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현이 불쌍한 말투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애원했다.“먼 친척 아주머니인데 어렸을 때 저한테 정말 잘해주셨어요. 멀리서 찾아오셔서 애타게 사정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모른 척해요.”“정아현, 나는 네 돈주머니가 아니야.”설영준이 한 자 한 자 차갑게 내뱉었다.정아현은 지금 정말 돈이 필요했다.비록 먼 친척 아주머니라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 최근 새로 사귄 남자 친구 때문에 필요한 것이었다.사귀고 나서야 상대방이 도박에 나쁜 취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밖에서는 빚까지 져 빚 독촉이 집 앞까지 찾아왔다.금방 연애를 시작한 정아현은 사랑에 눈이 멀어 남자 친구의 눈물 어린 애원을 쉽사리 거부할 수 없었다.한 바퀴 생각해 봐도 돈을 마련할 만한 사람은 설영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설 대표님, 누가 감히 대표님을 돈주머니라고 생각하겠어요. 저는 빌리는 거예요. 정말이에요.”정아현의 마음을 꿰뚫어 본 설영준이 차갑게 웃었다.잠시 후,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좋아, 조금 있다 송금해 줄게.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어.”말을 마친 설영준이 고개를 돌려 문 하나 사이에 두고 자신을 애타게 쳐다보는 송재이를 봤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송재이는 정아현과 통화하면서 자신에게 웃어주는 설영준이 이해되지 않았다.‘양다리라니.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노네!’설영준이 송재이를 보고 웃어주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정아현에게 말했다.“조건은 간단해. 널 한 번 빌려줘.”“빌려달라고요? 저를요? 어떻게요?”정아현이 궁금하다는 듯이 질문했다.하지만 돈을 빌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설영준은 정아현에게 뭘 하라고 하는 대신 질문을 바꿨다.“송재이라는 여자 알아?”정아현이 멈칫하다 이내 반응했다.정아현은 가십 뉴스에서 송재이와 설영준의 사진을 본 적 있었고 남도에서 송재이를 레스토랑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청순하고 아름다운 외모는 한 번 봐도 잊기 어려웠다.“알죠. 정말 예쁜 피아노 선생님이시잖아요.”정아현이 기억을 되짚으며
비록 두 사람은 뜨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저 욕망과 필요로 보낸 시간일 뿐이었다.오랫동안 매일 밤을 함께 있었는데 오랜만에 만나서 함께 한 뜨거운 시간은 별거 아니었다.시간이 늦어 송재이는 경주에서 하룻밤 더 보내기로 했다. 내일 어머니 성묘를 마치고 남도로 돌아갈 계획이었다.설영준도 떠나려는 기미가 없었다.송재이는 굳이 설영준을 내쫓지 않고 어머니가 살아생전 지냈던 옆방으로 향했다.설영준이 또 따라 들어오려고 하자 송재이가 반사적으로 막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사진을 보면서 얘기 좀 나누고 싶으니 방해하지 마!”말을 마친 송재이가 바로 문을 닫았다.억지로 들어가려고 하면 충분히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죽은 엄마를 핑계로 대는 송재이를 보니 누가 봐도 자신과 얽히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설영준이 문 앞에 서서 한 손으로 문틀을 잡았다.송재이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뾰로통한 표정은 분명히 여자의 질투와 화풀이였다설영준이 웃으며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다른 침실로 돌아갔다.다음 날 아침 송재이는 일어나서 샤워하고 택시를 타고 묘원으로 향했다.성묘를 마치고 나오자, 길가에 차 한 대가 보였다.송재이가 차를 지나칠 때야 설영준이 머리를 내밀었다.그의 차고에는 차가 7~8대 있었는데 차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보니 지금까지도 전부 알아보지 못했다.설영준이 여기에 있는 것을 보고 그녀도 매우 놀랐다.송재이가 뭐라 하기도 전에 설영준이 그녀를 향해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얼른 타.”송재이는 이번 경주행에서 설영준과 이렇게 많이 얽힐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차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송재이의 얼굴은 줄곧 차창 밖으로 기울어져 있었다.공항까지 바래다주려고만 하는 줄 알았는데, 공항에 도착하자 설영준도 뜻밖에 그녀를 따라 함께 내렸다.송재이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설영준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나도 남도에 볼일이 있어서.”송재이는 남도 공항에 도착해 정아현을 만나기 전까지 설영준이 갑자기 남도로
남도에 있는 아파트로 돌아온 송재이는 옷을 갈아입고 이불을 들추고 기어들어 갔다.경주에서 발생한 일과 공항에서 마주한 장면 때문에 그녀의 머리는 복잡했다.그녀는 푹 자고 일어나 다시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다.너무 피곤했는지 눈을 감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내 잠에 빠져버렸다.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핸드폰 벨 소리에 깼다.송재이는 비몽상몽 손을 뻗어 수신 버튼을 눌렀다.상대편에서 들려오는 것은 힘없는 윤수아의 목소리였다.“송 선생님...”윤수아는 송재이를 부르고는 바로 울음을 터트렸다.단번에 잠이 깬 송재이가 얼른 몸을 바로 앉으며 물었다.“수아야, 무슨 일이야. 울지 말고...”윤수아는 또래들보다 생각이 좀 어른스러운 아이였지만 중학생이 된 지 얼마 안 된 어린 학생이었다.윤수아는 병상에 누운 채 거즈를 두른 이원희를 보며, 또 몇 시간 전에 있었던 그 장면을 생각하자 얼굴이 창백해져 놀라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송재이는 윤수아에게 주소를 물었다.윤수아가 더듬더듬 답했다.“벼... 병원이에요.”병원이라는 말을 듣자, 송재이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윤수아는 겨우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과 이원희가 집에서 겪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이원희는 윤선주와 이혼을 제의한 후 윤씨 가문을 나와 밖에서 아파트를 얻어 지내고 있었다.이원희의 요구는 간단했다. 재산 분할도 원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자유만 찾고 싶어했다.윤수아와 이원희는 줄곧 사이가 좋았다. 그녀와 윤선주는 부녀 사이였지만 그다지 친하지는 않았다.이원희가 윤씨 가문을 나간 후, 윤수아도 집으로 잘 들어가지 않고 학교가 끝나면 이원희의 아파트에 가서 숙제하고 밤을 보냈다.박윤찬이 그녀의 이혼 사건을 담당하게 된 후, 이원희는 소송에 자신이 있어 순리롭게 이혼을 기다리고 있었다.뜻밖에도 이날 저녁 무렵, 갑자기 흉악한 남자 몇 명이 아파트로 뛰어들더니 이원희가 정성껏 꾸민 작은 집을 부수고 앞을 막은 이원희마저 다치게 했다.당시 윤수아도 함께 있었다.이원희가 괴롭힘을 당하
송재이와 윤수아는 저녁까지 병실에 있었다.내일 등교도 해야 하는 윤수아였기에 밤이 깊어지자, 송재이는 먼저 윤수아를 집에 돌려보냈다.이원희의 아파트는 사람들에 의해 부서지고 문도 고장이 나서 사람이 살 수 없어 윤수아는 일단 윤씨 가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송재이는 내키지 않아 하는 윤수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돌아가면 아버지와 싸우지 말고 조용히 방으로 가서 있어. 이 일은 내가 해결할게.”“아무것도 물어보지도 못해요?”윤수아는 오늘 그 사람들이 이원희를 어떻게 대하는지 직접 목격했다.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모두 꿰뚫고 있었다.윤선주의 평소 행실로만 봐도 그가 한 짓임은 확실했다.윤수아는 집으로 돌아가서 윤선주에게 도대체 왜 그러는지 분명히 묻고 싶었다.윤수아의 눈에 눈물이 맴돌았다.그녀의 눈에는 풀리지 않은 원한이 서려 있었다. 소녀의 고집은 아주 셌다.송재이는 아직 윤선주를 만난 적이 없어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하지만 이원희와 윤수아의 반응만 봐도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다.송재이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며 열쇠를 꺼내 윤수아에게 쥐여주었다.“이거 줄 테니 우선 선생님 집에 가서 며칠 지내.”이렇게 해야만 당분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송재이는 윤수아를 혼자 돌려보내면 윤선주가 그녀의 질문에 화를 낼까 매우 두려웠다. 그때가 되면 또 어떤 상황으로 번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윤수아를 차에 태운 송재이가 다시 병실로 올라갔다.그녀는 바로 병실로 향하지 않고 복도에 서서 박윤찬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원희가 이렇게 맞았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소송 중 이원희에게 가한 행동이 상해죄가 될 수는 없는지 궁금했다.법을 모르는 그녀였기에 박윤찬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뜻밖에 박윤찬도 현재 남도에 있었다.송재이쪽에 일이 생겼다고 하자 박윤찬은 바로 오겠다고 했다.송재이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이원희 집으로까지 가서 깽판을 치며 날뛰는 윤선주가 다시 병원으로 와서
이미 밤 여덟 시가 되었는데 그는 아직도 저녁을 먹지 않았단 말인가?송재이는 거의 뜨거운 손길에 불편함을 느끼며 두 번 정도 몸부림쳤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송재이는 설영준에게 이끌려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두 사람은 병원 근처의 한 식당을 찾았다.송재이는 배가 고프지 않아 물 한 잔만 주문했다.설영준은 칼국수 한 그릇을 시켰다.짧은 침묵 후, 그가 갑자기 물었다. “넌 정아현을 어떻게 알게 된 거야?”그의 어투는 마치 내일 날씨를 묻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송재이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그건 네가...”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송재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전화를 끊으려 했으나, 발신자가 “윤수아”인 것을 보고는 멈췄다.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수아야, 집에 도착했니?” 송재이는 윤수아가 단지 집에 도착했다는 안부를 전하려고 전화한 줄 알았다.“네.” 윤수아는 주저하며 말했다.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생각 끝에 말씀드리기로 했어요. 언제 돌아오세요?”윤수아의 신중한 목소리에 송재이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무슨 일이야?”윤수아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이원희 언니와 관련된 일이에요.”송재이는 더 깊은 주름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갈게.”설영준은 송재이가 전화를 받고 난 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가야 해?”“수아가 나를 찾아서...” 송재이는 말하며 옆에 있던 외투를 집어 들었다.“나 아직 다 먹지 않았어.”“그러면 천천히 먹어. 나는 먼저...” 송재이는 말을 멈추고 그의 차가운 시선을 느꼈다.마치 그녀가 지금 떠나는 것이 그에게 큰 잘못인 것처럼 보였다.송재이는 설영준이 자신에게 이런 심리적 부담을 주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관계에서 그녀는 그의 감정을 신경 쓸 의무가 없었다.그녀는 눈을 내리깐 채, 결국 마음을 굳혔다. “먼저 갈게, 잘 있어.”설영준은 송재이가 돌아보지도 않고 떠나는 것을 그저 지켜보았다.그녀는
송재이가 집에 돌아오자, 윤수아가 소파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수아야, 너 나한테 뭔가 숨기고 있지, 그렇지?”앉자마자 송재이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사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윤수아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정확히 무엇이 이상한지는 말할 수 없었다.윤수아는 입술을 깨물었다.솔직히 말하면, 이번에 이원희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여전히 말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왜냐하면 그것은 윤씨 가문의 스캔들이었기 때문이다.“선생님, 원희 언니가 왜 우리 아빠와 이혼하려고 하는지 아세요? 단순히 아들을 낳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저희 아빠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모두 맞아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어느 날 밤, 저는 물을 마시기 위해 잠에서 깼고, 아빠의 서재를 지나가다, 아빠와 할아버지가 무슨 일로 상의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어요. 그것은...”윤수아는 그다음 말을 이어가기 어려워했다.생각만 해도 역겹기 때문이다.그녀는 겨우 12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송재이는 윤수아의 설명을 듣고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고, 그다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윤선주와 그의 아버지는 인간도 아니었다.윤선주의 전처는 윤수아를 낳은 후, 두 아이를 더 가졌으나 모두 딸이라는 이유로 성별이 확인되자마자 아이를 지워버렸다. 부부간의 갈등이 심해졌다.전처의 정신 상태는 윤선주에게 창피함을 주었고, 그는 결국 그녀를 집에서 내쫓았다.이제 그는 이원희와 결혼했는데, 그녀가 딸을 가질까 두려워서, 윤선주는 그의 아버지에게 씨를 빌려 아들을 낳자는 제안을 했다.윤선주는 윤씨 가문의 후손이라면 누구의 씨앗이든 상관없다고 말했다.윤선주는 그의 아버지와 상의했고, 그의 아버지도 동의했다.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아내가 관계를 맺게 하려는 이런 일은, 송재이는 야설에서만 본 적이 있었다.송재이는 윤선주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이원희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그런
다음 날, 송재이는 박윤찬과 만남을 약속했다.‘씨를 빌려 아이를 낳는 것’ 같은 일은 이원희의 사생활이었지만 소송에서 이기려면 상대방의 잘못을 최대한 찾아내야 했다.앉자마자 송재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박윤찬이 먼저 말했다. “어제 이원희씨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녀가 저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해줬죠.”송재이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어떤 이야기요?”박윤찬은 변호사로서 다양한 별난 사건들을 많이 겪어봤을 것이다. 송재이에게는 가치관이 무너질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그에게는 별로 놀랄 만한 일이 아닌 듯 보였다.박윤찬은 이원희가 이혼을 결심한 진짜 이유를 말해주었다.어제 이원희와 병실에서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때, 그녀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윤선주가 자신을 시아버지의 침대에 올리려 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런 말 하기 어려운 추문을 정말 궁지에 몰리지 않았다면 그녀는 절대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송재이는 한숨을 돌렸다.그녀는 이원희가 체면 때문에 죽을 때까지 이 일을 숨길까 봐 걱정했었다.이제 이원희가 스스로 입을 열었으니, 순조롭게 이혼하기 위해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윤선주와 만남을 약속했어요. 그쪽에서도 변호사를 구했고, 전에 전화로만 얘기했었는데, 윤선주의 태도가 아주 강경하더군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최선을 다할게요.”박윤찬은 송재이가 이원희의 일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여 송재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이었다. 송재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 변호사님의 전문 능력을 믿습니다. 고맙습니다.”“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 말을 해요?” 박윤찬이 웃으며 앞에 놓인 물컵을 들었다. “그런데, 제가 듣기론 지민건... 또 들어갔다던데요?”그는 법조계에서 일하고 있었고, 경찰서에서 일하는 친구도 있었기 때문에 소식이 금방 퍼져 나왔다.지민건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송재이는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을 드러냈다.송재이는 지민건이 자신의 집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일을 박윤찬에게 말했다.박윤
박윤찬은 요즘 남도에 머물면서 이원희의 이혼 사건을 처리하고 있었다.가끔 송재이와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남도에 머물고 있으니, 친구로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송재이는 박윤찬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고, 그저 그가 많은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으로 여겼다.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그가 그녀를 잘 챙겨주었다.혼자 남도에 있는 송재이에게는 때때로 이런 세속적인 따뜻함이 필요했다.그렇게 보름반달이 넘게 지나갔다.이 기간에 송재이와 설영준은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단지 어느 한 밤중에 전화 한 통이 있었다.그때 송재이는 잠들어 있었고, 머리맡의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어둠 속에서 그녀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더듬었다.발신자 표시를 보지 않고 통화 버튼을 누른 후 귀에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 “여보세요…...”하지만 상대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송재이는 몇 번 더 ‘“여보세요'”라고 했지만, 상대방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그녀는 잠결에 다시 잠들어버렸다.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녀는 어젯밤의 통화가 꿈이라고 생각했다.혼란스러운 상태에서 휴대폰을 확인했다.통화 기록에 ‘'설영준'라는 세 글자가 표시된 것을 보고, 그녀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꿈이 아니었다.어젯밤, 그녀는 확실히 설영준의 전화를 받았다.하지만 설영준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걸까?그렇다면 그가 왜 전화를 걸었을까?송재이는 이 시점에서 다시 전화해 물어볼 수도 없었다.그냥 마음속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아마도 잘못 걸었을 거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설영준은 어젯밤 술을 많이 마셨지다.하지만 완전히 기억을 잃지는 않았다.아침에 일어나 휴대폰을 확인하니, 송재이와 1시간 15분 동안 통화한 기록이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았다.그는 송재이가 전화를 받은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는 곧 잠들었다는 것을 기억했다.그는 최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