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캄캄했던 시야에 불빛이 들어왔다. 잠깐 불빛에 적응하고 보니 강현수와 배여진은 어느새 코앞까지 와 있었다.“유진아, 네가 여기 왜 있어? 그것도... 강지혁 씨랑 같이?”배여진은 눈앞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임유진은 분명히 강지혁과 헤어졌는데 대체 왜 같이 있는 거지?‘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요 며칠 그녀는 임유진이 강현수를 찾아와 모든 걸 다 얘기해버릴까 봐 틈만 나면 강현수 앞에서 임유진의 흉을 봤다. 그리고 어릴 적 그를 구해준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몇 번이나 더 어필했다.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임유진은 강현수를 찾아오지 않았다.이유가 뭐가 됐든 드듸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조금 편해지려던 찰나 이곳에서 임유진을 만나게 되어버렸다.“나와 같이 있으면 안 되나 보죠?”그녀의 말에 대답한 건 강지혁이었다.“당연히 아니죠. 하하하...”배여진은 어색하게 웃었다.“둘이 왜 같이 있어?”그때 강현수가 강지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전에 말했던 것 같은데, 너는 얘 못 건드린다고.”강지혁 역시 강현수와 눈을 마주치며 답했다.“내가 네 말을 들을 이유는 없지.”강현수는 싸늘하게 대답하더니 이번에는 임유진을 보며 물었다.“전에 나한테 더 이상 강지혁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대체 왜 지금 강지혁과 이곳에 있는 거죠?”임유진의 얼굴이 굳어버렸다.강현수는 지금 강지혁의 체면 따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말을 내뱉었다.역시 그 말을 듣는 순간 강지혁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들을 감싼 공기도 팽팽해졌다.“제 행동을 강현수 씨에게 일일이 보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임유진은 말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선 덕에 강현수는 그제야 그녀의 드레스 모습을 볼 수 있었다.보라색과 흰색 수정이 박혀있는 연보라색 드레스는 앉아있을 때보다 서 있을 때 더욱더 시선을 끌었다.강현수는 지금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임유진이 입고 있는 드레스는 전에 유명 디자이너의
배여진은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임유진을 보며 질투의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강현수는 결국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하던 옷장 속의 보라색 드레스를 주지 않았고 따로 하나 구매해주겠다는 소리를 해댔다.어쩔 수 없이 그의 말대로 가게에서 보라색 드레스를 하나 고르니 강현수는 이번에 그녀의 피부색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결국 베이지색 드레스로 골라주었다.그런데 지금 보란 듯이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임유진을 봤으니 심기가 뒤틀릴 만했다.“유진아, 현수 씨는 그저 네가 어쩌다 지혁 씨와 또 함께 있게 된 건지 궁금한 것뿐이야. 두 사람 헤어진 거 아니었어?”배여진은 그녀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말했다.“우리가 뭘 잘못 알고 있었던 거야? 아니면 혹시 지혁 씨랑 헤어지고 사는 게 힘들어서 결국 다시 돌아간 거야?”그녀는 강현수 들으라는 듯이 일부러 임유진을 돈이나 밝히는 여자로 만들었다.배여진 본인은 엄청나게 수준 높은 대화로 그녀를 깎아내렸다고 생각했지만 그 말을 들은 세 명의 눈에는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내 일에 굳이 신경 써줄 필요 없어, 언니.”임유진이 차갑게 대꾸했다.“그럴 수는 없지. 언니인 내가 널 챙기지 않으면 누가 널 챙겨. 안 그래?”“그래? 그럼 어디 어릴 적 얘기나 하며 추억을 되새기는 건 어때?”그 말에 배여진의 표정이 한순간에 변해버렸다. 임유진은 지금 강현수를 구한 일에 관해 얘기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배여진은 강현수가 임유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어릴 때 우리 사이가 그렇게까지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널 언제나 걱정하고 있었어. 결국은 가족이잖아, 우리.”“가족이라...”그때 강지혁이 끼어들며 조금 비웃는듯한 얼굴로 배여진을 바라보았다.싸늘한 그의 눈과 마주한 배여진은 마치 그가 자신의 모든 걸 꿰뚫어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자기도 모르게 강현수의 등 뒤에 숨었다.이에 강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강지혁을 향해 말했다.“여진이는 그저 동생 걱정하는 건데 왜
그리고 애초에 모든 걸 다 알고도 강현수에게 진실을 얘기하지 않은 건 자신이기에 후회할 것도 없었다.“나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어.”임유진이 강지혁에게 말했다.“그럴까?”강지혁은 오늘 이곳에 온 목적을 이미 달성한 듯 기분 좋게 웃었다.오늘 임유진을 굳이 파티에 참석시킨 건, 이 바닥 사람들에게 그녀 옆에는 자신이 있으니 건드릴 생각하지 말라고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그리고 또 하나, 강현수에게 임유진은 이미 자기 옆으로 돌아왔으니 행여나 그녀를 어떻게 해보려는 수작 같은 건 부리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강지혁은 임유진을 데리고 파티장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하지만 두 걸음도 채 떼지 않았는데 강현수가 갑자기 임유진의 손목을 덥석 낚아챘다.이에 자연스럽게 임유진의 발걸음이 멈췄다.“사랑하지 않는다면서 왜 지금은 또 같이 있는 거죠?”강현수는 기어이 답을 들어야겠는 듯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대체 그게 강현수 씨와 무슨 상관이 있어서 자꾸 물어보는 건지 모르겠네요.”임유진은 그에게 잡힌 손을 빼려고 했지만 강현수는 그녀의 손을 꽉 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강지혁은 고개를 돌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일부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임유진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강현수, 꼴사나우니까 이쯤 하지? 유진이가 지금 나랑 있든 말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강현수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임유진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잠깐 움찔했지만 거부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안긴 채로 강현수를 똑바로 보며 답했다.“내가 누구랑 함께 있든 그건 내 자유예요.”그 말이 끝나자마자 강현수의 손이 느슨하게 풀렸다.임유진은 그걸 놓치지 않고 손을 거두어드린 다음 강지혁과 함께 다시 출구로 걸어갔다.강현수는 멀어져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뭔가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하고 또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말이다...“현수 씨...”배여진은 강현수의
임유진은 다시 강지혁의 옆으로 돌아갔다.강현수는 이 사실이 미치도록 거슬렸다. 심지어 아까 강지혁이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을 때 그대로 두 사람을 떼어놓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너 아까 왜 그런 거냐?”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왔다.고개를 돌려보니 이한이었다. 강지혁을 포함해 세 사람은 어릴 때부터 이 바닥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다. “너도 왔냐?”“그래. 나 아까 깜짝 놀랐어. 너랑 지혁이가 얘기하는 것 같길래 가보려고 했더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던데?”이한은 아까 그 분위기에 끼고 싶지 않아 일단 멀리에서 구경만 했다.그러다 강현수가 임유진의 손을 잡았을 때 괜히 싸움이라도 날까 봐 달려나갈 뻔했다. 하지만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강지혁이 파티장을 나간 뒤에야 이렇게 강현수의 옆으로 다가왔다.“너도 지혁이가 유진 씨를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잖냐. 전에도 사람 하나 죽일 것 같은 모습을 봐놓고서 왜 또 그래. 네가 여자가 모자라냐 뭐가 모자라냐.”연예계에는 강현수를 노리는 여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그 여자는 달라.”강현수가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대답했다.“뭐가 그렇게 다른데?”이한은 솔직히 임유진이 그렇게까지 매력 있는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한 정도에서 그칠 뿐이다.그러니 강지혁과 강현수가 모두 그 여자에게 빠졌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강현수는 그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또다시 와인잔 하나를 집어 들더니 한입에 털어 넣었다.그 역시 이한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대체 임유진은 뭐가 그렇게 다른 걸까?어릴 때 자신을 구해준 소녀도 아니고 뛰어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닌데 대체 왜 그 여자가 이토록 신경이 쓰이는 걸까?얼굴 때문에? 하지만 그건 단순히 오해일 뿐이었다.어렸을 때 그 여자아이가 크면 그런 얼굴이겠거니 하는 것은 그저 단순한 오해일 뿐이었다.실제로 어릴 적 여자아이는 배여진이었으니까.강현수는 취할 작정인지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이한은
모델은 유승호에게 연예인 여자친구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 이 파티에 같이 오려고 갖은 애교를 부려대 결국 파티장에 입성했다.그녀는 지금 어떻게 하면 회장님들과 엮일 수 있을지 눈에 불을 켜는 중이다.하지만 유승호는 그녀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머릿속엔 온통 걱정뿐이었으니까....강지혁은 임유진을 월세방 안까지 데려다주었다.“나 오늘은 좀 피곤해서 일찍 쉬고 싶어.”이건 축객령이나 마찬가지였다.하지만 강지혁은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더니 이내 부드럽게 매만졌다.“정말 강현수한테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겠다고 했어?”임유진은 가까이 다가온 그의 얼굴을 보며 답했다.“그래.”그녀의 대답에 강지혁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헤어졌는데 계속 사랑한다는 것도 웃기지 않아?”임유진은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그럼 누굴 사랑할 건데?”강지혁이 한참을 침묵하다가 물었다.“일단 그게 너는 아니야. 나는 네 누나고 너는 내 동생이니까, 그렇지?”임유진은 그 말을 하며 그에게 웃어 보였다.그리고 그 웃음이 강지혁에게는 무척이나 거슬렸다.“그럼 이제는 강현수를 사랑할 거야?”강지혁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임유진은 그 말에 잠시 침묵했다.한 번도 강현수를 사랑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녀에게 있어 강현수는 그저 어릴 때 같은 위기를 겪은 사람일 뿐이다. 우정이라면 몰라도 사랑은 아니었다.“너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로 보여?”임유진은 그에게 되물었다.“대답해봐. 너는 우리가 사귀었을 때 내가 너 사랑하다 했던 말 한 번도 믿은 적 없지?”강지혁은 그 질문에 입을 달싹이더니 그녀를 꼭 끌어안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강현수 사랑하지 마. 알았어?”강지혁은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은 확실했다. 만약 임유진이 강현수를 사랑하게 되면 미친 듯이 질투나 날 거라는 것을 말이다.두 사람은 헤어졌지만, 임유진은 지금 그저 ‘누나’일 뿐이지만 그녀가 다른
임유진은 그 말에 흠칫했다.강지혁은 처음부터 무척이나 다정했으며 그녀가 옥살이한 것에도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그래서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진실된 모습이 아니었다. 강지혁은 매우 냉정하며 무척이나 차가운 사람이었다. 절대... 좋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내가 정말 곽동현을 끌어들이면 어떻게 할 거야?”강지혁은 그녀의 반응을 보려고 일부러 이런 질문을 했다.임유진은 그와 눈을 마주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동현 씨한테는 아무것도 하지 마. 만약 정말 끌어들이면 너 용서 안 할 거야.”임유진은 그녀 자신을 내걸고 그를 협박했다.그리고 강지혁은 이에 얼굴을 굳혔다.“나한테 이런 말까지 하면서 아직도 신경이 쓰인다는 걸 부정할 셈이야?”곽동현을 신경 쓰고 있다고?임유진은 최대한 이성적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하지만 아무리 물어도 곽동현에게는 이성으로서의 감정 같은 건 없다. 그저 그의 성실하고 우직한 모습에 응원해주고 싶을 뿐이다.여러 사건을 겪고 밑바닥까지 체험한 자신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햇살 같은 사람이니까.“나는 그저 누군가가 나 때문에 괜한 일에 휘말리는 게 싫을 뿐이고 그것 때문에 내가 괜한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게 싫을 뿐이야.”임유진은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강지혁은 잠깐 침묵하더니 이내 가볍게 웃었다.“곽동현 때문에 괜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면, 쓸데없이 곽동현이 생각나게 만들지 않으려면 확실히 건드리면 안 되겠네. 하지만...”강지혁은 말꼬리를 길게 늘어트리며 다시 말을 이었다.“누나는 신경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 처음에는 한지영 그리고 탁유미 씨와 그 아들, 이제는 곽동현까지, 대체 나는 언제 신경 써 줄래? 누나 마음속에 내가 있기는 해? 나도 언젠가는 그 사람들처럼 지켜주고 신경 써 줄 거야?”“너는 내가 굳이 지켜주지 않아도 되잖아.”“나는 날 지켜주는 게 누나였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예전에는 날 지켜주겠다며.”그 말에 임유진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초연한 얼굴
“오빠!”소민영은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소민준의 곁으로 다가와 다급하게 물었다.“그 영상 좀 내려줄 수 없어? 응?”소민영은 그 영상이 단 1분이라도 인기 검색어에 있는 게 싫었다. 계속 이렇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가는 S 시에 있는 모두가 그녀의 그 영상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소민준은 고개를 저었다.“왜 못 내려, 왜! 돈이 문제야? 오빠 혹시 나한테 돈 쓰는 게 싫어서 그래?!”소민영은 거의 그의 멱살을 잡고 싶은 기분이었다.“돈이 문제가 아니야! 돈을 아무리 줘도 내리지 못한다고!”“왜?! 대체 왜? 돈 준다는 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소민준은 자신의 동생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강지혁.”그 세글자에 소민영의 얼굴이 한순간에 창백해지더니 다리를 덜덜 떨며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강지혁이 내리지 말라고 하는 거야, 지금? 왜...? 그날 분명히 아무 말도...”그녀의 목소리가 뚝 하고 멈췄다. 그렇다. 그날 강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뜻인즉슨 그녀를 봐준다는 말도 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저 그녀 혼자 멋대로 그렇게 생각한 것일 뿐.그럼 설마 그 영상도 강지혁과 연관되어 있는 건가?그날 임유진이 감방에서 무릎 꿇고 거지처럼 남은 밥이나 주워 먹었다고 해버린 그 말 때문에 똑같이 바닥에 기는 개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해주려는 건가?소민영은 여기까지 생각나고서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강지혁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그녀는 다시금 느끼게 됐다. 이런 남자와 적이 되면 정말 평생이 괴로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S 시에서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남자가 바로 강지혁이다.“일단 너는 잠깐 해외에 가 있는 게 좋겠어. 잠잠해지면 다시 부를게.”“그럼 전에 아빠가 소개해준다던 신씨 집안의 그 남자는? 괜히 영상 때문에 영향이 가는 건 아니겠지? 솔직히 나 제정신인 상태에서 찍힌 것도 아니잖아. 나도 피해자라고.”소민영은 아직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소민준
보잘것없던 임유진이 지금은 강지혁의 비호 속에 있을 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유승호는 요 며칠 매일매일을 불안 속에서 살았다. 특히 소민영의 영상이 올라간 이후로 더더욱 그 증상은 심해졌다.그날 그는 파티장에서 소민영이 임유진을 어떻게 모욕했는지 똑똑히 들었다.그리고 바로 영상이 터졌다는 건 강지혁 짓일 게 분명했다.소씨 가문은 재벌에 속하지만 유씨 가문은 그저 졸부 정도였다. 그러니 재력으로는 소씨 가문에 비할 것이 못 된다.그런 소씨 가문의 장녀 소민영마저 이런 꼴이 되어버렸는데 그는 얼마나 더 비참해질까.유승호는 그날 임유진을 당구대 옆에 오랫동안 서게 했다. 그리고 얼핏 스치는 기억으로 볼 일을 마치고 자리를 벗어날 때 임유진은 두 다리를 절뚝거리기도 했었다.유승호는 순간 자신의 두 다리가 아예 절단되는 모습이 상상되기 시작했다.그렇게 계속 불안에 떨던 그는 결국 비서에게 연락해 임유진의 사무실에 노란 장미를 보내라고 지시한 뒤 비싼 선물을 구매한 후 직접 사과하러 사무실로 향했다.유승호의 등장에 사무실 사람들은 전부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중 유일하게 그를 반기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정한나였다.유승호가 직접 얼굴을 내비쳤다는 건 임유진이 정말 그를 꼬셨다는 뜻일 테니까.정한나는 황급하게 휴대폰을 들어 유승호와 임유진이 함께 있는 영상을 몰래 찍었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인터넷에 올리며 유승호의 여자친구 세레나까지 태그했다.일련의 작업을 끝낸 정한나는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이제 세레나가 임유진을 찾아내 그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주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그런 소란이 일어나면 임유진은 바로 해고당할 것이다.또한, 이번 일이 인터넷에서 뜨겁게 달아오르면 임유진을 받아주려는 로펌도 없을 것이다.변호사라는 건 사람들에게 신임을 줘야 하는데 이러한 구설에 휘말리게 되면 의뢰 같은 건 들어오지 않을 테니까.다만 지금 문제는 두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어 무슨 얘기가 오고 가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