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몇 시예요? 제가 혼자 알아서 올 테니까 차 안 보내도 돼요.”강유리는 머리를 옆으로 젖히고 나지막한 소리로 주의를 시키었다."콘셉트 잘 잡아. 최대한 억울하고 불쌍하게."릴리는 순간 웃음을 거두었다.맞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피해자처럼 행동하기로 했다.이렇게 건방진 피해자는 없다. 릴리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고, 한 쌍의 맑은 눈은 더없이 억울하고 진지했다. "오빠, 날 받아주기 싫어도 경기에서 졌으니까 저랑 꼭 가야 해요!”고우신은 침묵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와중에 이렇게 연기를 하는 게 어색하지 않나?릴리는 조금도 어색해하지 않았다. 따라오던 취재진도 그녀가 조금 전의 표정과 행동을 보지 못했다.취재진이 카메라를 들고 따라와 자리를 잡은 뒤에야 그녀는 계속 물었다."내일 어느 병원에 가는지 오빠가 결정하세요. 또 보고서의 진실성을 의심하지 말고요!”주변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서 했다. 또?유전자 검사 결과가 이미 한 번 나왔다고?검사 결과가 일치하는데 고우신이 안 믿는 거야?각양각색의 시선들이 고우신의 얼굴에 모여왔다. 눈빛에는 의혹과 기대가 가득했다.고우신은 잠시 생각하고 마음을 추스른 뒤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좀 더 생각해보겠습니다.”릴리는 눈을 부릅뜨고 그를 믿을 수 없을 듯한 눈길로 바라보았다.이건 내빼려는 뜻인가요?"어떤 점을요? 또 무슨 걱정이 있는 거예요?"강유리가 직접 물었다.고우신은 그의 큰 눈으로 주위를 훑으며 말했다. "이건 우리 집의 사적인 일이니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 않나요?”강유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기에서 졌으면 받아들여야죠. 지금 무슨 자격으로 저랑 조건을 얘기하는 거예요?”고우신은 안색이 안 좋았다. "...”팬들은 옆에서 가만히 구경하다 못해, '약자'를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왜 이렇게 몰아붙이는 거야? 오빠가 내빼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사적으로 얘기하고 싶다는데!”"맞아, 너무 몰아붙
“나는 떳떳한데요. 남의 신분을 훔친 적도 부모님을 뺏은 적도 없어요. 왜 떳떳하면 안 되는데요?”릴리는 연약한 여자였지만 지금만큼은 누구보다도 고집스러웠다.“언니가 왜 성신영을 그렇게 아끼는지는 모르겠어요. 그 이유를 생각하기도 싫고요.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니 부정할 수 없잖아요.”“됐어. 시끄러워. 내일 아침 10시 고성 개인 병원으로 와. 너와 성신영이 오든 안 오든 고정남은 올 테니깐.”강유리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그러자 기자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서둘러 수첩을 가지고 메모했다.내일 오전 10시! 고성 개인 병원!두 자매가 떠나고 나서도 고우신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서로 좀 더 밀어붙이지 그래.’그는 두 사람이 일부러 내기를 크게 만들며 소란을 피운 것은 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물론 그 이유는 아니었다.강유리 그들의 목적이 바로 이 일을 크게 만든 것이다. 그러면서 겸사겸사 고우신의 기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을 고우신은 몰랐다.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 그는 안 갈 수가 없었다.사실 또한 그녀들의 추측이 완전히 정확했음을 증명했다.이날 오후, 이 소식은 주요 신문사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충격! 고성 그룹 작은 아가씨는 성신영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바른 공작이 오죽하면 강유리에게 후계자 자리를 넘겨주었겠는가!][고우신이 아마추어에게 참패! 서울 레이싱계의 최강자, 실력의 싸움일까? 아니면 부자들의 게임일까?]실시간 검색에도 온통 이에 관한 뉴스뿐이었다.전에 LK 고급 차에 관심을 보이며 LK 그룹에 대해 불평했던 사람들은 이젠 줄줄이 자취를 감췄다.고우신이 소식을 덮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강유리의 챌린지 영상을 보고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것 같아 화제를 돌렸을 수도 있다.하지만 그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고우신이 아마추어와의 시합에서 졌다든지 아니면 성신영의 신분을 의심한다든지... 이런 이상한 소문들로 가득 찼다.“오늘 밤 잠이 안
고우신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실제 사용자들이라고 가만히 내버려둬? 우리 아버지의 월급을 받으면서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비서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회장님이 시킨 겁니다.”고정남은 누구도 언론에 간섭하지 말라고 명을 내렸었다. 심지어 내일 그 병원에 대해서도 고의로 소문을 퍼뜨리라고 했다.마치 성신영을 포기하고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 같은 사람처럼 말이다.하지만 고우신은 고성 그룹에서 여론을 막을 준비를 다 하고 성신영을 보상하기 위한 준비를 다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그는 멍하니 비서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비서가 바라보다가 비서가 물었다.“도련님, 회장님이 또 말씀하셨는데요. 클럽을 잠시 닫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어요. 언제 다시 개업할지는 이사회의 의견에 맡길 거라고.”비서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자 고우신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시 물었다.“무슨 뜻이야? 내 클럽을 가져가려는 거야? 아버지가 미쳤어?”그러자 비서는 쭈뼛거리며 말했다.“회장님도 도련님을 지지하고 싶지만 회사 내부에서 구조 변동이 일어날 것 같아 경제적 지원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어요.”“???”모두 다 아는 단어들이었지만 고우신은 도대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성 그룹은 아버지 마음대로 모든 결정을 하는 거 아니야? 뭘 더 지켜봐야 한다고 하는 거지?’비서는 모든 말을 전한 뒤 자리를 떠나려 했다.의기소침해 있는 고우신을 보자 비서는 마음이 약해졌다. 인터넷에서는 그의 유명세가 모두 돈으로 쌓은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래서 비서는 한마디 일깨워줬다.“다시 개업하려면 내일 제때 병원으로 오세요.”어쩌면 다시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한마디 덧붙였다.고우신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문밖을 내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잠시 후, 핸드폰이 울리자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는 화면에 뜨는 이름을 보자 안색이 살짝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들은 성신영은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성신영의 목적은 고우신을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검을 보라고 귀띔해 주려는 것이었다.고우신이 홈페이지를 열기만 하면 성신영을 모욕하는 말을 볼 수 있다. 예전의 고우신 이라면 무조건 그녀를 위해 화풀이 해줄 것이다.마치 성신영이 악플을 보고도 슬퍼할 겨를이 없이 고우신부터 챙기는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어떻게 실검을 보라고 한 번 더 눈치를 줄지 고민하던 중 고우신이 말했다.“다른 일 있어? 없으면 먼저 끊을게.”그러자 성신영이 다급하게 말했다.“잠시만요!”비록 고우신은 전화를 끊겠다고 했지만 담담하게 그녀가 더 말하기를 기다렸다.예상했다는 것처럼 그는 그윽하게 앞을 바라보며 기다렸다.“왜?”그는 천천히 물었다.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그는 성신영이 머리를 쥐어짜며 눈치를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그래서 마음이 여려지면서 침묵을 깨려고 하는 순간 성신영이 울먹거리며 먼저 입을 열었다.“오빠, 혹시 저한테 무슨 불만이 있어요?”그러자 고우신은 대답했다.”왜 그런 생각을 해?”“그 여자의 말을 믿고 걔가 오빠 동생이라고 믿는 거예요?”“...”고우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약간 마음이 흔들렸다.성신영의 신분 그리고 그녀가 자기 앞에서 보여준 이미지의 진실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그의 침묵은 마치 성신영의 물음에 맞다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성신영이 다시 다급하게 말했다.“전에 말했잖아요. 유전자 확인 결과가 어떻든 저는 오빠가 가장 사랑하는 동생일 거라고. 거짓말이었어요?”그러자 고우신이 싸늘하게 말했다.“그래서 말인데. 너 정말...?”비록 의문구였지만 이미 대답을 알 것만 같았다.당황한 성신영은 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가요. 유전자 검사 결과도 봤잖아요. 그리고 어머니 유품도 직접 봤으면서. 저는 오빠가 속을까 봐 걱정이에요. 육시준의 세력으로 서울에서 유전자 검사 결과
그녀는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오늘의 고우신은 예전과 뭔가 달랐고 분명히 그녀를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그녀는 머리를 빨리 굴리며 뭐라도 말해서 그의 믿음을 다시 얻고 싶었지만 그는 쐐기를 박았다.“내일 오전 10시. 차를 보내서 널 데리러 갈게.”“그들은 무조건 보고서에 수작을 부릴 텐데, 이러면 저를 내쫓는 거랑 다름이 없잖아요.”그녀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지적했다.고우신은 눈을 찌푸리고 그녀의 속임수에 계속 당하지 않으려 했다.“뭔가 찔리는 게 있어?”그 말을 들은 성신영은 당황했다.“아니. 아니에요. 그냥...”“감정 결과의 진실성을 보장할 수 있어. 그 누구도 조작하지 못하게 할 거야. 하지만 네가 정말 거짓말을 한다면 고씨 집안도 널 용서할 수 없어. 누구도 날 속이지는 못해.”고우신의 마지막 그 한마디는 여전히 온화하고 우아했지만 말에는 경고가 담겼다.그는 마음이 단순하고 성격이 온화했으나 뼛속까지 거짓말하는 걸 싫어했다.그래서 순진하고 착한 성신영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그녀를 챙겨주고 그녀를 도와주려고 노력했을 때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게다가 그의 눈에 성신영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꼼수가 조금 있더라도 그건 살아남기 위한 반격일 뿐이었다.하지만 주위의 별의별 목소리가 너무 컸기에 그도 다시 이 일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객관적으로 성신영이라는 사람을 관찰했을 때 그는 문득 자신이 상상했던 것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LK 그룹.널찍한 회의실 안의 U자형 테이블 앞에 사람들도 가득 찼다.사람들은 대형 스크린에 번쩍이는 슬라이드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고 옆에 있는 사람과 낮은 목소리로 의논하고 있었다.“정말 말도 안 돼.”“한정 고급 차로 얻은 이익은 확실히 일반 차량보다 높겠지만 이러면 우리 브랜드를 망치는 일이잖아!”“그 포에스 매장 책임자가 누구야? 엄중히 따져야 해.”“그게 아니라. 내가 보기에는 고씨 집안이 우리 파트너인데. 고씨 집안의 작은 도련님을 홀대해서는 절대 안 돼. 만
거론될 수 있는 일들은 모두 토론할 가치가 있다.이사회에서 누군가가 의심을 제기했다가 반박을 당하자 더 이상 아무도 이번 일을 사소한 일로 여기지 않고 모두 진지하고 엄숙하게 자기 의견을 발표했다.아마 방금 그들이 낮은 소리로 토론했던 걸 큰 소리로 말하는 것 같았다.그들은 대략 두 갈래로 나뉘었다.어떤 사람들은 우선 고우신의 요구를 들어줘서 이번 여론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에 반면 어떤 사람들은 포에스 매장에서 그 정도의 이익 때문에 이 어려운 일을 넘겨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아무튼 따지고 보면 포에스 매장이 잘못 처리했기 때문에 반드시 소속 지점장에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여러분께서는 포에스 매장이 이익을 탐냈다고 생각하세요?”육시준이 천천히 물었다.그러자 많은 사람은 어리둥절했다.‘그런 게 아니야? 아니면 무슨 내막이라도 있는 걸까?’육경원은 눈을 살짝 반짝이며 불안한 듯 육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형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이런 작은 실수는 맞췄다고 해도 재미가 없어요.”그러자 회의실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그 누구도 감히 말하지 못했다.육시준이 이번 일은 중시해야 한다고 말한 후에도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이번 일은 사소한 일이라고 계속 말대꾸하는 사람이 있었다.감히 대놓고 말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육경원을 지지하고 있었다.그들은 아무래도 육 대표님이 결혼 후에 예전과 달라졌다고 생각했다.예전처럼 엄격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았고 그룹 내부 일들에도 많이 참여하지 않았다. 심지어 결혼식 날에도 송일 그룹을 위주로 하고 LK 그룹에 대해서는 절대 언급하지 않았다.이런 행동들이 그들의 은근한 불만을 일으켰다...육시준은 시선을 돌려 육경원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일리가 있어. 이런 사소한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지.”육경원은 눈썹을 가늘게 치켜올리고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육시준은 고개를 돌려 임강준에게 눈짓을 보냈다.그러자 임강준은 고개를
회의실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적지 않은 의심의 눈빛이 육경원을 향했다.육경원은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입을 열고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육시준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저도 처음에는 이 매니저가 넷째 동생의 부하라는 걸 믿지 않았기에 임강준에게 조사해 보라고 했어요.”그러자 임강준은 동영상을 끄고 다른 사진을 보여줬다. 통화기록이었다.임강준은 스크린 앞에 서서 업무를 회보하는 것처럼 그 사진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이 사진은 포에스 매장과 넷째 도련님 사무실의 통화기록이에요. 통화 내용은 제가 전부 들었어요.”임강준은 여기까지 말하고 잠시 안경을 위로 밀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넷째 도련님께서 이 차들을 주문한 것이 확실해요. 자세한 내용은 육씨 집안 내부 화합에 도움이 되지 않기에 공개하지 않겠어요.”내부 화합이란 말은 그야말로 적절한 표현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 말뜻을 알아차리고 육경원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통화기록 사진이 나오기 전 까지만 해도 육경원은 뭐라고 변명하려고 했다.하지만 지금 임강준이 통화기록이라는 말을 듣자 그는 완전히 잠잠해졌다...그는 입술을 깨물며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형님께서 이미 저에게 죄가 있다고 했으니 제가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겠죠?”그는 일단 한발 물러서서 기회를 찾으려 했지만 뜻밖으로 육시준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죄를 인정하면 됐어.”육경원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내가 인정했다고?’육시준은 시선을 돌리고 사람들에게 말했다.“이익을 탐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쁜 마음을 품고 육씨 집안의 명성을 훼손하는 건 어떤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어요. 오늘 여러분을 부른 것도 우리 육씨 집안의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똑같은 벌을 받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어요. 오늘부터 육경원은 운청으로 돌아가서 지사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거예요. 이사회의 허락 없이 돌아오지 못하며 본사의 어떤 의사 결정에도 관여할 수 없어요.”“...
방금 육경원은 윤시준이 장 이사에게 묻는 말을 듣고 마음이 조금 놓였다.장 이사님은 어르신이 직접 배양했고 그도 어르신을 많이 존경했으며 육경원을 지지해 주고 있었다.가장 중요한 건 이사회에서도 위신이 높았다.그가 자신을 위해 좋은 말을 몇 마디 더 해준다면 자신을 지지할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하지만 육경원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지기도 전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는 화가 나서 저도 모르게 테이블을 세게 치며 일어섰다.“장세은 씨, 그게 무슨 말이세요!”“...”장 이사는 원래 그에게 지사 책임자 자리를 안배하려고 방법을 생각하던 중이었다. 나중에 지사에서 성과를 좀 내면 핑계를 찾아 다시 본사로 데리고 올 생각이었다.하지만 육경원의 말을 듣고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이게 무슨 태도에요? 내가 틀린 말을 했나요?”이사들과 윗사람에게 불만과 질책을 토로했던 육경원은 갑자기 자신이 너무 충동적으로 행동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렇게 되면 더더욱 육시준에게 꼬리를 잡힐 것이다.그는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속의 분노와 불만을 억지로 눌렀다.그는 고개를 돌려 육시준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육 대표님께서 이사회를 소집해 모두의 의견을 듣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독단적이었어요. 저에게 직접 죄가 있다고 확정했고 제가 해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어요.”“오해하고 있구나. 난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한 게 아니었다. 여러분을 부른 건 증명해 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야.”육경원은 화가 나서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이런...”“해명하고 싶다 하니 들어줄게. 네 목적이 뭔지 말해봐. 왜 그랬어?”“...”육경원은 달갑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자기 꼬리가 상대방에게 잡혔으니 더 이상 화를 낼 수도 없었다.지금 와서 최선의 대책은 최대한 자기 혐의를 벗어버리고 대화의 주도권을 되찾는 것이었다...“그 통화기록들은 비록 제 사무실에서 건 전화였지만 제 입으로 직접 말했다는 증거는 없잖아요. 다른 사람이 시켰을 수도 있잖아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