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혁은 임유진에게 칫솔을 쥐어주고 치약을 짜서 따뜻한 물이 담긴 컵을 유진에게 건네주었다.유진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 이를 어떻게 닦았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고 유진의 몸을 둘러싼 지혁의 숨결에 취해있었다.그때 지혁은 수건을 꺼내 따뜻한 물에 수건을 적셨다.“나 혼자 할 수 있는데…….”유진이 입술을 깨물었다.“내가 하는 게 더 편하잖아?”지혁이 말했다.‘문제는 너무…… 가깝잖아!’지혁은 유진을 백허그한 채로 수건을 적시더니 물기를 짰다…….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들어 거울을 바라보았다.유진은 줄곧 혁이가 예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혁이는 두꺼운 앞머리로 이마를 가리지 않았으며 정교한 정장까지 입고 있어 온몸에 귀티가 배어 있었다. 마치 아주 높은 곳에 있어 넘볼 수 없는 존재와 같았다.유진은 이전에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생각해 보면 지영조차도 지혁이 노숙자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유진은 왜 지혁이 유진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지혁을 자기 곁에 남겨 두려고 한 것일까.너무…… 외로웠던 것일까?현실은 지혁이 노숙자도 아닌 보통 신분이 아니다.지혁의 옷차림에서 아주 값 비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가 지혁을 대할 때도 매우 공손한 태도였다.“누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지혁의 목소리로 인해 유진은 하던 생각을 접었다.유진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거울을 보자 혁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치자 유진은 순간 흠칫 놀랐으며 마치 이 순간 지혁의 시선에 납치당한 것 같았다.“누나, 얼굴이 아주 빨개.”지혁은 말을 하며 몸을 살짝 기울이더니 유진에게 다가갔다. 지혁의 입술, 촉촉한 숨결이 유진의 볼과 목에 닿자 아주 간질거렸다.순간 유진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너는 왜…… 아직도 날 누나라고 부르는 거야?”유진은 시선을 피한 채 더 이상 거울을 보지 않았다.“내가 누나라고 부르는 게 싫어?”지혁이 낮게 반문했다.“넌 분명히 노숙자가 아닌
임유진이 세수를 마친 후 강지혁은 다시 유진을 안아 병실 침대로 향했다. 이미 음식이 준비되었다.죽과 반찬 몇 가지였다. 비록 아주 간단한 음식들이지만 아주 먹음직스러워 순간 유진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의사가 지금은 소화가 잘되는 것만 먹는 게 좋다고 했어.”지혁이 말했다.지혁은 유진의 침대 위의 작은 탁자 위에 음식을 가지런히 차려 놓았다.만약 다른 사람이 이 장면을 보았다면 눈알이 튀어나올 것이다. S시에서 말 한마디로 한 집안을 멸망시킬 수 있는 그 대단한 강 대표님이 이렇게 한 여자를 보살펴 주고 있다.유진은 젓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긴 머리 때문에 머리를 숙이고 먹을 때 머리카락이 자꾸 거슬렸다.유진이 머리끈을 찾아 머리를 묶으려 하던 순간 지혁이 말했다.“내가 해줄게.”지혁은 말을 하며 옆에서 머리 끈과 빗이 담긴 박스를 꺼냈다.유진은 그 머리 끈의 로고를 보자 명품 머리 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진은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이 브랜드의 머리 끈을 산 적이 있다. 그때 유진의 수입은 이 브랜드의 작은 물건들을 살 수 있었다.지혁이 이렇게 세심할 줄 유진은 몰랐다. 이런 작은 물건까지 준비했다니.“할 줄 알아?”유진이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매일 누나가 머리 빗는 걸 보면서 배웠어.”지혁이 말했다.지혁은 빗을 들고 유진의 머리를 빗겨준 후에 머리 끈으로 유진의 머리를 묶었다. 비록 숙련된 솜씨는 아니지만 꽤 그럴 듯하다.바로 이때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들어와.”지혁이 말했다.병실의 문이 열리자 고이준이 병실로 들어왔다. 이준은 그 장면을 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넋이 나갔다.‘강 대표님이…… 여자의 머리를 빗겨주고 있다?’평소에 강 대표님은 여자가 주동적으로 품에 안겨도 거들떠보지 않는데 여자에게 이런 일을 해줄 리가 없다.하지만 유진이니 불가능한 것이 없다.유진은 원래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지만 이준의 이런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보고는 지혁이 자신의 머리를 빗겨주고 있
“그 기자는 임유진 씨가 감옥에 들어갔던 일을 모르는 것 같았어요. 단지 임유진 씨의 이름만 알고 강 대표님의 열애 기사를 쓰려는 것 같았어요.”고이준이 말했다.그러자 강지혁이 말문을 열었다.“계속해서 물어봐. 모든 걸 다 알아낸 뒤에 사람을 풀어줘. 그리고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이 올린 글을 봤다면서. 누가 올렸는지, 뭘 봤는지도!”“알겠습니다.”이준이 대답했다.지혁이 병실 문을 열면서 병실 침대에 앉아 죽을 먹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기자의 말은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그냥 어젯밤에 공교롭게 본 것일까? 아니면…… 또 뭐가 있을까?유진이 고개를 들자 지혁은 어두운 표정으로 온몸으로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유진은 깜짝 놀라 멍하니 지혁을 바라보았다.하지만 그 차가운 기운은 한순간에 사라졌고 준수한 얼굴에 웃음기 가득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누나, 왜 그런 표정으로 날 보는 거야?”지혁이 묻자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야.”방금 그 순간 유진은 지혁이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지혁의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또 천사 같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방금은 유진이 잘못 본 것일까?…….소민영은 유진의 배경에 지혁이 있다는 걸 알자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자신의 다리가 다친 걸 따질 수가 없다!민영의 다리가 부러져 입원한 일은 이미 영애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되었으며 만약 다리가 치료되지 않으면 영원히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모두 유진 때문이다. 그 여자가 아니라면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그리고 유진은 지혁과 만나면서 언질도 주지 않았다! 소민영은 유진이 일부러 말하지 않았고 연약한 척 연기한 뒤에 자신이 유진을 괴롭히면 지혁을 내세워 복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소민영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오늘 친구가 특별히 이곳에서 룸을 하나 예약해 민영의 답답함을 풀어 준다고 했는데 지팡이를 짚고는 도저히 기분을 낼 수 없었다.그리고 방금 민영이 지팡이를 짚고 룸에서 나올 때
소민영은 싱긋 웃더니 소장의 뒤에 서 있던 한 무리의 사람 중 한 명을 힐끗 보았다. 민영은 그날 임유진과 같이 쇼핑을 하던 여자를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유진의 친구일 것이다. 이 화풀이를 유진에게 내지 못한다면 유진의 친구에게 하면 된다.한편 한지영은 민영과 눈을 마주치자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니나 다를까 함께 식사하던 도중 민영은 여러 사람에게 술을 권하며 건배하려 했고 민영의 다리가 불편해 사람들이 민영에게 가서 술잔을 부딪쳤다.그러나 지영과 술잔을 부딪칠 때 민영은 일부러 손을 움직여 술잔이 바닥에 떨어졌고 술이 다치지 않은 그 발의 신발에 가득 튀었다.그때 민영이 입을 뗐다.“나한테 술을 권하기 싫어도 고의로 날 밀 필요는 없잖아요. 나랑 밥 먹기 싫으면 그냥 말하면 되잖아요. 지금 당장 나갈게요.”지영은 차가운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았고 소장은 자연히 다급하게 민영을 막았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막론하고 지영이 잘못을 인정해야 했다.“지영 씨, 빨리 소민영 씨에게 사과해요!”“맞아요. 지영 씨, 빨리 사과해요!”옆에 있던 동료들도 분분히 말했다.사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모두 민영이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누가 감히 민영에게 미움을 사겠는가! 민영은 소씨 가문의 사람이다! 소씨 가문을 건드리는 날에는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한편 지영은 그 자리에 서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민영을 쳐다보았다.“지영아, 모두를 해치려는 작정이야? 곧 있으면 설인데 직장을 잃을 작정이야?”소장이 지영을 잡고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지영은 이를 악물고 천천히 다가가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소민영 씨, 미안합니다. 방금은 제 실수였어요.”민영이 활짝 웃었다.“당신의 잘못이라는 걸 인정했으니 보상을 해야죠. 이렇게 해요. 내 신발이 더러워졌으니 신발을 깨끗이 닦아요. 그럼 이 일을 더 이상 따지지 않을게요.”지영이 민영을 노려보고 있다.그때 민영이 말했다.“다리를 다친 사람에게 신발을 닦게 할
한지영이 일어서니 자연히 손을 올렸고 소민영이 방심한 사이에 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앉아있던 의자에 깔렸으며 하필이면 회복기인 다친 다리에 깔렸다.삽시에 민영은 고통스러워 울부짖는 소리를 냈고 다른 사람들은 상황을 보고 재빨리 앞으로 나가 허둥지둥 민영을 부축했다.“한지영, 너 직장 잃고 싶지? 어떻게 소민영 씨에게 이럴 수 있어!”소장은 화가 나서 지영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지영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직장 잃고 싶어요. 지긋지긋해요. 단지 월급을 받는 거지, 목숨을 연구소에 파는 게 아니에요.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해요?”민영이 화를 내며 말했다.“사직만 하면 되는 게 아니야! 내가 널 고소할 거야! 상해죄로 고소할 거야!”“좋아! 나도 똑같이 널 고소할 거야! 지금 당장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받아와야겠어.”지영은 말을 하며 민영에게 다친 손을 들이댔다.민영이 당당하게 행동하자 지영은 더 당당하게 말했다.지영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다. 자신의 친구를 상대할 수 없으니 자신을 괴롭힌다?“내가 말할게. 강지혁이 임유진을 보호하지만 너까지 보호해 줄 거 같아? 꿈 깨! 강지혁은 단지 임유진을 갖고 노는 거야. 임유진이 진애령을 죽인 걸 어쩌겠어? 설마 강지혁이 자신의 약혼녀를 죽인 여자를 진심으로 좋아하겠어?”민영의 말에 지영은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강지혁과…… 유진이?“무슨 말을 하는 거야? 강지혁이 왜 유진이를 보호해? 그리고 강지혁이 갖고 논다고…… 유진이를?”지영은 재빨리 앞으로 달려가더니 민영을 노려보았다.민영은 그제야 자신이 말실수를 한 것을 알아차렸다. 분명 오빠가 절대 누설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난…… 난 네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민영은 말을 하며 부랴부랴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도우미의 부축을 받으며 재빨리 떠났다.소장은 아부라도 더 하려고 다급하게 따라갔다.한편 남아 있는 동료들은 계속 지영을 탓하고 있다. 하지만 지영은 그 사람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민영이 한 말만 생각
첫날처럼 힘이 하나도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어머니 쪽 친척에게서 몇 번이나 연락이 왔다.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큰삼촌의 일로 사정하는 사람도 있고 고소를 취하하길 바라는 사람도 있으며 그날 박씨 저택에서 임유진을 데려간 사람이 누군지 묻는 사람도 있었다.수많은 경찰차가 박씨 저택을 가로막았으니 주변 이웃들도 모두 볼 수 있었다.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유진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대단한 인물과 알고 지내니 적지 않은 돈이 있을 것이기에 친척인 자신을 도와달라고 했다.유진은 어이가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대단한 인물인 혁이를 유진조차도 어떤 신분인지 모른다.하지만 그 사람들의 입에서 그날 혁이가 말하지 않은 일들을 알 수 있었으며 그날 밤 자신이 어떻게 박씨 자택에서 구출 당했는지 알게 되였다.유진은 병실을 나와 복도를 천천히 걸으며 간병인에게 말했다.“날 따라다니지 말아요. 혼자 좀 걷고 싶어요.”다른 사람이 자신의 곁에 있으니 유진은 불편했다.간병인이 머리를 끄덕였다.그리고 원래 병실 입구를 지키던 경호원은 이 광경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부터 유진이 복도에서 여러 번 걸어 다녔기 때문이다.한편 유진이 계단 입구의 안전 통로를 지나갈 때 마침 유리문을 통해 지혁이 계단 입구에 서서 전화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지혁의 손에는 담배 한 대가 끼워져 있고 몸은 모퉁이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다. 유진은 지혁의 뒷모습밖에 볼 수 없었다. 라인이 아름다운 목, 넓은 어깨와 좁은 허리, 긴 다리, 몸에 맞는 정장이 그 체형을 더 돋보이게 한다. 아무렇게 서 있지만 화보를 찍는 모델 같다.유진은 이전에 돈을 모아 지혁에게 정장을 사주려고 생각했지만 정장을 입은 지혁의 모습이 이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바로 이때 유진이 갖고 있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유진이 재빨리 핸드폰을 열어 보자 한지영이었다.“지영아, 무슨 일이야?”유진이 물었다.“유진아, 너…… 혁이와 같이 있어?”지영은 혁이라는 두 글
“사실 나도 확실하지는 않아.”한지영이 말했다.“오늘 소민영과 마주쳤는데 강지혁이 널 보호한다고 했어. 그리고 네가 지혁과 만난다고 했어. 하지만 네 옆에 있는 남자라고는 혁이밖에 없잖아. 혁이가 강지혁이 아닐까?”혁이의 모습은 정말 노숙자 같지 않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도 지혁에 대한 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 임유진이 이전에 검색해 보았지만 아주 멀리에서 찍은 뒷모습밖에 없었으며 선명한 얼굴 사진은 전혀 없었다.유진은 지영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유진은 혁이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유진은 혁이와 자신이 같은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하지만 혁이가 강지혁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그래, 혁…… 두 사람 모두 혁이다. 왜 여태껏 생각하지 못했을까?’혁이…… 강지혁. 교통사고로 사망한 진애령보다 유진에게 더 큰 트라우마를 준 사람은 지혁이다.사람들은 항상 유진이 죽인 사람이 지혁의 여자이기에 이런 고통을 받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다른 사람들은 지혁에게 아부하기 위해 유진을 더 괴롭히고 고생시켰다. 단지 지혁이 말한 한마디 때문이다.“그냥 감옥에서 잘 살게 해요.”잘…… 하여 다른 사람들은 유진을 그렇게 괴롭혔다.“유진아, 듣고 있어?”지영은 이상한 침묵을 눈치채고 물었다.지영은 혁이가 유진에게 어떤 존재인지 안다. 만약 혁이가 진짜 지혁이라면 유진은 아주 큰 상처를 받을 것이다.다만 지영은 친구가 정말 단단히 속기를 원하지 않아 유진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듣…… 듣고 있어.”유진은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몸이 너무 떨려 핸드폰조차 제대로 잡지 못할 지경이다.“지영아…… 나…… 조금 있다 다시 전화 걸게.”유진은 거의 온몸의 힘을 다 써서 비로소 이 말을 했다.“그래. 알았어. 유진아, 너무…… 너무 슬퍼하지 마.”지금 지영이 할 수 있는 건 그 말 한마디뿐이다.전화를 끊은 뒤에 유진은 유리문을 통해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렇다. 인터넷에서 지혁의 뒷모습 사진을 보았을 때 혁이의 뒷모
“…….”정말 심심했다.“언제 시간 되면 친구들에게 소개해 주는게 어때? 네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주 궁금하네.”이한이 말했다.그들 무리에서 강지혁이 평소 여자를 멀리하는 것이 소문이 났다. 그 당시 진애령과 혼담이 오갈 때도 지혁은 아주 차가운 모습이었는데 한 여자 때문에 그 먼 곳까지 가서 경찰로 민가를 포위한다?그래서 이한은 이 일을 들은 후 아연실색했고 곧바로 지혁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다만 이한의 호기심에 지혁은 아주 불쾌했다. 다른 남자가 유진에게 관심 두는 게 싫었고 그 사람들에게 유진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고 심지어 자신만 볼 수 있는 곳에 유진을 두고 싶었다.만약 이한과 그 무리의 사람에게 소개해 줬다가 그중 누군가에게…….지혁은 이한 그 무리의 사람이 여자에게 인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강현수. 강현수의 마음에 드는 여자는 결국 강현수의 여자친구가 된다. 비록 강현수의 여자친구는 쉽게 바뀌지만 끊긴 적이 없다.만약 강현수가 유진을 마음에 들어 한다면…… 여기까지 생각한 지혁의 마음은 알 수 없이 초조해졌다.아마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강지혁이라는 이 세 글자만이라도 원하는 여자를 무조건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유진에게 이 세글자는 가장 큰 금기이다.“여자 하나일 뿐인데 볼 게 뭐 있어.”지혁이 담담하게 말했다.“하지만 그 여자는 다른 여자와 다르잖아. 넌 그 여자 때문에 어르신까지 버렸잖아.”이한이 말했다.“쯧쯧, 네가 여자를 그토록 신경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어. 너무 사랑해서 숨기려는 거지.”하지만 이한이 이렇게 말할수록 지혁은 더욱 초조해졌으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은 온통 그 청순한 얼굴뿐이다. 지혁은 순간 알 수 없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지혁이 언제 자신의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반할까 봐 걱정한 적이 있는가? 설마 지혁이 진짜 유진을 사랑하게 된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지혁은 단지 유진과 함께 지내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지혁은 평생 어떤 여자도 사랑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강문철의 예상을 벗어남으로써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쟁취했다. 물론 그것도 하늘의 뜻이 어떤지 봐야겠지만 말이다.김재호는 하늘을 바라보며 강문철이 살아생전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만약 임유진이 정말 지혁이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그때는... 살려둬. 하지만 지혁이 곁에 두지는 마. 임유진은 지혁이한테 약점밖에 안 돼.”“그러면 차라리 죽도록 내버려 두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김재호의 질문에 강문철은 끝까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김재호는 그저 강문철에게 임유진이 만약 바다에 빠졌는데도 살아나면 그때는 그녀를 살려주라는 지시만 받았다.한편 절벽에서 2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작은 오두막 안에 있던 진세령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휴대폰을 바닥으로 힘껏 내던졌다.예쁜 얼굴이 단숨에 질투와 분노로 무섭게 일그러졌다.“왜! 왜 임유진이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 왜 살려주려고 하는데! 왜! 왜!”강지혁은 그녀의 언니인 진애령의 죽음 때는 자기와는 아주 조금도 상관없는 사람의 죽음을 들은 듯한 표정으로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동정심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그런데 그랬던 강지혁이 임유진을 위해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버튼을 누르며 죽음을 택했다.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임유진의 행복만을 빌었다.“임유진이 뭐라고 그렇게 해!”진세령은 결과적으로 임유진이 죽은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봤는데도 전혀 마음이 풀리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분명히 속이 시원하고 상쾌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지독한 패배감만 들었다.강지혁처럼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죽어주려고까지 하는 남자를 그녀는 영원히 얻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으니까....강지혁이 미쳐버린 지금 고이준은 자신이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 싶어 일단 경찰을 불러 바다에 떨어진 임유진을 수색하게 한 다음 강제로 강지혁을 구급차에 태워 병원에 보냈다.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느 정도 처리하고 보니 그제야 김재호가 그
강지혁은 생각보다 감정에 섬세한 남자라 임유진은 차라리 그가 그녀를 조금 덜 사랑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아무리 지금은 마음이 아파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을 수 있을 테니까.임유진은 강지혁이라는 남자와 흰머리로 뒤덮일 때까지 정말 잘살아 보고 싶었다. 예쁜 아이 셋을 낳고 평생 웃으며 행복하게 잘살아 보고 싶었다.그래서 그때 그에게 영원의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평생 그의 곁에 있어 주겠다는 말을 했다.하지만 그녀는 그 약속을 이제 지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본의 아니게 약속을 어겨버렸네...?’임유진은 중력으로 몸이 점점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문득 강문철이 그녀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강문철은 그녀가 정말 강지혁을 사랑하는지 내기를 하자고 했다.‘내가 혁이를 위해 목숨까지 걸 수 있는지 테스트해 보고 싶으셨나? 그래서 내 손을 기어봉에 묶어놨나? 내가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려고?’임유진의 귓가에 강지혁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바로 극심한 고통과 해수가 그녀를 집어삼켰다.“유진아! 유진아!”강지혁은 이대로 임유진의 차량을 따라가려는 듯 절벽 쪽으로 달려갔다.그리고 고이준은 그런 그를 있는 힘껏 끌어당기며 이내 경호원들에게 같이 힘을 보태라고 지시했다.그러자 경호원들이 우르르 달려와 강지혁의 팔과 몸을 잡았다.“놔! 이거 놔! 유진이 구하러 가야 하니까 이거 놔!”강지혁이 눈이 빨개진 채로 목이 부서지라 외쳤다.“사모님께서는 차량과 함께 떨어지셨습니다! 이대로 대표님께서 뛰어봤자 함께 목숨을 잃는 것밖에 안 된다는 뜻입니다! 사모님이 마지막으로 했던 얘기, 대표님도 들으셨잖습니까! 그런데도 이대로 사모님을 따라가실 겁니까?!”고이준이 외쳤다.그러자 그 말에 강지혁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그도 알고 있다. 임유진이 그를 위해 희생했다는 사실쯤은. 하지만... 그녀가 세상에 없는데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그때 기계 장치 쪽에서 치지직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금 강문철
임유진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새어 나왔다.지금 이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남의 행복이나 비는 바보 같은 남자 때문에 그녀는 가슴이 아프고 또 숨이 막혔다.강지혁의 엄지손가락이 결국에는 버튼을 눌렀고 그와 동시에 그녀가 있는 차 안 모니터에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했다.임유진은 그게 폭탄 해제까지 걸리는 시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그녀와 강지혁 사이에는 이제 고작 2분이라는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2분이라는 시간 동안 강지혁은 언제든지 손을 떼고 그곳에서 멀리 벗어날 수 있다.“고 비서님, 당장 혁이를 저기서 끌어내 주세요!”임유진이 고이준을 향해 외쳤다.그 말에 고이준의 몸이 움찔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강지혁을 끌어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임유진이 탄 차량 주위에 깔린 폭탄들이 터지게 된다.“내 몸에 손대면 그게 누구든 가만 안 둬!”강지혁의 위협적인 목소리가 아주 크게 울려 퍼졌다.이에 경호원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고이준은 더더욱 마음이 복잡해졌다.“고이준, 유진이가 절벽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면 바로 병원으로 데리고 가. 그리고 지금 당장 내 곁에서 멀리 떨어져.”강지혁은 말을 마친 후 다시 시선을 돌려 임유진을 바라보았다.“유진아, 이건 내가 원해서 하는 거야. 그러니까 괜한 생각하지 마.”원해서 하는 거라고?하지만 그게 원해서든 아니든 임유진은 그가 죽는 걸 원치 않았다.그때 그녀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방법이 떠올랐다. 사실 그녀에게는 강지혁의 죽음을 막을 방법이 하나 남아 있었다.임유진은 뭔가를 결심한 얼굴로 기어봉에 묶인 손을 한번 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여 어느새 많이도 불룩해진 자신의 복부를 바라보았다.“미안해. 엄마가 너무나도 이기적인 사람이라 정말 미안해... 엄마가 한 선택에 너희를 휘말리게 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엄마는 너희들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너희 아빠를 사랑하고 있어. 그래서 혁이가 죽는 걸 이대로 지켜볼 수 없어... 그러니까 너희들이 엄마 한 번만 봐줘.”임유진은 숨을 한번 고
하지만 강문철은 틀렸다. 강지혁은 임유진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강지혁이 기계 장치 가까이에 다다르자 바로 타이머부터 보였다. 타이머에 표시된 숫자는 8이었다.이제 8분이 지나면 폭탄이 터지게 된다.“안 돼! 혁아, 그러지 마!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너희 할아버지는 절대 네가 그런 선택을 하게 내버려 둘 분이 아니야. 누구보다 가문을 중요시했던 분이셨잖아! 네가 죽으면 가문을 이을 사람도 없어지고 회사도 망하게 될 텐데 너희 할아버지가 그것도 생각 못 하셨을 것 같아? 그러니까 제발 멈추고 우리 다시 생각해보자! 응?!”“유진아, 괜찮아. 겁먹지 않아도 돼. 내가 반드시 널 구해줄 테니까.”강지혁은 말을 마친 후 곧바로 초록색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치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이내 강문철의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콜록콜록... 결국에는 임유진 때문에 목숨을 거는 선택을 하고야 말았구나. 그런데 네 선택은 틀렸다.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임유진은 네가 목숨을 걸고서까지 구해줄 만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콜록콜록... 폭탄을 해제하려면 네 엄지로 빨간색 버튼을 한동안 누르고 있어야만 한다. 폭탄이 해제되기까지 일정 시간이 필요하거든. 그런데 계속해서 누르고 있으면 임유진 쪽 폭탄은 해제되겠지만 이 기계에 설치된 폭탄은 바로 터지게 되겠지.”강문철의 담담한 목소리에 사람들은 괜히 몸이 오싹해 나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도무지 친할아버지라고는 생각을 못 할 얘기였다.“다만 버튼을 누르고 폭탄이 해제되는 시간 동안 너는 언제든지 손을 떼고 이 기계에서 멀리 떨어질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해제에 실패하고 임유진 쪽의 폭탄이 바로 터지게 되겠지. 어디 한번 보자꾸나. 네가 그 여자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콜록콜록... 그리고 임유진이 정말 네가 목숨을 바칠만한 여자인지.”강문철의 목소리가 완전히 끊기고 이내 무거운 적막이 찾아왔다.임유진은 자신의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어
임유진은 자신의 양손이 왜 한쪽은 핸들에 묶여있고 또 한쪽은 기어봉에 묶여있는지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다.애초에 다른 선택지는 없게 둘 중 하나가 살 수 있게만 만들어놓은 것이었다.지금 그녀가 탄 차량의 주위에 얼마만큼의 폭탄이 설치되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그걸 파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만약 파악하는 도중에 누군가가 폭탄을 건드리면 최악의 결과로 치닫게 된다.정말 두 사람 다 사는 방법은 없는 걸까?임유진은 머리를 최대한으로 굴리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그때 김재호의 말을 전부 듣고 있던 진세령이 표독스럽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어때? 상황이 엄청 재미있어졌지? 이제 강지혁은 어떻게 할까? 나는 강지혁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널 버릴 거라는 거에 한 표를 던지고 싶은데 너는 어때? 혹시 너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얼굴이 그렇게 죽상이 된 거야? 하하하!”임유진은 진세령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강지혁의 얼굴만 바라보았다.그리고 강지혁도 그런 그녀를 똑같이 바라보고 있었다.그때 그의 눈동자에 뭔가의 결심이 섰고 임유진은 그걸 보고는 서둘러 크게 외쳤다.“혁아, 하지 마!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그런데 강지혁은 그녀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녹음을 켠 후 휴대폰을 입 가까이에 가져갔다.“나 강지혁은 죽은 후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을 전부 아내인 임유진에게 넘겨주겠다. 이건 그 어떤 외부의 강요도 받지 않은 온전한 내 의지임을 밝힌다.”그는 말을 마친 후 곧바로 휴대폰을 고이준에게 던져버렸다.그리고 고이준은 그의 휴대폰을 받고 그대로 몸이 얼어붙어 버렸다.‘지금 자기 목숨을 희생해 유진 씨를 구하려는 건가? 그래서 유언을 남긴 건가...? 하지만 이대로 대표님이 죽어버리면...’고이준은 그 뒤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강지혁의 유언에 굳어버린 건 고이준 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김재호의 얼굴 역시 미묘하게 굳어 있었다.“대표님, 정말 임유진 씨를
김재호가 한 손을 들어 임유진이 타 있는 차량과 약 20m 정도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저쪽으로 가시면 웬 기계 장치가 하나 보일 건데 거기에 폭탄을 해제할 수 있는 버튼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버튼을 누르기 위해서는 대표님의 지문이 필요합니다.”김재호의 웃음기가 한층 더 깊어졌다.그리고 강지혁은 김재호의 말에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이 상황이 단지 지문을 찍고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만약 그렇게 간단한 거였으면 굳이 이런 짓을 벌이지는 않았을 테니까.“인내심 테스트하지 말고 똑바로 끝까지 말해. 너와 여기서 입씨름할 시간 없으니까!”강지혁은 지금 일 초라도 빨리 임유진을 저기서 구해내고 싶었다.“그러죠. 만약 대표님께서 해제 버튼을 누르시게 되면 기계 장치에 설치된 폭탄의 스위치가 자동으로 켜지게 될 겁니다. 즉 임유진 씨를 구하면 대표님의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뜻이죠.”김재호는 강지혁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큰 목소리로 말했다.차 안에 있는 임유진에게도 이 얘기가 전달되기를 바라서였다.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임유진은 그의 말을 아주 똑똑히 들어버렸다.임유진은 마치 온몸이 한기에 둘러싸인 것처럼 몸이 뻣뻣하게 얼어붙어 버렸다.자신이 사는 대가로 강지혁이 목숨을 잃게 될 줄은 정말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왜... 대체 저 남자는 뭣 때문에 이런 짓을 계획한 거지? 단순히 내 목숨이 목적인 거면 내가 기절해있을 때 진세령을 통해 나를 죽이면 됐을 텐데...?’그때 임유진의 의문에 대답을 해주듯 김재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회장님께서 이 판을 계획한 건 다 대표님이 정신을 차렸으면 해서입니다. 임유진 씨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요. 대표님, 임유진 씨를 대체할 여자는 차고도 넘칩니다. 만약 외모 때문이라면 똑같이 성형하게 하면 될 일입니다.”요즘은 의술이 워낙 좋아 완전히 똑같게는 만들지 못하더라도 비슷하게는 만들어낼 수 있었다
임유진은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차분한 음성으로 진세령에게 말했다.“지금이라도 날 풀어주면 오늘 일은 없던 일로 해줄게. 혁이한테도 널 봐달라고 하고 네 집안이 무너지지 않게 도와주라고도 할게.”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최대한 진세령이 혹할 만한 제안을 제시하는 것밖에 없었다. 진세령에게 조금이라도 틈이 보인다면 그걸 기회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그런데 진세령은 마치 임유진의 말 따위는 들리지도 않는 건지 자기 할 말만 이어나갔다.“나는 그냥 확인하고 싶을 뿐이야. 강지혁이 널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우리 언니가 죽었을 때는 눈물은커녕 동정심도 내보이지 않았거든. 솔직히 너도 확인해보고 싶지 않아? 강지혁이 널 위해서 정말 목숨을 걸 수 있을지 없을지?”진세령의 두 눈은 어느새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는 임유진을 증오했다. 한낱 버러지 같은 여자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 너무나도 억울했으니까.진애령의 사고가 있었던 그때 사실 진세령은 임유진의 곁에서 소민준을 빼앗으며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소민준이 임유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에게는 일말의 감정도 내비치지 않을까 봐.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소민준은 아주 손쉽게 임유진을 버렸다. 마치 다 쓴 건전지를 버리듯 너무나도 쉽게 그녀를 버려버렸다.생각해보면 첫사랑의 이미지로 남자들을 홀린 자신이 임유진 따위를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그래서 진세령은 강지혁도 크게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소민준처럼 임유진을 가차 없이 버릴 거라고 확신했다.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면 그는 김재호라는 남자에게서 거액의 보수를 건네받은 후 해외로 넘어가 남은 생을 편히 즐기면 된다.그때 검은색 승용차가 연이어 이곳에 도착했다.임유진은 차 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연달아 내리는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 중에 강지혁의 모습이 보였다.강지혁은 아슬아슬한 상태로 절벽에 걸려있는 차량과 그 차량의 운전석에 앉은 임유진을 확인하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바
강지혁은 이가 부러질 정도로 꽉 깨물었다.아무리 강지혁이 강문철에 대해 잘 안다고 해도 강문철이 강지혁을 알고 있는 것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했다.강문철은 강지혁이 의심이 많은 인간이라는 것과 임유진과 관련된 일이면 불안감이 극도에 달한다는 것까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김재호에게 실종 놀이를 하게 한 다음 갑자기 나타나게 했다.감쪽같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야 이미 불안도가 잔뜩 오른 강지혁이 직접 김재호를 심문하려고 저택에서 나올 테니까.강문철은 죽어서도 죽은 게 아니었다.게다가 김재호의 말에 따르면 강문철은 강지혁에게 내기까지 하려고 했다. 임유진과 관련된 내기를 말이다.‘유진아, 제발... 제발 무사해 줘!’...임유진의 눈썹이 움찔 떨리더니 이내 예쁜 두 눈이 떠졌다.임유진은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깜짝 놀라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그녀는 차량 운전석에 앉아있었고 한 손은 핸들에 꽉 묶여있고 나머지 한 손은 기어봉에 묶여있었다.그리고 그녀가 탄 차량은 차 앞머리만 간신히 땅을 밟고 있고 뒤쪽은 공중에 떠 있었다. 즉 차량의 절반만이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매달린 상태라는 뜻이었다.만약 이대로 조금만 큰 움직임을 보인다거나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게 되면 이 차는 말할 것도 없이 절벽 아래의 망망대해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임유진은 상황을 파악한 후 아주 미세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그때 그녀의 눈앞에 영상 통화가 켜져 있는 휴대폰 하나가 들어왔다. 그리고 화면 속에는 진세령의 얼굴이 보였다.“깼어?”진세령이 음험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솔직히 생각도 못 했어. 내가 짓밟은 한낱 벌레가 오늘날의 강씨 가문의 안주인이 될 거라고는 말이야.”“진세령!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내면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임유진이 물었다.임유진은 아까 그렇게 강지혁을 보낸 후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침실로 돌아온 지 몇 분도 안 돼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졸음이 몰려와 잠시 침대에서 눈을 붙였다.그리고
경호원은 강지혁의 목소리에 당황한 듯 말을 버벅거렸다.“그, 그게 사모님 방으로 가봤는데 사모님은 그 어디에도 없고 채린이와 이모님만이 바닥에 기절해있었습니다. 방 안에는 CCTV가 없어 밖에 있는 CCTV를 돌려봤지만 사모님께서 침실을 나선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방안에는 지금 미약하게나마 약물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찾아! 지금 당장 저택 전부를 뒤져서 유진이를 찾아!”강지혁은 휴대폰을 고이준에게 던져버린 후 누구 한 명 죽일 것 같은 눈빛으로 김재호를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김재호의 머리를 세게 움켜쥐고 벽에 짓눌렀다.“유진이를 어디로 빼돌렸어! 만약 유진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네 사지가 다 찢길 줄 알아!”쿵 하는 소리와 함께 김재호의 머리가 옆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벽에 세게 부딪혔다.분명히 아플 텐데도 김재호는 오히려 소리 내 웃었다.“지금 당장 저를 죽이셔도 저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아까 말했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요.”“유진이를 어디로 빼돌렸는지 말하라고 했어!”강지혁이 살기를 내뿜으며 김재호의 머리를 수도 없이 벽을 향해 박았다.지금 그의 머릿속은 온통 임유진뿐이었다.한편 고이준은 이미 이성을 잃은 듯한 강지혁의 눈빛과 행동에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임유진은 강지혁의 목숨과도 같은 사람이기에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 만약 임유진을 건드리게 되면 그건 자기 목숨을 끊어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김재호를 죽이고 말겠어!’고이준은 이 생각에 얼른 강지혁의 곁으로 다가갔다.“대표님, 차라리 김재호를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가 보는 게 어떨까요? 분명히 김재호는 사모님께서 어디 있는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일단은 화를 좀 가라앉히시고 손을 멈춰주세요. 이러다 김재호가 죽어버리면 아무것도 묻지 못하잖습니까.”그 말에 강지혁의 눈빛에 이성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차에 실어. 그리고 지금 당장 집으로 간다!”강지혁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