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임천강을 바라보았다.임천강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역시, 이 여자는 아직 날 잊지 못 했어.’그는 성신영에게 안심하라는 눈빛을 보내고는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신영이 뿐이야. 난 너한테 기회를 줬어. 네가 그걸 거절한 거고.”그가 말한 기회는 바람 피운 것을 들킨 날에 그가 너랑 결혼은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었다.강유리는 그와 입씨름을 하기도 귀찮아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신영이 그녀의 팔목을 잡으며 말했다.“언니, 우리 얘기 좀 해.”말을 마친 그녀는 임천강에게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좋게 대화로 풀겠다고 말했다.임천강도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인상을 쓰며 자리를 떠났다.어차피 강유리가 자신을 잊지 못했다는 걸 확인한 걸로도 충분했다.임천강이 떠나자 성신영은 부드러운 미소를 싹 지우고 경멸에 찬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언니, 들었지? 천강 오빠는 나만 사랑해!”“그래. 평생 둘이 행복하게 살아.”강유리는 살짝 손을 빼며 말했다.성신영은 그녀의 차가운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천강 오빠가 정말 언니를 걱정해서 그런 말을 한 것 같아? 오빠는 그냥 육경서랑 계약하고 싶은 거뿐이라니까? 그러니까 우리 천강 오빠한테서 멀리 떨어져! 평생 언니는 나한테 상대가 안 되니까!”성신영은 아무리 연기라도 임천강이 강유리에게 잘해주는 게 기분 나빴다.임청강은 그녀의 남자였고 가문의 재산도 모두 그녀의 것이어야만 한다.육경서?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언니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천강 오빠는 나를 선택했잖아? 그리고 언니는 나한테 결혼 선물을 해줘야 하는 입장이고!”의미심장한 말을 마친 성신영은 미련없이 뒤돌아섰다.강유리는 인상을 쓰며 그녀의 뒷모습을 쏘아보았다.약혼식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성홍주는 무대 위에서 감개무량한 얼굴로 축사를 말한 뒤, 가족을 사랑하는 장녀가 동생을 위해 큰 선물을 준비했다면서 그녀를 무대로
분위기가 순간 이상해졌다.박수 소리도 뜸해졌다.성신영 모녀가 어디 출신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냥 원래 이 집 안주인인 강민영이 세상을 떠나고 이들 모녀가 나타났다는 것만 기억했다.지금의 사모님은 성홍주의 첫사랑이었기에 사람들은 그녀가 도시에서 자랐다고 생각했다.아무도 그들의 출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그런데 강유리가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고의인 건지는 모르지만….성홍주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강유리가 이렇게까지 가문의 체면은 안중에도 없이 사람들 앞에서 망신줄 줄 몰랐다. 하지만 그가 무대에 초대한 거라 당장 내려가라고 할 수도 없었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이번 시즌 수익이 얼마나 되는데?”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강유리 손에서 돈이라도 받아와야 했다.“제가 유강 엔터를 물려받기 전에는 아버지가 경영하셨죠? 시즌 실수익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버지가 가장 잘 아시겠죠.”강유리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담담하게 대꾸했다.성홍주도 침착한 목소리로 응대했다.“유강 그룹에 소속된 기업이 얼마나 많은데 언제 잘 나가지도 않는 엔터 사업을 신경 쓰겠어?”강유리는 그가 드디어 엔터 사업이 불황이라는 것을 인정하자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성홍주는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그래요? 그럼 제가 돌아가서 장부 잘 정리해서 공개할까요?”여자는 눈을 깜빡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성홍주의 동공이 순식간에 확장되었다.유강엔터는 사실 매년 적자였다. 다른 기업에서 돈을 끌어다 쓰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흑자로 보여도 사실 모든 게 가짜였다.가짜 장부가 세상에 공개되면 그는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강유리!”“그래야 신뢰를 줄 수 있죠. 안 그러면 제가 돈을 빼돌렸다고 생각하면 어떡해요?”그녀는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으며 성홍주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이건 공공연한 도전장이었다.성홍주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리에서 힘이 풀리고 식은땀이 났다.옆에 있던 왕소영은 다급히 그를 부축하며 비서에게 쫓아내라
‘한가족답네. 뻔뻔한 모습이 아주 꼭 닮았어. 그러니까 어떻게든 나한테서 돈을 뜯어내야겠다는 거지?’추악한 가족들의 얼굴을 쭉 훑어보던 강유리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오늘은 돈 때문에 온 거 맞아요.”강유리의 말에 성홍주를 비롯한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유강엔터의 재정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아빠도 알고 계셨죠? 하루, 이틀만에 이렇게 된 건 아닐 테고... 그런데 놀랍게도 회계 장부는 해마다 흑자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더군요...”“너 그게 지금...”성홍주의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일단 아버지께 만회할 기회를 드릴까 해요. 3개월 안에 회계 장부 상태 그대로 돈 채워넣으세요. 안 그럼 회사 대표로서 이 사실을 이사들에게 알릴 수박에 없으니까요.”말을 마친 강유리가 우아하게 돌아서려던 그때, 성홍주가 성한일에게 눈치를 주었다.이에 바로 문을 닫은 성한일이 차가운 얼굴로 강유리를 노려보았다.“누나, 우리 가족끼리 이러지 말자. 웬만하면 좋게 말로 해결하는 게 좋지 않겠어?”강유리가 반박하려던 그때, 성홍주의 근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내가 그 동안 널 너무 오냐오냐 한 것 같구나. 한일아, 무릎 꿇려.”한편, 검은색 벤틀리.조수석에 앉은 육경서가 태블릿 PC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육시준을 자꾸만 힐끔힐끔 돌아보고 있다.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분주한 육경서의 모습에 참다 못한 육시준이 미간을 찌푸렸다.“할 말 있으면 그냥 해.”“형, 정말 거기 형수님 혼자 보내도 돼? 우리 형수님 괴롭힘이라도 받으면 어쩌려고.”어느새 강유리와 친해진 육경서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하지만 육시준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그럴 리가 없어.”“뭐야? 왜 그렇게 확신해. 형은 와이프 걱정도 안 돼? 형수님은 도대체 왜 형이랑 결혼한 거야.”“잘생겨서.”“뭐?”이 무슨 왕자병 말기 환자가 내뱉을만한 대사란 말인가.육경서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그때, 육시준은 드디어 태블릿 PC에서 눈을 뗐다.
육경서의 오버 리액션에 육시준은 불쾌한 얼굴로 그를 돌아본다.휴대폰과 육시준을 번갈아 바라보던 육경서가 결국 자신의 휴대폰을 건넸다.유강그룹 직원 메신저 단톡방의 메시지를 확인한 육시준이 미간을 찌푸렸다.“다들 이 기사 SNS에 공유해 주세요.”강유리의 비서가 성신영이 어린이 재단에 10억을 기부하기로 했다는 기사 링크를 보낸 것이었다.“이 사람은 누구야?”“형수님 비서. 형수님처럼 포스가 넘치는 사람이랄까?”기사를 한동안 빤히 바라보던 육시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김 기사님, 유리네 집으로 가주세요.”“알겠습니다.”육시준의 말에 차량이 바로 방향을 돌리자 육경서의 얼굴에 드디어 미소가 걸렸다.“오, 드디어 우리 형수님한테 힘을 실어주기로 한 거야? 오케이. 그럼 나도 바로 공유해야지~”톱스타인 육경서의 인기에 힘입어 기사는 바로 톱 라인에 걸리게 되었고 성신영의 팬들은 결혼이라는 경사를 앞두고 어려운 아이들에게 기부를 하는 성신영을 향해 얼굴만큼 마음도 예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한편, 스타인 엔터의 힘을 이용해 기사를 내리려던 임천강은 약속과 달리 어느새 인기 검색어로 오른 기사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한편, 강유리는 욱신거리는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탐욕으로 이미 물든 가족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싸움 되게 잘하니까 조심해!”전에 이미 강유리에게 한방 먹은 적이 있었던 성신영이 괜히 성홍주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부모님까지 다치면 큰일나니까!”그녀의 말에 건장한 보디가드 두 명이 바로 앞을 막아섰다.일촉즉발의 순간.“똑똑똑!”급박한 노크소리에 바로 문 근처에 서 있던 성한일이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누구야?”이에 문 밖에 서 있던 임강준이 젠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임강준입니다. 저희 대표님께서 사모님과 함께 댁으로 들어가겠다고 하셔서요.”‘이 목소리... 귀에 익은데. 어디서 들어봤더라?’강유리가 미간을 찌푸렸다.한편, 성홍주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강유리 때문에 정말 여기까지 왔다고? 계약
“그러게요.”임강준이 허리를 숙였다.육시준의 포스에 눌려 다들 말도 제대로 못하던 그때, 그나마 먼저 정신을 차린 성홍주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저기... 누구신지...”그의 질문에 임강준이 대신 대답했다.“LK그룹 육시준 대표님이십니다.”육시준, 로열엔터의 대표이자 대한민국 재계 1위 LK그룹의 주인.워낙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터라 나름 재계에서 괜찮은 지위를 가진 성홍주였지만 육시준을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아들 뻘인 남자 앞에서 쪽팔리게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대충 상황 파악을 끝낸 강유리가 쪼르르 달려갔다.“올 필요 없다고 했잖아.”하지만 육시준의 시선은 그녀의 작은 얼굴에 남은 붉은 자국으로 향했다.“다쳤어?”미간을 찌푸린 육시준이 그녀의 상처를 살짝 어루만졌다.손가락을 타고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고 전류가 흐르는 듯 찌릿찌릿한 느낌에 강유리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큼, 괜찮아. 이쪽은 내가 다 해결했으니까 집에 가자.”괜히 민망해져 그의 손길을 피한 강유리가 대답했다.“제대로 처리한 거 맞아?”육시준의 시선이 방안에 있는 다른 이들을 훑고 지나자 다들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응, 그렇다니까.”뭔가 찝찝했지만 강유리가 그렇다고 하니 육시준도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연스레 그녀의 손을 잡았다.“저기요!”바로 그때, 또랑또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목소리의 정체는 성신영. 육시준을 보는 순간, 연예계에서 미남은 수도 없이 만나왔던 그녀였지만 남다른 포스와 태가 나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입을 떡 버릴 수밖에 없었다.순간 옆에 서 있는 임천강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지고 그와 자연스레 스킨십을 주고 받는 강유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질투심의 불길이 화르륵 타올랐다.‘왜! 강유리 저딴 계집애가 어떻게 저런 남자랑...’육시준과 강유리가 자리를 뜨려하자 다급해진 그녀가 한발 앞으로 다가섰다.“형부 맞으시죠? 궁금해서 그런데... 저희 언니 결혼 전에 일, 형부한테 솔직하
파티는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임천강은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하루종일 웃느라 입꼬리에 경련이 날 지경이었지만 수많은 사람들 속, 육경서를 발견한 임천강의 입가에 드디어 진심어린 미소가 피어올랐다.“두 분 결혼 축하드립니다.”“별말씀을요. 저랑 신영이 사귄 지도 3년인데 결혼해야죠. 그 동안 저희 두 사람끼리 쌓은 추억,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싶은 욕심도 좀 있었고요.”임천강의 손짓에 비서가 바로 영상을 재생하기 시작했다.조명이 어두워지고 스크린에 그 동안 두 사람이 찍은 사진들이 플레이되기 시작했다.‘육경서... 나랑 별로 친분도 없는데 여기까지 왔네. 이건 분명 절호의 기회야. 어떻게든 스타인으로 영입해야 해.’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바라보며 자랑스러운 눈빛을 짓던 임천강이 육경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저랑 신영이가 사귈 때만 해도 저희 스타인도 겨우 시작 단계에 불과했고 신영이도 별 볼일 없는 신인이었죠...”“그러게요. 수많은 신랑 후보들 중에서 선택받으신 거 축하드립니다.”“네?”육경서의 뜬금없는 말과 심상치 않은 주위의 분위기에 임천강이 스크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분명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가 담긴 영상이 재생되어야 할 스크린에는 지금까지 성신영이 만나왔던 남자들과의 수위 높은 사진들이 나오고 있었다.1분도 안 되는 영상에 나온 남자들의 얼굴만 9명 남짓.하객들의 술렁거림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뭐야? 서로 첫사랑이라고 하지 않았어?”“성신영이랑 작품 함께한 남자들이 대부분인데. 촬영 스냅컷 같은 게 아닐까?”“저 사진들 수위를 봐. 그게 말이 돼?”“...”잠깐 머릿속이 새하얘졌던 임천강이 소리쳤다.“당장 꺼! 영상 당장 끄라고!”분노의 고함과 함께 임천강이 부랴부랴 백스테이지로 달려가고 그 비굴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육경서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감히 우리 형수님을 배신해? 너도 망신 한번 당해 봐라.’한편, 검은색 벤틀리 차 안.창밖을 내다보던 강유리는 연신 한숨을 내쉬
육시준의 말과 달리 강유리도 나름대로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어차피 오늘 성신영, 임강준의 결혼식이니 큰 소란은 일으키지 못할 테고 한, 두 대 정도 맞아주고 그들의 재산을 전부 빼앗을 수만 있다면 꽤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책망이 담긴 육시준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상하게 짜증이 치밀었다.‘뭐야.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강유리가 발끈하려던 그때, 육시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걱정되잖아.”순간,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던 욕설이 덜컥 걸려버리고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꾸했다.“별일 없잖아. 그냥 살짝 부딪힌 거야. 당신이 호하고 불어주면 바로 괜찮아질 것 같은데?”가로등 불빛에 생긴 나뭇잎 그림자가 차 안으로 비쳐들며 강유리의 아름다운 얼굴을 얼룩지게 만들었다.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얼굴을 바라보다 어딘가 실망스러워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자기 말이 심했나 싶어 부드러운 목소리로 한 마디 덧붙인 육시준은 순식간에 표정이 바뀌는 강유리의 모습에 픽 웃었다.‘여자들은 이렇게 표정이 휙휙 바뀌는 건가?’“뭘 멍하니 있어. 어서 불어봐. 지금 이 기회 놓치지 마.”강유리는 얼굴을 더 바싹 가져다댔다.운전석에 앉은 임강준은 삐친 강유리를 달래주는 육시준의 말을 들으며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다.한편, 육시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강유리는 입을 삐죽 내밀며 더 불쌍한 척을 해보였다.“붓진 않았는지 좀 봐줄래? 아빠가 나한테 찻잔을 던졌단 말이야. 내가 빨리 피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얼굴에 화상 입을 뻔했다고!”“저쪽에서 때렸으면 너도 반격을 하지 그랬어.”“저쪽 쪽수가 더 많은 걸 어떡해.”이에 강유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리고 웬만큼 세게 나오지 않는 이상 그냥 가만히 있을 예정이었어. 거긴 저쪽 구역이나 마찬가지잖아.”“하, 적진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곤 있었네?”‘뭐야. 이 정도로 애교까지 부렸으면 대충 넘어와야 하는 거 아니야?’하지만 이대로 어색한 분위기를 가져가기 싫었던 강유리는 거의 그의
무수한 소문들이 소리없이 퍼져나가는 깊은 밤.성신영의 전 남친 모음 파일은 깔끔하게 삭제되었지만 사람들의 기억마저 삭제할 순 없는 법.성씨 일가 저택의 분위기는 무겁기만 하다.소파에 앉은 임천강 옆에 다가간 성신영이 오열하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오빠, 그 사진들 다 조작된 거야. 제발 나 좀 믿어줘...”조작이라기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사진들이었고 이 변명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성신영 본인도 알고 있었지만 그저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강유리, 도대체 그 사진들은 다 어디서 난 거야.’“강유리 그 계집애가 우리 신영이한테 앙심을 품고 그런 거야. 천강아, 너 절대 그 사진들 믿으면 안 된다?”왕소영 역시 거들었다.한편, 역시 성신영의 편을 들려던 성한일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의 발에 약을 발라주고 있는 비서를 퍽 하고 차버렸다.“야, 살살 좀 해!”“그만!”참다 못한 성홍주가 소리를 지르고...사고뭉치 남매를 바라보던 그는 결국 두 사람을 향해 손을 저었다.“다들 방으로 돌아가. 천강이랑은 내가 얘기할 테니까.”“아빠.”하지만 성신영의 붉어진 눈시울을 바라보던 성홍주가 훨씬 누그러진 목소리로 그녀를 타일렀다.“신영아, 이 일은 아빠한테 맡기고 일단 방으로 들어가있어.”잠시 후, 드디어 거실에 성홍주, 임천강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한편, 성홍주는 자신이 재계 1위 그룹 대표 장인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에 어깨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모습이었다.“천강아, 너랑 신영이가 하루, 이틀 만난 사이도 아니고. 신영이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알고 있습니다.”파티가 끝난 뒤 임천강이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그렇다. 사랑스러운 외모에 더 사랑스러운 성격, 성신영은 인기가 많은 스타일이었고 남자들의 구애가 끊이지 않았다.그렇지만 임천강은 단 한 번도 그런 것에 질투를 느낀 적은 없었다.오히려 그렇게나 대단한 여자가 내 애인이라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었고 강유리와 헤어질 때도 단
“뭐가 문제야? 유리 신분은 이미 공개된 비밀이니까 내가 지시만 하면 서류는 아무 문제가 없어.”바론 공작이 대수롭지 않게 손을 저으며 말하자 육경서가 물었다.“그럼 저는요?”“육 서방 서류가 조금 까다롭긴 하지만 자네가 협조하기만 한다면...”“협조 못 해요.”육시준이 바로 대답하자 바론 공작은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면서 나한테 왜 물었어? 이럴 거면 귀국할 거라고 얘기하면 되 것을 남을 것처럼 쓸데없는 말을 한바탕 물었어?’“하지만 전 유리 의견을 존중해요. 유리가 남고 싶다면 저도 함께 남을 것이고 비행기는 이미 준비됐으니 싫다고 하면 바로 출발할 수 있어요.”바론 공작은 말문이 막혀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그래서 자네가 지금 내가 유리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거야?”육시준은 그걸 이제야 알겠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말은 그렇지 않았다.“그런 뜻은 없어요.”바론 공작은 육시준을 힘껏 노려보더니 귀찮은지 가버렸다.‘이 자식이 보면 볼수록 마음에 안 들어. 유리 앞에서 갖은 자상한 척을 다 하더니 나만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어. 기다려 봐. 내가 유리를 설득해서 이곳에 남게 하면 널 데릴사위로 맞아들일 거야.’시간이 훌쩍 지나 제2부가 시작되었다.이 동안에 육경서는 그날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잊어버린 듯이 여전히 신주리의 주위를 맴돌며 갖은 비위를 맞춰갔다.육경서는 녹화 날 댓바람부터 캐리어를 준비해 신주리의 아파트에 도착했고 카메라 감독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좋은 아침이에요.”한 무리 사람이 돌처럼 굳어버리더니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었다.육경서는 그런 사람들을 뒤로한 채 앞장서서 문을 노크하자 그걸 본 카메라 감독은 신속하게 카메라 초점을 그에게로 맞추며 입을 열었다.“경서 씨 여긴 무슨 일이에요? 오늘 녹화하는 날인 걸 잊지 않았죠?”“알아요.”육경서가 대충 대답하자 카메라 감독이 물었다.“그럼 경서 씨 카메
문이 쾅 하고 닫히면서 하마터면 바론 공작의 코에 부딪힐뻔하자 그는 화가 나 펄쩍 뛰었다.‘역시 딸내미는 시집가면 남이야. 자기 남편밖에 몰라. 열받아.’강유리 심부름을 다녀왔던 도우미는 무슨 일인지 살짝 예상했지만 굳게 닫힌 문을 보고 다시 험상궂은 바론 공작을 보더니 비밀을 배속으로 삼켜버리면서 말했다.“부부 사이 일이겠죠. 공작 어르신은 잠깐 기다렸다가...”“대디 걸이라고 누가 그랬어? 저 아이가 부부 사이의 일을 나한테 말해줄 것 같아? 이럴 때면 아비를 문밖에 버려두고 말이야. 사기꾼 같은 계집애.”비록 말은 이렇게 했지만 바론 공작은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강유리는 너무 흥분돼 정신이 나갔는지 육시준을 방안으로 끌어들인 뒤 화장실에 숨어 뒤에 감춘 물건을 보여줬다. 빨간 두 줄이 눈앞에 나타나자 육시준은 멍하니 서 있었고 표정은 변함없지만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육시준은 가까스로 흥분을 억제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이게 뭐야? 그래서 결과가 뭐야?”“이게 뭔지 몰라? 두 줄이잖아. 나 임신했어. 이번에는 진짜야.”강유리가 활짝 웃으며 감격해 말했다. 육시준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테스트 시제를 받아 쥔 손이 살짝 떨리는 것으로 봐서 담담한 척했을 뿐이다. 그는 선명하게 찍힌 빨간 두 줄을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사용 설명서를 읽어보더니 한참 뒤에야 하늘이 무너져도 끄덕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표정이 무너지면서 웃음꽃이 만발했다.“그렇다면...”“당신 아빠가 되었어.”강유리는 이런 육시준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참지 못하고 재차 설명해 줬다. 다음 순간 강유리의 발이 허공에 뜨더니 육시준이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고 천정이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귓가에는 흥분으로 가득한 남자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내가 아빠가 됐어. 드디어 아빠가 됐어. 내가 이럴 줄 알았어.”강유리는 머릿속이 죽통이 되는 것 같아 작은 손으로 그의 팔뚝을 마구 흔들며 말했다.“진정. 진정. 정숙.”이 순간에 무슨
강유리가 잠깐 멍하더니 살짝 고개를 쳐들며 물었다.“왜?”그러자 육시준은 강유리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자기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남은 일정은 별로 끌리지 않아.”강유리의 눈까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솔직히 요 며칠은 주로 집에서 바론 공작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남은 일정에 대해 강유리도 별로 흥미가 없었다.그리고 예측하는 것이 있기에 그 일정을 소화하기에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강유리는 육시준이 눈치챘는지를 모르기에 머리로 그의 가슴팍을 가볍게 비비더니 온화하게 물었다.“여보, 내가 요 며칠 라이브에 정신이 팔려서 당신한테 신경 못 썼어.”“맞아. 그래서 어떻게 보상할 거야?”육시준이 대수롭지 않게 묻자 강유리는 고개를 들고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보통 때라면 착한 육시준이 그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이해한다고 했을 텐데 보상을 요구했다.“부부 사이에 보상을 얘기하면 서운하지.”강유리는 작은 손을 내저으며 생글생글 웃었다.육시준은 그런 강유리한테 속지 않고 강경하게 말했다. “저번에 내가 긴급회의를 했다고 나한테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어? 그때는 왜 내가 서운해할 거란 생각을 안 했어?”‘이득 앞에서 못 본 체하는 건 바보가 아닌가?’하지만 강유리는 절대 육시준이 쉽게 이득을 보게 하지 않을 것이다.“좋아. 보상해 줄게. 내가 그렇게 억지 부리는 사람이 아니야. 방금 전의 제의 들어줄게.”그 말에 육시준은 미묘한 눈빛으로 강유리를 바라봤다.‘방금 제기한 요구라면 혹시 앞당겨서 귀국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육시준은 이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고 항상 다른 사람을 계략에 빠뜨리던 그지만 강유리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앞당겨 귀국하자고 한 건 사실 진짜로 귀국하자는 것이 아니고 강유리가 요즘 회사 일과 다른 일에 너무 정신이 팔려 자기한테 소홀한 것 같아 귀띔해 주려 했던 것인데 그녀가 바보인 척하며 그의 제의에 찬성했다. 강유리는 육시준의 놀란 표정을 보고 신
육경서는 화를 참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욕이라도 할까 봐 아예 전화를 끊어버렸다. 형수를 욕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강유리의 뒤끝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더욱 두려운 건 육시준이었다. 화를 못 이겨 육경서는 핸드폰을 소파에 집어 던지고 미친 듯이 머리카락을 헤집더니 바닥에 있는 쿠션과 인형을 발로 차버리고는 다시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발길에 채워 저 먼 곳에 불쌍하게 누워있는 인형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이내 주워서는 원래 자리에 예쁘게 놓아줬다. 이건 주리가 선물한 것이기에 절대 이 아이한테 화풀이를 해서는 안 된다. 육경서는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형수가 한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그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기에 강유리가 주리를 설득해 화해하지 못하게 한 것이고 두 사람이 절친이기에 그녀를 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이렇게 좋은 절친이 있으니 주리는 절대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육경서가 남도 아니고, 아아아아악!강유리가 빨리 도망치라고 했기에 주리가 육경서를 냉랭하게 대한 것이고 전혀 기회를 줄 뜻이 없었으며 오해를 풀고 나서도 화해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하고 이 사실을 받아들인단 말인가?육경서는 털썩 주저앉아 오랫동안 생각하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절대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철없고 진지하지 못한 게 생리적 결함도 아닌데 고치면 되잖아.’육경서는 반드시 주리에게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그녀가 다시 자기를 신임할 수 있게끔 하리라고 결심했다.다른 한편 강유리는 전화를 끊고 나서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육경서가 절대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모든 심리 변화와 최종 결정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강유리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무의식 간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깜짝 놀라 흠칫했다. 언제 들어왔는지 육시준이 팔짱을 끼고 베란다 옆 수납장에 기대어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언제 왔어? 부르지 그랬어. 깜짝 놀랐잖아.”
강유리는 육경서의 목적을 잘 알고 있었고 아마 여론 뒤에 또 모순이 생긴 모양이다. 솔직히 강유리는 두 사람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긴 하지만 육경서가 아직 철들지 못했고 반평생을 도련님으로 살아왔기에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당연히 자기 앞에 놓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조금만 모순이 생기거나 좌절을 겪으면 의심하고 심지어 포기해 버리기에 이대로 지속된다면 두 사람 모두 힘들어질 것이고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할 것이다.강유리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도련님한테 비밀을 알려드릴게요.”육경서는 전혀 감흥이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비밀이요?”육경서는 주리와 연관된 것이 아니라면 모든 것에 흥미가 없었지만 형수 말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주리가 처음 육씨 가문에 왔을 때 어머님이 사실 두 사람을 좋게 보지 않았어요.”강유리가 진지하게 말하자 육경서는 몇 초 동안 침묵하더니 이내 터져버렸다.“이게 다 형수님 탓이잖아요. 엄마. 아빠 앞에서 제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이상한 소리를 해서 남의 집 귀한 딸을 제가 해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그러자 강유리는 담담하게 말했다.“이게 왜 이상한 소리예요? 도련님이 저한테 직접 말했잖아요.”“형수님, 미안해요. 지나간 일은 지나가게 해줘요.”“도련님이 얘기를 먼저 꺼냈어요.”강유리가 느릿느릿 말하더니 이내 덧붙여 말했다.“제가 이 말을 하려는 건 어머님 태도 때문에 주리가 그날 기분이 상당히 잡쳐있었어요.”육경서는 이해가 안 가는지 되물었다.“왜요?”강유리는 어이가 없어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도련님 생각에는요?”“주리가 승벽심이 강하고 어디를 가든 항상 주목받던 사람인데 어르신들의 사랑을 못 받으니 서운해서 그러지 않았을까요?”육경서 말에 강유리는 조용히 눈을 흘겼다.‘여태까지 솔로인 데는 다 이유가 있어. 미련 곰탱이 같으니라고.’오랜 침묵 끝에 육경서가 눈치를 챈 것인지 아니면 자신감이 붙은 건지 담대하게 예측했다.“혹시 저를 위해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바론 공작이 하도 재촉하는 바람에 의료진은 불같이 달려왔고 한바탕 검사를 마친 뒤 아무 문제도 없다는 아주 난처한 결론을 내렸다.“당신들 뭐 하는 사람이야? 아무 문제도 없는데 왜 갑자기 헛구역질이 나?”“아빠가 너무 흥분하셨어요. 단순하게 위장이 불편했을 뿐이에요. 음식 습관이 안 맞을 수도 있잖아요.”강유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바론 공작을 위안했고 지금은 또 괜찮아진 것 같기도 했다.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강유리의 말에 찬성했다.“맞아요. 그럴 수도...”바론 공작은 그때 비수처럼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며 뒷말을 제지했다.‘네 자식이 감히 음식 습관이 안 맞다고 말을 하기만 해 봐. 내 딸이 어떻게 자기 집에서 음식 습관이 안 맞을 수 있어?’얼토당토않은 이유이고 이건 강제로 귀국시키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의사는 그제야 바론 공작의 말뜻을 이해하고 이내 덧붙여 말했다.“아가씨가 이곳에 오신 지 한참 되셨는데 음식 습관 때문에 위장이 불편할 건 같지 않고요. 제가 보기에는 내일 병원에 가셔서 전면 검사를 받아보시는 게 좋겠어요.”자택에서 검사받는 것은 어디까지나 환경 제한이 있었다. 의사가 다행히 마지막 말을 하지 않은 덕분에 바론 공작이 비록 불만이 잔뜩 했지만 이내 손을 저으며 가보라고 했다. 강유리는 헛구역질 한번 한 것으로 아빠가 난리법석하는 모습이 우스웠지만 그래도 마음속은 따뜻했다. 사실 강유리는 생리가 일주일이나 미뤄졌기에 무슨 일인지 대충 짐작이 갔지만 전에 한번 해프닝을 겪었던 기억이 있기에 확정된 다음에 말하려고 아무 내색을 내지 않았다.저녁을 먹고 나서 강유리는 도우미를 불러 심부름을 다녀오라고 하자 그녀는 흠칫하더니 이내 두 눈을 반짝이며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러자 강유리는 식지로 입을 막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비밀이야. 바론 공작과 육시준이 알게 하면 안 돼.”도우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빠른 걸음으로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어둠이 내리자 강유리는 베란다 소파에 앉아 절반 넘게 진행
어떤 커플이 툭하면 사귀고 툭하면 헤어지고 그런단 말인가? 만일 이번에 톡톡히 혼내주지 않으면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으니 반드시 이번 기회에 나쁜 버릇을 고치고 진심을 보여주게 해야 한다.그리고 아직 예능 프로그램이 남았으니 함께 출연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육경서에게 기회를 준 것으로 생각했다.솔직히 절친이 있으면 이런 점이 너무 좋았다. 무슨 일이든 무조건 자기편을 들어주고 자기 뜻대로 따라주며 쓸데없는 생각으로 스스로 괴롭히는 것을 자제하게 해준다.전에 신주리도 마찬가지로 릴리와 신하균이 사귄다고 했을 때 가족애를 버리고 그녀의 손을 들어줬다.여기까지 생각한 신주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났는지 물었다.“그날 밤 네가 그랬잖아. 신하균과 사귀는 것이 단지 그의 목소리와 얼굴에 반한 것이 아니라 그의 직업 도덕에 반했고 고독한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서라고.”이건 릴리가 신하균과 연애한 뒤 신주리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한 말이다.이 말을 듣고 나서부터 신주리는 두 사람의 연애를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릴리는 말문이 턱 하니 막히더니 부자연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내가 그런 말을 했어?”그러자 신주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분명히 했어.”릴리는 생각하는 척하더니 반박하지 않고 말했다.“맞는 말이잖아. 내가 그때 마음이 약해지는 바람에 지금 운수가 안 좋아.”신주리는 릴리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융통성이 전혀 없고 일밖에 모르는 신하균은 예쁜 말로 여자를 달랠 줄도 모르고 낭만도 모르며 외모 빼면 자랑할 것이라곤 전혀 없으니 운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다른 한편, 강유리는 단체방에서 수다를 떨다 결과를 마저 듣지도 못하고 릴리가 오프해버리는 바람에 심심한 나머지 인터넷에 접속해 실시간 검색어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며 무료함을 달랬다. 그러는 동시에 머리 한쪽 구석으로 이젠 귀국할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을 줄곧 하고 있었다.도우미들이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고 요리하는 냄새가 어렴풋이 전해오자 강유리는
그 기분이 신씨 가문에 도착할 때까지 잘 유지되었고 비록 두근거리고 긴장됐지만 그래도 더없이 기뻤다. 하지만 신주리의 이 한마디 말이 마치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온몸이 얼어들었다.‘연기라고 했어...’육경서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몸에 구멍이라도 뚫을 듯이 한참 동안 노려보자 불편함을 느낀 신주리는 두 사람의 운명을 책임진 운전대를 직접 잡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빨간불 앞에 차가 멈추자 신주리는 두 손으로 팔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돌리더니 투덜거렸다.“왜 쏘아보고 그래? 그러다 물기라도 할 것 같아.”육경서는 슬픔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주리야. 나는 우리 두 사람이 오해가 생긴 게 유미나 때문인 줄 알았어.”이 말은 진심이었고 그는 유미나만 해결하면 두 사람이 화해할 줄 알았지만 신주리의 태도로 봐서는 전혀 장난 같지 않았다. 그를 혼내려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신주리는 빨간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네 생각이 틀렸어. 우리 사이의 문제는 다른 사람과 아무 상관이 없어.”솔직히 신주리도 유미나를 미워하기는 했지만 절대 두 사람 사이의 걸림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한 번도 육경서와 그녀 사이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의 문제는 어떻게 상대를 대하는지의 문제였다. ...여론이 지속적으로 확산되면서 오늘 밤 어떤 사람은 상심에 빠졌고 어떤 사람은 수심이 가득했다. 유미나와 매니저는 서로 원망하기에 바빴고 게다가 거액의 배상금까지 떠안게 되어 죽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육경서와 신주리도 아직 화해하지 못했기에 똑같이 수심에 빠져있었다. 신주리는 절대 나 혼자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물귀신 작전을 펼치러 월계만으로 달려가 눈에 띄는 커플만 있으면 헤집어놓을 심산이었다. 릴리 집에 도착해보니 뻔뻔한 친오빠는 그곳에 없었고 릴리 혼자만 절친 단체방에서 수다를 떠느라 여념이 없었다. 화젯거리는 당연히 신주리였다.“핸드폰이 그렇게도 좋아? 여기에 사람이 이렇게 떡하니 서
현재 신주리 실력과 지위는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다 보니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지하 주차장에 신씨 가문 차량이 오래전부터 대기하고 있었고 경호원이 기자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서슬이 퍼레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신주리는 매니저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차를 향해 걸어가자 경호원이 깍듯이 차 문을 열어줬고 허리를 숙여 차에 오르니 불청객 한 명이 앉아 있었다.“넌 왜 여기에 있어?”신주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조수석에 앉아있는 육경서에게 묻자 그는 고개를 돌려 활짝 웃으며 말했다.“기자한테 포위돼 못 빠져나가는 것을 어머님, 아버님이 구해주셨어.”신명진은 고개를 돌려 짜증 섞인 신주리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다 가족인데 모순이 있으면 집에 가서 문 닫아걸고 얘기해.”그러자 한영숙도 한마디 곁들었다.“그래. 이 자식이 평소에는 믿음이 별로 안 갔는데 오늘 결정적인 순간에 너를 위해 서슴없이 나서는 것을 보니 그나마 책임감은 있는 것 같아.”신씨 부모님은 신주리의 열혈 팬이기에 두 사람의 관계를 모를 수 없었다.하지만 두 사람은 단지 팬에 그쳤고 딸이 실제 상황을 말해주지 않았기에 두 사람이 아직까지 사귀고 있는 줄로 알고 있었다...신주리가 입을 열고 뭐라고 설명하려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대로 입을 다물었고 차는 서서히 신씨 가문 별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전에도 육경서가 신씨 가문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사위 신분으로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하필이면 또 이런 특별한 사건이 생긴 시점이라 덜컥 겁이 났다.바로 이때 신주리가 입을 열고 말했다.“두 분은 먼저 들어가서 쉬세요. 저희는 아직 할 일이 있어 나갔다 와야겠어요.”그러자 한영숙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저녁 먹을 시간인데 뭐가 그렇게 바빠?”“회사 여부장님이 좀 만나자고 해서요.”신주리는 대충 아무 핑계를 대면서 두 사람을 차 밖으로 밀어냈다. 합리적인 이유라 부모님이 두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한영숙은 차에서 내리면서 낮은 소리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