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데 시간이 무슨 상관이에요?”한지영는 달달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연신 씨도 나 좋아하고 나도 연신 씨 좋아해서 참 다행인 것 같아요.”임유진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정말 다행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래서 더 임유진이 안쓰러웠다.“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백연신의 목소리가 아까와는 달리 다정해졌다.그녀가 무슨 일 때문에 갑자기 이런 소리를 하는 건지는 몰라도 꽤 듣기 좋은 소리였다.“오늘 유진이 만나고 왔어요. 유진이가 그러는데 강지혁이랑 지금 다시 누나 동생 사이가 됐대요. 이대로라면 유진이는 강지혁을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한지영은 말을 할수록 감정이 점점 더 격해졌다.“대체 강지혁이 무슨 생각으로 그딴 제안을 한 건지 모르겠어요. 유진이한테 마음이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이럴 거면 애초에 왜 헤어지냐고요! 웬만한 여자 마음보다 더 복잡한 게 강지혁의 마음일 거예요.”“강지혁은 아직 유진 씨를 사랑하고 있어.”백연신이 말했다.“아직 사랑하고 있다고요?”“그래.”강지혁의 그 눈빛은 절대 옛 연인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같은 남자로서 임유진을 향한 강지혁의 사랑이 아직 지속 중이라는 걸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오히려 지금은... 그 정도가 더 심각해 진 것도 같다.“그럼 대체 왜 헤어진 건데요? 그리고 아직 사랑하면서 유진이를 사랑하는 게 힘들다는 소리는 왜 했대요?”“그건 본인에게 물어봐야지.”백연신은 한지영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이제 그만 생각해. 네 일도 아니잖아. 괜히 끼어들 생각은 하지도 말고.”“어떻게 그래요! 유진이 일인데.”한지영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녀에게 있어 임유진은 이제 그냥 친구가 아니라 친자매나 마찬가지였다.“알았어, 알았어.”백연신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지영에게 임유진이 얼마나 중요한 친구인지 그 역시 알고 있다. 심지어 그것 때문에 종종 질투가 나기도 했으니까.그는 가끔 임유진과 자신이 동시에 물에 빠지면 한지영은 아무 망
한지영은 이 기회에 두 사람이 전에 어떤 밤을 보냈는지 떠올리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그때 백연신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왜 웃어요?”한지영이 고개를 갸웃했다.“내가 너무 적극적이어서 그래요?”‘너무 밝히는 것 같으려나?’하지만 한지영이 이토록 안달 나 하는 남자는 오직 백연신 뿐이다.“아니, 역시 내가 사랑하는 여자구나 싶어서.”백연신은 손가락을 치우더니 그녀의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다.한지영이라는 여자는 가식이 없고 또 순수하다. 그런 그녀와 마주할 때면 백연신은 자신을 감싸던 벽을 쉽게 허물게 되고 꽁꽁 감춰왔던 모습들도 거리낌 없이 보여주게 된다.그녀를 만나고 사랑하게 된 건 아마 그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일 것이다. 어느샌가 한지영은 백연신의 구세주가 되어 있었다.백연신은 평생에 걸쳐 한지영이라는 여자를 사랑하고 아껴줄 생각이다....임유진이 다시 출근하게 됐을 때 빨갛게 부어올랐던 뺨은 어느새 많이 가라앉았다. 게다가 얼굴 위에 가볍게 파운데이션으로 바르고 나니 평소 얼굴과 별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퇴근 시간이 되자 강씨 저택 기사가 또다시 마이바흐를 끌고 그녀를 데리고 왔다.“유진 씨, 모시러 왔습니다.”임유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순순히 차에 올라탔다. 처음에는 차에 올라타는 걸 거절하려고도 해봤지만 어차피 강지혁이 원하는 건 이뤄지지 않은 적이 없기에 그저 순응하기로 했다.그리고 그 말은 강지혁이 원하지 않는 순간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임유진이 차에 오르는 순간 구석에 숨어있던 정한나가 또다시 사진을 찍었다.그는 최대한 많은 증거를 남겨 놓을 생각이다. 그래야만 임유진을 확실하게 보낼 수 있을 테니까.그보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유승호가 직접 데리러 온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임유진은 차에 올라서도 교통사고 사건만 생각했다. 오늘 이재하의 부모가 전화를 걸어왔었다. 울면서 집에 돈이 없다고, 이대로 배상금을 받지 못하면 아들의 치료도 제대로 이어갈 수가
이제 며칠 뒤면 재판이 열리게 된다.임유진이 한숨을 깊게 내쉬며 머리 아파하고 하고 있을 때 차량은 어느새 어딘가에 도착해 있었다.고개를 돌려보니 이곳은 전에 강지혁이 한번 데리고 왔던 샵이었다.임유진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기사에게 물었다.“왜 여기로 온 거예요?”“대표님께서 이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그 말에 임유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서 내렸다.안으로 들어가니 샵 원장이 친절하게 마중을 나왔다.“임유진 씨 맞으시죠? 강지혁 대표님이 계시는 룸으로 안내하겠습니다.”임유진은 원장을 따라 2층의 한 VIP룸에 도착했다. 문을 열어 보니 소파 한가운데 강지혁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연보라색 드레스가 세팅되어 있었다.보라색과 흰색 수정이 박혀 있는 해당 드레스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고급지고 예뻤다.“이따 저녁에 파티가 있어. 나랑 같이 가야 하니까 이거로 입어 봐.”“파티?”임유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거창한 파티는 아니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전에 그를 따라 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지만 그다지 좋은 기억은 없었다.‘오늘은 과연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갈 수 있을까...?’임유진은 피팅룸으로 들어가 드레스로 갈아입었다.강지혁이 고른 드레스는 그녀의 몸에 있는 상처를 전부 다 가려주었다. 단 손만 빼고 말이다.멀리에서 보면 괜찮을지 몰라도 가까이에서 보면 삐뚤빼뚤한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그녀가 신경 쓸 만한 부분은 다 가려주고 싶었지만 손이라서 어쩔 수가 없었다.임유진이 피팅룸에서 나오자 강지혁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사실 그는 처음 이 드레스를 봤을 때부터 임유진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디자이너의 하나밖에 없는 이 드레스를 거액에 사버렸다.그리고 지금 입고 나온 것을 보니 마치 처음부터 그녀의 옷이었던 것처럼 역시 잘 어울렸다. “예쁘네.”강지혁이 앞으로 다가가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다.임유진은 조금 어색한 얼굴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는 옆에 놓인 액세서리 상자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가 중요해?”“당연히 중요하지. 이 드레스가 싫으면 다른 거로 입어도 돼.”강지혁의 목소리는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그는 마치 아끼고 또 아끼는 공주를 대하는 듯했다.이에 임유진은 자신들이 정말 헤어진 연인 사이가 맞나 싶은 착각이 들어 머리가 복잡해졌다.“그럼 이런 누나 동생 사이가 싫다고 하면 이것도 그만해 줄 거야?”임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그러자 강지혁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이내 웃는 얼굴로 답했다.“안 돼. 혹시 하는 기대도 품지 마.”강지혁은 그녀가 영원히 그의 곁에 있기를 바란다.임유진이 원하는 거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줄 것이다. 그녀를 사랑하는 것과 그녀를 곁에서 떠나보내는 것만 제외하고 말이다....강지혁은 거창한 파티가 아니라고 했지만 임유진의 눈에는 꽤 큰 규모의 파티로 보였다.S 시의 재벌 2, 3세들 뿐만 아니라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영향력 있는 인물들도 파티에 얼굴을 비추었다.임유진이 강지혁과 팔짱을 끼고 파티장에 들어섰을 때 파티장의 모든 이목이 그곳으로 쏠렸다.임유진은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전부 다 느껴졌다.일전 열렸던 파티에서 임유진의 얼굴을 이미 봤던 사람들은 그다지 놀란 얼굴이 아니었지만 임유진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녀를 보며 자기들끼리 속닥거렸다.“배고프지. 일단 뭐 좀 먹을래?”강지혁의 말에 임유진은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퇴근하고 바로 샵으로 가 드레스 입고 메이크업까지 받느라고 저녁때를 놓쳤기에 지금 상당히 배가 고팠다.“여기서 기다려. 먹을 것 좀 가져올게.”만약 사람들이 강지혁의 이 말을 들었더라면 또 한 번 놀랄 것이다. 여자를 위해 음식을 가져다주는 강지혁의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 테니까.강지혁의 약혼자였던 진애령조차 이런 대접은 받아본 적이 없다.강지혁이 떠난 후 임유진은 제자리에 서서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파티장에는 재벌 2, 3세들 뿐만이 아니라 화려하게 갖춰 입은 연예인들도
소민영은 다리를 다친 후 소민준에게서 자신이 이런 꼴은 당하게 된 건 모두 임유진 뒤에 강지혁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소씨 집안은 강지혁이 또 복수하려고 들까 봐 소민영을 해외로 보냈다.소민영은 해외에서도 줄곧 임유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임유진이 강씨 저택에서 나와 홀로 월세방에서 살며 현재는 작은 로펌에서 비서 일을 한다는 것을 듣고는 그날로 바로 귀국을 결심했다. 정황상으로 강지혁에게 차인 게 분명했으니까.원래는 귀국한 후 며칠 정도 지나고 나서 임유진의 다리도 똑같이 절게 만들어 버릴 예정이었는데 이렇게 파티장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이번엔 또 어떤 남자 물었어요? 혹시 강지혁 씨와 다시 잘 돼보겠다고 온 건 아니죠? 그런 생각을 품기 전에 자기가 어떤 주제인지 파악 좀 하죠? 강지혁 씨한테 당신은 그저 한 번 데리고 놀 정도의 여자일 뿐이에요. 강지혁 씨가 옆에 없으면 당신은 아무런 가치도 없어요. 알아들었어요?”소민영은 신랄하게 비아냥거렸다.임유진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다 마침 이쪽으로 걸어오는 소민준과 진세령을 발견했다.생각해보면 이런 파티에서 그들과 마주하게 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진세령은 이제 연예인이라는 후광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진씨 가문의 아가씨이기에 꿀릴 건 아무것도 없었다.진세령은 임유진 앞으로 다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사건 뒤집은 거 축하해. 혹시 우리 집안 원망하는 건 아니지? 그러게 그때 조금 더 강력하게 어필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무죄판결을 받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진세령은 아랫사람 대하듯 그녀를 바라보며 ‘축하’를 해주었다. 그리고 이미 모든 게 다 짜인 판에 좀 더 강력하게 어필했으면 무죄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막말을 해댔다.“진범 잡은 거 축하해. 그러고 보니 너희 집안은 후계자가 죽었는데 제대로 조사할 생각도 안 한 거야? 아니면 사건의 진범이 누구든 상관없이 그저 누명 씌울 사람이 필요했던 건가?”“너!”이에 진세
뭐가 됐든 이렇게 된 이상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은 진세령과 함께 하는 것이 소씨 가문을 위하는 일이기도 했다.“이만 가자. 회장님한테 인사드려야지.”소민준은 이 상황을 중재하려고 했다. 하지만 소민영은 도끼눈을 뜨며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오빠, 이 여자가 하는 소리를 듣고도 가자는 소리가 나와?”“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벌써 까먹었어?”소민준이 얼굴을 굳히며 호통쳤다.“그때는 강지혁 씨가 있었으니까 그런거고. 지금은 헤어졌는데 우리가 눈치 볼 이유가 뭐가 있어? 이 여자는 지금 보잘것없는 여자일 뿐이라고!”소민영은 주변 사람 전부 들으라는 듯이 일부러 더 목소리를 높였다.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소민영을 바라보았다. 그들 중에는 호기심 어린 표정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소민영은 그 동정의 시선이 임유진을 향한 것인 줄 알고 더욱더 활개를 쳤다.“지금 보면 강지혁 씨도 참 취향이 특이해. 오빠가 버린 여자한테도 관심을 주고. 뭐, 지금 이렇게 버린 걸 보면 확실히 정신을 차린 거지.”그녀는 임유진을 바라보며 한껏 비아냥거렸다.“아, 감방에서는 맨날 무릎 꿇고 거지처럼 남은 밥이나 주워 먹었다면서요? 어떻게 지금 여기서 재연해보는...”철썩.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 어마어마한 힘에 소민영은 바로 바닥에 쓰러졌다.그녀는 몇 초간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린 뒤 맞은쪽 뺨을 부여잡고 소리쳤다.“감히 날 때려?! 어떤 새끼야!”소리 한번 치고 나니 맞은 쪽 뺨이 더 화끈거리며 아파 왔다.오늘 그녀가 소민준과 진세령을 따라 파티에 참석한 건 자신의 짝으로 딱 맞는 상류층 자제들을 물색하기 위해서이다. 다리를 절뚝거린 다음부터 남자들의 대시가 뚝 하고 끊겼다.그렇다고 일반 집안에 시집을 가자니 그건 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친구들 남자친구는 하나같이 재벌 2세들이거나 톱스타들이었다.그러니 지
소민준은 다급하게 그의 옆으로 가 해명했다.“강 대표님, 오해예요. 민영이가 아직 어려서 철이 없어요.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그러고는 바닥에서 아직 멍한 얼굴로 바라보기만 하는 소민영을 향해 호통쳤다.“얼른 사과하지 않고 뭐해!”소민영은 솔직히 이 상황이 너무 억울했다. 왜 맞은 건 자신인데 자신이 도리어 사과를 해야 할까.하지만 상대는 그 강지혁이기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강지혁 앞에서 소씨 가문은 상대할 가치도 없는 작은 가문이니까.물론 한편으로는 의문도 들었다. 그녀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임유진이 강씨 저택을 나와 월세방에서 사는 건 확실한데, 그렇다는 건 강지혁이 임유진을 차버린 거나 다름없을 텐데, 대체 왜 강지혁은 지금 임유진을 감싸고 있는 거지?‘설마 임유진을 이곳으로 데려온 게 강지혁인 건가?!’소민영은 궁금한 것투성이였지만 이에 답변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녀는 천천히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불만 가득한 얼굴로 사과하려고 했다.하지만 이제 막 입을 뗐을 때 임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어차피 받아줄 생각 없으니까 사과하지 마세요.”소민영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싶어 임유진을 바라보았다.‘사과하려고 했는데 뭐가 어째?’“하긴, 억지 사과 같은 건 받지 않는 게 좋겠다, 누나.”강지혁도 옆에서 맞장구를 쳐주었다.‘누나?!’누나라는 호칭에 소민준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가 기억하기로 강지혁은 임유진과 사귄 뒤로 누나라는 호칭을 쓴 적이 없다.그런데 지금 또 누나라고...‘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소민준은 의문 가득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한편 소민영은 지금 민망해 죽을 지경이었다. 원래는 빨리 사과하고 자리를 피하려고 했는데 임유진이 사과를 받지 않겠다고 얘기하는 바람에 이대로 자리를 벗어나지도 못하게 되어 버렸다.그녀는 퉁퉁 부어오른 얼굴로 주위 사람들의 비웃음을 그대로 받았다.그때 소민영의 모습을 본 진세령이 나서서 말했다.“사과는 필요 없다고 했지만 민영이가 잘
다만 자리를 뜨기 전에 진세령은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임유진의 뒤에 강지혁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헤어졌다는 소식은 뭐지?뭐가 됐든 강지혁이 뒤에서 지키고 있는 이상 임유진을 건드리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진세령은 임유진 때문에 연예계에서 퇴출당한 것을 떠올릴 때면 이가 갈렸다. 그런데 강지혁이 옆에 있어 존대하는 건 물론이고 심기를 건드릴까 봐 굽신거려야 하니 더더욱 분통이 터졌다.‘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감옥에 있을 때 죽여버리는 거였는데!’“오빠, 강지혁이 우리를 이대로 보냈으니 별문제 없는 거겠지?”소민영은 오히려 후련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억지로 사과하지 않아도 되고 돈을 쓰지 않아도 되니 이 정도면 체면을 지킨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반면 소민준은 지금 머리가 복잡했다.그가 아는 강지혁은 절대 이 정도로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한번 전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아까 소민영이 그렇게 임유진을 모욕했음에도 강지혁은 뺨 한번과 몇 마디로 끝을 냈다. 이건 그냥 봐준 거나 다름없었다.정말... 이대로 봐준 걸까?소민준 역시 확신할 수 없었기에 소민영에게 그저 당부의 말만 했다.“아마도 그럴 거야. 하지만 앞으로는 조심해. 다시는 임유진 건드리지 마. 그때는 우리 집안에도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니까.”그러자 소민영이 입을 삐죽거리며 비아냥거렸다.“강지혁이 없으면 별것도 아닌 년이. 흥, 언젠가 강지혁에게 버림받는 날이 오면 내가 진짜 걔 다리를...!”“그만해!”소민준은 그녀의 말을 끊고 거세게 호통쳤다.“아까 그 상황을 보고도 아직 그 입 놀리고 싶어? 다른 한쪽 다리도 병신 되고 싶어서 그래?!”이에 소민영의 얼굴이 빨개지더니 입을 꾹 닫았다.진세령은 소민준을 보면서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아까 임유진을 만났을 때 소민준은 미련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었다.‘설마 임유진과의 추억에 젖기라도 한 거야? 그런 거야?’당연히 이 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