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임유라가 강현수에게 키스하려 할 때도 현수는 거절했다.이것 때문에 유라는 불안했다. 유라는 현수의 여자친구를 바꾸는 속도를 알고 있으며 사람들이 현수가 여자를 짧게 만나고 몇 개월 사이에 질려한다고 했다.유라는 어떻게든 현수의 마음을 잡아야 하고 자신을 질리게 해서는 안 된다. 유라는 고작 몇 개월 동안만 여자친구가 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이런 남자 곁에 있을수록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었다.이렇게 좋은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누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을까?하물며…… 유라는 자신의 옆에 있는 현수의 준수한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아주 쉽게 여자를 홀릴 수 있으며 유라도 쉽게 다른 남자를 홀릴 수 있다.유라가 현수와 친해지고 싶은 건 현수가 유라에게 준 부귀영화뿐만 아니라 진정 현수를 원하기 때문이다.현수의 날카로운 눈빛이 유라를 바라볼 때 유라는 주체할 수 없이 설렜다.하여 유라는 어떻게든 현수를 잡아야 한다.“오늘 친구를 소개해 줄게.”유라의 귓가에 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래.”유라는 점잖게 대답했다.현수의 친구는 당연히 부자다!다만 유라가 현수가 말한 친구를 보았을 때 순간 멍을 때렸다.이 남자가 현수의 친구란 말인가? 하지만 왜 임유진의 월세방에서 본 그 남자랑 닮은 것일까?비록 옷차림도 다르고 월세방 남자는 두꺼운 앞머리가 있지만, 눈앞에 있는 강지혁은 앞머리를 반듯하게 빗고 반들반들한 이마를 드러냈다.설마 같은 사람이 아닐까?유라가 생각에 잠겼을 때 현수가 말했다.“유라야, 강지혁이야. S시에서 누구든 건드려도 되는데 강지혁은 건드리지 마. 강지혁을 건드렸다가는 나도 널 못 지켜줘.”현수는 아주 평범한 일을 말하는 것처럼 덤덤한 어투였지만 유라는 번개를 맞은 것 같았다.그동안 두 사람이 지내면서 현수는 항상 유라를 지켜줄 수 있다고 했지만, 처음으로 지켜주지 못한다고 했다.그리고 눈앞에 있는 남자가 강지혁이란 말인가? S시 사람들은 모두 알지만 인터넷에서는 정면 사진도 찾을 수 없는 강지
임유라의 등골이 싸늘했다. 이 사람은…… 설마 진짜……. “왜, 지혁아, 아는 사이야?”옆에 있던 이한은 이상했다. 유라는 삼류스타일 뿐이니 두 사람은 만날 기회가 없을 것이다.“응, 전에 한 번 봤어.”강지혁은 담담하게 말했다.유라는 눈을 부릅뜨고 심장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뻔했다. 정말 강지혁이었다…… 임유진과 동거하는 그 남자? 당시 유라의 가족들은 유진이 감옥에서 알게 된 남자라고 생각했다.누가 알았을까, 그 사람이 한 손으로 S시를 가릴 수 있는 강지혁이라는 걸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유라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왜 지혁이 유진과 함께 그 초라한 월세방에서 동거한 것일까?강현수는 기이한 눈빛으로 지혁과 유라를 바라보더니 물었다.“유라야, 지혁이와 아는 사이라고 왜 얘기 안 했어?”유라는 흠칫하더니 머쓱하게 웃었다.“난 그때 강지혁 씨가 누구인지도 몰랐어.”유라는 말을 하더니 지혁에게 사과했다.“강지혁 씨, 그때는 조금의 오해가 있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하지만 지혁은 유라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현수에게 말했다.“앞으로 네 여자친구 내 눈앞에 끌어들이지 마. 저 여자 보기 싫어.”유라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현수는 순간 생각에 잠긴 듯한 눈빛을 하였다.현수와 유라가 떠난 후 이한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지혁에게 다가가 물었다.“왜, 현수 여자친구가 네 심기를 건드린 적이 있어?”지혁은 손에 든 채 마시지 않은 남은 술을 단숨에 다 마셨다.유라를 보자 오히려 그 여자가 떠올랐다. 분명 자신의 곁에 있기만 하면 더 좋은 생활을 할 수 있고 더럽고 힘든 일도 할 필요가 없고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왜 굳이 거절하는 것일까?심지어…… 자신의 스킨십이 역겨운 것 같았다.‘단지 여자 하나일 뿐이니 신경 쓸 필요도 없어!’지혁은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자기에게 이렇게 말했지만, 마음속의 그 답답함은 오히려 점점 더 강렬해지고 있다.한편 유라는 불안한
심지어 임유라의 입술을 만진 후에도 강현수는 마치 유라에게 더러운 것이 있는 것처럼 깨끗한 수건으로 자신의 손을 닦았다.유라는 이 모순된 행동을 아주 이상해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사과할 필요 없어. 넌 내 여자친구야. 넌 나만 신경 쓰면 돼. 다른 건 신경 쓸 필요 없어.”현수가 말했다.현수의 동작은 가볍고 부드러워 마치 보물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지만, 현수의 목소리는 또 이렇게 차갑고 낯설었다.가끔 유라는 정말 현수를 이해할 수 없다. 현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다.“그, 그래…… 알았어.”유라는 더듬거리며 말했다.강현수는 손을 내리고 평소와 같이 손수건으로 자신의 손을 닦았다.유라는 입술을 깨물고 언젠가 현수를 완전히 가질 것이라고 다짐했다. 유라는 현수의 마지막 여자친구가 될 것이고 강씨 가문에 시집갈 것이다!그 시각 유라는 마음속으로 맹세했다!…….구정은 빠르게 지나갔다. 휴가 기간이 지나자 임유진은 환경위생과에 출근했다. 적지 않은 동료들이 병원 앞에서 유진에게 계란을 던진 기사를 보고는 말했다.“임유진, 진세령 팬들이 환경위생과까지 와서 계란을 던지지는 않겠지? 환경위생과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마.”“맞아, 우리 부모님이 내가 감옥살이 한 사람과 동료라는 걸 알고 날 얼마나 걱정하는지 몰라!”“진세령의 팬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임유진이 그때 진세령의 언니를 죽였잖아. 진세령은 언니랑 아주 사이가 좋아서 팬들도 마음 아파했다니까. 앞으로 어떤 과격한 행위가 있을지 몰라. 만약 우리가 다친다면 정말 재수 없는 일이야.”환경위생과에는 빈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유진은 묵묵히 참고 웃어넘겼다. 이 일은 유진에게 매우 중요하다. 유진은 이 일에 의지하여 살아야 한다. 만약 정말 해고된다면 아마도 얼마 동안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그때 서미옥이 유진에게 말했다.“신경 쓰지 마. 저 사람들은 네가 퇴사하기를 기다리는 거야. 지금 당장 일자리 찾기도 힘드니 직장을 바꾸더라도 저런
임유진은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했다. 많은 사람이 환경미화원을 무시하고 심지어 본인의 부주의로 환경미화원과 부딪쳤으면서 책임을 환경미화원에게 씌우기도 했다.“괜찮아요. 미옥 언니, 그냥 사소한 일이에요.”유진은 말하더니 다시 서미옥과 도로를 쓸었다. 일을 마치고 유진이 작업복을 갈아입을 때 우연히 작업복 주머니에 작은 은팔찌가 있는 걸 발견했다.이 팔찌는 언제 유진의 주머니에 들어간 것일까? 유진은 의심스럽게 생각했지만 야간근무인 관계로 환경위생과에 아무런 사람이 없어 일단 팔찌를 잘 보관하여 내일 다시 분실물등록을 하려고 했다.월세방으로 돌아오니 월세방은 아주 어두컴컴하고 고요했다.예전에 유진이 야간근무를 하고 돌아왔을 때는 밝은 방에 혁이가 유진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유진은 불을 켜고 썰렁한 방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저녁에 침대에 누워있을 때 유진은 팔찌를 만져보았다. 아이의 은팔찌 같았고 디자인이 아주 흔했다. 유진은 어릴 때 자신도 비슷한 팔찌가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이 팔찌는 도대체 어떻게 유진의 작업복 주머니로 들어간 것일까? 순간 유진의 머릿속에 오늘 부딪친 남자가 떠올랐다. 설마 그 남자가 실수로 떨어뜨린 건가?그러나 이 팔찌는 딱히 비싸지 않아 보여 그 남자가 다시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 순간 유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내일 일단 환경위생과에 가서 분실물 등록부터 하고 보면 된다.그리고 한편, 유진과 부딪친 그 남자는 호텔 룸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고문을 당하고 있다.남자는 지금 아주 후회하고 있다. 진작 알았더라면 그의 물건을 훔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옷차림으로 보아 부자 같아 보여 운이 좋아 대어를 낚았다고 생각했지만 아주 잔인한 사람을 건드린 것이다.“형님, 진짜 팔찌 어딨는지 몰라요! 저는…… 그 팔찌를 제 주머니에 넣었지만 저도 방금 형님이 제 주머니를 뒤졌을 때 왜 팔찌가 없는지 몰라요! 맹세해요!”남자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강현수에게 무릎을 꿇고 소리
임유진은 침대 옆 테이블에 있는 핸드폰을 보고 새벽 3시라 몇 시간 더 잘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눈을 감으려 할 때 갑자기 흠칫 놀라 벌떡 일어나더니 믿기 힘들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한 남자가 유진의 월세방의 작은 밥상 옆에 앉아 유진이 오늘 발견한 은팔찌를 손에 쥐고 있었다.어두컴컴한 불빛 아래 남자는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인다. 마치 제일 좋은 붓으로 그린 듯한 짙은 눈썹, 오뚝한 코, 차갑지만 얇은 입술,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남자의 눈동자였다.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 사람을 바라볼 때 아주 차가운 것 같았다.비록 지금 이 남자가 유진을 쳐다보고 있지만 남자는 가짜인 것 같았다.이 남자, 정말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지금 유진이 꿈을 꾸고 있는 걸까?“깼어요?”남자의 목소리가 방 안의 조용함을 깨뜨렸다.유진은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꿈이 아니라 진짜다.“당, 당신은 누구예요? 왜 이 밤에 내 집에 있는 거예요?”유진은 억지로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몰래 핸드폰을 쥐려고 했다.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주의하지 않은 틈을 타서 경찰에 신고할 수 있을 것이다.다만 유진이 핸드폰을 만지기도 전에 상대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만약 당신이 핸드폰으로 경찰에 신고하려 한다면 그럴 필요 없어요. 당신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 생각이라면 당신이 잠들 때 했어요.”유진은 몸이 굳었다. 이 남자는 유진의 의도를 완전히 알아차렸다.“당신은 도대체…….”“팔찌, 내 거예요.”강현수는 말을 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유진이 앉아있는 침대로 향했다.“하지만 오늘 도둑맞았어요.”“제가 훔친 게 아니에요. 그 팔찌는 내 작업복 주머니에서 발견한 거예요.”유진이 다급히 변명했다.“당신이 아닌 걸 알아요.”현수가 말했다.“당신이라면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없을 거예요.”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긴장한 채 자신이 덮고 있던 이불을 꽉 잡고 있다.눈앞의 남자는 온몸으로 차갑고 위험한 기운을 뿜고 있다. 특히 이 남자는 도대체 언제 월세방으
잠깐…… 임유진은 흠칫 놀라더니 의아하게 강현수를 바라보았다. 현수는…… 팔찌가 이곳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유진마저 모두 야간근무를 마치고 퇴근할 때 작업복 주머니에서 발견했다.하지만 이 남자는 팔찌가 유진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그리고 유진이 어디에 사는지조차 알며 소리소문없이 들어왔다……. 이런 걸 할 수 있는 남자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당신이 팔찌를 주웠으니 어떤 보상을 원해요? 과분하지 않으면 뭐든 들어줄 수 있어요.”강현수가 머리를 숙인 채 유진을 내려보았다.애초에 팔찌만 갖고 가려고 했지만, 유진의 자는 모습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이곳에 남았다.아마도 유진이 눈을 떴을 때 어떤 모습일지 보고 싶었을 것이다.그리고 지금, 유진이 눈을 떴다. 예쁜 살구 모양의 눈동자에 촘촘한 속눈썹이 아주 매혹적이다.하지만 그런 두 눈이 눈을 뜨자 나이에 맞지 않는 무기력한 기운이 있었다.마치 너무 많은 고생을 하여 이미 생기를 잃은 듯 운명을 받아들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유진은 눈앞의 남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남자에게 강지혁과 비슷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금의 유진은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다.“그 팔찌는 우연히 제 작업복에 들어간 거예요. 그러니 제가 주운 것도 아니죠. 보상할 필요 없어요.”유진이 말했다.현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마치 이렇게 좁은 방에 살면서 환경미화원 일을 하는 여자가 자신이 주려는 보상을 곧바로 거절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 같다.“내가 주는 보상이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해도 싫어요?”현수가 말했다.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지혁이 유진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두 사람은 너무 닮았다. 모두 다른 사람의 인생을 쉽게 바꿀 수 있는 것 같다.그러나 유진은 다른 사람으로 인해 자기의 인생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유진은 자기의 인생을 스스로 바꾸고 싶다.“필요 없어요. 원래 주인에게 팔찌를 찾아준 거에 저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어요.”유진이 말했다.현수는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몸을 살짝 기
강현수, 임유진이 들어본 이름이다.연예계의 거물이다. 강씨 가문은 연예계의 크고 작은 사업을 장악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현수의 말 한마디에 톱스타가 될 수 있고 말 한마디에 다시는 연예계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고 했다.그만큼 연예계에서 현수의 영향이 컸다.그 당시 유진이 소민준과 교제할 때도 민준이 현수를 언급한 적이 있다. 비록 소씨 가문도 S시에서 재벌 가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강씨 가문과는 비교도 안 된다.자연히 민준은 현수와 엮일 자격이 없다.또 한 가지 더 들은 것이 있다. 환경위생과에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동료들이 현수가 비록 성격이 차가워 어울리기 힘들지만 여자친구는 수시로 바꾼다고 했다.그리고 사귀던 여자친구마다 톱스타로 키웠고 헤어질 때마다 아주 무정하다.비록 연예계의 거물이지만 여태까지 양다리를 걸친 적이 없고 한 여자와 사귀면 그 기간이 아무리 짧아도 절대로 양다리를 걸치지 않는다.그래서 그것 때문에 현수에게 악플 다는 네티즌들이 없기도 하다.성인끼리 원하는 걸 가지는 것이 정상이다. 심지어 현수와 사귀었던 여자들은 모두 굉장한 이익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그래서 많은 여자가 오히려 현수와 교제하기를 꿈꾸고 있다. 많은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남자에게 보물처럼 총애를 받을 수 있다. 시간이 짧더라도 적어도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지낼 수 있다!유진은 이 밤에 자기의 월세방에 침입한 사람이 현수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현수가 볼품없는 은팔찌를 찾기 위해서 이곳에 올 줄이야!마치 이 은팔찌가 현수에게 매우 중요한 것 같았다.“휴, 강 도련님이 또 김선아와 헤어졌대요. 이번에는 이름도 없는 연예인이랑 사귄대요.”유진이 도구를 반납할 때 환경위생과의 동료들이 마침 현수에 관해 얘기를 하고 있었다.“어떤 연예인이기에 김선아를 꺾은 거야?”“아직 기사에 나지 않았어요. 시간이 좀 지난 뒤에 알려지겠죠. 하지만 김선아도 잘된 거예요. 강 도련님과 사귀지 않았으면 어떻게 톱스타가
좀 더 지나면 이 손바닥의 흉터도 점점 더 옅어질 것이다. 임유진과 강지혁 사이의 일처럼 시간이 지나면 결국 옅어지고 마치 모든 것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될 것이다.유진은 가볍게 주먹을 쥐고 환경위생과를 나섰다.하지만 몇 걸음 걷던 그때 은색 포르쉐가 유진의 길을 막더니 커다란 모습이 차에서 내렸다. 방금 환경위생과 동료들이 토론하던 주인공 강현수였다.“무슨 일이에요?”유진이 물었다.“감사 인사를 전할 겸 밥 한 끼 대접하려고요.”현수는 말하며 조수석 문을 열면서 유진에게 타라고 했다.“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으니 감사의 표시를 할 필요 없어요.”유진은 말하며 현수를 지나치려 했다.하지만 유진이 발걸음을 떼던 순간 현수가 막아섰다. 검은 눈동자가 유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치 베일이라도 쓴 것처럼 유진이 이해할 수 없는 눈빛이었다.“난 신세 지는 것이 싫어요. 그러니 꼭 식사를 대접해야 해요.”현수는 덤덤한 눈빛을 한 채 절대 거절하면 안 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현수 같은 사람은 별로 거절당한 적이 없어 거절할수록 더 치근덕거릴 수도 있다. 차라리 밥을 먹는 것이 낫다.만약 현수가 유진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했으면 이미 어젯밤에 했을 것이다.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수석에 탔다.현수는 그제야 차 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돌아와 차를 몰고 떠났다.가는 길에 유진은 빠르게 지나가는 경치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될 때 유진은 모든 일에서 도리를 따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수많은 일을 겪은 후에야 유진은 어떤 때는 상대방이 도리를 따지는지에 달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만약 상대방이 도리를 따지지 않는다면 도리를 따질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갑자기 차 안에 현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그 은팔찌 당신에게 아주 중요한 물건인 거 같아요.”유진이 덤덤하게 말했다.현수의 무표정한 얼굴에 은은
그리고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강문철의 예상을 벗어남으로써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쟁취했다. 물론 그것도 하늘의 뜻이 어떤지 봐야겠지만 말이다.김재호는 하늘을 바라보며 강문철이 살아생전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만약 임유진이 정말 지혁이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그때는... 살려둬. 하지만 지혁이 곁에 두지는 마. 임유진은 지혁이한테 약점밖에 안 돼.”“그러면 차라리 죽도록 내버려 두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김재호의 질문에 강문철은 끝까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김재호는 그저 강문철에게 임유진이 만약 바다에 빠졌는데도 살아나면 그때는 그녀를 살려주라는 지시만 받았다.한편 절벽에서 2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작은 오두막 안에 있던 진세령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휴대폰을 바닥으로 힘껏 내던졌다.예쁜 얼굴이 단숨에 질투와 분노로 무섭게 일그러졌다.“왜! 왜 임유진이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 왜 살려주려고 하는데! 왜! 왜!”강지혁은 그녀의 언니인 진애령의 죽음 때는 자기와는 아주 조금도 상관없는 사람의 죽음을 들은 듯한 표정으로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동정심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그런데 그랬던 강지혁이 임유진을 위해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버튼을 누르며 죽음을 택했다.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임유진의 행복만을 빌었다.“임유진이 뭐라고 그렇게 해!”진세령은 결과적으로 임유진이 죽은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봤는데도 전혀 마음이 풀리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분명히 속이 시원하고 상쾌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지독한 패배감만 들었다.강지혁처럼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죽어주려고까지 하는 남자를 그녀는 영원히 얻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으니까....강지혁이 미쳐버린 지금 고이준은 자신이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 싶어 일단 경찰을 불러 바다에 떨어진 임유진을 수색하게 한 다음 강제로 강지혁을 구급차에 태워 병원에 보냈다.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느 정도 처리하고 보니 그제야 김재호가 그
강지혁은 생각보다 감정에 섬세한 남자라 임유진은 차라리 그가 그녀를 조금 덜 사랑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아무리 지금은 마음이 아파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을 수 있을 테니까.임유진은 강지혁이라는 남자와 흰머리로 뒤덮일 때까지 정말 잘살아 보고 싶었다. 예쁜 아이 셋을 낳고 평생 웃으며 행복하게 잘살아 보고 싶었다.그래서 그때 그에게 영원의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평생 그의 곁에 있어 주겠다는 말을 했다.하지만 그녀는 그 약속을 이제 지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본의 아니게 약속을 어겨버렸네...?’임유진은 중력으로 몸이 점점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문득 강문철이 그녀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강문철은 그녀가 정말 강지혁을 사랑하는지 내기를 하자고 했다.‘내가 혁이를 위해 목숨까지 걸 수 있는지 테스트해 보고 싶으셨나? 그래서 내 손을 기어봉에 묶어놨나? 내가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려고?’임유진의 귓가에 강지혁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바로 극심한 고통과 해수가 그녀를 집어삼켰다.“유진아! 유진아!”강지혁은 이대로 임유진의 차량을 따라가려는 듯 절벽 쪽으로 달려갔다.그리고 고이준은 그런 그를 있는 힘껏 끌어당기며 이내 경호원들에게 같이 힘을 보태라고 지시했다.그러자 경호원들이 우르르 달려와 강지혁의 팔과 몸을 잡았다.“놔! 이거 놔! 유진이 구하러 가야 하니까 이거 놔!”강지혁이 눈이 빨개진 채로 목이 부서지라 외쳤다.“사모님께서는 차량과 함께 떨어지셨습니다! 이대로 대표님께서 뛰어봤자 함께 목숨을 잃는 것밖에 안 된다는 뜻입니다! 사모님이 마지막으로 했던 얘기, 대표님도 들으셨잖습니까! 그런데도 이대로 사모님을 따라가실 겁니까?!”고이준이 외쳤다.그러자 그 말에 강지혁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그도 알고 있다. 임유진이 그를 위해 희생했다는 사실쯤은. 하지만... 그녀가 세상에 없는데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그때 기계 장치 쪽에서 치지직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금 강문철
임유진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새어 나왔다.지금 이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남의 행복이나 비는 바보 같은 남자 때문에 그녀는 가슴이 아프고 또 숨이 막혔다.강지혁의 엄지손가락이 결국에는 버튼을 눌렀고 그와 동시에 그녀가 있는 차 안 모니터에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했다.임유진은 그게 폭탄 해제까지 걸리는 시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그녀와 강지혁 사이에는 이제 고작 2분이라는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2분이라는 시간 동안 강지혁은 언제든지 손을 떼고 그곳에서 멀리 벗어날 수 있다.“고 비서님, 당장 혁이를 저기서 끌어내 주세요!”임유진이 고이준을 향해 외쳤다.그 말에 고이준의 몸이 움찔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강지혁을 끌어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임유진이 탄 차량 주위에 깔린 폭탄들이 터지게 된다.“내 몸에 손대면 그게 누구든 가만 안 둬!”강지혁의 위협적인 목소리가 아주 크게 울려 퍼졌다.이에 경호원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고이준은 더더욱 마음이 복잡해졌다.“고이준, 유진이가 절벽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면 바로 병원으로 데리고 가. 그리고 지금 당장 내 곁에서 멀리 떨어져.”강지혁은 말을 마친 후 다시 시선을 돌려 임유진을 바라보았다.“유진아, 이건 내가 원해서 하는 거야. 그러니까 괜한 생각하지 마.”원해서 하는 거라고?하지만 그게 원해서든 아니든 임유진은 그가 죽는 걸 원치 않았다.그때 그녀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방법이 떠올랐다. 사실 그녀에게는 강지혁의 죽음을 막을 방법이 하나 남아 있었다.임유진은 뭔가를 결심한 얼굴로 기어봉에 묶인 손을 한번 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여 어느새 많이도 불룩해진 자신의 복부를 바라보았다.“미안해. 엄마가 너무나도 이기적인 사람이라 정말 미안해... 엄마가 한 선택에 너희를 휘말리게 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엄마는 너희들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너희 아빠를 사랑하고 있어. 그래서 혁이가 죽는 걸 이대로 지켜볼 수 없어... 그러니까 너희들이 엄마 한 번만 봐줘.”임유진은 숨을 한번 고
하지만 강문철은 틀렸다. 강지혁은 임유진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강지혁이 기계 장치 가까이에 다다르자 바로 타이머부터 보였다. 타이머에 표시된 숫자는 8이었다.이제 8분이 지나면 폭탄이 터지게 된다.“안 돼! 혁아, 그러지 마!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너희 할아버지는 절대 네가 그런 선택을 하게 내버려 둘 분이 아니야. 누구보다 가문을 중요시했던 분이셨잖아! 네가 죽으면 가문을 이을 사람도 없어지고 회사도 망하게 될 텐데 너희 할아버지가 그것도 생각 못 하셨을 것 같아? 그러니까 제발 멈추고 우리 다시 생각해보자! 응?!”“유진아, 괜찮아. 겁먹지 않아도 돼. 내가 반드시 널 구해줄 테니까.”강지혁은 말을 마친 후 곧바로 초록색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치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이내 강문철의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콜록콜록... 결국에는 임유진 때문에 목숨을 거는 선택을 하고야 말았구나. 그런데 네 선택은 틀렸다.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임유진은 네가 목숨을 걸고서까지 구해줄 만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콜록콜록... 폭탄을 해제하려면 네 엄지로 빨간색 버튼을 한동안 누르고 있어야만 한다. 폭탄이 해제되기까지 일정 시간이 필요하거든. 그런데 계속해서 누르고 있으면 임유진 쪽 폭탄은 해제되겠지만 이 기계에 설치된 폭탄은 바로 터지게 되겠지.”강문철의 담담한 목소리에 사람들은 괜히 몸이 오싹해 나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도무지 친할아버지라고는 생각을 못 할 얘기였다.“다만 버튼을 누르고 폭탄이 해제되는 시간 동안 너는 언제든지 손을 떼고 이 기계에서 멀리 떨어질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해제에 실패하고 임유진 쪽의 폭탄이 바로 터지게 되겠지. 어디 한번 보자꾸나. 네가 그 여자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콜록콜록... 그리고 임유진이 정말 네가 목숨을 바칠만한 여자인지.”강문철의 목소리가 완전히 끊기고 이내 무거운 적막이 찾아왔다.임유진은 자신의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어
임유진은 자신의 양손이 왜 한쪽은 핸들에 묶여있고 또 한쪽은 기어봉에 묶여있는지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다.애초에 다른 선택지는 없게 둘 중 하나가 살 수 있게만 만들어놓은 것이었다.지금 그녀가 탄 차량의 주위에 얼마만큼의 폭탄이 설치되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그걸 파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만약 파악하는 도중에 누군가가 폭탄을 건드리면 최악의 결과로 치닫게 된다.정말 두 사람 다 사는 방법은 없는 걸까?임유진은 머리를 최대한으로 굴리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그때 김재호의 말을 전부 듣고 있던 진세령이 표독스럽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어때? 상황이 엄청 재미있어졌지? 이제 강지혁은 어떻게 할까? 나는 강지혁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널 버릴 거라는 거에 한 표를 던지고 싶은데 너는 어때? 혹시 너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얼굴이 그렇게 죽상이 된 거야? 하하하!”임유진은 진세령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강지혁의 얼굴만 바라보았다.그리고 강지혁도 그런 그녀를 똑같이 바라보고 있었다.그때 그의 눈동자에 뭔가의 결심이 섰고 임유진은 그걸 보고는 서둘러 크게 외쳤다.“혁아, 하지 마!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그런데 강지혁은 그녀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녹음을 켠 후 휴대폰을 입 가까이에 가져갔다.“나 강지혁은 죽은 후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을 전부 아내인 임유진에게 넘겨주겠다. 이건 그 어떤 외부의 강요도 받지 않은 온전한 내 의지임을 밝힌다.”그는 말을 마친 후 곧바로 휴대폰을 고이준에게 던져버렸다.그리고 고이준은 그의 휴대폰을 받고 그대로 몸이 얼어붙어 버렸다.‘지금 자기 목숨을 희생해 유진 씨를 구하려는 건가? 그래서 유언을 남긴 건가...? 하지만 이대로 대표님이 죽어버리면...’고이준은 그 뒤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강지혁의 유언에 굳어버린 건 고이준 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김재호의 얼굴 역시 미묘하게 굳어 있었다.“대표님, 정말 임유진 씨를
김재호가 한 손을 들어 임유진이 타 있는 차량과 약 20m 정도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저쪽으로 가시면 웬 기계 장치가 하나 보일 건데 거기에 폭탄을 해제할 수 있는 버튼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버튼을 누르기 위해서는 대표님의 지문이 필요합니다.”김재호의 웃음기가 한층 더 깊어졌다.그리고 강지혁은 김재호의 말에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이 상황이 단지 지문을 찍고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만약 그렇게 간단한 거였으면 굳이 이런 짓을 벌이지는 않았을 테니까.“인내심 테스트하지 말고 똑바로 끝까지 말해. 너와 여기서 입씨름할 시간 없으니까!”강지혁은 지금 일 초라도 빨리 임유진을 저기서 구해내고 싶었다.“그러죠. 만약 대표님께서 해제 버튼을 누르시게 되면 기계 장치에 설치된 폭탄의 스위치가 자동으로 켜지게 될 겁니다. 즉 임유진 씨를 구하면 대표님의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뜻이죠.”김재호는 강지혁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큰 목소리로 말했다.차 안에 있는 임유진에게도 이 얘기가 전달되기를 바라서였다.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임유진은 그의 말을 아주 똑똑히 들어버렸다.임유진은 마치 온몸이 한기에 둘러싸인 것처럼 몸이 뻣뻣하게 얼어붙어 버렸다.자신이 사는 대가로 강지혁이 목숨을 잃게 될 줄은 정말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왜... 대체 저 남자는 뭣 때문에 이런 짓을 계획한 거지? 단순히 내 목숨이 목적인 거면 내가 기절해있을 때 진세령을 통해 나를 죽이면 됐을 텐데...?’그때 임유진의 의문에 대답을 해주듯 김재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회장님께서 이 판을 계획한 건 다 대표님이 정신을 차렸으면 해서입니다. 임유진 씨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요. 대표님, 임유진 씨를 대체할 여자는 차고도 넘칩니다. 만약 외모 때문이라면 똑같이 성형하게 하면 될 일입니다.”요즘은 의술이 워낙 좋아 완전히 똑같게는 만들지 못하더라도 비슷하게는 만들어낼 수 있었다
임유진은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차분한 음성으로 진세령에게 말했다.“지금이라도 날 풀어주면 오늘 일은 없던 일로 해줄게. 혁이한테도 널 봐달라고 하고 네 집안이 무너지지 않게 도와주라고도 할게.”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최대한 진세령이 혹할 만한 제안을 제시하는 것밖에 없었다. 진세령에게 조금이라도 틈이 보인다면 그걸 기회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그런데 진세령은 마치 임유진의 말 따위는 들리지도 않는 건지 자기 할 말만 이어나갔다.“나는 그냥 확인하고 싶을 뿐이야. 강지혁이 널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우리 언니가 죽었을 때는 눈물은커녕 동정심도 내보이지 않았거든. 솔직히 너도 확인해보고 싶지 않아? 강지혁이 널 위해서 정말 목숨을 걸 수 있을지 없을지?”진세령의 두 눈은 어느새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는 임유진을 증오했다. 한낱 버러지 같은 여자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 너무나도 억울했으니까.진애령의 사고가 있었던 그때 사실 진세령은 임유진의 곁에서 소민준을 빼앗으며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소민준이 임유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에게는 일말의 감정도 내비치지 않을까 봐.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소민준은 아주 손쉽게 임유진을 버렸다. 마치 다 쓴 건전지를 버리듯 너무나도 쉽게 그녀를 버려버렸다.생각해보면 첫사랑의 이미지로 남자들을 홀린 자신이 임유진 따위를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그래서 진세령은 강지혁도 크게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소민준처럼 임유진을 가차 없이 버릴 거라고 확신했다.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면 그는 김재호라는 남자에게서 거액의 보수를 건네받은 후 해외로 넘어가 남은 생을 편히 즐기면 된다.그때 검은색 승용차가 연이어 이곳에 도착했다.임유진은 차 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연달아 내리는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 중에 강지혁의 모습이 보였다.강지혁은 아슬아슬한 상태로 절벽에 걸려있는 차량과 그 차량의 운전석에 앉은 임유진을 확인하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바
강지혁은 이가 부러질 정도로 꽉 깨물었다.아무리 강지혁이 강문철에 대해 잘 안다고 해도 강문철이 강지혁을 알고 있는 것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했다.강문철은 강지혁이 의심이 많은 인간이라는 것과 임유진과 관련된 일이면 불안감이 극도에 달한다는 것까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김재호에게 실종 놀이를 하게 한 다음 갑자기 나타나게 했다.감쪽같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야 이미 불안도가 잔뜩 오른 강지혁이 직접 김재호를 심문하려고 저택에서 나올 테니까.강문철은 죽어서도 죽은 게 아니었다.게다가 김재호의 말에 따르면 강문철은 강지혁에게 내기까지 하려고 했다. 임유진과 관련된 내기를 말이다.‘유진아, 제발... 제발 무사해 줘!’...임유진의 눈썹이 움찔 떨리더니 이내 예쁜 두 눈이 떠졌다.임유진은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깜짝 놀라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그녀는 차량 운전석에 앉아있었고 한 손은 핸들에 꽉 묶여있고 나머지 한 손은 기어봉에 묶여있었다.그리고 그녀가 탄 차량은 차 앞머리만 간신히 땅을 밟고 있고 뒤쪽은 공중에 떠 있었다. 즉 차량의 절반만이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매달린 상태라는 뜻이었다.만약 이대로 조금만 큰 움직임을 보인다거나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게 되면 이 차는 말할 것도 없이 절벽 아래의 망망대해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임유진은 상황을 파악한 후 아주 미세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그때 그녀의 눈앞에 영상 통화가 켜져 있는 휴대폰 하나가 들어왔다. 그리고 화면 속에는 진세령의 얼굴이 보였다.“깼어?”진세령이 음험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솔직히 생각도 못 했어. 내가 짓밟은 한낱 벌레가 오늘날의 강씨 가문의 안주인이 될 거라고는 말이야.”“진세령!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내면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임유진이 물었다.임유진은 아까 그렇게 강지혁을 보낸 후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침실로 돌아온 지 몇 분도 안 돼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졸음이 몰려와 잠시 침대에서 눈을 붙였다.그리고
경호원은 강지혁의 목소리에 당황한 듯 말을 버벅거렸다.“그, 그게 사모님 방으로 가봤는데 사모님은 그 어디에도 없고 채린이와 이모님만이 바닥에 기절해있었습니다. 방 안에는 CCTV가 없어 밖에 있는 CCTV를 돌려봤지만 사모님께서 침실을 나선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방안에는 지금 미약하게나마 약물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찾아! 지금 당장 저택 전부를 뒤져서 유진이를 찾아!”강지혁은 휴대폰을 고이준에게 던져버린 후 누구 한 명 죽일 것 같은 눈빛으로 김재호를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김재호의 머리를 세게 움켜쥐고 벽에 짓눌렀다.“유진이를 어디로 빼돌렸어! 만약 유진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네 사지가 다 찢길 줄 알아!”쿵 하는 소리와 함께 김재호의 머리가 옆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벽에 세게 부딪혔다.분명히 아플 텐데도 김재호는 오히려 소리 내 웃었다.“지금 당장 저를 죽이셔도 저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아까 말했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요.”“유진이를 어디로 빼돌렸는지 말하라고 했어!”강지혁이 살기를 내뿜으며 김재호의 머리를 수도 없이 벽을 향해 박았다.지금 그의 머릿속은 온통 임유진뿐이었다.한편 고이준은 이미 이성을 잃은 듯한 강지혁의 눈빛과 행동에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임유진은 강지혁의 목숨과도 같은 사람이기에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 만약 임유진을 건드리게 되면 그건 자기 목숨을 끊어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김재호를 죽이고 말겠어!’고이준은 이 생각에 얼른 강지혁의 곁으로 다가갔다.“대표님, 차라리 김재호를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가 보는 게 어떨까요? 분명히 김재호는 사모님께서 어디 있는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일단은 화를 좀 가라앉히시고 손을 멈춰주세요. 이러다 김재호가 죽어버리면 아무것도 묻지 못하잖습니까.”그 말에 강지혁의 눈빛에 이성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차에 실어. 그리고 지금 당장 집으로 간다!”강지혁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