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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6화

그리고 고정남 쪽은 가정과 사업상의 이중고를 겪으며 오랫동안 풀이 죽어있었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서려는데 익명의 우편물이 도착했다. 그 내용을 보고 그는 다시 쓰러질 뻔했다.

그것은 고한빈과 Y국의 연락기록이었는데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연락 상대는 윌리엄 왕자의 가장 신뢰하는 절친이었다.

이 기록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대신 보낸 이메일도 있었다.

대신 보낸 사람은 육시준의 결혼식에서 소란을 피운 한지철이었다.

한지철은 자신은 고한빈의 제자라고 분명히 신분을 밝혔고, 그의 사부님은 자기와 소통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답장을 써서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였다.

이 자료들이 진짜인지 조작한 것인지 불문하고 존재만으로도 거센 우론의 파도를 일으킬 만하다.

고씨 가문은 그저 평범한 명문가일 뿐이다. Y국의 권력 다툼에 연루되어, 그것도 불리한 쪽을 도왔으니 결말은 절대 좋지 않을 것이다...

이날 점심이었다.

고정남은 급히 한 룸으로 달려가 애타게 기다렸다.

30분 정도 지나자 낯익은 그림자가 룸에 들어섰다.

남자는 커팅이 잘 되어있는 양복에 몸매가 좋고 날씬하며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졌다. 분명 신사 같은 느낌인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등골이 오싹해진다.

고정남은 그를 보는 순간 눈동자가 움츠러들었다.

"너였어?”

육시준은 천천히 걸어가서 그의 맞은편 카시트에 앉아 말했다.

"큰아버지, 왜 이렇게 놀라세요? 저인 거 아는 줄 알았는데.”

고정남은 잠시 말이 없었다.

Y국의 권력 다툼과 관련하여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육씨 가문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는 사람은 서울에서 몇 명 없을 것이다.

육시준은 그중의 하나다...

"네가 만나자고 한 건 나와 얼굴을 붉히고 싶어서는 아닐 거야, 맞지? 말해봐, 원하는 게 뭐야?"

아무래도 큰 시련을 겪어본 고정남은 달랐다. 그는 빠르게 가슴을 추스르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육시준은 웃으며 말했다.

"큰아버지도 참 걱정이 많으세요. 고씨 가문에는 제가 원하는 것이 없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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