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제 아버지가 시후 오빠를 거의 20년 동안 찾으셨어요. 세계 온 천지를 다 뒤지셨죠.”시후의 외할머니는 감동 어린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 “아가씨 집안 사람들은 참으로 정이 깊군요..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시후를 잊지 않고 찾아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우리 가족만 시후를 찾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가씨 집안도 이렇게 시후를 오래도록 찾고 있었다니....”고은서는 급히 말했다. “할머니, 저는 시후 오빠와의 혼사가, 제 부모님과 시후 오빠의 부모님께서 아주 오래전에 정하신 일이에요. 시후 오빠는 제 약혼자이고, 그분의 존재는 제 마음속에서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어요. 저는 시후 오빠를 찾으면 정식으로 결혼을 할 날만 기다리고 있어요....”시후의 외할머니는 이 말을 듣고 눈물이 가득 차며 울먹였다. “착한 아이야....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고생 많았구나....”고은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고생이라니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 그리고는 선의로 거짓말을 덧붙였다. “저는 이번에 투어 공연 차 미국에 왔어요. 그리고 아버지께서 시간이 되면 꼭 시후 오빠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찾아 뵙고 안부를 전하라고 하셨죠. 이번에 갑작스레 찾아 뵈러 온 거라, 폐를 끼치진 않았을까 걱정이에요....”“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니?!”
사실, 그는 모두와 함께 밖으로 나가서 정말 시후가 돌아온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Samson 그룹의 형제자매들 중에서, 각자 모두 안예선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안태풍이 누나 안예선과의 관계는 그들 중에서도 가장 깊었다. 그는 평소에 강단 있고 철저한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이는 안예선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점차 만들어진 성격이었다. 안예선이 살아있던 시절, 그는 누나의 곁을 따르는 가장 충실한 추종자였다. 누나가 세상을 떠난 뒤,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행동 방식을 따라 하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그의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자신의 능력이 누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그때 활주로 끝의 하늘에서, 한 대의 비행기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Samson 그룹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긴장되기 시작했다.시후의 외할머니는 견딜 수 없는 듯 자녀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생각엔.... 시후가 저 비행기 안에 있을 것 같니?”하지만 아무도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시후가 실종된 지 거의 20년이 지났기에, 그가 지금 돌아올 거라고 기대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과거에도 몇 번이나 단서가 나타났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DNA 검사를 통해 모두 헛된 희망임이 드러났다. 그래서 모두들 이번에도 또다시 꿈같은 일이 될까 봐 두려웠다.비행기 엔진 소리가 점점 커지며, 마침내 고은서가 탑승한 비행기가 활주로 끝에 부드럽게 착륙했다. 이후 비행기의 역추진 장치가 작동하면서, 더 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잠시 후, 비행기가 속도를 줄이며 지상 유도 차량의 안내에 따라 서서히 Samson 그룹의 본관 앞에 멈춰 섰다.이때 기내에 있던 고은서는 극도로 긴장된 상태였다. 그리고 마침내 비행기의 탑승문이 열렸다.Samson 그룹 사람들의 마음은 일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탑승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나온 고은서를 본 순간, Samson 그룹의 몇몇 젊은 손자, 손녀들은 깜짝 놀라 외쳤다.
Samson 그룹의 한 직원은 시후가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안예선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은서가 시후가 안예선의 아들이라고 말하자, 그는 즉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즉각적으로 Samson 그룹이 수년간 안예선이 남긴 아들의 행방을 찾아다녔지만 전혀 단서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혹시 이것이 결정적인 단서를 가져다 주는 상황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한 그는 바로 비행기의 착륙을 승인했고, 급히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보고했다. ‘안예선의 아들’이라는 이 여섯 글자는 마치 번개처럼 Samson 그룹의 집사에게 충격을 안겨주었고, 그는 거의 구르다시피 하며 의료센터로 달려갔다.이때, 안충주는 자신의 슬픔을 꾹 참으며 어머니를 안심시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있어 장남인 그는 지금 정신적으로 가장 큰 의지가 되고 있었다.그때 집사가 다급하게 달려와 바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병실 문을 벌컥 열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큰... 큰... 큰 도... 도... 도련님...”안충주는 항상 진중하던 집사가 당황한 모습으로 아버지의 병실에 갑자기 달려 들어온 것을 보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꾸짖었다. “집사님, 무슨 일이죠?! 들어오기 전에 노크해야 한다는 걸 모르십니까?”다른 사람들도 무슨 급한 일이 생겼는지 알아내기 위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집사는 숨을 몰아쉬며 다급히 말했다. “큰 도련님... 곧 한국에서 온 비행기가 착륙합니다...”“한국에서?” 안충주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누군데요?”집사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큰 도련님의 누님께서 예전에 약속하신 며느리라고 합니다!”“누님이라니...?” 안충주는 순간 이해하지 못한 듯 반응했다. 그런데 슬픔에 잠겨 있던 어머니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건 예선이가 시후와 약혼을 주선한 아이 아니냐?! 시후의의 약혼녀 말이다! 지금 어디 있는 거냐?!”집사는 급히 대답했다. “비행기에 있다고 합니다. 곧 착
“그건....” 안충주는 급히 말했다. “엄마.... 아직 그런 상황까지 간 건 아니잖아요. 너무 일찍부터 이런 일을 고민하지 마세요....”그러자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닦고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써봤고, 못 할 방법도 시도해봤다. 심지어 네 아버지가 늘 반감 가지던 홍 선생까지 불러왔지만, 이제는 정말 다른 방도가 없는 것 같구나....”안충주는 아버지가 평생 종교를 믿지 않았으며, 더욱이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홍 선생이든, 주역과 팔괘를 꿰고 있다는 나이 많은 도사든, 아버지의 눈에는 모두 사기꾼과 다름없을 것이었다. 그러니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절대 홍 선생이라는 자를 집으로 초대할 일이 없었을 터였다. 이처럼 지금 상황이 절박하다는 것을 안충주도 알고 있었다. 계속 동생들과 엄마를 위로하던 안충주 역시 마음속 깊이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이번에는 정말로 고비를 넘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같은 시각, Samson 그룹 저택에서 불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상공.고은서가 탄 전용기는 고도를 2000미터 이하로 낮추고 있었고, 조종사들은 페이셔스 그룹의 활주로를 목표로 삼고 착륙을 준비하고 있었다.고은서는 위성전화를 통해 시후에게서 Samson 그룹 저택의 정확한 위치를 전달받았고, Samson 그룹 저택에 높은 등급의 활주로가 있다는 정보도 얻었다. 이런 등급의 활주로는 만재 상태의 에어버스 A380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기종이 정상적으로 이착륙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시간을 아끼기 위해 시후는 고은서가 Samson 그룹에 직접 착륙하도록 계획했다. 하지만, 페이셔스 그룹은 평소 경계가 삼엄해서 예고되지 않은 비행기의 이착륙은 허용되지 않았다. 만약 불청객이 저택에 착륙하려 한다면 다수의 중장비 차량으로 활주로를 봉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곳에 착륙하려면 반드시 페이셔스 그룹의 지상 통제 인원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안유진은 안충주를 데리고 Samson 그룹의 의료센터로 급히 달려갔다. 이 의료센터는 여러 과목에서 최고 전문의라고 하는 의사들이 상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중환자실(ICU), 산부인과, 그리고 수술실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곳의 하드웨어 설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장기 이식 수술도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했다.현재 Samson 그룹의 회장인 안산은 의료센터의 가장 큰 ICU 병실에 누워 있었다. 그의 몸에는 온갖 장비와 튜브가 삽입되어 있었고, 얼굴 전체가 커다란 산소 마스크에 덮여 있었다. 그는 호흡기에 의지한 채 간신히 희미한 숨결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그의 아내이자 시후의 외할머니는 그의 곁에 앉아 그의 오른손을 부드럽게 주무르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은 이미 끝없이 흐르고 있었다.몇몇 의사들이 곁을 지키고 있었지만, 이제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들의 눈에 안산의 생명은 이미 끝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다. 기름이 다 타버린 램프 심지처럼, 불꽃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졌고, 불규칙하게 깜빡이며 언제 꺼질지 모르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 마지막 불꽃이 완전히 꺼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혹시라도 무리하게 개입한다면... 예를 들어 호흡 빈도를 조금만 크게 해도 마지막 불꽃을 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적절한 대처는 그 불꽃이 심지에 남아 있는 마지막 기름을 다 태울 때까지 방해하지 않는 것이었다.Samson 그룹의 다른 자녀들과 손자들은 ICU 밖의 대기실에 모여 있었다. 시후의 둘째 외삼촌 안태풍과 셋째 외삼촌 안재남은 나란히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마치 도술사의 기풍을 풍기는 머리와 수염이 희끗희끗한 마른 노인이 알아듣지 못할 무언가를 열심히 중얼거리고 있었다.Samson 그룹의 다른 손자들과 여성 가족들은 소파 옆 긴 의자에 앉아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이때 안유진과 안충주가 달려 들어오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Samson 그룹의 모든 사람들은 Samson 그룹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었기에, 의견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도 객관적으로 처리하고 민주적으로 의논할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구조 덕분에, 지금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위독해진 상황에서도 안태풍, 안재남, 안유진은 모든 업무를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왔으며, 모두 맏형이 돌아와 집안의 전반적인 상황을 책임지고 이끌어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한편, 고은서는 비행기에 앉아 손에 든 흰색 플라스틱 상자에 밀봉된 알약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흥분과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기분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시후가 자신에게 그의 약혼자 신분으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댁에 가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고은서에게 있어 시후가 자신을 인정했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과거 시후가 보여주었던 모호한 태도와 비교했을 때, 이번에는 그녀가 보기엔 큰 진전을 이룬 것이었다. 다만, 고은서는 시후가 자신을 약혼자 신분으로 Samson 그룹에 보내는 이유가 고은서가 시후를 아직 찾지 못했다는 전제에 따른 것임을 알지 못했다. 고은서와 시후는 원래 약혼을 한 관계였기에, 그녀가 약혼자 신분으로 Samson 그룹을 방문하는 것이야 말로 정당한 일이었다. 하지만, 고은서에게 있어 이것이 엄청난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누가 상상했겠는가..?......저녁 무렵.안충주가 탑승한 비행기는 로스앤젤레스 교외의 한 개인 활주로에 착륙했다. 이곳은 바로 Samson 그룹이 로스앤젤레스에 소유한 저택이었다. 저택은 엄청난 면적을 자랑했을 뿐 아니라, 세 개의 개인 활주로와 여러 중대형 격납고를 갖추고 있었다. 이곳에는 크고 작은 최소 5대의 개인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었다.Samson 그룹은 이 땅을 매입하면서, 저택 내에 소규모 공항을 아예 건설해 버릴 정도로 거침없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넓은 땅에 사람이 적은 미국에서는 이
뉴욕 JFK 공항.두 대의 전용기가 20분 간격으로 이륙했다.먼저 이륙한 비행기에는 시후의 외삼촌 안충주가 타고 있었고, 그 뒤를 이어 이륙한 비행기에는 거풍환을 손에 쥔 고은서가 탑승하고 있었다.안충주는 지금 마음이 복잡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으로만 가득 차 있었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Samson 그룹의 재산 분할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더불어 그는 아버지가 Samson 그룹의 중심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지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다면 Samson 그룹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다른 집안들과 비교하면, Samson 그룹은 상대적으로 화목한 편이었고 형제들 사이에도 별다른 갈등이 없었다. Samson 그룹이 이렇게 단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과거에 있었던 안예선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안예선의 죽음은 Samson 그룹 전체에 큰 고통을 안겨주었고, 그로 인해 Samson 그룹 구성원들은 지금까지도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당시 Samson 그룹이 안예선의 선택을 지지하고 그녀가 LCS 그룹으로 시집가는 것을 받아들였다면, 안예선이 남편 은서준과 LCS 그룹이 사이가 틀어졌을 때 시후와 함께 의지할 곳 없이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 때 LCS 그룹을 떠나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던 일은 그들 세 식구에게 있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당시 Samson 그룹이 안예선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면, 안예선과 그녀의 남편이 LCS 그룹에서 쫓겨나게 되었을 때 당연히 시후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와 안정을 취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후의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안예선과 은서준 부부가 사고를 당한 그 시점부터, 시후의 외조부는 Samson 그룹을 관리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가
제이크 한은 이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티슈를 뽑아 입을 닦은 뒤, 뒤를 돌아 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이중열은 그가 문을 나서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그는 제이크 한이 자신의 신분을 알아차릴까 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제이크 한이 자신과 예전에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배호영의 실종 사건을 자신과 연관시킬 것이 두려웠다.시후와 고은서는 여러 번 그의 가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만약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다면 제이크 한은 이를 통해 시후에게로 단서를 이어갈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배호영 실종 사건은 단서들이 잘 숨겨져 있었기 때문에 제이크 한이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 뿐, 일단 실마리를 잡기 시작한다면 사건의 전모를 파헤칠 수 있을 것이었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시후와 고은서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급히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도련님, 왜 아래로 내려오셨습니까? 제이크 한 경감이 조금 전 막 나갔으니, 아직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시후는 서둘러 말했다. "삼촌, 둘 다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들르겠습니다!"이중열은 시후가 급히 떠나야 한다는 말을 듣고 더는 붙잡지 않고 문 쪽으로 걸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 제이크 한이 이미 차에 올라 떠나는 것을 확인한 그는 말했다. "경감의 차량이 떠났으니, 급한 일부터 처리하십시오.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씀하세요.""알겠습니다, 삼촌." 시후와 고은서는 이중열과 작별한 뒤 차에 올라 공항으로 향했다.......그 시각, 유럽 대륙 상공 해발 10,000m.배원중과 배유현은 긴장을 감추지 못한 채 걸프스트림에 앉아 있었다. 기내에 함께 있는 원서훈과 소이연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배원중과 배유현은 창밖의 캄캄한 풍경을 보며 멍하니 있었다. 헬기를 타고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 도착한 뒤, 그들은 다음 행선지가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비행기에 탑승했지만, 그 누구도 이 비행기의 목적지를 알려
사실 시후는 늘 거풍환, 회춘단, 심지어 배원단까지 총 세 가지 약을 가지고 다녔다. 그럼에도 그는 왜 고은서에게 거풍환을 전달하고 회춘단을 전달하라고 하지 않았을까? 첫 번째 이유는, 외삼촌이 회춘단 경매에서 쫓겨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고은서가 회춘단을 가지고 그들을 만나러 간다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시후가 외할아버지에 대해 여전히 조금의 앙금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후는 거풍환의 약효로도 외할아버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데 굳이 회춘단을 사용할 필는 없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예전에 외가에서 겪었던 차별을 생각하면, 거풍환 한 알을 내어 주는 것만으로도 은혜로 원한을 갚는 셈이었다. 그러니 굳이 더 큰 은혜를 베풀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고은서는 시후의 이런 속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단지 상황이 긴박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서둘러 말했다. "시후 오빠, 그럼 난 바로 공항으로 갈게!"시후는 말했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돼. 우선 연락해서 비행기를 준비하도록 해. 나도 성도민 씨에게 몇 명의 여성 대원들을 배치하도록 요청할 테니, 네 안전은 꼭 보장해야지.”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그럼 난 바로 지우 언니에게 전화할게!"그 시각, 김지우는 막 페이셔스 그룹의 대표와 계약을 마치고, 그들이 얼마 전 매입했던 공연장을 1달러에 다시 매입한 상태였다. 고은서에게서 전화가 오자마자 그녀는 신나게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어머, 은서야! 페이셔스 그룹이 정말 공연장을 우리에게 넘겼어! 정말 믿기지가 않아!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을 해낸 거야?"고은서는 바삐 말했다. "시후 오빠가 나섰으니,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지." 그리고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지우 언니, 지금 당장 비행기를 좀 준비해 줘. 나 지금 당장 로스앤젤레스로 가야 해.. 승무원들도 불러 주고.. 최대한 빨리 부탁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