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그의 눈빛은 배여진 너머로 다른 한 사람을 보는 것만 같았다. 대체품이라... 도대체 누구야말로 대체품일까?한때 그 소녀의 어른이 된 모습을 수없이 상상했고 만났던 여자친구들도 어느 정도 그가 상상했던 모습과 비슷했었다.하지만 임유진을 본 순간 어릴 때 그 소녀와 너무 흡사했다.아쉽게도 그해 강현수를 구한 사람은 임유진이 아니라 현재 눈앞에 있는 배여진이다.배여진이 어릴 때부터 커온 사진도 쭉 봤는데 그녀가 8, 9살쯤 됐을 때 강현수의 기억 속 그 소녀와 확실히 비슷하긴 했다.다만 어른이 된 배여진은 강현수가 생각했던 그 소녀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오히려 임유진을 조금 닮아 있었는데 눈매와 턱이 유난히 비슷했다. 그래도 두 여자가 나란히 서 있으면 강현수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임유진과 배여진의 분위기가 아예 달랐으니.“현수 씨?”배여진의 목소리에 강현수는 정신을 다잡고 그녀를 쳐다봤다.“넌 대체품이 아니야.”“그럼... 전에는 진짜 대체품을 찾았던 거예요? 아니면 언론매체들이 아무 말이나 해대는 건가요?”배여진이 일부러 순진한 척하며 물었다.마치 정말 단순히 궁금해서 그런 것처럼 말이다.다만 강현수처럼 연예계에서 형형색색의 사람들을 지켜봐 온 사람이 어찌 그녀의 진짜 속내를 모를까?시간은 정말 모든 걸 바꿀 수 있나 보다. 강현수는 속으로 저 자신을 비웃었다. 애초에 그토록 애타게 그리워하던 사람을 드디어 찾았는데 왜 정작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실망감이 들까?정의감에 차 있던 그 소녀는, 그토록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그의 손을 잡고 단 한 번도 놓아주지 않던 그 소녀는 정말 시간이 흐르면서 돈에 매료되고 남들과 비교하지 못해 안달인 여자로 변한 걸까?강현수가 조사한 자료들, 배여진의 사진, 그리고 배여진이 그해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정확하게 말하는 것까지... 강현수는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너무 집착한 탓에, 그리워하고 기대가 큰 탓에 지금처럼 마음이 고인 물이 돼버린 걸까? 심지어 가끔은 여생에 무
어쩌면 그땐 배여진의 처지가 한없이 비참해지겠지.그녀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이미 이 길에 발을 들였으니 더 이상 고개를 돌릴 순 없다.뭐가 됐든 강현수를 꽉 잡고 있어야 한다. 그가 진실을 모르는 한 영원히 그녀의 가장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테니!...강지혁은 임유진과 함께 구치소로 왔다. 그녀는 드디어 허재명을 보았다.40대로 보이는 중년 남성은 살짝 통통한 체구에 전혀 낯선 얼굴이었다. 그녀에겐 그저 낯선 이에 불과했는데 이 사람이 그녀를 그토록 비참하게 만들었다.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3년간 감방살이를 하지 않았을 테고 그 많은 고통을 겪지도 않았을 테고 여전히 앞날이 창창한 변호사 일을 하면서 평생을 사업에 몰두할 텐데!임유진은 원래 재판 전까지 허재명을 못 볼 줄 알았다. 상대가 해외로 도주했으니까.그런데 이렇게 빨리 구치소에서 이 남자를 볼 줄이야.그는 강지혁과 임유진을 본 순간 얼굴이 두려움으로 휩싸였다.곧이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닥에 털썩 무릎 꿇고 빌었다.“임유진 씨,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임유진 씨를 해쳤어요! 저 때문에 임유진 씨 인생을 망쳤어요. 법의 처벌을 달갑게 받을 테니 제발 저를 용서해 주세요!”임유진은 제 앞에 무릎 꿇은 이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봤다.이 낯선 남자는 그해 모질게 그녀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은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작 또 이렇게 쉽게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임유진은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그의 이런 식의 사과를 거부했다.강지혁은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왜 그래?”“나...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게. 여기 있는 게 불편해.”그녀의 안색이 잔뜩 일그러졌다.“그래.”강지혁은 말하며 그녀를 데리고 면회실에서 나왔다.바깥의 나무 그늘 아래에 걸어 나오고 나서야 그녀는 심호흡을 몇 번 해댔다. 자신을 해친 사람과의 만남이 이런 장면일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오늘 허재명을 보러 와서 많은 걸 물어보려 했는
강지혁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말했다.“그 사람도 널 해치고 잘 지내지 못했을 거야. 줄곧 해외에 있었는데 만약 이번에 선뜻 돌아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잡지도 못했을 거야. 국내에서 이 사건을 재조사한다는 걸 알고 직접 귀국해서 자수했어.”물론 허재명이 선뜻 자수한 데에는 강지혁이 적잖은 수단으로 상대를 자수하게 만들었다는 요소가 들어있다. 그는 당연히 임유진에게 이 말까지 하진 않았다.“잘 지내지 못해?”임유진이 피식 웃었다.“그 사람이 잘 못 지내면 내가 용서해줘야 해? 사람을 죽여놓고 돌아와서 죽은 자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웃기지도 않아! 내가 감방에서 안 죽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그해 감방에서 죽었다면 지금 저 인간 앞에 서 있지도 못했을 거야!”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채찍처럼 강지혁의 심장을 후려쳤다. 그는 점점 숨이 가빠졌다.“그래서... 용서 안 하려고?”강지혁이 나지막이 물었다.“응. 날 모질게 해친 사람, 내게 그토록 깊은 상처를 준 사람은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영원히!”임유진은 말하면서 강지혁의 이상한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그녀의 모든 정서가 한때 겪었던 고통 속에 잠겨 있었다.“대체 무슨 낯짝으로 내게 용서를 빌어? 뻔뻔스러워서! 무릎 꿇고 사과한다고 해결될 일이면 법은 왜 있는 건데? 난 절대 용서 안 해. 내 인생을 망친 자야!”“그만해!”강지혁이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유진아, 제발 그만 얘기해. 그 사람 안 보고 싶으면 앞으로 영원히 보지 말자.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되면 판결대로 처벌받게 해!”그러니까 제발 그만 얘기하라고...그녀가 진실을 다 알고 나면 방금 했던 말이 허재명을 겨냥한 게 아니라 바로 강지혁에게 하는 말이란 것도 알게 되겠지!그해 강지혁이 그녀에게 일말의 연민의 감정이라도 있었더라면 지금 같은 결과를 안 낳았을 것이다.임유진은 그의 품에 안겨 서럽게 흐느꼈다.“혁아, 인간의 본심은 왜 그렇게 악독할까? 어떻게 이럴 수가
“지혁 씨, 저는... 이미 지혁 씨가 요구한 대로 다 했어요.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허재명이 초조하게 말했다.강지혁은 짙은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해 임유진에게 죄명을 뒤집어씌운 주요 가해자 중 한 명인 허재명을!“말하지 말아야 하는 말은 영원히 입 밖에 내지 마. 그럼 목숨은 살려둘게.”허재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마음 같아선 귀국해서 자수할 생각이 아예 없었다. 강지혁의 협박에 못 이겨 돌아왔을 뿐이다.해외로 도주했다고 해도 강지혁 같은 인물이 작심하고 찾아내려고 하면 절대 도망갈 길이 없다.“그럼 제 가족은...”허재명이 초조하게 물었다.“가족들이 네가 한 짓을 모르는 한 나도 그 사람들 안 건드려. 단!”강지혁이 문득 말을 멈추자 좀 전까지 한숨을 돌리던 허재명은 바짝 긴장했다.“그해 네가 유진이에게 어떤 고통을 안겨줬고 어떤 대가를 치르게 했으면 너도 똑같이, 아니 두 배로 갚아야 할 거야.”허재명이 황급히 해명하려 했지만 강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더는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허재명, 네 목숨을 살려둔 건 유진이에게 고마워해. 유진이는 네가 법의 처벌을 받길 원했어. 안 그랬다면 넌 지금 나랑 여기서 얘기할 기회도 없었을 거야.”허재명의 눈가에 공포가 스쳤다. 그는 상대의 말뜻을 바로 이해했다.“그리고 잘 기억해둬. 말하지 말아야 할 말은 절대 입 밖에 꺼내지 마. 안 그러면 감방살이로 끝나지 않을 거야. 가장 비참한 고통을 겪을 줄 알아!”말을 마친 강지혁은 면회실을 나섰다.허재명의 손바닥과 등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그는 잘 알고 있다. 강지혁 같은 사람이 누군가를 괴롭히려거든 천방백계의 수단으로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을. 그가 감방에 갇혀있던, 해외에 도주해있던 절대 강지혁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강지혁의 분부를 따르는 것뿐이다.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본인뿐만 아니라 그해 이 사건에 참여한 사람 모두가 언젠가는 이 사건을 위해 대가를
“어쩌다 여길 올 생각을 했어?”강지혁은 살짝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어릴 때 이 산에 자주 와서 놀았거든!”임유진이 대답했다.“어른들이 위험하다고 우리더러 놀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도 몰래 달려와서 놀았어. 그땐 이 산에 있으면 내가 마치 탐험가가 된 기분이 들었어.”그에 반면 배여진은 이 산에 와서 노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다.“애들이니까 다 그렇지 뭐.”강지혁이 대답했다.“그땐 이 산에서 꼭 무슨 비밀을 발견할 것 같았어. 어떤 보물이라던가, UFO라던가 또 혹은 타임슬립 같은 것 말이야. 나 많이 유치했지?”임유진이 말했다.어른들의 눈엔 이 언덕이 뒷산과 이어져 그리 크게 느껴지진 않겠지만 아이들 눈엔 여기가 마치 새로운 세상 같았다.“아니, 너무 귀여워.”강지혁이 말했다.“하지만 이젠 어른이 됐고 이 산도 고작 언덕일 뿐이야. 가자, 날이 곧 어두워질 거야. S 시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엄청 늦어질 걸.”임유진은 머리를 끄덕였지만 떠나기 전에 또다시 고개 돌려 그 언덕을 바라봤다.그 순간 그녀는 옆에 있는 강지혁이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고 눈가에 이상한 빛이 스쳐 지나간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진세령은 촬영장에서 나오자마자 한 무리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진세령 씨, 약혼자 소민준 씨의 전 여자친구 임유진 씨가 오늘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진세령은 대뜸 걸음을 멈추고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기자를 쳐다봤다.“뭐라고요?”기자는 재빨리 다시 한번 되물었다. 이 소식은 외부에서 아직 모른다. 기자가 법원에 지인이 있어 바로 획득한 것이다.임유진 사건의 재심은 매우 조용하게 진행되어 외부에서 전혀 모른다. 하여 이 기자에겐 단독 특보가 아닐 수 없다!기자는 흥분에 휩싸여 있었고 진세령은 낯빛이 확 돌변했다. 임유진이 정말 사건을 뒤집었다니!그녀는 기자들을 통해 허재명이란 이름을 들은 후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 무려 3년 만에 듣는 이름이었다.법원은 허재명이 죄를 뒤집어씌
“하지만 진짜 사건을 뒤집으려 해도 이렇게 빠를 순 없어요! 정상적인 절차대로 하자면...”진세령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기태가 가로챘다.“임유진 뒤에 지금 누가 있는지 잊었어?”진세령은 문득 침묵했다. 임유진의 뒤엔 강지혁이 있다!정상적인 절차라는 건 일반인에게만 해당한다.“됐고, 아무튼 그때 가서 이 사건이 기사로 터진다 해도 우리 집안에서 겉치레 말은 해야 해. 이 일로 강씨 일가에 밉보일 순 없어. 명심해!”진기태가 딸에게 당부했다.진세령이 예쁘게 다듬은 네일은 휴대폰을 짓부술 것만 같았다.애초에 그녀는 언론매체 앞에서 수없이 임유진을 짓밟았다. 언니를 죽인 원흉이라며 동네방네 떠벌리고 다녔다.그런데 지금 아빠의 말은 그녀더러 임유진에게 공개 사과라도 하라는 뜻인데, 이 수모를 진세령이 겪을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창피한 일이다.“세령아, 듣고 있니?”진기태가 엄숙하게 되물었다.“우리 집안을 진흙탕 물에 끌어들이지 마. 우리 가문은 오랫동안 이어져 나가야 해.”진세령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나서야 대답했다.“알겠어요, 아빠!”통화를 마친 후 그녀는 휴대폰을 바닥에 내던졌다.이젠 결국 분노를 꾹 참고 대중들 앞에서 지난날 임유진에게 누명을 씌운 일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 고개 숙여 반성하는 수밖에 없다....임유진은 손에 판결서를 들고 있지만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말... 사건을 뒤집은 걸까? 한때 무거운 돌덩어리처럼 그녀의 머리를 짓누르던 죄명이, 목 졸라서 숨조차 안 쉬어지던 나날이, 평생 결백을 얻지 못할 것만 같던 어두운 삶이 이렇게 빨리 해결되다니?!판결서를 손에 쥐면 대성통곡할 줄 알았다. 결백을 얻는 것이 그녀에겐 너무나도 간절하고 집요한 바람이었으니까.하지만 정작 이 판결을 손에 쥐니 피로감만 휩싸였다. 이 죄명 때문에, 보이지 않는 족쇄 때문에 그녀는 너무 오랜 시간을 얽매여 있었다.이제 드디어 족쇄가 사라지자 온몸이 탈진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왜 그래? 안 기뻐?”강지혁
강지혁은 고개 숙여 제 어깨에 기댄 그녀를 바라봤다. 만약 진실을 전부 알게 돼도... 그를 만난 것이 최고의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아마 아니겠지.임유진이 깊게 잠든 후 강지혁은 가볍게 몸을 움직이며 그녀를 안고 조심스럽게 침실로 돌아갔다. 그녀를 푹신한 침대에 내려준 후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유진아, 모든 걸 이쯤에서 끝내. 그래도 되겠지?”강지혁은 그녀 사건의 진실도 이쯤에서 끝내고 강현수에 관한 모든 과거도 이쯤에서 끝내고 싶었다.이 두 사건은 제발 더는 조사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이것이야말로 제일 바람직한 일이니까....임유진이 사건을 뒤집은 일이 기자들 덕에 인터넷을 도배했고 한순간 장안의 화젯거리가 되었다.물론 그녀는 전에 앞날이 창창한 신인 변호사였다가 억울한 죄명을 씻고 결백을 얻었을 뿐, 포커스는 바로 임유진의 전 남친 소민준과 대스타 진세령에게 맞춰졌다.이 기사를 최초 보도한 기자가 진세령을 취재하러 갔지만 그녀는 사건을 뒤집은 일을 아예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다 알고 난 후에도 그렇다 할 입장 표명이 없었다!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찾아가 디엠이나 댓글로 임유진이 소송을 뒤집은 것에 대해 무슨 생각이냐고 집요하게 캐물었다!심지어 누군가는 당시 진세령이 공개석상에서 임유진을 절대 용서치 않을 거라고, 인성 쓰레기에 역겹다는 등 말을 내뱉은 영상을 따와서 업로드하기도 했다.진세령은 공개사과문을 올리며 본인도 이제야 임유진이 누명을 썼다는 걸 알았다며 당시 했던 부당한 언론은 법의 오판 때문에 그런 거라고 책임을 떠밀었다. 임유진에게 공개로 사과할 의향도 있다고 했고 이어서 공개 사과 영상까지 하나 올렸는데 내용은 매우 간단했다. 진세령이 카메라에 대고 ‘유진아, 그때 너에게 했던 말들에 대해 사과할게.’라는 이 한마디만 남길 뿐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다.다들 그녀의 사과가 지나치게 간단한 거 아니냐며 말했고 누군가는 또 이런 분석까지 했다. 임유진이 억울하게 당한 거라면 진세령은
“내가 남이야? 임유진, 우린 평생 친구라고 했지! 앞으로 무슨 일 생기면 절대 나한테 숨기지 마. 내 친구에 관한 일을 뉴스로 알고 싶진 않단 말이야.”한지영이 말했다.“알았어.”임유진은 코끝이 찡했다.한지영은 늘 이랬다. 누군가를 진짜 친구로 여기면 온 마음을 다해 상대에게 잘해준다.다음날 둘은 만났고 한지영은 그제야 사건의 상세 내용을 알았다. 주모자 허재명에 관한 일까지 낱낱이 들었다.“진짜 생각지도 못했어. 본인이 연루될까 봐 이렇게 사람을 해친 거야?”한지영이 감개무량하게 말했다.“그래도 이젠 결백을 찾았으니 참 다행이야. 앞으로 어떻게 할 셈이야? 계획은 있어?”“아직.”임유진이 대답했다. 앞날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자꾸만 머뭇거리게 된다.“계속 변호사 할 생각이야?”한지영의 물음에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4년이나 손을 놓았는데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이젠 그렇게 숙련되게 외웠던 법조문도 기억이 가물가물해.”“너 변호사 안 하기엔 너무 아까워. 어차피 지금 빨리 직장을 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 일단 법조문이나 사례부터 다시 숙지해. 임유진, 할 수 있다! 난 널 믿어.”한지영이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절친의 학습 능력은 늘 그녀를 탄복게 했다.임유진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했다.“하긴, 일단 공부를 시작해야지. 될지 안 될지는 시도해봐야 아는 거잖아.”간신히 되찾은 변호사 자격증이니 배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그럼 이따가 나랑 함께 서점 가자. 최신 법률 서적부터 사야겠어.”임유진이 말했다.“오케이!”한지영은 친구가 다시 일어서는 모습에 본인이 더 기뻐했다. 임유진이 다시 법학을 공부하는 건 두 손 들어 찬성하는 일이다.서점에 도착한 후 임유진은 법률 전문 서적 코너로 가서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오는 서점인지.감방에 갇히기 전까지 그녀는 이곳의 단골손님이라 한 달에 한두 번은 꼭꼭 다녔다. 법에 관한 책뿐만 아니라 일부 잡지도 즐겨 샀었다.요즘은 인터넷 독서가 일상화되었지만 그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