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시준의 말과 달리 강유리도 나름대로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어차피 오늘 성신영, 임강준의 결혼식이니 큰 소란은 일으키지 못할 테고 한, 두 대 정도 맞아주고 그들의 재산을 전부 빼앗을 수만 있다면 꽤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책망이 담긴 육시준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상하게 짜증이 치밀었다.‘뭐야.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강유리가 발끈하려던 그때, 육시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걱정되잖아.”순간,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던 욕설이 덜컥 걸려버리고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꾸했다.“별일 없잖아. 그냥 살짝 부딪힌 거야. 당신이 호하고 불어주면 바로 괜찮아질 것 같은데?”가로등 불빛에 생긴 나뭇잎 그림자가 차 안으로 비쳐들며 강유리의 아름다운 얼굴을 얼룩지게 만들었다.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얼굴을 바라보다 어딘가 실망스러워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자기 말이 심했나 싶어 부드러운 목소리로 한 마디 덧붙인 육시준은 순식간에 표정이 바뀌는 강유리의 모습에 픽 웃었다.‘여자들은 이렇게 표정이 휙휙 바뀌는 건가?’“뭘 멍하니 있어. 어서 불어봐. 지금 이 기회 놓치지 마.”강유리는 얼굴을 더 바싹 가져다댔다.운전석에 앉은 임강준은 삐친 강유리를 달래주는 육시준의 말을 들으며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다.한편, 육시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강유리는 입을 삐죽 내밀며 더 불쌍한 척을 해보였다.“붓진 않았는지 좀 봐줄래? 아빠가 나한테 찻잔을 던졌단 말이야. 내가 빨리 피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얼굴에 화상 입을 뻔했다고!”“저쪽에서 때렸으면 너도 반격을 하지 그랬어.”“저쪽 쪽수가 더 많은 걸 어떡해.”이에 강유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리고 웬만큼 세게 나오지 않는 이상 그냥 가만히 있을 예정이었어. 거긴 저쪽 구역이나 마찬가지잖아.”“하, 적진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곤 있었네?”‘뭐야. 이 정도로 애교까지 부렸으면 대충 넘어와야 하는 거 아니야?’하지만 이대로 어색한 분위기를 가져가기 싫었던 강유리는 거의 그의
무수한 소문들이 소리없이 퍼져나가는 깊은 밤.성신영의 전 남친 모음 파일은 깔끔하게 삭제되었지만 사람들의 기억마저 삭제할 순 없는 법.성씨 일가 저택의 분위기는 무겁기만 하다.소파에 앉은 임천강 옆에 다가간 성신영이 오열하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오빠, 그 사진들 다 조작된 거야. 제발 나 좀 믿어줘...”조작이라기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사진들이었고 이 변명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성신영 본인도 알고 있었지만 그저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강유리, 도대체 그 사진들은 다 어디서 난 거야.’“강유리 그 계집애가 우리 신영이한테 앙심을 품고 그런 거야. 천강아, 너 절대 그 사진들 믿으면 안 된다?”왕소영 역시 거들었다.한편, 역시 성신영의 편을 들려던 성한일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의 발에 약을 발라주고 있는 비서를 퍽 하고 차버렸다.“야, 살살 좀 해!”“그만!”참다 못한 성홍주가 소리를 지르고...사고뭉치 남매를 바라보던 그는 결국 두 사람을 향해 손을 저었다.“다들 방으로 돌아가. 천강이랑은 내가 얘기할 테니까.”“아빠.”하지만 성신영의 붉어진 눈시울을 바라보던 성홍주가 훨씬 누그러진 목소리로 그녀를 타일렀다.“신영아, 이 일은 아빠한테 맡기고 일단 방으로 들어가있어.”잠시 후, 드디어 거실에 성홍주, 임천강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한편, 성홍주는 자신이 재계 1위 그룹 대표 장인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에 어깨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모습이었다.“천강아, 너랑 신영이가 하루, 이틀 만난 사이도 아니고. 신영이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알고 있습니다.”파티가 끝난 뒤 임천강이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그렇다. 사랑스러운 외모에 더 사랑스러운 성격, 성신영은 인기가 많은 스타일이었고 남자들의 구애가 끊이지 않았다.그렇지만 임천강은 단 한 번도 그런 것에 질투를 느낀 적은 없었다.오히려 그렇게나 대단한 여자가 내 애인이라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었고 강유리와 헤어질 때도 단
그제야 임천강은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고맙습니다. 저희 정말 잘 살게요.”...한편, 삐침쟁이 남편을 겨우 달랜 강유리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소안영에게 전화를 걸었다.밖에 있는 건지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다 겨우 조용해지고 소안영이 먼저 물었다.“지금 한국은 밤 아니야? 신혼생활을 즐기는 여자가 친구랑 통화할만한 시간대는 아닌 것 같은데... 설마 벌써 권태기야?”‘하여간, 쟤는 머릿속에 온통 그런 것만 들어있나...’피식 웃던 강유리가 대답했다.“장난 좀 그만쳐. 진지하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 전화한 거니까.”“말해 봐. 남자 소개 말고는 이 언니가 다 들어줄 수 있으니까. 나도 양심이 있지. 신혼 깨 볶는 친구한테 애인 소개해 줄 수야 없지.”“아버지가 10억을 내놓으라네?”“미쳤어? 그 동안 임천강 그 자식 뒷바라지 해줬으면 됐지. 이젠 아빠 뒤치닥거리까지 해주려고? 너 이제 결혼한 몸이야. 이제 네 쌈짓돈은 잘생긴 남편한테 쓰시라고요.”강유리의 말에 오히려 소안영이 펄쩍 뛰었다.임천강과 사귈 때도 뭐가 이쁘다고 용돈까지 주면서 만나나며 불만이 많았던 그녀였다.그렇게 뒷바라지하다가 남자는 훌쩍 떠나버리고 사랑도, 돈도 잃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여자들을 한, 두 명 본 게 아니라며 강유리를 설득한 것도 여러 번.그래도 한 번 되차게 배신을 당했으니 이젠 정신을 차렸거니 했는데 이번엔 아버지라니.‘얘는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은근 호구란 말이야.’한편, 강유리도 바보 같은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니 머리가 지끈거렸다.“진정해. 애초에 진짜 줄 생각도 없었으니까. 아무튼 지금 이 10억이, 아니 20억이지. 아빠의 가장 큰 골치거리일 거야...”오늘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한 강유리가 한 마디 덧붙였다.“아버지야 뭐. 성신영한테는 세상 자상한 아빠니 어떻게든 들어주려고 할 거야.”“그만한 돈이 있긴 하고?”“당연히 없지.”강유리가 피식 웃었다.“유강그룹 회계장부 다 살펴봤는데 주얼리 쪽을 제외하고 다른 계
억울함이 잔뜩 담긴 목소리에 육시준의 가슴이 콩닥이기 시작했다.낮에는 무서울 것 없이 항상 당당하더니 이렇게 약한 모습도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강한 척 하느라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에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었다.“큰 집에서 살게 해주고 싶다.”계약결혼을 시작할 때부터 강유리가 해 온 말이었지만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왜 그렇게 큰 집에 집착을 하는 거야...’“그렇게 큰 집에서 살고 싶어?”사랑스러운 강유리를 보고 있자니 육시준의 목소리도 평소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한편, 눈을 꼭 감고 있던 강유리가 입을 삐죽거렸다.“그냥... 내가 괜히 네 발목을 붙잡은 것 같아서. 궁궐 같은 집에서라도 살게 해주면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그래.”잠시 침묵하던 육시준이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엥? 무슨 대답이 이래...’그게 무슨 말이냐 캐묻고 싶었지만 다시 밀려오는 잠기운에 강유리는 다시 꿈나라로 빨려들어가고 말았다......곱게 잠든 강유리의 모습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육시준이 뭔가 결심한 듯 베란다로 향했다.“임 비서, 유강그룹 상황 좀 주시해 줘. 계열사를 처분할 기미가 보이면 LK그룹이 전부 다 인수할 예정이라고 소문 좀 내주고.”“...”야밤에 뜬금없는 명령에 임천강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인수하는 것도 아니고 인수할 예정이라고 소문을 내라니.아리송한 말이었지만 임천강은 더 캐묻지 않았다.“알겠습니다.”“그리고 성 대표가 JL빌라를 매입하려고 한다면서?”“네, 따님은 성신영 씨와 사위를 위한 신혼집이라고 합니다. 계약금은 이미 치른 상태고요.”“전액 지불한 건가?”“아니요. 일단 선금으로 60%, 나머지는 할부로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안기 부동산 쪽에 얘기 좀 넣어줘. 오늘 이 시간부로 JL 빌라는 전액 현금 구매만 가능하다고 말이야.”이에 임천강이 눈을 반짝였다.‘우리 대표님, 드디어 정체를 공개하시려는 건가!’“그리고 임 비서가 해줘야 할
평소 딱딱한 정장차림 아니면 샤워를 마치고 헐벗은 모습만 보다 이렇게 캐주얼한 코디를 보니 왠지 색다른 기분이었지만...‘지금 내가 남자 얼굴에 홀려서 헤벌레 할 때가 아니지...’고개를 거세게 저은 강유리가 따져물었다.“쇼핑했어? 뭐 산 거야? 아니... 도대체 뭘 샀길래 50억을 긁은 거냐고.”“정확히 320억이지.”태연하게 정확한 숫자를 짚어주는 꼴을 보고 있자니 강유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목이라도 조르고 싶은 생각이었지만 애써 이성의 끈을 부여잡으며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자, 어디 좀 보여줘 봐. 얼마나 대단한 걸 산 거야?”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는 강유리를 바라보던 육시준이 피식 웃더니 쇼핑백을 건넸다.쇼핑백에 든 건 옷도 가방도 신발도 아닌 파일을 담은 폴더. 그 안에 담긴 문서를 하나하나 확인하던 강유리의 눈이 또다시 커다래졌다.“JL빌라 펜트하우스?”“응.”“...”부동산 계약서를 바라보던 강유리는 이 상황에서 도대체 화를 내야 하는 건지 잘했다고 칭찬을 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JL빌라 펜트하우스라면 시가로 300억짜리 부동산, 그런 집을 도대체 무슨 수로 50억에 매입한 것인지는 알 수조차 없었다.하지만 궁금함도 잠시, 명의자 이름에 똑똑하게 서있는 강유리 이름 석자를 보고 있자니 왠지 가슴이 벅차올랐다.한편, 어느새 소파에 앉은 육시준은 혼이라도 빠져나간 듯 멍하니 서류만 보고 있는 강유리의 얼굴 앞에 손을 흔들어 보았다.“뭐 해? 나 잘했... 윽!”바로 그때, 강유리가 그의 손목을 확 잡더니 바로 콱 물어버리더니 큰 눈을 깜박거리며 물었다.“아파?”어느새 손목에는 가지런한 치아자국이 남았지만 강유리의 촉촉한 입술을 보고 있자니 순간의 짜증도 아픔도 전부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내가 똑같이 갚아줘?”퉁명스러운 질문에 강유리는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섰다.그리고 다시 이성을 되찾은 강유리가 물었다.“펜트하우스는 매입 불가라며. 거긴 LK그룹 대표 소유라고.”“만약 내가 그 LK
육경서가 친구의 친구에게서 겨우 연락처를 받아냈고 와이프가 펜트하우스에서 살아보는 게 꿈이라고 부탁을 했더니 흔쾌히 싼 값에 넘겼다는 육시준의 해명을 듣고 있던 강유리의 표정은 점점 더 묘하게 변해갔다.어딘가 이상했지만 정확히 뭐가 이상한 건지 콕 집어 말할 수는 없는 묘한 느낌.더 캐물으려던 그때, 육시준이 벌떡 일어섰다.“됐고. 얼른 짐 정리해. 전 남친보다 먼저 이사해야 할 거 아니야.”역시 육시준의 도발은 정확히 먹혀들어갔다.뭐 어떤 경로로 얻게 되었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랴.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JL빌라 펜트하우스 주인이 강유리 본인으로 이미 바뀐 것을.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강유리는 반나절만에 짐 정리를 끝내는 놀라운 효율을 보여주었고 해가 지기 전에 두 사람은 JL빌라로 보금자리를 옮기게 되었다.고풍스러운 유럽식 인테리어, 화려한 크리스탈 샹들리에, 딱 봐도 비싸보이는 가구들과 인테리어 소품.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직 펜트하우스 거주자만을 위해 만들어진 큰 정원과 실외 골프장까지.임천강이 왜 그렇게나 JL빌라, JL빌라 노래를 불러댔는지 이해가 가는 강유리였다.그렇게 얼떨떨한 상태에서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아 TV 시청을 하던 그때, 시시때때로 들려오는 한숨소리에 육시준이 질문을 뱉어냈다.“왜 그래? 여기서 살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왜 자꾸 한숨이야. 기분 안 좋아?”“좋지, 왜 안 좋겠어.”‘표정만 보면 거의 나라 잃은 사람인데...’“그냥 한평생 모은 돈을 다 퍼부었다는 생각에 속이 쓰리네. 하우스 푸어가 이런 건가?”어젯밤까지 성홍주가 내놓은 자산들을 어떻게 가장 낮은 가격으로 인수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녀였는데...자상한 남편 덕분에 고민거리가 싹 사라져버렸다.성홍주가 뭘 내놓든 살 돈 조차 없어졌으니까.“우리 남편 진짜 대단하다니까. 사랑해.”표정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백,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육시준의 마음 한켠은 달콤해졌다.남편...너무나 평범한 호칭임에도 강유리의
한편, 섹시하게 움직이는 육시준의 목젖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강유리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내 친구 중에 유명 투자자가 있는데 걔도 그랬어. 이 드라마 무조건 뜰 거라고.”“설마 그 친구라는 게 신아람이야?”‘연예계 미다스 손이라고 불리는 신아람을 제외하고 그런 장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역시나 그의 말에 강유리는 깜짝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어? 네가 아람이를 어떻게 알아?”“...”호기심이 담긴 반짝이는 눈동자, 자연스레 늘어터린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하얀 목선...그 동안 미인이란 미인은 지겹게 봐왔지만 강유리, 이 여자는 왜 자꾸만 더 특별하게만 느껴지는 걸까?자연스레 그녀의 잔머리를 넘겨주던 육시준의 눈빛에 묘한 감정이 서렸다.“그래서 로열 엔터랑 협력 투자하고 싶다는 말이지?”“응.”강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당신 육경서랑 친하잖아. 로열 엔터에서도 나름 한 자리 맡은 것 같은데 이번 프로젝트만 제대로 해내면 당신도 출세할 수 있어. 아, 물론 당신 혼자 모든 리스크를 감당하라는 소리는 아니야. 유강엔터가 제작비 중 30%는 투자할 거야. 윈윈인 거지.”자신만만한 강유리의 모습에 육시준은 웃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다들 어떻게든 로열 엔터와 함께 일하고 싶어서 안달난 상황인데 강유리는 오히려 그녀와 함께 일하는 것이 큰 자비인 것마냥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유강엔터 상황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다른 회사들도 다 피하고 있는 거 아니야? 내가 왜 유강엔터랑 함께 일을 해야 하지?”“우리 회사에는 육경서가 있으니까.”강유리의 당당한 대답에 육시준이 어깨를 으쓱했다.“육경서는 로열이 버린 카드인데.”“내가 강덕준 감독 섭외할 수 있어.”“뭐?”육시준이 눈썹을 치켜세웠다.펜트하우스를 사는 데 자산 중 대부분을 다 썼음에도 아직 유강그룹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은 것 같은 모습에 괜히 장난기가 발동해 놀려줬던 것뿐인데 이런 대어가 딸려올 줄이야.‘강덕준 감독은 차기 오스카 감독상
80억이라는 가격에 망설일 줄 알았는데 다른 작품 저작권까지 다 사들인다고?“형, 내가 작가분 팬이라 작품은 다 읽어봤는데 이 좋은 소설인 건 맞아. 하지만 다른 소설은... 영상으로 제작되기엔 부족한 점이 많을 것 같은데...”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존경하는 작가에게 예우를 차려준 것뿐. 다른 네 작품은 이라는 대작을 만들기 위한 습작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그런데 똑같은 가격으로 저작권을 사들인다니.이번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릴리 작가와 독점 계약을 맺는 조건이라 해도 이건 너무 과하다 싶었다.임강준 역시 당황스럽긴 했으나 대표님의 결정은 절대 의심하지 않는 게 그의 신조였으므로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한편, 앉은 자리에서 400억을 써넣고도 차분한 형을 가만히 관찰하던 육경서의 눈이 번뜩였다.“설마... 형수님 때문이야? 며칠 전엔 갑자기 집을 팔지 않나... 그냥 주면 주는 거지 뭘 또 팔고 그런대? 그리고 내가 알아봤는데 이 소설 작가 신비주의긴하지만 한국 국적 아니라던데? 사실 형수님이 작가였다 이런 스토리는 불가능하다고.”“요즘 많이 한가한가 봐?”하지만 육시준의 차가운 말 한 마디에 육경서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괜히 까불었다가 남주인공 역이 물 건너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캐스팅이 결정되기 전까진 형 비위를 맞춰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육경서가 입을 다무니 사무실은 다시 조용해지고 잠시 후 임강준이 다시 들어왔다.“연락해 봤는데 다른 작품 저작권에 대해서는 조금 고민해 보겠다고 하더군요.”“고민을 해? 이건 그냥 공짜로 퍼주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도대체 왜?”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을 커다랗게 뜨던 육경서는 바로 울상을 지어보였다.“형, 혹시 돈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고 막 그래? 그럼 나, 나한테 좀 써줘. 유강엔터가 입김이 별로라 나 요즘 일도 많이 줄었단 말이야.”“강유리 말이야. 해외에 있는 3년 동안엔 뭘 했는지 전혀 모른다고 했지?”시