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전에도 얘기했다시피 나는 이제 너한테 아무런...”“감정도 없다고?”강지혁은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그러면 지금은 내가 아닌 누구를 좋아하는데?”임유진은 그의 눈빛이 보내는 위험한 신호를 감지했다.“누구도 안 좋아해. 거기에는 강현수도 포함이야.”그녀는 강현수를 더 이상 둘 사이에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리고 자신 때문에 다친 그의 손이 너무나도 걱정됐다.“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강현수가 너를 끌어안도록 내버려 둔 건데? 언제부터 둘이 그렇게 친했다고.”“내가 강현수한테 마음이 있다고 하면 그건 어릴 때의 우정일 뿐일 거야.”임유진은 솔직하게 얘기했다.“그리고 지금은 강현수를 볼 때마다 죄책감만 들어...”“죄책감?”강지혁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강현수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날 찾아 헤맸는데 정작 난 기억이 돌아왔으면서도 진실을 얘기해주지 못했으니까.”그녀는 다 알면서도 강현수가 사람을 착각한 채로 그렇게 내버려 두었다.“어제 날 갑자기 끌어안은 것도 어릴 때의 그 아이와 내가 겹쳐 보여서 그랬을 거야.”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나온 뒤 강현수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그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시선은 임유진을 향한 것이 아닌 어릴 때의 그 여자아이를 향한 시선이었다.그러니 어제의 그 포옹은 단지 어릴 적 그녀와 ‘현수’ 사이의 포옹일 뿐이다.“그래. 네가 강현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믿을게. 그럼 나는? 날 다시 사랑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강지혁은 몸을 일으켜 두 손을 침대 위에 두어 그녀를 품속에 가둔 채 시선을 마주쳤다.가까워진 거리에 임유진은 흔들리는 동공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눈앞에 있는 남자는 지독하게도 그녀의 취향이었다. 훤한 이마에 오뚝한 콧날, 그리고 섹시한 입술에 예쁜 눈동자까지. 그 어느 하나 취향이 아닌 곳이 없었다.그는 눈길 하나로 사람을 쉽게 제압하고 또 쉽게 매혹한다. 이대로 계속 그의 눈을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는 사이 그에게 홀리고야 만다.이런 남자를 다
“나는 네가 말뿐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날 사랑하길 원해. 지금은 날 사랑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너는 분명히 다시 전처럼 날 사랑하게 될 거야. 유진아, 나는 단언할 수 있어.”강지혁은 어디서 나온 건지도 모를 자신감으로 단호하게 얘기했다.이 남자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걸까?다시 그를 예전처럼 그렇게 사랑하게 될 거라고?이미 산산이 조각나버린 마음이 정말 전처럼 될 수 있다고 믿는 건가?...밤이 되고 이경빈은 차량 뒷좌석에 앉아 피곤한 듯 이마를 주물렀다.오늘 그는 변호사와 함께 양육권 문제로 얘기를 나눴다.그가 고용한 변호사는 양육권 소송 전문 변호사로 승률이 언제나 높았다. 변호사의 분석에 따르면 80% 이상의 확률로 양육권을 가지고 올 수 있다고 했다.윤이가 지금까지 쭉 탁유미의 손에서 자랐다고는 하나 그녀에게는 형을 산 경력이 있으니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게 분명했다.당시의 사건이 지금에 와서 양육권을 뺏을 중요한 무기가 될 줄이야.이경빈은 그 사건만 떠올리면 심장이 욱신거리며 아파 났다.대체 왜 이런 걸까.그는 당시 탁유미를 지목한 것은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고 수없이 되뇌었다.탁유미는 억한 마음을 품고 공수진을 계단에서 밀었고 그는 그걸 직접 목격했다.그 여자가 벌을 받는 건 마땅했다. 공수진은 그 일로 아이를 잃은 것뿐만이 아니라 아예 임신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으니까.그러니 탁유미가 낳은 아이를 공수진에게 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고작 3년이라는 형을 산 것으로 씻겨 내려갈 죄가 아니었다.하지만... 탁유미가 법정에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외치던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꼭 머릿속 깊이 새겨진 낙인처럼 좀처럼 떨쳐낼 수가 없다.그때 그녀는 이미 3년이라는 판결이 났음에도 끝까지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재판장 앞에서 억울하다며 목놓아 울부짖고 재판이 끝나고 끌려나갈 때는 한이 서린 목소리로 이경빈을 향해 말했다.“내가 오늘 겪은 이 고통, 언젠간 너도 똑같이 받길 바라!”당시의 이경
이경빈이 타고 있는 차량이 이제 막 화로 3가에 진입했다. 조금만 더 가면 바로 포장마차 거리가 나온다.이경빈은 기사에게 갓길에서 차를 세우라고 한 다음 아무 말 없이 차에서 내렸다.“대표님, 야식거리를 찾으시는 거라면 제가 아는 집이 있는데 거기로 모실까요?”“아니요. 필요 없습니다.”이경빈은 그의 제안을 거절한 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줄줄이 늘어선 포장마차와 푸드트럭, 이경빈의 눈에는 볼품없기 그지없었다. 평소의 그라면 이런 곳을 절대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늘은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곧바로 가녀린 몸매의 한 여성에게 고정되었다.많은 인파 속에 묻혀 있어도 그는 여전히 한눈에 그 여성을 알아보았다.얇은 티셔츠에 편한 운동복 바지, 거기에 허리춤에 두른 검은색 앞치마까지 탁유미는 그의 곁에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그녀는 지금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가 그녀의 얼굴에 닿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탁유미는 가녀린 팔뚝으로 아주 익숙하게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이경빈은 문득 예전에 그녀가 갈비찜을 해주겠다며 호기롭게 나섰다가 잔뜩 태워 먹고 속상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결국 이경빈이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둘이서 함께 식사를 해결했고 탁유미는 다 먹은 후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너 딱 기다려. 내가 언젠가 너한테 맛있는 갈비찜 먹여줄 거니까! 갈비찜뿐만이 아니라 뭐든 잘하고 말 거야. 그래서 너 살이 통통 오르게 만들 거야.”그러고는 갑자기 풉 하고 웃었다.“왜 웃어?”이경빈이 고개를 갸웃했다.“그냥 네가 살이 통통 올라 배가 나온 아저씨가 되면 어떨까 상상했더니 너무 웃겨서. 그런데 나 요리 솜씨 좋아지면 우리 둘 다 살찌겠다. 하하하.”탁유미는 그때의 다짐대로 지금은 확실히 예전보다 요리 솜씨가 좋아졌지만 이상하게 전보다 훨씬 더 야위었다.이경빈이 과거를 회상하고 있을 때 탁유미는 김
“혼자 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야.”이경빈은 말을 마친 후 옆으로 가 비어있는 테이블에 착석했다.양복 차림의 그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아 조금 웃기기도 했다.탁유미는 이경빈이 이곳까지 직접 걸음을 해 거기에 음식까지 주문할 줄은 몰랐다.여기까지 온 목적이 뭐지?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요리를 하면서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곧 전 메뉴가 준비되고 그녀는 이경빈이 앉은 테이블 위에 하나하나 올리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작은 테이블 위에 메뉴가 넘칠 듯 올려졌다.탁유미는 이 순간 메뉴에 7가지 음식밖에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게 아니라면 테이블을 하나 옆에 붙여야 했을 테니까.“음식 솜씨가 예전보다 좋아졌네.”탁유미가 마지막 메뉴를 테이블에 내려놓았을 때 이경빈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이에 탁유미의 몸이 움찔 떨렸다.“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니까.”변하지 않으면 윤이를 먹여 살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탁유미는 각종 화장품에 매달렸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기본적인 스킨케어만 하고 생기있는 얼굴을 위해 옅은 립스틱 정도만 바르고 다닌다.게다가 스킨케어 제품도 최대한 양이 많고 저렴한 것으로 구매하며 립스틱은 이미 몇 년째 한 가지만 쓰고 있다.그리고 그녀의 손은 음식을 해야 했기에 칼에 베이고 굳은살이 생겨 성한 구석 하나 없었다.탁유미는 말을 마치고 나서 다시 새로운 손님을 받으러 갔다.이경빈은 바삐 돌아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피곤한 게 눈에 뻔히 보이는 데도 그녀는 손님들을 상대할 때 언제나 예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하지만 분명히 예쁜 미소였지만 전처럼 마음속 깊이 우러러 나오는 미소와는 달리 오로지 손님을 상대하기 위한 그런 미소였다.이경빈은 젓가락을 들어 앞에 놓인 음식들을 하나하나 먹어보기 시작했다.그는 셰프의 요리를 맛보기라도 하듯 아주 천천히 음미했다.탁유미는 최대한 이경빈의 존재를 무시하며 그를 다른 손님들과 똑같이 대하려고 애
그 여성은 바로 의자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그 광경을 전부 지켜본 탁유미는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고고하고 항상 제일 좋은 것만 고집하는 이경빈이 고작 이런 유혹에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전에도 인지도가 없는 여자 연예인이 그의 술잔에 약을 타 그를 어떻게 해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경빈은 약효가 분명히 약효가 돌고 있음에도 상대방에게 작은 스킨십도 허락하지 않았다.그 뒤로는 예상했던 바와 같이 그 연예인은 더 이상 연예계에 발을 들일 수 없게 됐고 아예 해성시에서 사라져버렸다.탁유미는 그 기억이 떠오르자 소름이 돋아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그만 생각해. 과거는 악몽일 뿐이야. 그러니까 그만 생각해.’이경빈이 그녀에게 남겨준 유일하게 좋은 건 윤이 뿐이다.탁유미는 떠오르는 기억을 다시 가라앉힌 뒤 이경빈이 있는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그러다 그의 까만 눈과 그만 딱 마주쳐버리고 말았다.고작 눈이 마주친 것뿐인데 그녀는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마치 시간이 멈춘 듯, 무언가에 홀린 듯 그녀는 그를 빤히 바라본 채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이경빈은 무슨 생각인 건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그녀를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그렇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드라마 찍어? 눈빛이 왜 이렇게 뜨거워? 그 뜨거운 눈빛 우리한테도 주면 안 되나?”지독한 술 냄새가 탁유미의 코를 찔러왔다.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는 이미 거하게 한잔한 두 명의 취객이 서 있었다. 그들은 음흉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중 한 명은 스킨십을 시도하려는 듯 어느새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이에 그녀가 다급하게 옆으로 피해 거리를 두고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두 사람을 훑었다.이들은 가게로 찾아와 행패를 부리던 사람들은 아니었다.아니면 그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사람을 더 고용한 건가?그래서 이제는 성희롱인 건가?“어어? 우리가 뭐 벌레라도 돼? 왜 피하고 그래.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몇 살이야?
왜 구해준 거지?탁유미가 비참하면 할수록, 고통받으면 받을수록 그 모습을 옆에서 방관하며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그때 나머지 한 명의 남자가 이경빈에게 주먹을 휘둘렀다.이경빈은 품에 있는 탁유미를 옆으로 밀어버리고는 상대방의 주먹이 꽂히기 전 먼저 주먹을 휘둘러 복부를 세게 가격했다.이경빈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탁유미와 함께 있을 때 그는 회사 일을 처리하면서도 틈을 내 유명한 복싱 선수를 코치로 두고 몸을 단련했었다.탁유미는 그가 취객 두 명을 상대하는 데 있어 전혀 문제없을 걸 알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그녀의 머릿속은 지금 왜 자신을 구해줬을까 하는 생각만 맴돌 뿐이었다.그녀의 예상대로 두 명의 취객은 2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얼굴이 피떡이 된 채 그의 발아래서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러고는 술이 다 깬 듯 그가 옷에 묻은 먼지를 털 때 황급히 도망쳤다.이경빈은 탁유미 앞으로 다가왔다.“앞으로 여기서 장사하지 마.”만약 오늘 그가 없었더라면 탁유미는 아마 두 명의 남자에게 잡혀 험한 꼴을 당했을 것이다.이런 일들이 빈번히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짜증이 밀려왔다. 심지어 아까 두 남자가 도망친 걸 내버려 둔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탁유미는 그의 말에 실소했다.“이런 식으로 내 수입원을 완전히 끊어버릴 생각이었어? 사람을 고용해 행패 부리게 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직접 나서서 쇼까지 하는 거야? 차라리 아까 구해주지 말지 그랬어. 그랬다면 내가 트라우마가 생겨 결국 그만뒀을지도 모르잖아.”이경빈은 미간을 꿈틀거렸다.“아까 그 두 사람 공수진이 보낸 거 아니야.”“그럼 전에 행패 부리러 온 사람들은 공수진이 보낸 게 맞다는 소리네?”그 말에 이경빈은 입을 꾹 닫은 채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탁유미는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모습은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공수진이 맞았다. 억울하게 옥살이해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공수진은 여전히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아니, 진정으로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 사람은 눈앞
대체 왜 그런 말을 한 거지? 눈앞에 있는 여자가 불쌍해서? 한때는 잘 나갔던 여자가 빛을 잃은 채 이곳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게 안타까워서?하지만 그녀는 그가 불쌍하다고, 안타깝다고 여기면 안 되는 여자다. 그녀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윤이 생각해서 얘기한 것뿐이야. 판결이 나기 전까지 윤이는 너와 함께 있을 거고 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윤이가 힘들게 사는 거 보고 싶지 않아.”이 말은 탁유미가 아닌 이경빈이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이었다.“윤이는 내 아들이야. 네 아들이 아니고.”탁유미는 차갑고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전에 네가 했던 말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서 다시 말해주는데, 너는 그때 내가 네 아이를 임신한다고 해도 지우게 하겠다고 했어. 나 같은 여자는 네 아이를 낳을 자격이 없다고도 했고. 그런데 대체 이제 와서 왜 이래? 너야말로 대체 무슨 자격으로 윤이를 데려가려는 건데!”이경빈은 얼굴을 굳힌 채 한 걸음 한 걸음 탁유미의 앞으로 다가왔다.“너는 내 아이를 낳기로 했을 때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했었어야 했어.”탁유미의 몸이 움찔 떨렸다.“아이를 그렇게 원하는 것도 아니면서 네 핏줄이 내 옆에 있는 건 싫어?”“네 옆에서 윤이가 행복할 것 같아? 네가 윤이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뭔데.”이경빈은 그녀의 아픈 구석을 콕콕 찔렀다.“왜, 윤이가 크면 이 포장마차에서 서빙이라도 시키게? 그리고 엄마가 했다는 걸 사람들한테 들켜서 애가 평생 주눅 들어 살았으면 좋겠어?”탁유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하지만 야속하게도 그의 말은 계속되었다.“소송이 끝나면 바로 윤이를 해성시로 데려갈 거야. 너한테 애를 맡기는 것보다 수진이한테 맡기는 게 훨씬 나아. 해성시로 가면 윤이는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좋은 것들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돼. 너, 윤이한테 그런 거 줄 수 있어? 없잖아.”탁유미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반박할 말을 골랐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고는 묵묵히 발걸음을 돌려 식자재를 실은 작은 차에 올라
호기롭게 회사로 찾아간 건 좋았지만 두 사람은 강현수를 만나기도 전에 프런트 데스크에서 막혀버렸다. 한지영이 이곳으로 온 목적을 설명하고 백연신이 누군지 얘기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직원은 그저 강현수가 현재 회사에 없다고만 전할 뿐 어디로 갔는지는 입을 꾹 닫고 알려주지 않았다.한지영이 다급한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자 백연신이 그녀를 진정시키며 말했다.“전화해 보면 되는 일이야.”“강현수 번호 있어요?”한지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없어. 하지만 연락처를 알아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백연신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뭐라고 얘기하더니 5분도 안 돼 강현수의 연락처를 알아냈다.이에 한지영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강현수의 전화번호는 절대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 백연신은 너무나도 쉽게 알아내 버렸다.역시 백연신이라고 해야 할까?백연신은 곧바로 강현수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대로 휴대폰을 한지영에게 넘겨주었다.한지영은 전화기 너머에서 강현수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안녕하세요. 강현수 씨 맞죠? 저 유진이 친구인 한지영이라고 해요. 혹시 강지혁 씨가 유진이를 어디로 데려갔는지 알고 있어요?”한지영이라는 이름이 들리자마자 강현수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그는 한지영을 기억하고 있다.그녀는 임유진이 감옥에 가게 생겼을 때 유일하게 발 벗고 도와준 사람이며 임유진이 형을 살게 됐을 때는 면회하러 자주 갔었던 사람이다.그리고 바로 엊그제 자선 파티에서 얼굴도 봤었다.“아직 알아내지 못했어요. 하지만 계속 찾을 겁니다.”강현수가 대답했다.“그러시구나... 저희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어요. 혹시 강현수 씨 쪽에서 먼저 알아내게 되면 이 번호로 전화 한 통 해주실 수 있으세요?”“그러죠.”강현수는 순순히 알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그의 앞에는 수많은 모니터가 놓여 있었고 화면 속에는 그날 밤의 도로 CCTV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다만 강지혁의 차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