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해야 할 건 오늘 곽동현이 그녀에게 얘기해줬던 디테일한 부분을 수사 자료와 비교해 그녀의 가설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찾는 일이다.한편, 강지혁을 태운 검은색 승용차는 강씨 저택 앞에 도착했다.하지만 강지혁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고 뒷좌석 시트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놓여 있는 휴대폰에서는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영상 속에는 오늘 임유진과 곽동현 그리고 윤이가 즐겁게 노는 장면이 찍혀있긴 했지만 아까 임유진이 봤던 거와는 다른 영상이었다.그리고 이러한 동영상이 강지혁의 휴대폰에는 많고도 많았다.마치 CCTV처럼 임유진이 오늘 놀이공원에서 무엇을 했는지 전부 다 찍혀있었다.운전석에 앉아있던 고이준은 그에게 말을 걸기조차 어려웠다.차 안에는 온통 세 사람의 즐거운 웃음소리뿐이었고 그들이 즐거워하면 할수록 공기는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대표님, 도착했습니다.”한참이 지나서야 고이준이 말을 건넸다.“알아.”다행히 대답은 해주었다.동영상 속의 목소리는 강지혁에게 고통만 줄뿐일 텐데 그는 영상을 꺼버리지 않았다.이미 헤어진 사이지만,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녀가 다른 남자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그녀의 미소가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향하면 질투 때문에 고통스럽기까지 했다.그 누구보다 꼭대기 자리에 있는 남자가 지금은 이까짓 질투라는 감정도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임유진이 다른 남자를 좋아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누나’라는 핑계를 이용하면 그녀를 옆에 묶어둘 수 있지 않을까?!“혁아, 너는 나처럼 누군가를 많이 사랑하지마. 너무 많이 사랑하면 네 삶의 주도권이 그 사람에게로 넘어가게 될 거야. 그러다 그 사람이 너를 더는 사랑하지 않으면 그때는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릴 수 있어.”아버지의 목소리가 또다시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버려지는 게 싫어 먼저 버렸다. 삶의 주도권을 내어 주는 게 싫어 그녀를 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눈은 그
“그런데 뭐가 문제죠? 유진 씨 추측대로라면 가해자는 소지혜가 되는데 운전대 위에는 김은아의 지문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두 사람이 차에 오르는 당시 모습이 찍혔던 길가의 CCTV에도 전부 김은아가 운전석에 있는 것으로 나오고요.”차 변호사가 반박했다.“네, 맞아요. 하지만... 시간이 조금 이상해요.”“시간?”차 변호사가 계속해보라는 듯 눈짓했다.“네, 오늘 아침 택시를 타고 직접 시험해봤어요. 두 사람이 차에 탔던 곳부터 과속 단속 카메라에 잡혔던 당시 차량의 시속으로 달려보니 사고 발생지점까지 정확히 15분 정도 걸렸어요. 하지만 사고 당시 두 차량이 부딪치고 나서 목격자인 곽동현 씨가 바로 경찰에 신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총 23분이나 걸렸어요. 1, 2분도 아닌 8분이라는 시간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길지 않나요?”이건 차 변호사도 놓쳤던 부분이다. 차로 이동하는데 8분은 확실히 의심할 만한 시간이긴 했다.“게다가 그들의 차가 CCTV에 잡힌 건 기껏해야 10분 정도였고 그 뒤로는 CCTV가 없는 지역이었어요. 바로 이 CCTV가 없는 곳에서 두 사람이 모종의 이유로 자리를 바꿨으면요?”임유진의 말에 차 변호사가 잠시 고민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불가능한 일은 아니네요.”“제가 소지혜를 만나 보고 올게요. 얘기를 나누다 보면 새로운 단서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해당 사건은 이미 수사를 마친 상태이고 단지 임유진의 의심만으로 경찰이 재수사를 해 줄 리가 없다. 사건을 뒤집으려면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확실한 증거는 증인 신분인 소지혜에게서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차 변호사는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좋아요. 하나 명심해야 할 게 우리가 소지혜를 의심하고 있다는 건 절대 들키면 안돼요.”“네, 알겠습니다.”소지혜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인스타를 찾아보면 단번에 어딘지 알 수 있었으니까.임유진은 방송국으로 찾아와 그녀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힌 다음 사고 당시 상황에 관해 얘기
말을 하는 중간에도 기억을 되짚어보듯 목소리가 조금씩 끊겼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그녀의 눈빛이 암기했던 무언가를 기억해 내려는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는 것이다.만약 아까 했던 답변들이 전부 소지혜가 미리 준비한 것들이라면 임유진의 가설에도 더더욱 힘이 실리게 된다. 당당하다면 굳이 이런 준비를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그렇게 계속 생각을 이어나가려는데 누군가의 호통이 들려왔다.“거기 뭐야! 당장 카메라 앞에서 안 나가?”임유진이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그녀는 어느새 다른 촬영 스튜디오의 카메라 앞에 서 있었다.“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그녀는 황급히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어디 감히 엑스트라 따위가 촬영을 망쳐? 그리고 너...”감독으로 보이는 사람의 호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여자 엑스트라 아닙니다.”임유진이 고개를 돌려보니 강현수가 그녀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다.감독은 강현수의 등장에 조금 놀란 듯하더니 바로 자세를 낮췄다.“현... 현수 씨... 현수 씨가 여기는 웬일로...”“제 지인이니 금방 데리고 나갈게요. 촬영 계속하세요.”그는 말을 마친 후 임유진을 데리고 스튜디오를 나갔다.“여긴 어쩐 일이에요?”강현수가 임유진을 향해 물었다.“옆 스튜디오에서 드라마를 찍고 있는 여배우가 제가 조사하는 사건의 증인이라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요. 아까는 고마웠어요.”말을 마친 임유진은 다시 갈 길을 가려고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그녀의 손목은 곧바로 강현수에게 잡혀버리고 말았다.“강현수 씨? 저한테 무슨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으세요?”강현수는 눈앞에 있는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임유진의 얼굴은 촬영장 열기 때문인지 옅은 붉은 색을 띠고 있었고 머리는 간단하게 포니 테일로 묶어 올렸다. 그리고 그 예쁜 눈은 지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방금 임유진의 손을 잡은 건 정말 자기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아마 이대로 그녀를 보내기 싫다는 생각에 몸이 먼저 반응한 듯하다
만약 이대로 계속 대답을 하지 않으면 강현수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헤어졌으니 당연히 그러겠죠? 궁금한 거 해결됐으면 이제 손 좀 놔줄래요?”“그러면 지금은?”지금은 그 누구도 사랑하고 싶지 않고 혼자 잘살아 보고 싶은 마음뿐이다.임유진은 한숨을 내쉬더니 그를 향해 답했다.“대체 그게 왜 궁금한데요? 그때 산속에서 얘기하지 않았어요? 앞으로 우리는 모르는 사이라면서요.”강현수의 몸이 눈에 띄게 굳어버렸다.모르는 사이...고작 임유진을 모르는 사람 취급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 몰랐다.며칠 전 당구장에서 그녀가 홀로 당구대 옆에 초라하게 서 있었을 때는 도저히 시선을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임유진만 보면 간신히 부여잡았던 마음이 또다시 파도가 치는 기분이다. 심지어 얼마 전 강지혁과 헤어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대체 왜?그녀를 쟁취할 기회가 생긴 것 같아서? 우스운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천하의 강현수에게 기회라니.S 시를 통틀어서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그와 잠자리 한 번 가져보려고 애를 쓰는가. 또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그의 시선 한 번 받기 위해 노력하는가. 이런 그가 고작 여자 하나 때문에 이런 마음이 든다는 건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임유진이 아무리 매력이 넘친다고 해도 연예계에는 그녀보다 더 예쁘고 더 매력 있는 여자가 차고도 넘친다.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되뇌어봐도 그녀를 보는 순간 마음은 고삐 풀린 말처럼 통제되지 않는다.지금도 그는 임유진의 얼굴을 1초라도 더 보기 위해 시선을 떼지 않고 있다.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렸을까?“현수 씨, 유진아, 지금 둘이 뭐 하는 거야...?”황급히 달려온 배여진의 눈에 질투가 일렁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애써 표정을 바꾸고 강현수에게 얘기했다.“혹시 유진이가 현수 씨한테 실수한 거 있어요? 그런 거라면 저를 봐서라도 유진이 용서해 주세요.”자기가 뭐라도 되는듯한 그녀의 말에 임유진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스
고작 단역인 배여진은 강현수의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제작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고 감독은 그녀에게 분량을 더 늘려주기도 했다.그러니 아까까지만 해도 오늘은 정말 순조로운 하루였다.그런데... 임유진이 나타나고 나서 모든 게 달라졌다.아까 강현수가 임유진의 손을 잡았을 때 제작팀 사람들은 그 두 사람과 배여진을 보며 쉬쉬거렸다. 그리고 이제는 곁에 있어야 할 강현수도 사라져 버렸다...배여진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부러움과 질투에서 한순간에 조롱과 동정으로 변해버렸다.임유진 때문에!강현수는 배여진의 인생에서 다시 없을 행운이고 유일한 동아줄이다. 인생을 피게 해줄 남자를 고작 임유진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다음날, 임유진은 김은아를 만나러 감옥으로 향했다. 김은아는 교통사고를 일으킨 죄로 1년 형을 받아 현재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새로운 정보가 있을까 싶어 면회를 요청해 그녀와 단둘이 남겨졌다. 하지만 임유진이 원고 쪽 변호사라고 인사를 하니 엄청난 거부반응을 보이며 당장 눈앞에서 꺼지라고 소리쳤다.도저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임유진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섰다가 떠나기 전 일부러 김은아에게 그날 강아지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놀라셨겠다며 한마디를 꺼냈다.“강아지 아니고 고양이예요. 고양이가 튀어나왔어요. 삼색 고양이요!”김은아는 임유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반사적으로 외쳤다. 심지어는 어떤 무늬의 고양이인 것까지... 마치 정말 그런 고양이가 있었다고 믿음을 주려는 사람처럼.“그래요. 고양이였죠, 참. 제가 다른 사건이랑 헷갈렸네요.”임유진은 이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아챘다.‘역시 김은아는 그저 죄를 뒤집어쓴 거고 그날 운전한 사람은 소지혜야.’돌아가는 길, 임유진은 사건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정황상 결론이 난 건 맞지만 증거가 없었다.가해자가 소지혜라고 특정한 건 단지 증인들의 증언과 그녀의 추측이 가미된 것이라 이 정도로는 증거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어떻게 해야 경찰이 다시 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직 정신을 못 차린 임유진이 다리에 힘이 빠져 넘어지려는데 누군가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와락 감싸 안았다.그리고 곧바로 강지혁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어떻게 된 거야?”임유진이 고개를 돌려보니 코가 닿을 거리에 강지혁이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경호원들이 방금 그 두 남자를 제압하고 있었다.“모르겠어. 모르는 사람이야.”강지혁이 미간을 찌푸렸다.“모르는 사람이라고?”“응.”임유진이 다시 강지혁을 바라보며 물었다.“너는 왜 여기 있어?”“너 보러.”강지혁은 바닥에서 앓는 소리를 내는 남자를 보고 다시 한번 임유진을 보더니 물었다.“아까 저 남자가 네 남자친구라고 하는 것 같던데, 맞아?”낮게 깔린 목소리는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다.“말했잖아. 모르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저런 짓을 하는 사람이 내 남자친구일 리가 없잖아!”이에 강지혁이 피식 웃었다.“하긴. 쓸데없는 걸 물었네, 내가.”그는 말을 마친 후 바닥에 앉아있는 남자에게로 다가가 그대로 명치를 힘껏 밟아버렸다. 그 남자는 ‘컥’ 하는 소리와 함께 눈물이 맺혔다.“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하면 안 되지. 남자친구? 네가 저 여자랑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보지?”싸늘하기 그지없는 그의 말에 남자는 의식이 흐려지는 걸 느끼며 온 힘을 다해 외쳤다.“아, 아닙니다. 제가 헛, 헛소리한 겁니다. 살려주세요. 윽.”임유진은 문득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때도 강지혁은 지금처럼 무자비했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웠다.다만 당시의 그는 눈빛이 공허했고, 그 무엇에도 미련이 없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고작 유괴범들의 한낱 거짓말에도 신경을 쓸 정도로 눈동자에 힘이 꽉 차 있었다. 임유진의 남자친구라고 얘기한 것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인 것처럼.남자가 숨을 쉬지 못해 팔다리에 힘이 풀린 뒤에야 강지혁은 발을 치웠다.“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네, 알겠습니다.”강지혁의 명령에 경호원들은 길바닥에 뻗은 두 남
임유진은 이대로 집에 돌아가려고 했지만, 강지혁이 손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는 바람에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혁이라고 불러.”“아니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저희는...”“혁이라고 불러.”강지혁은 물러서지 않았다.“아니면 사람들 눈에 더 띄고 싶어서 그래?”임유진이 입술을 깨물고 주위를 둘러보자 이미 꽤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정말 인터넷에 동영상이 올라갈지도 모른다.“혀, 혁아...”이 두 글자를 내뱉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강지혁은 그제야 만족한 듯 예쁘게 웃었다. 그의 눈동자 속에 있던 분노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임유진은 마치 제집인 양 당당하게 들어오는 강지혁을 보며 진지하게 이사를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아무리 이사를 해도 강지혁은 또다시 이렇게 드나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대체 왜 따라 들어오는 거야?”임유진이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아까 그를 혁이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더 이상 존댓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저녁밥 차리려는 거야?”강지혁은 그녀의 손에 든 식자재를 보며 물었다.“응.”“그럼 나도 먹을 거니까 2인분 만들어.”임유진은 조금 어이없다는 얼굴로 말했다.“1인분 요리할 재료밖에 안 돼. 배고프면 집에 가서 먹어.”“나는 네가 만든 게 먹고 싶어. 재료가 부족한 거면 지금 사 오라고 할게. 얘기해 봐, 뭐 필요한데?”강지혁의 고집은 보통 사람이 꺾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임유진은 한숨을 한번 내쉬더니 오늘 도와준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셈 치고 결국은 요리를 해주기로 했다.“알았어. 만들어 줄게. 반 시간 정도 걸릴 거야.”그러고는 몸을 돌려 주방으로 가 요리하기 시작했다.강지혁은 임유진이 익숙한 듯 재료를 씻고 칼질하는 것을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요 며칠 그는 텅 비어버린 강씨 저택에서 매일 임유진의 얼굴만 떠올렸다. 그리고 저녁에는 그녀가 취침했던 방으로 들어가 그녀가 덮었던 이불을 덮고 그녀가 챙
강지혁은 두세 입 먹더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맛있다, 누나.”임유진은 하마터면 음식이 목에 걸릴 뻔했다.“난 네 누나 아니야.”“그래?”강지혁이 웃었다.“내 누나하면 좋을 텐데? 나는 널 S 시 제일 꼭대기까지 올려놓을 수 있어. 네가 원하는 거면 그게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나는 너한테 줄 수 있어.”“그럼 내가 너한테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 달라고 하면, 그것도 들어줄 거야?”그 말에 강지혁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내 얼굴을 보는 게 그렇게도 싫어?”또한, 목소리도 아까와는 다르게 차가워졌다.“그래.”임유진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강지혁의 얼굴을 계속 마주하게 되면 영원히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를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려면 그를 보는 것부터 그만해야 한다.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팽팽해졌다.임유진은 분을 못 이긴 강지혁이 자리를 박차고 떠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다시 미소를 띠며 말했다.“하지만 나는 네가 보고 싶어.”이 말에 대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 걸까...“밥 먹어. 오랜만에 너와 밥 먹는 건데 날 선 채로 있기 싫어.”강지혁은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전에는 나랑 밥 먹는 거 좋아했던 것 같은데. 내가 늦게 들어와도 항상 나 기다렸다가 먹었잖아.”임유진은 다시 밥을 먹는 그를 보며 목이 메어왔다.전에는 강지혁과 같이 밥을 먹는 게 좋았다. 그런 모습이 진정한 가족 같다는 생각을 했으니까.하지만 지금은... 같이 식사하는 이 상황이 우습게 느껴졌다.임유진도 수저를 들고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분명히 평소와 똑같은 음식인데 지금은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그 뒤로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집 안은 두 사람의 식사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밥을 다 먹은 후 임유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이제 밥도 다 먹었잖아. 그만 가줄래?”“너야말로 생각 해봤어? 내 누나가 되는 거.”강지혁이 태연하게 되물었다.“강지혁, 너는 한때 너의 연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