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자리를 뜨기 전에 진세령은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임유진의 뒤에 강지혁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헤어졌다는 소식은 뭐지?뭐가 됐든 강지혁이 뒤에서 지키고 있는 이상 임유진을 건드리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진세령은 임유진 때문에 연예계에서 퇴출당한 것을 떠올릴 때면 이가 갈렸다. 그런데 강지혁이 옆에 있어 존대하는 건 물론이고 심기를 건드릴까 봐 굽신거려야 하니 더더욱 분통이 터졌다.‘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감옥에 있을 때 죽여버리는 거였는데!’“오빠, 강지혁이 우리를 이대로 보냈으니 별문제 없는 거겠지?”소민영은 오히려 후련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억지로 사과하지 않아도 되고 돈을 쓰지 않아도 되니 이 정도면 체면을 지킨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반면 소민준은 지금 머리가 복잡했다.그가 아는 강지혁은 절대 이 정도로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한번 전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아까 소민영이 그렇게 임유진을 모욕했음에도 강지혁은 뺨 한번과 몇 마디로 끝을 냈다. 이건 그냥 봐준 거나 다름없었다.정말... 이대로 봐준 걸까?소민준 역시 확신할 수 없었기에 소민영에게 그저 당부의 말만 했다.“아마도 그럴 거야. 하지만 앞으로는 조심해. 다시는 임유진 건드리지 마. 그때는 우리 집안에도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니까.”그러자 소민영이 입을 삐죽거리며 비아냥거렸다.“강지혁이 없으면 별것도 아닌 년이. 흥, 언젠가 강지혁에게 버림받는 날이 오면 내가 진짜 걔 다리를...!”“그만해!”소민준은 그녀의 말을 끊고 거세게 호통쳤다.“아까 그 상황을 보고도 아직 그 입 놀리고 싶어? 다른 한쪽 다리도 병신 되고 싶어서 그래?!”이에 소민영의 얼굴이 빨개지더니 입을 꾹 닫았다.진세령은 소민준을 보면서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아까 임유진을 만났을 때 소민준은 미련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었다.‘설마 임유진과의 추억에 젖기라도 한 거야? 그런 거야?’당연히 이 말은
배여진은 이런 파티가 있을 때면 항상 강현수의 파트너로 참석했다. 그 때문인지 강현수가 그녀를 여자친구라고 얘기하지 않아도 네티즌들은 배여진이 강현수의 여자친구라고 굳게 믿었다.또한, 강현수는 매번 배여진을 직접 픽업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에게 드라마 배역을 준다거나 온갖 것들을 다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임유진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네티즌들이 종종 인터넷에 목격담을 올렸기 때문이다.강현수의 이름은 항상 인기 검색어에 올랐기에 보지 않으려고 해도 안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사나 목격담이 뜰 때면 항상 배여진의 평가도 따라붙었다. 배여진은 얼굴이 예쁘지 않고 집안도 잘사는 것이 아니며 학력도 낮고 게다가 이혼까지 했다며 강현수가 만났던 여자 중에서 최악이라고 했다.심지어 강현수가 약을 잘 못 먹어 그런 여자를 옆에 두는 거라며 조롱했다.강현수는 그런 댓글들에 한 번도 먼저 나서서 뭔가를 한 적이 없다.대신 배여진의 매니저가 배여진의 악플러들에게 선처 없이 고소하겠다며 해결에 나섰다. 그리고 그녀의 매니저는 강현수가 붙여준 사람이었다.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매니저의 발언이 강현수의 뜻이라며 추측했다.파티장에 들어선 강현수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낀 듯 사람들을 뚫고 곧바로 임유진 쪽을 바라보았다.그러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큰 손이 임유진의 두 눈을 가려버렸다.“보지 마. 나는 누나가 그런 식으로 다른 남자를 뚫어지게 보는 거 싫어.”질투 어린 목소리가 임유진의 귓가에 들려왔다.그녀는 잠깐 멈칫하더니 그를 향해 말했다.“장난하지 말고 이 손 내려.”“장난하는 거 아니야.”강지혁은 말을 마치고 차가운 눈으로 강현수를 바라보았다.강현수는 임유진과 강지혁이 함께 있는 것을 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어떻게 된 거지? 헤어진 거 아니었나? 대체 두 사람이 왜 또 함께 있는 거지?!두 남자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한 명은 의문투성이인 얼굴이었고 한 명은 질투 가득한 얼굴이었다.강지혁은 자
드디어 캄캄했던 시야에 불빛이 들어왔다. 잠깐 불빛에 적응하고 보니 강현수와 배여진은 어느새 코앞까지 와 있었다.“유진아, 네가 여기 왜 있어? 그것도... 강지혁 씨랑 같이?”배여진은 눈앞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임유진은 분명히 강지혁과 헤어졌는데 대체 왜 같이 있는 거지?‘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요 며칠 그녀는 임유진이 강현수를 찾아와 모든 걸 다 얘기해버릴까 봐 틈만 나면 강현수 앞에서 임유진의 흉을 봤다. 그리고 어릴 적 그를 구해준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몇 번이나 더 어필했다.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임유진은 강현수를 찾아오지 않았다.이유가 뭐가 됐든 드듸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조금 편해지려던 찰나 이곳에서 임유진을 만나게 되어버렸다.“나와 같이 있으면 안 되나 보죠?”그녀의 말에 대답한 건 강지혁이었다.“당연히 아니죠. 하하하...”배여진은 어색하게 웃었다.“둘이 왜 같이 있어?”그때 강현수가 강지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전에 말했던 것 같은데, 너는 얘 못 건드린다고.”강지혁 역시 강현수와 눈을 마주치며 답했다.“내가 네 말을 들을 이유는 없지.”강현수는 싸늘하게 대답하더니 이번에는 임유진을 보며 물었다.“전에 나한테 더 이상 강지혁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대체 왜 지금 강지혁과 이곳에 있는 거죠?”임유진의 얼굴이 굳어버렸다.강현수는 지금 강지혁의 체면 따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말을 내뱉었다.역시 그 말을 듣는 순간 강지혁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들을 감싼 공기도 팽팽해졌다.“제 행동을 강현수 씨에게 일일이 보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임유진은 말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선 덕에 강현수는 그제야 그녀의 드레스 모습을 볼 수 있었다.보라색과 흰색 수정이 박혀있는 연보라색 드레스는 앉아있을 때보다 서 있을 때 더욱더 시선을 끌었다.강현수는 지금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임유진이 입고 있는 드레스는 전에 유명 디자이너의
배여진은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임유진을 보며 질투의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강현수는 결국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하던 옷장 속의 보라색 드레스를 주지 않았고 따로 하나 구매해주겠다는 소리를 해댔다.어쩔 수 없이 그의 말대로 가게에서 보라색 드레스를 하나 고르니 강현수는 이번에 그녀의 피부색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결국 베이지색 드레스로 골라주었다.그런데 지금 보란 듯이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임유진을 봤으니 심기가 뒤틀릴 만했다.“유진아, 현수 씨는 그저 네가 어쩌다 지혁 씨와 또 함께 있게 된 건지 궁금한 것뿐이야. 두 사람 헤어진 거 아니었어?”배여진은 그녀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말했다.“우리가 뭘 잘못 알고 있었던 거야? 아니면 혹시 지혁 씨랑 헤어지고 사는 게 힘들어서 결국 다시 돌아간 거야?”그녀는 강현수 들으라는 듯이 일부러 임유진을 돈이나 밝히는 여자로 만들었다.배여진 본인은 엄청나게 수준 높은 대화로 그녀를 깎아내렸다고 생각했지만 그 말을 들은 세 명의 눈에는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내 일에 굳이 신경 써줄 필요 없어, 언니.”임유진이 차갑게 대꾸했다.“그럴 수는 없지. 언니인 내가 널 챙기지 않으면 누가 널 챙겨. 안 그래?”“그래? 그럼 어디 어릴 적 얘기나 하며 추억을 되새기는 건 어때?”그 말에 배여진의 표정이 한순간에 변해버렸다. 임유진은 지금 강현수를 구한 일에 관해 얘기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배여진은 강현수가 임유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어릴 때 우리 사이가 그렇게까지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널 언제나 걱정하고 있었어. 결국은 가족이잖아, 우리.”“가족이라...”그때 강지혁이 끼어들며 조금 비웃는듯한 얼굴로 배여진을 바라보았다.싸늘한 그의 눈과 마주한 배여진은 마치 그가 자신의 모든 걸 꿰뚫어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자기도 모르게 강현수의 등 뒤에 숨었다.이에 강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강지혁을 향해 말했다.“여진이는 그저 동생 걱정하는 건데 왜
그리고 애초에 모든 걸 다 알고도 강현수에게 진실을 얘기하지 않은 건 자신이기에 후회할 것도 없었다.“나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어.”임유진이 강지혁에게 말했다.“그럴까?”강지혁은 오늘 이곳에 온 목적을 이미 달성한 듯 기분 좋게 웃었다.오늘 임유진을 굳이 파티에 참석시킨 건, 이 바닥 사람들에게 그녀 옆에는 자신이 있으니 건드릴 생각하지 말라고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그리고 또 하나, 강현수에게 임유진은 이미 자기 옆으로 돌아왔으니 행여나 그녀를 어떻게 해보려는 수작 같은 건 부리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강지혁은 임유진을 데리고 파티장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하지만 두 걸음도 채 떼지 않았는데 강현수가 갑자기 임유진의 손목을 덥석 낚아챘다.이에 자연스럽게 임유진의 발걸음이 멈췄다.“사랑하지 않는다면서 왜 지금은 또 같이 있는 거죠?”강현수는 기어이 답을 들어야겠는 듯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대체 그게 강현수 씨와 무슨 상관이 있어서 자꾸 물어보는 건지 모르겠네요.”임유진은 그에게 잡힌 손을 빼려고 했지만 강현수는 그녀의 손을 꽉 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강지혁은 고개를 돌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일부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임유진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강현수, 꼴사나우니까 이쯤 하지? 유진이가 지금 나랑 있든 말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강현수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임유진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잠깐 움찔했지만 거부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안긴 채로 강현수를 똑바로 보며 답했다.“내가 누구랑 함께 있든 그건 내 자유예요.”그 말이 끝나자마자 강현수의 손이 느슨하게 풀렸다.임유진은 그걸 놓치지 않고 손을 거두어드린 다음 강지혁과 함께 다시 출구로 걸어갔다.강현수는 멀어져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뭔가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하고 또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말이다...“현수 씨...”배여진은 강현수의
임유진은 다시 강지혁의 옆으로 돌아갔다.강현수는 이 사실이 미치도록 거슬렸다. 심지어 아까 강지혁이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을 때 그대로 두 사람을 떼어놓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너 아까 왜 그런 거냐?”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왔다.고개를 돌려보니 이한이었다. 강지혁을 포함해 세 사람은 어릴 때부터 이 바닥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다. “너도 왔냐?”“그래. 나 아까 깜짝 놀랐어. 너랑 지혁이가 얘기하는 것 같길래 가보려고 했더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던데?”이한은 아까 그 분위기에 끼고 싶지 않아 일단 멀리에서 구경만 했다.그러다 강현수가 임유진의 손을 잡았을 때 괜히 싸움이라도 날까 봐 달려나갈 뻔했다. 하지만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강지혁이 파티장을 나간 뒤에야 이렇게 강현수의 옆으로 다가왔다.“너도 지혁이가 유진 씨를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잖냐. 전에도 사람 하나 죽일 것 같은 모습을 봐놓고서 왜 또 그래. 네가 여자가 모자라냐 뭐가 모자라냐.”연예계에는 강현수를 노리는 여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그 여자는 달라.”강현수가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대답했다.“뭐가 그렇게 다른데?”이한은 솔직히 임유진이 그렇게까지 매력 있는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한 정도에서 그칠 뿐이다.그러니 강지혁과 강현수가 모두 그 여자에게 빠졌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강현수는 그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또다시 와인잔 하나를 집어 들더니 한입에 털어 넣었다.그 역시 이한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대체 임유진은 뭐가 그렇게 다른 걸까?어릴 때 자신을 구해준 소녀도 아니고 뛰어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닌데 대체 왜 그 여자가 이토록 신경이 쓰이는 걸까?얼굴 때문에? 하지만 그건 단순히 오해일 뿐이었다.어렸을 때 그 여자아이가 크면 그런 얼굴이겠거니 하는 것은 그저 단순한 오해일 뿐이었다.실제로 어릴 적 여자아이는 배여진이었으니까.강현수는 취할 작정인지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이한은
모델은 유승호에게 연예인 여자친구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 이 파티에 같이 오려고 갖은 애교를 부려대 결국 파티장에 입성했다.그녀는 지금 어떻게 하면 회장님들과 엮일 수 있을지 눈에 불을 켜는 중이다.하지만 유승호는 그녀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머릿속엔 온통 걱정뿐이었으니까....강지혁은 임유진을 월세방 안까지 데려다주었다.“나 오늘은 좀 피곤해서 일찍 쉬고 싶어.”이건 축객령이나 마찬가지였다.하지만 강지혁은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더니 이내 부드럽게 매만졌다.“정말 강현수한테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겠다고 했어?”임유진은 가까이 다가온 그의 얼굴을 보며 답했다.“그래.”그녀의 대답에 강지혁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헤어졌는데 계속 사랑한다는 것도 웃기지 않아?”임유진은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그럼 누굴 사랑할 건데?”강지혁이 한참을 침묵하다가 물었다.“일단 그게 너는 아니야. 나는 네 누나고 너는 내 동생이니까, 그렇지?”임유진은 그 말을 하며 그에게 웃어 보였다.그리고 그 웃음이 강지혁에게는 무척이나 거슬렸다.“그럼 이제는 강현수를 사랑할 거야?”강지혁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임유진은 그 말에 잠시 침묵했다.한 번도 강현수를 사랑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녀에게 있어 강현수는 그저 어릴 때 같은 위기를 겪은 사람일 뿐이다. 우정이라면 몰라도 사랑은 아니었다.“너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로 보여?”임유진은 그에게 되물었다.“대답해봐. 너는 우리가 사귀었을 때 내가 너 사랑하다 했던 말 한 번도 믿은 적 없지?”강지혁은 그 질문에 입을 달싹이더니 그녀를 꼭 끌어안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강현수 사랑하지 마. 알았어?”강지혁은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은 확실했다. 만약 임유진이 강현수를 사랑하게 되면 미친 듯이 질투나 날 거라는 것을 말이다.두 사람은 헤어졌지만, 임유진은 지금 그저 ‘누나’일 뿐이지만 그녀가 다른
임유진은 그 말에 흠칫했다.강지혁은 처음부터 무척이나 다정했으며 그녀가 옥살이한 것에도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그래서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진실된 모습이 아니었다. 강지혁은 매우 냉정하며 무척이나 차가운 사람이었다. 절대... 좋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내가 정말 곽동현을 끌어들이면 어떻게 할 거야?”강지혁은 그녀의 반응을 보려고 일부러 이런 질문을 했다.임유진은 그와 눈을 마주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동현 씨한테는 아무것도 하지 마. 만약 정말 끌어들이면 너 용서 안 할 거야.”임유진은 그녀 자신을 내걸고 그를 협박했다.그리고 강지혁은 이에 얼굴을 굳혔다.“나한테 이런 말까지 하면서 아직도 신경이 쓰인다는 걸 부정할 셈이야?”곽동현을 신경 쓰고 있다고?임유진은 최대한 이성적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하지만 아무리 물어도 곽동현에게는 이성으로서의 감정 같은 건 없다. 그저 그의 성실하고 우직한 모습에 응원해주고 싶을 뿐이다.여러 사건을 겪고 밑바닥까지 체험한 자신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햇살 같은 사람이니까.“나는 그저 누군가가 나 때문에 괜한 일에 휘말리는 게 싫을 뿐이고 그것 때문에 내가 괜한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게 싫을 뿐이야.”임유진은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강지혁은 잠깐 침묵하더니 이내 가볍게 웃었다.“곽동현 때문에 괜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면, 쓸데없이 곽동현이 생각나게 만들지 않으려면 확실히 건드리면 안 되겠네. 하지만...”강지혁은 말꼬리를 길게 늘어트리며 다시 말을 이었다.“누나는 신경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 처음에는 한지영 그리고 탁유미 씨와 그 아들, 이제는 곽동현까지, 대체 나는 언제 신경 써 줄래? 누나 마음속에 내가 있기는 해? 나도 언젠가는 그 사람들처럼 지켜주고 신경 써 줄 거야?”“너는 내가 굳이 지켜주지 않아도 되잖아.”“나는 날 지켜주는 게 누나였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예전에는 날 지켜주겠다며.”그 말에 임유진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초연한 얼굴
“네.”한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우진을 보냈다.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자니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 그녀는 근처 쓰레기통 앞으로 가 음식물을 게워냈다.그렇게 한참을 토하던 그녀는 오늘 먹었던 것을 다 비우고서야 주섬주섬 가방을 더듬으며 티슈를 찾았다.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티슈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그때 웬 손수건 하나가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고마워요.”한지영은 눈을 게슴츠레 뜬 채 그것이 손수건인지 티슈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입가를 쓱 닦았다.야무지게 다 닦고서야 그녀는 손에 든 것이 티슈가 아닌 손수건이었다는 것을 알아챘다.“어... 이거는 내가 내일 세탁해서 다시 줄게요.”한지영은 말을 하면서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당연히 연우진이 건넨 손수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너무나도 익숙한, 5년간 틈틈이 그녀의 꿈에 나타나던 남자의 얼굴이었다.슈트 차림의 남자는 머리를 완전히 빗어 올린 채 훤한 이마를 드러내고 있었다. 환한 달빛 때문인지 원래부터 예뻤던 얼굴이 오늘따라 더더욱 예뻐 보였다.세월의 흔적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 남자의 얼굴을 한지영은 말없이 가만히 바라보았다.“끅...”술 냄새를 가득 담은 딸꾹질과 함께 조용했던 침묵이 깨졌다.“오랜... 만이에요.”한지영의 입에서 먼저 말이 흘러나왔다. 술을 마셨던 터라 말이 느려지고 또 버벅거렸다.“너 취했어.”백연신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술을 좀 마셨어요.”한지영은 눈앞의 남자를 두 눈에 똑바로 담으려는 듯 눈을 크게 뜨기 위해 노력했다.“아까 그 남자는... 남자친구야?”백연신이 물었다.“남자친구?”한지영은 눈을 깜빡이다 갑자기 피식 웃었다. 술에 취해있어 그런지 그 웃음이 어쩐지 바보 같아 보였다.“아... 우진 씨는 오늘 소개팅한 남자예요. 괜찮은 사람이었어요. 첫 만남인데도 대화도 잘 통하고...”한지영은 말을 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술기운 때문인지 두 눈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그간 백연신을 향한 마음을 접으려고
“그건 아니고 이제껏 설렌다는 느낌이 들었던 여성분이 없었어요.”설레는 느낌이라는 걸 누군가는 부질없는 감정이라고 할지 몰라도 적어도 한지영은 그 말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이제껏 많은 아이돌과 배우들을 좋아해 왔지만 진정으로 마음이 설레었던 사람은 백연신 한 사람뿐이었으니까.아무리 소개팅을 해봐도 같이 있으면 가슴이 뛴다고 느껴지는 남자는 없었다.“설렌다는 느낌... 중요하죠. 쉽게 느끼기 어려운 감정이잖아요. 그리고 그런 느낌이 들었던 상대를 놓치고 다시 찾으려고 하면 더 힘들고요.”한지영의 말에 연우진이 조금 흠칫했다.“지영 씨는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나 봐요?”“네, 딱 한 번 있었어요.”한지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연우진은 분명히 소개팅 상대였지만 그녀는 얘기를 나누면서 그가 남자로 보이는 것이 아닌 묘하게 친구 같이 느껴졌다.“어떤 사람이었어요?”연우진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그 사람은 일단 너무 예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내 말이라면 뭐든 다 들어주는 그런 착한 사람이었죠.”백연신 얘기에 한지영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위로 말려 올라갔다.이미 헤어졌음에도 백연신과 함께 했던 나날은 여전히 그녀의 마음속에 제일 소중했던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연우진이 생각보다 편한 말 상대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오늘 우연히 백연신의 소식을 들어서인지 한지영은 평소보다 훨씬 더 감정적이고 말이 많았다.그녀는 술을 연거푸 마시며 얘기를 이어갔고 연우진은 그런 그녀의 얘기를 그저 가만히 들어주고만 있었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한지영이 앉아있는데도 휘청거리자 연우진은 그제야 술잔을 들어 올리려는 그녀의 손을 제지했다.“이제 그만 마셔요. 이러다 취하겠어요.”“취하는 게 뭐가 나빠요?”한지영이 웅얼거렸다.“지영 씨랑 나 오늘 첫 만남 아닌가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이렇게 무방비한 모습을 막 보여줘도 돼요? 내가 나쁜 마음이라도 먹으면 어쩌려고?”연우진의 말에 한지영이 피식 웃었다.“정말 그럴 생각
한지영은 손가락을 억지로 움직이며 소개팅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녀가 지금 신경 써야 할 사람은 백연신이 아니라 소개팅 상대였다.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진정으로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도 좋아하는 남자가 나올지도 모른다.저녁.한지영은 약속 시간에 맞춰 번화가의 한 카페로 들어섰다.창가 쪽으로 향하니 소개팅 상대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남자의 이름은 연우진이었고 현재 대기업에서 팀장직을 맡고 있는 유능한 사람이었다.한지영은 남자의 겉모습을 확인하고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했다. 스펙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프로필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외모까지 훌륭할 줄은 몰랐다.연우진은 깔끔한 정장 차림에 안경을 쓰고 있었다. 지적인 분위기에 앉아있는 자세까지 바른 것이 상당히 인기가 많을 것 같았다. 게다가 35살이라고 들었는데 막상 보니 이제 막 30대가 된 듯한 얼굴이었다.“안녕하세요. 한지영 씨 맞으시죠? 만나서 반가워요.”한지영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남자가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네, 안녕하세요.”한지영은 서둘러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두 사람은 첫 만남에 할법한 얘기를 서로 두어 마디 주고받은 후 곧바로 근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사실 한지영은 그저 아무런 고깃집이나 들어가 대충 식사를 하고 만남을 끝내려고 했는데 연우진은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아니면 소개팅하는 여자들과는 항상 레스토랑을 가는 건지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를 데리고 비싼 레스토랑으로 왔다.메뉴판을 들어 가격을 보니 헙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드시고 싶은 거 마음껏 주문하세요.”연우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한지영은 잠깐 고민하더니 결국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음식들을 주문했다.이에 연우진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더니 별다른 말 없이 다른 음식도 주문한 다음 웨이터에게 메뉴판을 건넸다.“실례가 안 된다면 지영 씨가 소개팅에 나온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혹시 나이 압박 때문에 결혼을 서두르고 싶은 건가요?”음식을 먹던 중에 연우진이 먼저 질문을 건네왔다.“그렇지
설마 재벌과 사귀었던 신데렐라가 주변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한지영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조나연을 바라보았다. 조나연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이 번기 회에 자신을 깎아내리며 조롱하려는 게 분명했으니까.조나연은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묘하게 그녀를 깎아내렸다. 게다가 한지영이 없을 때면 다른 동료에게 두 사람은 얼마 안 가 반드시 헤어지게 될 거라며 저주 아닌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그러다 정말 헤어졌을 때는 한껏 기분 좋은 얼굴로 한지영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나는 두 사람 오래 못 갈 줄 알았어요. 솔직히 백연신 씨가 아무것도 없는 지영 씨와 진심으로 사귈 리가 없잖아요. 요즘은 남자들도 여자 배경을 본다고요.”진심이 아니었다고? 그럴 리는 없다.한지영과 사귀었을 당시 백연신은 늘 그녀에게 진심을 다해 행동했고 자신의 사랑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니 진심이 아니었다는 말은 틀렸다.하지만 조나연의 말에 맞는 말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지영은 백연신이 원하는 것을 주지 못했으니까.“지금 돌이켜봐도 참 안타까워요. 만약 헤어지지 않았으면 지금쯤 사모님 소리 들으며 편히 살고 있을 텐데.”조나연이 안타까운 척 그녀를 비꼬았다.한지영은 그런 그녀를 차가운 눈길로 빤히 바라보더니 갑자기 피식 웃었다.“그렇게 안타까우면 백연신 씨와 나 사이에 다리 좀 놔주지 그래요? 말로만 계속 안타깝다고 하니까 괜히 놀림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물론 제 착각이겠죠, 안 그래요?”한지영의 뼈 있는 말에 조나연의 얼굴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그리고 가만히 구경하던 동료들 역시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듯 이상한 눈길로 조나연을 바라보았다.조나연은 조금 머쓱한 얼굴로 웃더니 별다른 대답 없이 자리를 벗어났다.한지영은 자리로 돌아간 후 소개팅 상대와 약속 시간을 잡으려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가 잠깐 멈칫하더니 저도 모르게 백연신의 기사를 검색했다.지난 5년간 그녀는 백연신을 완전히 내려놓을 작정으로 그와 관련
한지영은 한숨을 한번 내뱉더니 이내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엄마, 소개팅 같은 거 하기 싫다고 내가 분명히 말했잖아요. 남자는 내가 알아서 찾을 테니까 나 좀 가만히 내버려 둬요. 이게 대체 몇 번째야.”“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면 내가 이러지 않겠지. 너 이제 20대 아니고 30대야. 34살이나 돼서 남자친구 한 명 없다는 게 말이 돼? 내일모레면 당장 노산에 진입하는데 그때 되면 점점 더 좋은 남자 찾는 게 어려워져!”이해영이 속사포로 말을 뱉어냈다.한지영도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소개팅을 주선하는지 잘 알고 있다. 34살이나 된 딸이 이대로 계속 남자와의 교제를 피하다 결국에는 남자도 자식도 없이 홀로 인생을 마감할까 봐 걱정되고 또 불안한 거겠지.사실 한지영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의였다. 게다가 요즘은 실버타운도 잘 되어있어 정말 혼자가 된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하지만 부모님들은 그런 걸 바라지도 않거나와 그래도 결혼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었다.그래서 한지영은 결국 오늘도 소개팅을 수락하고 말았다.더 이상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기도 했고 말이다.“아, 알겠어요. 만나면 되잖아요. 톡으로 연락처 보내세요. 이따 연락할게요.”이해영은 딸의 말에 그제야 만족하며 전화를 끊었다.몇 초 후 한지영의 휴대폰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보낸 사람은 이해영이었고 내용은 소개팅할 남자의 프로필과 연락처였다.한지영은 메시지를 보고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뱉었다. 이해영의 말대로 그녀도 이제는 34살로 절대 마냥 어리기만 한 나이는 아니었다.지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는 백연신을 천천히 마음속에서 내려놓았다....정말?문득 마음속 깊은 속에서 이러한 의문이 떠올랐다.정말 백연신을 향한 마음을 완전히 접어버린 게 맞나?한지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이내 잡생각을 털어버리듯 머리를 흔들며 다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웬 동료 한 명이 그녀를 불렀다.“지영 씨,
얘기가 일단락되자 강지혁은 아들의 손을 잡고, 임유진은 딸의 손을 잡고, 그리고 두 아이는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유치원 안으로 들어갔다.소민아는 그런 네 사람의 뒤를 따라 딸과 함께 조용히 앞으로 걸어갔다.만약 전이였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강지혁의 옆에 서며 사람들의 뇌리에 그 모습을 각인하려고 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어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소민아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던 소안나는 강선현과 강선율이 맞잡고 있는 손을 빤히 바라보며 미간을 찡그렸다.강선율이 그녀의 손을 잡아준 건 첫 만남뿐으로 그 뒤로는 한번도 손을 잡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분명히 전보다 훨씬 예뻐지고 공주 옷도 입고 머리도 예쁘게 했는데 강선율은 다른 이들처럼 그녀에게 예쁘다고 칭찬해주기는커녕 점점 더 거리를 두며 이제는 말도 잘 섞으려고 하지 않았다.소안나는 그런 강선율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왜 자신의 손은 잡아주려 하지 않는 거지?결국에는 양녀라 정을 주지 않는 건가?경찰서 앞에서의 일이 있고 난 뒤 소민아는 강지혁의 사진을 들고 있던 여자아이가 바로 강씨 가문의 진정한 딸이고 강선율의 친여동생이라는 것을 소안나에게 얘기해주었다.소안나는 그 말을 듣고는 더욱더 기분이 나빠졌다. 갑자기 나타난 강선현에게 아빠와 오빠를 빼앗기는 것 같았으니까.유치원 입구에 다다른 임유진은 먼저 아이들을 안으로 들여보내고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강지혁은 그런 그녀의 옆에 선 채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강선율은 안으로 들어간 후에도 강선현의 손을 꼭 잡은 채 자리까지 이동했다. 그러고는 듬직한 오빠의 얼굴로 동생의 가방을 직접 옆에 내려놓아 주기도 했다.그 장면을 바라보던 소안나는 질투심에 씩씩거렸다.‘나한테는 한번도 그렇게 해주지 않았으면서! 오빠랑 먼저 알게 된 건 쟤가 아니라 안나잖아!’“엄마, 나도 율이 오빠 친동생 하면 안 돼요?”소안나가 고개를 홱 들며 소민아에게 물었다.소민아는 딸의 말에 서둘러 주위
소씨 모녀의 등장에 사람들의 두 눈은 금세 흥미로움으로 가득 찼다. 그도 그럴 것이 강지혁이 또다시 결혼하게 된다면 그 상대는 분명히 양녀의 어머니인 소민아라고 생각했으니까.임유진은 포르쉐에서 내린 소민아를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간 집사와 고이준으로부터 전해 들은 말에 의하면 소민아는 소소하게 인기를 얻고 있던 인플루언서였다가 재벌 2세의 아이를 배고 그 집의 며느리로 들어가려다가 철저하게 버림을 받고 홀로 아이를 키우며 그간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소안나가 강씨 가문에 입양된 건 2년 전의 일로 강지혁은 소안나와 소민아를 위해 집도 주고 생활비도 다달이 보내주며 그 외의 큰 지출도 부담해주었다고 한다. 즉 소씨 모녀는 하루아침에 강지혁이라는 든든한 백을 둔 신데렐라 모녀가 됐다는 뜻이었다.지금 소민아가 입고 있는 옷이나 타고 있는 차량만 봐도 그간 얼마나 호의호식하며 지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임유진이 소민아를 훑어보고 있을 때 소민아도 마찬가지로 임유진을 훑어보고 있었다. 설마 레스토랑에서 언쟁을 벌였던 별 볼 일 없는 여자가 강지혁의 사망한 아내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소민아는 강지혁과 함께 나란히 서 있는 임유진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질투의 감정이 몸 곳곳에 퍼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하지만 그 감정을 겉으로 내비칠 수는 없었기에 소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유진 씨 맞으시죠? 그날은 죄송했어요. 딸 일이라 괜히 흥분해서 언성을 좀 높였어요. 용서해주세요...”그 말에 임유진이 뭐라 대꾸하려는데 강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호칭 똑바로 해. 임유진 씨가 아니라 사모님.”차가운 그의 말에 주변 공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임유진이 강지혁의 아내였다는 것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임유진의 위치를 똑똑히 전하고자 하는 강지혁의 의도를 바로 알아챘다.5년 만에 돌아왔어도 임유진은 여전히 강지혁의 아내였고 강씨 가문의 안주인이었다.하지만 임유진이 누군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은 강지혁의 말에
게다가 5년 만에 돌아온 거라 그간 많이 변한 저택의 상황도 알아야 했고 새로운 사람들과도 익숙해져야만 했다.그래서 아이들 일에는 조금 소홀해졌다. 딸이 아버지를 원했던 만큼 아들도 마찬가지로 엄마를 원했을 텐데 말이다.저택 고용인들에게 듣기로 강지혁은 매일 아침 율이와 함께 저택을 나서기는 하지만 나가서는 서로 다른 차를 타고 각자의 목적지로 향한다고 한다.즉, 강선율은 그간 아버지가 아닌 도우미나 기사의 보호 아래 유치원에 갔다는 소리였다.임유진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또다시 죄책감이 피어올랐다. 또한 바쁘다는 이유로 율이에게 소홀했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강선율은 임유진의 팔이 더 세게 자신을 끌어안자 조금 움찔했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안기는 일은 익숙지 않았지만 상대가 엄마라서 그런지 이런 식의 포옹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기분이 좋았다.게다가 앞으로는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유치원으로 가주겠다는 말 또한 기분 좋게 귓가에서 맴돌았다....다음날.강선현이 유치원으로 가는 날, 임유진은 율이와 현이에게 똑같은 옷을 입혔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강선율은 바지고 강선현은 치마라는 것이다. 엇비슷한 키의 두 아이가 똑같은 옷에 똑같은 신발을 신은 채 가방을 메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절로 마음이 녹는 기분이었다.임유진은 결국 참지 못하고 두 아이를 품에 끌어안고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강선현은 그녀의 이런 행동에 이미 습관이 되었던 터라 꺄르르 웃으며 뽀뽀로 회답했지만 강선율은 별다른 반응 없이 그저 그녀의 행동을 받고만 있었다. 분명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귀가 살짝 빨개진 것을 보니 기분이 나쁜 건 아닌 듯했다.강지혁은 세 사람이 다정하게 스킨십하는 걸 보면서 저도 모르게 슬쩍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유치원에 도착한 후, 강지혁과 임유진은 각자 아이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렸다. 아이를 등원시키러 온 학부모들은 네 사람의 등장에 입을 떡 벌리며 그대로 굳어버렸다.강지혁은 좀처럼 유치원에 얼굴을 내비치
하지만 남매 사이가 하루가 다르게 좋은 것 같아 보이니 임유진은 괜히 뿌듯해 나며 기분이 좋았다.“내일 유치원 갈 때 아빠도 엄마랑 함께 현이 데려다주면 안 돼?”현이가 눈을 반짝이며 강지혁을 바라보았다. 어지간히도 같이 가고 싶은 듯했다.강지혁은 아이가 이런 요구를 해올 줄은 몰랐는지 미간을 살짝 꿈틀거렸다.“유치원에 같이 가달라고?”“응! 원래 유치원 가는 첫날은 엄마랑 아빠가 함께 가줘야 하는 거야!”현이는 이번이 첫 유치원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아빠도 찾았으니 강지혁과 함께 등원하고 싶었다. 아빠가 있다는 기분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사실 지금껏 아빠의 부재에도 잘 자라왔던 아이였지만 아무래도 아빠의 빈자리가 꽤 컸던 모양이다.“그래, 그럼 내일 유치원에 같이 가줄게.”강지혁의 말에 현이는 활짝 웃더니 곧바로 팔을 쭉 내밀었다. 품에 안기고 싶다는 뜻이었다.강지혁은 스킨십 많은 딸이 아직도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인 율이는 이제껏 이런 식의 요구를 해오지 않았으니까.하지만 임유진과 쏙 빼닮은 두 눈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로 팔이 뻗어졌다.현이는 강지혁에게 안긴 후 그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지난번 서재에서처럼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했다.“아빠가 최고야!”진심으로 기뻐 보이는 딸의 모습에 임유진은 괜스레 코끝이 찡해 났다.딸이 아빠의 존재를 그리워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새삼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조금 더 빨리 기억을 회복하지 못했던 것에 죄책감이 일었다.임유진은 눈물을 감추기 위해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바로 옆에 서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혹시 율이도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엄마가 있어야 하는 상황에 항상 없었던 것에 쓸쓸해 하지는 않았을까?“율아.”임유진은 그 생각에 강선율을 향해 팔을 활짝 열었다.“엄마가 안아줄까?”아이는 그 말에 어색해하며 답했다.“전 어린애가 아니에요. 동생이나 안아주세요.”말은 이렇게 하지만 은근히 원하고 있다는 눈빛을 보냈다.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