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 깨물지 마. 립스틱 다 지워지겠어."강지혁은 나지막이 속삭이더니 천천히 그녀에게로 몸을 기울였다."무슨 생각 했는지 내가 맞춰볼까? 누나 방금 우리 스킨십했던 거 생각했지."그러자 임유진은 놀란 듯 눈을 커다랗게 떴고 그 모습을 본 강지혁은 바로 자신이 알아맞혔다는 것을 눈치챘다."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을 떠올렸는데?"그의 목소리는 마치 여름밤 바람처럼 가볍게 그녀의 마음을 간지럽혔다."혹시 그날 밤?"뜨끔.임유진은 얼굴이 마치 불타오르는 것 같이 뜨겁게 느껴졌고 부끄러운 나머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강지혁의 손이 그녀의 턱을 잡고 있는 바람에 고개를 돌릴 수조차 없었다.얼굴이 빨갛게 물든 그녀의 모습에서 강지혁은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또한, 촉촉한 눈동자로 끊임없이 그의 눈을 피하는 걸 보며 소유욕이 들끓었다."누나 지금 부끄러워 하는 거야? 뭐가 부끄러워?"강지혁의 손가락이 천천히 그녀의 볼을 쓸어내렸다."연인이 사랑을 확인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잖아."그의 숨결, 귓가에 감도는 잔잔한 목소리 이 모든 것이 마치 마력처럼 임유진을 끌어당기고 있었다."누나는 지금 행복해?"갑자기 날아든 그의 질문에 임유진은 흠칫했다. 눈을 마주쳐 보니 강지혁은 지금 진지하게 묻고 있었다. 아니, 진지하게 그녀의 대답이 듣고 싶은 것이다.임유진은 대답하기를 망설였지만, 그의 눈과 마주한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고 말았다."응. 행복해."그녀의 대답에 강지혁은 예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나도 행복해. 누나는 앞으로도 내 생각 많이 할 거야, 그렇지?"강지혁이 나지막이 물었다.임유진은 그의 웃음에 취한 것처럼 그저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앞으로도 그녀는 강지혁의 생각을 많이 할 거다. 그게 아니었으면 이 순간 그에게 푹 빠진 듯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을 테니까.게다가 임유진은 그의 웃음이 더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의 미소를 보면 그녀는 공허했던
차량은 어느새 연회장 앞에 도착했고 강지혁은 임유진의 손을 잡고 연회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무수히 많은 눈길이 임유진에게로 쏠렸다. 강지혁은 늘 화제의 중심이고 게다가 3년이나 공석이던 그의 옆자리를 차지한 여자가 나타났으니 그들의 관심이 쏠리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강지혁은 전 약혼녀였던 진애령과 이러한 연회에 참석했을 때 한 번도 그녀의 손을 잡지 않았지만, 오늘은 다르다. 강지혁은 연회장에 입장해서부터 줄곧 임유진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오늘 연회에는 S 시의 부잣집 아가씨들이 대거 참석했는데 그녀들은 모두 마음 한구석에 강지혁이라는 남자를 손에 넣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강지혁은 S 시에서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기로 유명하고 진애령이 죽은 다음에도 한 번도 여자와 스캔들이 난 적이 없었기에 남자친구로서도 남편으로서도 정말 최적의 인물이었다.하지만 그 누구도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다. 예전에 한 여성이 강지혁을 꼬시려고 했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다는 사실이 부잣집 아가씨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퍼졌기 때문이다.그래서 다들 강지혁은 이번에도 혼자 왔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게 웬걸, 그의 옆에 어떤 여자가 생겨버린 것이다.그 여자의 정체가 뭔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그녀의 차림새로부터 보통 여자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몇몇은 그녀가 입고 있는 드레스가 유명 브랜드 한정판 드레스에 VVIP 고객들에게만 구매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라는 걸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그래서 그들은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했다.임유진은 강지혁의 옆에 꼭 붙어 그가 유명 인사들과 얘기 나누는 것을 곁에서 바라봤다. 강지혁은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꽤 간단하게 그녀를 소개했다. ‘이쪽은 제 여자친구, 임유진입니다.’라고 말이다.지극히 간단한 한마디였지만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는 충분했다.강지혁은 지금 공개적으로 임유진이 어떤 사람인지를 여기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각인시킨 것이다.바로 그때, 연회장 입구 쪽에서 사람들의 웅
강현수 같은 사람은 진정으로 누구를 좋아해 본 적이 있을까?임유진은 머릿속에 이러한 질문이 떠오르는 동시에 자기도 모르게 강현수의 은팔찌가 생각났다.그 은팔찌 때문에 임유진은 강현수라는 사람을 알게 됐다.누가 봐도 어린아이용인 팔찌를 강현수는 정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은팔찌에 얽힌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지금 누구 보는 거야?"그때 낮게 깔린 목소리가 임유진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깜짝 놀란 임유진이 고개를 다시 홱 돌리자 얼굴 바로 앞에 강지혁의 얼굴이 보였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도 가까워 하마터면 입맞춤할뻔했다.강지혁은 예쁜 입술로 나지막이 속삭였다."누나가 누구를 보던지 누나 마음속에는 나 하나뿐이어야 해."그는 말은 임유진에게 하면서 시선은 그녀 너머로 보이는 한 남자에게 고정했다.강현수와 강지혁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이다. 그런 두 사람이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강지혁은 현재 임유진의 마음을 얻은 상태이고 강현수는 아직도 자신이 줄곧 찾고 있는 여자가 임유진이라는 걸 모르고 있다.물론 강지혁은 영원히 강현수가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게 할 예정이다.강현수는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듯한 누군가의 시선에 고개를 돌렸고 곧 두 사람은 허공에서 눈이 마주쳤다.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강현수는 임유라를 데리고 강지혁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그러다 임유진을 발견한 그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늘의 임유진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예쁘게 땋아 올린 머리 스타일은 우아하면서도 발랄하기까지 했고 거기에 단아한 메이크업까지 더해져 남자들의 시선을 단번에 끌어당겼다.또한, 촉촉한 눈동자는 화려한 조명 아래 보석처럼 빛이 났고 거기에는 의연함까지 묻어 있었다. 이에 강현수는 마치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여자아이의 두 눈을 다시 마주 보는 듯했다.어렸을 때의 그 여자아이도 꼭 이런 눈을 한 채 그에게 ‘걱정하지마. 내가 꼭 너를
임유라는 이런 느낌을 오랜만에 받아봤다. 임유진이 강지혁과 함께 있을 때도 그녀는 자신이 임유진보다 못하다는 느낌은 받은 적이 없었다. 자신은 강현수가 인정한 여자친구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자기도 모르게 임유진을 자꾸 의식하게 되고 자신이 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강현수는 넋을 놓고 바라보다 임유라의 부름에 곧장 정신을 차리고는 임유진에게 인사를 건넸다."또 만났네요.""네, 안녕하세요."임유진도 그를 향해 짧게 인사했다.강현수는 이번에 시선을 돌려 강지혁을 바라봤다."네가 이번 연회에 참가할 줄은 몰랐네.""여자친구 데리고 눈도장 찍으러 왔어. 앞으로 자주 봐야 할 테니까."강지혁이 담담하게 내뱉은 말에 임유라는 속으로 상당히 놀랐다.‘임유진을 자주 봐야 한다고? 설마... 강지혁이 지금 임유진과 결혼할 수도 있다는 소리야?’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임유라는 또 질투심이 피어올랐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고 웃는 얼굴로 임유진에게 말을 걸었다."언니, 오랜만이야. 그러고 보니 언니한테는 사과부터 해야겠네. 무덤 옮긴 일 말이야, 엄마와 아빠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전화로 얘기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탓에 뭔가 오해가 생긴 것 같아. 아빠도 요즘 언니 보고 싶다고 하셔. 그러니까 언니, 시간 되면 아빠 보러 집으로 좀 와."임유라는 마치 이 모든 것이 정말 오해였던 것처럼 얘기했다.그에 임유진은 피식 웃더니 곧 웃음을 지우고 말했다."사과는 됐어. 어차피 그 일은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잖아. 그런데 네가 왜 사과를 해."감정이 하나도 섞여 있지 않은 듯한 말투에 임유라는 말문이 막힌 채 그저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강현수는 임유라를 힐끗 바라봤다. 그는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몰랐지만, 썩 좋은 얘기는 아니라는 건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피곤하지? 저쪽으로 가서 좀 쉴까?"강지혁이 임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래."임유진은 예쁘게 웃으며 대답했다.그 웃음에 강현수는 갑자기 심장이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는
심지어 강현수는 지금 당장 손을 풀지 않으면 강지혁이 자신의 손을 그대로 끊어버릴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여자 하나 때문에 강지혁과 척을 질 필요는 없다. 어차피 임유진은 그가 찾고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이건 이미 전부터 납득한 일 아니었나?강현수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더니 임유진을 붙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풀었다."미안해요. 내가 실례한 것 같네요. 유진 씨가 제가 아는 고인과 너무 닮아서 저도 모르게 그만."강현수가 예의를 갖춰 사과했다."내 여자친구는 네가 아는 고인이 아니니까 앞으로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강지혁은 차갑게 경고하더니 임유진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떴다.강현수는 멀어져 가는 임유진의 뒷모습을 보며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한편 임유라는 지금 손으로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아니라고? 아니, 아마 임유진이 맞을 거야.’만약 강현수가 방금 말한 고인이 화실에 걸려 있는 그림 속 여자를 지칭하는 거라면 임유진과 그 어린 소녀가 동일인물이라고 임유라는 거의 확신할 수 있다.임유진이 입었던 치마와 여자아이의 얼굴 그리고 강현수가 아끼는 은팔찌까지, 이 모든 것이 다 임유진을 가리키고 있다.하지만 임유라는 이 비밀은 무덤까지 묻어줄 생각이다."현수 씨, 아까 저한테 프로듀서분들 소개해 준다고 하지 않았어요?"임유라는 태연한 표정으로 강현수에게 말을 걸었다.강현수는 임유라를 힐끗 보더니 아련한 눈빛을 거두고 곧 다시 원래의 그의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옅게 웃었다."저쪽으로 가죠."그러고는 임유라를 데리고 프로듀서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임유라는 강현수의 팔짱을 끼고 있는 지금도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강현수의 여자친구는 자신이고 그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도 자신인데 마치 어떻게 해도 넘어가지 못하는 선이 존재하듯 그와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다.‘기필코 강현수를 내 남자로 만들어서 누구보다 잘 살 거야!’...강지혁은 임유진을 데리고 조용한 곳으로 갔다."피곤할 텐데 여기 앉아."그러
임유진은 강지혁이 직접 친구라고 언급하는 걸 오랜만에 듣는 것 같았다. 아마 엄청 사이가 돈독한 친구인 듯하다."안녕하세요. 저는 임유진이에요."임유진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자기소개를 했다."안녕하세요. 지혁의 여자친구가 누군지 늘 궁금했는데 이제야 보게 되네요."이한도 따라 웃었다.강지혁은 전에 임유진 때문에 강문철도 내팽개친 채 한 무리의 경찰을 끌고 S 시 옆 동네로 간 적이 있었다. 그런 사건도 있었는데 어떻게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그리고 이한은 오늘 드디어 임유진을 보게 된 것이다. 그는 임유진이 절세미인은 아니지만, 사람을 매우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강지혁도 임유진 옆에서는 평소보다 많이 풀어진 듯 보였다.이한은 그 순간, 강지혁이 왜 임유진을 좋아하게 됐는지 알 것도 같았다. 서로 속고 속이는 환경 속에서 가식은 늘 진심보다 많았고 높은 위치에 있다고는 하나 자칫 잘못하면 금방 다시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것이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그러니 다들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마음속으로는 항상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반면 임유진은 마치 큰 변화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옆에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아마 더 귀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참, 아까 여기 오기 전에 저쪽에서 올해 IT 업계 전망에 관해 얘기 나누고 있던데 너도 갈래?"이한이 강지혁에게 물었다.그리고 곧이어 나온 토론자들 이름에 임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한이 얘기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IT 업계 거물들이다.임유진은 지금 평소라면 접촉할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과 같은 연회장에 있게 된 것이다.강지혁은 조금 흥미 있는 얼굴을 하더니 곧바로 고개를 돌려 임유진에게 물었다."같이 갈래?""아니. 나는 가도 못 알아들을 것 같아. 여기서 쉬고 있을 테니까 갔다 와."임유진의 말에 강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혹시 배가 고프면...""내가 알아서 먹을게. 걱정하지 마."임유진은 그를 향해
진지해 보이는 친구의 모습에 이한은 침을 꼴깍 삼켰다. 강지혁의 말로부터 큰 이변이 없는 한 임유진이 미래 강씨 일가 안주인이 되는 건 틀림없는 듯 보였다."임유진 씨, 운이 좋네."이한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곧바로 강지혁의 한마디가 들려왔다."운이 좋은 건 나야."아니, 그녀의 불행이 그의 행운이 됐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만약 그 교통사고가 없었더라면 임유진은 아마 지금쯤 소민준과 결혼해 아이까지 낳고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면 이런 방식으로 강지혁의 눈에 띌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와 연인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고.강지혁은 지금 임유진의 곁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이한은 더 이상 놀랄 건 없다고 생각했지만, 강지혁의 행복해 보이는 미소에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임유진은 웨이터로부터 샴페인 한잔을 받았는데 거의 무알코올 느낌의 과일 향이 나는 술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주량이 세지 않아 금방 취할 수도 있었기에 많이 마시지는 못했다.샴페인을 홀짝이며 주위를 둘러보니 유명인사들이 화려한 공간 속에서 서로 술잔을 부딪치며 하하 호호 웃고 있었다. 그녀도 변호사였을 당시 인맥을 넓히기 위해 상류 사회 사람들과 접촉하며 같이 웃고 떠들었었다.그리고 그때 그녀는 매번 연회에 참가할 때마다 정성껏 자신을 단장하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때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였다. 소민준에게 부끄럽지 않은 여자친구가 되고 싶었으니까.지금 돌이켜보면 마치 딴 세상 얘기 같기도 하다.임유진이 한창 과거를 회상하고 있을 때, 여자 몇 명이 그녀 쪽으로 걸어왔고 그 중 그 무리의 실세로 보이는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그쪽이 오늘 강지혁 씨 파트너로 온 사람이죠?"임유진이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세 명의 여자는 평소 잡지나 뉴스에 자주 이름을 올리는 셀럽들이었고 임유진도 그녀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잡지나 뉴스를 통해서가 아닌 소민준의 여자친구였을 당시 소민준 때문에 특별히 S 시 상류 인사들 자료를 미리
"임유진 씨가 강지혁 씨와 어떤 사이인지 다들 궁금해하는 데 괜찮다면 얘기 좀 해줄래요?"육지혜의 말에 임유진은 옅게 웃었다."개인적인 일이라서 이런 곳에서 얘기하는 좀 그렇네요."그 말에 세 여자는 갑자기 얼굴색을 바꾸더니 편의점 체인 회장 딸인 황인아가 입을 열었다."말을 못 하는 건 아니고요?"임유진은 얼굴에 있는 웃음을 지워버렸다.역시 이런 상황은 피하고 싶어도 피해지지가 않는다.한편 호텔 사장 외손녀인 조유나는 임유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뭔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황인아가 말을 이었다."혹시 떳떳하지 못한 수단으로 강지혁 씨 옆에 달라붙어 있는 건 아니에요?""죄송하지만 볼일이 있어서 이만 실례해야 할 것 같네요."임유진은 황인아의 질문은 가볍게 무시한 채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시비를 걸러 온 게 분명한 세 사람을 곧이곧대로 상대할 필요는 없다.하지만 그녀들은 순순히 임유진을 보내줄 생각이 없었고 황인아는 아예 그녀의 앞을 가로 막아섰다."내가 한 질문에 대답은 하고 가야죠. 떳떳하면 얘기하면 그만이잖아요."임유진은 눈앞에 있는 여자를 보며 뭐라도 얘기하지 않는 한, 이 대화가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피하지 않기로 했다."황인아 씨죠? 요즘 그쪽 집안 탈세 의혹 때문에 세무조사 받고 있지 않나요? 저도 궁금한데 황인아 씨부터 먼저 말해보는 게 어때요? 정말 탈세 한 거예요? 만약 오해라면 왜 그런 오해가 생겼죠? 그리고 지금 세무조사 내려온 국세청 직원, 황인아 씨 집안과 연관 있는 사람이죠? 어디 말해보세요. 떳떳하다면 얘기하면 그만이잖아요, 그렇죠?"마치 기자처럼 쏘아대는 임유진의 말에 황인아는 얼굴이 어두워졌다. 임유진의 말처럼 그녀의 집안은 현재 탈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 무슨 수를 써서든 이 사태를 빨리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오늘 그녀가 연회에 참가한 이유 중에는 육지혜와 조유나 두 집안에 도움을 요청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두 사람의 집안은 국세청 쪽으로 인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