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임천강을 바라보았다.임천강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역시, 이 여자는 아직 날 잊지 못 했어.’그는 성신영에게 안심하라는 눈빛을 보내고는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신영이 뿐이야. 난 너한테 기회를 줬어. 네가 그걸 거절한 거고.”그가 말한 기회는 바람 피운 것을 들킨 날에 그가 너랑 결혼은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었다.강유리는 그와 입씨름을 하기도 귀찮아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신영이 그녀의 팔목을 잡으며 말했다.“언니, 우리 얘기 좀 해.”말을 마친 그녀는 임천강에게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좋게 대화로 풀겠다고 말했다.임천강도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인상을 쓰며 자리를 떠났다.어차피 강유리가 자신을 잊지 못했다는 걸 확인한 걸로도 충분했다.임천강이 떠나자 성신영은 부드러운 미소를 싹 지우고 경멸에 찬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언니, 들었지? 천강 오빠는 나만 사랑해!”“그래. 평생 둘이 행복하게 살아.”강유리는 살짝 손을 빼며 말했다.성신영은 그녀의 차가운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천강 오빠가 정말 언니를 걱정해서 그런 말을 한 것 같아? 오빠는 그냥 육경서랑 계약하고 싶은 거뿐이라니까? 그러니까 우리 천강 오빠한테서 멀리 떨어져! 평생 언니는 나한테 상대가 안 되니까!”성신영은 아무리 연기라도 임천강이 강유리에게 잘해주는 게 기분 나빴다.임청강은 그녀의 남자였고 가문의 재산도 모두 그녀의 것이어야만 한다.육경서?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언니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천강 오빠는 나를 선택했잖아? 그리고 언니는 나한테 결혼 선물을 해줘야 하는 입장이고!”의미심장한 말을 마친 성신영은 미련없이 뒤돌아섰다.강유리는 인상을 쓰며 그녀의 뒷모습을 쏘아보았다.약혼식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성홍주는 무대 위에서 감개무량한 얼굴로 축사를 말한 뒤, 가족을 사랑하는 장녀가 동생을 위해 큰 선물을 준비했다면서 그녀를 무대로
분위기가 순간 이상해졌다.박수 소리도 뜸해졌다.성신영 모녀가 어디 출신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냥 원래 이 집 안주인인 강민영이 세상을 떠나고 이들 모녀가 나타났다는 것만 기억했다.지금의 사모님은 성홍주의 첫사랑이었기에 사람들은 그녀가 도시에서 자랐다고 생각했다.아무도 그들의 출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그런데 강유리가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고의인 건지는 모르지만….성홍주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강유리가 이렇게까지 가문의 체면은 안중에도 없이 사람들 앞에서 망신줄 줄 몰랐다. 하지만 그가 무대에 초대한 거라 당장 내려가라고 할 수도 없었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이번 시즌 수익이 얼마나 되는데?”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강유리 손에서 돈이라도 받아와야 했다.“제가 유강 엔터를 물려받기 전에는 아버지가 경영하셨죠? 시즌 실수익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버지가 가장 잘 아시겠죠.”강유리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담담하게 대꾸했다.성홍주도 침착한 목소리로 응대했다.“유강 그룹에 소속된 기업이 얼마나 많은데 언제 잘 나가지도 않는 엔터 사업을 신경 쓰겠어?”강유리는 그가 드디어 엔터 사업이 불황이라는 것을 인정하자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성홍주는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그래요? 그럼 제가 돌아가서 장부 잘 정리해서 공개할까요?”여자는 눈을 깜빡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성홍주의 동공이 순식간에 확장되었다.유강엔터는 사실 매년 적자였다. 다른 기업에서 돈을 끌어다 쓰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흑자로 보여도 사실 모든 게 가짜였다.가짜 장부가 세상에 공개되면 그는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강유리!”“그래야 신뢰를 줄 수 있죠. 안 그러면 제가 돈을 빼돌렸다고 생각하면 어떡해요?”그녀는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으며 성홍주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이건 공공연한 도전장이었다.성홍주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리에서 힘이 풀리고 식은땀이 났다.옆에 있던 왕소영은 다급히 그를 부축하며 비서에게 쫓아내라
‘한가족답네. 뻔뻔한 모습이 아주 꼭 닮았어. 그러니까 어떻게든 나한테서 돈을 뜯어내야겠다는 거지?’추악한 가족들의 얼굴을 쭉 훑어보던 강유리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오늘은 돈 때문에 온 거 맞아요.”강유리의 말에 성홍주를 비롯한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유강엔터의 재정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아빠도 알고 계셨죠? 하루, 이틀만에 이렇게 된 건 아닐 테고... 그런데 놀랍게도 회계 장부는 해마다 흑자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더군요...”“너 그게 지금...”성홍주의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일단 아버지께 만회할 기회를 드릴까 해요. 3개월 안에 회계 장부 상태 그대로 돈 채워넣으세요. 안 그럼 회사 대표로서 이 사실을 이사들에게 알릴 수박에 없으니까요.”말을 마친 강유리가 우아하게 돌아서려던 그때, 성홍주가 성한일에게 눈치를 주었다.이에 바로 문을 닫은 성한일이 차가운 얼굴로 강유리를 노려보았다.“누나, 우리 가족끼리 이러지 말자. 웬만하면 좋게 말로 해결하는 게 좋지 않겠어?”강유리가 반박하려던 그때, 성홍주의 근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내가 그 동안 널 너무 오냐오냐 한 것 같구나. 한일아, 무릎 꿇려.”한편, 검은색 벤틀리.조수석에 앉은 육경서가 태블릿 PC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육시준을 자꾸만 힐끔힐끔 돌아보고 있다.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분주한 육경서의 모습에 참다 못한 육시준이 미간을 찌푸렸다.“할 말 있으면 그냥 해.”“형, 정말 거기 형수님 혼자 보내도 돼? 우리 형수님 괴롭힘이라도 받으면 어쩌려고.”어느새 강유리와 친해진 육경서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하지만 육시준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그럴 리가 없어.”“뭐야? 왜 그렇게 확신해. 형은 와이프 걱정도 안 돼? 형수님은 도대체 왜 형이랑 결혼한 거야.”“잘생겨서.”“뭐?”이 무슨 왕자병 말기 환자가 내뱉을만한 대사란 말인가.육경서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그때, 육시준은 드디어 태블릿 PC에서 눈을 뗐다.
육경서의 오버 리액션에 육시준은 불쾌한 얼굴로 그를 돌아본다.휴대폰과 육시준을 번갈아 바라보던 육경서가 결국 자신의 휴대폰을 건넸다.유강그룹 직원 메신저 단톡방의 메시지를 확인한 육시준이 미간을 찌푸렸다.“다들 이 기사 SNS에 공유해 주세요.”강유리의 비서가 성신영이 어린이 재단에 10억을 기부하기로 했다는 기사 링크를 보낸 것이었다.“이 사람은 누구야?”“형수님 비서. 형수님처럼 포스가 넘치는 사람이랄까?”기사를 한동안 빤히 바라보던 육시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김 기사님, 유리네 집으로 가주세요.”“알겠습니다.”육시준의 말에 차량이 바로 방향을 돌리자 육경서의 얼굴에 드디어 미소가 걸렸다.“오, 드디어 우리 형수님한테 힘을 실어주기로 한 거야? 오케이. 그럼 나도 바로 공유해야지~”톱스타인 육경서의 인기에 힘입어 기사는 바로 톱 라인에 걸리게 되었고 성신영의 팬들은 결혼이라는 경사를 앞두고 어려운 아이들에게 기부를 하는 성신영을 향해 얼굴만큼 마음도 예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한편, 스타인 엔터의 힘을 이용해 기사를 내리려던 임천강은 약속과 달리 어느새 인기 검색어로 오른 기사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한편, 강유리는 욱신거리는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탐욕으로 이미 물든 가족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싸움 되게 잘하니까 조심해!”전에 이미 강유리에게 한방 먹은 적이 있었던 성신영이 괜히 성홍주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부모님까지 다치면 큰일나니까!”그녀의 말에 건장한 보디가드 두 명이 바로 앞을 막아섰다.일촉즉발의 순간.“똑똑똑!”급박한 노크소리에 바로 문 근처에 서 있던 성한일이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누구야?”이에 문 밖에 서 있던 임강준이 젠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임강준입니다. 저희 대표님께서 사모님과 함께 댁으로 들어가겠다고 하셔서요.”‘이 목소리... 귀에 익은데. 어디서 들어봤더라?’강유리가 미간을 찌푸렸다.한편, 성홍주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강유리 때문에 정말 여기까지 왔다고? 계약
“그러게요.”임강준이 허리를 숙였다.육시준의 포스에 눌려 다들 말도 제대로 못하던 그때, 그나마 먼저 정신을 차린 성홍주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저기... 누구신지...”그의 질문에 임강준이 대신 대답했다.“LK그룹 육시준 대표님이십니다.”육시준, 로열엔터의 대표이자 대한민국 재계 1위 LK그룹의 주인.워낙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터라 나름 재계에서 괜찮은 지위를 가진 성홍주였지만 육시준을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아들 뻘인 남자 앞에서 쪽팔리게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대충 상황 파악을 끝낸 강유리가 쪼르르 달려갔다.“올 필요 없다고 했잖아.”하지만 육시준의 시선은 그녀의 작은 얼굴에 남은 붉은 자국으로 향했다.“다쳤어?”미간을 찌푸린 육시준이 그녀의 상처를 살짝 어루만졌다.손가락을 타고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고 전류가 흐르는 듯 찌릿찌릿한 느낌에 강유리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큼, 괜찮아. 이쪽은 내가 다 해결했으니까 집에 가자.”괜히 민망해져 그의 손길을 피한 강유리가 대답했다.“제대로 처리한 거 맞아?”육시준의 시선이 방안에 있는 다른 이들을 훑고 지나자 다들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응, 그렇다니까.”뭔가 찝찝했지만 강유리가 그렇다고 하니 육시준도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연스레 그녀의 손을 잡았다.“저기요!”바로 그때, 또랑또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목소리의 정체는 성신영. 육시준을 보는 순간, 연예계에서 미남은 수도 없이 만나왔던 그녀였지만 남다른 포스와 태가 나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입을 떡 버릴 수밖에 없었다.순간 옆에 서 있는 임천강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지고 그와 자연스레 스킨십을 주고 받는 강유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질투심의 불길이 화르륵 타올랐다.‘왜! 강유리 저딴 계집애가 어떻게 저런 남자랑...’육시준과 강유리가 자리를 뜨려하자 다급해진 그녀가 한발 앞으로 다가섰다.“형부 맞으시죠? 궁금해서 그런데... 저희 언니 결혼 전에 일, 형부한테 솔직하
파티는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임천강은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하루종일 웃느라 입꼬리에 경련이 날 지경이었지만 수많은 사람들 속, 육경서를 발견한 임천강의 입가에 드디어 진심어린 미소가 피어올랐다.“두 분 결혼 축하드립니다.”“별말씀을요. 저랑 신영이 사귄 지도 3년인데 결혼해야죠. 그 동안 저희 두 사람끼리 쌓은 추억,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싶은 욕심도 좀 있었고요.”임천강의 손짓에 비서가 바로 영상을 재생하기 시작했다.조명이 어두워지고 스크린에 그 동안 두 사람이 찍은 사진들이 플레이되기 시작했다.‘육경서... 나랑 별로 친분도 없는데 여기까지 왔네. 이건 분명 절호의 기회야. 어떻게든 스타인으로 영입해야 해.’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바라보며 자랑스러운 눈빛을 짓던 임천강이 육경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저랑 신영이가 사귈 때만 해도 저희 스타인도 겨우 시작 단계에 불과했고 신영이도 별 볼일 없는 신인이었죠...”“그러게요. 수많은 신랑 후보들 중에서 선택받으신 거 축하드립니다.”“네?”육경서의 뜬금없는 말과 심상치 않은 주위의 분위기에 임천강이 스크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분명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가 담긴 영상이 재생되어야 할 스크린에는 지금까지 성신영이 만나왔던 남자들과의 수위 높은 사진들이 나오고 있었다.1분도 안 되는 영상에 나온 남자들의 얼굴만 9명 남짓.하객들의 술렁거림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뭐야? 서로 첫사랑이라고 하지 않았어?”“성신영이랑 작품 함께한 남자들이 대부분인데. 촬영 스냅컷 같은 게 아닐까?”“저 사진들 수위를 봐. 그게 말이 돼?”“...”잠깐 머릿속이 새하얘졌던 임천강이 소리쳤다.“당장 꺼! 영상 당장 끄라고!”분노의 고함과 함께 임천강이 부랴부랴 백스테이지로 달려가고 그 비굴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육경서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감히 우리 형수님을 배신해? 너도 망신 한번 당해 봐라.’한편, 검은색 벤틀리 차 안.창밖을 내다보던 강유리는 연신 한숨을 내쉬
육시준의 말과 달리 강유리도 나름대로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어차피 오늘 성신영, 임강준의 결혼식이니 큰 소란은 일으키지 못할 테고 한, 두 대 정도 맞아주고 그들의 재산을 전부 빼앗을 수만 있다면 꽤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책망이 담긴 육시준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상하게 짜증이 치밀었다.‘뭐야.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강유리가 발끈하려던 그때, 육시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걱정되잖아.”순간,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던 욕설이 덜컥 걸려버리고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꾸했다.“별일 없잖아. 그냥 살짝 부딪힌 거야. 당신이 호하고 불어주면 바로 괜찮아질 것 같은데?”가로등 불빛에 생긴 나뭇잎 그림자가 차 안으로 비쳐들며 강유리의 아름다운 얼굴을 얼룩지게 만들었다.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얼굴을 바라보다 어딘가 실망스러워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자기 말이 심했나 싶어 부드러운 목소리로 한 마디 덧붙인 육시준은 순식간에 표정이 바뀌는 강유리의 모습에 픽 웃었다.‘여자들은 이렇게 표정이 휙휙 바뀌는 건가?’“뭘 멍하니 있어. 어서 불어봐. 지금 이 기회 놓치지 마.”강유리는 얼굴을 더 바싹 가져다댔다.운전석에 앉은 임강준은 삐친 강유리를 달래주는 육시준의 말을 들으며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다.한편, 육시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강유리는 입을 삐죽 내밀며 더 불쌍한 척을 해보였다.“붓진 않았는지 좀 봐줄래? 아빠가 나한테 찻잔을 던졌단 말이야. 내가 빨리 피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얼굴에 화상 입을 뻔했다고!”“저쪽에서 때렸으면 너도 반격을 하지 그랬어.”“저쪽 쪽수가 더 많은 걸 어떡해.”이에 강유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리고 웬만큼 세게 나오지 않는 이상 그냥 가만히 있을 예정이었어. 거긴 저쪽 구역이나 마찬가지잖아.”“하, 적진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곤 있었네?”‘뭐야. 이 정도로 애교까지 부렸으면 대충 넘어와야 하는 거 아니야?’하지만 이대로 어색한 분위기를 가져가기 싫었던 강유리는 거의 그의
무수한 소문들이 소리없이 퍼져나가는 깊은 밤.성신영의 전 남친 모음 파일은 깔끔하게 삭제되었지만 사람들의 기억마저 삭제할 순 없는 법.성씨 일가 저택의 분위기는 무겁기만 하다.소파에 앉은 임천강 옆에 다가간 성신영이 오열하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오빠, 그 사진들 다 조작된 거야. 제발 나 좀 믿어줘...”조작이라기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사진들이었고 이 변명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성신영 본인도 알고 있었지만 그저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강유리, 도대체 그 사진들은 다 어디서 난 거야.’“강유리 그 계집애가 우리 신영이한테 앙심을 품고 그런 거야. 천강아, 너 절대 그 사진들 믿으면 안 된다?”왕소영 역시 거들었다.한편, 역시 성신영의 편을 들려던 성한일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의 발에 약을 발라주고 있는 비서를 퍽 하고 차버렸다.“야, 살살 좀 해!”“그만!”참다 못한 성홍주가 소리를 지르고...사고뭉치 남매를 바라보던 그는 결국 두 사람을 향해 손을 저었다.“다들 방으로 돌아가. 천강이랑은 내가 얘기할 테니까.”“아빠.”하지만 성신영의 붉어진 눈시울을 바라보던 성홍주가 훨씬 누그러진 목소리로 그녀를 타일렀다.“신영아, 이 일은 아빠한테 맡기고 일단 방으로 들어가있어.”잠시 후, 드디어 거실에 성홍주, 임천강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한편, 성홍주는 자신이 재계 1위 그룹 대표 장인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에 어깨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모습이었다.“천강아, 너랑 신영이가 하루, 이틀 만난 사이도 아니고. 신영이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알고 있습니다.”파티가 끝난 뒤 임천강이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그렇다. 사랑스러운 외모에 더 사랑스러운 성격, 성신영은 인기가 많은 스타일이었고 남자들의 구애가 끊이지 않았다.그렇지만 임천강은 단 한 번도 그런 것에 질투를 느낀 적은 없었다.오히려 그렇게나 대단한 여자가 내 애인이라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었고 강유리와 헤어질 때도 단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