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일인데 당연히 도와야죠.”자신이 하게 되면 탁유미는 경제적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 다만...“하지만 이길 수 있다는 말은 못 해줘요. 솔직히 여러모로 언니한테 불리한 싸움이거든요.”“알아요.”탁유미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불리한 요소들은 그녀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고 짊어져야 할 것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윤이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기에 임유진의 말이 너무나도 고마웠다.“고마워요, 유진 씨.”“참, 언니, 앞으로 계속 S 시에 있을 거죠? 윤이 유치원은 정했어요?”임유진은 윤이가 유치원을 얼마나 기대하고 있었는지 알기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아니요.”탁유미의 표정이 또다시 시무룩해졌다.요 며칠 일반 유치원에 연락을 해봤지만 윤이가 청각장애라는 사실을 듣자마자 하나같이 난감한 기색을 표하며 거절했다. 윤이의 커뮤니케이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봐도 결과는 같았다.임유진은 한참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제가 한번 알아볼게요.”“혹시 방법이라도 있는 거예요?”탁유미가 다급하게 물었다.“친구한테 물어볼게요.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임유진의 시선이 푹 자고 있는 윤이에게로 향했다.지금은 그저 유치원이지만 앞으로 윤이가 크면 클수록 훨씬 더 잔인하고 잔혹한 현실이 닥쳐 올 것이다.임유진은 이 아이가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희망 따위 져버린 그녀에게 예쁜 웃음을 지어줬던 아이가 바로 윤이니까.게다가 앞으로 평생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으니 윤이에게 모든 사랑을 쏟아붓는 것도 나름 괜찮을 것 같았다....“경빈 씨? 경빈 씨!”이경빈은 저만의 상념에 빠져있다가 누군가의 목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무슨 생각 해요?”공수진이 물었다.S 시에서 돌아온 뒤부터 이경빈은 자주 이렇게 멍을 때리고는 했다.그렇게 파티장에서 뛰쳐나가고 나서 이경빈은 그녀의 부모를 찾아가 직접 사과까지 하고 다시 적당한 시기에 두 사람의 결혼 날짜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무
“미리 얘기하지만 아이 엄마는 탁유미야.”이경빈의 입에서 공수진이 제일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튀어나왔다.아이라니! 탁유미와 이경빈 사이의 아이라니! 그것도 아들!그럼 그때 탁유미가 임신이고 뭐고 했던 말이 전부 사실이었다는 건가? 감옥에 들어가기 싫어서 했던 거짓말이 아니라?!공수진은 질투와 분노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그리고 이럴 줄 알았으면 탁유미가 감방에 있을 때 아이를 진작 처리해 버릴 걸 그랬다며 속으로 무척이나 후회했다.공수진은 복잡한 감정을 애써 가라앉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러니까 탁유미 씨가 경빈 씨 아이를 낳았다는 거죠?”“미안해.”이경빈이 사과했다.“경빈 씨가 왜 미안해요. 나는... 나는 어차피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니까. 경빈 씨 피를 이은 아이가 이렇게라도 생기니 차라리 잘 된 거죠.”공수진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울음을 참는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럼 경빈 씨는 이제 탁유미 씨와 함께할 건가요...? 이해해요. 그게 경빈 씨 결정이라면 나는...”그녀는 목이 메는 듯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이경빈은 그 모습에 그녀를 자신의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내가 그 여자와 함께할 일은 없어. 너한테 아이에 대한 질문을 한 것도 네 의견이 궁금해서 그런 것뿐이야.”“정말이에요? 하지만... 내가 정말 그 아이의 엄마가 되어도 될까요?”“안 될 거 뭐 있어. 너는 이씨 가문의 미래 안주인인데.”“탁유미 씨가 아이를 순순히 내어줄까요...?”공수진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이경빈은 그 질문에 그날 자신의 팔을 잡으며 애원하던 탁유미의 얼굴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공수진을 더 꽉 끌어안았다.머릿속으로는 그 여자 생각은 그만하라고 되뇌면서 말이다.‘내가 평생에 걸쳐 갚아야 할 사람은 공수진이야.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고 해도 그건 공수진이어야 해!’“내어주고 말고 그 여자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아이의 양육권은 내가 꼭 가져올 거야.”공수진은 이경빈의 품속에서 나지막이 속삭였다.“경빈
“좋아. 다음에 윤이랑 셋이 만나.”만남을 기약한 후 한지영은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바로 주변 지인들과 회사 직원들에게 유치원에 관해서 물었다. 그러다 친척 동생이 유치원 선생님이라는 직장 동료의 말에 얼른 그 유치원 원장과 연락을 해봤지만 아이가 청각장애가 있다는 것을 듣더니 조심스럽게 거절을 했다.도저히 납득이 안 돼 이유를 물으니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일반 유치원을 다니면 선생님들이 케어하기 힘든 부분이 있고 정상적인 아이들과 소통상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한지영은 장애가 있는 아이가 아무리 똑똑해도 일반 유치원에 들어가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는 사실을 이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퇴근 후 한지영은 백연신과의 식사 자리에서 부지런히 그에게 물을 따라주고 음식도 집어주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다. 이에 수상함을 느낀 백연신은 식사를 멈추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왜, 왜 그렇게 봐요?”한지영은 뭔가 찔리는 게 있는 사람처럼 말을 더듬었다.“너 또 뭐 잘못한 일이라도 있어?”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그의 질문에 한지영은 하마터면 마시고 있던 물을 그대로 뿜을 뻔했다.“내가 무슨 맨날 사고만 치는 사람이에요?”그녀는 씩씩거리며 불을 부풀렸다.“진짜 없어?”백연신은 여전히 그녀를 의심했다.“혹시 또 나 몰래 다른 남자 옷 뺏으러 간 거야? 아니면 남자들 몸 잔뜩 그려진 만화책이라도 샀어? 그것도 아니면 남자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사서 나 몰래 콘서트 갈 생각이라던가?”숨도 쉬지 않고 말을 내뱉은 그에 한지영은 땀이 절로 났다.모두 그녀가 할 법한 행동들이고 실제로 그렇게 한 적도 많기 때문이다.“나한테 믿음을 좀 줘봐요! 그리고 연신 씨가 말한 그런 것들은 전부 다 단순히 감상하기 위한 거라고요. 감상...”한지영은 그와 눈을 마주치더니 점점 더 목소리가 작아졌다.“크흠, 아무튼 연신 씨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그럼 오늘 왜 이래?”“남자친구한테 잘해주려고 그래요. 뭐 잘못됐어요?”“흐음, 진짜야?”백연신이 얼굴을 바짝
“뭐 얼마나 귀엽길래 이래?”백연신이 미간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내가 20년만 더 젊었어도 당장 침 발라 놓는 건데. 장담하는데 얘 유치원 들어가잖아요? 여자애들 난리가 날 거예요. 귀여운 외모에 잘생기기까지 한 애는 흔치 않거든요.”한지영은 자신의 눈은 틀림없다며 주책을 떨었다.백연신은 마치 팬을 덕질하는 듯한 그녀의 말에 괜스레 기분이 언짢았다.“잘생기기까지 했어?”“네! 아, 맞다. 다음에 유진이랑 셋이 만나기로 했는데 그때 연신 씨도 갈래요? 유진이가 그러는데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귀여...”한지영은 신이 나서 떠들어대다가 그제야 백연신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고는 서둘러 말을 바꿨다.“귀엽다고는 하는데 아무리 귀엽고 예뻐 봤자 연신 씨보다는 못하죠!”그녀는 억지로 말을 돌리며 속으로 외쳤다.‘휴, 이 남자가 질투 대마왕인 거 까먹을 뻔했네.’“정말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해?”백연신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그럼요! 왜 어릴 때 예쁘고 잘생긴 건 쓸모가 없다고들 하잖아요. 예뻤던 애들이 커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어릴 때 못난이 소리 듣던 애들이 예쁘게 역변하는 경우도 있고요.”한지영은 그의 심기를 되돌려 놓으려고 아주 열과 성을 다했다.“그럼 나는 어릴 때 별로였다는 뜻이야?”“...”한지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가 황급히 다시 입을 열었다.“그럴 리가요. 연신 씨는 어렸을 때도 분명히 예쁘고 잘생겼을 거예요. 아무튼, 나한테는 연신 씨가 제일 멋있고 잘생겼어요. 내가 괜히 첫눈에 설렜겠어요? 귀국하고 나서도 내가 얼마나 연신 씨 얼굴을 떨치려고 노력했는지 모르죠? 내가 그때 아주...”한지영은 입이 마를 때까지 계속해서 그를 칭찬해댔다. 무릇 이런 입에 발린 소리는 여자들이 더 좋아하는 법인데 이상하게도 두 사람 관계에서는 백연신이 더 좋아했다.가끔은 자기 입으로 내뱉고도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었지만 백연신이 이런 식으로 달래주는 것을 좋아하니 멈출 수도 없었다.게다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승소한다고 해도 배상금을 얻지 못하면 이재하의 상황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점심이 될 때쯤 곽동현이 전화를 걸어왔다.“유진 씨, 혹시 그 소지혜라는 여배우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요?”“그건 왜요?”“재하 일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을 바꾸고 자기가 운전한 거라고 인정할 수도 있잖아요. 인정하지 않더라도 일단 재하가 꾸준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돈을 먼저 주려고 할 수도 있고요.”곽동현은 재판 전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더 노력해보고 싶었다.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된다면 자신의 돈으로 직원인 이재하에게 도움을 주고 싶지만 이제 막 창립한 회사라 도움에도 한계가 있었다.그리고 그는 이미 여러 번이나 이재하에게 자금적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도움을 줘도 턱없이 부족했다.하지만 여배우인 소지혜는 어느 정도 이름 있는 연예인이고 얼마 전에는 거액을 들여 건물도 사들였다고 하니 이재하의 병원비 정도는 충분히 대줄 수 있을 것이다.임유진은 그의 말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소지혜가 가해자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판사를 설득할 방법은 없다. 그러니 지금은 어쩌면 소지혜의 양심과 동정심에 걸어보는 게 가치가 있는 일일 수도 있다.“알겠어요. 그럼 나도 같이 가요.”임유진은 줄곧 소지혜의 동태를 지켜보고 있었기에 지금쯤 그녀가 어느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중인지 다 꿰고 있었다.“고마워요. 그럼 이따 데리러 갈게요.”“알겠어요.”임유진을 전화를 끊고 서류들을 정리해 서랍에 넣었다. 그러고는 몇 분 뒤 곽동현이 도착하자 그와 함께 바로 A 스튜디오로 향했다.“그날... 아무 일도 없었어요?”곽동현이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임유진은 그 말에 조금 어리둥절하다가 곧바로 그가 어느 날을 말하는 건지 눈치챘다.“네, 별일 없었어요.”“그 사람 대체 누구예요? 혹시 남자친구예요?”곽동현이 핸들을 꽉 잡으며 물었다.남자친구...임유진은 그 질문에 쓰게 웃었다.얼마 전까지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아니에요. 지금은 남자친구
“하지만...”“하지만이고 뭐고 뭔가 착각하는 건 같은데 나는 자선사업가가 아니에요. 그리고 사고 당시 조수석에 있었다는 이유로 이러는 거라면 앞으로 나는 만약 비슷한 교통사고가 또 벌어진다면 가해자도 아닌데 피해자 병원비를 다 대줘야겠네요?”소지혜가 화를 내며 떠나려 하자 곽동현이 그녀의 팔을 덥석 잡았다.“소지혜 씨...”“이거 놓으세요!”그녀가 큰소리를 내자 옆에 있던 매니저가 황급히 달려와 곽동현을 밀쳤다.곽동현은 힘을 못 이기고 뒤로 몇 걸음 뒤뚱거리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소지혜는 곽동현을 무섭게 노려보고는 밖에 있는 경비원을 불러와 호통쳤다.“앞으로 관계자 아닌 사람은 함부로 세트장 안으로 들이지 마세요!”“네, 네, 알겠습니다.”경비원은 그녀의 말에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임유진은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는 헛걸음했다는 생각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그렇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곽동현과 자리를 뜨려는데 곽동현이 소지혜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동현 씨?”“그날 밤에도 저 루비 반지 끼고 있었던 것 같은데...”곽동현이 던진 그 한마디에 임유진은 순간 머릿속으로 뭔가가 스쳐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뭔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그때 곽동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별거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반지를 끼고 있든 말든 사건에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될 텐데, 나도 참. 이만 가죠.”두 사람은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여기서 기다려요. 금방 차 가지고 올게요.”“그래요.”임유진은 곽동현을 보낸 뒤 고개를 푹 숙이고 줄곧 머릿속에 맴도는 의문점을 되짚기 시작했다.일전 소지혜와 얘기 나누러 왔다가 돌아갈 때 스태프들이 소지혜의 반지에 대해 수군거리는 대화를 들은 적이 있다.상당히 고가의 반지라 소지혜는 다른 사람이 잠깐 맡아주는 것조차 싫다며 거절했다고 했었다. 그리고 이번 촬영에서도 드라마 소품팀에서 준비한 반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굳이 자신의 루비 반지를 끼고 촬영했다고도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곽동현은 이상하게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아까 소지혜의 반지 얘기를 꺼냈을 때 임유진이 뭔가 생각하는 것 같은 모습이 떠올랐다.“설마 그 여자 찾으러 다시 들어간 건가?”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기에 서둘러 다시 세트장 안으로 들어갔다.그 시각 소지혜는 한창 촬영하고 있었다. 그때 곽동현이 안으로 난입해 그녀를 향해 다급하게 물었다.“소지혜 씨, 혹시 유진 씨 못 봤어요? 임유진 씨, 방금 나랑 같이 온 여자요.”이쪽으로 오는 길 임유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그는 더 불안해졌다.하지만 아무런 양해도 없이 촬영장에 난입하는 바람에 곧바로 경비원들에게 잡혔다.제작팀 스태프들은 하나같이 도끼눈을 뜨며 그를 비난했고 소지혜는 큰소리로 화를 냈다.“그 여자가 어디 갔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화가 단단히 난 감독은 경비원에게 빨리 곽동현을 끌어내라며 소리쳤다.“소지혜 씨, 정말 유진 씨 여기 안 왔어요? 정말 유진 씨 어디 갔는지 몰라요? 여기로 온 게 아니면 갑자기 사라질 리가 없잖아요! 휴대폰도 안 받고.”곽동현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소지혜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경비원에게 빨리 끌어내라고 손을 휘휘 저었다.경비원은 그녀의 지시대로 곽동현을 힘으로 밀어붙여 내보내려고 했다.하지만 그때 누군가의 손이 경비원을 넘어 곽동현의 어깨를 잡고 초조함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방금 임유진이 뭐가 어쨌다고요?”남자의 등장에 주위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지금 다급하게 묻고 있는 이 남자는 바로 연예의 황태자 강현수였다. 언제나 침착한 얼굴로 모든 것에 냉소적이던 남자가 지금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곽동현은 자신의 어깨를 잡은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강현수라면 평소 뉴스와 기사에 자주 이름이 도배되는 사람이라 모를 수가 없었다.“유진 씨를 아세요?”“임유진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그, 그게... 사라졌어요.”다급해 보이는 강현수의 모습에 곽동현도 덩달아 마음
강현수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바로 소지혜의 앞으로 걸어가 물었다.“임유진 지금 어디 있지?”“저는 정말 몰라요. 저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요...”소지혜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대체 왜 강현수가 임유진이라는 여자의 행방을 묻는지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작 변호사 비서일 뿐인 여자의 일에 대체 왜 이토록 초조해하는 거지?소지혜뿐만 아니라 주변 스태프들도 강현수가 지금 애타게 찾고 있는 임유진이라는 여자가 대체 누군지 궁금해했다.“현수 씨, 유진이가 잠깐 급한 일이라도 생겨서 사라졌나 보죠. 유진이가 어린 애도 아니고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요.”그때 줄곧 그의 옆에 있던 배여진이 한마디 얹었다.오늘 그녀는 촬영을 마치고 일부러 강현수를 데리고 이 세트장에 들렀다. 이곳 감독이 다음 작품을 준비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전해 듣고 강현수에게 부탁해 배역을 따내려 했던 것이었다.하지만 감독과 얘기하기도 전에 어떤 남자가 세트장에 난입해 임유진에 관해 묻더니 강현수마저 혈색을 바꾸고 덩달아 다급해졌다.배여진은 지금 후회가 돼 미칠 것 같았다.이럴 줄 알았다면 이곳으로 오는 것이 아니었다.왜 그녀가 있는 곳에 항상 임유진이 있는 걸까!이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강현수가 더 이상 임유진에게 신경쓰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현수 씨, 아마 조금만 더 기다리면...”배여진은 강현수의 팔을 잡으며 조금만 더 기다리면 임유진이 나타날지도 모르니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하려 했다.하지만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강현수가 그녀가 잡은 손을 들어 올리더니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소지혜의 목을 졸랐다.“임유진 어디 있어?”자신을 죽일 듯이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소지혜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눈앞에 이 남자가 정말 강현수가 맞나?평소 파파라치가 몰래 찍은 사진 속의 남자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진심으로 누구를 죽일 것 같은 표정 같은 거 사진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소지혜의 눈에 비친 강현수는 지금 저승사자와 다를 것 없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