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다음에 윤이랑 셋이 만나.”만남을 기약한 후 한지영은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바로 주변 지인들과 회사 직원들에게 유치원에 관해서 물었다. 그러다 친척 동생이 유치원 선생님이라는 직장 동료의 말에 얼른 그 유치원 원장과 연락을 해봤지만 아이가 청각장애가 있다는 것을 듣더니 조심스럽게 거절을 했다.도저히 납득이 안 돼 이유를 물으니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일반 유치원을 다니면 선생님들이 케어하기 힘든 부분이 있고 정상적인 아이들과 소통상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한지영은 장애가 있는 아이가 아무리 똑똑해도 일반 유치원에 들어가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는 사실을 이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퇴근 후 한지영은 백연신과의 식사 자리에서 부지런히 그에게 물을 따라주고 음식도 집어주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다. 이에 수상함을 느낀 백연신은 식사를 멈추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왜, 왜 그렇게 봐요?”한지영은 뭔가 찔리는 게 있는 사람처럼 말을 더듬었다.“너 또 뭐 잘못한 일이라도 있어?”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그의 질문에 한지영은 하마터면 마시고 있던 물을 그대로 뿜을 뻔했다.“내가 무슨 맨날 사고만 치는 사람이에요?”그녀는 씩씩거리며 불을 부풀렸다.“진짜 없어?”백연신은 여전히 그녀를 의심했다.“혹시 또 나 몰래 다른 남자 옷 뺏으러 간 거야? 아니면 남자들 몸 잔뜩 그려진 만화책이라도 샀어? 그것도 아니면 남자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사서 나 몰래 콘서트 갈 생각이라던가?”숨도 쉬지 않고 말을 내뱉은 그에 한지영은 땀이 절로 났다.모두 그녀가 할 법한 행동들이고 실제로 그렇게 한 적도 많기 때문이다.“나한테 믿음을 좀 줘봐요! 그리고 연신 씨가 말한 그런 것들은 전부 다 단순히 감상하기 위한 거라고요. 감상...”한지영은 그와 눈을 마주치더니 점점 더 목소리가 작아졌다.“크흠, 아무튼 연신 씨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그럼 오늘 왜 이래?”“남자친구한테 잘해주려고 그래요. 뭐 잘못됐어요?”“흐음, 진짜야?”백연신이 얼굴을 바짝
“뭐 얼마나 귀엽길래 이래?”백연신이 미간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내가 20년만 더 젊었어도 당장 침 발라 놓는 건데. 장담하는데 얘 유치원 들어가잖아요? 여자애들 난리가 날 거예요. 귀여운 외모에 잘생기기까지 한 애는 흔치 않거든요.”한지영은 자신의 눈은 틀림없다며 주책을 떨었다.백연신은 마치 팬을 덕질하는 듯한 그녀의 말에 괜스레 기분이 언짢았다.“잘생기기까지 했어?”“네! 아, 맞다. 다음에 유진이랑 셋이 만나기로 했는데 그때 연신 씨도 갈래요? 유진이가 그러는데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귀여...”한지영은 신이 나서 떠들어대다가 그제야 백연신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고는 서둘러 말을 바꿨다.“귀엽다고는 하는데 아무리 귀엽고 예뻐 봤자 연신 씨보다는 못하죠!”그녀는 억지로 말을 돌리며 속으로 외쳤다.‘휴, 이 남자가 질투 대마왕인 거 까먹을 뻔했네.’“정말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해?”백연신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그럼요! 왜 어릴 때 예쁘고 잘생긴 건 쓸모가 없다고들 하잖아요. 예뻤던 애들이 커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어릴 때 못난이 소리 듣던 애들이 예쁘게 역변하는 경우도 있고요.”한지영은 그의 심기를 되돌려 놓으려고 아주 열과 성을 다했다.“그럼 나는 어릴 때 별로였다는 뜻이야?”“...”한지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가 황급히 다시 입을 열었다.“그럴 리가요. 연신 씨는 어렸을 때도 분명히 예쁘고 잘생겼을 거예요. 아무튼, 나한테는 연신 씨가 제일 멋있고 잘생겼어요. 내가 괜히 첫눈에 설렜겠어요? 귀국하고 나서도 내가 얼마나 연신 씨 얼굴을 떨치려고 노력했는지 모르죠? 내가 그때 아주...”한지영은 입이 마를 때까지 계속해서 그를 칭찬해댔다. 무릇 이런 입에 발린 소리는 여자들이 더 좋아하는 법인데 이상하게도 두 사람 관계에서는 백연신이 더 좋아했다.가끔은 자기 입으로 내뱉고도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었지만 백연신이 이런 식으로 달래주는 것을 좋아하니 멈출 수도 없었다.게다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승소한다고 해도 배상금을 얻지 못하면 이재하의 상황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점심이 될 때쯤 곽동현이 전화를 걸어왔다.“유진 씨, 혹시 그 소지혜라는 여배우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요?”“그건 왜요?”“재하 일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을 바꾸고 자기가 운전한 거라고 인정할 수도 있잖아요. 인정하지 않더라도 일단 재하가 꾸준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돈을 먼저 주려고 할 수도 있고요.”곽동현은 재판 전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더 노력해보고 싶었다.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된다면 자신의 돈으로 직원인 이재하에게 도움을 주고 싶지만 이제 막 창립한 회사라 도움에도 한계가 있었다.그리고 그는 이미 여러 번이나 이재하에게 자금적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도움을 줘도 턱없이 부족했다.하지만 여배우인 소지혜는 어느 정도 이름 있는 연예인이고 얼마 전에는 거액을 들여 건물도 사들였다고 하니 이재하의 병원비 정도는 충분히 대줄 수 있을 것이다.임유진은 그의 말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소지혜가 가해자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판사를 설득할 방법은 없다. 그러니 지금은 어쩌면 소지혜의 양심과 동정심에 걸어보는 게 가치가 있는 일일 수도 있다.“알겠어요. 그럼 나도 같이 가요.”임유진은 줄곧 소지혜의 동태를 지켜보고 있었기에 지금쯤 그녀가 어느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중인지 다 꿰고 있었다.“고마워요. 그럼 이따 데리러 갈게요.”“알겠어요.”임유진을 전화를 끊고 서류들을 정리해 서랍에 넣었다. 그러고는 몇 분 뒤 곽동현이 도착하자 그와 함께 바로 A 스튜디오로 향했다.“그날... 아무 일도 없었어요?”곽동현이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임유진은 그 말에 조금 어리둥절하다가 곧바로 그가 어느 날을 말하는 건지 눈치챘다.“네, 별일 없었어요.”“그 사람 대체 누구예요? 혹시 남자친구예요?”곽동현이 핸들을 꽉 잡으며 물었다.남자친구...임유진은 그 질문에 쓰게 웃었다.얼마 전까지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아니에요. 지금은 남자친구
“하지만...”“하지만이고 뭐고 뭔가 착각하는 건 같은데 나는 자선사업가가 아니에요. 그리고 사고 당시 조수석에 있었다는 이유로 이러는 거라면 앞으로 나는 만약 비슷한 교통사고가 또 벌어진다면 가해자도 아닌데 피해자 병원비를 다 대줘야겠네요?”소지혜가 화를 내며 떠나려 하자 곽동현이 그녀의 팔을 덥석 잡았다.“소지혜 씨...”“이거 놓으세요!”그녀가 큰소리를 내자 옆에 있던 매니저가 황급히 달려와 곽동현을 밀쳤다.곽동현은 힘을 못 이기고 뒤로 몇 걸음 뒤뚱거리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소지혜는 곽동현을 무섭게 노려보고는 밖에 있는 경비원을 불러와 호통쳤다.“앞으로 관계자 아닌 사람은 함부로 세트장 안으로 들이지 마세요!”“네, 네, 알겠습니다.”경비원은 그녀의 말에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임유진은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는 헛걸음했다는 생각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그렇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곽동현과 자리를 뜨려는데 곽동현이 소지혜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동현 씨?”“그날 밤에도 저 루비 반지 끼고 있었던 것 같은데...”곽동현이 던진 그 한마디에 임유진은 순간 머릿속으로 뭔가가 스쳐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뭔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그때 곽동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별거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반지를 끼고 있든 말든 사건에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될 텐데, 나도 참. 이만 가죠.”두 사람은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여기서 기다려요. 금방 차 가지고 올게요.”“그래요.”임유진은 곽동현을 보낸 뒤 고개를 푹 숙이고 줄곧 머릿속에 맴도는 의문점을 되짚기 시작했다.일전 소지혜와 얘기 나누러 왔다가 돌아갈 때 스태프들이 소지혜의 반지에 대해 수군거리는 대화를 들은 적이 있다.상당히 고가의 반지라 소지혜는 다른 사람이 잠깐 맡아주는 것조차 싫다며 거절했다고 했었다. 그리고 이번 촬영에서도 드라마 소품팀에서 준비한 반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굳이 자신의 루비 반지를 끼고 촬영했다고도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곽동현은 이상하게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아까 소지혜의 반지 얘기를 꺼냈을 때 임유진이 뭔가 생각하는 것 같은 모습이 떠올랐다.“설마 그 여자 찾으러 다시 들어간 건가?”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기에 서둘러 다시 세트장 안으로 들어갔다.그 시각 소지혜는 한창 촬영하고 있었다. 그때 곽동현이 안으로 난입해 그녀를 향해 다급하게 물었다.“소지혜 씨, 혹시 유진 씨 못 봤어요? 임유진 씨, 방금 나랑 같이 온 여자요.”이쪽으로 오는 길 임유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그는 더 불안해졌다.하지만 아무런 양해도 없이 촬영장에 난입하는 바람에 곧바로 경비원들에게 잡혔다.제작팀 스태프들은 하나같이 도끼눈을 뜨며 그를 비난했고 소지혜는 큰소리로 화를 냈다.“그 여자가 어디 갔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화가 단단히 난 감독은 경비원에게 빨리 곽동현을 끌어내라며 소리쳤다.“소지혜 씨, 정말 유진 씨 여기 안 왔어요? 정말 유진 씨 어디 갔는지 몰라요? 여기로 온 게 아니면 갑자기 사라질 리가 없잖아요! 휴대폰도 안 받고.”곽동현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소지혜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경비원에게 빨리 끌어내라고 손을 휘휘 저었다.경비원은 그녀의 지시대로 곽동현을 힘으로 밀어붙여 내보내려고 했다.하지만 그때 누군가의 손이 경비원을 넘어 곽동현의 어깨를 잡고 초조함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방금 임유진이 뭐가 어쨌다고요?”남자의 등장에 주위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지금 다급하게 묻고 있는 이 남자는 바로 연예의 황태자 강현수였다. 언제나 침착한 얼굴로 모든 것에 냉소적이던 남자가 지금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곽동현은 자신의 어깨를 잡은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강현수라면 평소 뉴스와 기사에 자주 이름이 도배되는 사람이라 모를 수가 없었다.“유진 씨를 아세요?”“임유진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그, 그게... 사라졌어요.”다급해 보이는 강현수의 모습에 곽동현도 덩달아 마음
강현수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바로 소지혜의 앞으로 걸어가 물었다.“임유진 지금 어디 있지?”“저는 정말 몰라요. 저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요...”소지혜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대체 왜 강현수가 임유진이라는 여자의 행방을 묻는지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작 변호사 비서일 뿐인 여자의 일에 대체 왜 이토록 초조해하는 거지?소지혜뿐만 아니라 주변 스태프들도 강현수가 지금 애타게 찾고 있는 임유진이라는 여자가 대체 누군지 궁금해했다.“현수 씨, 유진이가 잠깐 급한 일이라도 생겨서 사라졌나 보죠. 유진이가 어린 애도 아니고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요.”그때 줄곧 그의 옆에 있던 배여진이 한마디 얹었다.오늘 그녀는 촬영을 마치고 일부러 강현수를 데리고 이 세트장에 들렀다. 이곳 감독이 다음 작품을 준비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전해 듣고 강현수에게 부탁해 배역을 따내려 했던 것이었다.하지만 감독과 얘기하기도 전에 어떤 남자가 세트장에 난입해 임유진에 관해 묻더니 강현수마저 혈색을 바꾸고 덩달아 다급해졌다.배여진은 지금 후회가 돼 미칠 것 같았다.이럴 줄 알았다면 이곳으로 오는 것이 아니었다.왜 그녀가 있는 곳에 항상 임유진이 있는 걸까!이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강현수가 더 이상 임유진에게 신경쓰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현수 씨, 아마 조금만 더 기다리면...”배여진은 강현수의 팔을 잡으며 조금만 더 기다리면 임유진이 나타날지도 모르니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하려 했다.하지만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강현수가 그녀가 잡은 손을 들어 올리더니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소지혜의 목을 졸랐다.“임유진 어디 있어?”자신을 죽일 듯이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소지혜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눈앞에 이 남자가 정말 강현수가 맞나?평소 파파라치가 몰래 찍은 사진 속의 남자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진심으로 누구를 죽일 것 같은 표정 같은 거 사진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소지혜의 눈에 비친 강현수는 지금 저승사자와 다를 것 없었
강현수 옆에 서 있던 배여진의 몸이 티 나게 굳었다.강현수는 지금 모든 신경이 전부 임유진에게 가 있어 그녀의 말 같은 건 들리지도 않는 듯했다.섬뜩한 소리를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할 만큼 화가 난 것도 전부 임유진 때문이었다.배여진은 만약 소지혜가 이대로 말을 하지 않으면 강현수가 정말 임유진 때문에 살인을 저지를 것 같은 무서운 예감이 들었다.대체 왜!임유진이 뭐라고!그토록 찾던 어릴 적 소녀를 눈앞에 두고 대체 왜 자꾸 임유진에게 신경을 쓰는 거지? 자신에게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게 맞지 않나?!소지혜는 지금 죽음이라는 공포에 몸이 점점 더 세게 떨려왔다. 전에 악역을 맡았을 때 누군가에게 목을 졸리는 신을 찍어본 경험이 있지만 이러한 느낌은 아니었다. 남자배우가 연기에 몰입해 진짜 그녀의 목을 세게 졸랐을 때도 그저 호흡만 딸릴 뿐이었지 이런 공포를 느끼지는 않았다.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고 목을 조르는 손은 강철이라도 되는 건지 아무리 벗어나려고 노력해봐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목 졸림 당하는 게 이토록 무서운 느낌일 줄은 정말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소지혜는 임유진의 뒤에 강현수가 있는 줄 알았더라면 목을 졸리기 전에 실토할 것 그랬다며 이제 와서 의미 없는 후회를 했다.그때, 목을 조르던 손에 힘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귓가에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마지막으로 말할 기회 줄 테니까 말해. 임유진 지금 어디 있지?”“저, 정말 모르겠어요. 아까 저 보러 온 팬한테 그 여자 얘기를 한 적은 있어요... 하, 하지만 그 뒤로는 정말 몰라요...”소지혜는 말을 더듬거리며 답했다.“마지막으로 그 팬을 본 게 어디지? 시간은? 그리고 그 팬 성별은?”“화, 화장실 쪽에서요. 아마... 15분 전이었을 거예요. 성별은 남자예요.”말을 마치자 강현수는 그녀의 목을 조르던 손을 갑자기 놔버렸다. 그 탓에 소지혜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쓰러지고 말았다.강현수는 서둘러 휴
연예계란 원래 가십이 넘쳐나는 곳이라 사람들은 저마다 제 멋대로 추측을 했다.한편 곽동현은 아직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건지 어벙벙한 표정이었다.강현수와 임유진은 대체 무슨 사이인 걸까?강현수의 방금 그 모습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에 처한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사랑하는 사람?!곽동현은 무의식 속에 떠오른 단어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사랑하는 사람이라니. 허구한 날 여자친구를 바꾸는 강현수가, 눈앞에서 사람 하나 죽어도 눈 한번 깜빡하지 않을 것처럼 냉정한 남자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강현수이 보안실에 도착했을 때 그가 원하는 CCTV 영상이 벌써 준비되어 있었다.영상을 보니 소지혜는 화장실앞에서 확실히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남자와 30초가량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소지혜가 세트장으로 들어간 다음 검은색 티셔츠 남자는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갔다.그때 임유진의 모습이 보이고 남자는 화장실에서 나와 임유진과 곽동현의 뒤를 따라갔다.정황상 이남자가 뭔짓을 한 게 틀림없어 보였다.강현수가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행적을 따라가려는데 임유진과 곽동현 그리고 그 검은색 티셔츠 남자가 카메라 앵글에서 벗어나 버렸다.“이 앞에는 CCTV가 없어 그 다음의 상황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으로부터 3분 뒤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입구에 멈췄다가 다시 금방 떠나버렸습니다.”보안실 팀장은 시간을 3분 앞으로 감아 차량이 보이는 장면을 띄웠다.강현수는 차량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옆에 있는 보안실 팀장에게 말했다.“경찰 쪽에 연락해서 먼저 신고하고 이 차량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와.”이 차량 안에 임유진이 있는 걸까?강현수는 지금 이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그녀가 불한당에게 납치당해 차에서 해코지라도 당할까봐 불안해 미칠 것 같았다.임유진이 다치는 상상같은 건 감히 할 수가 없었다.“어떡해... 설마 유진이가 납치라도 당한 걸까요?”강현수를 따라와 줄곧 화면을 보고 있던 배여진이 걱정하는 척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