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후는 어이가 없어서 어깨를 으쓱하며 주머니에서 수표를 꺼내 건넸다. “알겠습니다 장모님.. 수표는 여기 있어요.”우선은 흥분하여 수표를 받자마자 기쁨에 가득 찬 표정으로 서둘러 카운터로 달려갔다.시후는 그녀가 이렇게 조급해하는 것을 보고, 그녀가 아마도 손에 돈이 들어올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하자 한숨을 쉬고 돌아서서 병실로 향했다.병실로 들어가자, 유나는 "엄마가 쫓아오셨어요?"라며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모님께서 수표를 내놓으라고 하시더군요.."라고 말했다."그래요.." 유나 역시도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늘 재물을 탐내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돈만 보면 물불을 안 가리고 뛰어드는 성격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3천만 원의 수표를 엄마가 얻었다면 절대 돌려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녀도 뭐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을 했다가는 우선이 울고불고 말썽을 피워댈 것이 뻔했기에........한편, 손에 3천만 원이 들어온 우선은 빠른 걸음으로 카운터의 직원 앞으로 가서 수표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호호홋? 내가 저기 김상곤 환자의 입원비를 내러 왔어요!!"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모니터로 입원 정보를 확인하더니, "네, 총 3백만 원입니다!”라고 말했다. "좋아요.” 우선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이 수표로 돈을 지불할 건데요, 나머지는 내 개인 카드에 입금해주세요."라고 말했다.그러곤 자신의 카드를 꺼내 건네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카드에 나머지 돈을 넣어 줘요!"라고 당부했다.그러자 직원은 “네 알겠습니다.”하고 수표를 한 번 집어 보고는 놀라서 아연실색하였다.우선은 그녀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자, 일부러 화를 내며 말했다. “뭐예요? 빨리 처리해 달라고요?! 나도 할 일이 아직 많이 있다고요!"카운터 직원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거만한 표정의 우선에게 반격을 했다. 직원은 우선의 얼굴
시후는 병실에서 아내 유나와 함께 장인어른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때, 별안간 병실 문이 “콰앙!!” 하고 소리를 내며 열렸다.장모 우선이 무서운 표정으로 병실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우선은 수표를 엄지와 검지 사이에 집어 들고서는 시후의 얼굴 앞에 팔랑대며 소리쳤다. "은시후! 이 자식이 지금 장모인 나까지 속이려 들어?!""어.. 장모님.. 이..이게 무슨 소리세요? 제가 언제 장모님을 속였다고 그러세요..?"우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유나에게 달려가 "딸! 너, 더 이상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이 사기꾼 지식과 당장 이혼해! 이 녀석은 우리 모두를 지옥으로 보낼 작정이라고!"유나 역시 당황하며 "엄마, 대체 왜 그래요?"라고 물었다.우선은 수표를 유나의 손에 쥐어 주며 분노했다.“너의 잘난 서방이 나에게 100억짜리 위조 수표를 주었다고!! 그래서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날 사기꾼으로 신고할 뻔했어!!"그 말을 들은 시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 젠장.. 100억짜리.. 송민정 대표가 준 수표가 잘못 나갔네..’그저 주머니에 쑤셔 넣어 두었으니, 3천만 원짜리 수표와 헷갈릴 법 했다..! 하지만.. 젠장.. 망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유나는 이때 수표를 집어 들고는,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시후 씨, 이 위조 수표..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거냐고요?!!”시후는 다급하게 "아이고.. 여보, 완전 오해예요.."라고 변명했다.유나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나에게 정확하게 설명해요!”라고 화를 냈다.우선은 옆에서 "아니 이걸 물어볼 필요가 있나? 분명 틀림없이 사람을 속이는 데 쓰는 거지! 그러다가 실수로 나에게 준 거야! 흥!!! 정말 이런 수표로 남을 속이면, 바로 감방 행이라고!”라고 유나의 의심에 부채질을 해댔다.그리고 그녀는 다시 유나를 바라보며, "유나야, 이런 인간이 능력이 없으니까 이제는 밖에서 이렇게
그러자 그녀는 다소 누그러진 표정으로 수표를 건네 주며 말했다."제가 그럼 저녁에 당신이랑 함께 가서 아버님을 위해서 함께 인사드릴 테니, 제발 이런 가짜 수표를 헷갈려서 다른 사람들에게 쓰지 말아요!! 만약 이런 거 쓰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 날지도 몰라요!"시후도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여보 안심해요! 내가 꼭 주의할게요! 어머니, 그리고 이 수표는 진짜예요, 여기 있어요!"시후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3천만 원짜리 수표를 꺼내 급히 우선에게 건네 주었다."어머님께서 이걸 일찍 발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이 수표를 불태워 버릴 뻔했어요! 그랬으면 정말 큰 손해가 아니었겠습니까?"우선은 그를 한번 노려보았다. 만약 오늘 이 수표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오늘 시후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이미 이렇게 여유 자금이 생기게 되었으니 못살게 굴게 무엇이 있겠는가? 당장 이 수표를 가지고 가면 나머지 수천만 원이 모두 자신의 돈이 될 것이다!그녀가 수표를 받자, 시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늘 조심성 없었던 그의 행동으로 큰일이 날 뻔했지만 다행히 반응을 빠르게 했기에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었다.하지만, 만약 장모님이 이 100억짜리 수표가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쉬운 마음에 바로 창문에서 뛰어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중, 병실 문밖에서 갑자기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곤아, 상곤아! 내 아들아, 이게 무슨 일이야?!! 이 엄마가 널 보러 왔다!"이 목소리가 들리자 시후는 눈살을 찌푸렸다.곧바로 신 회장이 지팡이를 짚고 김창곤, 김혜준, 김혜빈과 함께 병실로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신 회장은 안타까운 얼굴과 붉어진 눈시울로 들어왔다. 그녀는 문을 들어서자마자 눈물을 참지 못하고 급히 병상에 누워 있는 김상곤에게 다가가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상곤아, 이 엄마는 네가 차 사고가 크게 났다는 말을 듣고 놀라서 심장병으로
시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왜냐하면 시후는 WS 그룹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가족애의 굴레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제3자의 눈으로 지금의 상황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신 회장은 고육지책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WS 그룹은 지금 궁지에 몰려 있었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들은 결국 파산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신 회장은 ‘회장’이라는 직책에서 한 순간에 길바닥에 나앉는 신세가 된다.그녀는 한평생 체면과 지위를 중시하는 사람으로 살아왔기에, 가난하고 초라한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서든 바닥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그녀는 앞서 유나를 꼬드겨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 뒤,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유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자 그녀는 다음 번 타겟으로 며느리 우선에게 돈을 주며 다시 한 번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우선은 유나를 설득하는데 실패했다.그래서 이제 그녀는 자신의 아들 상곤을 겨냥해 고육지책을 통한 돌파구를 찾았다! 아마 오늘은 그녀의 마지막 한 수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그런데 신 회장에게도 기회는 있었는지 김상곤이 이미 그녀의 말에 속아 넘어가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이었다.그는 가슴에 뭉쳐 있던 응어리가 조금씩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그러자 상곤은 눈물을 흘리며 신 회장에게 호소했다."엄마아!!! 내..내가 왜 엄마를 탓하겠어요! 난 엄마 탓 한 적 없어요!! 내가 다 못나서 그런 거죠~ 흐으윽.. 제가 크게 될 놈이 아니라 엄마를 실망시켜드려서 늘 죄송합니다.."신 회장은 이 때다 싶어 더욱 슬픈 척을 하며 말했다. "아이고 대단한 우리 아들.. 이 어미의 고심을 이해해 줘서 정말 고맙다.. 이 엄마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어!"라며 상곤의 손을 꼭 잡으며 울먹거렸다.병실 한쪽 구석에 서 있던 형
김창곤도 부랴부랴 맞장구를 쳤다. "그래, 유나야, 네 아버지 건강도 중요하니까.. 그리고 나으려면 좋은 환경도 있어야 하고, 기분도 좋아야 빨리 낫지 않겠냐? 그러니 할머니의 말대로 WS 그룹 별장으로 돌아와서 당분간 지내도록 해. 내가 도우미 몇 명을 불러서 24시간 내내 네 아버지를 보살필게!"병상에 누워 있던 김상곤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감동한 나머지 마음이 흔들리고 뜨거워지자 유나에게 "유나, 우리 이사 가서 살까...?"라고 물었다.유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왜냐하면 신 회장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한동안 헷갈렸기 때문이다.하지만 신 회장이 병실에 들어와서 그녀의 아빠와 큰 아버지까지 세 사람이 손을 잡고 엉엉 눈물을 흘리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빠의 회복을 위해서라면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WS 그룹 별장에 돌아가서 사는 것이 더 나아 보였다. 분명 환경도 좋고 아버지의 기분도 좋을 것이니 분명 더 빨리, 더 잘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자 우선은 옆에서 "유나야,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야?! 왜 아직도 멍청히 서 있어? 어서 할머니께 대답해!"유나는 머뭇거리다 엄마 아빠가 자신을 설득하는 것을 보고 "그럼, 그냥 이사가요.."라며 말을 꺼냈다.신 회장은 표정이 일시에 밝아지며 가슴이 벅차 올랐다.‘아이구! 드디어 됐다! 호호호! 역시 내 계획이 통했어!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고 하더니.. 호호호.. 둘째 상곤은 아무 생각도 없는 멍청이고, 며느리라는 것은 돈만 밝히는 거렁뱅이에다, 손녀 사위라는 건 아무 능력 없는 병신이야. 유나는 재주가 좀 있는 것 같지만, 결국 내 고육지책으로 다 함께 넘어오게 되었으니 결국 내 손에 다 들어온 게 아니겠어?”이렇게 생각하자, 신 회장은 속으로 어찌나 흐뭇한 지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수 밖에 없었다.김창곤은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는데, 그의 어머니에 대한 존경은 흐르는 강물처럼 끊이지 않았다.엄마는 역시 대단하신 분이었다.
시후는 이들의 실체를 폭로하기 위해 말했다."제가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WS 그룹 별장으로 돌아가서 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모두가 다 가족이니까요..하지만 이제 유나 씨의 사업장이 다 완공이 되었기 때문에 다시 WS 그룹으로 돌아가서 일하게 될 일은 없다는 걸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뭐라고?!"시후의 말을 들은 신 회장은 순식간에 꼬리를 밟힌 듯 펄쩍 뛰며 소리쳤다."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우리 모두가 함께 살 뿐만 아니라, 함께 머리를 맞대어 힘든 일도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데 어떻게 유나가 우리 그룹에서 일을 하지 않는 다는 말이야 은 서방?”시후는 웃으며 답했다. "할머니, 할머니께서는 조금 전에 장인 어른이 몸이 좋지 않기 때문에 당분간 조금 편하게 지내면서 살자고 우리 식구들을 초대하는 거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 그러니 별장에서 함께 사는 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WS 그룹으로 유나 씨가 돌아가서 일하는 것은 함께 지내는 것과는 별개이기 때문에 혼동하시면 안 되지요?"“그건 절대 안 돼! 우리 별장으로 돌아오게 된 이상 WS 그룹에 출근해야 말이 되는 거다!"라며 신 회장은 시후의 말에 못을 박았다.그리고 그녀는 또 다시 계속해서 유나를 꼬드기기 시작했다."아이고~ 내 손녀 유나야.. 회사가 막 개업해서 이렇게 업무도 없고 얼마나 힘들어? 혼자서 회사 하나 운영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네가 경험해보지 않아서 잘 몰라! 만약에 빚이라도 진다면 네가 어떻게 대처할 거야? 차라리 네가 차린 회사는 그냥 다시 폐업하고 WS 그룹으로 돌아와! 그러면 너는 더 편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니까? 왜 자꾸 힘든 일을 가려고 하는 거야?!"유나는 이제서야 신 회장의 말에서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왜냐하면 시후의 말이 맞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가족들을 불러 다시 별장으로 이사 오게 한 이유는 바로 자신이 WS 그룹으로 돌아와 일을 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유나의 앞에 가서, 곧바로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병실 안의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늘 남들 위에서 군림하며 냉담하고 거만했던 그 WS 그룹의 신 회장이 유나의 앞에서 무릎을 꿇다니??!이건 정말 그들의 가치관을 뒤엎는 것이었다!김창곤 역시도 어머니가 유나를 속이기 위해 이렇게까지 많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그녀는 평생 강인하고, 남을 통제하며 무릎 꿇리고 싶어했고 남에게 이렇게 무릎 꿇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유나도 역시 지금 상황에 당황하여, "할머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어서 일어나세요!”라며 안절부절 못했다.하지만 신 회장은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하며 말했다."유나야, 전에는 다 이 할미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내가 너에게 이렇게 사과를 하마!! 너는 이 할머니를 용서하고, 제발 WS 그룹에서 일을 좀 도와 주라.. 우리 그룹에는 네가 없으면 안 돼. 네가 없으면 WS 그룹은 정말 끝이야!! 그러니 이 할머니 말을 듣고 제발 돌아오너라!!"지금의 신 회장은, 유나를 대하는 태도가 크게 바뀌었다.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오만함이 없었다. 그저 끝없는 후회와 탄식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지금 WS 그룹은 이미 위험에 처해 있어서, 그녀는 자신이 무릎을 꿇고 부탁해도 별로 아쉬울 것이 없었다. 그저 유나를 그룹으로 데려오는 것이 능사일 뿐..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큰 그룹은 그대로 몰락하고 말 것이다!김창곤은 신 회장을 보자마자 자신도 무릎을 꿇고 부탁하기 시작하더니, 김혜준을 데리고 와 화해를 시도했다. 그러자 혜빈 역시 덩달아 무릎을 꿇고 줄곧 유나에게 빌고 또 빌었다.유나는 이런 광경을 보고 잠시 쩔쩔맸다.늘 체면이 자기 목숨보다 더 중요한 할머니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아마도 지금의 그룹은 정말 지쳐 있는 듯했다...신 회장은 유나를 보고도
신 회장의 실제 동기가 갑자기 시후에 의해 폭로되자, 사람들은 순간 당황하여 삐걱거렸다.신 회장은 자신이 작은 꾀를 써서 유나 일가족을 자신의 편으로 다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은시후 이 멍청이는 더더욱 별 어려움 없이 속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게다가 혜준, 혜빈으로 하여금 그에게 사과를 하게 하고 그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게 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감사하며 감동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혼자 정신이 깨어 있는 건 은시후 혼자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자신의 동기가 간파되자, 신 회장은 우물쭈물했다."아니.. 그저 다 한 집안 식구.. 한 집안 식구가 같이 일하는 게 아니라 따로 따로 회사를 차렸다고 소문이 나면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는 일이 아니냐?"하지만 시후는 신 회장을 비웃었다. “하하.. 과연 그런가요?? 글쎄요.. 제가 보기에 회장님의 속셈이 빤히 보이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 회장님께서 유나 씨에게 했던 일들을 한 번 기억해보십시오. 그저 유나 씨를 이용해서 WS 그룹을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것 아닙니까?”"너...너...!!!?" 신 회장은 화를 내며 할 말을 잃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창곤이 대뜸 호통을 쳤다. "은 서방, 자네 말 좀 조심해! 그리고 자넨 이 집에서 그냥 외부인일 뿐이라고!"하지만 시후는 창곤을 무시했고, 대신 아내 유나에게 말했다. “여보 이것 좀 봐요! 이 인간들은 당신을 이용하고 싶어할 뿐이라고요! 그러니 당신을 모두 이용한 뒤에는 즉시 당신을 버릴 것이 분명해요. 당신이 지난 번에 어떤 일을 했던가요? 잘 기억해봐요. 이전에 당신이 엠그란드 그룹과의 계약을 따낸 후에 이들이 당신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잊은 거 아니죠? 겉으로는 당신을 이사라고 하면서 어떻게 했냐고요? 축하 자리에서 갑자기 김혜준을 이사로 발탁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기까지 했어요! 이런 일을 또 경험하고 싶은 건 아니죠 유나 씨?”유나의 표정은 한 순간에 차갑게 식었
유가휘는 그동안 홍콩에서 여러 연애 관련 스캔들로 이름을 날렸고, 그와 사귀었던 모든 여성들은 마지막에 헤어지더라도 여전히 그를 보기 드문 신사라고 칭찬하곤 했다. 로맨틱한 재벌들은 많지만, 유가휘처럼 행동하는 이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이때, 홍콩은 이미 깊은 밤이었다. 유가휘는 비단으로 만든 잠옷을 입고 서재에 앉아 집사가 건넨 자료를 읽고 있었다. 자료를 몇 번이나 훑어본 그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자식을 이렇게 오래 찾아다녔지만 못 찾았는데, 뉴욕의 한인 타운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숨어 있었다니! 보아하니 꼴이 완전히 초라해졌겠군! 만약 그를 본다고 해도 아마 못 알아볼 정도일 거야!”집사는 급히 말했다. “대표님, 이중열이라는 자는 정말로 완벽하게 숨어 있었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20년 넘게 거의 면도를 하지 않고, 머리도 길게 기르며 분위기를 상당히 바꿨다고 하더군요. 이번에 미국 경찰이 그의 자료를 조사하지 않았다면, 그의 행방을 찾기도 어려웠을 겁니다.”유가휘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런데 미국 경찰이 왜 그를 조사했지? 미국에서 무슨 범죄라도 저질렀나?”집사가 대답했다. “제 정보통에 따르면, 며칠 전 뉴욕에서 일어난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그를 의심한 것 같더군요. 게다가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이라 경찰이 그의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홍콩에서의 과거 자료를 찾아낸 것 같습니다.”유가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이 멍청한 자식! 난 늘 그 놈의 뛰어난 두뇌로 분명 새로운 신분을 얻어 금융이나 주식 같은 본업으로 돌아가 재기를 할 줄 알았는데.. 그런데 이렇게 초라한 식당이나 운영하며 살고 있다니, 정말 한심한 놈이군!” 사실, 유가휘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신사적인 모습과 달리 소심하고 앙심을 품는 성격이었다. 따라서 이중열에 대한 원한을 그는 지금까지 잊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중열이 너무 철저히 숨어 있는 바람에 오랜 세월 동안 그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유가휘가 사랑했던 여인은
이중열의 신분은 확인되었지만, 이는 오히려 제이크 한에게 약간의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는 좀 더 특이하고, 뭔가 음모가 숨겨져 있을 법한 정보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고 받은 내용은 그의 이중열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불식시키는 내용이었다. 베테랑 경찰관으로서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현재를 위장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과거를 완벽히 숨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많은 범죄자들은 과거를 지우고 모두가 존경하는 성공한 인물이 되었음에도, 결국 과거의 죄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되는 것이다.20~30년 전의 이중열에게 일어난 일들까지 밝혀졌으니 그와 혜리의 관계를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다. 따라서 혜리가 그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혜리가 식당에서 식사 중 우연히 안충주가 아버지의 건강이 위독한 상황을 언급하는 것을 듣고, 먼 길을 달려 약을 전달하러 온 것이라면, 이 역시도 납득할 수 있을만한 일이었다.이중열이 왜 CCTV의 하드웨어를 고의로 파손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제이크 한은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 있었다. 혜리는 유명한 스타이고, 이중열 역시 평범하지 않은 과거를 가진 인물인 만큼, 그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혜리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CCTV를 파손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 모든 일들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었으므로, 이 노선은 더 이상 추적할 필요가 없어졌다.결국 제이크 한은 경찰이 블랙 드래곤의 단서를 통해 사건을 더 깊이 파헤쳐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현재로선 블랙 드래곤이 가장 분명한 수사 방향이었다.그러나 부하의 목소리는 약간 무기력했다. “형님, 오늘 후임자인 브루노가 우리와 회의를 했습니다. 이 사건은 조사 방향을 피해자들의 신원 확인과 피해자 납치 사건의 구체적인 경위 조사로 완전히 전환하기로 했습니다. 페이셔스 그룹 쪽도 윗선과 이미 이야기를 끝났습니다. 그래서 블랙 드래곤에 대한 조사는 사실상 중단될 겁니다.”제이크
안충주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우리 그룹이 이 카펫 하나를 교체하는 데 드는 비용이 우리 총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네가 집에서 쓰레기통에 새 비닐봉지를 끼우는 정도와 비슷한 거야. 쓰레기 봉투 갈 때 아깝다고 생각하냐?”“젠장....” 제이크 한은 혀를 차며 욕설을 내뱉었다. “또 폼 잡고 있네..”안충주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난 사실대로 말한 것뿐이야.”이야기를 나누며 일행은 차례로 한식당에 도착했다. 안산은 제이크 한을 불러 자기 옆에 앉도록 했다.안태풍이 미리 지시한 덕분에, 일행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직원들은 준비된 음식을 곧바로 가져왔다. 안태풍은 직접 청주 한 병을 가져오게 하여, 형과 함께 제이크 한에게 술을 권하며 기분을 풀어주려 했다.안산은 제이크 한이 처한 현재 상황에 대해 계속해서 신경을 쓰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하지만 제이크 한은 상황에 대해 자세히 말하기 곤란했기에 그냥 최근 몇 가지 큰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고 막연하게만 대답했다. 안산은 그가 더 이상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더는 묻지 않았다.제이크 한은 그의 성격 때문에 평소에 친구가 많지 않은 편이었다. 게다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 홀로 그를 키웠으며 재혼도 하지 않았기에 형제자매도 없었다. 최근 몇 년간 그의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휴스턴으로 떠난 후, 혼자 뉴욕에 남아 있었기에, 제이크 한은 더욱 외롭게 생활했다.비록 아버지 세대부터 그와 Samson 그룹은 친분이 두터웠지만, 신분 차이가 커서 제이크 한은 그들을 자주 방문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만약 최근 안충주가 한국에서 회춘단을 구입하다가 충격을 받지 않았고, 제이크 한이 배호영의 납치 사건으로 고민을 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자주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그래서 지금 Samson 그룹 사람들 속에 앉아 있는 제이크 한은 고독했던 마음에 작은 위로를 받았으며, 억눌려 있던 마음도 조금씩 풀렸다.안충주, 안태풍, 안재남과
제이크 한의 말에서 뭔가 사연이 많음을 느낀 안산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이야기가 길어도 괜찮아. 밥 먹으면서 천천히 얘기하자고.” 안산은 얼마 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데다 기억력이 심각하게 저하되어 최근에 미국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사건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제이크 한을 잘 알고 있었고, 그가 원래 성격이 매우 고집스러우며 웬만해서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더 궁금해졌다.제이크 한도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았기에 대충 얼버무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제 별 것 없는 이야기로 괜히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에 이따 술 한 잔 드시면서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이 말을 듣고 시후의 외할머니가 급히 두 사람을 말렸다. “제이크, 회장님한테 술을 권하면 안 돼. 지금 정신이 이 모양인데 술이라도 마시면 나까지 못 알아볼지도 몰라.”“맞습니다, 맞습니다....” 제이크 한은 급히 깨닫고 사과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생각이 짧았네요.”안산은 웃으며 말했다. “네 놈이 이렇게 풀이 죽은 꼴을 보니, 술을 마시고 싶은 건 사실 너로구나!” 그러고는 안산은 안충주와 안태풍을 향해 말했다. “충주야, 태풍아, 이따 너희 둘이 제이크와 한 잔 하도록 해라. 나는 안 마실 테니.”두 형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안산은 제이크 한의 숨기지 못하는 우울한 기색을 보며 일부러 진지하게 말했다. “제이크 한! 정신 차려! 지금 이 꼴이 뭐냐? 네 아버지의 예전 모습을 조금이라도 닮아야지 말이야!”그러자 제이크 한은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고 정중하게 말했다. “예, 회장님 말씀이 옳습니다....”안충주가 이때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아버지, 그럼 식사부터 하실까요? 천천히 이야기 나누시죠.”“그래 좋다.” 안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밥부터 먹자.”AB 빌딩 꼭대기 층은 건물 면적만 4천 평방미터에 달해 수백 명이 근무할 수 있을 정
시후의 외할머니는 무기력하게 한숨을 쉬며 단호하게 말했다. “여보, 분명히 말할 게요. 당신이 은 서방을 미워하는 건 내가 어찌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은 서방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앞으로 반드시 바뀌어야 해요!”안산은 완고한 성격이 발동하며 단호히 말했다. “나는 바꾸지 않아! 나중에 내가 죽더라도, 염라대왕이 옥황상제를 불러 나를 심문해도, 은 서방에 대한 태도는 절대 바꾸지 않을 거야!”시후의 외할머니는 화가 나서 말했다. “좋아요! 당신 참 대단하네! 안 바꾼다고요? 그럼 나중에 시후가 돌아오고 가족들이 예선이와 은 서방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시후 앞에서 또 그런 말을 하면 시후는 틀림없이 당신과 연을 끊고, 평생 다시 만나지 않을 거예요! 내가 어렵게 찾아낸 외손자를 당신이 쫓아낸다면, 나도 당신과의 관계를 당장 끊어 버릴 거예요! 믿지 못하겠으면 기다려 보던가요!”그러자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분노로 가득했던 안산은 이 말을 듣자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이 빠져 버렸다. 그는 아내가 자신과 관계를 끊을 가능성은 없다고 알지만, 외손자인 시후가 돌아왔을 때, 자신이 여전히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외손자가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결국, 누구도 자신의 부모를 모욕하는 걸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안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침울하게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 내가 바꿀게.... 꼭 바꿔야지....” 그리고는 안산은 다시 우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죽기 전에 시후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군....”시후의 외할머니는 남편의 태도 변화에 안도하며 부드럽게 위로했다. “걱정 말아요. 내 생각엔 오래 걸리지 않아 시후가 돌아올 것 같아요.”안산은 급히 물었다. “왜 그렇게 확신하는 거야?”시후의 외할머니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은서가 이미 왔잖아요. 그러니 시후도 멀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은서가 이렇게 한결같은 마음을 보여줬으니, 하늘도 감동하여 반드시 시후를 돌아오게 할 거예
안산이 갑자기 화를 내자, 가족들 모두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안산이 평생 동안 마음에서 떨쳐내지 못한 문제였다는 것을... 그는 Samson 그룹의 당시 능력과 그들의 진심을 생각하면, 은서준이 왜 굳이 한국으로 돌아가려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안산의 생각은 너무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은서준을 대할 때 항상 자신이 더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유능한 사장이 100만 달러의 월급을 받고 다른 회사를 다니는 인재에게 100만 달러를 받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이 1천만 달러, 아니 그 이상을 제공할 수 있으니 회사를 옮기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안산은 이렇게 하면 은서준이 자신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은서준이 그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로 인해 안산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큰 좌절감을 느꼈고, 심지어 그 좌절감은 분노로 이어졌다. 원래 그는 은서준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물론 은서준의 가문이 Samson 그룹보다 훨씬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는 은서준이 뛰어난 인재라는 것을 알았고, 자신의 세 아들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러한 인정 때문에 그는 은서준이 Samson 그룹으로 들어오는 것을 간절히 바랐다. 그는 자신의 장녀 안예선만이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은서준은 자신의 딸과 비교해보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뿐 아니라, 서로를 잘 보완할 수 있는 관계였다. 그러니 만약 그들이 함께 Samson 그룹에 머문다면, Samson 그룹은 분명히 날개를 달게 될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사우디 왕실이나 로스차일드 가문과 같은 세계에서 유명한 집안들을 뛰어 넘어 세계 정상에 우뚝 서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그러나 은서준은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은서준은 이미 야망과 포부가 있었고, Samso
이 세상에는 수많은 보험회사와 금융회사가 있지만,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맨해튼에 초고층 빌딩을 세운 보험회사와 금융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하지만 AB 그룹은 그중 하나였다.Samson 그룹은 비록 로스앤젤레스에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제대로 세력을 키우고 성장할 수 있었던 곳은 두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나는 실리콘밸리이고, 다른 하나는 뉴욕인데, 과거 안예선은 실리콘밸리에서 매우 값싼 가격에 엄청난 잠재력을 가졌다고 판단한 회사들에 투자했다. 그리고 이 투자를 더욱 깊이 있는 자본 운용에 연결하기 위해, Samson 그룹은 미국 금융의 중심인 뉴욕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Samson 그룹 전체 핵심이 되는 곳을 이곳에 세웠다. Samson 그룹에는 여러 그룹사들을 가지고 있는데, 투자한 기업들은 셀 수 없을 정도지만 Samson 그룹의 진정한 핵심 그룹은 바로 AB 그룹이었다. AB 그룹이 설립된 이후, 안예선은 실리콘밸리에 투자했던 자금을 AB 그룹과 합병하여, AB 그룹을 미국 최대의 인터넷 벤처 캐피털 기업으로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AB 그룹은 Samson 그룹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기업이 되었다.시후의 외조부 안산은 은퇴하기 전까지 계속 AB 빌딩에서 근무했다. 이후 그는 경영권을 시후의 둘째 외삼촌인 안태풍에게 넘겼기 때문에, 이곳은 안태풍의 사무실이 되었다. 평소에 로스앤젤레스에서 노부부와 함께 지내는 사람은 바로 시후의 큰외삼촌 안충주 뿐이었다. 그 외에 시후의 둘째 외삼촌 안태풍, 셋째 외삼촌 안재남, 그리고 막내 이모 안유진은 모두 뉴욕에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버지의 건강이 점점 악화되자, 다른 가족들도 당분간 자신의 일을 내려놓고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와 아버지의 곁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안산은 은퇴 이후 노인성 치매로 고생했기에 몇 년 동안 이곳을 거의 찾지 못했다. 오랜만에 다시 이곳에 오니, 그는 잠시 회상에 잠긴 듯 창가로 걸어가 맨해튼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건물은 여전
유나는 시후가 말하는 풍수 이론을 이해하는 듯하면서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늘 겉으로 보기에 뭔가 이치가 있는 것 같지만, 동시에 약간 신비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았다. 한편, 아내의 곁에 있는 시후는 속으로 약간의 긴장감과 불안함을 느꼈다. 그는 저녁에 외가 식구들에게 자신의 정체가 노출될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뭔가 자제가 안 되고 고향 근처로 돌아온 듯한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시후는 비록 외가 식구들이 과거에 했던 행동들에 대해 약간의 원망을 품고 있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혈연의 정을 여전히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오늘 밤은 시후가 지금까지의 시간 중에서 외가 식구들과 가장 가까이 마주하는 순간이 될 것이었다. 따라서 그가 느끼는 긴장감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 시각, 시후의 외조부모는 자녀들과 함께 맨해튼에 위치한 AB 빌딩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안산은 감회에 젖어 아내와 자녀들에게 말했다. “예선이가 살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 빌딩에 엄청난 정성과 노력을 쏟았지만, 이 빌딩을 실제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와보지 못 했어....”그러자 시후의 외할머니는 급히 말했다. “큰 병에서 회복한 지 얼마 안 됐으니, 너무 슬픈 생각은 하지 마세요. 오늘 우리가 뉴욕에 온 이유를 잊지 마시고요.”안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가 왜 왔더라?”시후의 외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차 안에서 조금 전에 다 설명했잖아요! 오늘 우리는 시후 약혼녀의 콘서트를 보러 왔다고요!”“아....” 안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각났네.... 시후 약혼녀의 콘서트를 보러....” 그는 말을 마치고 시후의 외할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시후도 오나?”시후의 외할머니는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시후는 아직 못 찾았잖아요!”안산은 민망한
시후는 이 이야기를 듣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외가 식구들이 고은서의 콘서트를 보러 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대해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지만, 정말 그가 예상한 대로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외가 식구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일을 피하고 싶어서 시후는 이번 콘서트를 보러 가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VIP 박스석도 있었기에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까지 모시고 왔다는 말을 들은 그는 말했다. “손님이 오신 것이니, 혜리 씨께서 잘 대접해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그러자 고은서가 대답했다. “은 선생님,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생겨서요.. 두 노인들께서는 연세도 많으시고, 지위도 좀 특수하니, 관객석에서 제 공연을 보시는 건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연세 많은 두 분도 역시 VIP 박스석에 모셔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편안하게 관람하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잠시 말을 멈춘 뒤 고은서는 다시 말했다. “그때 제가 지우 언니에게 먼저 은 선생님과 사모님께서 VIP 박스석으로 입장하도록 안내하고, 그 후에 두 분 노인을 들어오시게 하라고 할 생각이에요. 어차피 박스석 내부는 필요한 것들이 모두 다 갖춰져 있어서 공연 중간에 나오실 필요가 없으실 거예요. 공연이 끝나면 지우 언니가 두 분을 먼저 모시고 나가게 할 테니, 양쪽이 만날 일은 없을 겁니다. 이 계획은 어떠신가요?”시후는 잠시 고민한 후, 시원하게 동의하며 말했다. “그 계획 괜찮네요. 양쪽이 동시에 들어오거나 나가는 것만 피하면, 풍수적으로도 문제 없을 겁니다.”고은서는 시후의 말을 이해하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할머님께 명확히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제가 지우 언니에게 선생님과 사모님이 계신 박스석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할머님을 배치하도록 할 게요. 이러면 더 안전할 겁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시후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