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시준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송미연이 먼저 선수를 쳤다. "둘이 뭘 그렇게 궁시렁대고 있어?"송미연의 말에 강유리는 순식간에 몸을 꼿꼿이 세웠다. "아니에요. 어머님, 아버님 마음에 감사해하던 중이었어요!""그러니?" 송미연은 조금 멍해졌다.“당연하죠. 아님 저희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어른들 말에 아랫것들이 끼어들면 안 되죠." 육시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담담했다."…"그 말이 육지원을 불편하게 만들었다."…"그 말은 성신영을 꾸짖기 위해 찾은 핑계일 뿐이였지,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송미연은 그를 한번 째려보고는 다시 강유리를 쳐다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버님 말은 너무 맘에 두지 말렴. 그냥 네 편 들어주려고 한 말 일거야. 우리 집안, 그렇게 팍팍한 집안 아니야."그 말에 강유리는 웃음을 지으며 침묵을 지키고 있는 육지원을 쳐다보았다. "진짜예요. 오늘 두 분께 너무 감사했어요."송미연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가족끼리 무슨 그런 말을 하고 그래! 네가 우릴 찾아준 게 오히려 더 고마운 걸! 됐다. 어서 외할아버지 뵈러 들어가 봐."신파를 좋아하지 않았던 송미연은 쿨 하게 이 얘기를 넘겨버렸다.문을 열자,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강씨 어르신은 이미 깨어있었다. 그는 침대맡에 앉아 패드를 손에 든 채로 여유롭게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었다.문이 열리는 소리에, 강씨 어르신이 고개를 들었다."왔어?" 강씨 어르신의 미소는 무척이나 온화하고 자애로웠다. 예전처럼 말이다.강유리가 찾아올 때마다 그는 깨어 있는 상태로 침대맡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곤 했다.그러니까, 방금도 깨어있었단 말이지?바깥에서 들리는 소란을 지켜보고 있었단 말이지?"네. 오늘 일이 좀 있어서, 좀 늦어졌어요." 강유리는 빠르게 반응을 하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강씨 어르신에게 육지원과 송미연을 소개시켜 주기까지 했다."부모님이 항상 찾아뵙고 싶어 하셨어요. 유리가 어르신 몸 걱정을 하는 바람에 이렇게
짧디짧은 몇 개월이라는 시간 안에 강유리는 놀라운 작품들을 여러 개 출품했고, 여러 친구들의 도움과 관리하에 불순한 자의 진면목을 알아내기도 했다.강씨 어르신은 그런 강유리가 자랑스럽기도, 안쓰럽기도 했다…“그리고, 남들이 어떻게 보든 저희는 진심으로 며느리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육씨 집안 사람들도 진심으로 유리를 받아들이고 있고요. 그러니 모두 기꺼이 그녀의 바람막이가 되어줄 겁니다.”송미연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부드러웠고, 그 속에는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힘이 숨겨져 있었다.그 말을 듣자, 강유리는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순간, 따뜻하고 거친 큰 손이 그녀의 손을 감쌌다. 남자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강유리는 고개를 돌렸고, 한 쌍의 깊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그 안에는 무언의 인정이 담겨있었다.송미연의 말은 곧 육시준의 속마음이기도 했다.그렇기에 그는 기꺼이 강유리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것이다. 그녀의 편을 들어주며, 그녀가 영원히 아름답고 당당하게 살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강씨 어르신은 두 사람의 행동을 전부 다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알아요, 전 믿어요.”방금 그는 모든 걸 확인했다.뻔뻔한 고정남의 말에 그는 바로 침대에서 내려왔고 당장 밖으로 달려가 저 미친 새끼를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까지 차올랐었다.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강유리는 흔들림 없이 상대방의 방식으로 복수를 시전했다.힘 좀 있다고 사람 괴롭히는 거?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게다가 예상 밖으로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그녀에게 아주 잘 협조해 주었다…“유리가 태어날 때, 민영이가 사주를 보러 갔었어요. 유리가 복을 안고 태어났다고 하더라고요. 집안으로 복이 들어온대요. 재산이든 사랑이든 부족하지 않게 살아가게 된다고 했어요.”“얘네 엄마가 그런 것도 믿었어요?” 송미연의 목소리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믿기만 한 게 아니에요. 거의 통달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어요!”“…”강민영 얘기
송미연은 어르신과 함께 저녁을 먹었고, 또 잠시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강유리는 조용히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차가운 그녀의 얼굴에는 고분고분함이 가득했다.어른들 앞에서 아이가 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복도.육시준은 문기준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문기준이 낮은 목소리로 요 며칠 조사한 내용을 읊조리고 있었다.강민영의 경력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그녀는 유강 그룹의 아가씨면서도 출신은 미천하지만 성격은 무척이나 건실한 남자와 함께 가업을 이어 나갔다.결혼 후 두 사람 사이에는 바로 아이가 생겼고, 외국으로 6개월간 몸조리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출산 후 몸이 너무 허약해진 탓에 그녀는 외국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더 보내게 되었다.겉으로 보기에는 무척이나 평범한 사실들이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이 모녀에 관련된 정보들은 무척이나 적었고, 출산한 병원도 사립 병원이라 기록이 이미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병원이 리모델링하면서 예전의 진료기록을 다 잃어버렸다던데…“그렇다고 소득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그 사립 병원이 캐번디시 가문의 소유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문기준이 한마디로 결론을 내렸다.그 말에 육시준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또 캐번디시야?”“네! 한 가지 사실이 더 있긴 한데... 아직 의심 중이라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문기준이 생각도 안 하고 바로 대답했다. “말해봐.”“강민영에게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사모님의 이모분이라고 하는데, 비혼주의자시랍니다. 쭉 해외에 살고 있어서 자료가 강민영보다 더 적습니다. 캐번디시네 가문이랑 인연이 깊은 게 아닐까 의심되는 상황입니다.”“…”강유리의 신변에는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고, 이 모든 건 캐번디시네 가문이랑 연관을 지을 수 있었다.처음 그들이 외국에서 마주치게 되고, 그녀의 조사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다 캐번디시네 사람이 중간에 개입해서 그런 것이었다. 귀국한 후 그가 처음으로 콜라보한 작품의 원작자도 캐번디시 가문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뭐요?”육시준이 캐묻자 육지원이 고개를 저었다.“아니, 그냥. 어디까지나 내 짐작일 뿐이야. 고정남도 자기 친딸이 ‘사생아’라 불리는 건 원치 않겠지.”‘그러니까 성신영에게 대충 그 정도 명분만 주고 두고 보려는 거겠지.’이에 육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엄마가 사생아라는 단어를 꺼내니 고정남이 발끈하긴 했었지...’“그래서 사생아가 맞긴 한 겁니까?”“사생아라고 하기엔 또 애매한 구석이 있어.”“왜요?”“다들 고정남이 가문의 반대를 못 이겨서 사랑하는 여자를 포기하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것과 조금 달라.”목소리를 가다듬은 육지원이 말을 이어갔다.“고정남은 정말 가문과 인연을 끊고서라도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하려고 했었어. 그런데... 고태규 회장이 어디 보통 사람이야? 결국 지금의 부인, 그러니까 차한숙과 잠자리를 하게 만들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차한숙은 임신을 했고 쌍둥이를 낳게 됐어. 그런데 아이들이 돌이 다 되어 가는데 호적에도 못 올리고 있으니 차한숙 쪽 부모가 결국 나서게 된 거야. 그제야 여자는 그제야 고정남에게 차한숙이라는 아내는 물론, 쌍둥이 자식까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워낙 자존심이 센 여자니 바로 고정남과 헤어지고 서울을 떠났어. 그래서 지금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거야.”아침드라마 못지않은 스토리 전개에 육시준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갔다.“결국 고정남이 그 여자를 배신한 거군요.”‘와이프가 아이까지 낳았는데도 이기적으로 두 집 살림을 해온 그 우유부단함이 이 모든 사단을 만든 거겠지...’“뭐, 그런 거나 마찬가지지.”육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그 여자도 임신 중이었는데 떠날 땐 아이를 지울 거라고 했었다네. 뭐, 시간이 한참 뒤에야 아이를 낳았다는 걸 알게 됐지만.”이에 육시준이 헛웃음을 터트렸다.“고태규 회장이 숨긴 거겠죠. 다들... 찌질하네요.”‘아니면 영감들은 다 그렇게 비겁한 술수를 쓰는 걸 좋아하는 건가?’“어쨌든 고씨 집안 핏줄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강유리가 육시준에게 물었다.“아까 병원에서 고정남의 반응이 뭔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왜 그렇게 말했는데?”강유리의 질문에 운전석에 앉은 육시준은 여전히 전방을 주시한 채 대답했다.“자상한 아버지인 척, 몇 년 동안 딸을 찾는 척했던 게 전부 가짜였다는 뜻이잖아.”“...”고정남이 회사 업무까지 포기한 채 온 세계를 돌아다니며 옛사랑과 딸을 찾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며 다들 그를 재벌집 아들답지 않은 순정남이라고 감탄했었지만...오늘 성신영을 향한 따귀는 성신영 본인에게는 물론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꽤 충격이었을 것이다.겨우 만난 핏줄, 그것도 그렇게나 사랑했던 여자가 낳은 딸.그들을 정말 사랑했다면 그렇게 매정하게 손을 대진 못했을 텐데...“어쩌면 성신영의 신분을 의심하는 건 아닐까?”하지만 육시준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고성그룹에서 곧 성신영의 신분을 대외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래.”“...”‘그래, 내가 그쪽 사람들을 너무 과대평가했네.’육시준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차안은 적막에 잠겼다.차창에 고개를 기댄 강유리는 창밖을 빠르게 스쳐 지나는 경치를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다.지나치게 조용한 분위기에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 육시준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그의 추측이 맞는다면 강민영은 자기 딸이 이 추잡하고 더러운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길 바라고 모든 걸 숨기려 했던 것이다. 전 세대의 악연에서 벗어나 그저 강민영의 딸로서, 유강그룹의 금지옥엽 첫째 딸로서 살아가길 바랐던 것이겠지.‘그게 장모님의 뜻이라면... 따를 수밖에.’“오늘 부모님께서 결혼식에 대해 말씀하셨잖아.”다시 고개를 돌린 육시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화제를 돌렸다.멍하니 앉아있던 강유리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응, 그러셨지.”‘하, 뭐지?’육시준이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 강유리는 여전히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러니까 내 말은... 할아버지도 깨셨겠다 결혼식 언제 올리면 좋겠냐고.”최대
“오늘 마지막 촬영이었잖아요...”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강유리가 아니었다.“그러니까. 마지막 촬영까지 끝냈으면 다른 스케줄은 없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왜 안 왔어요?”“마지막 촬영까지 끝냈으니까 당연히 쫑파티를 열어야죠!”“스태프들이 준비한 쫑파티 거절했다면서요.”“...”강유리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잘못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든 육경서가 고개를 돌렸다.‘큼, 주아랑 같이 있고 싶었으니까 그러지...’다행히 강유리는 더 캐묻지 않고 우아한 몸짓으로 포크를 내려놓았다.“두 사람이 연애를 하든 말든 난 상관없어요. 뭐, 공개연애를 하겠다고 해도 찬성이고요. 하지만... 두 사람 연애 소식을 다른 기자들 입에서 듣는 건 용납못해요.”“연, 연애라니요!”육경서가 다급하게 두 손을 내저었다.육경서와, 주아 두 사람 사이에 스캔들은 나름 한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지만 팬들이 알아서 그저 촬영팀의 작품 홍보를 위한 노이즈 마케팅인 게 분명하다며 해명 아닌 해명을 해준 덕분에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는 걸 최측근인 강유리가 모를 리가 없었다.‘하, 요것 봐라? 발뺌을 하시겠다?”“아, 두 사람 사귀는 거 아니었어요? 사실 전 이번 작품만 끝내면 도련님 좀 쉬시길 바랐거든요. 주아도 마침 작품 끝냈겠다. 두 사람이 같이 보낼...”“휴가, 좋죠! 감사, 아니. 사랑합니다, 형수님!”강유리가 던진 미끼를 덥석 문 육경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우리 사이에 사랑처럼 위험한 감정은 감당하기 힘들고요.”“헤헤, 아무튼 고맙습니다!”애초에 집을 방문한 목적도 달성했겠다, 행여나 강유리가 또 말을 바꾸기라도 할까 봐 걱정된 육경서는 부리나케 집을 나섰다.별장을 나서 거리를 한참 달리던 육경서는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그러고 보니까 완전 형수님 페이스에 말려버렸네. 두 사람 왜 싸운 건지 물으려고 했던 건데... 뭐, 어쨌든 형수님이 그렇게까지 여유로우시다는 건 형
“...”한참이 지나도 육시준은 아무런 대답도 없고...깊은 한숨을 내쉰 강유리는 일부러 쿵쾅 소리를 내며 돌아섰다.한편, 안방.샤워를 마치고 헐렁한 잠옷을 입은 육시준은 섹시한 쇄골을 그대로 드러낸 채 책 한권을 들고 있다.물론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아 방금 전부터 같은 페이지만 보고 있지만 말이다.잠시 후, 점점 멀어져가는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든 육시준의 눈동자에 의아함이 스쳤다.‘뭐야? 이렇게 가버린다고? 차라리 문을 부숴서라도 들어오고야 마는 여자인데 말이지...’책을 내려놓고 한참을 기다리던 그때...옷방에서부터 탁탁탁 발걸음소리가 들리더니 잠옷 차림의 강유리가 씩씩대며 옷방과 안방을 연결한 다른 문을 벌컥 열었다.성큼성큼 다가온 강유리가 육시준의 턱을 덥석 잡았다.“어쭈, 저 문 하나만 막아놓으면 내가 못 들어올 줄 알았어? 많이 컸네, 아주?”차가운 두 쌍의 눈동자가 서로를 마주보고...갑자기 고개를 숙인 강유리가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곤 복수라도 하듯 그의 입술을 꽉 깨물었다.순간, 육시준의 깊은 눈동자가 더 어두워지고 그는 말없이 엄지로 욱신대는 입술을 살짝 건드렸다.순간, 서로 의견이 부딪힐 때면 싸우지 말고 그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 즉 키스로 싸움을 중단하기로 했던 두 사람만의 약속이 떠올랐다.“이게 키스야?”육시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럼, 키스지. 안 그럼 뭐야? 입술 박치기야?”여전히 씩씩대는 빤히 그녀를 바라보던 육시준이 입을 열었다.“방문 하나 남겨뒀잖아. 왜 그렇게 화가 났어?”“허?”순간 강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옷방과 연결된 엘리베이터를 통해 안방으로 들어온 것이 허를 찌르는 공격이라 생각했던 강유리는 모든 게 그의 계산안에 있었다는 생각에 왠지 허탈해졌다.“그러는 당신은? 왜 화가 난 건데. 뭐 식 올리기 전까진 따로 자? 그럼 지금까진 왜 같이 잔 건데.”강유리는 고개를 더 빳빳이 쳐들었다.“전에는 할아버지께서 깨어나지 못한 상황이었잖아.”“정말
솔직히 안방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육시준을 제대로 혼내 줄 생각이었다.남자가 돼선 식을 올리고 싶으면 올리는 거지 왜 엄마 핑계, 아빠 핑계를 대며 내 맘을 떠보는 거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그런데... 육시준은 역시나 그녀의 예상을 훨씬 더 뛰어넘는 남자였다.자기 주장이 넘치다 못해 이미 결혼식 준비까지 거의 다 마친 상태라니.허리춤에 당당히 얹은 손이 왠지 살짝 떨려왔다.“그럼... 생일날... 식 올리든가...”비록 모기소리만큼 작은 목소리였지만 육시준이 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정말?”“정말이지 그럼! 내가 설마 결혼식 날짜로 장난을 치겠어!”그럼에도 앙큼하게 혼자 식 준비를 진행한 육시준이 왠지 얄미워진 강유리는 고개를 홱 돌렸다.“진짜 생일날에 올릴 거야 아니면 가짜 생일날에 올릴 거야?”“큼... 뭐, 아무 날이나 상관없잖아?”그녀의 대답에 겨우 풀렸던 육시준의 얼굴이 다시 굳어버렸다.“상관없어? 아니, 인생에 한번뿐인 결혼식이야. 좀 진지하게 생각하면 안 돼?”“진짜, 진짜 생일날 올려!”강유리가 다급하게 대답했다.“가짜 생일은 그냥 아무렇게나 정한 날짜란 말이야. 솔직히 지금까지 생일이라고 딱히 축하받은 적도 없고.”“임천강이 생일파티도 안 해줬어?”“뭐?”이 상황에서 갑자기 전남친 언급이라니.강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내 진짜 생일을 아는 사람은 당신까지 네 사람뿐이야.”“다른 세 사람은 누군데?”육시준이 눈을 가늘게 떠보였다.“우리 엄마, 우리 할아버지, 그리고 나까지.”“...”한편, 어느새 침대에 올라온 강유리는 애교 넘치는 고양이처럼 꿈틀대더니 바로 육시준의 품을 파고들었다.“아니,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었으면 미리 말을 하든가! 그리고 아무리 섭섭해도 그렇지. 와이프를 문전박대를 해? 우리 둘 다 잘못했으니까 쌤쌤, 없던 일로 치자, 응?”고개를 숙인 육시준의 눈동자에 귀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강유리의 얼굴이 들어왔다.다른 사람에게는 항상 차갑고 도도한 그녀, 이런 표정을 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