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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7화

작가: 박혜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7-13 19:00:00
송지음은 신유리를 저주라도 하듯 말을 했고 더 이상 신유리에 대한 악한 감정과 원망을 숨기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은 건지 죽일 듯이 째려보았다.

“지금부터 저한테 어떻게 사과할지 생각해두는게 좋을 거예요.”

오늘 특별히 평소보다 더 화려하게 꾸며 입은 송지음과 달리 신유리는 올 블랙 의상을 선택했기에 조금 칙칙하고 건조해보이기 그지없었다.

송지음의 모습이 코너를 돌고 눈에 보이지 않자 임아중이 잔뜩 화가 나 씩씩 거리며 말을 했다.

“저게 도대체 무슨 태도예요? 판사가 뭐 이미 송지음 저 인간이 이겼다고 미리 알려주기라도 했대요?”

옆에 있던 이신은 임아중의 말에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아무 말이나 막 하지 맙시다.”

그와는 달리 신유리는 어떤 반응도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그녀에게는 조금 뒤에 나올 결과가 더 중요했고 더 궁금했으니까.

재판은 10시 정각에 시작되었고 유영석과 박정혜 사이에는 묘한 기싸움이 벌어졌다.

박정혜가 내미는 증거들을 미꾸라지처럼 쏙쏙 빠져나가던 유영석은 정의로운 영웅마냥 말했다.

“상대편 변호사는 지금 이연지라는 증인을 수도 없이 들먹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증인은 이미 정신이 올바르지 못한 상태라던데요. 게다가 바로 며칠전 자살을 하려고 뛰어내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 덕에 지금까지 병원에 입원해있는 상태이고요.”

“그리고 이연지 씨 남편인 주국병 씨는 못 갚은 빚만 해도 수십억이고 전에 원고에게 자식으로서 의무를 다해야한다고 고소를 하며 자신의 돈을 갚으라고 협박한 적도 있는 사람입니다.”

“이연지 씨의 딸, 많이 아픈 아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원고가 제시한 모든 증거들은 다 이 일들이 있은 후의 일이고 그래서 저는 원고가 기회를 노려 저희의 탓으로 돌리며 저희를 모함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유영석의 청산유수와 같은 말들을 듣는 송지음은 신이 나는지 우쭐거리며 앉아있었고 두터운 화장으로도 그녀의 잘난체하는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박정혜는 그런 그들을 담담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피고변호사 측은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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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지음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고 그녀는 애써 정신을 차린뒤에야 주국병의 말에 대꾸해줬다.“저 아세요? 그렇게 저를 막 부를 정도로 저희가 친한가요?”“우리가 안 친했나?”그녀의 대답에 주국병은 사악한 웃음을 짓더니 듣기 거북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근데 난 우리가 되게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전에 나한테 돈도 빌려주겠다고 했잖아, 나 그때 완전 감동받았어.”그의 말에 송지음은 급격히 동공이 흔들리더니 주국병을 경고하듯 노려보며 목소리를 내리깔고는 물었다.“제가 모르는 일을 숨기고 있나요?”주국병은 독을 지닌 뱀과도 같은 눈으로 송지음에게 시선을 고정하더니 입을 열었다.“송 비서님, 나는 오늘 당신이 했던 약속들을 지키러 온 것뿐이야. 애초에 나한테 그 늙어빠진 인간을 인질로 삼으면 돈을 주겠다고 말한 사람은 당신이잖아?”“근데 나는 *발 돈 일전도 받지를 못했어, 게다가 억울하게 지금 옥살이도 당하고 있는데. 넌 나를 속이니까 재밌든?”주국병 또한 얼굴이 점점 더 흉악해졌고 감옥에서는 화장실을 갈 때에도 경찰관과 같이 가야하는 개보다 못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하고 짜증이 난 주국병은 송지음을 뚫어져라 보며 원한들이 가득 차올랐다.송지음은 주국병이 법정에 나타난 뒤로 내내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두꺼운 화장을 한 얼굴로도 그녀의 불안감과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아니요, 헛소리하지마세요. 저는 그쪽을 전혀 알지도 못하잖아요.”그녀는 나지막한 소리로 입을 뗐고 법정안의 모든 사람은 송지음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주국병도 송지음의 이런 태도를 예상이라도 한 건지 주머니에서 u판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아는지 모르는지는 판사님이 잘 판단해주겠지.”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다행히 내가 그 정도로 병신이 아니라서, 네가 이렇게 나올 줄 알고 뭐 좀 찍어둔게 있지.”“원래는 나온 뒤에 네가 준 돈으로 사업이나 조그맣게 해볼까 했는데 네가 *발 우리 장인어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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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말고 다   제389화

    박정혜는 말을 마친 뒤 그대로 뒤를 돌아 떠났고 신유리는 서준혁을 물끄러미 보며 물었다.“왜 갑자기 오셨어요?”“박 변호사님이 맡은 사건은 볼 가치가 있으니까요.”서준혁은 큰일이 아니라는 듯 검은 눈동자로 신유리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원래 다른 물음도 더 물으려 했던 신유리는 입구에서 급히 달려 들어오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과 들것을 보고는 입을 다시 닫아버렸다.꽤나 많은 사람들은 이미 정신을 차린 송지음을 들것에 실었는데 그녀의 자세는 누가봐도 괴의하기 그지없었다.한군데에 몰려있던 인파들이 점차 흩어졌고 임아중은 곡연과 함께 얼굴에 미소를 띠고는 신유리에게 다가왔다.“유리야, 오늘 우리 제대로 축배를 들어야지? 이렇게 좋은 일이 또 어디있겠어.”그녀는 서준혁을 흘깃 쳐다보고는 일부로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말을 했다.“서 대표님께서 왜 아직 여기계세요? 방금 송지음 씨 실려간거 못 보셨나요?”서준혁은 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그게 저랑 무슨 상관입니까?”임아중은 그의 대답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물었다.“왜 상관이 없으세요? 전에...”신유리는 임아중의 물음에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말을 끊어버리며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이신이는? 맛있는거 먹으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신유리는 임아중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려는 것을 알지만 오늘 같은 날에 굳이 그런 주제로 말을 하기가 싫었다.임아중도 신유리의 이런 마음을 알았는지 신유리에게 대답해줬다.“이신 씨 엄지한 씨 따라 나가던데... 그 증인 두 분 아직 계시지 않아?”이연지와 주국병의 얘기를 꺼내자 신유리는 순간 침묵했다.박정혜가 주국병을 찾으러 갔다고 해도 그녀는 날카로운 가시가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얼마나 웃긴 장면이었는가!마지막에 증인으로 나온 사람은 송지음도 이연지도 아닌 주국병이었다니.이연지이 친딸이 아닌 주국병이 손을 댄 그 사람이라니.신유리는 눈빛이 점점 차가워지더니 발길을 돌려 자리를 떠나버렸다.그 시각, 밖에는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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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유리는 서준혁과 눈이 마주치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곧 자신의 시선을 다른 곳에 돌려버렸다.서준혁은 병실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 왔고 신유리의 눈치를 살짝 살피더니 벨을 눌러 의사를 호출해 지금 검사를 받으려고 하였다.신유리가 갑자기 쓰러져버린 이유는 바로 과로 때문이었기에 의사는 약간의 검사를 마친 뒤 휴식과 안정을 잘 취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임산부는 절대로 과로하시면 안 됩니다, 만약 다음에 이런 상황이 또다시 벌어지면 그땐 태아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명심하세요.”그녀는 의사가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고개를 돌려 서준혁을 쳐다보며 물었다.“왜 오셨어요?”서준혁은 그녀의 말에 뜨끔 하는가 싶더니 전과는 달리 약간 부드러워진 눈빛으로 신유리를 내려다보며 되물었다.“또 어디 불편한데는 없습니까?”“방금 의사선생님이 다 검사했잖아요.”신유리는 여전히 단호하고 딱 잘라 짧은 대답을 했다.서준혁은 그녀의 태도에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몰라 헤매던 그때, 신유리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별 일 없으시면 먼저 가세요, 조금 잇다가 이신이랑 다른 사람들 올 거예요.”잠에서 깨자마자 서준혁을 본 신유리는 사실 큰 파동이 없었고 그에게 왜 왔는지조차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재판까지 끝났으면 이젠 끝내야지.]서준혁은 신유리의 말에도 떠나지 않았고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며 아까보다는 조금 더 예민해진 말투로 대답했다.“지금 제가 걱정해주고 있는걸 모르는 겁니까?”신유리는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을 했다.“네, 알아요. 고마워요.”찔러도 피 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신유리의 모습에 서준혁은 화가 나 헛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박정혜 변호사님께서 나중에 사무실 한번 오라고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이거면 됩니까?”사건이 끝난 뒤에도 다른 일을 더 봐야하지만 이틀이나 쓰러지듯 잠을 잔 신유리 때문에 일은 제자리걸음이었다.신유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갈게요.”사실 신유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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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말고 다   제391화

    신유리는 속눈썹을 내리깔며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 사람들은 많았고, 모두 송지음의 병실 문 앞에 모여 구경하고 있었다. 신유리는 더 이상 여기 있고 싶지 않아 걸음을 옮겨 서준혁을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손목이 가볍게 잡혀 고개를 들어보니 서준혁의 짙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는 신유리를 보며 말했다. “밖에 비 와.”신유리는 걸음을 멈추고 눈에 의문을 띈 채 서준혁을 바라보며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다. 이 갑작스럽고 알 수 없는 태도로 인해 신유리는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직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송지음 어머니가 또 따라와 서준혁 옆으로 바짝 붙으며 입을 열었다.“대표님, 우리 지음이가 대표님과 만날 때 절대 대표님을 배신한 적이 없어요. 나중에 잘못한 것도 대표님과 다투다가 그런 거잖아요. 서로 싸웠던 그 시간 동안, 우리 애는 집에서 매일 밥도 못 먹고 지냈다고요...”그녀는 오직 송지음을 위해 변명만 하느라 서준혁 옆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신유리는 그녀에게 강제로 밀려 반걸음 옆으로 비켜섰고 만약 임아중이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옆 사람과 부딪쳤을 것이다. 임아중은 성격이 급해서 바로 불같이 밀어붙였다. “아줌마, 옆에 사람 안 보이세요? 밀치긴 왜 밀쳐요? 그러다가 다치면 당신이 돈 물어줘야 하는 거 알죠?”송지음 어머니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낮은 목소리로 신유리에게 짧게 사과하고는 다시 서준혁에게 매달렸다. 신유리는 더 이상 그에게 묻고 싶은 것도 없어 임아중과 함께 떠났다. 신유리의 모습이 완전히 모퉁이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서준혁은 묵묵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고 그제야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의 앞에 있는 중년 아줌마를 바라보았다. 송지음 어머니는 애처로운 목소리를 갑자기 멈추더니 서준혁의 시선을 받으며 입을 열려고 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신유리와 임아중이 병원을 나서기도 전에 밖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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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말고 다   제392화

    서준혁의 목소리는 무겁고 마치 밖의 비처럼 땅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차가운 기운이 퍼져나갔다. 신유리는 문득 연우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부산시에서 누군가 송지음의 뒤를 봐주고 있다고 했는데 그의 이름은 바로 신연이었다.신유리의 얼굴은 약간 굳어졌고 임아중은 믿기지 않다는 듯 말했다.“누가 도와준다고? 서준혁, 너 지금 말 지어내는 거 아니야? 무슨 병이 있어서 석방을 해? 그년이 무슨 병이 있다고?”서준혁을 바라보는 신유리의 시선은 점점 깊어졌다.“진짜예요.”이석민은 말을 끊으며 서준혁을 한 번 흘끗 쳐다보더니 임아중의 말에 반박했다. “부산시 쪽에 누군가가 있어요. 유리 씨의 소송이 승소한 날, 화인 그룹 측에서도 송지음을 상업 절도로 상소를 했고 대표님께서도 요즘 계속 여러 조사에 협조하고 있어요.”“그런데도 이상하게 부산시 쪽에서 계속 방해하고 있어요. 현재로서는 누가 뒤에서 조종하는지 알 수 없어요.”이석민의 설명에 신유리는 약간 얼굴이 굳어졌다.반면 임아중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듯하게 말하네. 송지음이 부산시에서 높은 사람이라도 붙잡기라도 했다는 거야? 서준혁, 너 그럼 당한 거네?”별장에 도착해서 차가 막 멈추자마자 임아중의 전화가 울렸다. 그녀는 확인도 하지 않고 바로 차에서 내려 전화를 받으러 갔다.신유리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서준혁은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이석민을 보자 그는 눈치 빠르게 차에서 내렸다.차 문이 열리면서 비 냄새가 스며들어왔다. 신유리는 직접적으로 말했다. “부산시에서 송지음의 뒤를 봐주는 건 아마 신연일 거야.”서준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새까만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어?”신유리는 서준혁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그날 송지음이 직접 말했어. 게다가 한세형은 그럴 능력이 없어.”부산시에서 성남시까지 손을 뻗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 신유리는 마음속에 의문이 많았지만 냉정하게 분석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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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말고 다   제393화

    라운지 바의 어두운 조명 아래 서준혁은 온몸이 거의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었다. 우서진은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짜증스럽게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장난하지 마.”그제야 서준혁은 눈을 들어 우서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장난?”우서진은 서준혁을 바라보며 하려던 말을 되레 삼켜버렸다가 결국 술을 반쯤 들이키더니 이내 직설적으로 물었다. “너랑 신유리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그들과 친한 사람들은 서준혁과 신유리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최근의 일이 아니라 오래된 일이었다. 대부분 사람은 서준혁이 신유리에게 흥미를 잃었기 때문에 그녀를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서진만은 서준혁이 한때 진심으로 신유리에게 프러포즈하려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필 그때 서준혁은 신유리와 서창범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신유리는 서창범에게 절대 서준혁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서준혁의 비서일 뿐 그 이상은 없다고 말했다.서준혁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 신유리가 그렇게까지 말했으니 더 이상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우서진은 그때 서준혁이 갖고 있던 반지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 서준혁과 신유리의 관계가 점점 멀어졌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났다.오늘 밤 그들은 친구 생일 파티를 위해 라운지 바에 모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서준혁은 우서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고 그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우서진은 문득 생각난 듯 무심한 표정으로 술잔을 들어 서준혁의 잔에 부딪히며 말했다. “주현이 최근 몇몇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고 있는데 너에 대해 알아보는 것 같아. 그녀를 몇 번 봤는데 꽤 역은 것 같더라고.”서준혁은 짧게 대답했고 우서진은 눈치 있게 화제를 바꾸며 물었다. “부산시 쪽은 순조로워? 최근 하씨 가문에서 뭔가를 꾸미고 있는 모양인데.”서준혁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고 우서진은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말했다.“난 아직도 네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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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말고 다   제637화

    태송백은 신연을 향해 내리치려 했다.태지연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신연을 밀어내며 그의 앞을 막아섰다.태송백은 태지연을 보더니 급하게 행동을 멈췄다.그러나 이미 큰 힘을 실은 탓에 갑자기 멈추려 해도 늦었다. 그는 급히 방향을 틀었지만 결국 태지연의 어깨에 맞았다.뼈가 부딪히는 고통에 태지연은 휘청거리며 균형을 잃었다. 팔을 타고 내려오는 통증에 그녀는 눈앞이 어지러워지더니 옆으로 쓰러지며 머리를 부딪혔다. 곧이어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바닥에는 유리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모든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신연이 반응했을 때 태지연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쥐 죽은 듯 고요한 방 안에는 태지연의 신음소리만 울려 퍼졌다.“아파...”신연의 눈에는 깊고 검은 파도가 일었다. 그는 태지연의 곁에 무릎을 꿇은 채 다급하게 소리쳤다.“성한빈, 당장 구급차 불러! 지금 당장!”그는 태지연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다칠까 봐 두려웠다.신연은 이내 고개를 들어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태송백을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그를 죽일 것 같은 기세였다.태송백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다가왔다.“태지연... 지연아...”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아까의 광기 어린 얼굴은 온데간데없어진 채 공포에 질려 있었다.태지연은 그를 바라보더니 손을 들어 태송백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힘겹게 말을 꺼냈다.“오빠... 내 말부터 들어줄래?”태송백은 숨을 죽이며 말했다.“그래, 네 말 들을게. 오빠가 나빴어. 오빠가 미안해... 지연아, 나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알아. 오빠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거. 오빠는 항상 나를 제일 아껴줬잖아.”태지연은 여전히 고통에 시달린 채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정신이 점점 혼미해져 갔지만 그녀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낮게 말했다.“오빠, 난 신연 편을 들고 싶은 게 아니었어. 그저 엄마 아빠가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야. 우리 가족이 다시

  • 나 말고 다   제636화

    태송백은 한층 더 날카로운 눈빛으로 신연을 노려봤다. 한참 후에야 이를 악문 채 말을 내뱉었다.“뒤에서 숨고만 있다가 부하들만 짖게 놔두더니 이제야 직접 나선 거냐? 나한테 기회를 준다고? 신연, 너 진짜 죽을 때까지 정신 못 차리는구나?”태송백은 태지연을 흘겨보며 비웃음을 흘렸다.“너 내 동생을 완전히 속였잖아. 지금도 태지연이 여기까지 와서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고.”태송백의 말은 가시처럼 날카롭게 태지연의 가슴에 박혔다. 그녀는 주먹을 움켜쥐며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오빠, 제발 진정 좀 해요.”“태지연, 넌 입 다물어. 계속해서 그 새끼 편을 들면 넌 더 이상 내 여동생도 태씨 가문의 딸도 아니야!”태송백은 격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우리 태씨 가문이 이 꼴이 된 건 전부 그 새끼 때문이야! 아버지께서 지금 병원에 누워 있는 데다 나도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숨어 다녀야 하지. 내가 밖에서 무슨 꼴을 당하는지 알기나 해? 모든 게 다 저 새끼 때문이라고.”“엄마는 창녀에 아빠는 손님이고. 참, 너도 신유리 알지? 걘 얼마나 똑똑한지 저 새끼랑 상종도 안 해. 너 혼자 보물인 양 여기고 있는 거야.”태송백은 쌓여 있던 울분을 쏟아냈다. 둘 사이의 갈등은 이미 단순히 말로 풀 수 있는 정도가 아닌 자존심 문제였다.그는 반드시 신연에게 자신이 당한 굴욕을 몇 배로 돌려주겠다고 결심했다.태송백은 한 마디 한 마디에 독설을 내뱉었다.“태지연, 넌 더럽지 않냐?”그녀는 마치 얼어붙은 듯 제자리 굳어버린 채 태송백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오빠, 그만해요... 제발 그만 말하세요.”그녀는 차마 신연을 돌아볼 용기도 없었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목이 바싹 말라오더니 눈앞이 흐려졌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신연 앞을 막아서며 무시해 버리라고 하고 싶었지만 마치 나무 말뚝에 묶인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태송백의 독설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악의 어린 말들이 허공에 울려 퍼지

  • 나 말고 다   제635화

    성한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둘째 도련님께서 문이 열릴 때마다... 전에 우리 쪽 사람들이 다친 적도 있었습니다.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신연은 바닥에 부서진 유리 조각들을 흘겨보더니 무표정으로 말했다.“아직도 부술 게 남아있어?”성한빈은 순간 안색이 굳어졌다.태지연은 그들의 대화를 신경 쓰지도 못한 채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잠시 자리 좀 비켜줄 수 있어? 오빠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어.”신연은 눈을 내리깔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약속하듯 말했다.“아무것도 안 할게. 믿어줘, 응?”“아직 불안정할 텐데. 너희 둘만 남겨둘 수 없어.”“걱정 마. 아무 짓도 안 할 거야. 그래도 내 오빠잖아. 어렸을 때부터 나를 가장 아껴주던 사람이야.”태지연은 신연을 바라보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물건을 너한테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잖아. 나야말로 누구보다도 이 일이 빨리 끝나길 바라고 있어.”“우리도 빨리 예전으로 돌아가자. 아무리 예전처럼 되지 못하더라도 이 일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어.”태지연의 목소리는 다소 지친 듯했다.“연아, 나 정말 너무 힘들어.”신연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한참 지나서야 그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한번 얘기해 봐.”태지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신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근데 나가진 않을 거야. 보다시피 최근 태송백 상태가 불안정해. 단둘이 두는 건 불안해서 안 되겠어. 여기서 기다릴게.”현관에서는 안쪽 상황을 볼 수 없었다.그녀는 신연이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걸 알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바닥의 유리 조각들을 피하며 안으로 들어갔다.안쪽은 더 엉망이었다. 바닥에는 온갖 유리 파편들과 장식품들이 흩어져 있었다.태송백은 원래 성격이 좋지 않은 편인데 얼마나 화가 났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그녀는 바닥의 유리 조각들을 피해 가며 간신히 거실까지 다가갔다. 순간 태송백의 격앙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내가 나가라고

  • 나 말고 다   제634화

    다음 날 아침, 신연은 평소처럼 아침을 준비해 두었다.테이블 위에는 더 이상 초콜릿케이크가 보이지 않았고 신연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했다.그는 우유 한 잔을 따라 식탁 위에 놓더니 입을 열었다.“얼른 씻고 아침 먹어. 나 오늘은 일이 있어서 점심에 못 올 거야. 점심은 호텔에서 보내줄 거야.”태지연은 순간 마음이 움찔하며 신연에게 물었다.“회사? 아니면 어디?”신연은 동작을 멈추더니 속눈썹을 내리깐 채 일부러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응, 회사.”“연아.”태지연은 의자 등받이를 꽉 잡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어젯밤 한 말은 전부 진심이야. 만약 네가 오빠를 건드리면 절대 용서 못 해.”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라앉았고 손가락이 하얘질 정도로 의자 등받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신연은 그제야 동작을 멈추고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태지연은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말했다.“만약 네가 오빠를 건드리면 나중에 내가 부모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어?”조금 이기적일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녀는 어쩔 수 없었다. 어젯밤에 들은 말로만 신연이 정확히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태도를 봐서는 만약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태송백을 순순히 놓아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태지연은 손에 힘을 풀더니 힘겹게 신연 곁으로 다가갔다.“연아, 원하는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대신 찾아줄게.”순간 신연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목젖을 울렁이며 태지연을 내려다보았다.“내가 물건을 찾고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태지연은 잠시 멈췄다가 대답했다.“오빠가 말했어. 자기 손에 너한테 아주 중요한 게 있다고. 연아... 내가 찾아줄게. 내 오빠잖아, 내가 말해볼게.”어젯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그녀의 안색은 좋지 않았고 목소리도 다소 잠겨 있었다.순간 머릿속이 약간 혼란스러워졌다.신연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음이 급해진 그녀는

  • 나 말고 다   제633화

    태지연은 말을 마치고 신연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신연은 눈을 내리깐 채 무심한 시선으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일으켜 세웠다.“네가 좋아하는 케이크 사 왔어. 얼른 먹어봐.”태지연은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신연을 쳐다보며 손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되레 단단히 잡혔다.신연은 식탁 앞으로 가서 조심스레 케이크 상자를 열고는 라즈베리 초콜릿케이크를 꺼냈다.태지연이 가장 좋아하는 가게의 케이크였다. 평소에도 그녀는 신연한테 퇴근길에 케이크를 사 오라고 조르기도 했었다.하지만 그녀는 가장 즐겨 먹던 케이크를 보면서도 전혀 입맛이 돌지 않았다.그녀는 태송백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오빠가...”그러나 신연이 바로 말을 끊어버렸다. “케이크 가게 주인이 또 둘째를 낳았대. 너도 기억하더라. 시간 되면 한번 들르라고 하길래 내가 대신 대답했어.”“신연...”“맛 좀 봐.”신연은 케이크를 그녀 앞에 건네며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봤다.태지연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지금 먹고 싶지 않아. 연아, 다시는 나한테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그러니까 솔직하게 대답해 줘. 네가 오빠를 데려갔어?”태지연의 말이 끝나자 거실에는 침묵만이 흘렀다.신연은 그녀를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이것뿐이야?”태지연은 한 글자씩 또박또박 뱉어냈다. “대답해.”신연은 말했다. “일단 케이크부터 먹어봐.”태지연은 움직이지 않고 애써 차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그녀는 이 상황에 점점 지쳐갔다.순간 가족과 신연 사이에서 고민하며 최선의 해결책을 찾으려 했던 자신이 우스꽝스러웠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신연과 가족이 서로 평화롭게 지내길 바랐다.하지만 그녀는 이제야 그토록 바라던 작은 소망이 애초에 이룰 수 없는 꿈이었음을 깨달았다.신연과 태씨 가문은 이미 끊어진 실처럼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사이였다.모두가 이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직 그녀만이 되돌릴 수 있다는

  • 나 말고 다   제632화

    태은정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눈 밑에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일들이 그녀를 지치게 했다. 그녀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지연아, 신연이 송백을 어디로 데려갔는지 알고 있어?”태지연은 잠시 멍해 있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언니, 왜 항상 무슨 일만 생기면 내가 무조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마치 사람들이 모든 걸 나에게 털어놓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태지연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사실 진실을 모르는 사람은 유일하게 그녀뿐이었는데 말이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태은정은 멈칫하더니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태지연을 한참 바라보더니 갑자기 반응하며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피곤한 듯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말했다.“그래.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미안해. 지연아, 내가 너무 급했나 봐.”태은정은 미안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눈썹을 만지작거렸는데 이는 태은정이 곤란할 때 나오는 작은 습관이었다.태지연은 고개를 저었다.“방금 신연이 오빠를 데려갔다고? 그게 무슨 뜻이야?”태은정은 지금도 상황이 엉망진창이라고 느꼈다. 태송백은 이미 이틀째 연락 두절인 상태였고 아무리 연락을 해도 닿지 않았다.전혜린과 태성민은 신연의 짓이라고 확신했다. 게다가 태지연과도 연락이 닿지 않다 보니 한편으로는 부모님을 달래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태송백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연락을 돌려야 했다.게다가 업친 데 덮친 격으로 자신의 문제까지 해결해야 했다. 그녀는 외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도 이렇게 바쁜 적이 없었다.태은정은 한숨을 내쉬며 신중하게 말을 이어갔다.“그럼 신연이 요즘 뭐 하고 있는지는 알아?”태지연은 대답했다.“대부분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 그리고 나머지 시간엔 회사에 있을 거야.”그녀는 잠시 멈춘 후 덧붙였다.“근데 나도 확신할 수 없어. 보통 자세한 건 나한테 말하지 않

  • 나 말고 다   제631화

    태지연은 마땅한 핑계조차 찾을 수 없었다. 신연은 그녀에 대해 잘 알다 못해 속마음까지 꿰뚫고 있을 정도였다.태지연은 눈물을 흘리며 처량한 모습으로 바라봤다.“왜겠어? 연아, 네가 생각해 봐.”“우리 아빠는 지금 병원에 있고 엄마랑 오빠는 널 원수처럼 대하는데 도대체 내가 어떡해야 하는 건데?”“누굴 탓해야 할까? 내 의사를 물어본 사람은 있어? 나도 모르겠어. 일이 왜 이 지경까지 되어버렸는지...”다들 그녀가 당연히 자신의 편에 서야 할 뿐만아니라 자신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의 의사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었다.태지연은 바닥에 다리를 웅크리고 앉은 채 서로 사랑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그녀의 가족을 해치려는 사람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때 그녀를 아껴주던 부모와 오빠조차 이제는 그녀를 이용하려고만 했다.모두 그녀를 속이면서 정작 그녀한테는 진심을 다하라고 요구했다.태지연은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쉬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왜 내가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일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거야?”“날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날 속이는데 왜 난 그걸 받아들여야만 하는 거야? 난 전혀 원하지 않는다고. 진실만을 원할 뿐이야. 그게 다야.”“이렇게 간단한 일조차 해줄 수 없는 거야?”“왜? 내가 바보 같아? 난 그냥 진실을 알고 싶었을 뿐인데 왜 너희는 날 바보 취급하는 거야?”그녀의 눈물은 순식간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머리를 무릎에 묻은 채 어깨가 떨릴 정도로 흐느꼈다.진실이 그녀 앞에 명백히 놓여 있었지만 누구도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그들은 태지연이 절망에 빠진 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도 계속해서 속이려고만 했다.무언의 눈물에서 작게 흐느끼다 마지막에는 이를 악문 채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태지연은 자신이 고집하는 게 과연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입술이 터져 피비린내가 느껴질 때까지 입술을 깨물었다.그 순간, 누군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신연은 그녀의

  • 나 말고 다   제630화

    신연은 언제나 태지연에게 다정하게 대했다.그의 눈빛은 차분했고 그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하지만 태지연은 마치 약점을 찔린 듯 몸이 굳어버린 채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신연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지나치게 평온한 시선이 되레 태지연의 마음을 한껏 졸여왔다.“왜?”신연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지연아, 너도 그 계약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거지?”“착하지, 그만 돌려줘.”신연은 아이를 타이르듯 다정하게 말했다. “너한테 있는 거 알아.”“...없어.”태지연은 점점 눈빛이 흐려지더니 힘겹게 입을 뗐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계약서라니, 난 모르는 일이야.”그녀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그제야 의지와는 다르게 부들부들 떨려오는 손을 진정시켰다.그녀는 오빠가 신연을 해치지 않기를 바랐고 마찬가지로 신연이 오빠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태지연은 누구에게도 그 계약서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내리며 모든 생각을 숨기려 했다.신연은 한참 그녀를 바라보더니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지연아, 나 거짓말하는 거 제일 싫어해.”태지연은 순간 몸이 굳었지만 여전히 고집스럽게 말했다. “나 아니야...”“정말이야?”신연이 다시 물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응.””그럼 이게 뭔지 설명해 줄 수 있겠어?”신연은 말을 마치고 서랍에서 약병과 약을 꺼내 테이블 위에 던졌다.그녀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전에 침대 옆 서랍에 숨겨둔 비타민 약병과 피임약이었다.최근에 산 피임약을 아직 비타민 약병에 넣을 시간이 없었다. 태송백이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깜빡 잊고 있었다.신연은 순간적으로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지연아, 말해 봐. 집에 왜 이런 약이 있는 거야?”그녀는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신연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잠긴 목소리로 변명했

  • 나 말고 다   제629화

    태지연은 눈앞이 흐려진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앞만 보고 계속 걸어갔다.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오직 신연만이 떠올랐다.그렇게 자존심 강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가정에서 자랐을까? 신연이 그렇게 말하기를 꺼렸던 그의 가정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 더군다나 신기철이 진정 신연에게 미안하다면 왜 그에게 한 번도 어떤 보상을 하지 않았을까?모두가 신연이 차갑다고 말했지만 태지연만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신연은 단지 그녀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나 자신을 지켜준 소년만이 아니었다. 사실 그 역시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그녀는 고등학교 뒤편 작은 정원에 항상 떠돌이 고양이들이 많았던 게 기억났다. 그리고 신연이 작은 난간에 기댄 채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나누어주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새끼 고양이들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항상 신연 주위에 모여서는 그의 다리를 비볐다.그는 분명 귀찮아하는 표정이 있었지만 고양이들을 밀어내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새끼 고양이가 그의 발치에서 잠드는 것도 허락했다. 동물들의 감각은 예리한 법이다. 그들은 항상 신연을 잘 따랐다.그런 신연의 모습이 계속해서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며 애써 억눌렀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그녀가 사랑했던 신연은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었다....갑자기 손목이 세차게 잡히며 태지연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제야 눈앞의 상황이 서서히 선명해지며 뒤에서 태은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딜 그렇게 급하게 뛰어가는 거야?”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엘리베이터 앞까지 와 있었다. 방금 태은정이 그녀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환자를 밀고 지나가던 간호사랑 부딪힐 뻔했다.그녀는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태은정은 그녀를 흘겨보더니 아무 말 없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데려갔다.차에 타고 나서야 태지연은 정신을 차리고 나지막이 속삭였다.“고마워.”“고맙긴. 내가 네 언니인데.”태은정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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